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눈이 움츠러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이 사진은 나와 장영식을 찍은 건데 촬영 각도 때문에 내가 장영식의 품에 달려들어 키스를 요구하는 것 같은 장면이었다. 이게 바로 내가 장영식을 데려다줬을 때 감동적인 그의 말에 통제하지 못하고 그를 향해 달려갔다. 나는 그동안 오빠가 나에 대한 보살핌과 이해에 감사하는 의미에서 한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다. 그런데 찍힌 그 순간, 썸의 기운이 물씬 풍기고 보는 사람이 망상하도록 했다. 나는 또 밑으로 화면을 내렸는데 이미 인터넷에서 뜨겁게 퍼지고 있었다. 어쩐지 방금 내가 장영식을 언급했을 때 배현우 태도가 이상하더라니 이것 때문이었다. 이때, 내 휴대전화 메시지 알람음이 울렸다. 나는 실시간 검색어 창을 끄고 메시지를 확인했다. 카톡 오픈채팅방이었다. 나는 보내온 동영상 링크를 눌렀다. 이 동영상에 나는 더 충격받았다. 그 위치는 바로 이곳인 것 같았는데 화면 속의 한소연은 배현우의 허리를 끌어안고 품에 안긴 채 폭풍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화면을 두 번이나 자세히 봤는데 바로 이 레스토랑인 것 같았다. 나는 머리가 쭈뼛해 가방을 들고 몸을 일으켜 밖으로 걸어갔다. 이건 분명히 배현우가 계략에 걸려든 것이다. 아니면 어떻게 이렇게 우연히 전화를 받으러 갔을 뿐인데 이런 화면이 나올 수 있겠는가. 그리고 이 동영상이 이미 내 핸드폰에 전송되었다는 것은 의도가 분명했다. 나는 급히 밖으로 걸어 나가려다 웨이터에게 제지당했다. “혹시 한지아 씨인가요?”“맞아요.”나는 바로 가방을 열어 돈을 꺼내려 했다. “바로 결제할게요.”나는 웨이터가 결제하지 않고 도망갈까 봐 막은 줄 알았다. 그런데 그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한지아 씨, 절 따라오세요.”“어디로요?”나는 손을 멈추고 웨이터를 봤다. 그는 나에게 길을 인도했다. “가시지요.”나는 아리송한 상태로 그를 따라 복도를 걸어갔다. 한 룸에 도착하자 웨이터는 멈춰서 천천히 문을 열고 들어가라고 눈짓했다. 난 의혹을 안고 한걸음 들
이때, 한소연의 태도가 180도 변했다.“현우 씨, 이러지 마요. 내가 술 마시지 말았어야 했어요. 미안해요. 이러지 말고 우리 돌아가요. 화내지 말아요...”그녀는 배현우의 몸에 붙으면서 일부로 옷을 여미는 동작을 했다. 나는 무척이나 놀랐다. 지금 그녀가 표현하려는 것은 무엇인가? 배현우가 그를 추행했다고? 그... 지금 스튜디오에서 연기 중인데 스토리가 반전된 건가?이때, 배현우는 그제야 매서운 눈빛으로 얼음장같이 차가운 몇 글자를 내뱉었다. “이제 그만해요.”그리곤 자기 외투를 벗어 옆에 팽개쳤다. 나는 한소연이 몸이 굳은 것을 분명히 느꼈다. 플래시가 터지는 소리와 찰칵거리는 셔터음이 끊이지 않았는데 배현우는 지금 이 순간을 기다린 듯 담담히 전혀 피하지 않았다. 이때, 문밖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비켜!”고개를 돌리자 김우연이 젊은 남자를 들고 오는 것이 보였다. 손을 놓자 그 남자는 한소연 뒤의 바닥에 내팽개쳐졌다. 얼굴에는 당황스러움이 가득했다.김우연 뒤에는 한 무리의 경호원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 기자들을 포함해 누구도 나갈 수 없었다. 한소연이 아무리 몰입해서 연기했다고 하더라고 지금 자기 뒤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고개를 휙 돌려 뒤를 쳐다봤다. 나와 눈이 마주친 순간, 그녀는 갑자기 멍해졌다. 고개를 돌려 얼른 자기 머리를 배현우 다리에 기댔다.“현우 씨, 내가 너무 많이 마셨다고 탓하지 말아요. 내가 한 말이 모두 사실이에요. 우리 집으로 돌아가요. 잊었어요? 우리 집에서...”배현우의 매력적인 목소리가 울렸다.“음주 측정기, 한소연 씨가 얼마나 많이 마셨는지 측정해 봐요.”그의 태연함에 현장의 모든 사람이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 상황 파악이 안 되었다. 나는 배현우의 뜻을 바로 알아차렸다. 경호원 한 명이 얼른 음주 측정기를 가져와 한소연에게 불도록 했다. 한소연은 전혀 협조적이지 않고 마구 밀치면서 계속 취한 연기를 했다. 