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를 따라 바라보니 뜻밖에도 유상현이었다. 나는 좀 의외라고 생각하고 얼른 웃으면서 마중 나갔다. 마침 전희랑 어색하지 않게 돼서 좋았다.“유상현 씨!”“계속 인사만 하느라 축하하는 걸 잊었어요!”유상현이 웃는 얼굴로 나에게 말했다. 사실 그는 배현우의 체면을 세워주고 있다.나는 곧 겸손하게 말했다.“감사합니다, 유상현 씨!”“생각지도 못했어요. 한지아 대표님은 정말 여자인데도 참 대단하십니다. 그 기사 봤어요. 괜찮던데요! 포부가 있더군요. 우리 서울에는 이런 원대한 목표를 가진 벤치마킹 기업이 정말 부족합니다. 브랜드를 만드는 것은 확실히 보통 사람들이 감히 상상할 수있는 것이 아니죠. 많은 사람이 단지 공로에 급급할 뿐 장기적인 목표는 없어요. 그러니 큰일을 못 하는 거죠.”유상현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나는 전희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눈빛이 점점 더 차가워지는 것을 보았다. 나는 속으로 웃으며 그녀를 좀 더 자극하고 싶어졌다.“유상현 씨, 과찬이십니다! 전 처음에 신흥을 시작할 때 이런 생각을 하긴 했어요! 하지만 나중에 아이가 어려서 포기했었어요. 계기가 맞지 않았던 거죠! 마침 지금이 기회가 된 것 같아 이렇게 됐네요.”나는 시큰둥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전희의 얼굴을 보았다. 그녀는 나를 흘겨보더니 도도한 모습으로 자리를 떴다. 전희는 당연히 내가 발전하기를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잘해봐요, 우리는 장기적인 목표를 가진 기업에 대한 지원책이 있거든요!”유상현은 아낌없이 말했다.나는 이 말이 좋았다. 이러한 정책 인센티브가 마침 필요하던 바였다.“유상현 씨, 전 이런 도움이 정말 필요해요. 그렇지 않으면 이제 막 시작한 저로서는 정말 힘이 들어요.”나는 서둘러 의사를 밝혔다.“필요할 때 정말 찾아갈 거예요.”그러자 유상현이 쾌활하게 웃었다.“그러세요.”이때 차 씨 노부인과 기태희도 다가왔다. 두 사람은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등 상당히 친밀해 보였는데 유상현이 나와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차 씨 노부인이 물었다. “상현
나도 얼른 일어나서 기태희의 곁에 섰지만 눈치껏 한 발짝 뒤에 물러섰다. 차홍기가 기태희를 찾아온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기태희라는 여자는 항상 나에게 신비로운 사람이었는데 정체도 항상 미스테리했다.나는 이곳의 인간관계를 맞추는 것을 좋아했는데 특히 기태희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었다. 그녀는 나에게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기태희는 매우 인격적인 매력이 있는 사람인데 스타일은 진애령보다 섬세하고 우아했다.차홍기와 우아한 악수를 했지만 나긋나긋하면서도 거리감이 있어 종잡을 수 없었다. 그 여성스러운 느낌을 그녀는 적당히 컨트롤하고 있었다. 그녀는 옆에 서 있는 나를 잊지 않았다.“차홍기 씨, 이분은 현우 씨의 여성 친구 한지아 씨예요.”그녀의 소개는 매우 흥미로웠는데 나를 배현우의 여성ㅍ친구라고 말했다. 여자 파트너도 아니고, 여자친구도 아닌 여성 친구였다. 이것은 기태희라는 사람이 상당히 분별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배현우가 아직 나와의 관계를 확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는 경솔하게 포지션을 정할 수 없었다.하지만 이렇게 소개하면, 또 차홍기의 주목을 받게 된다. 배현우는 지금 이 업계에서 중요한 인물이니 말이다. 그제야 나는 차홍기와 의례적인 악수를 하며 물었다.“차홍기 씨, 안녕하세요?”“현우의 여성 친구?”그는 약간 놀라 나를 훑어보았다. 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누군가 내 허리를 감싸 안았다.“아저씨! 내 여자친구예요!”“여자친구가 있을때도 됐어. 일과 가정이 모두 완벽해야 인생이 완벽한 거야. 올해 서울에 오래 있을 거니까 할머니 보러 자주 와야 해. 너는 손자 중에서도 장손이니 모범을 보여야지.”차홍기는 후배를 혼내듯 배현우에게 거침없이 말했다.“그렇게 하고 있어요. 그래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예 이사 오는 게 낫겠어요.”배현우는 스스럼없이 말했는데 평소 보통 사이가 아니었던 것 같다.“그래도 좋고! 이렇게 큰 마당에 너희 두 형제도 돌아오지 않으니, 할머니 혼자서 적적해. 노인들은 모두 떠들썩한
