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희는 한쪽 입꼬리를 치켜올렸다, 예쁜 입술이 비뚤어졌지만 이런 모습조차 요염했다.“나는 한 대표가 순결한 사람인 줄 알았었는데, 순결을 지키려 할수록 욕망이 커지나 보죠, 큰 물고기 낚으려고 그래요? 새우같이 작은 건 거들떠보지도 않나 보죠?”이번에 그녀는 경멸에 찬 말투로 말했다.“이 사모님, 왜 이런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저 한지아가 사모님께 잘못한 게 있나요? 그래서 이 사모님이 이런 태도로 무례한 말들을 하시는 건가요?”나는 못 알아듣는 척하고 싶었지만, 그녀가 이렇게 대놓고 말을 하니 더는 회피할 필요가 없었다.“하… 이것도 무례한 말인가요?”전희는 사악한 표정을 지으며 한마디 했다.“영업이란 말이죠… 할 수 있으면 하세요, 여기저기서 후원자 찾지 마시고요, 몰래 아저씨들한테 아첨 떨며 고상한 척은.”“네?”나는 전희를 빤히 쳐다보았다, 이미 밉보였을 대로 밉보였으니 나도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돌아갈 수 없음을 느낀 나는 그녀와 화해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그러면 수고스럽겠지만 이 사모님이 돌아가셔서 이 사장님께 물어보세요, 제가 어떻게 아첨을 떨었는지.”나는 전희가 말한 큰 물고기가 무슨 뜻인지 알고 있었다, 그녀가 말하는 것은 이청원이 나를 도와 공사 기간을 해결해준 일을 말하는 것이었다.그런데, 이청원이 손을 써서 나를 도와 줬다는 것은, 전희의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아니면 이청원도 전씨 가문을 형원그룹에서 내쫓지 않았을 테니까.이럼으로써 전희도 이청원 앞에서는 그저 그림의 호랑이일 뿐이었다. 보아하니 이청원 이 사람은 여자들에게 휘둘리는 사람이 아니었다.나는 이청원에 대한 인상이 또 조금 좋아졌다.“영업하면서도 각자 걷고 싶은 길이 있어요, 나 한지아는 그따위 낯뜨거운 수법으로 뒤에서 못 할 짓 안 해요. 수치스러운 일은 더더욱 안 하고 동업자를 괴롭히고 나 혼자 시장 독차지하는 일도 안 하고요, 저는 그냥 작은 상인이에요, 이 사모님 같은 자본도 없어요!”내 말은 비굴하지도 거만하지도
남원 쪽을 바라보며 한심한 나 자신을 비웃었다, 나는 이대로 한참을 차 안에 앉아 있었다.차들이 많은 퇴근 시간이 지나서야 나는 집으로 가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차 안에 너무 오래 앉아 있어서인지 너무 힘들었다, 머리도 어지러웠고 힘이 없었다.다행히 이 시간엔 도로 위에 차들이 별로 없어서 금방 집에 도착했다.차를 세우는데 딸아이가 정원에서 신나게 놀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니 콩이가 작은 새처럼 내 품에 날아와서 안겼다.“엄마! 왔어요?”말을 마치고는 내 가방을 들고 쏜살같이 집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그리고는 다시 달려 나와서 나를 붙잡고 정원에서 놀았다.집에 들어가서 눕고 싶었으나 딸아이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도저히 거절을 할 수가 없었다.딸아이와 정원에서 잔디에 물도 주고 꽃들도 심으며 우리는 정원의 불이 켜질 때까지 신나게 놀았다, 엄마가 밥을 먹으라고 불렀고 그제야 우리는 손을 잡고 집으로 들어갔다. 정말 신기하게도 어지럽고 힘없던 것이 말끔히 없어졌다.밥을 다 먹고 나니 콩이 옷을 사 온 게 생각나서 얼른 차로 가서 물건들을 챙겨왔다. 딸아이에게 옷을 입혀보니 아이가 어느새 많이 커 있었다, 작은 사이즈 옷들 때문에 옷이 몸에 딱 달라붙었다.보아하니 내일 다시 옷들을 바꾸러 가야 했다, 나는 딸아이를 꼭 껴안고 볼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우리 딸, 언제 이렇게 컸어? 