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는 여전히 맹호처럼 곧장 앞차를 향해 달려갔다.나는 앞에 있는 그 희미하게 보이는 불빛이 바로 그 차의 것이라고 단정했다.나는 날개라도 달려 딸에게 날아가 겁먹지 말라고 위로해 주고 싶었다. 내가 납치되었을 때도 이렇게 두렵지는 않았었다.날은 이미 완전히 어두워졌고 이 길의 가로등 간격은 너무 멀었으며 소리마저 흐릿한 상태였다.이때,차가 마침 비탈이 있는 커브 길을 돌진하고 있었다. 우리의 차는 비탈길의 아래 쪽, 그들의 차는 위쪽에서 달렸다. 차의 오른쪽은 밀림이고, 왼쪽은 가파른 계곡이었다.차의 속도가 전혀 느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코너를 돌 때도 스무스한걸 보아 이 차를 운전해 준 운전기사는 전문적인 훈련을 거쳤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 차를 보았다. 어둠 속에서 상황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 차의 붗빛이 우리의 시야 범위 안에 들어왔다. 이 모퉁이를 돌기만 하면 우리는 그들을 따라잡을 것이다.나는 눈물을 흘리는 것을 잠시 잊고 비탈길을 오르고 있는 그 차를 주시하고 있었는데 긴장감 탓에 손발은 점점 차가워졌다.이 길에는 차가 많지 않았다. 특히 이 굽은 길은 비탈이 크지 않지만 매우 길었다.내가 모든 정신을 집중해서 그 차를 주시하고, 거의 그들을 따라잡으려 할 때, 무서운 광경이 눈앞에서 벌어졌다.그 차는 무슨 영문인지 갑자기 왼쪽 골짜기 아래로 굴러떨어진 것이다. 날이 저물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차가 이곳저곳 부딪히며 부서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그 소리는 귀가 먹먹할 정도로 골짜기에 메아리쳤다...나는 순식간에 일어난 모든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곧 나는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반응하고 나도 모르게 울부짖었다.“안... 안 돼...”그 순간 나는 나를 보호하고 있는 배현우를 밀치고 벌떡 일어나 달리는 차 밖으로 뛰쳐나갔다.“... 콩이야, 안돼!”배현우는 재빨리 나를 잡아당겼다. 나는 필사적으로 그 방향으로 울부짖었다.“이걸 놔요...콩이, 콩이야...”배현우는 두 팔로 나를 품에 안은 채 말했
그 울음소리가 텔레파시 같아서 나는 깜짝 놀라 귀를 쫑긋 세운 뒤 배현우에게 말했다.“들어봐요, 콩이의 울음소리예요!”우리 둘은 잠시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헬기 소리가 너무 커서 모든 것을 덮어버렸다!“콩이 맞아요!”배현우가 방심한 틈을 타 나는 차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러나 헬기가 휘몰아친 바람에 꼼짝도 하지 못했고 뒤늦게 나온 배현우가 내 뒤에서 나를 끌어안으며 말했다.“차로 돌아가요, 제발 말 들어요. 찾는 중이에요!”“이거 놔요... 콩이가 우는 소리를 들었어요…”나는 배현우를 밀치며 몸부림쳤다.그 울음소리는 나를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아프게 했다. 마치 내 몸의 살갗을 갈가리 찢는 것 같았다. 분명 콩이었다. 콩이는 울고 있고, 근처에 있었다.그때 차에 타고 있던 수행원이 차에서 뛰어내러 달려와 배현우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다리 위에 있습니다!”나와 배현우는 어리둥절했다. 순간 배현우는 긴 팔로 나를 감싸 안고 다시 차로 데려가고 단호하게 말했다.“가요!”