배현우는 이안의 말을 듣고 표정이 갑자기 화사해지면서 우아하게 돌아섰고 젠틀하게 걸음을 옮기며 테이블로 다가갔다. 훤칠한 용모는 이 순간 모두를 도취하게 했지만 그의 말투는 그리 따뜻하지 않았다."룰? 누구의 룰인데."이안도 몸을 일으켜 음산하게 배현우를 바라보았다. 침을 한번 삼키고는 이를 악물고 일부러 담담한 척 배현우를 바라보며 몇 마디 내뱉었다."안산의 룰이 바로 이씨 집안의 룰이죠.”"안타깝게도 넌 안산 이씨 가문의 룰을 대표할 수 없고 나를 구속할 자격도 없어."그의 말투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서 이안을 점점 더 침착하지 못하게 만들었고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게 했다.눈앞의 남자는 그에게 너무 큰 스트레스를 주었다.권석주는 이안을 보호하려는 태도로 급히 한 걸음 앞으로 나와 나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한지아, 이 천한 여자야. 체면을 살려줘도 거절하네. 오늘 네가 걸어 들어온 이상 그렇게 쉽게 나갈 수 없어.”말을 마치고 그는 손을 뻗어 나를 잡아당겼고 기름진 손으로 내 손목을 꽉 잡았다.하지만 배현우가 빠른 속도로 멍하니 서 있는 이연의 손에 있는 포크를 빼내서 정확하게 그의 손등에 꽂았다.돼지가 울부짖는 듯한 비명이 들리더니 권석주는 내 손목을 놓아버렸다. 그는 겁에 질려서 자신의 손을 끌어안았다. 그의 기름진 손을 타고 피가 흘러내렸다. 권석주는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매서운 배현우를 보며 연신 뒷걸음질을 쳤다."네 따위 만질 수 있는 여자가 아니야."배현우가 내뱉은 말 한마디 한마디가 음산하기 그지없었고 눈 밑의 분노는 더욱 깊었다.이연은 놀라서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자신의 손을 쳐다보았다. 원래 자신의 손에 있던 포크가 바로 권석주의 손에 꽂혀 있는데 이 모든 것이 바로 눈앞에 있는 모두를 홀린 남자가 한 짓이었다.그녀는 담담하게 한 발짝 물러섰고 배현우가 그녀의 손에서 포크를 어떻게 빼냈는지 아직도 몰랐다.이안은 충격을 받았다. 그는 이 멋진 남자가 이렇게 패기가 넘칠 줄 몰랐다."너..."그는 배현우를 가리
이안의 말을 들은 김우연은 입꼬리를 살짝 씰룩이더니 밖을 향해 소리쳤다.“들어와!”경찰들이 줄지어 들어와 바닥 위의 사람들을 모두 들어 올렸다. 그제야 그들의 몸에 상처가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한 사람도 피해를 면하지 못한 것 같았다. 김우연이 다가와 한 무더기의 자료를 경찰에게 넘겼다.“이것은 이 사람들이 여러 해 동안 안산에서 범죄를 저질렀다는 증거예요. 그리고 부상자들의 명단과 사건의 상세한 과정이 적혀 있어요!”그때야 이안은 진정한 공포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당신은... 배... 진 형사님, 당신이... 누가 오라고 했어요? 난 왜 몰랐죠?”“죄송합니다. 이안 씨, 이것은 위의 지령이니 당신은 참견할 권리가 없습니다!”그 진 형사는 딱 봐도 경찰서의 우두머리였다. 그는 지금 엄숙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이안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았다.“좋아... 이 배은망덕한 놈...”“누구 없어? 이 자식들 데려가!”진 형사는 이안이 또 뭔가 말하려 하자 급히 소리를 질렀다. 이안이 계속 헛소리를 지껄이게 할 수 없었다. 진 형사는 태연자약하게 이 모든 걸 구경하고 있는 그 남자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잘 알고 있었다.“네가 감히!”이안은 화를 내더니 잠시 생각해보고 말했다.“아버지가 아직 병원에 있어. 난 아버지를 돌봐야 해.”말을 마친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소리쳤다.“이연아... 우리 병원 가자!”“실례지만 이안 씨! 이안 씨 아버지는 병원에 안 계세요. 지금 경찰서에 계시거든요. 이안 씨가 거기 가서 돌보면 되겠어요.”진 형사가 무서울 정도로 음침한 표정을 지은 채 하는 말을 이안은 믿을 수가 없었다.“...뭐라고? 다시 한번 말하지만, 누가 너에게 그런 권리를 준 거야? 감히 누가 이렇게 하라고 한 거냐 말이야!”이안은 이 말을 듣자마자 격분하여 진 형사에게 달려들었다.“이 비열한 소인배, 네가 이씨 가문에 빌붙던 날들을 잊었구나. 우리 아버지는 퇴직한 공신이야. 네가 감히... 그런 사람을 이렇게 대하다니!”“이안, 자
