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마치 독사처럼 나를 쏘아보며 오만하게 물어왔다.“그게 무슨 뜻이죠?”임가연은 이 상황이 불쾌하기 그지없었다. 그녀가 원하는 건 이미연의 자리라는걸 모든 사람이 알고 있었으니까.“말 그대로예요! 매니저가 아주 잘-맞-아 !”나는 한 글자씩 또박또박 말해주었다.미연이는 임가연의 울그락 불그락한 얼굴빛을 보곤 웃으면서 나한테 말했다.“한 대표님 모르시는구나, 우리 가연 씨 꿈이 얼마나 큰데요, 실력도 좋아요.”나는 경멸하듯 코웃음을 치고는 말했다.“꿈이야 누구나 꿀 수 있죠!”“뭐라고요?” 거리가 멀어선지 잘 듣지 못한 그녀는 나한테 다시 물어왔다.“등신!” 나는 그녀를 향해 눈을 깜박이며 장난스럽게 씩 웃어 보였다.그러고는 한소연을 돌아보며 소리 높여 말했다.“한소연 씨, 또 보충하실 거 있으세요? 아니면 계속할까요?”그녀는 몸을 돌려 탐욕스러운 눈으로 여기저기 살폈다. 모델하우스를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안달이었다.배현우의 팔짱을 낀 채로 여운이 가시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이렇게 하죠! 많이 말해봤자 저의 요구에 도달도 못할 텐데요 뭐.”“그건 안되죠! 요구치에 도달 못한다면 우리 쪽 책임이죠, 소연 씨 시간을 너무 잡아먹으면 안 되잖아요. 아까도 매니저 씨께서 불쾌해하시면서 소연 씨 스케줄이 꽉 찼는데 저희가 시간 낭비 하고 계신다고 하셨거든요.”“그러니 오늘 오신 김에 모두 해결하고 가시죠! 또 번거롭게 걸음 하시지 마시고요! 그래야 다들 시간 절약하고 힘도 덜 들죠!”나의 말에 많은 분들이 공감했다. 프로젝트 책임자인 이 부장님과 미연이도 찬사의 눈빛을 보냈다. 그러든 말든 배현우는 여전히 내 말을 못들은 것처럼 손을 주머니에 넣고 곳곳을 돌아보았다.그 옆엔 제니가 머리를 파묻고 노트북을 바라보고 있었다. 작은 손이 쉴 새 없이 키보드를 두드려댔다.모두 속을 훤히 알고 있으니 한소연도 뭐라 말할 수가 없었다.나는 이 부장님에게 물어보았다.“한소연 씨께서 문제없다고 하시니 천우 그룹으로 돌아가시죠! 회의실에서
제니는 모델 하우스의 원래 도면을 모두에게 보여줬다. 사진 속 모델 하우스는 화려하고 정교하며 상당히 아름다웠다. 곳곳에 유럽풍의 우아하고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풍겼으며 반짝이고 찬란한 시각적 효과를 보여주고 있었다.자리에 있는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모델 하우스의 결과물에 다들 만족하고 있는 모양이었다.제니는 두 쌍의 이미지를 하나하나 보여주며 이미지를 넘길 때마다 진지한 태도로 한소연에게 물었다.“소연 씨는 이렇게 하고 싶은 거죠?”그녀의 말투는 상당히 부드럽고 온화했으며 감정의 요동이 느껴지지 않았다. 천천히 한소연의 생각을 첨부하며 누구보다 진지한 태도로 설명을 이어 나갔다.한소연은 이런 제니의 나긋나긋한 리드 아래 완전히 몰입한 채 사람들 앞에서 자기 생각을 표현했다.그녀는 상당히 우아한 태도로 끊임없이 자기 생각을 전했고 그럴 때마다 제니가 부가 설명을 해주며 이런 뜻이 맞는지 한소연의 의견을 물었다.한소연은 우아하게 손을 내리치며 지적하더니 감탄을 금치 못했다.“네! 맞아요, 이게 맞죠, 효과가 바로 나타나잖아요. 맞아요, 너무 아름답네요, 바로 이거예요.”모두 집중한 채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전체적인 효과를 기대하고 있었고 한소연 같은 대스타의 안목을 확인하고 싶었다.그녀의 흥분한 모습은 모든 이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으니 역시 톱스타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었다. 임가연 또한 옆에서 한마디씩 거들며 한소연을 도와 맞장구를 쳤다.나는 스크린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과 호기심, 짜릿함이 느껴졌다.마지막 짜릿함이라는 단어는 제니에게 보내는 것이었다.그녀는 한껏 집중한 채 노트북으로 각도를 수정하고, 색깔과 장식을 바꿔나갔다.나는 담담한 눈빛으로 회의실에 자리한 사람들이 스크린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들을 훑었다. 특히 천우 그룹의 디자이너들은 원래 있던 흥분이 서서히 복잡한 표정으로 바뀌고 있었다.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가볍게 입꼬리를 올려 승리를 만끽하고 있을 때 나를 빤히 응시하는 차갑고도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은 살기에 가득 찬 배현우의 시선을 피하느라고 바빴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렇게 조용히 있기에는 눈치가 보였기 때문에 임가연을 불러왔다. “가연 씨가 소연 씨 매니저니까 한마디 해줘요. 다들 기다리잖아요.” 이 말을 들은 임가연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드러났다. “제가 보기엔 아주 괜찮은 것 같습니다만...” “... 쓰레기! 저건 쓰레기일 뿐이에요!” 펜을 던지던 이 디자이너는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고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얼굴을 하고 물었다. “이런 인테리어는 쓰레기일 뿐이야. 