그런데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경호원은 그녀에게 계속 연기할 기회를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이 한소연을 쳐다보며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그 자리에 멈춰 서서 배현우의 음침한 얼굴을 바라보던 한소연은 자기도 모르게 입술이 떨리고 불안한 듯 눈을 들어 배현우의 곁에 있는 나를 바라보았다.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이 조금씩 차가워지더니 냉정함을 되찾은 것 같았다.그녀는 극도의 분노가 서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아무도 저에게 지시하지 않았어요! 이게 제 마음이에요! 배현우 씨, 당신 옆에 있는 그 여자 좀 잘 보세요, 한지아는 변덕스러워서 전남편에게 망설임 없이 차인 거예요, 제가 그 여자보다 뭐가 부족한데요?"배현우는 차갑게 말했다."너는 그녀와 비교가 안 돼!" "저의 어디가 당신과 안 어울려요?“한소연은 미친 듯이 목을 뻣뻣하게 세우고 배현우를 바라보며 대답했다."몸매가 안 좋아요? 제가 한지아만큼 예쁘지 않나요? 아니면 내 신분이 한지아보다 못한 거예요? 한지아는 곳곳에서 남자를 꼬시는 것 외에 또 뭘 할 수 있어요? 하하하, 전남편이 남긴 딸도 있잖아요!"그녀는 갑자기 과격해져서 미친 듯이 소리쳤다. "한지아가 당신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다 줄 수 있고 한지아보다 더 잘할 수 있어요. 아직도 모르겠어요? 왜 재혼한 사람이랑 엮이는 거예요!""결혼한 적이 있어도 너보다 깨끗해!"배현우는 거리낌이 없었다."전 이해할 수 없어요. 왜 이렇게 한지아를 감싸요? 왜 한지아예요?" 한소연은 재빨리 배현우에게 다가가 그의 손을 잡으려고 했지만, 그녀의 손이 배현우의 손에 닿기도 전에 경호원이 한소연을 발로 걷어찼다. 그녀는 끙끙거리다가 다시 일어나 나를 가리키며 욕을 했다. "한지아, 넌 정말 대단해. 귀신처럼 모든 사람을 홀리는 재주가 있어. 한지아, 득의양양해하지 마! 넌 반드시 벌을 받을 거야! 내가 너를 쓰러뜨릴 수 없어도, 누군가가 너를 쓰러뜨릴 거야. 기다려!"나는 그녀의 추한 모습을 보면서 어이가 없었다."넌 남자 여러 명과 얽히고 있어! 자기 회사의 고위층뿐만
배현우는 내가 의심스러운 눈으로 그를 쳐다보는 걸 보고 아주 자상하게 몸을 굽혀 나에게 키스했다. 그리고는 오랫동안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놓아 준 후에도 손은 여전히 내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그는 정중하게 말했다. "시간을 줘요. 천천히 말해줄게요, 제가 왜 당신을 잃어버렸는지. 지금은 집에 가요."나는 내 마음속에 가득한 의문을 억눌렀다. 이렇게 좋은 순간에 우리 사이의 행복을 망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나를 속이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배현우는 나를 골드 빌리지로 데려다주었다. 그리고는 문 앞에서 작별인사를 했다. "먼저 들어가요. 푹 쉬고 내일 파티 있다는 거 잊지 말고요!" "들렀다 가지 않을래요? 콩이도 오늘 아직 못 만났잖아요."어두운 불빛에 비친 그의 얼굴에 아쉬움이 비쳤다."처리해야 할 일이 남았어요. 시간도 너무 늦었고 콩이도 잠들었을 거예요. 들어가진 않을게요."배현우는 다시 나를 품에 안고 내 이마에 키스했다. "일찍 자요. 착하죠? 내일은 또 새로운 하루예요!"아쉬웠지만 나는 그가 처리해야 할 일을 처리하도록 보내줄 수밖에 없었다. 배현우의 핑계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를 붙잡을 이유가 없었다.나는 어쩔 수 없이 계속 돌아서서 배현우를 바라보며 안으로 걸어 들어갔는데 마음속으로 베현우의 이상함을 느꼈다. 그는 줄곧 차 옆에 서서 내가 집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나는 배현우의 차가 빠르게 떠나는 소리를 들었다.나는 문을 열고 뛰쳐나와 차의 후광등이 나의 시야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일종의 상실감이 마음속에서 피어올랐다. '오늘 일로 인해 나와 마음의 벽을 쌓은걸가? 한소연의 노골적인 욕설을 듣고도 누가 태연하게 대할 수 있을까. 더구나 그는 신과 같은 존재의 남자이니 절대 모독해서는 안되니까.'배현우가 떠나고 내 마음속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그날 밤 나는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다음날, 회사에 도착하기도 전에 핸드폰이 터지는 것처럼 계속 울렸다.
