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 그 여자가 아니면 누구겠어?" 이미연은 이를 갈았다. "젠장, 이 사람 조만간 스스로 자기를 곤경에 빠트릴 거야!" "그만하고, 만나서 얘기하자." 가만두면 틀림없이 계속 불평을 쏟아낼 그녀를 나는 급히 멈추게 했다. 얘기 도중 전화가 왔고 재빨리 살펴보니 배현우의 전화여서 나는 이미연에게 말했다. "끊자, 전화가 들어왔어." 그녀는 전화를 끊었고 나는 배현우의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누구랑 통화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가 물었다. “이미연요!” "아... 저녁에 퇴근하고 바로 경원으로 와요." 배현우는 또다시 의심할 여지가 없는 어조로 말했다. "오." 나는 얼굴에 발그레 열이 오르는 것을 느끼며 달콤하게 웃었다. "바쁘지 않아요?" "어떨 거 같은데요?" 그의 말투는 나를 매우 연연하게 했다. "만나면 피로가 다 풀릴 것 같아요.""당신 하고 싶은 대로..." 나는 숨이 막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부끄러워졌다.그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뭐 먹고 싶어요? 그들에게 만들어 달라고 할게요." "점심에는 이미연과 도혜선을 만나 춘천 막국수집에 가기로 했어요. 저녁에는 담백한 음식이면 좋겠어요!" 나도 사양하지 않았다. "알겠어요, 끊어요!" 나는 지금 그는 어떤 모습일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책상에 기대어 도취되어 있었다. 이때 도혜선이 노크하며 들어왔다. 그녀가 웃고 있는 나를 보며 다가와 물었다. "너는 또 무슨 헛된 꿈의 상상의 나래를 펴길래 그렇게 꽃처럼 웃고 있는 거야?" 나는 얼른 웃음을 멈췄다. "꿈은 무슨, 좀 전에 전화 받은 계약에 대해 생각했지.""가자! 우리 걸으면서 수다나 떨자. 이미연에게 전화는 했어?" 가방을 들고 있는 도혜선의 모습이 눈길을 끌었고 나는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의 모습이 생각났다."말했잖아 어제 따귀 한 대 날렸다고!" 책상을 벗어나 가방을 집어 들고 밖으로 나가면서 도혜선에게 말했다. "따귀를 때린 건 알았지만 결과적으로 다른 사람의 따귀를 때렸지!" 도혜선이 호기심
사실 나는 도혜선의 남자를 정식으로 만난 적이 없지만, 그 남자의 모습은 아주 익숙하다. 나만 익숙한 게 아니라 아마도 한국 사람들은 모두 익숙할 것이다. 그는 항상 텔레비전과 라디오에 출연한다. 요즘 미디어에서는 사람을 찾으려고만 하면 그렇게나 쉽게 찾는데 연예인은 더 말해 무엇하겠나.우리 둘은 내 차에 올랐고 그녀는 쉼 없이 말했다. "그는 나에게 정말 관대해, 사람은 적당히 만족할 줄 알아야지. 신호연의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와 나는 잠깐의 냉전만 있었을 뿐 헤어질 수 없었어. 하…! 서로가 필요한 거지, 어쩌면 이게 우리의 인연인지도 몰라!" 도혜선과 신호연의 그때의 일이 제기되면 사실 나는 너무 죄책감이 든다. 내가 부채질하지 않았다면 도혜선이 대중 앞에 노출되어 모두가 다 알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 우리가 친구가 될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그는 너의 곁에 늘 있어 줄 거야... 오직...""하... 그것도 좋지. 이 정이 오래간다 한들 얼마나 가겠어. 하하! 이게 바로 나의 관점이야. 매일 눈을 감고 뜨는 걸 다 지켜보면서 질리게 함께 하는 건 너무 식상해." 