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청원은 오늘 진심으로 나에게 마음을 털어놓았다. 지난 몇 년간 전희가 저지른 일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털어놓았고 나는 의외를 넘어서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니 저도 그녀를 이씨 집안에서 완전히 쫓아낼 착안점이 필요해요.”이청원이 진지하게 말했다.“그리고 그녀를 움직일 사람은 한 대표님밖에 없고요! 그래서 오늘 제가 이렇게 민폐를 무릅쓰고 직접 도움을 청하러 왔어요.”이청원이 다소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민망하네요, 그 여자 때문에 제 체면이 말이 아니죠?”“잘못한 것은 전희지 이 대표님이 아니잖아요!”나는 위로의 뜻을 전했다.잠시 고민한 뒤 나는 그와 협정을 타결했다.단순히 그를 돕는 것뿐만 아니라 나 자신을 돕는 것이기도 했다. 이청원이 나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은 몇 가지 사건에서 보아낼 수 있듯이 그녀를 미리 해결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결국 걸림돌이 될 것이 뻔했다. 전희는 숨은 시한폭탄 같은 존재였다.더군다나 이청원은 이미 그녀가 이세림과 배유정과 결탁한 증거를 내 손에 넘겼다. 특히 최근에는 남미주까지 가세해 세 사람이 동시에 나에게 맞선다면 나는 아무런 승산이 없을 것이다.그렇다면 이청원이 말한 대로, 초기에 문제를 뿌리 뽑는 게 최선의 상책일 것이다.다들 스스로를 위해 산다고 하지 않는가!이청원을 보낸 후 나는 오랫동안 생각에 잠겼다. 내 계획은 이청원에 의해 또 한 발짝 앞으로 밀려 나갔다. 이젠 더는 물러설 길은 없을 것이다.나는 한숨을 내뱉고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이미 활시위는 당겨졌으니 돌이킬 수도 없어. 그럼 그냥 시작하자!”시간을 확인한 후 서둘러 해월이를 데리고 서 씨 저택으로 향했다. 서강민의 아내가 사망했으니 조문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장례식장 내 빈소에는 사람들로 붐볐고 각계 인사들이 모두 모여있었다.서강민은 빈소에서 피곤한 얼굴로 각종 일을 처리하고 있었고 그의 유일한 아들도 물밀듯 밀려오는 조문객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있었다.조의를 표하고 나왔지만 도혜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보통 상황이
나는 깜짝 놀라 거세게 문을 두드렸다.“혜선 언니, 문 열어! 집에 있다는 거 알아! 나야, 지아!”오랫동안 문을 두드리고 나서야 안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그제야 마음을 좀 놓았다. 나는 두어 번 더 안쪽을 향해 소리 질렀다.“언니, 나 지아야. 얼른 문 열어줘!”또다시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딱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고 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얼른 문을 열자마자 눈앞의 광경에 깜짝 놀라 소리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현관에는 도혜선이 곧은 자세로 바닥에 뻗어 있었고 엉망진창인 모습이었다.“혜선 언니!”나는 황급히 안으로 뛰어 들어가 그녀를 안아 올리고는 엉망이 된 채 얼굴에 붙어있는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말했다.“언니, 이게 무슨 일이야? 언니...”나는 그녀의 얼굴을 두드렸다. 짙은 알코올 향기가 온 집에 퍼져 가슴이 턱턱 막혀 다시 그녀를 내려놓고 신발을 벗어 던진 다음 창문을 모두 열었다. 그러고는 다시 뛰어가 그녀를 안았다. 해월이를 돌려보낸 것이 후회스러워졌다.도혜선의 상태가 걱정된 나는 서둘러 전화기를 꺼내 해월에게 전화를 걸어 돌아오라고 했다.하지만 도혜선은 갑자기 손을 들어 내 전화기를 밀쳐내더니 말했다.“아... 니...”“도혜선, 이게 뭐 하는 거야? 마음 안 좋은 일이 있으면 나한테 전화하면 되잖아? 날 동생으로 여기지 않는 거야? 왜 혼자서 다 참고 있어! 뭔 생각인데?”나는 분노가 치밀어 소리쳤다. 도혜선을 안으로 끌고 들어가려 했지만 그녀의 가녀린 체구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녀를 제대로 옮길 수 없었다. 술이 떡이 된 그녀의 상태에 인제야 그녀가 기어 와서 나에게 문을 열어줬다는 게 이해가 됐다.아무리 취했을지언정 정신은 깨어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지아라는 소리에 현관까지 기어와 문을 열었겠지.나는 눈에 눈물이 고인 채로 힘껏 그녀를 침대로 끌어당겨 놓았고 나도 지쳐서 바닥에 주저앉았다. 시야 곳곳에는 술병이 널려 있었고 몇 병을 마셨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한참을 숨