아무것도 모르면서 가르치려 들지 마. 현우 씨, 이런 물건을 내놓다니, 천우 그룹을 망치려는 생각인가 봐? 이 자리에 있는 모두, 이런 거지 같은 인테리어 한 집을 살 사람 있어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배현우의 이름을 콕 집어서 비난한 이 카리스마 넘치는 디자이너의 행동에 모든 사람들은 배현우의 눈치를 보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그가 망신을 당했다는 사실에 모두가 비웃고 있었다. 사진작가도 배현우의 표정을 살펴 보고는 입을 열었다. “죄송하지만 이런 작품은 저도 촬영 할 수가 없습니다. 저도 저의 작품에 책임을 져야 하잖아요.” 그 외의 사람들은 이런 냉랭한 분위기 속에서 그저 눈치만 보고 있을 뿐이지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괜찮은 인테리어라고? 웃기고 있네. 너 어느 소속이야? 천우 그룹이 무슨 애들 놀이터인 줄 알아? 너희들 같은 애송이들이 함부로 해도 될 것 같아?” “전 세계가 주목하는 천우 그룹인데 이런 거지 같은 인테리어로 홍보 영상을 만든다는 건 웃음거리밖에 되지 않아.” 카리스마가 넘치는 디자이너의 발언에 한소연의 얼굴은 창백해졌고 인중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이... 이것이 제가 주문한 물건인가요? 다름이 아니라...” 제니가 빠르게 한소연의 말을 가로채며 말했다. “소연씨 가 주문한 거 맞아요. 방금 이분들이 하시는 말씀도 모두 들으셨잖아요.” “아니...” 많은 사람 앞에서 만신
그의 대답은 모두의 예상 밖이었다. 그럴 필요가 없다는 배현우의 대답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신흥이랑 계약을 맺을 생각이 없다는 것인지 아니면 나의 의견을 받아 들일 수 없다는 뜻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한소연의 그늘진 얼굴이ㅇ 갑자기 밝아졌다. 그녀는 배현우가 나의 의견을 거절했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배현우는 이미연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이 대표님, 박언 그룹으로 가서 보고 하세요. 이번 일로 당신들 때문에 천우 그룹의 업무 진행 속도가 7시간이나 늦어졌다고, 또 경고 하는데, 이 매니저는 다시 천우 그룹에 나타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그의 말은 모든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유독 한가연은 날이 서 있는 그 남자의 말에 겁에 질린 임가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 알고 있다는 것처럼. 몰래 배현우를 훔쳐보니 그는 제니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부로 제니 씨를 천우 그룹의 인테리어 소품 전문 디자이너로 스카우트 할 계획입니다.” 나는 당황했다. 배현우가 필요 없다고 말한 이유가 혹시... “오늘부로 진호 씨를 천우 그룹 프로젝트의 임시 부장으로 임명하겠습니다. 지금부터 디자인 초안 심사는 진호 씨가 책임질 것이며 급여와 대우는 부장급으로 지급할 것입니다.” “프로젝트 부서의 이진혁 주임은 오늘부로 주임 자리에서 물러나 집에 가서 반성 하기를 바랍니다. 주임으로서의 본분을 못한 당신한테 제가 어떻게 프로젝트 부서를 믿고 맡길 수 있겠어요?” 창피를 당한 이진혁은 설명할 겨를도 없이 자신의 실수를 묵인했다. 그가 일을 처리 함에 있어서 우유부단 했던 원인은 바로 한소연 때문이었다. 그는 한소연이 배현우의 여자였기 때문에 그녀의 결정에 따랐고 원칙마저도 어기게 되었다. 배현우의 이런 결정에 모든 임원진들은 마음을 졸이며 그를 바라보았고 배현우는 어두운 표정으로 직원들을 훑어보았다. 그러고는 아까 그 사진작가를 향해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천우 그룹의 담당 사진작가로 채용 하겠습니다. 보수는 섭섭지 않게 드릴
배현우가 떠난 후,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그의 과감한 선택에 술렁이기 시작했다. 조민성도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다들 돌아가지.” 그의 말 한마디에 모든 사람은 하나둘씩 자리를 뜨기 시작했고 나도 이해월에게 말했다. “해월 씨, 우리도 이만 돌아가요.” 갑자기 회의실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한지아, 너 때문이야... 내가 뭘 어떻게 했다고 나한테 이러는 거야? 한자아 두고 봐, 이 나쁜 년. 내가 너의...” 고개를 돌려 보니 임가연이 분노로 가득 찬 눈빛으로 나를 노려 보고 있었다. “아주 건방지군. 여긴 당신들의 박언 그룹이 아니야! 어디서 함부로 큰소리를 내!” 금방 자리에서 떠난 조민성이 발걸음을 멈추고 화가 난 목소리로 임가연의 말허리를 잘랐다. 조민성의 화가 난 모습에 임가연도 하려던 말을 멈추고 그의 눈치를 살폈다. 나 역시도 그 남자의 이런 모습은 처음 보았다.