이번 저녁 식사는 정말 의미가 달랐다. 다들 매우 기뻐했고 우리 팀도, 양진모의 팀도 모두 더욱 기세가 올랐다.안산의 형세가 곧 변할 것이다.모든 것이 너무 빨라서 안산 사람들에게 숨 돌릴 기회도 주지 못한 채 갑자기 변해버렸다.특히 어젯밤 이위진, 이안 부자, 그리고 그들의 측근들은 모두 하룻밤 사이에 끌려갔다.병원에서 곧바로 연행된 이위진은 고급 병실 특별 대우를 누리며 연행 직전 병실에서 물건을 내던지고 의료진에게 욕설을 퍼부었다.마침 그가 한창 열이 나 있을 때 경찰들이 뛰어 들어와 그를 연행했다. 당시 그는 강렬하게 저항했다. 경찰에게 삿대질하고 욕설을 퍼부으며 늙은이를 괴롭힌다고 억지를 부렸다.목격자들이 인터넷에 올린 짧은 동영상은 이 모든 것을 생생하게 담고 있었다. 이씨 집안의 이 두 가주뿐만 아니라 그들의 끄나풀도 밤새 한 명도 도망갈 수 없었다.이것은 정말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나도 이 모든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알 수 없었다. 미리 전략을 짜고 있었는데 단지 시간문제였던 것 같다.이튿날.안산 새 터는 비록 옛 시가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만, 기분이 좋아진 안산 사람들을 막을 수 없었다. 그들은 모두 신구역의 주소로 몰려가 서명식에 참가했다. 이 서명식은 매우 떠들썩하고 안산을 놀라게 했는데 이는 나에게 큰 자신감을 주었다.안산 사람들은 바삐 돌아다니며 서로에게 알렸고 새 터에 모두 모였다. 그러고 보니 안산은 확실히 형세가 변해가고 있었다.서명식이 끝난 후 우리는 안산 사람들의 초대를 완곡하게 거절하고 차를 몰고 서울로 돌아갔다. 나는 급한 마음을 안고 곧장 공항으로 향했다!내가 미친 듯이 달려갔을 때 이미연은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시간은 빨리 흘러 도혜선이 이렇게 떠난 지 어느덧 거의 반년이 지나갔다. 우리는 그녀가 보고 싶을 뿐만 아니라 걱정되기도 했고 어떻게 변하는지 보고 싶었다.그래서 공항에서 그녀를 기다리는 마음이 아주 착잡했다.내가 유일하게 바라는 것은 그녀가 그 상처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다.기다
나는 믿기지 않아 눈을 비비고 보았지만, 확실히 서강민이었다!‘서강민이 왜 여기에 있지?’나는 본능적으로 도혜선을 돌아보게 되었다.이미연은 우리보다 더 다급하게 한마디 물었다.“서강민 씨가 왜 여기 있어요?”서강민은 이미연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도혜선을 빤히 쳐다보았다. 애매한 눈빛을 지은 서강민은 입가까지 바르르 떨며 조금 흥분되어 있었다.내 팔짱을 끼고 있던 도혜선의 손이 갑자기 꽉 조여 왔는데 그 힘이 너무 세서 나는 통증을 느낄 정도였다.내 눈은 서강민을 주시하고 있다. 사실 나도 오랫동안 그를 보지 못했다. 서강민은 다른 사람처럼 변해 있었는데 유난히 말라 보였다.“혜선아, 드디어 돌아왔구나?”그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나는 옆에 늘어져 있는 그의 손이 자신감 없이 주먹을 꽉 쥐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가 지금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런 서강민을 바라보는 도혜선의 입가도 어색하게 실룩거리다가 이내 평정을 되찾았다.도혜선은 옅은 미소를 보이며 물었다.“잘 지냈어요?”“아니, 아무도 네가 어디 갔는지 알려주지 않았어!”서강민은 지금 이 순간 고집스러운 아이 같았다. 게다가 아직 집을 찾지 못한 아이이기도 한 듯 말투에는 한 가닥 불평과 불쾌함이 서려 있었다.도혜선은 억지웃음을 지었다.“이건 내 친구들 잘못이 아니에요. 나 자신도 어디로 가는지 몰라서 알리지 않았거든요. 단지 돌아오기 전에 나를 데리러 오라고 통지했을 뿐이에요!”서강민은 눈에 물안개가 낀 채 계속 도혜선의 얼굴을 주시하고 있었다.도혜선은 항상 침착했고, 웃음에는 분명한 거리감이 있었다.서강민은 한 걸음 앞으로 나와 안절부절못하며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혜선아, 돌아왔으면 됐어! 우리 집에 가자!”도혜선은 한 발짝 물러서서 그의 손을 피하더니 여전히 담담한 웃음을 유지했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이미 안간힘을 다해 견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미안한데 나 그만 집에 돌아가야겠어요. 그럼 이만.”그녀는 말을 뱉고 나서 또 한 걸음 물러
