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꺼져’라는 얘기를 내뱉은 게 신호연에게는 예상 밖의 일인듯했다. 이러한 상황은 신호연에게 최대의 수모이기에 표정 관리가 잘 안 되었다.하물며 지금의 신호연은 밀려들어 오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대단한 사람이기에 이렇게 가방을 끼고 거들먹거리며 돌아다닐 수 있다.“한지아... 내가 분명히 말하는데 지금 나는 너랑 좋은 말로 상의하러 온 거였어. 근데 넌 정말 좋은 말로 해서는 안 되겠네. 돌려 말해서 너랑 상의하러 온 거지, 툭 까놓고 말하면 난 너에게 통보하러 온 거야. 너 정말...”“대체 누가 이렇게 큰소리를 치는 거야? 어디로 옮길 건데? 얘기해봐.”불쑥 목소리 하나가 들리더니 사무실의 문이 열리고 장영식이 걸어들어왔다.신호연은 고개를 돌려 장영식인 것을 확인하고 입꼬리를 삐죽거리더니 금세 다시 거들먹거리며 비아냥거렸다.“난 또 누구라고. 이분이네~”신호연은 당연히 장영식을 알고 있다. 장영식은 신호연이 나에게 구애를 할 때도 내 곁에서 나를 많이 챙겨주었다. 장영식은 나와 관계되는 모든 일은 미리 다 준비해주었기에 당시 신호연은 장영식을 아주 경계했었다. 이후 내가 신호연의 구애를 받아준 후에야 더는 장영식을 경계하지 않았다.장영식은 신호연을 느긋하게 훑어보더니 말했다.“너 아까 뭐라고 했어? 어디로 옮겨온다고?”장영식은 이렇게 말하고는 상석에 앉아 그를 쳐다봤다.“사내대장부와 소인의 차이가 뭔지 넌 아직 모르는가 보네. 여기로 다시 들어오려고? 미안하지만 나한테 먼저 물어봐 줄래?”“너…? 하?”신호연은 뒤로 한껏 기대더니 행패를 부렸다.“넌 영원히 나한테 졌던 패자일 뿐이라고!”“그래? 그럼 이번에 한 번 해봐!”장영식은 의연하게 대답했다.“우리 한신로얄 2기를 걸고 내기를 하자! 여기는 너의 신분에 어울리지 않아! 분량도 모자라고, 너 크게 하고 싶다며?’나는 허리를 곧게 폈다. 장영식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한신로얄 2기? 나는 왜 들은 적이 없지? 나는
나는 장영식을 바라보았다. 요즘 배현우의 상처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서 회사 일은 확실히 신경 쓰지 못했다.장영식은 내가 미심쩍은 표정을 짓자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내가 자신 있으니까 해보려는 거야!”“너... 무슨 자신이 있다는 거야? 너... 그 말은…”맞추기가 좀 두려웠다.“특별한 일이 없다면!”장영식은 갑자기 당당하게 웃었다.나는 눈을 휘둥그레 뜬 채 그를 바라보며 그의 말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의 온화하고 부드러운 표정에는 농담처럼 보이지 않는 정중함도 있었다.“... 그 말은, 우리가 2기를 따낼 자신이 있다는 거야?”나는 확실하게 묻기 두려워 살짝 떠보았다.장역식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안 될 게 뭐가 있어, 우린 큰 프로젝트를 따내지 말란 법이 있어?”“정말이야?!”나는 갑자기 신이 났다.“너 요즘 이 일 때문에 고생하고 있지? 어쩐지 사무실에 잘 안 보인다 했어. 프로젝트 담당자들이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정말 신호연에게 사무실이라도 만들어 줄까 봐. 우리가 어떻게 그가 원하는 대로 하게 보고만 있겠어?”장영식도 조금 득의양양하게 말했다.“하하... 영식아, 빨리 자세한 얘기 좀 해봐! 도대체 넌 어떻게 따내겠다는 거야?”나는 조금 들뜬 채 말했다.“정말로 그 프로젝트를 손에 넣을 수 있다면 앞으로 우리에겐 아무런 난관도 없을 거야!”장영식은 그제야 모든 과정을 나에게 자세히 말했다.그를 짝사랑하는 혼혈 후배에게 감사해야 했다.“이름은 조이스고, 지금은 유명한 디자이너야. 한신로얄 프로젝트는 공식적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디자이너를 찾고 있어. 조이스의 멘토가 그녀를 적극적으로 추천했대.”“이런 우연이? 그리고 또?”나는 좀 흥분했다.“사실 1기 때 내가 다니는 회사가 참여했었어. 이번에는 조이스가 2기 디자인 통보를 받았고. 관련된 문제가 있어서 기획에 계속 참여했기 때문에 조이스와 다시 연락할 기회가 생긴 거야.”“그럼 왜 전에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지? 설날 때 너랑 조이스에 관한