그녀는 나와 함께 있을 때 정말로 자신의 생각을 숨기지 않았다. 우리는 둘 다 웃었고 그녀는 나를 쳐다보았다. "배현우는 내 남자와는 달라. 남자 등급으로 나눠본다면 배현우는 확실히 상급 중의 상급이지. 그러니 이미연의 말은 듣지 마. 넌 평탄하고 한가로운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니잖아.""그럼 난 어떤 사람인데?" 나는 무심코 물었다. "지아야, 넌 성공한 여자야. 그래서 장영식 같은 사람은 너와 어울리지 않아. 오직 배현우 같은 남자만이 네 곁에 설 자격이 있어!" 나는 곁눈질로 그녀를 바라보며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네가 나에 대해 이렇게 말할 줄은 몰랐는데? 내가 성공했다고 나 자신도 느끼지 못하는데 넌 어떻게 확신해? "하, 이 언니가 누구니? 이 언니는 사람을 무수히 많이 봐서 한눈에 딱 천하도 알아볼 수 있어!" 도혜선은 이미 모든 게 통달 된 사
이 소식에 충격을 받은 나는 황당해하며 이미연을 바라보았다. "무슨 말이야? 그녀가 골드 빌리지로 이사 온다고?”골드 빌리지로 이사했을 뿐 아니라 너희 빌라 지역으로 이사했으니 아마도 너희 동이랑 가까울걸?" 이미연은 화를 내며 말했다. "회사에서의 습관이야!"왜인지 모르겠지만 이 소식을 들었을 때 약간 불편함을 느꼈고 직감적으로 한소연과의 사이에서 문제가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비록 그녀가 나와 닮은 얼굴일지라도 한소연의 이런 면을 보면 조금 마음이 불편해지지만, 임윤아의 사진을 봤을 때는 친근감을 느꼈다. 나는 이런 느낌을 모르겠다. 이미연이 그녀를 싫어하는 게 나에게 영향을 준 걸까? 하지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난 그렇게 쉽게 다른 사람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사람이 아니다. 도혜선은 이미연을 툭 치며 말했다. "음, 우리가 가볍게 식사하러 온 자리인데 이야기의 화제를 좀 돌릴 수 있을까? 넌 그 사람이 우리의 식욕에 영향을 줬다고 생각하지 않아?" 나는 갑작스레 말했다. "맞다, 너희들에게 할 말이 있어, 신연아 출산했어!" "...뭐?"역시 내 말은 이미연의 주의를 딴 데로 돌리는 데 성공했다. "어떻게 낳아? 출산일이 된 거야?" 이미연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물었다. "제왕 절개로 조산했어."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넌 그걸 어떻게 알았는데?" 도혜선도 무척 관심을 보였고, 두 사람의 이름이 언급되자 이를 악물었다. 어쨌든 이 둘은 우리 셋에게 너무 익숙하다. 나는 이제야 어젯밤 일을 그녀 둘에게 낱낱이 이야기했다. "... 젠장!" 이미연은 손에 들고 있던 젓가락을 탁자에 '탁탁' 두드렸다. "이건 이렇게 간단히 넘길 일이 아닌데?" 나는 핸드폰에서 서강훈이 보내준 CCTV 영상을 찾아 그녀들에게 보여줬고, 둘은 몹시 화를 냈다. "이건 잘 된 거야, 신호연에게 이제 아들이 생겼으니 어떻게든 자제 좀 하지 않겠어?" 이미연이 말했다. "그가 널 덜 괴롭힐 구실이 생긴 거라면 그걸로 됐어!" "하! 누구의 아들인
