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마터면 큰 소리로 웃을 뻔했다.인제야 이 여인이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분명히 신연아의 친모일 것이다.이 여인 역시 만만치 않은 여인임을 짐작게 했다. 입으로는 ‘얼마나 힘들게 찾았는데’라고 하면서도 위화감이 드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찾긴 뭘 찾았단 말인가?당시 신연아를 낳고 신 씨 가문에 버릴 때는 전혀 마음이 아프지 않았을 텐데 버린 지 수십 년 동안 한번도 찾지 않더니 이제 와서 힘들게 찾아다녔다는 게 무슨 헛소리란 말인가.신 씨 가문이 그 옛집에서 나온 지 채 몇 년이 되지도 않았고 동네 떠들썩하게 이사를 갔는데 모를 수가 있을까? 슬쩍 엿듣기만 해도 알 수 있는 일을 힘들게 찾아다녔다니 거짓말도 유분수였다.이 여인의 옷차림을 보니 밖에서 제대로 살아온 것 같지 못한데 이제서야 돈줄을 찾은듯한 모양이었다. 그녀의 등장은 신 씨 가문, 특히 김향옥에게는 골칫덩어리 그 자체일 것이다.나는 저도 모르게 화가 나 치를 떨고 있는 김향옥을 바라봤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이 노인네에게 동정심이 들었다.솔직히 말하자면 김향옥은 몇 년간 콩이한테만은 최선을 다해 진심이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도혜선에게 박수를 보냈다. 어디서 이런 늙은 여편네를 찾아내오는 것인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이것이 이들 가문에 내린 진정한 벌이었다. 눈앞의 신 씨 가문 사람들을 고통에 빠트릴 벌, 그것도 쉽게 끝낼 수 없는 천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조금 전까지 사건의 초점이었던 나는 어느새 구경꾼이 되어있었다. 나는 흥미진진하게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구경했다. 나와 관련된 일이 아니니 마음 놓고 구경하는 기분이 역시 즐거웠다.더군다나 쉽게 지나칠 구경이 아니었다. 어쩐지 김향옥이 그토록 치를 떨더라니, 그녀의 남편과 가정을 빼앗아갈 원수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다.신연아는 더더욱 당황한 얼굴이었다.갑자기 이 늙은 노인네한테 양팔이 잡혀 아무리 밖으로 끌어내려 몸부림쳐도 손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신연아는 안 그래도 사람에게 등급을 나누는 버릇이 있었는데
도혜선은 말을 끝내자마자 손을 뻗어 나를 잡아끌었다. 나는 해월에게 눈짓하고는 우리 셋은 몸을 돌려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브라운호텔을 나오자마자 우리는 샤부샤부 가게로 달려갔다. 분위기는 거의 날아갈 듯했다.해월은 기다렸다는 듯이 도혜선에게 어디서 신연아의 숨겨진 엄마를 찾아왔는지 물었다. 도혜선은 의기양양해서 그 여인을 찾은 전 과정을 이야기해줬다.알고 보니 그녀는 이미 전부터 친구에게 신연아 친모를 찾아달라 부탁했고 이렇게 쓰일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몇 개월이나 수소문한 끝에 한 달 전 지방에서 이 여인을 찾아냈다고 한다. 알고 보니 이 여인은 몇 번이나 이혼과 재혼을 반복하며 늙은 남자들을 후리고 다녔지만, 여태껏 사람답게 살지 못했다고 한다.도혜선은 신호연의 초대장을 받자마자 사람을 시켜 강숙자를 데려오게 했고 어제 방금 서울에 도착했던 것이다.도혜선은 좋은 술과 안주들로 하룻밤을 설득했다고 한다. 그래서 강숙자는 아침부터 자신의 ‘출세’한 딸을 보기 위해 한시바삐 준비했다는 것이다.도혜선의 말을 듣고 난 뒤 나와 해월은 박장대소했다. 이제 시끌벅적해질 것이다, 아마 앞으로 신 씨 가문은 조용할 날이 없겠지.도혜선은 신 씨 가문에 시한폭탄 하나를 숨겨둔 것과 같았다. 언제든 폭발할 수 있기도 멈출 수 있기도 한 폭탄.나는 도혜선에 감탄하면서도 여지를 남기며 말했다. “언니 정말 대단해, 언니야말로 받은 대로 갚아주는 사람이야. 난 언니한테 잘못한 게 없기 망정이지!”“그만해, 그게 무슨 양심 없는 소리야. 너 대신 복수한 건데. 안 그랬음 나 이 정도로 막 나가는 사람 아니거든!”그녀는 나를 흘겨보며 한소리 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이고... 사실 너한테 항상 미안했어. 그래서 신호연한테 제대로 복수해야겠다고 생각했지. 너 대신 화풀이라도 해주게.”“언니 그렇게 말하지 마. 사실... 나도 언니한테 미안한 일이 많아, 언니가 신연아한테...”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도혜선이 말을 가로채며 말했다.
