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을 젖히는 순간, 문 쪽에서 다투는 소리가 들렸다. 난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리며 긴장한 듯 이불을 꼭 쥐었다. 어디를 다친 건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이내 헤라가 도우미 여럿을 데리고 내 앞에 나타났다.그 순간 들통났음을 직감했다.나는 헤라와 잠깐 시선을 주고받다가 고개를 홱 돌렸다. 여기까지 왔고, 들통까지 났으니 반드시 확인은 하고 가야만 했다.난 덤덤한 표정으로 시선을 돌려 젖힌 이불 속 배현우의 몸을 살펴보았다. 그의 팔다리에는 석고붕대가 감겨 있었고 그 외에도 여러 군데가 붕대로 감싸여 있었다. 아직 채 낫지 못한 상처가 있는 게 분명했다. 가슴이 찢어지게 아파왔다.잠시 뒤 나는 조심스럽게 배현우에게 이불을 덮어줬다. 왈칵 흘러나온 눈물이 입으로 들어가 입안에 씁쓸함이 감돌았다.여전히 잘생긴 배현우의 얼굴을 보고 나는 나긋나긋하게 말했다.“현우 씨, 얼른 나아요. 너무 오래 자지 마요.”“... 지아 씨는 참 영악하고 간도 큰 분이시네요.”헤라는 여전히 들어왔을 때 서 있던 그 위치에 서 있었다.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내 행동들을 바라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난 ‘풉’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난 배현우에게서 시선을 떼며 자리에서 일어나 눈물을 닦았다. 그들에게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나는 헤라를 마주 보며 똑같이 평온하게 받아쳤다.“과찬이네요. 난 내가 원하는 일이라면 꼭 하거든요. 이건 간이 큰지, 작은지와는 별개의 문제죠. 난 내 친구를 보고 싶었을 뿐이에요. 그래서 이렇게 찾아온 거고요.”“누가 멋대로 들어오라고 했죠? 간덩이가 부었나 보죠?”그녀는 차가운 시선으로 날 바라봤다. 비록 평온한 어조였지만 무자비함이 느껴졌다.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이었다.“내가 말했죠. 난 내가 원하는 일이라면 뭐든 한다고.”난 도발하듯 그녀를 바라보았다.“나도 알고 싶네요. 이게 지금 뭐 하는 거죠? 이렇게 사람까지 끌고 올 필요가 있나요? 난 그냥 내 친구를 보러온 것뿐인데요.”헤라는 나와 논쟁하고 싶지 않은지
나도 앞으로 한 발 나서서 이세림을 노려봤다. “당신들 만행을 세상에 알리고 싶지 않으면 더는 날 자극하지 말아요!”뒤이어 고개를 들고 밖으로 걸어 나가 나를 데리고 온 의사를 향해 말했다. “선생님, 절 데리고 돌아가 주세요.”의사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사실은 의사 선생님을 남겨두면 저들이 불리하게 수를 쓸까 두려워 데려다 달라고 부탁한 것이다.차에 올라타자 나도 모르게 손이 덜덜 떨릴 만큼 긴장이 몰려왔다. 죄책감에 의사에게 사과를 건넸다.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선생님도 힘들게 했네요, 선생님께 불리하게 행동하진 않겠죠?”“아닙니다! 상상하신 만큼 심각하진 않아요.” 그는 긴말 없이 시동을 걸어 밖으로 차를 몰았다.“상처는 어떻습니까?” 여전히 걱정돼 의사에게 물었다.“보셨던 대로입니다.” 그는 나를 한번 보더니 말을 이었다. “팔다리 상처는 위중하지 않지만, 머리에 상처를 심각하게 입었어요.”“그럼 언제쯤 깨어날까요?” 나는 초조한 듯 물었다.“흡수되는 상황을 지켜봐야죠. 당장이 될 수도 있고요.” 애매모호한 대답이었다.차를 바꿔 탔던 곳으로 다시 돌아왔다. 