그녀는 의도적으로 주의를 시키는 말을 듣자 내가 그녀를 제압하려는 줄 알고 화가 치밀어 올라 억양이 조금 높아졌다.“한지아 씨, 오늘 당신이 배현우의 인맥에 의지해서 여기 왔다고 해서 몸값이 두 배로 올랐다는 생각은 하지 말아요. 한지아 씨가 뭔데요? 외지에서 온 여자가 서울에 발붙이려 하다니, 정말 간이 크군요! 신호연의 버림을 받은 천한 년이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전희의 말은 매우 각박했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그녀의 인품을 나는 너무 잘 알고 있었고 본 적이 있었다. 그녀와 똑같이 나설 필요는 없었다. 어쨌거나 여기서 품위를 잃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나는 여전히 부드럽게 속삭였다.“나는 지금까지 내가 누군지 잘 알고 있었어요. 내가 외지에서 오긴 했어요. 하지만 나는 내 손으로 사업을 시작했으니 당당해요. 그러니 전희 씨, 예의 좀 지키죠? 어쨌거나 이청원 대표님의 체면은 세워줘야 하지 않겠어요?”내가 이청원을 언급해서인지 그녀는 더욱 화가 났다.“한지아 씨, 이청원으로 나를 압박하지 말아요. 이청원 씨는 내 남자예요! 나도 충고하는데 너무 나대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서울은 당신이 나댄다고 해서 뭔가를 할 수 있는 곳이 아니거든요. 나대려 해도 여기가 어디인지 보고 나대야죠.”전희는 말도 난폭하고, 나를 보는 눈빛도 음흉해 마치 나를 찢어버릴 것 같았다.나는 휴지를 버리고 담담하게 전희에게 말했다.“전희 씨, 말을 그렇게 함부로 하는 게 아니에요. 나는 정당하게 비즈니스를 하는 거지 겁부터 먹으러 온 게 아니에요. 누구 구역이든 나 한지아는 법을 준수하는 사람이라 전희 씨가 뭐라 할 자격이 없어요!”그렇게 말하고 밖으로 나가려는데 전희가 손을 들어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손은 바람을 가르며 내 얼굴을 향해 날아왔지만 나는 재빨리 그녀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하! 우리 집에 와서 이렇게 날뛰다니! 도대체 누가 이렇게 대단한지 한번 보자.”이 소리와 함께
차씨 노부인은 나를 이끌고 자리로 돌아가 침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집을 힐끗 둘러보았다. 전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이청원이 아직 남아있는 것을 보았다. 그의 두 눈이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것을 보니 그를 속일 수 없을 것 같았다.나는 차 씨 노부인이 계속 화를 내서 이청원이 체면을 잃을까 봐 걱정되어 얼른 손을 뻗어 차 씨 노부인에게 차를 한 잔 따랐다.“할머니, 차 드세요!”그녀는 숨을 돌리며 나를 바라보더니 불평하듯 말했다.“이 애는 정말 친절해! 나에게 이런 손녀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기태희는 차씨 노부인의 말을 듣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할머니, 할머니와 어르신은 정말 모자지간이 맞네요. 두 분 다 하필이면 부족함을 염려하고 있어요. 이렇게 한지아 씨가 좋으면 제가 제안 하나 할까요? 어르신께서 한지아 씨를 딸로 받아들이는 건 어때요?”이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그녀는 여전히 부드럽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할머니는 손녀가 있고, 어르신도 딸이 생기는 거잖아요. 할머니께서 아껴주시면 아무도 한지아 씨가 외부인이라고 괴롭히지 않을 거예요. 얼마나 좋아요?”기태희의 말을 듣고 유상현도 대뜸 맞장구를 쳤다.“이 애의 인품은 내가 보증할 수 있어요! 아주 참하고 대범하고 책임감이 있는 사람이죠. 자기 자신을 격려하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사랑하며 품행이 단정하고 좋은 여자예요!”차씨 노부인은 갑자기 웃으며 곁눈질로 힐끗 쳐다보았다.“너만 생각이 많구나. 하지만 나는 정말 이 아이가 매우 마음에 들어. 첫눈에 눈앞이 환해지더라니까! 정말 인연인가 봐!”기태희는 차홍기를 바라보았다.“어르신은 어떻게 생각해요? 이 딸을 받아들일 수 있어요?”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배현우를 바라보았고 그는 웃으며 말을 하지 않았다.기태희의 말에 차홍기는 마음에 드는 듯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며 대답했다.“우리 어머니께서 손녀딸을 사랑하시는데, 내가 어찌 싫어하겠어요? 현우 마음에 든 사람이니 당연히 내 마음에도 들죠. 자, 이 딸은