솔직히 나는 도혜선에게 미안한 감정을 갖고 있었다. 그때 도혜선 덕분에 단번에 이혼을 진행할 수 있었고 그래서 나는 앞으로 그녀의 옆에서 함께 걸어가겠다고 마음먹었었다. 게다가, 도혜선은 정말로 우정을 나누기 좋은 친구였다.이런 생각에 잠긴 채, 나는 어질러진 방을 정리하고 그녀에게 천천히 해장국을 먹였다. 이제 보니 많이 나아진 모양이었다.“언니, 괜찮아? 나 지아야.”나는 도혜선과 대화를 시도했고 그녀는 뭐라 두어 번 신음을 내더니 다시 아무 반응이 없었다. 마음이 놓이지 않아 병원에 데려가고 싶었지만, 도저히 혼자서는 움직일 수 없었다. 한참을 관찰했지만 여전히 마음에 걸려 결국 배현우에게 전화해 도혜선의 상황을 알렸고 그는 바로 차를 몰고 데리러 왔다.도혜선의 상태를 보더니 단번에 그녀를 안아 들고 병원으로 향했고 수액을 맞게 하고 나서야 조금 마음이 놓였다.미연도 알게 되어 몰래 도혜선의 병실로 도망쳐와 나와 함께 도혜선이 깨어나기를 기다렸다.도혜선이 깨어난 것은 다음 날 오전이었다. 여전히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고 허약한 모습이었다.“내가 왜 병원에 있는 거지?”도혜선이 어안이 벙벙한 채 우리에게 물었고 나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그럼? 집에서 죽기만을 기다릴 거야? 우리가 있다는 건 생각 안 해봤어?”“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지?” 그녀는 여전히 멍한 모습으로 물었다.“현우 씨가 데리고 왔어. 나 혼자서는 옮길 수 없더라고.”나는 입술을 삐죽 내밀며 대답했고 도혜선이 얼굴을 감싸 쥐며 작게 내뱉었다.“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야.”“그게 중요해? 도대체 무슨 일이야, 왜 그런 짓을 한 건에?”나는 그녀의 체면을 생각하지 않은 채 단도직입적으로 물었고 도혜선은 내 질문에 당황하며 이제야 기억이 떠오른 듯 천장을 멍하니 쳐다보더니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한참이 지나고서야 그녀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서강민이 뭐라고 했어?”내 추궁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아무것도 아니야.”미연은 성격이 급했다.“왜 그런대? 장례식
도혜선이 멍하니 한 곳을 오랫동안 응시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그의 아내가 세상을 떠나기 전, 나를 부르더니 내 손을 끌어 서강민에게 쥐여줬어. 그러더니 서강민에게 말하더라고, 본인이 죽으면 서강민더러 나와 결혼해서 내가 마땅히 받아야 할 지위를 주라고. 그녀는 이렇게 산 듯 죽은 듯한 삶을 살아왔고 내 자리를 차지했다며, 서강민에게 날 실망시키지 말라고 하더라.”도혜선의 목소리는 건조하고 절망적이었고 나는 저도 모르게 걱정이 되었다.“또 말했어. 집에 있는 집이며 저축은 서강민은 건들지 말라고. 그들에게는 아들도 있으니 그것들은 아들에게 물려줘야 했으니 말이야. 나한테 화내지 말라고 했어. 이건 그녀의 욕심이라 앞으로 그녀가 떠나고 서강민이 나와 결혼하면 그가 어떻게 하든 자신은 더는 간섭하지 못한다고 하더라고.”나는 도혜선을 바라보며 이 여자도 멍청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서강민과 결혼할 때 서씨 집안에서 예단으로 해온 팔찌를 나에게 건네줬어. 이건 서씨 며느리들만 가질 수 있는 거라고. 그녀가 나에게 넘겨주면서 내가 진짜 서씨 며느리라고 하더라...”그녀는 잠시 멈칫하더니 눈을 깜빡였고 그대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이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서강민이 뭐라고 했는지 알아?”도혜선이 나를 쳐다보며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그의 아내가 뭐라고 하든, 난 그녀를 원망하지 않아! 하지만 그는... 그는 다시 결혼하지 않을 거라고, 서씨 가문 며느리는 영원히 그녀뿐이라고 말했어!”도혜선이 통곡하며 울부짖었고 나는 마치 전기 충격이라도 맞은 듯 경직된 채 고개만 흔들었고 마음이 저리게 아파왔다.외부인인 나조차 서강민이 그렇게 상처 주는 말을 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도혜선은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울었고 나는 그녀가 왜 이렇게 술에 취해 생사를 오가는 상태가 되었는지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오랫동안 그녀는 흐느껴 울며 말했다.“나는 그들의 어떤 것도 원하지 않아. 집도, 차도, 땅도... 아무것도 원하지 않아
차 씨네 집에 돌아오자 이번에야말로 진정한 차 씨 가족 모임이 진행되고 있었다.다시 만나자 나는 그렇게 긴장하지 않았다. 차홍기는 정말 친절하고 상냥했고 차 씨 노부인도 집안의 요리사들을 지휘하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배현우와 함께 들어오는 나를 보고, 그녀는 기뻐하며 나를 끌고 왔다.“왜 이렇게 늦었어?”“할머니, 기다리게 해서 죄송해요! 제 친구가 갑자기 일이 생겨서 도와주고 나니 늦었어요!”그녀는 나를 소파에 앉히며 마치 처음 본 사람처럼 나를 훑어봤다.“정말 착한 아이야!”그녀는 사람을 시켜 위층의 가족들을 불러 내려오라고 했다.배현우는 옆에서 차홍기와 무언가 이야기하고 있었다.