비즈니스 싸움은 너 죽고 나 사는 것이다. 내가 전희의 숨통을 틔워준다는 것은 나 자신을 스스로 죽이는 것이다.마침 신호연의 기공식도 끝나갔다. 내 계획도 행동에 옮겨야 할 때인 것 같았는데 지금 상태는 내 계획 조건에 딱 들어맞았다.장영식이 자신 있게 나를 위로했다.“이번에는 편안하게 푹 잘 수 있을 거야! 우리가 스스로 설 수 있는 자본이 있어야 서울에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어.”나는 그의 이 생각에 전적으로 찬성한다.하지만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은 항상 공존하는 법이다. 나는 겨우 한숨 돌리게 되었는데 천우 그룹 쪽에서 또 압력을 가해서 무게를 늘렸다.그들이 다시 제출한 검사 보고서가 나왔는데, 뜻밖에도 많은 유해 물질이 기준을 초과하여 불합격되었다고 한다.순간 폭발했다. 천우 그룹 쪽에서는 즉시 공지가 내려졌고, 마무리된 모든 공사를 중단하라고 명령했다. 잘못 처리하면 기약도 없고, 그쪽은 이미 다 팔렸으니, 업주 쪽에서 소란을 피우면 나는 죽는 거나 다름없다.일이 터지자 천우 그룹 쪽에서는 전혀 처리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조업을 중단하는 것이 첫걸음이다. 그다음에 클레임 통지서를 보냈다. 그리고 이 클레임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었다... 이건 정말 죽음으로 몰고 갈 예정이다.나와 장영식, 그리고 이동철은 쉬지 않고 뛰어다니며 이 일을 해결하려 나섰다. 공급업체와 협력하여 유효한 증명서를 제시하며 관련 부서를 설득하려고 했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다.나는 배유청이 이 일로 나를 짓누르고 다시는 일어설 기회를 없애련다는 걸 알고 있다.그제야 나는 배유정을 도발하는 것이 얼마나 현명하지 못한 행동인지 깨달았다. 그녀는 극악무도한 늙은 마녀였다.왜 배현우와 이청원이 나에게 자신의 이익부터 챙기라고 거듭 당부했는지 알 것 같았다.그들의 기습에 나는 어쩔 수 없이 몸을 가누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장영식도 속수무책이었다. 그리고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이것이 아니었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이 부정적인 사
전화가 금방 걸리더니 이청원의 둔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네, 한 대표님 무슨 일이세요?”도혜선을 힐끗 쳐다봤더니, 그녀는 나더러 얘기하라고 눈치를 하며 신호를 보냈다.“… 저기, 지금 회사에 계세요? 만나서 얘기하고 싶은데요.”나의 목소리는 힘이 하나도 없었다.“네. 그럼 경공관으로 오세요. 저도 그쪽으로 갈게요.”이청원은 시원하게 약속을 받아주자 나는 순간 당황해서 멍해졌다.‘경공관? 어디지?’도혜선은 내가 멍해 있는 것을 보고 손을 톡톡 치며 전화를 끊으라고 했다.“알았어요. 그럼 있다가 거기서 봐요.”나는 하는 수 없이 전화를 끊고 도혜선을 봤다.“근데 언니, 나 경공관이라는 곳 몰라.”내가 장소를 모른다고 당황한 표정으로 말하자, 도혜선은 크게 웃으며 나를 비웃었다.“왜 웃어? 뭔 데?”“내가 알아. 하하하…”도혜선을 웃을 멈추지 못하며 말했다.“너 정말 대단하다. 아니야, 내가 잘못했어. 너를 데리고 많이 다니면서 구경시켜 줘야 하는데. 세상에 경공관도 모르다니, 어휴… 쪽팔려!”도혜선은 웃고 나서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액셀을 밟고 잠시 후 작지만 온화하고 다정한 집 앞에 멈추더니 말했다.“다 왔어. 여기가 경공관이야!”밖을 보니 아름다운 집에 아주 고풍스러운 간판이 걸려 있었는데 그 위에 ‘경공관’이라고 씌어져 있었다.“여기가 경공관이라고?”나는 약간 의아한 표정으로 도혜선을 보며 물었다.“어서 들어가자! 여기는 클럽이야, 여기도 모른다니 말도 안 돼!”도혜선은 정말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힐끗 쳐다봤다.“이제 시간 내서 설명해 줄게. 지금 네 상황을 전희가 알면 아마 배를 끌어안고 웃을 거야!”도혜선과 같이 안으로 들어가자 안은 아주 넓었다. 고전적인 중식 인테리어로 되어 있었는데 매력적이고 조용하고 우아한 분위기였다.도혜선이 낮은 목소리로 나에게 소개했다.“이 클럽의 사장님이 경씨인데 아주 전설적인 여성이거든. 언제 한번 소개시켜 줄게. 오늘은 일단 우리 일을 봐야 하니까.”건물 안으로