이 질문은 정말 나를 놀라게 했다. 그녀가 뜻밖에 내 이름을 안다. 나는 조금 답답한 마음에 이미연을 쳐다보았다. 나는 그녀와의 교집합이 없는데 어떻게 내 이름을 아는지 궁금했다. 이미연의 표정을 보니 그녀도 나만큼이나 놀랐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요!" 나는 긍정의 답변을 했다. 한소연은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 지었다. "어쩐지 누군가 나를 닮은 사람이 있다고 하던데, 당신이 이렇게나 나를 닮았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네요!" 그녀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자마자 직감적으로 그녀가 이미 누군가와 만났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소연 씨, 몇 살인지 물어봐도 될까요?" 나는 여전히 담담하게 입을 열었고 그녀만큼 다정하게 표현하지도 않았지만, 거리를 두진 않았다. 그녀는 멍하니 나를 쳐다보더니 분명히 눈빛이 싸늘해졌다. 조금 전의 표정은 '연기'한 것이었다. "왜요?" 그녀는 조금 불만스러운 듯 붉은 입술을 살짝 열었다. "아...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세요. 난 당신의 사생활을 알고 싶은 게 아니라 그저 우리 둘 중 누가 더 나이가 많은지 알고 싶은 것뿐이에요." 그렇게 말한 후 나는 화제를 바꿔 그녀를 붙잡고 말했다. "저는 당신이 이렇게 젊은 미모에 자태가 예쁘고 사랑스러운 걸 보니 분명 저보다 어릴 거로 생각해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녀는 조금도 부정하지 않고 나에게 대답했다. "그렇다면 당신은 저를 닮았다고 해야죠!" 나는 그녀가 좀 전에 한 말을 확실하게 부정하며 말했다. "제가 표본인 거죠." 나는 속으로 시큰둥하게 '내가 널 닮았다고?' 하며 흥얼거렸다.마침 도혜선이 화장실에 갔다가 돌아왔고 내 앞에 있던 한소연은 다시 내 표정을 살폈다. 얼마나 똑똑한 사람인지, 일부러 "어머 지아야, 저분 정말 너랑 닮았다!" 하며 외치는 거로 알 수 있었다. 한소연의 얼굴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한소연 씨, 누가 우리를 닮았다고 하던가요? 그 사람 안목에 문제가 있네요. 제가 어디 당신만큼 예쁘겠어요!" 나는 다시 말을 끌어냈고
내 말에 대답하듯 도혜선의 눈이 수그러들었고 나를 보며 물었다. "너 정말 좋은 생각이 있는 거야? 그때 내가 구경할 수 있게 해줘야 하는 거 잊지 마, 그거면 돼!" "당연하지!" 나는 도도하게 말했다. 회사에 도착하자 도혜선은 자신의 차를 몰고 갔다. 시간을 보니 퇴근은 아직 멀었는데, 막 사랑에 빠진 소녀와 같이 이렇게 바라며 기다리고 있는 자신을 은근히 비웃었다. 말할 것도 없이 이건 하루가 3년 같은 느낌이다.어쨌든 아무리 조급해도 때가 되어야 하기에 나는 위층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기다리는 시간은 정말 하루가 일 년 같아 안절부절못했고 시간이 흘러가는 게 지루하게 느껴져 1분의 시간도 나에겐 괴로움이었다. 공교롭게도 오늘 오후는 일도 없어서 무미건조하게 시간이 1분 1초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겨우 퇴근 시간까지 버틴 나는 예쁘게 꾸민 후 기쁜 마음으로 가방을 들고 갔다. 지체 없이 차에 올라타 경산 남원을 향해서 갔고 차 안의 진하고 향긋한 냄새가 나를 더욱 유쾌하게 했다. 자동차에 날개가 있어서 날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특히 지금 바로 이런 퇴근 피크타임에서는 마음이 급해도 속도를 낼 수 없으니 말이다. 흥분이 초래한 것인지 아니면 차 안에서 너무 오래 참은 것이 원인인지 모르지만, 앞에 길게 장사진을 이루고 있는 차들을 보니 짜증이 났고 이쯤 되니 나는 힘이 빠지고 다리도 나른해지는 것을 느꼈다. 시간을 보니 이미 많이 늦었고 그가 집에 도착했는지 아닌지도 알 수 없었다. 다시 신호를 기다리고 있을 때 나는 초조해져서 핸드폰을 들고 배현우에게 전화를 걸어 이미 가는 중이고 거의 다 왔다고 말하려 했다. 그러나 전화를 여러번 걸어도 그는 받지 않았다. 나는 전화를 끊었고 마침 신호가 바뀌어 갈 수 있었다. 신호를 받고 가려는 순간 전화가 울려서 보니 배현우였고 나는 기뻐하며 미끄러지듯 전화기를 집어 받았다. "현우 씨... 나 가고 있어. 조급해하지 마, 금방 도착해!" 내 목소리는 상당히 절박했지만 부드러움으로