잠시 후, 계단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고개를 들자 두 명의 잘생기고 기품있는 남자가 계단을 내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둘의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한 사람은 내성적이고 듬직한 분위기였고 다른 한 사람은 활기차고 스타일리시했다.차홍기와 배현우도 소리를 듣고는 고개를 돌려 쳐다봤고 곧 그들에게 다가갔다.두 사람이 내려온 후 어려 보이는 쪽이 내 앞으로 달려오더니 그 잘생긴 얼굴을 코앞에 대고 말했다.“이 사람이 할머니 손녀예요? 분명히 내 여동생 같아 보이는데, 할머니, 왜 내 누나라는 거죠?”그가 더 말하기도 전에 배현우가 그를 잡아당겨 옆으로 끌고 갔다.“저리 가, 멀리 좀 꺼져!”“배현우, 진짜 너무해. 할머니가 우리를 부른 건 우리 아빠 딸을 만나기 위해서야! 내 친동생인데 네가 뭐라고. 결혼할 것인지 말 건 지는 우리가 정하는 거야. 이런 태도로 나오면 난 제일 먼저 반대할 거야!”그러고는 다시 내 앞으로 다가와 말했다.“할머니가 괜히 좋아하는 게 아니었어요. 너무 예쁘잖아요!”한편 차분해 보이는 사람은 옆에서 예의 바르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마치 애완동물을 구경하듯 나를 바라봤다.그러자 차 씨 노부인은 처음 만났을 때의 엄숙함을 벗어던지고 웃으며 말했다.“맞아, 정말 예뻐! 그게 가장 이 할
차기택이 감탄하며 소리를 질렀고 충격받은 듯 나를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너 회사도 있어? 무슨 일 해? 얘기해 봐!”“건축일 해.”나는 얼굴을 붉히며 살짝 부끄러운 듯 대답했다.“너... 건축을?”예상대로 차기택은 놀라움으로 가득 찬 채 나를 바라보았다.“여자애가 왜 건축을 해?”나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기회가 와서 그렇게 됐어. 한번 들어가면 나오기 어렵더라고.”차기훈도 관심을 보였다.“정말 놀라워. 이렇게 여리여리한 여자애가 건축 개발을 한다니?”차기택이 서둘러 나에게 말했다.“쟤한테 넘겨줘. 저런 거친 남자가 건축을 하는 거지. 누나는 일하고 싶으면 앞으로 우리 집안일을 맡아. 우리가 바깥일을 하고, 누나가 집안일을 하고, 우리 둘이 힘을 합치면 최강일 거야!”배현우가 바로 낮은 목소리로 혼냈다.“차기택 너 또 내 사람을 뺏으려고 그래? 네가 바깥일을 맡는다고? 이 사람은 내 아내야. 내조를 해도 우리 배씨 가문의 일을 맡겠지. 그리고 지아 씨가 하고 싶은 걸 하게 내버려둬. 넌 아직 차씨 가문의 일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서, 80세 할머니가 아직도 일하고 있는데도 이렇게 뻔뻔하게 있는 거야? 네가 제대로 일어설 수 있을 때까지 가만히 기다려, 그때가 되면 다시 얘기해.”배현우는 말을 마치고 마치 누군가가 나를 빼앗아 갈까 봐 두려운 듯 나를 끌어당겨 자신의 팔에 껴안았다. 나는 그 모습에 어이가 없었고 당황스러워졌다.차 씨 노부인은 차기택의 이마를 쿡 찌르며 말했다.“들었어?”“지아야, 나도 대부분 울산에 있어. 울산에 오면 오빠한테 연락해. 우린 그곳에 집이 있으니까 밖에서 묵지 마.”차기훈은 정말로 큰 오빠 같은 모습이었다.도우미가 식사 시간을 알리러 왔고, 가족 모두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내가 이미 딸이 있다고 말하자, 노부인은 깜짝 놀라며 소리 질렀다.“이런, 그럼 왜 아이를 데려오지 않았어?”이 말에 차기택은 더욱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고 한참 후에야 말을 꺼냈다.“너랑 누구 아이야
다음날,나는 도혜선에게서 짧은 메시지를 받았다. 자신을 찾지 말라고, 지칠 때까지 놀다 돌아오겠다는 메시지였다.서강민이 나를 찾아왔을 때는 이미 반달이나 지난 뒤였다. 피폐하고 지쳐 보이는 데다 많이 야윈 모습이었고 원래도 우리보다 나이가 많았던 그는 몇 년은 더 늙어 보였다.서강민은 나를 보자마자 서둘러 물었다.“혜선이 어디 갔는지 알아요?”나는 그를 한참 바라보다 되물었다.“언제부터 그녀가 없다는 걸 알았는데요?”“한 일주일째 찾고 있어요.” 그도 나를 바라보며 대답했다.“그럼, 지난주에는 그녀가 없다는 사실조차 몰랐다는 거예요?”나는 서강민을 뚫어져라 쳐다봤다.나는 사실 전부터 그녀를 존경하고 있었다. 수많은 기업의 생사를 좌지우지하는 사람이었으니까, 그 속에는 우리 회사도 포함되어 있었다.서울의 상인들은 그를 재물의 신이라도 되는 양 떠받들었지만, 나약한 여자에게, 그것도 몇 년간 그의 옆을 지킨 약하디약한 여자에게는 이토록 인색했다.그를 이렇게 가까이서 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의 날카로운 눈동자가 나를 꿰뚫었고 창백한 얼굴이 살짝 경련하고 있었지만, 내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았다.“난 항상 당신을 존경했어요. 너그럽고, 유순한 데다 듬직하기까지 하고, 말 한마디를 천금처럼 여기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혜선 언니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여겼어요. 하지만, 왜 도혜선을 마음에 두지도 않았으면서 그녀를 찾고 있는 거죠?”나는 그를 바라보며 추호의 거리낌도 없이 노골적으로 내뱉었고 그때 눈에 붉은 핏줄이 가득 찬 서강민이 몸을 내 쪽으로 기울이더니 물었다.“알려줘요, 어디 있는지.”나는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나며 담담하게 대답했다.“당신이랑 그렇게 오랫동안 함께했는데 당신이 그녀의 결정을 모를 리가 없겠죠? 당신이 못 찾는데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혜선 씨가 뭐라고 했어요?”그는 불안한 듯 물었다.“마음을 정했다고 하더군요. 지치면 돌아오겠다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몰라요.”나는 그가 믿든 말든 상관하지