이청원은 전혀 놀라지 않은 듯 고개를 끄덕이며 차분하게 나를 바라보았다.“얘기하세요!”나는 오늘 방문 목적을 간결하게 설명한 다음, 그를 보며 진지하게 물었다.“도와주실 수 있을까요?”이청원은 바로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생각에 잠기더니 말했다.“이 일은 제가 도와드릴 수 없습니다.”나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고 가슴이 두근거렸는데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물론 서로 친분이 깊지 않았기에 나를 도와줄 이유가 없었다. 내가 너무 쉽게 생각했다. 스스로 이청원이 거절하는 건 당연한 거라고 설득하고 있는데 이청원이 또 말했다.“하지만 제안은 드릴 수 있는데 한번 해보실래요?”나는 다소 놀란 표정으로 이청원이 계속 말하기를 기다렸다.“에메랄드 가든을 아시죠?”이청원이 나를 보며 묻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에메랄드 가든은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부동산 브랜드 기업이다. 그들의 부동산은 전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그들을 찾아가 봐요. 그들이 사용하는 재료들은 모두 국제적으로 엄격한 과정을 거쳐 엄선된 것들이에요. 한 대표님 회사에서 불합격 제품으로 검증받은 것도 에메랄드 가든에서 사용하는 거잖아요. 그들을 찾아가는 게 더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요?”이청원의 어조는 차분했지만 아주 핵심적인 제안이었다. 그의 말을 듣고 순식간에 막혔던 길이 열리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다 직접 증명이 어렵다면 맞서 싸우지 말고 길을 돌아서 가면 되지 않는가? 왜 나는 이런 생각을 못 했을까?“연락처를 드릴 테니 울산에 가서 그 사람을 만나봐요. 그 사람만 설득하면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 사람 좀… 특이한 부분이 있는데 고집이 세서 접근하기 쉽지 않을 거예요. 그런데 그 사람을 감동만 시키면 모든 게 해결될 거예요.”이청원은 말을 마치고 가방에서 작은 종이 한 장을 꺼내 나에게 내밀었다.“모든 일이 잘 풀리기를 바랍니다!”나는 순간 감격하며 이청원을 바라보았다. 그는 이미 모든 걸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가 어떤 부분에서 불합격을 받은 것까지
경공관에서 나와, 도혜선은 나를 집으로 데려다주었다. 나는 갈아입을 옷 두 벌을 챙겨 그녀에게 바로 공항으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가는 길에 나는 장영식과 이동철에게 각각 전화를 걸었다.그러자 이동철이 말했다.“제가 같이 가드릴 수 있어요! 혼자 괜찮겠어요?”“이동철 씨 임무가 더 막중한걸요. 반드시 증거를 찾아내야 해요. 그것이 승리의 관건이니까요. 저는 괜찮으니 걱정 마요!”나는 엄숙히 이동철에게 신신당부했다.이동철의 말투에서는 그가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는듯한 게 여실히 보였다. 회사의 일은 이동철이 있기에 나는 조금도 걱정되지 않았다. 다만 이런 관계는 그가 처리할 수 없었는데, 해외에서 몇 년 동안 지낸 탓에 복잡한 인간관계에는 이미 무뎌졌기 때문이다.차 안에서 나는 도혜선을 조롱하며 말했다.“언니, 아이디어 진짜 좋은데? 나이가 많아서 그런가, 역시 이런 쪽은 언니가 나보다 낫다니까.”그러자 도혜선이 나를 힐끗 째려보았다.“나이가 많아서 그렇다니, 누가 그래? 네가 몰라서 그렇지, 네 머리는 우리 중 누구보다도 좋아. 단지 신호연에게 몇 년 동안 갇혀 사느라 쓸 기회가 없어서 무뎌진 거지. 단연코 확신하는데, 만약 네가 여태껏 신흥을 관리해왔다면, 신호연이 관리하는 현재의 신흥보다 몇 배는 더 나았을 거야.”“꼭 그렇다고 할 수도 없어. 호연 씨도 호연 씨의 장점이 있거든. 그이는 이익을 더 중요하게 여겨, 이쪽은 나보다 낫지. 나는 가끔 의리를 너무 중하게 여겨서 믿음 때문에 융통성 있게 접근하지 못해!”나는 나 자신을 검토해보았다. 사실 오늘 이청원의 가르침은, 내가 자신의 이런 약점을 더욱 명확히 알아챌 수 있게 해주었다.“인제 보니 너 더 발전할 수 있겠는데?”도혜선은 웃으며 나를 조롱했다.“다음부터는 돈이라도 받아야겠어!”그러자 나는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언니, 차라리 신흥 주식을 사지? 홍보도 담당하고 말이야!”“하... 정말 모리배 아니랄까 봐!”그녀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했다.“다 같이 놀려고