차는 곧 시동을 걸고 빠르게 다리 쪽으로 질주했다.다리의 앞쪽에 김우연 등이 부채꼴 모양으로 다리 끝을 막고 있었다. 우리 차는 급정거 소리를 내며 그들의 앞에 멈추었다. 나는 얼른 차에서 내려 앞을 바라보았다.포위된 사람들은 모두 뒤로 방향을 바꿨다. 원래는 차량이 다리를 오르지 못하도록 막은것이었는데, 목표물이 어떻게 올라간건지 알 수 없었다. 사람들은 모두가 어리둥절한 채 경계하며 다리로 향했다..다리 위를 바라본 나는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고, 눈앞의 광경에 심장이 목구멍으로 튀어나올 뻔했다.다리 위 오른쪽의 가드레일 옆에 키가 크고 우람한 남자가 보였다. 그의 왼손은 총을 들고 오른손은 곧게 가드레일 밖으로 내밀고 있었다. 손에 들린 것은 바로 나의 콩이었다. 콩이는 마치 인형처럼 다리 밖에 매달려 미친 듯이 울면서 입으로 끊임없이 ‘엄마'를 부르고 있었다. 콩이의 몸 아래는 바로 심연 같은 골짜기였다. 그가 손을 놓기만 하면...나는
배현우가 겁먹은 기색도 없이 다리 위의 남자 쪽으로 걸어가는 걸 보면서 내 울음소리와 모든 움직임이 뚝 그쳤다. 나는 내 눈을 믿을 수 없었다. 그는 왜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다가가는 것일까?잠시 후, 나는 그가 앞을 가로막는 수행원들에게 호통치는 것을 들었다. 순간 그의 뜻을 이해한 나는 김우연을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안, 안돼요... 현우 씨 돌아와요... 김우연 씨 좀 말려봐요...”김우연은 내 울부짖음을 듣고 옆에 있던 경호원 두 명에게 나를 넘겼다.“한지아 씨를 잘 보호해.”말을 마친 그는 성큼성큼 배현우에게 달려갔다.탕탕!그의 발이 방금 다리 위를 밟을 때 두 발의 총성이 울렸다. 그 두 발은 모두 김우연의 발밑에 떨어졌고 그 남자의 외침이 희미하게 들렸다.“... 물러서! ... 한 걸음 더...”분명히 그 남자는 김우연이 지나갈 수 없다고 경고하고 있었다.그는 배현우만 올라갈 수 있도록 했고, 나는 배현우가 강인하고 꼿꼿한 모습으로 조금도 주저하는 기색이 없이 그 남자에게 성큼성큼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 남자는 왼손에 총을 들고 있었고 총구는 배현우를 향해 있었다.김우연이 다시 앞으로 나오자 배현우는 오른팔을 들어 올라오지 말라고 했다.그는 아주 단호하게 걸어갔지만 나는 이미 혼비백산했다. 다리 한쪽에는 내 딸이, 다른 한쪽에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둘 중 한 사람에게 무슨 일이라도 일어난다면 나는 살 수 없었다.내 딸을 구하고 싶지만 배현우에게 무슨 일이 생기는 것을 지켜볼 수도 없었다. 하지만 위기일발의 순간에 더 좋은 방법이 없었다.“... 현우 씨, 콩이야...”나는 가슴을 찢어질 듯한 아픔을 느끼며 소리쳤다.김우연이 명령하는 소리와 함께 모든 차량이 전조등을 켜자 헬기는 조금 더 올라가더니 다리 건너편으로 날아가 반대편 상공을 선회했다.내 추측으로는 김우연이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듣고 싶었고 판단에 영향을 주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다리 위의 남자는 전혀 개의치 않고 마치 죽음을 결심한 것