나는 숨을 크게 몰아쉬며 그를 쏘아보았다.“이렇게 해서 끝날 줄 알았다면 오산이에요. 그 모든 장면은 이미 내 두 눈에 똑똑히 담겼고, 내 마음에 상처를 입혔어요. 절대 잊을 수 없어요.”그는 나를 꼭 껴안으며 애정이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그 사람을 벌해야죠. 평생 안아달라고 하고, 손 놓지 말라고 해야죠!”나는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이 남자는 정말 나를 다루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부드럽게 하면 그는 강하게 몰아붙이고, 내가 강하게 나오면 그는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다시 한번 그러면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벌은 필요 없어요.”나는 일부러 고집스럽게 말했다.“그 사람도 안을 사람이 있는데, 나라고 없겠어요?”우리는 모두 한 사람을 가리키고 있었다.그는 얼굴이 굳어지더니 말했다.“감히? 손을 썼더니 아직도 덜 혼이 났나 봐요?”나는 놀란 채로 그를 쳐다보았고 그의 표정을 자세히 살피며 그의 말이 진짜인지 가늠해 보았다.그는 내 표정을 보더니 내 마음이 다 풀렸다는 것을 알고 내 입술을 살짝 물었다.“꼬마 아가씨, 콩이보다 더 달래기 어렵다니깐요.”나는 속으로 웃었다. 그가 나를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으니 더는 감정 상하는 말을 하지 않았고 그저 그의 품에 안겨있었다. “혜선 언니는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서강민이 그녀의 마음에 완전히 상처를 입혔어요. 이번엔 돌아올 여지가 별로 없어 보여요. 사람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마음의 상처에요. 그런 상처는 깊이 남아서 치유할 수 없으니깐요.”배현우는 팔을 더 꽉 조였고 턱으로 내 이마에 비비적거렸다.솔직히 말하면, 나는 내 주변 사람들 모두가 행복하고 건강하기를 바랐다.요즘 나는 순조롭게 지내고 있지만, 내 친구들은 모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며칠 동안 김향옥은 골드 빌리지로 출근하듯 매일 찾아왔고 오후 2시쯤 도착해 콩이를 위해 음식을 만들었다. 그녀의 상태는 나쁘지 않아 보였고 우리 엄마도 그녀의 위중한 병세를 듣고는 더는 그녀에게 트집을 잡
나는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 마지못해 고개를 들어 서강민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서강민 씨, 먼저 들어가시죠. 언니가 깨서 서강민 씨를 보면 또 흥분할 것 같은데... 지금 같은 상황에 언니가 회복하는 게 제일 중요하잖아요.”그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는 않았지만, 나는 한마디 더 보탰다.“어떤 일들은 천천히 해야 해요. 언니한테 시간을 좀 주세요. 서로 생각을 정리해 봐요.”서강민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않고 깊은 잠에 빠진 도혜선을 한참이나 지켜보았다. 발길을 돌리기 전에도 아쉬움에 한 번 더 뒤돌아보며 나한테 말했다.“고생해 줘요.”나도 담담히 답했다.“제가 해야 할 일인걸요. 언니에게 시간을 좀 줘요. 언니도 회복할 시간이 필요할 수 있잖아요.”내가 말하는 회복이 뭔지는 서강민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건 도혜선이 마음에 입은 상처였다. 오늘 도혜선의 행동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그녀의 상처는 아물 수 없을 것이다. 언급만 해도 피가 흘러내릴 만한 상처였다.잠시 후, 서강민은 한발 물러섰지만, 눈길은 여전히 도혜선에게 머물러 있었다. 평온해 보이는 모습 아래에서 어떠한 파도가 휘몰아치는지 나는 몰랐다.한참 전 도혜선이 했던 말들은 마디마디가 주옥이었다. 모두 그녀가 마음속으로만 담아두었던 것들이었고 또한 서강민의 약점이었다. 얼마나 아플지는 서강민 본인만 알고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쓰디쓴 독주도 그는 혼자 삼켜내야만 했다.도혜선의 눈가가 파르르 떨려와 깨어나려는 낌새가 보이고 나서야 서강민은 조용히 병실을 나갔다.나는 마음이 아파와 한숨을 내쉬며 손을 뻗어 도혜선의 손을 맞잡았다.인제야 하루 종일 배현우에게서 연락이 없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그쪽에는 어떤 상황인지, 김우연에게서는 소식이 없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도혜선을 보니 아직 깨어나지 않은 것 같아 살며시 그녀의 손을 놓고 일어서려 했을때, 그녀는 다시 나를 잡으며 미약한 목소리로 말했다.“가지 마...”나는 너무 놀라 얼른 그녀를 향해 몸을 돌렸다.
