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현우의 눈에는 알 수 없는 빛이 언뜻 지나가더니 차가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지아 씨, 당신이 그렇게 멍청이는 아니라고 믿어요.”그의 말에 나는 헉 하고 숨을 참았다. 또 나를 멍청하다고 말하는 배현우였다.나는 이에 맞서 빈정거렸다.“당신 눈에 나는 멍청이로 보이겠죠, 그래서 내 감정은 무시한 채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 아니에요? 배현우 씨 너무 자기중심적이에요, 눈에 다른 사람이 보이긴 하는 거예요? 다른 사람들도 생각이란 것이 있고, 존엄도, 권리도 있다는 건 알고 있어요?”나는 갑자기 감정이 격해졌다. “그래요, 나 멍청해요. 하도 멍청해서 당신이나 당신 사람들이나 다 절 바보라고 생각하는지 날 이리저리 갖고 놀기나 하고. 그래도 나는 잠도 못 자고 걱정이나 했죠. 멍청해서 내가 상처받더라도 당신 그 연극에 맞춰줄 생각부터 하고, 속고 속이는 그 판에 끼어서 남자 하나 때문에 목숨도 내놓으려고 한 거겠죠.”나는 갑자기 배현우의 눈빛이 긴장해지며 주먹을 살짝 감아쥐는 게 보였다.“현우 씨 당신이 그러고도 남자예요? 내 두 눈으로 직접 당신의 차가운 얼굴을 보고서도 당신이 고개 돌려주기만을 바보처럼 기다리고 있잖아요. 당신 말이 맞아요, 사실 나 그냥 멍청이예요, 오늘에서야 제대로 증명한 거지만요...”눈에서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자 눈을 내리깔았다. 잠시 후 옅게 한숨을 내쉬고는 담담하게 뱉었다. “됐어요.”무슨 뜻으로 내뱉은 세글자인지 나 자신도 잘 몰랐다.이 한마디를 내뱉자마자 김빠진 축구공처럼 온몸에 힘이 쭉 빠져버렸다. 드디어 내 입으로 이 말을 할 날이 오다니, 간신히 내 자존심은 지켰지만, 영혼을 빼앗긴 느낌이었다.“앞으로 협력이 남아 있으니, 그저 협력 관계로 지내요.” 나는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하려 했지만 가득한 실망감을 숨기지는 못했다.“다음은요?” 그는 매서운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여유로운 태도였다.“다음은 없어요. 그렇게 고고하게 내가 모든 이유를 늘어놓길 기다리고 있지 말아요. 아무리 많이 말한들,
그리고 그들을 다시 한번 주의 깊게 쳐다보곤 씩 의미심장하게 웃어 주었다. 마치 걸려들었다는 듯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천천히 몸을 돌려 쿨하게 자리를 떠났다. 그렇게 돌아선 순간, 얼굴의 웃음기는 사라졌다. 마음을 조이는듯한 고통은 이루어 다 말할 수 없이 아팠다.나에 대한 원망이 밀려왔다. 이렇게까지 강압적으로 나갔어야 했는지, 내 손으로 모든 퇴로를 막아버렸다.‘퇴로’라는 말을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나밖에 모른다. 이 웃음이 나를 얼마나 지치게 하는지, 얼마나 내 영혼을 갉아먹고 있는지, 얼마나 나를 아프게 하고 있는지 말이다.숨을 크게 한번 내쉬고 나는 감정을 다잡고 집으로 들어갔다. 누구에게도 나의 초라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한숨 돌리고 있을 때 마침 제니가 다가왔다. 나한테 노트북을 건네주고는 어찌할 바가 없다는 듯 머리를 도리도리 저었다.나는 몇 장 넘겨 보곤 제니한테 물어보았다.“곧바로 토론 회의를 열고 싶은데 이 자료들 빨리 정리해서 나한테 줄 수 있겠어요?”“네!” 그녀가 단호하게 대답했다.“얼마나 걸려요?”나는 제니를 유심히 바라보며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는 이 일에 시간 낭비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들과 얽혀있으면 내 기분만 더러울 뿐이었고 나한텐 아직 해야 할 중요한 일들이 많았다.