엘리베이터 쪽을 보니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 곳에 우뚝 솟은 거대한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의 손에는 꽃다발을 들고 있었다. 준수한 얼굴에 깊고 입체적인 이목구비가 마치 정성스럽게 조각한 듯 완벽했다. 이전의 차갑고 도도한 표정이 아니라 오늘은 웃음기가 넘치는 표정이었다. 게다가 뒤에서 많은 사람이 따라오고 있었다. 배현우는 그 기세로 나에게 다가왔다.나는 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라서 입이 떡 벌어졌다. 이 모든 것이 너무 갑작스럽고 예측하기 어려워서 나는 전혀 진실하지 않다고 느꼈다.내 앞으로 다가와서 배현우는 입을 열었다."신흥 건축의 업그레이드 성공을 축하합니다! 한 사장님이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는 걸 축하해요!”그의 눈빛은 깊고 사랑스러웠다. 나는 배현우가 이 일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나는 무뚝뚝하게 그의 손에 있는 꽃다발을 받았다. 그는 내 곁에 서서 여러 매체를 향해 말했다."천우 그룹이 오늘부터 신흥 건축과 성심성의껏 협력할 것을 선포합니다. 천우 그룹의 모든 건축과 부동산 등 개발 프로젝트는 신흥 건축에 맡기겠습니다. 천우 그룹 건축설계원은 신흥 건축의 모든 프로젝트 설계를 보조할 것입니다. 이제 계약을 체결할 것이니 그때를 기다려 주세요."그의 이번 발표는 갑작스럽게 울리는 천둥소리 못지않게 놀라웠다. 이 정도면 신흥 건축과 천우 그룹의 건축 프로젝트를 하나로 합친 것과 같았다. 이 스펙은 단번에 신흥 건축을 새로운 높이로 끌어올리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특히 천우 그룹의 건축설계원이 신흥 건축의 보조를 한다는 것은 놀라운 소식이었다.그의 목소리가 떨어지자 온 사무실이 들끓었다. 신흥 건축의 모든 사람은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당연히 알고 있었다.나는 감사하다는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멍하니 배현우를 바라보기만 했다. 이건 응원만이 아니라 그냥 평탄한 길을 선물로 준 것이었다. 나는 더 이상 생각할 엄두를 낼 수 없었다.배현우가 어떻게 신흥 건축을 떠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 귓가에 "부부 공동경영하기로 했잖아!”
갑작스러운 변화로 신흥 건축의 모든 사람은 나처럼 적응하지 못했는데 장영식은 이미 준비가 된 것처럼 차근차근 다음 일을 준비했다. 그는 마치 오랫동안 준비한 듯 계획적이었다. 아마도 이것이 그가 원하는 회사의 상태였을 것이었다. 이전의 신흥 그룹에서는 장영식의 재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었다.그는 분명히 엘리트 인재였고 해외 회사에서도 지위가 있었다. 애초에 선택의 여지도 없이 주저하지 않고 신흥에 들어왔으니 재능을 검증하기 위해 포부를 품어왔을 게 틀림없었다. 사실 장영식과 나의 느낌을 비롯한 어떤 것들은 확실히 말할 방법이 없었다. 그는 분명 사업에 대한 야망을 품고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신흥에 왔을 때 면접에서 나한테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나를 놓고 말해서는 정말 큰 이익이었다. 이런 사람이 힘을 다해 도울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내 팔자가 좋은 것이었다.하지만 이번에는 장영식이 방향을 잡고 내가 그를 따라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나는 장영식을 절대적으로 믿었다. 장영식의 초심은 나무랄 데 없었고 그는 나의 절대적 의지였고 그가 나에게 충실하지 않을 리는 더더욱 없었고 그는 사업상 최고의 파트너였다. 장영식은 무대가 필요했다. 손발이 묶이지 않는 무대가 필요했다. 그런 그에게 신흥 그룹이 바로 그 무대였다. 게다가 우리는 이 부분에서 호흡이 잘 맞았다. 다만 안타깝게도, 내가 그에게 줄 수 없는 단 한가지는 사랑이었다. 내 사랑의 방향은 고정되어 있었다.오후 4시에 배현우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 저녁에 있는 파티에 대해 알려주었고 나를 데리고 옷을 갈아입으러 왔다.저는 이 사적의 파티가 차홍기의 어머님의 생일잔치일 줄은 전혀 몰랐다. 이 파티는 작은 범위의 접대라고 했다.차홍기는 물론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아마 텔레비전에서 만난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는 보통 인물이 아니었다. 명성이 자자한 요원이었다. 난 여태 그의 집이 강성에 있는 줄 몰랐다.작은 파티라고 했지만, 결코 작지 않다는 것을 나는 도착해서야 알게 되었다. 파티에
차씨 노부인의 눈동자는 노인의 혼탁한 모습보다는 오히려 정예의 빛을 띠고 있었다. 우리가 걸어오는 것을 보고 그녀의 눈이 움츠러들었다. 차씨 노부인은 곱슬곱슬한 눈매로 응석받이로 배현우에게 말했다."너 오늘 지각했구나!"배현우는 따뜻하고 담담하게 웃으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잘됐네요, 아무도 방해하지 않겠어요!" 배현우의 이런 표정을 본 적이 없어서 나는 그가 이런 표정을 지을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차갑고 도도한 배현우가 이렇게 얌전한 장난꾸러기로 되다니. 보아하니 차씨 노부인과 매우 돈독한 사이인 것 같았다."소개 안 해줘?"차씨 노부인의 눈빛이 내게로 향했다."지아 씨, 이분이 바로 오늘 생신인 차씨 노부인이에요, 할머니라고 불러요."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나를 소개해주었고, 얼굴에는 모두 애틋한 미소가 가득했다.나는 얼른 한 걸음 앞으로 나서서 공손히 불렀다. "할머니." "노부인, 지아 씨가 바로 제가 기다려야 했던 사람입니다!"배현우의 말이 참신하게 들려왔다.차씨 노부인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손을 내밀었다. 