엄마가 몰랐네, 우리 딸 곧 숙녀 되겠는걸.”“엄마, 나 다섯 살이에요!”딸 아이가 자랑스럽게 말했다.“아빠랑 아저씨는 왜 아직도 안 와요? 내 생일에 온다고 말했어요, 선물로 태블릿PC를 준다고 했어요.”나는 갑자기 속이 뒤집혔다, 나는 딸아이를 꼭 안으며 말했다.“금방 오실 거야, 아저씨… 외국에 나가셨어.”“외국은 어디에요? 아저씨는 왜 그렇게 외국에 자주 나가요?”콩이는 얼굴을 괴고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나를 보고 물었다.“외국은 아주 먼 곳이야, 또 다른 도시이고 여기랑은 다른 도시야.”나는 간단하게 대답했다.“엄마, 우리도 외국에 가보면
뒤에 있는 사람들은 아직도 앞쪽으로 밀려오고 있었다, 나는 인파에 밀려서 점점 무대 쪽으로 가고 있었다.나는 이들이 무엇에 열광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모두 방방 뛰며 소리를 질러 댔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무대를 쳐다보고 있었다.나는 드디어 다부진 몸매에 우월한 기럭지를 뽐내는 배현우를 보았다. 검은 정장에 검은 셔츠 은색 넥타이를 한 그는 매혹적인 웃음을 띠며 무대에 올라섰다. 그는 별처럼 반짝거렸다, 너무 멋있었다.나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나는 병원에서 배현우를 본 이후로 오늘 그를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는 더욱 건장해진 것 같았다, 그는 천하를 깔보는 왕의 풍모를 풍기고 있었다.어쩐지 무대 아래 있는 여자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미쳐 있었다, 가까운 거리였다면 그녀들은 바로 덮칠 기세였다.모든 사람이 GY주얼리 브랜드의 제품을 사고 싶어 했다. 그런데 롯데몰과 GY주얼리, 이 모든 것이 배현우의 것이라니 나는 상상도 못 했다. 나는 천우 그룹이 오직 개발만 하는 줄 알았었다, 그런데 백화점과 주얼리라니, 보아하니 나는 아직 모르는 게 많았다.배현우는 손을 흔들며 무대 아래 관중들에게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그 순간, 몇천 명의 관중들이 한순간에 조용해졌다, 배현우의 마력적인 목소리가 로비에 울려 퍼졌고 그는 간단하게 몇 마디 했다, 한소연도 도취하여 웃고 있었다, 그녀는 끊임없이 자세를 바꾸며 우아하게 그의 옆에 서 있었다.그리고는 둘이서 쇼핑백 당첨 번호에 사인했다. 모든 준비를 마친 그 둘은 서로를 마주 보며 웃었다, 배현우는 마치 한소연을 지켜주는 든든한 천사 같았다, 그는 한소연의 옆을 지키며 무대를 내려가 관중들의 시야에서 사라졌지만, 로비는 아직도 열기로 뜨거웠다, 한참이나 관중들의 외침이 끊이지 않았다.정신을 차린 나는 있는 힘껏 관중들 사이를 비집고는 위로 올라갔다, 위층에는 아래층보다 상황이 아주 좋았다. 위층에는 사람들이 그나마 적었다.보아하니 한소연을 인기 스타로 만든 사람은 다름 아닌 배현우
“네, 시간 있습니다, 어디세요?”내가 대답했다.“저는 지금 예전에 만나 뵈었던 그 회의실입니다, 제가 위치 보내드리죠.”“네.”나는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청원이 바로 위치를 보내왔다.나는 위치를 파악하고 차를 돌려 회의실로 갔다.도착해보니 이청원이 벌써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이 대표님!”나는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갔다, 그도 격식을 차리지 않았다, 그는 나에게 차를 한잔내어 주었다.“한지아씨, 제가 한지아씨에게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이청원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눈앞에 있는 이 남자에 대한 인상이 점점 좋아졌다, 그는 시원시원하며 거짓이 없고 호기로웠다.