화물차가 나를 향해 거침없이 달려와 나를 감싼 하얀 물체와 부딪혔다. 귓가에 이명이 들리고 눈앞 사물들이 격렬하게 움직였다. 곧이어 온몸이 아파나고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갑작스러운 질식감과 코를 찌르는 소독약 냄새, 콘크리트 바닥과 차 바퀴의 심한 마찰음, 그리고 전화벨 소리... “...아!”나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눈을 떴다.“깼어! 지아 깼어.”나는 심한 질식감에 숨을 헐떡였다. 그 하얀 물체가 나를 숨 쉴 수 없게 억세게 누르는 것 같았다.“...지아야. 괜찮아?”어머니가 울상이 되어 초조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도혜선은 어머니의 팔을 부축하고 있었고 뒤에 서 계신 아버지의 눈가도 붉었다.“엄마...”“몸은 어떤 것 같아? 지아야, 내 말 잘 들려 ?”이건 이미연의 목소리.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이미연을 바라보았다. 이미연은 두려움 가득한 얼굴이었고 주변에는 이동철을 포함한 내 가족들이 서 있었다.“나 안 죽었어?” 내가 물었다. 사실 질문이 아니라 분위기 환기를 위한 농담이었는데 뱉고 나니 모두의 소스라친 표정에 오히려 당황스러워졌다.“뭐? 죽긴 왜 죽어!” 이미연이 호통쳤다. “이건 다 액땜일 뿐이야. 앞으로 얼마나 좋은 일이 있으려고.”“빨리 의사 부르러...”이미연이 의사들을 데리러 뛰쳐 나갔다. 곧이어 한 무리의 의사들이 우글우글 들어왔는데 젊은 의사며 연세가 있어 보이는 의사며 모두 있었다. 마치 온 병원의 유명한 의사들은 죄다 끌어모은 것 같았다. 그리고 그들 뒤에는 배현우와 비서 김우연도 서 있었다.그들은 나를 다시 한번 자세히 검사했고 그중 연세가 있으신 의사분이 말씀했다. “쇄골 부분의 예전에 있던 상처가 조금 벌어졌고, 다리에 조금의 외상, 흉부가 충격으로 인해 대면적의 피하 연조직이 손상되었고 가벼운 뇌진탕이 있습니다. 이렇게 큰 사고를 당하셨음에도 이 정도의 타박상은 정말 불행 중 다행입니다. 이건 기적이에요.”다른 의사들도 놀라워하며 맞장구를 쳤다. “정말 다행이에요. 명줄이 긴가 봅니다
김우연이 곧바로 몸을 돌려 병실을 나갔고 의사들은 기타 관찰 사항을 더 당부하며 푹 쉬라고 했다. 불편한 곳이 있으면 의료진에게 바로 알리라며 병실을 떠났다.내 머릿속은 여전히 복잡했다. 몸은 쑤시고 아팠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통증에 시달려야 했다. 콩이가 옆에 앉아 안기고 싶어 칭얼대자 이해월이 대신 안고 타일렀다. “콩아, 엄마 건드리면 안 돼요. 엄마 아야 해요~”“엄마, 아빠. 이제 돌아가셔도 돼요. 저 엄마가 해주는 밀면 먹고 싶어요.”나는 장영식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빠, 아빠랑 엄마 데리고 집에 가줘. 내일 괜찮아지면 나도 퇴원할 거야.”장영식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는 줄곧 멀리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눈은 초조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내 말을 듣고 그는 바로 대답했다. “그래. 