내 말이 끝나자 도혜선은 테이블을 쿵 치더니 표정이 단번에 밝아졌다. “지아야, 내가 말했지! 역시 네가 제일 똑똑하다니까. 그럼 이대로 하자, 조용히 힘을 모으고 있다가 한꺼번에 놀라게 해주는 거야! 해보자니까, 무조건 성공할 거야!”해월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잠시 후 큰 충격이라도 받은 듯 갑자기 입을 열었다. “대표님, 저... 저 갑자기 뭐가 통한 것 같아요! 앞으로 어떻게 도와드릴지 알 것 같아요!”우리 셋은 박장대소하며 웃었다.“전부터 머릿속에 아이디어만 있었는데 예전엔 조건이 부족했던 것뿐이야. 시기상조여서 신호연과 신연아한테만 그럭저럭 복수할 정도였지.” 나는 진지하게 도혜선에게 이야기했다. “그럼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어. 굳이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이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았는데. 그들이 먼저 날 도발했으니, 내가 물러터졌다고 생각하나 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피할 수도 없었다니까!”“그놈들은 용서할 가치도 없어. 넌 진짜 너무 마음이 약해서 탈이야. 미연이도 얘기했었잖아. 지아야 내가 말하는데, 마음이 약하면 언젠가는 당하게 돼 있어!” 도혜선이 재료들을 샤부샤부 냄비에 쓸어넣으며 말을 이었다. “이건 피할 일이 아니야. 네가 조용히 지내고 싶으면 그들을 무너뜨릴 수밖에 없어. 그것도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게! 그래야 편히 지낼 수 있을 거야.”“맞아요, 저들한테 똑똑히 보여주죠. 대표님을 생각만 해도 가슴이 철렁하게!” 해월이 맞장구를 쳤다.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두 사람은 이미 나보다 더 독하게 마음을 먹은 듯했다.“지금 상황을 보면 저들은 몰래 한패가 되었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그들이 먼저 도발하고 나섰으니 그대로 갚아주지 않으면 나 자신한테 미안해져서 안되겠어.”도혜선이 바로 업무 분담에 나섰다. “그럼 전희는 내가 맡을게!”우리 셋이 드디어 함께 뭉쳤다. 대략적인 계획은 이미 세워졌다고 볼 수 있었다.가게에서 나오자 이미 어둑해졌다. 도혜선은 나를 집까지 데
“에이, 오늘 온 사람 중에 진짜 밥 먹으러 온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어요. 다들 신호연의 혼외자를 보러 온 거죠. 오늘 일은 신연아가 어떤 상황에서 아이를 낳았는지 알고 있던 전희가 짠 판이에요, 그가 전희에게 농락당한 거죠.”“전희가 한 짓이었군요?” 나는 나도 모르게 속으로 탄식했다, 이세림이 저지른 일인 줄 알았는데.“전지훈이 정식으로 신예의 주주가 되었어요. 100억을 투자했을 뿐만 아니라 큰 프로젝트도 가져왔다고 해요. 그래서 지금 신호연의 어깨가 하늘까지 치솟았어요.”“어쩐지 신호연이 나한테 지금 수중에 큰 프로젝트가 두 개 있다고 하더라니, 사실이었네.” 나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서강훈은 조금 마음에 내키지 않는 듯 푸념을 늘어놓았다. “하느님도 무심하시지요, 저런 소인배에게 이런 행운을 주시다니.”“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어요.”나는 비꼬았다. 사실 나는 마음속으로 만약 그의 프로젝트가 전부 전지훈이 갖고 온 거라면 너무 잘된 일이라고 혼자 기뻐했다. 