“말씀해보세요.”나도 격식을 차리지 않고 대답했다.그는 시원시원한 나를 보고는 자신의 뒤에 있던 서류 가방에서 자료 한 장을 꺼내어 나에게 주었다.“이거 먼저 봐보세요.”나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그를 한번 쳐다보고는 자료를 받아 보았다, 이것은 계약서였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프로젝트 계약서였다, 그런데 형원그룹의 계약서는 아니었다.나는 꼼꼼하게 계약서를 살펴봤다, 개발면적이 작지 않았다, 잘 세워진 계획이었다.이청원이 나에게 이것을 보여주는게 무슨 뜻인지 나는 알수가 없었다, 나는 계획서를 다 보고 난 뒤 이청원을 바라봤다.“이 사장님…”“이것은 담보 계획서입니다, 지금 그쪽에서 갚을 능력이 안 되어서 지금은 내 계약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형원에서는 하고 싶지 않아서 한지아씨를 불렀습니다, 한지아 씨는 이쪽에 흥취 있으신가요? 물론 모든 절차는 다 갖추어져 있습니다, 한지아씨를 귀찮게 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이청원이 엄숙하게 나를 바라봤다.“나를 도와주는 셈이네요.”“저… 생각을 좀 해봐도 될까요? 우리 회사에 동업자가 한 명 더 있습니다, 저 혼자서 판단할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저는 계약서밖에 있었던 일도 더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당연하지만 이 사장님께서 저를 믿어주셔야 합니다.”“그건 당연하죠!”이청원이
내가 회사로 갔을 때 모두 퇴근하고 없었다, 장영식만이 사무실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들어오는 길에 복도에서 퇴근하는 이동철을 만났다. 나는 그와 함께 장영식 사무실로 갔다.나는 그 둘에게 이청원이 나에게 들려줬던 이야기들을 자세히 들려주며 장영식에게 계약서를 보여줬다.장영식은 계약서를 다 읽은 후 이동철에게 넘겨줬다.이동철도 이 계약이 간단한 계약이 아니라며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그럼 우리도 신중할 필요가 있겠어요, 제가 완곡히 거절해 볼게요.”내가 그 둘에게 말했다.“우리 회사가 이제 막 상황이 호전되고 있는데 이런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어요.”“받아도 괜찮을 것 같아요, 이청원이 말했다시피 조건은 우리가 말하면 돼요, 내가 보기에 이건 기회예요.”의자에 기대어 한참을 생각하던 장영식이 다시 이어 말했다.“불편하면 내가 내일 가서 얘기할께.”“공평하게 나누시려고요?”이동철이 장영식을 보며 말했다.“저 그렇게 욕심 많은 사람 아닙니다, 그런데 위험이 따른다면 미리 위험을 막을 준비와 조건을 갖춰야죠, 이 청원도 이미 한 대표님에게 조건을 말씀하시라고 했다면 우리도 사양할 필요가 없죠.”“그런데 그분은 우리가 제일 어려운 시기에 도와준 사람이에요, 이번에는 이 청원도 말했다시피 우기가 그를 도와주는 셈이죠.”“이것도 도와주는 거예요, 도움은 여러 가지 방식과 형식이 있죠, 어떤 일인지도 봐야 하겠지만 그를 도와주는 건 무조건 도와줘야 해요, 그런데 이번 건은 도와주는 게 위험이 좀 따르네요, 그리고 상업상 우리도 이익에 관해 얘기를 안 할 수는 없어요.”장영식은 역시 나보다 생각이 깊었다.이동철도 장영식의 말에 동의했다.세 명이 머리를 맞댄 결과 장영식을 보내 이 청원과 조건을 협상하게 하였다.비록 우리 세 명이 머리를 맞대고 생각한 결과였지만 나는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하지만 그 둘은 이 청원이 조건에 동의할 거라는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결정을 마치고 우리는 회사를 빠져나왔다, 때마침 엄마에게서 전화가