차량은 여전히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나는 의사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는 나를 데려올 때 탔던 차로 돌아와 온 길을 되돌아갔다.차 안에서 나는 고민 끝에 조민성에게 전화를 걸었다. 죄책감에 가득 찬 채 당시 상황을 설명하자 그는 잠시 침묵하더니 짧게 한 마디만 내뱉었다. “돌아가서 쉬세요.”“조 대표님…. 저는...” 어떻게 미안함을 전달해야 할지 몰랐다.조민성은 긴말 없이 바로 전화를 끊었다.드디어 배현우를 보게 됐지만,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갑자기 알 수 없는 우울감이 마음을 짓눌렀다. 술자리에서 이세림을 떠본 결과 유보욱의 사망이 반드시 그들과 연관되어 있었음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더군다나 경원에서 이세림과의 정면충돌은 승패를 가른 것은 아니었으나 대놓고 그녀에게 칼날을 들이민 것이나 다름없었다.이세림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배현우
도혜선이 이 일을 알고는 같이 가주겠다고 먼저 말해왔으나 나는 거절했다. 이런 장소에서 도혜선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데는 좋은 의도가 없음을 알고 있었다.도혜선에게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냐고, 굳이 올 필요가 없다고 구구절절 말했고 도혜선은 그제야 마음을 접었다.나는 해월이와 함께 참석했다. 해월이도 신흥의 사람인지라 데리고 온 목적이 있었는데 해월이에게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 처리해 줄 것이라 믿었다.만월 잔치는 브라운호텔에서 진행되었다. 손님들로 북적거리는 연회장 앞에서 신호연이 웃음꽃이 만발한 채 손님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서강훈의 픽업 차량이 문 앞에 도착한 것을 발견하고는 얼굴에 불쾌함을 살짝 드러내며 말했다. “내 딸은?”나는 그를 한 눈 쳐다보고 온화한 태도로 답했다. “됐어, 더는 욕심 부리지 말고. 콩이가오지 않아도 너에게 아들딸이 다 있단 건 모두가 알고 있어.”그는 감정을 추스르더니 웃으며 답했다. “그럼 얼른 들어가!”해월은 얼른 내 옆으로 와 두 개의 축의금 봉투를 신호연의 손에 전달했다.안으로 들어갈 때 조심스럽게 해월에게 물었다. “이런 건 언제 준비한 거예요?”“빈손으로 올 수는 없잖아요!” 해월이 웃픈 표정을 지으며 눈썹을 달싹였다.“꽤 통이 크네요. 돈만 아깝게 됐어요, 그 돈을 회사 사람들한테 복지로 나눠주면 얼마나 좋아요.”내 투덜거림에 해월이 씨익 웃더니 더 답하지 않았다.우리 두 사람이 홀로 들어서자 많은 이들이 신기한 듯 쳐다봤다. 아마 나의 등장은 예상하지 못했으리라. 의문으로 가득 찬 눈빛들에 괜히 민망해졌다.다행히 심은정이 멀리서 우리를 발견하고는 몸을 일으켜 이쪽을 향해 손짓해준 덕분에 민망함이 조금 가실 수 있었다. 심은정은 아예 다가와 내 손을 잡더니 조용히 얘기했다. “대표님이 진짜로 오실 줄은 몰랐네요. 마음도 넓으셔라!”나는 담담하게 웃었다. “축의만 표하는 건데요 뭐.”자리에 앉자마자 멀지 않은 곳에서 산후조리로 통통하게 살이 오른 신연아가 보였다. 오