나도 재빨리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내 손을 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응. 손이 부드럽네. 부귀와 소중함을 모두 가질지게 될 거야!"그녀의 말에 나도 모르게 수줍게 배현우를 바라보고는 말했다."차씨 할머니의 기품은 정말 대단해요. 아까 할머니를 보고는 제가 나이가 들면 과연 이런 기품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나는 사실대로 말했지만, 노부인이 갑자기 웃음꽃을 피우면서 배현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쩐지 네가 이렇게 오랫동안 찾아다니더라니! 정말 좋은 아이야!" 배현우의 웃음은 나를 더욱 매료시켰다. 나는 얼른 손에 들고 있던 묵직한 작은 상자를 두 손으로 차씨 노부인에게 건네주었다. 이것은 배현우가 준비한 것이였다. 나는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도 몰랐다."할머니의 얼굴이 영원히 빛나시고 항상 웃으시고 뭐든 뜻대로 되시길 바랍니다!"진부한 말이더라도 입에 발린 말을 해야 했다."하하,
멀리서 대문 앞에 한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보았는데 자태가 우아하고 절제된 모습이 다름 아닌 기태희였다.기태희도 초대받았다니 놀라웠다. 그렇다면 이 여자는 정말 평범한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그녀는 국화처럼 단아한 맑은 분위기에 알 수 없는 신비한 에너지가 담겨 있었다. 그녀가 조용히 들어왔다는 것은 그녀가 누구의 안내로 온 것이 아니라 혼자 왔다는 것을 의미했다.배현우는 내가 잠시 넋 놓고 있다는 것을 느낀 듯 뒤돌아보며 물었다.“저 여자를 보고 있어요?”나는 배현우를 힐끗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쉬운 여자가 아닌 것 같아요!”배현우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아꼈지만 그의 표정에서 나는 배현우가 기태희를 잘 안다고 판단했다. 그때, 이청원이 우리에게 다가왔는데 전희가 팔짱 끼고 있었다. 오늘 전희는 반짝반짝 빛나는 것 같았다. 다소곳하게 이청원의 팔짱을 끼고 다정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나는 전희가 이렇게 다소곳한 모습을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잔잔한 미소를 지은 채 도도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이청원이 먼저 배현우에게 인사를 건넸다.“배현우 씨, 오랜만이에요.”“그러네요! 오랜만이에요!”두 사람은 악수했다. 담담하고 열렬하지 않은 모습으로 보아 아마 진짜 물처럼 싱거운 사이였던 것 같다. 평소에도 왕래가 있는 거로 알고 있는데 그때 나는 두 사람이 경공관에서 나가는 것을 직접 보았다.이청원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한 대표님, 축하해요.”보아하니 그는 오늘 신흥의 일을 알게 된 것 같았다. 나는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감사합니다, 이청원 대표님! 오랜만이네요!”전희는 담담한 미소를 유지하며 배현우에게 공손히 인사를 건넸다. 나와는 아무런 교류가 없었고 나도 못 본 척했다. 나는 전혀 어색하지 않았고 서로 신경 쓰지 않았다. 물론 배현우와 이청원도 우리 둘의 일을 알고 있었기에 이상해하지 않았다.“한지아 대표님이 팔을 걷어붙일 모양이네요.”이청원은 여전히 공손하게 말했다.“천우 그룹의 지지가 있다면 틀림
나는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 마지못해 고개를 들어 서강민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서강민 씨, 먼저 들어가시죠. 언니가 깨서 서강민 씨를 보면 또 흥분할 것 같은데... 지금 같은 상황에 언니가 회복하는 게 제일 중요하잖아요.”그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는 않았지만, 나는 한마디 더 보탰다.“어떤 일들은 천천히 해야 해요. 언니한테 시간을 좀 주세요. 서로 생각을 정리해 봐요.”서강민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않고 깊은 잠에 빠진 도혜선을 한참이나 지켜보았다. 발길을 돌리기 전에도 아쉬움에 한 번 더 뒤돌아보며 나한테 말했다.“고생해 줘요.”나도 담담히 답했다.“제가 해야 할 일인걸요. 언니에게 시간을 좀 줘요. 언니도 회복할 시간이 필요할 수 있잖아요.”내가 말하는 회복이 뭔지는 서강민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건 도혜선이 마음에 입은 상처였다. 오늘 도혜선의 행동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그녀의 상처는 아물 수 없을 것이다. 언급만 해도 피가 흘러내릴 만한 상처였다.잠시 후, 서강민은 한발 물러섰지만, 눈길은 여전히 도혜선에게 머물러 있었다. 평온해 보이는 모습 아래에서 어떠한 파도가 휘몰아치는지 나는 몰랐다.한참 전 도혜선이 했던 말들은 마디마디가 주옥이었다. 모두 그녀가 마음속으로만 담아두었던 것들이었고 또한 서강민의 약점이었다. 얼마나 아플지는 서강민 본인만 알고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쓰디쓴 독주도 그는 혼자 삼켜내야만 했다.도혜선의 눈가가 파르르 떨려와 깨어나려는 낌새가 보이고 나서야 서강민은 조용히 병실을 나갔다.나는 마음이 아파와 한숨을 내쉬며 손을 뻗어 도혜선의 손을 맞잡았다.인제야 하루 종일 배현우에게서 연락이 없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그쪽에는 어떤 상황인지, 김우연에게서는 소식이 없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도혜선을 보니 아직 깨어나지 않은 것 같아 살며시 그녀의 손을 놓고 일어서려 했을때, 그녀는 다시 나를 잡으며 미약한 목소리로 말했다.“가지 마...”나는 너무 놀라 얼른 그녀를 향해 몸을 돌렸다.