나는 자기 생각에 흠칫 놀랐다. 설마 배현우가 배유정의 시선을 돌리려고…? 왜 자기 뜻을 알아듣지 못하느냐던 그의 질문이 다시 떠오르자 손이 떨리고 심장이 벌렁대기 시작했다. 사방이 빙빙 도는 듯 어지럽고 울렁거렸다. 방안에 사람만 없었어도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그에게 묻고 싶었다. 만약 정말 그런 거라면 난 그야말로 멍청하기 짝이 없는 짓을 한 거였다. 그의 마음을 조금도 헤아리지 못했으니 말이다. 난 애써 멘탈을 잡고 감정을 추슬렀다. 적응은 안 되지만 그는 매정한 걸 못 견뎌 하기에... 더는 핑계 대지 말고 내려놓기로 했으니 끝까지 가자.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가 함께하는 길은 좋을 수가 없으니...밥을 먹고 나는 장영식 그리고 이동철과 함께 내일 이 청원을 찾으러 가는 일에 대해 좀 더 상의했다. 나는 일을 벌이면서도 불 난 집에 도둑질하러 가는 느낌이 들어 내심 걱정스러웠다. 그러자 장영식은 이건 비즈니스고 우리가 우리의 이익을 지켜야 그도 마음이 편할 거니 이익 때문에 의리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그가 다른 사람을 찾지 않은 건 찾을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야. 이 정도 이익이 아까워서도 아니고. 아마 우리가 최적이라 생각해서겠지. 왜 우리가 최적인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말이야. 하지만 그가 우리의 계약이 성사되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는 건 확실해. 그게 아니면 우리의 조건을 다 맞춰줄 거라는 약속을 했을 리가 없지. 넌 그가 몇 년 동안 일하면서 믿고 맡길 사람 하나 없을 거라 생각하는 거야?”그의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엔 나도 그렇게 생각하긴 했지만 이렇게 명료하게 분석해내진 못했었지.이튿날, 난 장영식과 함께 청원을 만나러 갔다. 예상대로 그는 담담하게 우리를 대했고 장영식도 에둘러 말하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청원은 대담하게 비용은 반반으로 나누되 이익은 3:7이라는 조건을 제시했다. 그러나 모든 수속은 우리 측에서 그쪽과 계약하길 요구했다. 영식은 고민 끝에 혹시 모를 경우를 대비해 청원 쪽의 권리양
나는 콩이의 변화를 느끼고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미 나의 손을 뿌리치고 밖으로 달려나가는 콩이...“삼촌!”나는 콩이가 달려가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배현우... 그를 본 순간 나는 몸이 굳어버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그때 흥분에 겨워 뛰어가던 콩이는 그만 발을 헛디뎌 그대로 앞으로 몸이 기울었다. 나는 그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러나 바로 손을 뻗어 콩이를 받아내는 배현우. 그의 몸은 관성에 의해 그대로 바닥에 풀썩 주저앉아버렸다.나는 급하게 달려 나갔지만 둘은 이미 둘만의 세상에 빠져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콩이는 그 짤막한 두 팔로 배현우의 목을 꼬옥 둘러 안고 말했다.“삼촌 최고야!”콩이의 귀여운 한마디에 나도 그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배현우의 조각 같던 얼굴에는 따뜻한 미소가 번졌고 두 눈에서는 꿀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만인의 동경을 받는 고고한 왕자님 같던 배현우가 어린애를 보며 이토록 달콤하게 웃다니. “얼른 일어나 봐요. 