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은 임가연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오늘 발생한 이 사건 때문에 많은 사람들 심기가 불편한 상황에서 임가연의 이런 당돌한 태도에 사람들은 더욱 더 분노에 차올랐다. “무슨 자신감으로 천우 그룹에서 이런 막말을 하는 거야? 당장 여기서 꺼져!” 조민성은 다시 화가 난 목소리로 덧붙였다. 이 남자의 이런 모습에 한소연마저도 겁에 질려 있었다. 임가연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그녀의 옷깃을 살짝 당기고는 소곤소곤 귓속말을 하자 한소연은 먼저 자리를 빠져나왔다. 도망치듯이 회의실을 빠져나온 한소연을 본 임가연은 그녀가 자신을 도와줄 생각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얼굴색이 더욱 흐려졌다. 그러고는 자신의 상사인 이미연의 눈치를 살펴보니 그녀의 낯빛도 좋지 않았다. 이미연은 임가연이 벌인 일에 대해 추호의 관심도 없었다. 그저 한시라도 빨리 이 분위기에서 벗어나고싶었다. 나는 사실 이미연의 심정이 아주 이해가 되었다. 박언 그룹의 사람이자 그들의 상사인 그녀는 이 두 사람의 당돌한 행동에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계획한 일이 틀어지자,
나는 반갑게 심은정을 맞이 했다.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그녀의 막내아들을 보니 시간이 빨리 지나는 것을 새삼 느꼈다. 이때 콩이는 그를 데리고 신나게 놀고 있는 모습을 보니 나름 누나 행세를 하는 것 같았다. 깔깔 거리는 두 아이를 보니 제법 재미나게 놀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 콩이는 많이 외로워하였다. “지아 씨, 골드 빌리지에 처음 왔는데 환경이 너무 좋아요. 우리 강훈 씨가 전에 그러더라고요. 그런데 이렇게 직접 와 보니 더 좋은 거 있죠?” 심은정의 말을 들어보니 서강훈은 그녀가 우리 집으로 온 사실을 모르는 것 같았다. “은정 씨, 더 일찍이 왔었어야죠. 이젠 꼬맹이도 아장아장 걸을 수 있는데 자주 놀러 와요.” 나는 심은정에게 앉으라고 손짓하고는 그녀의 옆에 앉아 두 아이를 보고 있었다. 주방에서 바삐 돌아치던 우리 엄마는 내가 온 것을 보고 입을 열었다. “은정 씨, 오늘 저녁은 여기서 먹고 가요. 지아야, 빨리 앉아 먹으면서 얘기들 나눠.” “아니에요, 이모님. 전 그저 지아 씨랑 몇 마디만 하고 가려 했는데 이렇게 늦게 퇴근 할 줄은 몰랐어요.” 나는 다시 그녀를 끌어 앉혔다. “불편해하지 마요. 어쩌다 왔는데 저녁 식사하고 가요. 우리 엄마랑 아빠는 집이 북적북적 한 걸 좋아하셔요.” 심은정은 불안한 표정을 하고 앉으며 말했다. “지아 씨, 사실... 사실 제가 여기에 온 것은요...” 그는 머뭇거리며 말을 잇지 못하고 나를 쳐다보았다. “할 말 있으면 해요. 부끄러워하지 말고.” 나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심은정에게 말했다. 하지만 난 이미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단번에 알 수가 있었다. 무조건 서강훈과 관계된 일이었다. “지아 씨, 그게... 우리 강훈 씨를 지아 씨 회사로 가게 하면 안 될까요? 뭐든지 시켜만 주세요, 그저 말단 사원이어도 괜찮아요.” 그녀는 나의 손을 꼭 잡고 간절하게 애원했다. “사실 오랫동안 생각했어요. 우리 강훈 씨가 어떻게 지아 씨한테 입을 열지 망설이고 있더라고요... 그
내 추궁에 심은정이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에라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털어놓았다.“신연아가 자료를 담당하고 있었잖아요, 항상 몰래 손을 쓰고는 강훈 씨한테 처리를 맡겼어요.심은정의 말에 나는 기회가 찾아왔음을 단번에 알아챘다. 내가 필요했던 건 바로 신연아 일당의 덜미를 잡을 수 있는 확실한 증거였다.심은정의 말에 서강훈이 왜 이번에 이토록 고민하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이번 프로젝트는 이전의 시시하고 사소한 규모가 아니라 꽤 큰 프로젝트였기 때문이다.배유정이 서울에서 따낸 얼마 안 되는 메인 프로젝트가 전희의 손에 넘어가고 그것을 사적인 이유로 신호연에게 넘기며 자신의 동생을 위해 새 뒷배를 마련해달라고 한 것이니 이번 프로젝트에 일이라고 난다면 이 세 집안 모두 모른 척 할 수는 없을 것이다.나는 갑자기 신경이 곤두섰다. 하늘에서 웬 떡이 떨어질 줄은 생각도 못 했다. 내 계획도 이 세 집안을 목적으로 세우고 있었던 것인데 하늘이 도왔는지 내가 설계한 계획보다 더 심한, 자칫하면 그들의 모든 걸 빼앗고 길거리에 내쫓을만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심은정은 나의 멍한 표정을 보더니 자신이 말실수라도 했을까 긴장됐는지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봤다.“한 대표님, 저는... 대표님을 믿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찾아온 겁니다. 도저히 불안해서 못 살겠어요, 그래서...”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심은정의 손을 토닥이며 의미심장하게 말을 이었다.“은정 씨, 조급해하지 말아요!”시간을 보니 이미 7시가 됐던지라 서강훈도 이미 퇴근할 시간이었기에 심은정에게 말했다.“강훈 씨에게 전화 해줘요. 같이 우리 집에서 식사나 하자고.”“괜찮습니다.. 대표님, 제가 온 줄 모르고 있을 건데요! 알면 절 탓할 거예요... 전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말을 마치며 몸을 일으켜 아이를 데리러 가려 했다.나는 단숨에 그녀를 붙잡고 말했다.“은정 씨, 긴장하지 말아요. 강훈 씨도 탓하지 않을 거니 조급해하지 말고요. 여기까지 왔으니 강훈 씨랑 같이 대화 좀 나눠야죠! 얼른 전화해