‘서강민은 본인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기나 하는 걸까?’“당시의 사고는 내가 저지른 거야. 그녀도 나 때문에 다쳐서 지금처럼 된 거고… 나는 좋은 남편이 아니야. 아내가 식물인간이 되었는데 나는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으니 말이야...”서강민은 여기까지 말하며 후회하는 기색을 내비쳤다.“그녀를 마주할 때마다 너무 죄책감이 들고 고민스러워. 나 또한 발버둥 쳐봤지.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나의 일탈을 받아들일 수 있어 해. 그녀한테 정말 미안한 일이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내가 널 사랑하고 있다는 거야...”“강민 씨!”도혜선은 꾸짖는 듯한 말투로 그의 말을 잘랐다.“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당신 아내가 듣고 있을 거예요. 저를 끌어들여서 같이 속죄할 생각하지 마세요. 저는 당신의 구세주가 아니에요. 저는 그냥 사람답게 살고 싶은 평범한 여자라고요. 저 좀 그냥 내버려둘 순 없어요?”도혜선은 말하면 할수록 화가 치밀어 올라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하얗게 질린 얼굴이 일그러지며 그녀는 한 손으로 본능적으로 가슴을 움켜쥐었다. 나는 깜짝 놀라 그녀 앞으로 갔다.“혜선 언니, 움직이지 마! 위험해...”늑골 골절과 뇌진탕이 있는 환자다 보니 이러한 행동은 그녀에게 너무나도 위험했다.도혜선은 손을 들어 그녀를 안으려고 하는 한지아를 제지했다.“제가 오늘 한 말이 아직도 이해가 안 되나요? 서강민 씨, 저의 인생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당신한테 묶여 당신의 부속품이 되었었는데 저도 자존심이 있어요. 더 이상 당신처럼 지난날의 죄책감을 짊어지며 답답하게 살아가지 않을 거예요.”도혜선은 여전히 분노에 차 외치고 있었다.“매일 제 앞으로 와 지난날의 행동에 대해 속죄하라고 일깨워 주실 필요 없어요! 당신을 보면 저는 지난날 모든 서울 사람의 웃음거리가 되었던 치욕적인 과거가 떠올라요. 당신은 마음 가는 대로 해요. 당신은 아내와 했던 약속을 지켜야 해요.”말을 마친 도혜선은 숨이 차올랐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보였다.
도혜선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계속하여 들려왔다.“당신은 아무런 부담 가질 필요 없어요. 저 같은 여자 마음속에 담아두지 않아도 돼요.”그녀는 자기비하적인 말을 내뱉었다.”선아...”“설사 강민 씨가 와이프와의 약속을 안 지킨다 해도 당신의 신분과 지위로 당신에게 더 어울릴만한 사람 충분히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저는 당신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에요. 하물며 당신네 부부 눈에는 저는 그냥 염치없고 미천한 사람일 뿐이죠. 저 같은 사람은 본처가 되기에 적합하지 않아요. 사모님이라는 호칭도 어울리지 않죠.”“나는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 오해하지 마.”서강민은 조급함에 한 발 앞으로 나서며 해명하려 했다.하지만 도혜선은 손을 들어 그를 막아섰다.“강민 씨... 해명하지 않아도 돼요. 당신의 행동이 모든 걸 설명해 주고 있어요! 장담하건대 아직 당신들이 어떤 의도로 얘기하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바보가 된 건 아니에요. 그녀는 정말 대단하네요. 죽을 때까지도 제가 이길 수 없는 사람이었어요. 그녀는 아무리 병상에 누워있어도 고상한 사람이고 저는 그냥 미천한 사람일 뿐이니 말이에요.”도혜선은 말을 내뱉으며 입가에 처량한 미소를 비췄다. 누가 봐도 가슴 아픈 미소였다.“이전의 저는 확실히 허례허식에 차 있는 사람이었지만 저도 성장했어요. 정신 차렸어요. 당신 앞에 있는 저의 진정한 가치가 어떤 것인지 깨달았어요. 저는 하나의 도구, 들러리뿐이었지만 원망하지 않았어요.”그녀는 여기까지 말하고 한숨 돌렸다. 얼굴빛은 아까보다 더 창백해져 있었다.“하지만 이제 저는 자존감을 챙기며 살고 싶어요. 누군가에게 의탁하지 않고 쓰레기같은 취급을 받더라도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며 살고 싶어졌어요.”점점 더 차가워지는 도혜선을 바라보며 서강민은 답했다.“혜선아, 나는 널 한 번도 무시한 적 없어. 나는 그냥 내가 뭘 하든지 네가 다 이해해 줄 줄 알았어.”도혜선의 서강민의 말을 듣고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안색은 더 창백해져 있었다.“이해? 당신이 어떤 말을