그녀는 격을 차리며 걸어오는 척했지만 차마 표정까진 관리하지 못했는지 뱀 같은 눈동자를 내 얼굴에 고정한 채 이를 꽉 깨물며 다가왔다.나는 애써 침착한 미소를 유지한 채 그들의 연극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눈앞의 광경에 옆에 앉은 심은정도 긴장한 듯 숨을 죽인 채 나를 툭 쳤고 해월이는 이미 주먹을 꽉 쥐고 반격할 준비를 했다.나는 그녀를 꽉 잡고 진정시켰다.“아이고! 누군가 했더니 새언니네요!” 신연아의 말에 저도 몰래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입꼬리만 올린 채 말했다. “연아야, 임신하면 지능도 떨어진다던데 너도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거 아니야? 새언니라고 생전 부르지도 않던 애가 오늘은 웬일이래? 무슨 새언니야? 지금 날 부른 거니?”해월이도 기다렸다는 듯이 거들었다. “그러게요. 신 대표님까지 양보해드렸는데 무슨 새언니에요? 아들도 있는데 양심 좀 챙기세요. 새언니란 호칭은 본인이 빼앗아놓고는.”신연아는 갑자기 불쌍한 얼굴을 하고 눈가를 붉히며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새언니, 그러게요, 아이까지 낳았는데 이젠 절 그만 놔주세요! 전에 일은 제가 잘못했어요. 사실 오늘 오빠에게 언니를 초대하라고 한 것도 예전의 오해들을 풀고 싶어서였어요. 오빠도 저한테 얘기하더라고요, 우린 한 가족이라고. 그러니 대인배답게 용서해주시면 안 될까요?”신연아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억울한 모습을 한 채 말했다. 눈물이 또르륵 흘러내리며 누가 봐도 약하고 불쌍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순간 주위가 조용해졌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 자리를 박차고 구경하러 오고 싶었지만 그러질 못해 까치발까지 들며 내 쪽을 바라봤다. 아마 자리에 있는 모두가 신연아의 말을 들었을 것이다.하! 드디어 연극이 시작되었음을 알아차렸다!거기다 신연아는 미리 누군가와 짜고 친 듯 평소와는 다르게 연기하고 있음을 확연히 알아차릴 수 있었다.이게 신연아라고? 평소의 암사자 같은 모습과는 달리 오늘은 비련의 여주인공 연기를 하고 있었다. 신연아가 전략을 바꿔 이렇게 나온다면
나는 반사적으로 그녀를 막고 손목을 꽉 잡은 채 억지웃음을 지었다. “연아아! 확실해?”이세림은 당황한 해월을 보더니 간사하게 웃으며 부채질을 해댔다. “연아야, 오늘같이 좋은 날 이런 얘기를 꺼내면 어떡해.”신연아는 자신의 말이 효과가 있음을 확인하고는 계속 불쌍한 척을 해댔다. “저도 기뻐요, 아니면 오늘 많은 분들이 제 아들을 못 볼 뻔했잖아요. 그럼 호연 오빠도 오늘처럼 기뻐하지도 못했을 것이고요!”“그러니 새언니, 화내지 마세요. 이제 공평하잖아요. 전에 제가 잘못을 했지만 언니도 절 밀쳤으니 조산은 언니 탓을 하지 않을게요. 우리 앞으로 잘 지내면 안 돼요? 누가 뭐래도 다 신 씨 가문 며느리 들인데!”나는 참지 못해 한마디 대꾸했다. “너는 맞는데, 나는 아니야.”관중들은 바로 굳은 얼굴을 하고는 나를 쳐다봤다. 마치 한마디만 더 하면 내 입을 찢어버릴 태세였다.나는 마음속으로 쓰게 웃었다. 실로 대단한 계획이었다. 공개적인 장소에서 마녀사냥을 하다니. 나는 까딱 잘못하다간 서울에서 명성이 추락해 다시는 재기가 불가능할 수도 있었다.아마 전형적인 못된 전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이 또한 눈앞의 세 명이 원하던 바였다.나는 침착한 척 신연아를 바라보고는 몸을 일으켜 연회장을 한 바퀴 둘러봤다. 신호연과 사업 파트너들이 멀지 않은 곳에서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저 사람은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모르고 있을 리가 없었다.“신호연...”나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심은정은 깜짝 놀란 채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해월도 굳은 얼굴을 돌려 신호연을 바라보고는 그에게로 다가갔다.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찼다.전희는 깨고소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역시나 신호연은 내 부름을 듣지 못한 척 연기하고 있었지만 해월이 다가가 그를 강제로 끌어왔다. 신호연은 어쩔 수 없이 우리 앞으로 오더니 억지웃음을 띄며 물었다. “세림 씨, 전희 씨, 왜 다들 서 있으세요?”“지아야, 앉아만 있지 말고 손님 접대