나는 도혜선과 눈빛을 교환하고 몰래 웃었다.도혜선은 내 귓가에 속삭였다.“쟤 지금 왜 저렇게 잔소리가 많아졌어?”나는 자기도 모르게 웃어 버렸다. 이미연은 우리 둘을 돌아보며 물었다.“내 얘기야? 내가 말이 많다고 그러는 거지?”차에 오를 때 나는 자기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았다. 서강민이 문 앞에 멀찍이 서서 우리가 가는 방향을 보고 있었는데 그 무력감과 상실감에 나는 조금의 쓰라림이 느껴졌다.하지만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서강민이 한 일이 도혜선에게 상처를 준 것이 분명해 나는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이 일에 나서서 도혜선의 결정에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이것이 두 사람의 일이고 제3자가 이끌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도혜선이 떠난 반년 동안 서강민은 어떻게 지냈고, 그의 생각은 어땠으며 자신의 진짜 잘못이 무엇인지 깨달았을지 나는 알 수 없었다.하지만 그가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한다면, 나는 도혜선이 그를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설령 도혜선이 그를 용서할 수 있다고 해도 나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도혜선이 떠나기 전 그 장면을 나만 보았다. 그녀는 구사일생으로 한 번 살아났고 얼마나 아픈지 나는 알 수 있었다.차에 올라타자마자 집에 전화를 걸어 우리가 도착했다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말했다.이미연은 가는 내내 중얼거리며 도혜선의 행방을 추궁했다.도혜선도 이미연에게 한마디 했다.“내 얘기만 하지 말고 빨리 말해 봐, 너와 문기태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남미주가 널 더 곤란하게 하지 않았어? 난 항상 이걸 걱정했어.”이미연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흥, 날 곤란하게 해? 목숨을 잃지 않은 것만도 다행인데 남미주가 날 곤란하게 한다고?”나는 이 말을 듣고 피식 웃었다.“남미주가 목숨을 잃을 뻔한 게 너랑 무슨 상관이야? 큰소리 치려고 해도 이유가 있어야 해.”도혜선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며 의혹으로 가득한 눈빛으로 물었다.“어떻게 된 거야? 도대체 무슨 일인데?”그
콩이는 애늙은이처럼 얼른 도혜선에게 소개했다.“혜선 이모, 이쪽은 내 작은 언니예요. 우리 가족이고, 음... 삼촌이 나를 위해 찾아준 작은 언니예요! 친자매나 다름없어요.”도혜선이 칭찬하며 말했다.“네 삼촌은 참 제멋대로야.”그리고 그녀는 제인을 바라보았다.“음, 정말 예쁜 애네.”말을 마친 도혜선은 다른 한 손으로 제인을 안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였다.“미녀님! 나 선물 있어!”두 아이는 매우 좋아했다. 콩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 바로 선물을 뜯는 것이었다!방에 들어온 나는 장영식도 있다는 걸 발견했다. 그가 오늘의 요리를 준비했다고 한다.도혜선은 우리 어머니와 한참 동안 껴안고 억지를 부리며 배고프다고 소리쳤다. “반년 동안 맛있는 음식을 못 먹었어요! 꿈에도 먹고 싶었어요!”도혜선이 불쌍하게 말했다.“그럼 당장 밥 먹자! 지아야, 현우에게 전화해서 얼마나 더 있어야 돌아오는지 물어봐!”엄마가 지휘했다. 김향옥이 있는 이곳에서 엄마는 대장처럼 매일 그곳의 모든 것을 안배하며 즐겁고 바쁜 나날을 보냈다.김향옥도 당연히 도혜선을 알고 있지만, 트러블이 있었던지라 멀리서 일을 도와주며 감히 다가오지 못했다.기다리기 힘들었던 콩이가 달려와서 물었다.“혜선 이모, 내 선물은요?”도혜선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난 네가 벌써 잊은 줄 알았어, 꼬마야! 너는 정말 영리하구나!”도혜선가 캐리어를 열자 안에는 모든 사람의 선물이 들어있었다. 특히 콩이에겐 여러 나라의 특색있는 옷을 선물했고 콩이는 행복해했다.“다행히 큰 사이즈도 여러 개 샀어. 우리 제인이 선물도 여기 있어!”김향옥과 윤씨 아주머니의 선물도 준비했으니 도혜선이 얼마나 세심한지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마음이 우리 가족에게 있다는 것을 느낀 나는 매우 감동했다.식사 준비를 마치고 돌아온 배현우의 뒤에는 한 사람이 따라오고 있었는데 바로 서강민이었다!그가 들어오는 것을 본 우리는 매우 의외라고 생각했다. 도혜선이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서강민 씨, 어서 들어오세요!