“아무 때나 처리할 수 있습니다. 차 안, 회의실 노트북을 쓸 수 있는 곳이라면 많은 시간은 필요 없습니다.” 그녀의 자신감 넘치는 얼굴을 보니 내 속이 다 시원해졌다.누가 남자가 일할 때 제일 섹시하대, 여자도 마찬가지로 멋있기만 하구만.나는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요, 그럼 소연 씨한테 한번 물어봐요, 또 다른 요구사항은 없는지! 소연 씨보고 확실히 결정을 내리고 답하라고 하세요, 오늘 내로 그녀의 일을 해결해야겠어요!”센스있는 제니는 내 말에 바로 입꼬리를 씩 올렸다.“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나는 제니에 대한 인상이 아주 좋았다. 처음 나의 사무실에 들어오는 순간, 왠지 모르게 친근감
그녀는 마치 독사처럼 나를 쏘아보며 오만하게 물어왔다.“그게 무슨 뜻이죠?”임가연은 이 상황이 불쾌하기 그지없었다. 그녀가 원하는 건 이미연의 자리라는걸 모든 사람이 알고 있었으니까.“말 그대로예요! 매니저가 아주 잘-맞-아 !”나는 한 글자씩 또박또박 말해주었다.미연이는 임가연의 울그락 불그락한 얼굴빛을 보곤 웃으면서 나한테 말했다.“한 대표님 모르시는구나, 우리 가연 씨 꿈이 얼마나 큰데요, 실력도 좋아요.”나는 경멸하듯 코웃음을 치고는 말했다.“꿈이야 누구나 꿀 수 있죠!”“뭐라고요?” 거리가 멀어선지 잘 듣지 못한 그녀는 나한테 다시 물어왔다.“등신!” 나는 그녀를 향해 눈을 깜박이며 장난스럽게 씩 웃어 보였다.그러고는 한소연을 돌아보며 소리 높여 말했다.“한소연 씨, 또 보충하실 거 있으세요? 아니면 계속할까요?”그녀는 몸을 돌려 탐욕스러운 눈으로 여기저기 살폈다. 모델하우스를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안달이었다.배현우의 팔짱을 낀 채로 여운이 가시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이렇게 하죠! 많이 말해봤자 저의 요구에 도달도 못할 텐데요 뭐.”“그건 안되죠! 요구치에 도달 못한다면 우리 쪽 책임이죠, 소연 씨 시간을 너무 잡아먹으면 안 되잖아요. 아까도 매니저 씨께서 불쾌해하시면서 소연 씨 스케줄이 꽉 찼는데 저희가 시간 낭비 하고 계신다고 하셨거든요.”“그러니 오늘 오신 김에 모두 해결하고 가시죠! 또 번거롭게 걸음 하시지 마시고요! 그래야 다들 시간 절약하고 힘도 덜 들죠!”나의 말에 많은 분들이 공감했다. 프로젝트 책임자인 이 부장님과 미연이도 찬사의 눈빛을 보냈다. 그러든 말든 배현우는 여전히 내 말을 못들은 것처럼 손을 주머니에 넣고 곳곳을 돌아보았다.그 옆엔 제니가 머리를 파묻고 노트북을 바라보고 있었다. 작은 손이 쉴 새 없이 키보드를 두드려댔다.모두 속을 훤히 알고 있으니 한소연도 뭐라 말할 수가 없었다.나는 이 부장님에게 물어보았다.“한소연 씨께서 문제없다고 하시니 천우 그룹으로 돌아가시죠! 회의실에서
제니는 모델 하우스의 원래 도면을 모두에게 보여줬다. 사진 속 모델 하우스는 화려하고 정교하며 상당히 아름다웠다. 곳곳에 유럽풍의 우아하고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풍겼으며 반짝이고 찬란한 시각적 효과를 보여주고 있었다.자리에 있는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모델 하우스의 결과물에 다들 만족하고 있는 모양이었다.제니는 두 쌍의 이미지를 하나하나 보여주며 이미지를 넘길 때마다 진지한 태도로 한소연에게 물었다.“소연 씨는 이렇게 하고 싶은 거죠?”그녀의 말투는 상당히 부드럽고 온화했으며 감정의 요동이 느껴지지 않았다. 천천히 한소연의 생각을 첨부하며 누구보다 진지한 태도로 설명을 이어 나갔다.한소연은 이런 제니의 나긋나긋한 리드 아래 완전히 몰입한 채 사람들 앞에서 자기 생각을 표현했다.