잠시 후, 서강훈이 집으로 들어왔다. 아내와 아이가 함께 자리에 있었고 아이가 꺄르르 웃으며 즐겁게 노는 모습에 서강훈도 진심으로 기뻐하는 표정으로 예의를 차리며 말했다.“한 대표님! 그럼 실례하겠습니다.”우리 부모님께도 인사를 올리고는 콩이에게 줄 간식도 사 온 모양이었다.이번 저녁 식사는 모두가 행복하게 즐겼다. 심은정의 얼굴에는 마치 큰 짐을 내려놓은 듯한 안도의 표정이 역력했다. 식사 후, 그녀는 아이들과 놀아주겠다고 자처했고, 부모님은 내가 서강훈과 이야기할 것을 알고 밖으로 산책하러 갔다.나와 서강훈은 신예의 현재 상황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했고, 최근 전씨 집안이 매우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사업을 빼앗고, 여러 프로젝트를 차지했으며, 몇 명의 큰 주주들을 끌어들여, 상장을 준비하고 있었다.이 모든 일의 배후 조종자는 전희였다. 사실, 서강훈이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전지훈은 변변한 사람이 못됐고 항상 전희가 올리뛰고 내리뛰며 모든 것을 주도했다. 사실 이청원과 부부관계인 이상, 돈이 부족할 리 없음에도 그녀가 왜 이토록 날뛰고 다니는지는 의문이었다.또 다른 의문은, 전희가 이청원의 자원과 인맥을 가로채고 있는데 왜 이청원은 나서서 제재하지 않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내 기억 속 이청원은 여자가 자기 머리 꼭대기에 올라서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심지어 그의 자기 여자라 할지라도 말이다.그렇다면 이청원은 망설임 없이 전씨 집안을 자신의 기업에서 완전히 배제했을 것이다.전희가 지금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면, 언젠가 그녀와 이청원 사이에 치러야 할 분쟁이 도사려있음은 분명했다.나는 이청원에게 먼저 의견을 표명해야 할 것 같았다. 그가 나에게 전희에 대해 언급하며 체면을 지켜줄 필요가 없다고 암시했던 것을 생각하면, 이것은 상당한 무언가를 암시하는 것 같았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좀 더 조사를 해봐야 할 것 같았다.재벌의 세계는 이런 식이다.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고 있는 것들이
나는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 마지못해 고개를 들어 서강민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서강민 씨, 먼저 들어가시죠. 언니가 깨서 서강민 씨를 보면 또 흥분할 것 같은데... 지금 같은 상황에 언니가 회복하는 게 제일 중요하잖아요.”그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는 않았지만, 나는 한마디 더 보탰다.“어떤 일들은 천천히 해야 해요. 언니한테 시간을 좀 주세요. 서로 생각을 정리해 봐요.”서강민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않고 깊은 잠에 빠진 도혜선을 한참이나 지켜보았다. 발길을 돌리기 전에도 아쉬움에 한 번 더 뒤돌아보며 나한테 말했다.“고생해 줘요.”나도 담담히 답했다.“제가 해야 할 일인걸요. 언니에게 시간을 좀 줘요. 언니도 회복할 시간이 필요할 수 있잖아요.”내가 말하는 회복이 뭔지는 서강민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건 도혜선이 마음에 입은 상처였다. 오늘 도혜선의 행동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그녀의 상처는 아물 수 없을 것이다. 언급만 해도 피가 흘러내릴 만한 상처였다.잠시 후, 서강민은 한발 물러섰지만, 눈길은 여전히 도혜선에게 머물러 있었다. 평온해 보이는 모습 아래에서 어떠한 파도가 휘몰아치는지 나는 몰랐다.한참 전 도혜선이 했던 말들은 마디마디가 주옥이었다. 모두 그녀가 마음속으로만 담아두었던 것들이었고 또한 서강민의 약점이었다. 얼마나 아플지는 서강민 본인만 알고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쓰디쓴 독주도 그는 혼자 삼켜내야만 했다.도혜선의 눈가가 파르르 떨려와 깨어나려는 낌새가 보이고 나서야 서강민은 조용히 병실을 나갔다.나는 마음이 아파와 한숨을 내쉬며 손을 뻗어 도혜선의 손을 맞잡았다.인제야 하루 종일 배현우에게서 연락이 없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그쪽에는 어떤 상황인지, 김우연에게서는 소식이 없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도혜선을 보니 아직 깨어나지 않은 것 같아 살며시 그녀의 손을 놓고 일어서려 했을때, 그녀는 다시 나를 잡으며 미약한 목소리로 말했다.“가지 마...”나는 너무 놀라 얼른 그녀를 향해 몸을 돌렸다.