다리 위의 일거수일투족이 다리 밑에 있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조마조마하게 했고 김우연은 얼굴이 잔뜩 어두워진 채 주먹을 꽉 쥐었다. 내 옆에 있는 차 문을 벙커로 사용하고 있는 경찰들도 모두 놓칠세라 눈을 부릅뜨고 적절한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하지만 우리 쪽의 모든 사람의 마음이 아무리 타들어 가도 눈앞의 모든 것은 여전히 속수무책이었다.배현우가 두 발짝 더 나아가는 것을 보자 그 남자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거기 서! 너... 다가오지 마...”그의 목소리가 가끔 들리는 것을 보니 배현우가 열심히 설득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어쩐지 배현우가 눈앞에 있는 그 남자를 알고 있다는 예감이 들었다.그의 손에 잡힌 콩이는 아직도 목이 쉬도록 울고 있었는데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았고, 그러는 콩이를 보는 내 마음이 너무 아파서 숨이 막힐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아무도 감히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 남자의 신경을 조금만 잘못 긁었다가는 콩이를 영영 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하지만 무서운 광경이 끝내 벌어졌다. 웬일인지 그 남자가 갑자기 화를 내더니 자꾸 총으로 배현우를 겨누며 뭐라고 노발대발했다.고함을 지르던 그는 갑자기 오른손을 들어 그의 손에 있는 콩이를 마치 낡은 인형처럼 공중으로 내던졌다...콩이의 마른 몸이 허공에 포물선을 그리며 다리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아이를 내던지는 순간 그 남자도 몸을 훌쩍 날렸다. 많은 사람의 눈앞에서 번개같이 빠른 속도로 고속도로를 뛰어내려 제비처럼 일직선으로 떨어졌다.곧 나는 몇 발의 총성을 들었다. 나는 입을 딱 벌린 채 비명을 질렀고, 미친 듯이 소리 질렀다.“...안돼!”그러던 중 치타처럼 달려가 콩이에게 두 손을 내미는 배현우의 모습이 보였고, 아이가 땅에 떨어질 것 같은 순간 배현우가 껑충 뛰며 멀리 굴러갔고 곧이어 콩이의 울음소리가 뚝 그쳤다.정신을 차렸을 땐 김우연이 배현우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나는 울부짖으며 나를 가로막는 사람의 손을 뿌리치고 필사적으로 다리 위의 배
차는 바람처럼 병원을 향해 달려갔지만 콩이는 여전히 가슴이 찢어지는 듯 울고 있었다. 배현우의 옷깃을 두 손으로 꽉 움켜쥐고, 손을 떼면 눈앞에서 사라지기나 할 것처럼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배현우의 얼굴을 바라보며 숨이 넘어갈 듯 훌쩍거렸다.내 마음은 갈가리 찢어지는 듯 아팠고 콩이가 울어서 숨이 막히는 모습에 속수무책이었다. 콩이는 줄곧 착했는데 어렸을 때부터 이렇게 울어본 적이 없었다. 내가 아무리 달래도 콩이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저으며 입에서 끊임없이 ‘싫어요!’만 뱉어냈다.배현우가 부드럽게 달래며 콩이를 품에 꼭 안았다.“아저씨 여기 있어,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콩이야, 봐봐, 아저씨야! 아저씨는 콩이를 놓지 않을 거야!”나는 차갑기 그지없고 세상에도 무관심한 배현우가 나의 콩이를 이렇게까지 사랑해주고 아껴줄 줄은 상상도 못 했다.내가 옆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콩이를 놓지 않고 자신의 품에 안고 끊임없이 달랬다. 늘 차갑고 잘생긴 얼굴에 자애로운 아버지의 사랑 같은 것이 깃들어 있어 감격스러움과 동시에 안정감을 느끼게 했다.콩이는 이미 부성애가 결여된 지 오래되어 나는 진심으로 죄책감을 느끼지만, 지금 이 순간 배현우는 아버지보다 더 아버지 같았다.나도 배현우의 어깨에 기댄 채 말없이 겁에 질린 듯 눈물을 흘리는 콩이를 바라보았다.