방금 허투루 한 말이 어머니의 진실인가 싶다. 보아하니 어머니가 나를 속이는 일이 있는 것 같았다. 마음속의 의문점이 점점 많아졌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식사를 마치고 차씨 가문의 할머니께 말씀을 드린 후, 위층으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고 도혜선을 보러 가려고 준비했다.그리고 팔도 겸사겸사 검사하려고 했다. 차에 앉고 나서 배현우한테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았다. 이 이른 아침에 뭐 하러 갔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김우연 쪽에 무슨 소식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했다.'생각해 보니 이렇게 빠르진 않겠지? 몇 시간밖에 안 됐는데.'병실에 도착하자마자 도혜선이 노발대발하는 장면을 포착했다. 병실에는 도혜선과 서강민 두 사람만 보이고 이미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내가 들어서자 분위기가 좀 이상하고 심상치 않는 것을 느꼈다.침대 옆 머릿장에는 보온병이 놓여있다. 서강민은 오늘도 도혜선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주러 온 것 같다.서강민은 침대 앞에 떡 하니 서있었고 침대에 있던 도혜선은 차가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도혜선은 내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 같았다.상황을 정리하려고 다가가서 서강민에게 인사를 하고 도혜선에게 다가갔다. "오늘은 좀 어때?""별로야."도혜선은 차갑게 대답하더니 또 말을 건넸다. "지아야, 손님 좀 배웅해 줄래?"난감했다, 도혜선은 서강민을 내쫓으라고 하는 거였다. 난 당연히 그 뜻을 알고 있다. 조심스럽게 서강민을 쳐다보았다. "혜선아, 꼭 이래야 하니?"서강민은 씁쓸한 표정으로 도혜선을 바라보며 물었다."네! 서강민씨, 저는 이미 분명히 말했고 두 번 다시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도혜선은 내가 그 자리에 있다고 해서 서강민의 체면을 세워주지 않았다.참지 못하고 웃어 버렸다. "언니, 화 그만 내고 진정 좀 해. 초조해하는 거 알아, 점차 좋아질 거야. 강민씨랑 얘기 좀 하고 있어. 나는 팔 검사해야 돼서, 금방 돌아올 거야!"나는 핑계를 대고 떠나서 그들에게 자리를 비워주었다.
배현우는 나의 우울한 모습을 보고 말했다. "그리고 내가 없는 동안에 회사 일도, 한심로얄의 마지막 한방도 둘 다 포기할 수 없잖아요. 신예 쪽 일도 있고, 전희가 다시 살아날 기회를 얻지 않도록 조심해야 돼요. 지금 모든 게 중요한 시기이니까요.""지금 그 누구도 아버지보다 중요하지 않아요! 수십년간 도망치면서만 살았는데 죄책감도 가지고 있었을 거예요, 분명 아주 괴로워하고 있을 거예요. 그리고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무도 모르고 있는데, 내가... 내가 딸로서, 난..."배현우는 내 말을 듣고 나서 침대에 누워 나를 꼭 껴안고 말했다. "일단 내일 소식을 기다려 봅시다. 김우연 쪽에서 어떤 정보를 얻었는지 보고 결정합시다."배현우는 나의 어깨를 툭툭 쳤다. "제 말 듣고 일단 자세요, 내일 일어나서 먼저 할 일들을 처리하고 준비하고 있으세요, 만약에 상황이 좋으면 내일 같이 데리고 갈게요, 당신 마음 충분히 이해해요."배현우가 지금 나를 위로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다. 내가 기분 나빠하는 모습을 보지를 못한다.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좀 편해지는 것 같았다. 배현우의 따뜻한 품에 안기며 눈을 감고 내일 먼저 무엇을 처리해야 할지 생각했다.근데... 눈을 떠서 배현우를 쳐다보는데 배현우도 잠에 들지 않았다. "현우씨... 할머니가 보존하고 있는 CCTV를 보여주시겠어요?"'그 영상을 꼭 보고 싶었다, 알고 싶었다. 어머니가 어떻게...'"알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자세요, 나중에 보여 드릴게요. " 팔짱을 끼더니 분명히 나를 얼버무리고 있는 것이다. 배현우가 그 장면을 내게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밤이 깊었고,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배현우의품에 안겨 점점 잠이 들었다. 아침이 밝았다. 날씨는 여전히 흐렸다. 배현우는 이미 곁에 없었고, 손을 뻗어 그가 누워 있던 곳을 만졌다. 이미 차가운 걸 보니 배현우는 일찍 침대에서 일어났나 보다.'무슨 소식이라도 왔나?'이