나는 오늘 전희가 함정을 만들어준 덕분에 이 세 세력이 서로 파멸로 이끌도록 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히게 되어 그녀에게 정말 고마웠다.내가 계획과 목표가 생겼다고 속으로 기뻐하고 있을 때, 계획보다 변화가 더 빠르다고, 누군가 내 계획보다 한발 빨랐다.이튿날 내가 회사에 도착했을 때, 나는 연회에서 이청원이 나에게 소개해 준 화윤 그룹 여정훈, 여 대표님이 프로젝트와 관련된 일로 나를 찾는 전화를 받았다.요 며칠 자질구레한 일들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나는 이 일을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전화를 끊은 후 나는 얼른 장영식의 사무실에 그를 찾으러 갔는데 장영식이 자리에 없었다. 비서가 그가 프로젝트 관련해서 미팅하러 갔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이해월을 데리고 화윤 그룹으로 갔다. 화윤 그룹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동철의 전화를 받았다. 이동철이 요즘 너무 바빠 나도 그를 못 본 지 이틀이나 되었다. 그는 중요한 일로 나를 만나야 한다고 했는데 시간을 확인하니 이미 여 대표
이동철은 자신도 이런 추측을 한 듯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는 또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나에게 물었다. “그러면 절벽에서 떨어진 사람은 누구예요? 인증, 물증, 목격자가 있을 뿐만 아니라 배현우 씨도 두 눈으로 직접 봤잖아요.”“어떻게 이럴 수 있지?”나는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을 꽉 주며 혼잣말했다. 내 머릿속에 갑자기 배현우가 예전에 나에게 했던 말이 갑자기 생각났다. 그가 나에게 한 말을 나는 똑똑히 기억했다. “임윤아와는 아무 사이도 아니야. 나에게 그녀는 중요하지 않아.”이제 보니 배현우의 이 말에 다른 숨은 뜻이 있었던 것 같았다.보아하니 배현우가 아직 나에게 숨기는 일이 있는 것 같다. 그는 나에게 단서들이 이어지면 알려주겠다고 했고 또 지금 이동철이 한 말들을 보니 그들이 찾은 단서들이 전부 연결되지 않는다고 나는 확신했다. “그러면 이재승에 관한 일은 어떻게 됐어요? 단서 찾았어요?” 나는 한발 물러나며 이재승에 관한 일을 물어보았다. 그는 이세림의 아빠이기 때문에 나에게도 매우 매력적인 존재였다. 그리고 나는 이세림이 그녀의 부모님에게 다정하지 않은 것 같았다. 다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무감각한 것 같았다. 매번 그들을 언급할 때마다 퉁명스러웠는데 나는 조금 이해할 수 없었고 그녀가 아무리 매정하다고 해도 자기 부모님께까지 무관심하리라 믿지 않았다. 게다가 그녀와 지내는 동안, 배희진의 마음속에서의 그녀의 지위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걸 느꼈다.그때 배현우가 다쳤을 때 응급실 문 앞에서 그녀가 배희진을 두려워하고 심지어 무서워서 벌벌 떠는 것을 보아낼 수 있었다. 배희진의 매서운 눈빛 하나에도 그녀가 벌벌 떨었다. 나에게 배희진의 마음속에 그녀가 헤라보다도 중요하지 않다는 인상을 주었다. 이 문제에 대해 이동철이 얼른 입을 열었다.“찾았어요. 이재승, 이 사람은 조사하기 쉬웠고 웬만한 자료는 전부 인증이 가능해요. 저에게 자세한 보고서가 있는데 돌아와서 드릴게요. 금방 평택에서 돌아와서 드릴 기회가 없