병원에 도착했지만, 콩이의 상태가 좋지 않아 전신검사를 했는데 다행히 다친 데는 없고 많이 놀랐다고 했다.그동안 내가 아이를 안았는데 콩이는 나를 꼭 안고 손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잠시 후 또 돌아서서 배현우에게 안아달라고 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의사가 배현우의 상처를 간단히 치료해 주고 나자 그는 다시 콩이를 안았다. 우리가 겨우 콩이를 달래 울지 않게 했지만 콩이는 배현우의 목을 꼭 껴안고 멍하니 그의 어깨에 엎드려 있었다.의사는 가능한 한 아이를 즐겁게 하고, 마음에 상처가 남지 않도록 많이 다독여주라고 조언했다.우리가 함께 골드 빌리지로 돌아왔더니 사람들이 다 모여 있었다. 병원에 가는
나는 위험에서 벗어나 안정을 찾았지만, 심장이 여전히 쿵쾅대고 있었다. 아직 어린 콩이는 더 말할 것도 없었고 나 역시도 온밤 내내 악몽에서 깨고 다시 잠들기를 반복했다.언제 습격받을지 모른다는 공포가 짙은 먹구름처럼 머릿속을 배회하며 좀처럼 흩어지질 않았다.결국, 울산에 가려던 계획은 잠시 무산되었고 대신 장영식이 민여진을 데리고 울산으로 떠났다.떠나기 전 영식은 나를 위로하며 회사의 일은 잠시 내려두고 콩이의 회복을 최우선으로 하라고 당부했다. 그 뒤로 며칠간 나는 콩이의 옆에서 한 시도 떨어지지 않고 아이를 지켰지만 콩이의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잠자리에 들기만 하면 울며 칭얼대고 배현우가 보이지 않으면 목이 터져라 울어대며 달래기 쉽지 않았다.그 때문에 몇 번이고 배현우가 회사에서 돌아와야만 했다.콩이의 모습에 엄마는 줄곧 자책에 빠졌다. 콩이가 울면 따라서 몰래 눈물을 흘렸고 왠지 모르겠으나 엄마의 정신상태도 갑자기 나빠지기 시작했다.아빠도 엄마의 곁에서 끊임없이 위로를 해줬다. 심지어 배현우도 엄마에게 이 모든 건 의외의 사고였으니 아무리 주의를 했어도 발생할 수 있는 일이라고 위로했다.하지만 엄마는 항상 근심걱정이 가득했고 우울해 보였다. 특히 콩이가 울며 칭얼댈 때마다 머리를 감싸 쥐며 고통에 시달리는 모습이었다.집안의 분위기는 유달리 우울했고 나도 덩달아 긴장이 되었다. 은연중에 엄마의 정신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배현우는 당장 비행기 표를 예매하고 우리 가족들을 데리고 제주도로 향했다.천혜의 자연환경에 녹음이 우거진 나무와 푸른 바다가 절경을 이뤘고 환경이 바뀌니 콩이의 상태도 조금은 호전됐다.아직도 배현우에게 붙어있었지만 먼저 능동적으로 주변의 색다른 경치를 관찰하는 등 변화가 있었고 배현우의 흠 잡을 곳 없는 노력으로 끊임없이 콩이에게 서프라이즈를 해주며 새로운 사물을 발견하도록 아이를 유도했다.나는 콩이의 예쁜 치마를 잔뜩 챙겨와 아기 천사처럼 콩이를 꾸며주고 이곳저곳을 데리고 다녔다. 매일 다른 경
웃고 나니 갑자기 마음속에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은은하게 감돌았다.나는 배현우와 시선을 맞췄고 그도 내 마음속 생각을 알아챘음을 알 수 있었다. 그저 어른들과 아이 앞에서 말하기 불편했을 뿐이었다.사실 이 며칠 배현우의 전화를 받고 김우연이 콩이 납치 사건 뒷일들을 처리하고 있단 걸 알게 됐다. 묻진 않았지만, 그와의 대화 속에서 우연 일행의 최선을 다한 수사에도 그 남자를 찾지는 못했다는 요지를 들어낼 수 있었다.그렇게 높은 다리에서 뛰어내렸으니 정상인이라면 즉사하거나 치명상을 입을만한 일이었고 행운아라 해도 무사하진 않을 것이다.하지만 이렇게 며칠이나 지나도 흔적조차 찾지 못했으니 평범하지 않은 사람임이 틀림없었다. 경찰이든 배현우의 사람이든 샅샅이 수색을 진행했어도 찾지 못했다면 그가 이미 도망쳤다는 것밖에 답이 없었다.