"할머니가 이번 사건을 피할 수 있었던 건 당시 큰 병을 앓은 것에 대해 감사해야 했어요. 제 생각에는 반은 꽤병인것 같아요. 직접 사표를 쓰고 나서도 서둘러 호주를 떠나지 않았다는 게 참 슬기로운 선택이었어요.""네?"너무 놀라서 몸 둘바를 몰랐다.배현우는 인정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는 호주를 떠나지 않으셨어요. 그곳에 머물면서 배씨 저택의 인기척을 살피다가 배씨 저택의 요상한 소문들이 완전히 자취를 감춘 뒤에야 조용히 호주를 떠나셨어요."나도 모르게 할머니의 메커니즘에 감탄했다."저도 그때 상황을 잘 몰라서, 할머니도 몸이 허약했고 내 행방을 알아 볼 길이 없어 그 비밀을 계속 지켜왔었나봐요. 부하들이 할머니를 찾고 나서도 여전히 어리석은 척을 하고 있었지 뭐에요."배현우는 그제야 미소를 지었다."할머니께서 저를 두눈으로 직접 보고서야 그걸 꺼냈어요."배현우의 말을 듣고 나니 할머니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러던 중 배현우가 나를 쳐다보더니 나의 지친 모습을 보고서야 손을 들어 대문을 열어 장벽들이 천천히 열리는 걸 볼 수 있었다.차는 왔던 길을 따라 경원으로 다시 돌아갔다. 벌써 자정이 되어 우리 둘은 차를 세우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층으로 올라가 방에 돌아왔다.'우리를 배신한 소인이 두 집안을 풍비박산 시켰다니. 오늘 밤 일어난 모든 일들은 듣고도 믿기지 않았다.'간단히 씻고 걱정 가득채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태어나서 얼굴도 한번 못 본 아버지가 어디 있는지, 밥은 먹고 다니는지를 걱정해 발 뻗고 자지 못했다. '한강인이랑 한걸은 이미 잡혔는데, 우리 아버지는? 그의 처지는 어떤지.''한씨 부자가 그저 아버지를 인질로 삼아 그들의 안전을 확보하려 했다면 왜 배현우는 그곳의 환경이 복잡하다고 했을가.''이유는 간단하다. 누군가 아버지를 미끼로 삼으려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를 보고 싶으려는 걸가?''배현우? 아니면 배유정?'생각할수록 더욱 걱정이 됬다.아버지의 이번생은 이미 충분히 힘들다.어머니랑 서로
나는 걱정스레 배현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배현우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계속 말했다.“후에 목격자 어르신을 찾고서 한강인을 자세히 조사하니 한강인은 이 모든 것이 일어난 뒤에야 천우 그룹을 떠난 거였어요. 지아 씨도 알잖아요. 그때 당시 천우 그룹은 아직 배유정 손에 있었어요.”“현우 씨의 말은 한강인은 배유정 과도 사이가 틀어졌단 말인가요?”나는 추측하며 물었다.“우리가 조사할 때 이상한 단서 하나가 나왔어요. 한동안 배유정도 한강인을 찾았고 심지어 한강인에 대한 추살령도 내렸어요! 참 이상해요. 배유정은 왜 한강인을 죽이라고 지령을 내린 걸까요?”“이유는 하나뿐이죠. 즉 한강인이 분명 무엇을 알아냈거나? 아니면 어떤 일에 참여하였거나?”나는 대답했다.배현우는 고개를 끄덕이었다.“진백이 죽임을 당했듯이 이 안에는 분명 남들한테 들키면 안 되는 비밀이 있는 거겠죠. 우리는 이 단서를 따라 계속 추적해 보니 한강인의 혐의가 점점 더 드러나더군요. 그리고 그의 아들 한결도 같이 도망쳤어요.”“그러고 보니 이 안에는 분명히 또 다른 요소가 있겠네요!”나는 사색에 잠겼다.“그래서 우리는 추측했죠. 한강인은 확실히 이 사건이랑 연관이 있고 둘이 도주하는 과정에 서로 연락하는 빈도를 보아서 부자 둘은 서로 다른 곳에 있는 것으로 판단했어요.”“그리고 한강인이 도망 다니는 그 시기에 그의 모친이랑 누나 모두 영문도 모른 채 실종되었어요. 지금 보니 그분들은 아마 이미 이 세상을 떠난 것 같네요. 이 때문에 한강인은 고두리에 놀란 새가 돼서 끊임없이 도망치며, 이 또한 한강인이 지금의 상태로 되게 한 원인인 것 같아요. 사실 한강인은 원래 지금의 모양이 아니거든요.”배현우의 말을 듣자 나는 저도 모르게 아까 보았던 한강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한강인은 극도의 공포 속에서 엄청 정신적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아니면 다른 기타 방식으로 정신을 잃지 않게 버티고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사람이 저렇게 말라죽을 정도일 리가 없다.“그리고 한 가