솔직히 이 소식이 너무 충격적이었고 나는 심지어 침착함을 유지 할 수 없어 이청원을 추궁했다. “네. 저도 금방 들은 소식이에요. 소식 듣고 마음의 준비를 하시라고 얼른 연락했어요. 수중에 있는 천우 그룹에 관한 프로젝트는 될수록 빨리 조심하시고 최대한 그들과의 관계를 끊는 편이 좋아요. 그래야 제때 손실을 멈출 수 있어요.”이청원의 말투는 아주 진지하고 엄숙했다. 나는 얼른 차를 길가에 세우고 그의 말을 진지하게 들었다. “그들은 왜 조민성을 바꾸려는 거예요?”나는 이 소식을 믿을 수 없었다. 조민성은 아시아 본사의 오랜 부하 직원이고 평판도 아주 좋을 뿐만 아니라 당시 배현우 아버지를 따르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성심성의껏 배현우를 지지했고,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배현우가 그의 조수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번에 배희진이 조민성까지 건드리다니?나는 이 말을 꺼내면서 내 일 때문에 조민성까지 영향받은 게 아닌지 걱정되어 안절부절못했다. 어쨌든 배희진 이 여자는 속 좁은 소인배였고 조민성이 몰래 나를 도와준 것이 그녀의 지령을 어긴 것은 당연했다. 혹시 이 일이 배희진이 조민성을 처리한 도화선이 된 건 아닐까?나는 생각을 하면 할수록 갈피가 잡히지 않았고 호흡도 점점 가빠왔다. 보아하니 내 이기심때문에 배현우가 영향 받은 것이 확실했다. 당시 조민성도 이것을 걱정했었는데 그의 걱정이 진짜 사실이 될 줄이야. 내가 배현우를 보러 간 날, 이세림에게 들킨 후 조민성에게 한 전화에서 그의 말투가 좋지 않았는데 그때 나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한 대표님, 그동안 대표님과 연락하면서 괜찮은 사람이고, 좋은 협력 파트너일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대표님을 좋게 보고 있어서 저는 이번 흙탕물이 대표님에게 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마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을 거예요.전화에서 이청원의 말투는 아주 진지했다. 사실 나는 그와 나의 친분이 그렇게 두텁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진중한 건의를 해주니 너무 감동적이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모든 것이 갑작스럽게 들이닥쳐 머리가 어질어질했다.천우 그룹에서는 예정대로 대규모적인 인사변동이 일어났다. 천우 그룹은 조민성 대표를 사임했을 뿐만 아니라 임원들도 교체시켰다.변동의 틈을 타 배희진은 배현우의 상태를 대외적으로 폭로하고 의식이 없이 누워있는 사진도 덧붙였다.보아하니 현재 발생하고 있는 일들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했다.나는 소식을 들은 즉시 조 대표에게 전화했다. 조 대표의 태도는 여전히 평온하고 온화하였으며 이 사실에 대해서 조금도 회피하지 않았다.“조 대표님,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제멋대로 일을 처리하였네요.”나는 너무 괴로운 마음에 진심으로 조민성에게 사과하였다. “지아 씨 일과 연관이 있는 건 맞지만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었던 거예요. 너무 자책하지 말아요.”나를 조금도 탓하지 않는 조민성의 태도는 나를 더 죄책감에 휩싸이게 했다.“그... 현우 씨는...”“아직 깨어날 기미가 안 보이지만 언젠가는 꼭 깨어날 겁니다.”