그럼 돌아가서 바로 밀면 만들고 이따 너한테 가져다줄게.”“그래.”나는 그를 향해 웃어 보였다. “나 괜찮아.”장영식은 콩이를 안은 채 부모님을 모시고 병실을 나갔다. 사실 나는 밀면을 먹고 싶은 게 아니라 그들이 너무 많은 일을 알고 걱정하지 않았으면 했다.그들이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김연우가 급히 들어왔고 실망한 눈빛으로 배현우를 라보며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향수는 찾지 못했습니다. 현장에도 차에도 없었어요.”배현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알고 있었다. 그 향수는 이세림이 나에게 선물한 것이라는걸.도혜선은 다그쳤다. “그럴 리가요. 오늘 점심에도 지아 차에서 봤는데요. 어떻게 없을 수가 있죠?”“지아야, 잘 생각해 봐. 사고 날 때 향수가 차에 있었어?” 이미연도 조급해하며 물었다.“있었어. 향수는 항상 있었어. 그때 나는 가속페달을 밟을 힘도 없었어. 전에 경산 남원에서 차가 전복됐을 때도 딱 이 느낌이었고.” 나는 확신하며 말했다. “U턴할 때도.”배현우의 눈에 불이 일었다. 그가 화 난 목소리로 말했다. “아까 이세림이랑 통화했죠? 무슨 말 했나요?”“그냥... 배현우 씨가 샤워중이라고...” 나는 솔직
그녀의 말에 나는 조금 놀랐다.“차는 완전히 찌그러져서 폐차됐어. 다행히 화물차가 뒤로부터 들이받아서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정말 네가 어떻게 됐을지 상상도 못 해.” 도해선은 이어서 말했다. “만약 정말 조금만 더 심했다면... 아, 무서워서 상상하기도 싫어.” 도혜선이 머리를 감싸 쥐며 고개를 저었다.도혜선의 말을 들으니 죽음의 문턱에 다다른 순간 필사적으로 브레이크를 밟던 내가 생각났다.의사 선생님의 말씀대로 조금만 늦었더라면 사지가 모두 마비되어 침대에 꼼짝없이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있어야 했을 것이다.그 이후 사고 보도에 나온 자료 사진을 본 나는 깜짝 놀랐다. 차가 거의 절반으로 찌그러진 모습에 경악스러웠다.그리고 동시에 이세림의 강인한 심리상태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가 뜻밖에도 내 병실에 병문안을 왔던 것이다.그때 나의 병실에는 어머니와 도혜선이 있었다.이세림의 뒤로 한 보디가드가 따르고 있었고 그는 큰 꽃다발과 과일 한 바구니를 들고 있었다.그녀는 정말이지 당당한 태도로 걸어들어왔다. 그 태도에 당황스러워서 나는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이세림은 걱정 가득한 얼굴로 총총 내 침대 앞으로 달려왔다.“언니, 좀 어때요?” 실로 진심이 담긴 목소리였다. 내 손을 애틋하게 잡고 얼굴을 살피며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언니는 왜 이렇게 다사다난해요. 이번엔 교통사고라니. 너무 놀랐잖아요.”사정을 모르는 어머니는 의자를 옮겨주며 말했다. “아가씨, 여기 앉아요.”도혜선은 꼴도 보기 싫다는 듯 이세림을 흘겨보며 보디가드에게 소리쳤다. “물건 도로 가져가요. 금방 약품에 중독된 사람한테 이런 물건을 주려고 해요?”도혜선의 말이 끝난 후 나는 이세림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표정과 말투, 그리고 행동. 그 어디서도 움츠러듦이 없이 당당한 태도였다.“그럼 먼저 가져가세요.” 이세림이 보디가드에게 한마디 하자 그 남자가 물건들을 들고 나갔다. 나는 도혜선을 힐끗 보고 미소를 지으며 이세림에게 말했다. “개의치 말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