‘서강민은 본인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기나 하는 걸까?’“당시의 사고는 내가 저지른 거야. 그녀도 나 때문에 다쳐서 지금처럼 된 거고… 나는 좋은 남편이 아니야. 아내가 식물인간이 되었는데 나는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으니 말이야...”서강민은 여기까지 말하며 후회하는 기색을 내비쳤다.“그녀를 마주할 때마다 너무 죄책감이 들고 고민스러워. 나 또한 발버둥 쳐봤지.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나의 일탈을 받아들일 수 있어 해. 그녀한테 정말 미안한 일이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내가 널 사랑하고 있다는 거야...”“강민 씨!”도혜선은 꾸짖는 듯한 말투로 그의 말을 잘랐다.“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당신 아내가 듣고 있을 거예요. 저를 끌어들여서 같이 속죄할 생각하지 마세요. 저는 당신의 구세주가 아니에요. 저는 그냥 사람답게 살고 싶은 평범한 여자라고요. 저 좀 그냥 내버려둘 순 없어요?”도혜선은 말하면 할수록 화가 치밀어 올라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하얗게 질린 얼굴이 일그러지며 그녀는 한 손으로 본능적으로 가슴을 움켜쥐었다. 나는 깜짝 놀라 그녀 앞으로 갔다.“혜선 언니, 움직이지 마! 위험해...”늑골 골절과 뇌진탕이 있는 환자다 보니 이러한 행동은 그녀에게 너무나도 위험했다.도혜선은 손을 들어 그녀를 안으려고 하는 한지아를 제지했다.“제가 오늘 한 말이 아직도 이해가 안 되나요? 서강민 씨, 저의 인생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당신한테 묶여 당신의 부속품이 되었었는데 저도 자존심이 있어요. 더 이상 당신처럼 지난날의 죄책감을 짊어지며 답답하게 살아가지 않을 거예요.”도혜선은 여전히 분노에 차 외치고 있었다.“매일 제 앞으로 와 지난날의 행동에 대해 속죄하라고 일깨워 주실 필요 없어요! 당신을 보면 저는 지난날 모든 서울 사람의 웃음거리가 되었던 치욕적인 과거가 떠올라요. 당신은 마음 가는 대로 해요. 당신은 아내와 했던 약속을 지켜야 해요.”말을 마친 도혜선은 숨이 차올랐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보였다.