그녀는 상당히 우아한 태도로 끊임없이 자기 생각을 전했고 그럴 때마다 제니가 부가 설명을 해주며 이런 뜻이 맞는지 한소연의 의견을 물었다.한소연은 우아하게 손을 내리치며 지적하더니 감탄을 금치 못했다.“네! 맞아요, 이게 맞죠, 효과가 바로 나타나잖아요. 맞아요, 너무 아름답네요, 바로 이거예요.”모두 집중한 채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전체적인 효과를 기대하고 있었고 한소연 같은 대스타의 안목을 확인하고 싶었다.그녀의 흥분한 모습은 모든 이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으니 역시 톱스타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었다. 임가연 또한 옆에서 한마디씩 거들며 한소연을 도와 맞장구를 쳤다.나는 스크린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과 호기심, 짜릿함이 느껴졌다.마지막 짜릿함이라는 단어는 제니에게 보내는 것이었다.그녀는 한껏 집중한 채 노트북으로 각도를 수정하고, 색깔과 장식을 바꿔나갔다.나는 담담한 눈빛으로 회의실에 자리한 사람들이 스크린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들을 훑었다. 특히 천우 그룹의 디자이너들은 원래 있던 흥분이 서서히 복잡한 표정으로 바뀌고 있었다.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가볍게 입꼬리를 올려 승리를 만끽하고 있을 때 나를 빤히 응시하는 차갑고도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은 살기에 가득 찬 배현우의 시선을 피하느라고 바빴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렇게 조용히 있기에는 눈치가 보였기 때문에 임가연을 불러왔다. “가연 씨가 소연 씨 매니저니까 한마디 해줘요. 다들 기다리잖아요.” 이 말을 들은 임가연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드러났다. “제가 보기엔 아주 괜찮은 것 같습니다만...” “... 쓰레기! 저건 쓰레기일 뿐이에요!” 펜을 던지던 이 디자이너는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고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얼굴을 하고 물었다. “이런 인테리어는 쓰레기일 뿐이야. 아무것도 모르면서 가르치려 들지 마. 현우 씨, 이런 물건을 내놓다니, 천우 그룹을 망치려는 생각인가 봐? 이 자리에 있는 모두, 이런 거지 같은 인테리어 한 집을 살 사람 있어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배현우의 이름을 콕 집어서 비난한 이 카리스마 넘치는 디자이너의 행동에 모든 사람들은 배현우의 눈치를 보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그가 망신을 당했다는 사실에 모두가 비웃고 있었다. 사진작가도 배현우의 표정을 살펴 보고는 입을 열었다. “죄송하지만 이런 작품은 저도 촬영 할 수가 없습니다. 저도 저의 작품에 책임을 져야 하잖아요.” 그 외의 사람들은 이런 냉랭한 분위기 속에서 그저 눈치만 보고 있을 뿐이지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괜찮은 인테리어라고? 웃기고 있네. 너 어느 소속이야? 천우 그룹이 무슨 애들 놀이터인 줄 알아? 너희들 같은 애송이들이 함부로 해도 될 것 같아?” “전 세계가 주목하는 천우 그룹인데 이런 거지 같은 인테리어로 홍보 영상을 만든다는 건 웃음거리밖에 되지 않아.” 카리스마가 넘치는 디자이너의 발언에 한소연의 얼굴은 창백해졌고 인중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이... 이것이 제가 주문한 물건인가요? 다름이 아니라...” 제니가 빠르게 한소연의 말을 가로채며 말했다. “소연씨 가 주문한 거 맞아요. 방금 이분들이 하시는 말씀도 모두 들으셨잖아요.” “아니...” 많은 사람 앞에서 만신