우리는 도혜선이 작별 인사도 없이 떠난 것을 나무랐다. 도혜선은 덤덤하게 웃고 나서 말했다.“사실 갑자기 떠나기로 한 거야.”도혜선은 환하게 웃었다.“그래서 정말 생각나는 대로 떠난 거야. 지아에게도 알려줬어! 전혀 계획이 없었고 갑자기 밖에 나가서 바깥세상을 보고 싶었을 뿐이었어. 그래서 모두에게 알리지 않은 거지!”도혜선은 쉽게 말했지만 사실 그녀가 어떤 마음으로 떠났는지 나는 알고 있었다.지금 그녀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으니 나는 그때 도혜선이 죽고 싶다는 생각을 품고 떠났다는 걸 더 확신했다. 이것이 바로 내가 가장 걱정하는 일이었다. 다행히 그녀는 무사히 돌아왔다.이미연은 6개월 동안 위험한 일이 없었는지 도혜선에게 물었다.도혜선은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아주 담담하게 말했다.“여행을 떠난 사람이 어찌 아무 고생도 하지 않았겠어. 많은 모험의 순간들이 있었지. 길도 잃었었고 말이 통하지 않을 때도 있었어. 무인 구역에도 갔었고 전쟁도 만났었어. 하지만 별생각 없이 지내다 보니 두려움도 사라지더라고...”서강민은 잠자코 듣기만 하며 가끔 그녀에게 반찬을 집어 주었지만 정작 자신은 좀처럼 입에 넣지 않았다.도혜선도 매우 협조적으로 매번 사양하지 않고 고맙다고 말하며 다 먹었다.겉으로는 여전히 호흡이 잘 맞고 화기애애하게 느껴졌다.그러나 나는 그들 사이에 함께 있을 때 느꼈던 온정이 없음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바로 정과 사랑을 오가는 이런 감정인 것 같았다. 가까이 앉아 있지만, 마음은 멀어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도혜선의 말 속에는 둘만의 시각이 아니라 그녀 혼자만의 깨달음과 계획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이미연은 일부러 서강민에게 맞서는 듯 거침없이 도혜선에게 물었다.“혜선 언니, 오랫동안 떠나 있다가 돌아왔는데 다른 생각이 없어?”서강민은 긴장한 듯 고개를 들어 도혜선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도혜선은 빙그레 웃으며 휴지를 한 장 뽑고 입가를 닦은 뒤 나를 바라보았다.“지아야, 네가 전에 한 말을 지킬 거지?”나는 도혜
이미연은 배현우의 계시를 받고 말했다.“배현우 씨의 말씀을 들으니 떠오르네. 나도 너에게 기회를 줄 수 있어. 비록 우리의 홍보부와 홍보 사례가 천우 그룹과 좀 다르겠지만. 우리는 갑작스러운 사회 혼란에 더 무게를 두고 있거든!”나는 고개를 끄덕였다.“이미연 말이 맞아!”“게다가 우리 홍보팀이 다루는 범위가 좀 더 넓을 수도 있어. 참... 마스터 몇 명 더 있는 게 나쁜 건 아니야. 사람마다 장점이 다른데 배현우 씨가 비즈니스적이라면 우리는 좀 더 사회적이야. 하하... 네가 만약 다 배운다면 반드시 잘나가는 마케팅 매니저가 될 거야.”도혜선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잘나가는 홍보 매니저든 아니든 나는 열심히 일하고 싶고, 가치 있게 살고 싶어!”나는 서강민을 몰래 바라보았다. 도혜선이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은 뺨을 후려치는 것 못지않았다. 지난 몇 년 동안 도혜선은 정말 너무 비천하고 억울하게 살았다.이 점에 대해 나는 서강민이 좀 미웠다. 이럴 땐 도혜선이 솔직히 말해도 좋다는 생각을 했다. 서강민은 확실히 도혜선의 가치를 알아야 한다.우리는 매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중에 배현우와 장영식, 그리고 서강민 세 남자는 작은 거실로 가서 계속 술을 마셨다.우리 세 여자는 다정하게 계속 수다를 떨었다.서강민은 윤씨 아주머니가 야식을 다 차려놓고서야 도혜선 곁으로 돌아왔다. 그는 술을 많이 마신 모양이었는데 도혜선을 바라보며 아쉬워하는 모습이 마치 아이 같았다.도혜선은 그를 쳐다보고는 나에게 담담하게 말했다.“나 서강민 씨를 바래다주고 올게, 좀 있다 계속 얘기해.”말을 마친 도혜선은 온화한 표정으로 서강민을 바라보며 말했다.“내가 데려다줄게요.”서강민은 눈빛을 반짝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그래.”우리는 도혜선이 일어나 현관으로 가서 신발을 바꿔 신는 걸 바라보았다.서강민도 얼른 일어나 어르신들과 인사하고 도혜선과 함께 나갔다.이미연은 재미있다는 듯 나를 보며 물었다.“휴, 두 사
나는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 마지못해 고개를 들어 서강민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서강민 씨, 먼저 들어가시죠. 언니가 깨서 서강민 씨를 보면 또 흥분할 것 같은데... 지금 같은 상황에 언니가 회복하는 게 제일 중요하잖아요.”그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는 않았지만, 나는 한마디 더 보탰다.“어떤 일들은 천천히 해야 해요. 언니한테 시간을 좀 주세요. 서로 생각을 정리해 봐요.”서강민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않고 깊은 잠에 빠진 도혜선을 한참이나 지켜보았다. 발길을 돌리기 전에도 아쉬움에 한 번 더 뒤돌아보며 나한테 말했다.“고생해 줘요.”나도 담담히 답했다.“제가 해야 할 일인걸요. 언니에게 시간을 좀 줘요. 언니도 회복할 시간이 필요할 수 있잖아요.”내가 말하는 회복이 뭔지는 서강민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건 도혜선이 마음에 입은 상처였다. 오늘 도혜선의 행동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그녀의 상처는 아물 수 없을 것이다. 언급만 해도 피가 흘러내릴 만한 상처였다.잠시 후, 서강민은 한발 물러섰지만, 눈길은 여전히 도혜선에게 머물러 있었다. 평온해 보이는 모습 아래에서 어떠한 파도가 휘몰아치는지 나는 몰랐다.한참 전 도혜선이 했던 말들은 마디마디가 주옥이었다. 모두 그녀가 마음속으로만 담아두었던 것들이었고 또한 서강민의 약점이었다. 얼마나 아플지는 서강민 본인만 알고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쓰디쓴 독주도 그는 혼자 삼켜내야만 했다.도혜선의 눈가가 파르르 떨려와 깨어나려는 낌새가 보이고 나서야 서강민은 조용히 병실을 나갔다.나는 마음이 아파와 한숨을 내쉬며 손을 뻗어 도혜선의 손을 맞잡았다.인제야 하루 종일 배현우에게서 연락이 없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그쪽에는 어떤 상황인지, 김우연에게서는 소식이 없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도혜선을 보니 아직 깨어나지 않은 것 같아 살며시 그녀의 손을 놓고 일어서려 했을때, 그녀는 다시 나를 잡으며 미약한 목소리로 말했다.“가지 마...”나는 너무 놀라 얼른 그녀를 향해 몸을 돌렸다.