도혜선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계속하여 들려왔다.“당신은 아무런 부담 가질 필요 없어요. 저 같은 여자 마음속에 담아두지 않아도 돼요.”그녀는 자기비하적인 말을 내뱉었다.”선아...”“설사 강민 씨가 와이프와의 약속을 안 지킨다 해도 당신의 신분과 지위로 당신에게 더 어울릴만한 사람 충분히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저는 당신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에요. 하물며 당신네 부부 눈에는 저는 그냥 염치없고 미천한 사람일 뿐이죠. 저 같은 사람은 본처가 되기에 적합하지 않아요. 사모님이라는 호칭도 어울리지 않죠.”“나는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 오해하지 마.”서강민은 조급함에 한 발 앞으로 나서며 해명하려 했다.하지만 도혜선은 손을 들어 그를 막아섰다.“강민 씨... 해명하지 않아도 돼요. 당신의 행동이 모든 걸 설명해 주고 있어요! 장담하건대 아직 당신들이 어떤 의도로 얘기하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바보가 된 건 아니에요. 그녀는 정말 대단하네요. 죽을 때까지도 제가 이길 수 없는 사람이었어요. 그녀는 아무리 병상에 누워있어도 고상한 사람이고 저는 그냥 미천한 사람일 뿐이니 말이에요.”도혜선은 말을 내뱉으며 입가에 처량한 미소를 비췄다. 누가 봐도 가슴 아픈 미소였다.“이전의 저는 확실히 허례허식에 차 있는 사람이었지만 저도 성장했어요. 정신 차렸어요. 당신 앞에 있는 저의 진정한 가치가 어떤 것인지 깨달았어요. 저는 하나의 도구, 들러리뿐이었지만 원망하지 않았어요.”그녀는 여기까지 말하고 한숨 돌렸다. 얼굴빛은 아까보다 더 창백해져 있었다.“하지만 이제 저는 자존감을 챙기며 살고 싶어요. 누군가에게 의탁하지 않고 쓰레기같은 취급을 받더라도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며 살고 싶어졌어요.”점점 더 차가워지는 도혜선을 바라보며 서강민은 답했다.“혜선아, 나는 널 한 번도 무시한 적 없어. 나는 그냥 내가 뭘 하든지 네가 다 이해해 줄 줄 알았어.”도혜선의 서강민의 말을 듣고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안색은 더 창백해져 있었다.“이해? 당신이 어떤 말을
방금 허투루 한 말이 어머니의 진실인가 싶다. 보아하니 어머니가 나를 속이는 일이 있는 것 같았다. 마음속의 의문점이 점점 많아졌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식사를 마치고 차씨 가문의 할머니께 말씀을 드린 후, 위층으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고 도혜선을 보러 가려고 준비했다.그리고 팔도 겸사겸사 검사하려고 했다. 차에 앉고 나서 배현우한테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았다. 이 이른 아침에 뭐 하러 갔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김우연 쪽에 무슨 소식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했다.'생각해 보니 이렇게 빠르진 않겠지? 몇 시간밖에 안 됐는데.'병실에 도착하자마자 도혜선이 노발대발하는 장면을 포착했다. 병실에는 도혜선과 서강민 두 사람만 보이고 이미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내가 들어서자 분위기가 좀 이상하고 심상치 않는 것을 느꼈다.침대 옆 머릿장에는 보온병이 놓여있다. 서강민은 오늘도 도혜선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주러 온 것 같다.서강민은 침대 앞에 떡 하니 서있었고 침대에 있던 도혜선은 차가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도혜선은 내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 같았다.상황을 정리하려고 다가가서 서강민에게 인사를 하고 도혜선에게 다가갔다. "오늘은 좀 어때?""별로야."도혜선은 차갑게 대답하더니 또 말을 건넸다. "지아야, 손님 좀 배웅해 줄래?"난감했다, 도혜선은 서강민을 내쫓으라고 하는 거였다. 난 당연히 그 뜻을 알고 있다. 조심스럽게 서강민을 쳐다보았다. "혜선아, 꼭 이래야 하니?"서강민은 씁쓸한 표정으로 도혜선을 바라보며 물었다."네! 서강민씨, 저는 이미 분명히 말했고 두 번 다시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도혜선은 내가 그 자리에 있다고 해서 서강민의 체면을 세워주지 않았다.참지 못하고 웃어 버렸다. "언니, 화 그만 내고 진정 좀 해. 초조해하는 거 알아, 점차 좋아질 거야. 강민씨랑 얘기 좀 하고 있어. 나는 팔 검사해야 돼서, 금방 돌아올 거야!"나는 핑계를 대고 떠나서 그들에게 자리를 비워주었다.