넘어진 데는 괜찮아요?”나는 머뭇거리며 말을 건넸다. 그는 그저 잠깐 고개를 돌려 나를 한 눈 보고는 이윽고 손에 들고 있던 상자를 콩이에게 건네며 말했다.“Happy birthday!”콩이는 상자를 보고는 토끼 눈을 하며 물었다.“고마워요 삼촌! 이거 혹시 최신 태블릿이에요?”“그럼!”배현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콩이는 기쁨에 겨워 그의 품에 와락 안겼다.“ 삼촌 약속 지켜줘서 고마워요!”그의 품에 안겨 얼굴에 뽀뽀 세례를 하는 바람에 배현우는 하마터면 뒤로 넘어질 뻔했다. 나는 그제야 주변 사람들이 우리 쪽을 힐끗힐끗 쳐다보는 걸 느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배현우는 어딜 가든 이목을 끄는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둘만의 세상에 빠져있다. 그제야 그는 콩이를 안고 일어섰다. “이제 엄마랑 집으로 돌아가.”그의 말에 콩이는 의아해하며 물었다.“삼촌은 집에 같이 안 가요?”나와 배현우는 잠깐 멈칫했다. 그의 시선이 나를
"아이고, 자네 정말 오랜만이네!" 아빠가 먼저 반응 빠르게 반겼다.싸늘한 분위기는 이 열정 넘치는 인사에 점점 녹았고 배현우도 따뜻하게 웃으며 안부 인사를 했다."아버님, 오랜만입니다. 요즘 계속 바빠서 인사도 못 드렸어요. 그 간 몸은 좀 괜찮아지셨나요?" "외할아버지, 삼촌이 저한테 엄청 좋은 선물을 주셨어요! 이제 콩이 생일도 함께 보내주신대요!“행복해하는 콩이와 달리, 나는 매우 난처했다. 얘는 정말, 자기 엄마 처지를 헤아려 주지도 않네."정말?“쾌활하게 웃으며 손녀와 말하는 아빠를 보니 살짝 놀라웠다. 연기 실력이 언제 저렇게 느셨지?"네!" 콩이는 활짝 웃으면서 답했다. 그 모습이 또 얼마나 사랑스럽던지."삼촌, 그렇죠?""응! 콩이랑 약속했으니 꼭 지켜야지!" 이 인간, 오늘따라 말은 왜 또 이렇게 많은 거야!나는 서둘러 콩이를 끌어당기며 말했다."그러면 빨리 내려와. 엄마랑 옷 갈아입으러 가자!“콩이는 현우가 도망이라도 갈까 봐 그의 목을 꼭 끌어안았다."난 삼촌이랑 갈아입을래!“어이가 없었다. 둘이 언제 이렇게 친해진 거야!"콩이는 여자라서 엄마랑 갈아입어야 해. 삼촌 어디도 안 갈 거니까 걱정하지 마! 외할아버지랑 얘기 나누면서 기다릴게.“현우는 콩이랑 약속했다. "생일인데 예쁘게 입고 와!“콩이는 그제야 손을 떼고 내 품에 얌전히 안겼다. 그러나 계단을 올라가면서도 현우에게 자기를 기다려 달라 신신당부했다."저 빨리 내려올 거니까 삼촌 절대 가면 안 돼요! 콩이를 꼭 기다려 주세요!" 배현우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앉아서 엄마 아빠와 얘기를 나눴고, 나는 콩이를 방으로 데려갔다. 콩이는 빨리 현우를 보고 싶은 마음에 떼쓰지 않고 나를 잘 따라주었다. 그래서인지 평소보다 빠르게 옷을 갈아입고는 혼자 아래층으로 뛰어 내려갔다.콩이를 보내고 나도 방으로 돌아갔다. 심장은 아직도 두근두근 뛰었고, 지금은 손마저 덜덜 떨렸다.치마로 갈아입은 나는 옅은 화장도 하면서 예쁘게 꾸몄다. 나도 내 행동이 이
나는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 마지못해 고개를 들어 서강민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서강민 씨, 먼저 들어가시죠. 언니가 깨서 서강민 씨를 보면 또 흥분할 것 같은데... 지금 같은 상황에 언니가 회복하는 게 제일 중요하잖아요.”그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는 않았지만, 나는 한마디 더 보탰다.“어떤 일들은 천천히 해야 해요. 언니한테 시간을 좀 주세요. 서로 생각을 정리해 봐요.”서강민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않고 깊은 잠에 빠진 도혜선을 한참이나 지켜보았다. 