‘서강민은 본인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기나 하는 걸까?’“당시의 사고는 내가 저지른 거야. 그녀도 나 때문에 다쳐서 지금처럼 된 거고… 나는 좋은 남편이 아니야. 아내가 식물인간이 되었는데 나는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으니 말이야...”서강민은 여기까지 말하며 후회하는 기색을 내비쳤다.“그녀를 마주할 때마다 너무 죄책감이 들고 고민스러워. 나 또한 발버둥 쳐봤지.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나의 일탈을 받아들일 수 있어 해. 그녀한테 정말 미안한 일이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내가 널 사랑하고 있다는 거야...”“강민 씨!”도혜선은 꾸짖는 듯한 말투로 그의 말을 잘랐다.“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당신 아내가 듣고 있을 거예요. 저를 끌어들여서 같이 속죄할 생각하지 마세요. 저는 당신의 구세주가 아니에요. 저는 그냥 사람답게 살고 싶은 평범한 여자라고요. 저 좀 그냥 내버려둘 순 없어요?”도혜선은 말하면 할수록 화가 치밀어 올라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하얗게 질린 얼굴이 일그러지며 그녀는 한 손으로 본능적으로 가슴을 움켜쥐었다. 나는 깜짝 놀라 그녀 앞으로 갔다.“혜선 언니, 움직이지 마! 위험해...”늑골 골절과 뇌진탕이 있는 환자다 보니 이러한 행동은 그녀에게 너무나도 위험했다.도혜선은 손을 들어 그녀를 안으려고 하는 한지아를 제지했다.“제가 오늘 한 말이 아직도 이해가 안 되나요? 서강민 씨, 저의 인생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당신한테 묶여 당신의 부속품이 되었었는데 저도 자존심이 있어요. 더 이상 당신처럼 지난날의 죄책감을 짊어지며 답답하게 살아가지 않을 거예요.”도혜선은 여전히 분노에 차 외치고 있었다.“매일 제 앞으로 와 지난날의 행동에 대해 속죄하라고 일깨워 주실 필요 없어요! 당신을 보면 저는 지난날 모든 서울 사람의 웃음거리가 되었던 치욕적인 과거가 떠올라요. 당신은 마음 가는 대로 해요. 당신은 아내와 했던 약속을 지켜야 해요.”말을 마친 도혜선은 숨이 차올랐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보였다.