배현우는 나를 한눈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었다.“맞아요. 제 씨 어머니가 얼마나 총명한지 그 누구도 생각지 못했어요. 제 씨 어머니는 책 속에 카메라를 숨겨두고 만약 사고가 난다면 여기에 있는 이 물건을 숨겨두었다가 훗날 믿음직스러운 사람에게 주라고 할머니한테만 똑똑히 당부해 두셨어요!”나는 코가 찡긋거리더니 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다.“보아하니 제 씨 어머니는 분명 위험이 닥칠 거라는 것을 미리 예감했던 거네요!”배현우는 안색이 조금 어두워지더니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갑자기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제 씨 어머니는 만약 자신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할머니더러 애들을 데리고 허씨 가문으로 가라고 할머니한테 당부하셨어요.”나는 끝내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고 코를 훌쩍이었다.배현우는 자기 손을 꽉 움켜쥐며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참 생각지도 못한 게 모든 것이 제 씨 어머니의 예상대로 일어났고 감춰둔 카메라에 모든 것이 담겼어요! 근데 할머니는 제 씨 어머니의 뜻대로 우리 둘을 순리롭게 허씨 가문으로 데려가지 못했어요.”“급한 나머지 할머니는 고씨 가문에만 소식을 전했고 그마저도 나쁜 놈들보다 동작이 빠르지 못해 그들이 지아 씨를 데려간 후였어요. 그래서 저만 고씨 가문에서 데려갔어요.”나는 눈물을 닦아내면서 그때 당시의 내가 얼마나 힘없고 무력했을지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다. 갑작스럽게 어머니가 돌아가신 데다가 배현우와 억지로 갈라지게 되었다.배현우는 내 손을 꽉 잡으며 손에 힘을 주었다.나도 배현우 지금의 심정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날 배현우는 눈앞에서 억지로 끌려 나가는 나를 보기만 하고 반항할 수도 없는 그런 무능력함은 아마 배현우한테 평생 잊지 못할 아픔이 되었을 것이다.차 안은 갑자기 조용해졌고 자동차가 앞으로 가는 소리밖에 안 들렸다.한참 뒤에야, 배현우의 잠긴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이런 것들을 찾은 후에야 비행기 추락 사고가 떠올랐고 이로써 모든 것들이 비로소 한강인을 추측하게 했으며 그 이후에 우리는 한강인
이 소식은 그야말로 나를 입이 떡 벌어지게 했다. ‘나를 데려간 게 어떻게 그 사람이지?’“맞아요. 우리는 유일한 목격자를 찾았어요. 그 당시 그쪽 산에서 약재를 캐는 어르신이신데 그때는 중년인이셨어요. 하늘의 뜻인지, 우리가 수년을 찾아 헤맨 끝에야 비로소 이 참극의 전부를 직접 목격한 증인을 찾아냈어요.”“그 어르신 정말로 전체 과정을 모두 목격하셨나요?”나는 믿어지지가 않았다. 배현우 얘네가 얼마나 큰 공을 들여야 바다에서 바늘 건지는 것 같은 일을, 그것도 몇 년이 지났는데도 당시의 목격자를 찾아낸 걸까.“어르신의 말로는, 당시 자기는 산 위에서 내려오는 도중에 잠시 계단에서 쉬고 있었는데 그러다가 아래 도로에서 일어나는 광경을 목격했다고 해요. 알다시피 외국에서는 약재를 캐는 일은 엄청 드물어요.”배현우는 엄청 뿌듯한 말투로 말했다.“우리 형제들이 엄청나게 고생 많았어요. 십수 년을 하루같이 귀찮음을 마다하고 사건 지역을 탐방하러 다니면서 일말의 흔적도 소홀히 하지 않았어요.”나도 믿어지지 않아 입을 열었다.“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어요. 참 노고가 많았어요.”“어르신이 말씀하기를 당시의 장면은 엄청 아슬아슬했대요. 부딪힌 차는 거의 굴러떨어지기에 일보 직전이었는데 후에 폭발했대요. 어르신은 우리의 차가 폭발한 뒤 키 크고 마른 한 남자가 차에서 내리는 걸 똑똑히 봤다고 해요. 그리고 그 남자는 길 왼쪽의 언덕 아래로 달려가 무언가를 찾았대요.”배현우는 그때 당시의 장면을 묘사하였다. 나는 머릿속으로 그때 당시의 상황을 필사적으로 상상해 내려고 하니 머리가 또 아파 났지만, 배현우가 말을 멈출까 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당시에 일어난 이 모든 것, 전부 나한테는 엄청난 매력이었다. 나는 지금 내가 찾아낸 산산조각 난 퍼즐들을 하루빨리 제 위치에 맞춰서 하나의 완전한 그림을 만들어 내고 싶었으며 그때 당시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을 되찾고 싶었다.그 뒤로 난 어떻게 Z 국의 만덕동에서 떠돌게 되었고 또 어떻게 지금의 한지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