‘서강민은 본인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기나 하는 걸까?’“당시의 사고는 내가 저지른 거야. 그녀도 나 때문에 다쳐서 지금처럼 된 거고… 나는 좋은 남편이 아니야. 아내가 식물인간이 되었는데 나는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으니 말이야...”서강민은 여기까지 말하며 후회하는 기색을 내비쳤다.“그녀를 마주할 때마다 너무 죄책감이 들고 고민스러워. 나 또한 발버둥 쳐봤지.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나의 일탈을 받아들일 수 있어 해. 그녀한테 정말 미안한 일이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내가 널 사랑하고 있다는 거야...”“강민 씨!”도혜선은 꾸짖는 듯한 말투로 그의 말을 잘랐다.“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당신 아내가 듣고 있을 거예요. 저를 끌어들여서 같이 속죄할 생각하지 마세요. 저는 당신의 구세주가 아니에요. 저는 그냥 사람답게 살고 싶은 평범한 여자라고요. 저 좀 그냥 내버려둘 순 없어요?”도혜선은 말하면 할수록 화가 치밀어 올라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하얗게 질린 얼굴이 일그러지며 그녀는 한 손으로 본능적으로 가슴을 움켜쥐었다. 나는 깜짝 놀라 그녀 앞으로 갔다.“혜선 언니, 움직이지 마! 위험해...”늑골 골절과 뇌진탕이 있는 환자다 보니 이러한 행동은 그녀에게 너무나도 위험했다.도혜선은 손을 들어 그녀를 안으려고 하는 한지아를 제지했다.“제가 오늘 한 말이 아직도 이해가 안 되나요? 서강민 씨, 저의 인생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당신한테 묶여 당신의 부속품이 되었었는데 저도 자존심이 있어요. 더 이상 당신처럼 지난날의 죄책감을 짊어지며 답답하게 살아가지 않을 거예요.”도혜선은 여전히 분노에 차 외치고 있었다.“매일 제 앞으로 와 지난날의 행동에 대해 속죄하라고 일깨워 주실 필요 없어요! 당신을 보면 저는 지난날 모든 서울 사람의 웃음거리가 되었던 치욕적인 과거가 떠올라요. 당신은 마음 가는 대로 해요. 당신은 아내와 했던 약속을 지켜야 해요.”말을 마친 도혜선은 숨이 차올랐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보였다.
도혜선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계속하여 들려왔다.“당신은 아무런 부담 가질 필요 없어요. 저 같은 여자 마음속에 담아두지 않아도 돼요.”그녀는 자기비하적인 말을 내뱉었다.”선아...”“설사 강민 씨가 와이프와의 약속을 안 지킨다 해도 당신의 신분과 지위로 당신에게 더 어울릴만한 사람 충분히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저는 당신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에요. 하물며 당신네 부부 눈에는 저는 그냥 염치없고 미천한 사람일 뿐이죠. 저 같은 사람은 본처가 되기에 적합하지 않아요. 사모님이라는 호칭도 어울리지 않죠.”“나는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 오해하지 마.”서강민은 조급함에 한 발 앞으로 나서며 해명하려 했다.하지만 도혜선은 손을 들어 그를 막아섰다.“강민 씨... 해명하지 않아도 돼요. 당신의 행동이 모든 걸 설명해 주고 있어요! 장담하건대 아직 당신들이 어떤 의도로 얘기하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바보가 된 건 아니에요. 그녀는 정말 대단하네요. 죽을 때까지도 제가 이길 수 없는 사람이었어요. 그녀는 아무리 병상에 누워있어도 고상한 사람이고 저는 그냥 미천한 사람일 뿐이니 말이에요.”도혜선은 말을 내뱉으며 입가에 처량한 미소를 비췄다. 누가 봐도 가슴 아픈 미소였다.“이전의 저는 확실히 허례허식에 차 있는 사람이었지만 저도 성장했어요. 정신 차렸어요. 당신 앞에 있는 저의 진정한 가치가 어떤 것인지 깨달았어요. 저는 하나의 도구, 들러리뿐이었지만 원망하지 않았어요.”그녀는 여기까지 말하고 한숨 돌렸다. 얼굴빛은 아까보다 더 창백해져 있었다.“하지만 이제 저는 자존감을 챙기며 살고 싶어요. 누군가에게 의탁하지 않고 쓰레기같은 취급을 받더라도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며 살고 싶어졌어요.”점점 더 차가워지는 도혜선을 바라보며 서강민은 답했다.“혜선아, 나는 널 한 번도 무시한 적 없어. 나는 그냥 내가 뭘 하든지 네가 다 이해해 줄 줄 알았어.”도혜선의 서강민의 말을 듣고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안색은 더 창백해져 있었다.“이해? 당신이 어떤 말을