도혜선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계속하여 들려왔다.“당신은 아무런 부담 가질 필요 없어요. 저 같은 여자 마음속에 담아두지 않아도 돼요.”그녀는 자기비하적인 말을 내뱉었다.”선아...”“설사 강민 씨가 와이프와의 약속을 안 지킨다 해도 당신의 신분과 지위로 당신에게 더 어울릴만한 사람 충분히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저는 당신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에요. 하물며 당신네 부부 눈에는 저는 그냥 염치없고 미천한 사람일 뿐이죠. 저 같은 사람은 본처가 되기에 적합하지 않아요. 사모님이라는 호칭도 어울리지 않죠.”“나는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 오해하지 마.”서강민은 조급함에 한 발 앞으로 나서며 해명하려 했다.하지만 도혜선은 손을 들어 그를 막아섰다.“강민 씨... 해명하지 않아도 돼요. 당신의 행동이 모든 걸 설명해 주고 있어요! 장담하건대 아직 당신들이 어떤 의도로 얘기하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바보가 된 건 아니에요. 그녀는 정말 대단하네요. 죽을 때까지도 제가 이길 수 없는 사람이었어요. 그녀는 아무리 병상에 누워있어도 고상한 사람이고 저는 그냥 미천한 사람일 뿐이니 말이에요.”도혜선은 말을 내뱉으며 입가에 처량한 미소를 비췄다. 누가 봐도 가슴 아픈 미소였다.“이전의 저는 확실히 허례허식에 차 있는 사람이었지만 저도 성장했어요. 정신 차렸어요. 당신 앞에 있는 저의 진정한 가치가 어떤 것인지 깨달았어요. 저는 하나의 도구, 들러리뿐이었지만 원망하지 않았어요.”그녀는 여기까지 말하고 한숨 돌렸다. 얼굴빛은 아까보다 더 창백해져 있었다.“하지만 이제 저는 자존감을 챙기며 살고 싶어요. 누군가에게 의탁하지 않고 쓰레기같은 취급을 받더라도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며 살고 싶어졌어요.”점점 더 차가워지는 도혜선을 바라보며 서강민은 답했다.“혜선아, 나는 널 한 번도 무시한 적 없어. 나는 그냥 내가 뭘 하든지 네가 다 이해해 줄 줄 알았어.”도혜선의 서강민의 말을 듣고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안색은 더 창백해져 있었다.“이해? 당신이 어떤 말을
방금 허투루 한 말이 어머니의 진실인가 싶다. 보아하니 어머니가 나를 속이는 일이 있는 것 같았다. 마음속의 의문점이 점점 많아졌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식사를 마치고 차씨 가문의 할머니께 말씀을 드린 후, 위층으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고 도혜선을 보러 가려고 준비했다.그리고 팔도 겸사겸사 검사하려고 했다. 차에 앉고 나서 배현우한테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았다. 이 이른 아침에 뭐 하러 갔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김우연 쪽에 무슨 소식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했다.'생각해 보니 이렇게 빠르진 않겠지? 몇 시간밖에 안 됐는데.'병실에 도착하자마자 도혜선이 노발대발하는 장면을 포착했다. 병실에는 도혜선과 서강민 두 사람만 보이고 이미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내가 들어서자 분위기가 좀 이상하고 심상치 않는 것을 느꼈다.침대 옆 머릿장에는 보온병이 놓여있다. 서강민은 오늘도 도혜선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주러 온 것 같다.서강민은 침대 앞에 떡 하니 서있었고 침대에 있던 도혜선은 차가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도혜선은 내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 같았다.상황을 정리하려고 다가가서 서강민에게 인사를 하고 도혜선에게 다가갔다. "오늘은 좀 어때?""별로야."도혜선은 차갑게 대답하더니 또 말을 건넸다. "지아야, 손님 좀 배웅해 줄래?"난감했다, 도혜선은 서강민을 내쫓으라고 하는 거였다. 난 당연히 그 뜻을 알고 있다. 조심스럽게 서강민을 쳐다보았다. "혜선아, 꼭 이래야 하니?"서강민은 씁쓸한 표정으로 도혜선을 바라보며 물었다."네! 서강민씨, 저는 이미 분명히 말했고 두 번 다시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도혜선은 내가 그 자리에 있다고 해서 서강민의 체면을 세워주지 않았다.참지 못하고 웃어 버렸다. "언니, 화 그만 내고 진정 좀 해. 초조해하는 거 알아, 점차 좋아질 거야. 강민씨랑 얘기 좀 하고 있어. 나는 팔 검사해야 돼서, 금방 돌아올 거야!"나는 핑계를 대고 떠나서 그들에게 자리를 비워주었다.