배현우는 나의 우울한 모습을 보고 말했다. "그리고 내가 없는 동안에 회사 일도, 한심로얄의 마지막 한방도 둘 다 포기할 수 없잖아요. 신예 쪽 일도 있고, 전희가 다시 살아날 기회를 얻지 않도록 조심해야 돼요. 지금 모든 게 중요한 시기이니까요.""지금 그 누구도 아버지보다 중요하지 않아요! 수십년간 도망치면서만 살았는데 죄책감도 가지고 있었을 거예요, 분명 아주 괴로워하고 있을 거예요. 그리고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무도 모르고 있는데, 내가... 내가 딸로서, 난..."배현우는 내 말을 듣고 나서 침대에 누워 나를 꼭 껴안고 말했다. "일단 내일 소식을 기다려 봅시다. 김우연 쪽에서 어떤 정보를 얻었는지 보고 결정합시다."배현우는 나의 어깨를 툭툭 쳤다. "제 말 듣고 일단 자세요, 내일 일어나서 먼저 할 일들을 처리하고 준비하고 있으세요, 만약에 상황이 좋으면 내일 같이 데리고 갈게요, 당신 마음 충분히 이해해요."배현우가 지금 나를 위로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다. 내가 기분 나빠하는 모습을 보지를 못한다.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좀 편해지는 것 같았다. 배현우의 따뜻한 품에 안기며 눈을 감고 내일 먼저 무엇을 처리해야 할지 생각했다.근데... 눈을 떠서 배현우를 쳐다보는데 배현우도 잠에 들지 않았다. "현우씨... 할머니가 보존하고 있는 CCTV를 보여주시겠어요?"'그 영상을 꼭 보고 싶었다, 알고 싶었다. 어머니가 어떻게...'"알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자세요, 나중에 보여 드릴게요. " 팔짱을 끼더니 분명히 나를 얼버무리고 있는 것이다. 배현우가 그 장면을 내게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밤이 깊었고,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배현우의품에 안겨 점점 잠이 들었다. 아침이 밝았다. 날씨는 여전히 흐렸다. 배현우는 이미 곁에 없었고, 손을 뻗어 그가 누워 있던 곳을 만졌다. 이미 차가운 걸 보니 배현우는 일찍 침대에서 일어났나 보다.'무슨 소식이라도 왔나?'이
"할머니가 이번 사건을 피할 수 있었던 건 당시 큰 병을 앓은 것에 대해 감사해야 했어요. 제 생각에는 반은 꽤병인것 같아요. 직접 사표를 쓰고 나서도 서둘러 호주를 떠나지 않았다는 게 참 슬기로운 선택이었어요.""네?"너무 놀라서 몸 둘바를 몰랐다.배현우는 인정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는 호주를 떠나지 않으셨어요. 그곳에 머물면서 배씨 저택의 인기척을 살피다가 배씨 저택의 요상한 소문들이 완전히 자취를 감춘 뒤에야 조용히 호주를 떠나셨어요."나도 모르게 할머니의 메커니즘에 감탄했다."저도 그때 상황을 잘 몰라서, 할머니도 몸이 허약했고 내 행방을 알아 볼 길이 없어 그 비밀을 계속 지켜왔었나봐요. 부하들이 할머니를 찾고 나서도 여전히 어리석은 척을 하고 있었지 뭐에요."배현우는 그제야 미소를 지었다."할머니께서 저를 두눈으로 직접 보고서야 그걸 꺼냈어요."배현우의 말을 듣고 나니 할머니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러던 중 배현우가 나를 쳐다보더니 나의 지친 모습을 보고서야 손을 들어 대문을 열어 장벽들이 천천히 열리는 걸 볼 수 있었다.차는 왔던 길을 따라 경원으로 다시 돌아갔다. 벌써 자정이 되어 우리 둘은 차를 세우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층으로 올라가 방에 돌아왔다.'우리를 배신한 소인이 두 집안을 풍비박산 시켰다니. 오늘 밤 일어난 모든 일들은 듣고도 믿기지 않았다.'간단히 씻고 걱정 가득채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태어나서 얼굴도 한번 못 본 아버지가 어디 있는지, 밥은 먹고 다니는지를 걱정해 발 뻗고 자지 못했다. '한강인이랑 한걸은 이미 잡혔는데, 우리 아버지는? 그의 처지는 어떤지.''한씨 부자가 그저 아버지를 인질로 삼아 그들의 안전을 확보하려 했다면 왜 배현우는 그곳의 환경이 복잡하다고 했을가.''이유는 간단하다. 누군가 아버지를 미끼로 삼으려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를 보고 싶으려는 걸가?''배현우? 아니면 배유정?'생각할수록 더욱 걱정이 됬다.아버지의 이번생은 이미 충분히 힘들다.어머니랑 서로
나는 걱정스레 배현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배현우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계속 말했다.“후에 목격자 어르신을 찾고서 한강인을 자세히 조사하니 한강인은 이 모든 것이 일어난 뒤에야 천우 그룹을 떠난 거였어요. 지아 씨도 알잖아요. 그때 당시 천우 그룹은 아직 배유정 손에 있었어요.”“현우 씨의 말은 한강인은 배유정 과도 사이가 틀어졌단 말인가요?”나는 추측하며 물었다.“우리가 조사할 때 이상한 단서 하나가 나왔어요. 한동안 배유정도 한강인을 찾았고 심지어 한강인에 대한 추살령도 내렸어요! 참 이상해요. 배유정은 왜 한강인을 죽이라고 지령을 내린 걸까요?”“이유는 하나뿐이죠. 즉 한강인이 분명 무엇을 알아냈거나? 아니면 어떤 일에 참여하였거나?”나는 대답했다.배현우는 고개를 끄덕이었다.“진백이 죽임을 당했듯이 이 안에는 분명 남들한테 들키면 안 되는 비밀이 있는 거겠죠. 우리는 이 단서를 따라 계속 추적해 보니 한강인의 혐의가 점점 더 드러나더군요. 그리고 그의 아들 한결도 같이 도망쳤어요.”“그러고 보니 이 안에는 분명히 또 다른 요소가 있겠네요!”나는 사색에 잠겼다.“그래서 우리는 추측했죠. 한강인은 확실히 이 사건이랑 연관이 있고 둘이 도주하는 과정에 서로 연락하는 빈도를 보아서 부자 둘은 서로 다른 곳에 있는 것으로 판단했어요.”“그리고 한강인이 도망 다니는 그 시기에 그의 모친이랑 누나 모두 영문도 모른 채 실종되었어요. 지금 보니 그분들은 아마 이미 이 세상을 떠난 것 같네요. 이 때문에 한강인은 고두리에 놀란 새가 돼서 끊임없이 도망치며, 이 또한 한강인이 지금의 상태로 되게 한 원인인 것 같아요. 사실 한강인은 원래 지금의 모양이 아니거든요.”배현우의 말을 듣자 나는 저도 모르게 아까 보았던 한강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한강인은 극도의 공포 속에서 엄청 정신적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아니면 다른 기타 방식으로 정신을 잃지 않게 버티고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사람이 저렇게 말라죽을 정도일 리가 없다.“그리고 한 가