방금 허투루 한 말이 어머니의 진실인가 싶다. 보아하니 어머니가 나를 속이는 일이 있는 것 같았다. 마음속의 의문점이 점점 많아졌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식사를 마치고 차씨 가문의 할머니께 말씀을 드린 후, 위층으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고 도혜선을 보러 가려고 준비했다.그리고 팔도 겸사겸사 검사하려고 했다. 차에 앉고 나서 배현우한테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았다. 이 이른 아침에 뭐 하러 갔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김우연 쪽에 무슨 소식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했다.'생각해 보니 이렇게 빠르진 않겠지? 몇 시간밖에 안 됐는데.'병실에 도착하자마자 도혜선이 노발대발하는 장면을 포착했다. 병실에는 도혜선과 서강민 두 사람만 보이고 이미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내가 들어서자 분위기가 좀 이상하고 심상치 않는 것을 느꼈다.침대 옆 머릿장에는 보온병이 놓여있다. 서강민은 오늘도 도혜선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주러 온 것 같다.서강민은 침대 앞에 떡 하니 서있었고 침대에 있던 도혜선은 차가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도혜선은 내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 같았다.상황을 정리하려고 다가가서 서강민에게 인사를 하고 도혜선에게 다가갔다. "오늘은 좀 어때?""별로야."도혜선은 차갑게 대답하더니 또 말을 건넸다. "지아야, 손님 좀 배웅해 줄래?"난감했다, 도혜선은 서강민을 내쫓으라고 하는 거였다. 난 당연히 그 뜻을 알고 있다. 조심스럽게 서강민을 쳐다보았다. "혜선아, 꼭 이래야 하니?"서강민은 씁쓸한 표정으로 도혜선을 바라보며 물었다."네! 서강민씨, 저는 이미 분명히 말했고 두 번 다시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도혜선은 내가 그 자리에 있다고 해서 서강민의 체면을 세워주지 않았다.참지 못하고 웃어 버렸다. "언니, 화 그만 내고 진정 좀 해. 초조해하는 거 알아, 점차 좋아질 거야. 강민씨랑 얘기 좀 하고 있어. 나는 팔 검사해야 돼서, 금방 돌아올 거야!"나는 핑계를 대고 떠나서 그들에게 자리를 비워주었다.
배현우는 나의 우울한 모습을 보고 말했다. "그리고 내가 없는 동안에 회사 일도, 한심로얄의 마지막 한방도 둘 다 포기할 수 없잖아요. 신예 쪽 일도 있고, 전희가 다시 살아날 기회를 얻지 않도록 조심해야 돼요. 지금 모든 게 중요한 시기이니까요.""지금 그 누구도 아버지보다 중요하지 않아요! 수십년간 도망치면서만 살았는데 죄책감도 가지고 있었을 거예요, 분명 아주 괴로워하고 있을 거예요. 그리고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무도 모르고 있는데, 내가... 내가 딸로서, 난..."배현우는 내 말을 듣고 나서 침대에 누워 나를 꼭 껴안고 말했다. "일단 내일 소식을 기다려 봅시다. 김우연 쪽에서 어떤 정보를 얻었는지 보고 결정합시다."배현우는 나의 어깨를 툭툭 쳤다. "제 말 듣고 일단 자세요, 내일 일어나서 먼저 할 일들을 처리하고 준비하고 있으세요, 만약에 상황이 좋으면 내일 같이 데리고 갈게요, 당신 마음 충분히 이해해요."배현우가 지금 나를 위로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다. 내가 기분 나빠하는 모습을 보지를 못한다.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좀 편해지는 것 같았다. 배현우의 따뜻한 품에 안기며 눈을 감고 내일 먼저 무엇을 처리해야 할지 생각했다.근데... 눈을 떠서 배현우를 쳐다보는데 배현우도 잠에 들지 않았다. "현우씨... 할머니가 보존하고 있는 CCTV를 보여주시겠어요?"'그 영상을 꼭 보고 싶었다, 알고 싶었다. 어머니가 어떻게...'"알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자세요, 나중에 보여 드릴게요. " 팔짱을 끼더니 분명히 나를 얼버무리고 있는 것이다. 배현우가 그 장면을 내게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밤이 깊었고,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배현우의품에 안겨 점점 잠이 들었다. 아침이 밝았다. 날씨는 여전히 흐렸다. 배현우는 이미 곁에 없었고, 손을 뻗어 그가 누워 있던 곳을 만졌다. 이미 차가운 걸 보니 배현우는 일찍 침대에서 일어났나 보다.'무슨 소식이라도 왔나?'이