배현우는 나의 우울한 모습을 보고 말했다. "그리고 내가 없는 동안에 회사 일도, 한심로얄의 마지막 한방도 둘 다 포기할 수 없잖아요. 신예 쪽 일도 있고, 전희가 다시 살아날 기회를 얻지 않도록 조심해야 돼요. 지금 모든 게 중요한 시기이니까요.""지금 그 누구도 아버지보다 중요하지 않아요! 수십년간 도망치면서만 살았는데 죄책감도 가지고 있었을 거예요, 분명 아주 괴로워하고 있을 거예요. 그리고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무도 모르고 있는데, 내가... 내가 딸로서, 난..."배현우는 내 말을 듣고 나서 침대에 누워 나를 꼭 껴안고 말했다. "일단 내일 소식을 기다려 봅시다. 김우연 쪽에서 어떤 정보를 얻었는지 보고 결정합시다."배현우는 나의 어깨를 툭툭 쳤다. "제 말 듣고 일단 자세요, 내일 일어나서 먼저 할 일들을 처리하고 준비하고 있으세요, 만약에 상황이 좋으면 내일 같이 데리고 갈게요, 당신 마음 충분히 이해해요."배현우가 지금 나를 위로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다. 내가 기분 나빠하는 모습을 보지를 못한다.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좀 편해지는 것 같았다. 배현우의 따뜻한 품에 안기며 눈을 감고 내일 먼저 무엇을 처리해야 할지 생각했다.근데... 눈을 떠서 배현우를 쳐다보는데 배현우도 잠에 들지 않았다. "현우씨... 할머니가 보존하고 있는 CCTV를 보여주시겠어요?"'그 영상을 꼭 보고 싶었다, 알고 싶었다. 어머니가 어떻게...'"알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자세요, 나중에 보여 드릴게요. " 팔짱을 끼더니 분명히 나를 얼버무리고 있는 것이다. 배현우가 그 장면을 내게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밤이 깊었고,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배현우의품에 안겨 점점 잠이 들었다. 아침이 밝았다. 날씨는 여전히 흐렸다. 배현우는 이미 곁에 없었고, 손을 뻗어 그가 누워 있던 곳을 만졌다. 이미 차가운 걸 보니 배현우는 일찍 침대에서 일어났나 보다.'무슨 소식이라도 왔나?'이
"할머니가 이번 사건을 피할 수 있었던 건 당시 큰 병을 앓은 것에 대해 감사해야 했어요. 제 생각에는 반은 꽤병인것 같아요. 직접 사표를 쓰고 나서도 서둘러 호주를 떠나지 않았다는 게 참 슬기로운 선택이었어요.""네?"너무 놀라서 몸 둘바를 몰랐다.배현우는 인정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는 호주를 떠나지 않으셨어요. 그곳에 머물면서 배씨 저택의 인기척을 살피다가 배씨 저택의 요상한 소문들이 완전히 자취를 감춘 뒤에야 조용히 호주를 떠나셨어요."나도 모르게 할머니의 메커니즘에 감탄했다."저도 그때 상황을 잘 몰라서, 할머니도 몸이 허약했고 내 행방을 알아 볼 길이 없어 그 비밀을 계속 지켜왔었나봐요. 부하들이 할머니를 찾고 나서도 여전히 어리석은 척을 하고 있었지 뭐에요."배현우는 그제야 미소를 지었다."할머니께서 저를 두눈으로 직접 보고서야 그걸 꺼냈어요."배현우의 말을 듣고 나니 할머니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러던 중 배현우가 나를 쳐다보더니 나의 지친 모습을 보고서야 손을 들어 대문을 열어 장벽들이 천천히 열리는 걸 볼 수 있었다.차는 왔던 길을 따라 경원으로 다시 돌아갔다. 벌써 자정이 되어 우리 둘은 차를 세우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층으로 올라가 방에 돌아왔다.'우리를 배신한 소인이 두 집안을 풍비박산 시켰다니. 오늘 밤 일어난 모든 일들은 듣고도 믿기지 않았다.'간단히 씻고 걱정 가득채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태어나서 얼굴도 한번 못 본 아버지가 어디 있는지, 밥은 먹고 다니는지를 걱정해 발 뻗고 자지 못했다. '한강인이랑 한걸은 이미 잡혔는데, 우리 아버지는? 그의 처지는 어떤지.''한씨 부자가 그저 아버지를 인질로 삼아 그들의 안전을 확보하려 했다면 왜 배현우는 그곳의 환경이 복잡하다고 했을가.''이유는 간단하다. 누군가 아버지를 미끼로 삼으려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를 보고 싶으려는 걸가?''배현우? 아니면 배유정?'생각할수록 더욱 걱정이 됬다.아버지의 이번생은 이미 충분히 힘들다.어머니랑 서로
나는 걱정스레 배현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배현우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계속 말했다.“후에 목격자 어르신을 찾고서 한강인을 자세히 조사하니 한강인은 이 모든 것이 일어난 뒤에야 천우 그룹을 떠난 거였어요. 지아 씨도 알잖아요. 그때 당시 천우 그룹은 아직 배유정 손에 있었어요.”“현우 씨의 말은 한강인은 배유정 과도 사이가 틀어졌단 말인가요?”나는 추측하며 물었다.“우리가 조사할 때 이상한 단서 하나가 나왔어요. 한동안 배유정도 한강인을 찾았고 심지어 한강인에 대한 추살령도 내렸어요! 참 이상해요. 배유정은 왜 한강인을 죽이라고 지령을 내린 걸까요?”“이유는 하나뿐이죠. 즉 한강인이 분명 무엇을 알아냈거나? 아니면 어떤 일에 참여하였거나?”나는 대답했다.배현우는 고개를 끄덕이었다.“진백이 죽임을 당했듯이 이 안에는 분명 남들한테 들키면 안 되는 비밀이 있는 거겠죠. 우리는 이 단서를 따라 계속 추적해 보니 한강인의 혐의가 점점 더 드러나더군요. 그리고 그의 아들 한결도 같이 도망쳤어요.”“그러고 보니 이 안에는 분명히 또 다른 요소가 있겠네요!”나는 사색에 잠겼다.“그래서 우리는 추측했죠. 한강인은 확실히 이 사건이랑 연관이 있고 둘이 도주하는 과정에 서로 연락하는 빈도를 보아서 부자 둘은 서로 다른 곳에 있는 것으로 판단했어요.”“그리고 한강인이 도망 다니는 그 시기에 그의 모친이랑 누나 모두 영문도 모른 채 실종되었어요. 지금 보니 그분들은 아마 이미 이 세상을 떠난 것 같네요. 이 때문에 한강인은 고두리에 놀란 새가 돼서 끊임없이 도망치며, 이 또한 한강인이 지금의 상태로 되게 한 원인인 것 같아요. 사실 한강인은 원래 지금의 모양이 아니거든요.”배현우의 말을 듣자 나는 저도 모르게 아까 보았던 한강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한강인은 극도의 공포 속에서 엄청 정신적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아니면 다른 기타 방식으로 정신을 잃지 않게 버티고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사람이 저렇게 말라죽을 정도일 리가 없다.“그리고 한 가