가게 주인뿐만 아니라 파마를 하고 있던 여자도 같이 대화에 참여하는 걸 보니, 그들은 그 집 사람들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알고 보니 변희준이 이렇게 괴상하게 변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변희준은 학자 가문에서 태어났는데, 원래는 화학 선생님이었고 울산의 한 공대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다고 한다.그는 사업에 몰두하여 늦은 나이에 결혼했고 중년의 나이에 아들을 얻었다. 이것은 가정에 그야말로 금상첨화와 같은 일이었고 나날이 행복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누가 감히 상상이나 했을까, 그의 단꿈은 5년밖에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 시기는 변희준이 가장 잘나갔던 시기로, 그는 가장 젊은 박사과정 지도교수로 임명되어 집도 나눠 받았다.원래대로라면 이것은 남들이 부러워하는 큰 경사였지만, 모든 비극은 그 집에서 시작되었다. 거실 두 개에 방 세 개가 딸린 집은 그의 모든 기쁨을 앗아갔다. 바로 아들이 새집으로 이사 온 다음 해에 백혈병 진단을 받았기 때문이다.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변희준의 단꿈은 그만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그렇게 그는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며 아이의 병을 고쳐주다가 결국 집안 재산을 탕진하여, 돈도 사람도 전부 잃고 말았다. 변희준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이는 어려서부터 몸이 줄곧 좋을 뿐만 아니라 팔팔하고, 영리하고 총명하기 짝이 없었는데, 왜 갑자기 이런 병에 걸리게 됐는지 말이다.그는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수년 동안 노력했다. 역시나 “공든 탑이 무너지랴”라는 말이 있듯이 변희준은 마침내 놀라운 결론을 얻어냈다. 바로 그 집에 있는 유해 물질이 기준치를 심각하게 초과해 초래된 일이라는 것이었다. 조사하는 과정에서 또 한 명의 어린아이가 안타까운 일을 당했는데, 그 사실로서 변희준이 내린 결론은 더욱 힘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법원에 개발업체에 대한 고소장을 제출했다.“그 당시 그 일은 매우 떠들썩해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는데, 듣자 하니 나중에 정말 승소해서 적지 않은 돈을 받았다고 하더라고!”파마하던
변희준의 표정에는 불안함이 가득했다.“나가요! 여기 아픈 사람 안 보여요?”그의 말투는 매우 짜증스러웠는데, 이건 분명히 일종의 당황스러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제가... 아내분을 좀 봐도 될까요?”나는 매우 조심스럽게 그의 의견을 물었다.“제가 보기에... 아내분이 조금 심각한 상황인 것 같아서요!”그러자 그는 조금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마에는 어느새 작은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나는 서둘러 말을 이어갔다.“저 경험 있어요! 아마 도와드릴 수 있을 거예요!”몇 년간 집에서 아픈 아이를 돌봐오며, 나는 일이 생길 때마다 대부분 스스로 대처했다.그는 나를 힐끗 보더니 나의 얼굴에서 진정성을 읽었는지, 그제야 한 발짝 물러섰다. 그러고는 침대 위에 있는 여자를 보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마도 조금 열이 나는 것 같아요.”나는 얼른 앞으로 다가가 여자의 이마와 목에 각각 손을 대보았다. ‘이게 어딜 봐서 조금이야, 불덩이처럼 뜨거운 게 고열이라면 모를까!’이윽고 나는 다급히 물었다.“얼마나 됐어요?”“어젯밤부터예요, 아침까지 깨어있었는데, 내가...”“선생님, 일단 병원으로 가봐야 합니다. 이렇게 내버려 둬서는 안돼요! 체온계 있나요?”내가 이렇게 묻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어... 어디 있는지 모르겠어요!”보아하니 그는 평소에 책벌레로, 집안의 일은 모두 그의 아내가 돌보는 것 같았다.나는 서둘러 이해월에게 말했다.“빨리 구급차 물러요, 구급차!”그리고 나는 침대 위에 있는 여자를 작은 소리로 불렀다.“저기요, 일어나보세요, 제 말 들려요?”뒤이어 나는 몸을 일으켜 세우며 변희준을 바라보았다.“선생님, 병원에 가야겠습니다. 이미 정신을 잃으셨어요.”그는 어찌할 바를 모르며 눈빛에는 당황스러움이 가득 찬 듯 보였다. 마치 속수무책인 아이처럼, 변희준은 의지하려는 듯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봤다.“아... 아가씨는... 저는 뭘 해야 되죠?”“지금은 필요 없습니다. 병원에 가서 검사받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