"할머니가 이번 사건을 피할 수 있었던 건 당시 큰 병을 앓은 것에 대해 감사해야 했어요. 제 생각에는 반은 꽤병인것 같아요. 직접 사표를 쓰고 나서도 서둘러 호주를 떠나지 않았다는 게 참 슬기로운 선택이었어요.""네?"너무 놀라서 몸 둘바를 몰랐다.배현우는 인정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는 호주를 떠나지 않으셨어요. 그곳에 머물면서 배씨 저택의 인기척을 살피다가 배씨 저택의 요상한 소문들이 완전히 자취를 감춘 뒤에야 조용히 호주를 떠나셨어요."나도 모르게 할머니의 메커니즘에 감탄했다."저도 그때 상황을 잘 몰라서, 할머니도 몸이 허약했고 내 행방을 알아 볼 길이 없어 그 비밀을 계속 지켜왔었나봐요. 부하들이 할머니를 찾고 나서도 여전히 어리석은 척을 하고 있었지 뭐에요."배현우는 그제야 미소를 지었다."할머니께서 저를 두눈으로 직접 보고서야 그걸 꺼냈어요."배현우의 말을 듣고 나니 할머니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러던 중 배현우가 나를 쳐다보더니 나의 지친 모습을 보고서야 손을 들어 대문을 열어 장벽들이 천천히 열리는 걸 볼 수 있었다.차는 왔던 길을 따라 경원으로 다시 돌아갔다. 벌써 자정이 되어 우리 둘은 차를 세우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층으로 올라가 방에 돌아왔다.'우리를 배신한 소인이 두 집안을 풍비박산 시켰다니. 오늘 밤 일어난 모든 일들은 듣고도 믿기지 않았다.'간단히 씻고 걱정 가득채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태어나서 얼굴도 한번 못 본 아버지가 어디 있는지, 밥은 먹고 다니는지를 걱정해 발 뻗고 자지 못했다. '한강인이랑 한걸은 이미 잡혔는데, 우리 아버지는? 그의 처지는 어떤지.''한씨 부자가 그저 아버지를 인질로 삼아 그들의 안전을 확보하려 했다면 왜 배현우는 그곳의 환경이 복잡하다고 했을가.''이유는 간단하다. 누군가 아버지를 미끼로 삼으려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를 보고 싶으려는 걸가?''배현우? 아니면 배유정?'생각할수록 더욱 걱정이 됬다.아버지의 이번생은 이미 충분히 힘들다.어머니랑 서로
나는 걱정스레 배현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배현우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계속 말했다.“후에 목격자 어르신을 찾고서 한강인을 자세히 조사하니 한강인은 이 모든 것이 일어난 뒤에야 천우 그룹을 떠난 거였어요. 지아 씨도 알잖아요. 그때 당시 천우 그룹은 아직 배유정 손에 있었어요.”“현우 씨의 말은 한강인은 배유정 과도 사이가 틀어졌단 말인가요?”나는 추측하며 물었다.“우리가 조사할 때 이상한 단서 하나가 나왔어요. 한동안 배유정도 한강인을 찾았고 심지어 한강인에 대한 추살령도 내렸어요! 참 이상해요. 배유정은 왜 한강인을 죽이라고 지령을 내린 걸까요?”“이유는 하나뿐이죠. 즉 한강인이 분명 무엇을 알아냈거나? 아니면 어떤 일에 참여하였거나?”나는 대답했다.배현우는 고개를 끄덕이었다.“진백이 죽임을 당했듯이 이 안에는 분명 남들한테 들키면 안 되는 비밀이 있는 거겠죠. 우리는 이 단서를 따라 계속 추적해 보니 한강인의 혐의가 점점 더 드러나더군요. 그리고 그의 아들 한결도 같이 도망쳤어요.”“그러고 보니 이 안에는 분명히 또 다른 요소가 있겠네요!”나는 사색에 잠겼다.“그래서 우리는 추측했죠. 한강인은 확실히 이 사건이랑 연관이 있고 둘이 도주하는 과정에 서로 연락하는 빈도를 보아서 부자 둘은 서로 다른 곳에 있는 것으로 판단했어요.”“그리고 한강인이 도망 다니는 그 시기에 그의 모친이랑 누나 모두 영문도 모른 채 실종되었어요. 지금 보니 그분들은 아마 이미 이 세상을 떠난 것 같네요. 이 때문에 한강인은 고두리에 놀란 새가 돼서 끊임없이 도망치며, 이 또한 한강인이 지금의 상태로 되게 한 원인인 것 같아요. 사실 한강인은 원래 지금의 모양이 아니거든요.”배현우의 말을 듣자 나는 저도 모르게 아까 보았던 한강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한강인은 극도의 공포 속에서 엄청 정신적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아니면 다른 기타 방식으로 정신을 잃지 않게 버티고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사람이 저렇게 말라죽을 정도일 리가 없다.“그리고 한 가