그의 대답은 모두의 예상 밖이었다. 그럴 필요가 없다는 배현우의 대답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신흥이랑 계약을 맺을 생각이 없다는 것인지 아니면 나의 의견을 받아 들일 수 없다는 뜻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한소연의 그늘진 얼굴이ㅇ 갑자기 밝아졌다. 그녀는 배현우가 나의 의견을 거절했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배현우는 이미연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이 대표님, 박언 그룹으로 가서 보고 하세요. 이번 일로 당신들 때문에 천우 그룹의 업무 진행 속도가 7시간이나 늦어졌다고, 또 경고 하는데, 이 매니저는 다시 천우 그룹에 나타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그의 말은 모든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유독 한가연은 날이 서 있는 그 남자의 말에 겁에 질린 임가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 알고 있다는 것처럼. 몰래 배현우를 훔쳐보니 그는 제니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부로 제니 씨를 천우 그룹의 인테리어 소품 전문 디자이너로 스카우트 할 계획입니다.” 나는 당황했다. 배현우가 필요 없다고 말한 이유가 혹시... “오늘부로 진호 씨를 천우 그룹 프로젝트의 임시 부장으로 임명하겠습니다. 지금부터 디자인 초안 심사는 진호 씨가 책임질 것이며 급여와 대우는 부장급으로 지급할 것입니다.” “프로젝트 부서의 이진혁 주임은 오늘부로 주임 자리에서 물러나 집에 가서 반성 하기를 바랍니다. 주임으로서의 본분을 못한 당신한테 제가 어떻게 프로젝트 부서를 믿고 맡길 수 있겠어요?” 창피를 당한 이진혁은 설명할 겨를도 없이 자신의 실수를 묵인했다. 그가 일을 처리 함에 있어서 우유부단 했던 원인은 바로 한소연 때문이었다. 그는 한소연이 배현우의 여자였기 때문에 그녀의 결정에 따랐고 원칙마저도 어기게 되었다. 배현우의 이런 결정에 모든 임원진들은 마음을 졸이며 그를 바라보았고 배현우는 어두운 표정으로 직원들을 훑어보았다. 그러고는 아까 그 사진작가를 향해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천우 그룹의 담당 사진작가로 채용 하겠습니다. 보수는 섭섭지 않게 드릴
배현우가 떠난 후,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그의 과감한 선택에 술렁이기 시작했다. 조민성도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다들 돌아가지.” 그의 말 한마디에 모든 사람은 하나둘씩 자리를 뜨기 시작했고 나도 이해월에게 말했다. “해월 씨, 우리도 이만 돌아가요.” 갑자기 회의실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한지아, 너 때문이야... 내가 뭘 어떻게 했다고 나한테 이러는 거야? 한자아 두고 봐, 이 나쁜 년. 내가 너의...” 고개를 돌려 보니 임가연이 분노로 가득 찬 눈빛으로 나를 노려 보고 있었다. “아주 건방지군. 여긴 당신들의 박언 그룹이 아니야! 어디서 함부로 큰소리를 내!” 금방 자리에서 떠난 조민성이 발걸음을 멈추고 화가 난 목소리로 임가연의 말허리를 잘랐다. 