다음날, 신흥의 사무실.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이청원이 뒤이어 도착했다.나는 그의 방문이 어제 있었던 사건과 관련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그는 자리에 앉기 무섭게 입을 열었다.“축하해요, 한 대표님. 겹경사가 들어왔네요!”나는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정말 요즘 좋은 일이 계속되어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들이었다. 하지만 이청원이 이른 아침부터 내 사무실에 찾아온 것은 분명 다른 목적이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나는 소파에 앉아 이청원을 바라보며 말했다.“이 대표님, 그냥 축하 인사만 하러 오신 건 아니죠?”해월이 차를 가져왔고, 나는 이청원에서 손짓으로 차를 권했다.“이 대표님, 마셔보세요. 경공관에서 얻어온 차에요.”내 말에 이청원이 의미심장하게 대답했다.“한 대표님도 수단이 상당하시네요. 경공관의 차를 구하다니. 이미 기태희와의 관계가 특별해졌군요!”“어제 일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나는 그의 얼굴을 살피며 물었다.“사실 저에겐 그저 우연한 사건이었습니다.”“당신이라면 그럴 만 하죠.”이청원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제가 여기 온 건 한 대표님의 도움이 필요해서입니다.”나는 이청원을 바라보며 그의 진짜 의도를 추측했다.“도와드릴 일이 있나요? 그렇다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그는 깊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을 거듭하는 듯했다.그러다 갑자기 굳은 결심이 섰는지 결연한 태도로 두 글자를 내뱉었고 나는 그대로 놀라 뒤집힐 뻔했다.“이혼!”나는 한참을 멍하니 있다 정신을 차렸다.“이 대표님, 농담이시죠? 이 일이라면 도와드리기 어렵습니다. 신당 열 개를 부술지언정 한 쌍의 결혼은 깨트리지 말라는 말도 있잖습니까. 저라고 아무 일이나 다 할 순 없죠. 게다가 부인이 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시잖아요, 저는...”이청원은 마치 말을 꺼내고 후련하다는 듯 소파에 기대앉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바로 그 이유 때문이죠, 당신과 전희의 사이 때문에 이 일을 부탁한 겁니다.”“네
이청원은 오늘 진심으로 나에게 마음을 털어놓았다. 지난 몇 년간 전희가 저지른 일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털어놓았고 나는 의외를 넘어서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니 저도 그녀를 이씨 집안에서 완전히 쫓아낼 착안점이 필요해요.”이청원이 진지하게 말했다.“그리고 그녀를 움직일 사람은 한 대표님밖에 없고요! 그래서 오늘 제가 이렇게 민폐를 무릅쓰고 직접 도움을 청하러 왔어요.”이청원이 다소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민망하네요, 그 여자 때문에 제 체면이 말이 아니죠?”“잘못한 것은 전희지 이 대표님이 아니잖아요!”나는 위로의 뜻을 전했다.잠시 고민한 뒤 나는 그와 협정을 타결했다.단순히 그를 돕는 것뿐만 아니라 나 자신을 돕는 것이기도 했다. 이청원이 나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은 몇 가지 사건에서 보아낼 수 있듯이 그녀를 미리 해결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결국 걸림돌이 될 것이 뻔했다. 전희는 숨은 시한폭탄 같은 존재였다.더군다나 이청원은 이미 그녀가 이세림과 배유정과 결탁한 증거를 내 손에 넘겼다. 특히 최근에는 남미주까지 가세해 세 사람이 동시에 나에게 맞선다면 나는 아무런 승산이 없을 것이다.그렇다면 이청원이 말한 대로, 초기에 문제를 뿌리 뽑는 게 최선의 상책일 것이다.다들 스스로를 위해 산다고 하지 않는가!이청원을 보낸 후 나는 오랫동안 생각에 잠겼다. 내 계획은 이청원에 의해 또 한 발짝 앞으로 밀려 나갔다. 이젠 더는 물러설 길은 없을 것이다.나는 한숨을 내뱉고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이미 활시위는 당겨졌으니 돌이킬 수도 없어. 그럼 그냥 시작하자!”시간을 확인한 후 서둘러 해월이를 데리고 서 씨 저택으로 향했다. 서강민의 아내가 사망했으니 조문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장례식장 내 빈소에는 사람들로 붐볐고 각계 인사들이 모두 모여있었다.서강민은 빈소에서 피곤한 얼굴로 각종 일을 처리하고 있었고 그의 유일한 아들도 물밀듯 밀려오는 조문객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있었다.조의를 표하고 나왔지만 도혜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보통 상황이