반응이 빠른 해월은 검은 그림자가 나를 덮치기 전에 재빨리 나를 일으켰다.금방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자마자 검은 그림자가 돌진해 ‘쿵’하는 소리와 함께 의자에 부딪혔다. 자리에 있는 사람들 모두 놀라 소리를 질렀고 나는 무슨 일인지 미처 자각하지 못했다.겨우 눈을 똑바로 뜨고 보자 시어머니였던 김향옥이었다.그녀는 균형을 잡지 못하더니 바닥에 주저앉아버렸고 의자에 이마를 부딪쳤다. 순간 화를 참지 못해 땅바닥에 앉아 나에게 삿대질을 해대며 욕설을 퍼부었다."한지아 이 천한 년. 10년 동안 너 같은 며느리를 모시고 살았는데 네가 이렇게 악랄한 양심도 없는 년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곧이어 그녀는 입을 열어 내 죄목을 낱낱이 늘어놓았다. "신씨 가문의 재산을 빼앗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늙은 내 영감까지 감옥에 보냈고, 사사건건 우리와 호연이와 맞서던 거로 모자라서 배까지 불러온 만삭 애를 죽일 듯이 밀치기까지 하니?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야?... 응?"그녀가 이렇게 소란을 피우자, 모든 사람이 원수를 보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내 주변의 사람들은 모두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 어떤 변명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해월은 분노를 못 이겨 얼굴이 푸르딩딩해진 채 소리쳤다. "그게 무슨 소리세요? 적반하장도 유분수지.”전희는 팔짱을 낀 채 하얗게 질려가는 내 얼굴을 보며 기뻐했다. 그야말로 싸움에서 이긴 개선장군 같은 모습이었다."양심에 찔리지 않는지 스스로 좀 생각해보세요. 신 씨 집 안에 있으면서 당신 집안사람들한테 못 해준 게 뭐가 있나요? 당신 모녀들한테 먹는 것, 입는 것 뭐 하나 서운하게 한 게 있다고 그러세요.”바닥에 앉아 있는 김향옥을 보며 무기력함을 느꼈다. 오늘 잘못된 결정에 후회가 밀려왔다. 애초에 싸움에서 이기려 할 것이 아니라 최대한 이 양반들을 멀리 피하는 게 상책이었다."네가 우리 신 씨 가문의 집까지 꿰차고 있는 거로 모자라서 웬 남자를 꼬셔 우리 아들을 피투성이가 되도록 때리게 하고… 네가 그러
연회장 홀이 갑자기 밝아지자 모두들 어리둥절했다. 다시 보니 모든 스크린이 밝아지며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큰 스크린에는 영상 하나가 틀어져 있었는데 나로서는 익숙한 화면이었다. 바로 콩이 생일날 유치원 문 앞의 장면이었다. 신호연이 콩이를 안고 교문을 나서며 차에서 선물을 챙기고, 신연아가 다가오는 장면이었다...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영문을 몰라 의문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이게 뭐야?”나조차도 어안이 벙벙했다. 도대체 누가 한 거지? 이곳에도 내 비밀 조력자가 있는 모양이었다.내 눈빛은 자연스럽게 아까 신호연과 함께 우리쪽으로 다가온 서강훈에게로 옮겨갔다. 자세한 내막을 아는 사람은 그 뿐이었으니까.역시 내 눈빛을 받은 서강훈이 조용히 눈썹을 꿈틀거렸다.구경꾼들은 저마다 추측을 시작했고 영상이 두 번째로 재생됐을 때 누군가가 소리 질렀다. “어머! 