조민성의 화가 난 모습에 임가연도 하려던 말을 멈추고 그의 눈치를 살폈다. 나 역시도 그 남자의 이런 모습은 처음 보았다.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은 임가연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오늘 발생한 이 사건 때문에 많은 사람들 심기가 불편한 상황에서 임가연의 이런 당돌한 태도에 사람들은 더욱 더 분노에 차올랐다. “무슨 자신감으로 천우 그룹에서 이런 막말을 하는 거야? 당장 여기서 꺼져!” 조민성은 다시 화가 난 목소리로 덧붙였다. 이 남자의 이런 모습에 한소연마저도 겁에 질려 있었다. 임가연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그녀의 옷깃을 살짝 당기고는 소곤소곤 귓속말을 하자 한소연은 먼저 자리를 빠져나왔다. 도망치듯이 회의실을 빠져나온 한소연을 본 임가연은 그녀가 자신을 도와줄 생각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얼굴색이 더욱 흐려졌다. 그러고는 자신의 상사인 이미연의 눈치를 살펴보니 그녀의 낯빛도 좋지 않았다. 이미연은 임가연이 벌인 일에 대해 추호의 관심도 없었다. 그저 한시라도 빨리 이 분위기에서 벗어나고싶었다. 나는 사실 이미연의 심정이 아주 이해가 되었다. 박언 그룹의 사람이자 그들의 상사인 그녀는 이 두 사람의 당돌한 행동에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계획한 일이 틀어지자,
나는 반갑게 심은정을 맞이 했다.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그녀의 막내아들을 보니 시간이 빨리 지나는 것을 새삼 느꼈다. 이때 콩이는 그를 데리고 신나게 놀고 있는 모습을 보니 나름 누나 행세를 하는 것 같았다. 깔깔 거리는 두 아이를 보니 제법 재미나게 놀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 콩이는 많이 외로워하였다. “지아 씨, 골드 빌리지에 처음 왔는데 환경이 너무 좋아요. 우리 강훈 씨가 전에 그러더라고요. 그런데 이렇게 직접 와 보니 더 좋은 거 있죠?” 심은정의 말을 들어보니 서강훈은 그녀가 우리 집으로 온 사실을 모르는 것 같았다. “은정 씨, 더 일찍이 왔었어야죠. 이젠 꼬맹이도 아장아장 걸을 수 있는데 자주 놀러 와요.” 나는 심은정에게 앉으라고 손짓하고는 그녀의 옆에 앉아 두 아이를 보고 있었다. 주방에서 바삐 돌아치던 우리 엄마는 내가 온 것을 보고 입을 열었다. “은정 씨, 오늘 저녁은 여기서 먹고 가요. 지아야, 빨리 앉아 먹으면서 얘기들 나눠.” “아니에요, 이모님. 전 그저 지아 씨랑 몇 마디만 하고 가려 했는데 이렇게 늦게 퇴근 할 줄은 몰랐어요.” 나는 다시 그녀를 끌어 앉혔다. “불편해하지 마요. 어쩌다 왔는데 저녁 식사하고 가요. 우리 엄마랑 아빠는 집이 북적북적 한 걸 좋아하셔요.” 심은정은 불안한 표정을 하고 앉으며 말했다. “지아 씨, 사실... 사실 제가 여기에 온 것은요...” 그는 머뭇거리며 말을 잇지 못하고 나를 쳐다보았다. “할 말 있으면 해요. 부끄러워하지 말고.” 나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심은정에게 말했다. 하지만 난 이미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단번에 알 수가 있었다. 무조건 서강훈과 관계된 일이었다. “지아 씨, 그게... 우리 강훈 씨를 지아 씨 회사로 가게 하면 안 될까요? 뭐든지 시켜만 주세요, 그저 말단 사원이어도 괜찮아요.” 그녀는 나의 손을 꼭 잡고 간절하게 애원했다. “사실 오랫동안 생각했어요. 우리 강훈 씨가 어떻게 지아 씨한테 입을 열지 망설이고 있더라고요...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