배현우는 나를 한눈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었다.“맞아요. 제 씨 어머니가 얼마나 총명한지 그 누구도 생각지 못했어요. 제 씨 어머니는 책 속에 카메라를 숨겨두고 만약 사고가 난다면 여기에 있는 이 물건을 숨겨두었다가 훗날 믿음직스러운 사람에게 주라고 할머니한테만 똑똑히 당부해 두셨어요!”나는 코가 찡긋거리더니 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다.“보아하니 제 씨 어머니는 분명 위험이 닥칠 거라는 것을 미리 예감했던 거네요!”배현우는 안색이 조금 어두워지더니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갑자기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제 씨 어머니는 만약 자신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할머니더러 애들을 데리고 허씨 가문으로 가라고 할머니한테 당부하셨어요.”나는 끝내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고 코를 훌쩍이었다.배현우는 자기 손을 꽉 움켜쥐며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참 생각지도 못한 게 모든 것이 제 씨 어머니의 예상대로 일어났고 감춰둔 카메라에 모든 것이 담겼어요! 근데 할머니는 제 씨 어머니의 뜻대로 우리 둘을 순리롭게 허씨 가문으로 데려가지 못했어요.”“급한 나머지 할머니는 고씨 가문에만 소식을 전했고 그마저도 나쁜 놈들보다 동작이 빠르지 못해 그들이 지아 씨를 데려간 후였어요. 그래서 저만 고씨 가문에서 데려갔어요.”나는 눈물을 닦아내면서 그때 당시의 내가 얼마나 힘없고 무력했을지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다. 갑작스럽게 어머니가 돌아가신 데다가 배현우와 억지로 갈라지게 되었다.배현우는 내 손을 꽉 잡으며 손에 힘을 주었다.나도 배현우 지금의 심정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날 배현우는 눈앞에서 억지로 끌려 나가는 나를 보기만 하고 반항할 수도 없는 그런 무능력함은 아마 배현우한테 평생 잊지 못할 아픔이 되었을 것이다.차 안은 갑자기 조용해졌고 자동차가 앞으로 가는 소리밖에 안 들렸다.한참 뒤에야, 배현우의 잠긴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이런 것들을 찾은 후에야 비행기 추락 사고가 떠올랐고 이로써 모든 것들이 비로소 한강인을 추측하게 했으며 그 이후에 우리는 한강인
이 소식은 그야말로 나를 입이 떡 벌어지게 했다. ‘나를 데려간 게 어떻게 그 사람이지?’“맞아요. 우리는 유일한 목격자를 찾았어요. 그 당시 그쪽 산에서 약재를 캐는 어르신이신데 그때는 중년인이셨어요. 하늘의 뜻인지, 우리가 수년을 찾아 헤맨 끝에야 비로소 이 참극의 전부를 직접 목격한 증인을 찾아냈어요.”“그 어르신 정말로 전체 과정을 모두 목격하셨나요?”나는 믿어지지가 않았다. 배현우 얘네가 얼마나 큰 공을 들여야 바다에서 바늘 건지는 것 같은 일을, 그것도 몇 년이 지났는데도 당시의 목격자를 찾아낸 걸까.“어르신의 말로는, 당시 자기는 산 위에서 내려오는 도중에 잠시 계단에서 쉬고 있었는데 그러다가 아래 도로에서 일어나는 광경을 목격했다고 해요. 알다시피 외국에서는 약재를 캐는 일은 엄청 드물어요.”배현우는 엄청 뿌듯한 말투로 말했다.“우리 형제들이 엄청나게 고생 많았어요. 십수 년을 하루같이 귀찮음을 마다하고 사건 지역을 탐방하러 다니면서 일말의 흔적도 소홀히 하지 않았어요.”나도 믿어지지 않아 입을 열었다.“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어요. 참 노고가 많았어요.”“어르신이 말씀하기를 당시의 장면은 엄청 아슬아슬했대요. 부딪힌 차는 거의 굴러떨어지기에 일보 직전이었는데 후에 폭발했대요. 어르신은 우리의 차가 폭발한 뒤 키 크고 마른 한 남자가 차에서 내리는 걸 똑똑히 봤다고 해요. 그리고 그 남자는 길 왼쪽의 언덕 아래로 달려가 무언가를 찾았대요.”배현우는 그때 당시의 장면을 묘사하였다. 나는 머릿속으로 그때 당시의 상황을 필사적으로 상상해 내려고 하니 머리가 또 아파 났지만, 배현우가 말을 멈출까 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당시에 일어난 이 모든 것, 전부 나한테는 엄청난 매력이었다. 나는 지금 내가 찾아낸 산산조각 난 퍼즐들을 하루빨리 제 위치에 맞춰서 하나의 완전한 그림을 만들어 내고 싶었으며 그때 당시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을 되찾고 싶었다.그 뒤로 난 어떻게 Z 국의 만덕동에서 떠돌게 되었고 또 어떻게 지금의 한지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