배현우는 나를 한눈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었다.“맞아요. 제 씨 어머니가 얼마나 총명한지 그 누구도 생각지 못했어요. 제 씨 어머니는 책 속에 카메라를 숨겨두고 만약 사고가 난다면 여기에 있는 이 물건을 숨겨두었다가 훗날 믿음직스러운 사람에게 주라고 할머니한테만 똑똑히 당부해 두셨어요!”나는 코가 찡긋거리더니 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다.“보아하니 제 씨 어머니는 분명 위험이 닥칠 거라는 것을 미리 예감했던 거네요!”배현우는 안색이 조금 어두워지더니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갑자기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제 씨 어머니는 만약 자신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할머니더러 애들을 데리고 허씨 가문으로 가라고 할머니한테 당부하셨어요.”나는 끝내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고 코를 훌쩍이었다.배현우는 자기 손을 꽉 움켜쥐며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참 생각지도 못한 게 모든 것이 제 씨 어머니의 예상대로 일어났고 감춰둔 카메라에 모든 것이 담겼어요! 근데 할머니는 제 씨 어머니의 뜻대로 우리 둘을 순리롭게 허씨 가문으로 데려가지 못했어요.”“급한 나머지 할머니는 고씨 가문에만 소식을 전했고 그마저도 나쁜 놈들보다 동작이 빠르지 못해 그들이 지아 씨를 데려간 후였어요. 그래서 저만 고씨 가문에서 데려갔어요.”나는 눈물을 닦아내면서 그때 당시의 내가 얼마나 힘없고 무력했을지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다. 갑작스럽게 어머니가 돌아가신 데다가 배현우와 억지로 갈라지게 되었다.배현우는 내 손을 꽉 잡으며 손에 힘을 주었다.나도 배현우 지금의 심정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날 배현우는 눈앞에서 억지로 끌려 나가는 나를 보기만 하고 반항할 수도 없는 그런 무능력함은 아마 배현우한테 평생 잊지 못할 아픔이 되었을 것이다.차 안은 갑자기 조용해졌고 자동차가 앞으로 가는 소리밖에 안 들렸다.한참 뒤에야, 배현우의 잠긴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이런 것들을 찾은 후에야 비행기 추락 사고가 떠올랐고 이로써 모든 것들이 비로소 한강인을 추측하게 했으며 그 이후에 우리는 한강인
이 소식은 그야말로 나를 입이 떡 벌어지게 했다. ‘나를 데려간 게 어떻게 그 사람이지?’“맞아요. 우리는 유일한 목격자를 찾았어요. 그 당시 그쪽 산에서 약재를 캐는 어르신이신데 그때는 중년인이셨어요. 하늘의 뜻인지, 우리가 수년을 찾아 헤맨 끝에야 비로소 이 참극의 전부를 직접 목격한 증인을 찾아냈어요.”“그 어르신 정말로 전체 과정을 모두 목격하셨나요?”나는 믿어지지가 않았다. 배현우 얘네가 얼마나 큰 공을 들여야 바다에서 바늘 건지는 것 같은 일을, 그것도 몇 년이 지났는데도 당시의 목격자를 찾아낸 걸까.“어르신의 말로는, 당시 자기는 산 위에서 내려오는 도중에 잠시 계단에서 쉬고 있었는데 그러다가 아래 도로에서 일어나는 광경을 목격했다고 해요. 알다시피 외국에서는 약재를 캐는 일은 엄청 드물어요.”배현우는 엄청 뿌듯한 말투로 말했다.“우리 형제들이 엄청나게 고생 많았어요. 십수 년을 하루같이 귀찮음을 마다하고 사건 지역을 탐방하러 다니면서 일말의 흔적도 소홀히 하지 않았어요.”나도 믿어지지 않아 입을 열었다.“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어요. 참 노고가 많았어요.”“어르신이 말씀하기를 당시의 장면은 엄청 아슬아슬했대요. 부딪힌 차는 거의 굴러떨어지기에 일보 직전이었는데 후에 폭발했대요. 어르신은 우리의 차가 폭발한 뒤 키 크고 마른 한 남자가 차에서 내리는 걸 똑똑히 봤다고 해요. 그리고 그 남자는 길 왼쪽의 언덕 아래로 달려가 무언가를 찾았대요.”배현우는 그때 당시의 장면을 묘사하였다. 나는 머릿속으로 그때 당시의 상황을 필사적으로 상상해 내려고 하니 머리가 또 아파 났지만, 배현우가 말을 멈출까 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당시에 일어난 이 모든 것, 전부 나한테는 엄청난 매력이었다. 나는 지금 내가 찾아낸 산산조각 난 퍼즐들을 하루빨리 제 위치에 맞춰서 하나의 완전한 그림을 만들어 내고 싶었으며 그때 당시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을 되찾고 싶었다.그 뒤로 난 어떻게 Z 국의 만덕동에서 떠돌게 되었고 또 어떻게 지금의 한지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