배현우는 나를 한눈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었다.“맞아요. 제 씨 어머니가 얼마나 총명한지 그 누구도 생각지 못했어요. 제 씨 어머니는 책 속에 카메라를 숨겨두고 만약 사고가 난다면 여기에 있는 이 물건을 숨겨두었다가 훗날 믿음직스러운 사람에게 주라고 할머니한테만 똑똑히 당부해 두셨어요!”나는 코가 찡긋거리더니 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다.“보아하니 제 씨 어머니는 분명 위험이 닥칠 거라는 것을 미리 예감했던 거네요!”배현우는 안색이 조금 어두워지더니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갑자기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제 씨 어머니는 만약 자신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할머니더러 애들을 데리고 허씨 가문으로 가라고 할머니한테 당부하셨어요.”나는 끝내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고 코를 훌쩍이었다.배현우는 자기 손을 꽉 움켜쥐며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참 생각지도 못한 게 모든 것이 제 씨 어머니의 예상대로 일어났고 감춰둔 카메라에 모든 것이 담겼어요! 근데 할머니는 제 씨 어머니의 뜻대로 우리 둘을 순리롭게 허씨 가문으로 데려가지 못했어요.”“급한 나머지 할머니는 고씨 가문에만 소식을 전했고 그마저도 나쁜 놈들보다 동작이 빠르지 못해 그들이 지아 씨를 데려간 후였어요. 그래서 저만 고씨 가문에서 데려갔어요.”나는 눈물을 닦아내면서 그때 당시의 내가 얼마나 힘없고 무력했을지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다. 갑작스럽게 어머니가 돌아가신 데다가 배현우와 억지로 갈라지게 되었다.배현우는 내 손을 꽉 잡으며 손에 힘을 주었다.나도 배현우 지금의 심정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날 배현우는 눈앞에서 억지로 끌려 나가는 나를 보기만 하고 반항할 수도 없는 그런 무능력함은 아마 배현우한테 평생 잊지 못할 아픔이 되었을 것이다.차 안은 갑자기 조용해졌고 자동차가 앞으로 가는 소리밖에 안 들렸다.한참 뒤에야, 배현우의 잠긴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이런 것들을 찾은 후에야 비행기 추락 사고가 떠올랐고 이로써 모든 것들이 비로소 한강인을 추측하게 했으며 그 이후에 우리는 한강인
이 소식은 그야말로 나를 입이 떡 벌어지게 했다. ‘나를 데려간 게 어떻게 그 사람이지?’“맞아요. 우리는 유일한 목격자를 찾았어요. 그 당시 그쪽 산에서 약재를 캐는 어르신이신데 그때는 중년인이셨어요. 하늘의 뜻인지, 우리가 수년을 찾아 헤맨 끝에야 비로소 이 참극의 전부를 직접 목격한 증인을 찾아냈어요.”“그 어르신 정말로 전체 과정을 모두 목격하셨나요?”나는 믿어지지가 않았다. 배현우 얘네가 얼마나 큰 공을 들여야 바다에서 바늘 건지는 것 같은 일을, 그것도 몇 년이 지났는데도 당시의 목격자를 찾아낸 걸까.“어르신의 말로는, 당시 자기는 산 위에서 내려오는 도중에 잠시 계단에서 쉬고 있었는데 그러다가 아래 도로에서 일어나는 광경을 목격했다고 해요. 알다시피 외국에서는 약재를 캐는 일은 엄청 드물어요.”배현우는 엄청 뿌듯한 말투로 말했다.“우리 형제들이 엄청나게 고생 많았어요. 십수 년을 하루같이 귀찮음을 마다하고 사건 지역을 탐방하러 다니면서 일말의 흔적도 소홀히 하지 않았어요.”나도 믿어지지 않아 입을 열었다.“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어요. 참 노고가 많았어요.”“어르신이 말씀하기를 당시의 장면은 엄청 아슬아슬했대요. 부딪힌 차는 거의 굴러떨어지기에 일보 직전이었는데 후에 폭발했대요. 어르신은 우리의 차가 폭발한 뒤 키 크고 마른 한 남자가 차에서 내리는 걸 똑똑히 봤다고 해요. 그리고 그 남자는 길 왼쪽의 언덕 아래로 달려가 무언가를 찾았대요.”배현우는 그때 당시의 장면을 묘사하였다. 나는 머릿속으로 그때 당시의 상황을 필사적으로 상상해 내려고 하니 머리가 또 아파 났지만, 배현우가 말을 멈출까 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당시에 일어난 이 모든 것, 전부 나한테는 엄청난 매력이었다. 나는 지금 내가 찾아낸 산산조각 난 퍼즐들을 하루빨리 제 위치에 맞춰서 하나의 완전한 그림을 만들어 내고 싶었으며 그때 당시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을 되찾고 싶었다.그 뒤로 난 어떻게 Z 국의 만덕동에서 떠돌게 되었고 또 어떻게 지금의 한지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