나는 깜짝 놀라 거세게 문을 두드렸다.“혜선 언니, 문 열어! 집에 있다는 거 알아! 나야, 지아!”오랫동안 문을 두드리고 나서야 안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그제야 마음을 좀 놓았다. 나는 두어 번 더 안쪽을 향해 소리 질렀다.“언니, 나 지아야. 얼른 문 열어줘!”또다시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딱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고 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얼른 문을 열자마자 눈앞의 광경에 깜짝 놀라 소리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현관에는 도혜선이 곧은 자세로 바닥에 뻗어 있었고 엉망진창인 모습이었다.“혜선 언니!”나는 황급히 안으로 뛰어 들어가 그녀를 안아 올리고는 엉망이 된 채 얼굴에 붙어있는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말했다.“언니, 이게 무슨 일이야? 언니...”나는 그녀의 얼굴을 두드렸다. 짙은 알코올 향기가 온 집에 퍼져 가슴이 턱턱 막혀 다시 그녀를 내려놓고 신발을 벗어 던진 다음 창문을 모두 열었다. 그러고는 다시 뛰어가 그녀를 안았다. 해월이를 돌려보낸 것이 후회스러워졌다.도혜선의 상태가 걱정된 나는 서둘러 전화기를 꺼내 해월에게 전화를 걸어 돌아오라고 했다.하지만 도혜선은 갑자기 손을 들어 내 전화기를 밀쳐내더니 말했다.“아... 니...”“도혜선, 이게 뭐 하는 거야? 마음 안 좋은 일이 있으면 나한테 전화하면 되잖아? 날 동생으로 여기지 않는 거야? 왜 혼자서 다 참고 있어! 뭔 생각인데?”나는 분노가 치밀어 소리쳤다. 도혜선을 안으로 끌고 들어가려 했지만 그녀의 가녀린 체구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녀를 제대로 옮길 수 없었다. 술이 떡이 된 그녀의 상태에 인제야 그녀가 기어 와서 나에게 문을 열어줬다는 게 이해가 됐다.아무리 취했을지언정 정신은 깨어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지아라는 소리에 현관까지 기어와 문을 열었겠지.나는 눈에 눈물이 고인 채로 힘껏 그녀를 침대로 끌어당겨 놓았고 나도 지쳐서 바닥에 주저앉았다. 시야 곳곳에는 술병이 널려 있었고 몇 병을 마셨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한참을 숨
솔직히 나는 도혜선에게 미안한 감정을 갖고 있었다. 그때 도혜선 덕분에 단번에 이혼을 진행할 수 있었고 그래서 나는 앞으로 그녀의 옆에서 함께 걸어가겠다고 마음먹었었다. 게다가, 도혜선은 정말로 우정을 나누기 좋은 친구였다.이런 생각에 잠긴 채, 나는 어질러진 방을 정리하고 그녀에게 천천히 해장국을 먹였다. 이제 보니 많이 나아진 모양이었다.“언니, 괜찮아? 나 지아야.”나는 도혜선과 대화를 시도했고 그녀는 뭐라 두어 번 신음을 내더니 다시 아무 반응이 없었다. 마음이 놓이지 않아 병원에 데려가고 싶었지만, 도저히 혼자서는 움직일 수 없었다. 한참을 관찰했지만 여전히 마음에 걸려 결국 배현우에게 전화해 도혜선의 상황을 알렸고 그는 바로 차를 몰고 데리러 왔다.도혜선의 상태를 보더니 단번에 그녀를 안아 들고 병원으로 향했고 수액을 맞게 하고 나서야 조금 마음이 놓였다.미연도 알게 되어 몰래 도혜선의 병실로 도망쳐와 나와 함께 도혜선이 깨어나기를 기다렸다.도혜선이 깨어난 것은 다음 날 오전이었다. 여전히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고 허약한 모습이었다.“내가 왜 병원에 있는 거지?”도혜선이 어안이 벙벙한 채 우리에게 물었고 나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그럼? 집에서 죽기만을 기다릴 거야? 우리가 있다는 건 생각 안 해봤어?”“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지?” 그녀는 여전히 멍한 모습으로 물었다.“현우 씨가 데리고 왔어. 나 혼자서는 옮길 수 없더라고.”나는 입술을 삐죽 내밀며 대답했고 도혜선이 얼굴을 감싸 쥐며 작게 내뱉었다.“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야.”“그게 중요해? 도대체 무슨 일이야, 왜 그런 짓을 한 건에?”나는 그녀의 체면을 생각하지 않은 채 단도직입적으로 물었고 도혜선은 내 질문에 당황하며 이제야 기억이 떠오른 듯 천장을 멍하니 쳐다보더니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한참이 지나고서야 그녀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서강민이 뭐라고 했어?”내 추궁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아무것도 아니야.”미연은 성격이 급했다.“왜 그런대? 장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