저 사람은 신연아잖아! 어떻게...”새된 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더욱 집중됐다. 모두 중복으로 재생되고 있는 끔찍한 화면을 빤히 바라봤다.누군가가 대담한 추측을 했다. “저 사람 신연아 맞잖아? 배가 부른 채로 유치원에 난리 피우러 간 거야? 미쳤네, 차에서 내리자마자 사람을 때려?”“어머, ... 저것 좀 봐. 봤어? 자기가 발길질하다가 자빠진 거잖아, 아이고...”“구급차가 왔어... 한지아는 미동도 없었네? 오히려 신연아한테 맞기만 했어...”스크린 속 장면들에 모두 심장을 졸였다. 다들 입을 틀어막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나는 눈빛을 거두고는 화면을 보고 있는 이세림과 전희를 바라봤다.신연아는 이미 침착함을 잃은 채 스크린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역시 본인의 추악한 진면모를 드러냈다.“누가 한 짓이야? 이거 누가 했냐고?” 홱 신호연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분명히 얘기했잖아...”“조용히 해!” 신호연이 호통쳤다.서강훈도 옆에서 부채질했다. “확실히 삭제했는데 누가 한 짓이에요?”신호연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낮게 말했다.”지-아야...”나는 어깨를
아름답지만 비웃음이 서려 있는 목소리가 홀에 울려 퍼지자 모두 문 쪽을 바라봤다. 사람들 틈으로 바라본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초대받지 못한 손님 도혜선이 걸어들어오고 있었다.나는 저도 모르게 이마를 탁 치며 감탄했다. 맙소사, 이 연극이 아직도 끝나지 않은 모양이다.도혜선의 등장은 자리에 있는 모두를 놀라게 했다. 몇 개월 전 이 여자가 신호연의 결혼 기념 축하 파티의 오프닝을 박살 내며 신호연을 서울에서 유명인사로 떠오르게 했다. 신호연의 화려한 양다리를 모두에게 밝혀 큰 소동을 일으킨 장본인이었다.이 사건은 신 대표를 이혼 법정에까지 서게 했다. 그는 단번에 유명인사가 되었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어마어마한 외도였으니 말이다.그런 사람이 오늘 또 만월 잔치 현장에 왔으니 좋은 마음으로 축하를 해주려 온 것이 아님은 분명했다. 그녀가 들고 있는 시한폭탄에 신호연이 이번에는 얼마나 큰 대가를 치러야 할까?나도 상당히 놀랐다. 전에 이미 오지 않기로 얘기 끝난 줄 알았는데, 왜 또 온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나는 눈을 감았다 떴다. 더 흥미진진한 연극이 바로 시작될 것이다. 하지만 도혜선이 이번엔 어떤 시한폭탄을 터뜨릴지 힌트를 주지 않아 전혀 짐작할 수가 없었다.눈길을 돌리자 도혜선의 뒤에는 중년의 여성이 따라 들어오고 있음을 발견했다.나이로 보나 차림새로 보나 행동으로 보나 도혜선의 친구 같지는 않은 여성이었다.차림새가 매혹적이면서도 저급해 보이는 게 ‘풍류’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했다. 다만 유행 지난 ‘풍류’에 더 어울렸다.도혜선의 뒤에서 굳은 허리를 씰룩거리며 따라오고 있었고 얼굴에 띤 미소는 긴장한 듯 뒤틀려 있었다. 비비크림을 덕지덕지 발라 주름 사이로 껴 있는 모습이 쭉 밀면 때처럼 밀려 나올 것 같았다.길쭉한 눈에서 탐욕을 뿜어내며 주위를 둘러보는 게 마치 화려한 연회장의 스케일에 놀란 듯싶었다.그녀의 눈을 보고 있자 어디서 본듯한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도혜선이 무슨 일을 벌이려는 걸까. 저 구닥다리 여인은 어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