도망쳤다는 것은 언제든 위험을 배제할 수 없다는 말이며 잠재적인 위험 요인으로 언제 다시 협박을 가할지 모른다는 뜻이었다.다만 하나 확실한 것은 나는 절대 그와 일면식조차 없었으며 다시 말해 이 모든 일의 화근은 내가 아니라는 말이었다.콩이와 배현우가 사건의 경과를 설명해 줬고 나는 그 속에서 중요한 정보들을 캐치해냈다.콩이를 납치한 남자, 혹은 그에게 납치를 지시한 사람은 나와 배현우 사이의 일을 잘 아는 사람이었고 특히나 콩이와 배현우의 친밀함을 알고 있는 사람이어야 했다. 생각할수록 소름이 돋았다.이건 우리 사이의 일일 뿐인데 어떻게 누군가가 잘 알고 있을 수 있었을까, 더군다나 최근 배현우의 교통사고 이후 우리 사이에는 어떠한 밀접한 연락도 주고받지 않았는데 왜 아이를 납치해 간 걸까?배현우는 콩이 마음속의 어두운 그림자를 걷어주려 콩이와 놀이에 집중했고 그 인내심과 사랑이 담긴 모습을 바라보며 나도 마음이 움직였다.그때 그가 손으로 콩이의 코를 살짝 잡더니 물었다.“앞으로 무서워할 거야 안 할 거야?”“안 무서워할 거예요! 아저씨가 있으면 콩이는 무섭지 않아요. 아저씨가 절 구하고 나쁜 사람도 때려줄 거니까
살짝 갈라진 마성의 목소리가 귓가에 낮게 울려 퍼졌다.“언제까지 날 피할 생각이에요?”“그런 적 없어요...”나는 서둘려 변명했지만, 말이 떨어지자마자 자신이 잘못 얘기했음을 깨달았다. 이미 익숙한 우리 둘 사이에 이런 단둘만의 공간은 나에게는 신체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치명적인 유혹이었다. 둘 사이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미묘해졌다.“내 딸 콩이를 구해줘서 고마워요!” 나는 진심으로 얘기하며 둘 사이에 흐르는 어색한 기류를 전환하려 했다.“당신 딸 콩이 만이 아니죠!” 말을 하는 그의 눈빛은 사랑스러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콩이는 당신보다는 양심이 있는 것 같아요. 사람을 따르니. 당신은 진짜 양심 없는 꼬마 여인이고.”“내가 다섯 살짜리 애도 아니고, 당신 삶을 방해할 수는 없잖아요!”나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했다. 아직도 그와 한소연이 만나고 있다는 껄끄러운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니 말이다.“바보 같은 소리!”배현우는 몸을 일으키더니 화난 척하며 나를 옆으로 내려놓았다. 곧이어 나를 품에 껴안더니 비치체어에 반쯤 걸터앉았다.그와 이렇게 친밀하게 몸을 붙이고 있은 지 오래됐기에 나는 불안하기도 하고 두근거리기도 하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심장 속에 작은 토끼를 품은 듯 심장이 쿵쾅쿵쾅 요동쳤다.배현우가 진지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지아 씨, 그동안 속상하게 해서 미안해요.”나는 저도 모르게 코끝이 찡해졌다.“특히 콩이 일은, 지아 씨와 콩이에게 소홀했던 내 탓이란 거 잘 알고 있어요.”배현우가 가볍게 내 어깨를 토닥였고 그의 큰 손에서 전해지는 온기가 난류마냥 내 몸을 타고 퍼져나갔다.우리 둘 다 말은 않았지만 마음은 통하고 있었다. 콩이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콩이가 배현우를 지나치게 따르고 있어 차를 쫓아갔고, 그것 때문에 악당들이 기회를 잡아 집 앞에서 아이를 납치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일이 발생한 지 며칠이나 지났지만 지금 생각해도 여전히 가슴이 떨려왔다.“아이의 감정을 간과했어요. 당신들과 거리를 두면 두 모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