조민성이 단호하게 말했다.“그 누구도 현우의 자리를 빼앗을 수 없어요.”“네, 대표님 말이 맞아요... 현우 씨 소식이 있으면 저한테 꼭 얘기해주세요.”나는 뻔뻔함을 무릅쓰고 말했다.“그래요!”나는 조 대표가 더 얘기할 기미가 없자 전화를 끊고 창가에 서서 경원이 있는 방향을 바라봤다. 마음이 무거웠다. 마음 같아서는 내가 그의 곁을 지키면서 빨리 정신 차리라고 그이를 깨우고 싶었다. 이틀 후, 천우 그룹에 새로 부임한 기 대표의 면담 요청을 받았다. 기 대표는 아주 사무적인 태도로 천우 그룹과 신흥의 합작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후 우리가 받은 공지에서는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의 퀄리티를 보존하며 기한 내에 완성해야 하되 준비 중이던 모든 것은 중단하라고 했다. 예상했던 일이라 전부터 공급 업체와 연락하여 재고를 너무 많이 준비해두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하지만 이런 압박이 산처럼 내 어깨를 짓누르고 있어 숨 막히는 듯했다. 장영식은 계속 나를 위로해주느라
신호연이 사무실로 들어오는 모습이 정말 사람을 역겹게 했다. 마치 자기 집에 돌아온 사람처럼 사무실을 돌아다니며 훑어봤다. 방심한 내 탓이다. 당시 사무실에 들어올 때 일을 더 만들고 싶지 않은 마음에 리모델링을 하지 않아서 계속 신호연이 쓰던 모습 그대로 변함없이 유지가 되었다. 한 바퀴 다 훑어보고는 소파에 앉은 신호연은 사무실 책상 뒤에 앉아 있는 나를 보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득의양양하게 말했다. “한지아, 옛날 생각 많이 하다 보다? 사무실이 완전 그대로네. 원래 모습대로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 아직도 내가 여기 함께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나는 차갑게 비웃음을 흘리고는 속으로 욕을 삼켰다. 자신이 아주 대단한 사람인 양 우쭐거리긴. 건방지게 앉아 있는 모습도 꼴사나웠다. 나는 냉랭하게 신호연을 쳐다보다 더는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서 말을 건넸다. “말해! 여기까지 온 꿍꿍이가 뭐야?”“그래,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내가 말이야... 지금 내 손에 있는 프로젝트가 너무 많아. 아직도 끝없이 몰리고 있어. 팔은 안으로 굽는다잖아. 이렇게 좋은 기회를 다른 사람에게 줄 수는 없어서 너랑 상의하려고 왔어. 우리 합병하는 게 어때?”신호연은 고개를 쳐들고 자신의 실적을 자랑스레 말했다. 미친놈, 나는 속으로만 욕을 삼키고 신호연이 남은 얘기를 끝내도록 대꾸를 하지 않았다.신호연은 내가 말이 없자 한참을 쳐다보더니 다시 말을 꺼냈다.“더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여기서 일하는 게 습관이 되어서 여기로 다시 들어오고 싶어. 지아야, 돈이 필요해? 아니면 프로젝트를 하나 줄까? 그것도 아니면 합병하고 회사의 주주로서 내 밑으로 들어와. 네가 들어와도 신흥은 여전히 신흥이야. 십 년도 넘게 해온 오랜 브랜드인데 바꾸지 않아도 돼!”나는 무게가 꽤 있는 오로라 펜을 손안에서 돌리면서 신호연에게 따귀를 날리고 싶은 충동을 참으며 그를 노려보았다. 신호연은 그 눈빛이 어떠한 의미인지 알 수가 없다는 듯 몸을 살짝 움직였다.정말 이해가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