발길을 돌리기 전에도 아쉬움에 한 번 더 뒤돌아보며 나한테 말했다.“고생해 줘요.”나도 담담히 답했다.“제가 해야 할 일인걸요. 언니에게 시간을 좀 줘요. 언니도 회복할 시간이 필요할 수 있잖아요.”내가 말하는 회복이 뭔지는 서강민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건 도혜선이 마음에 입은 상처였다. 오늘 도혜선의 행동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그녀의 상처는 아물 수 없을 것이다. 언급만 해도 피가 흘러내릴 만한 상처였다.잠시 후, 서강민은 한발 물러섰지만, 눈길은 여전히 도혜선에게 머물러 있었다. 평온해 보이는 모습 아래에서 어떠한 파도가 휘몰아치는지 나는 몰랐다.한참 전 도혜선이 했던 말들은 마디마디가 주옥이었다. 모두 그녀가 마음속으로만 담아두었던 것들이었고 또한 서강민의 약점이었다. 얼마나 아플지는 서강민 본인만 알고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쓰디쓴 독주도 그는 혼자 삼켜내야만 했다.도혜선의 눈가가 파르르 떨려와 깨어나려는 낌새가 보이고 나서야 서강민은 조용히 병실을 나갔다.나는 마음이 아파와 한숨을 내쉬며 손을 뻗어 도혜선의 손을 맞잡았다.인제야 하루 종일 배현우에게서 연락이 없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그쪽에는 어떤 상황인지, 김우연에게서는 소식이 없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도혜선을 보니 아직 깨어나지 않은 것 같아 살며시 그녀의 손을 놓고 일어서려 했을때, 그녀는 다시 나를 잡으며 미약한 목소리로 말했다.“가지 마...”나는 너무 놀라 얼른 그녀를 향해 몸을 돌렸다.
‘서강민은 본인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기나 하는 걸까?’“당시의 사고는 내가 저지른 거야. 그녀도 나 때문에 다쳐서 지금처럼 된 거고… 나는 좋은 남편이 아니야. 아내가 식물인간이 되었는데 나는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으니 말이야...”서강민은 여기까지 말하며 후회하는 기색을 내비쳤다.“그녀를 마주할 때마다 너무 죄책감이 들고 고민스러워. 나 또한 발버둥 쳐봤지.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나의 일탈을 받아들일 수 있어 해. 그녀한테 정말 미안한 일이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내가 널 사랑하고 있다는 거야...”“강민 씨!”도혜선은 꾸짖는 듯한 말투로 그의 말을 잘랐다.“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당신 아내가 듣고 있을 거예요. 저를 끌어들여서 같이 속죄할 생각하지 마세요. 저는 당신의 구세주가 아니에요. 저는 그냥 사람답게 살고 싶은 평범한 여자라고요. 저 좀 그냥 내버려둘 순 없어요?”도혜선은 말하면 할수록 화가 치밀어 올라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하얗게 질린 얼굴이 일그러지며 그녀는 한 손으로 본능적으로 가슴을 움켜쥐었다. 나는 깜짝 놀라 그녀 앞으로 갔다.“혜선 언니, 움직이지 마! 위험해...”늑골 골절과 뇌진탕이 있는 환자다 보니 이러한 행동은 그녀에게 너무나도 위험했다.도혜선은 손을 들어 그녀를 안으려고 하는 한지아를 제지했다.“제가 오늘 한 말이 아직도 이해가 안 되나요? 서강민 씨, 저의 인생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당신한테 묶여 당신의 부속품이 되었었는데 저도 자존심이 있어요. 더 이상 당신처럼 지난날의 죄책감을 짊어지며 답답하게 살아가지 않을 거예요.”도혜선은 여전히 분노에 차 외치고 있었다.“매일 제 앞으로 와 지난날의 행동에 대해 속죄하라고 일깨워 주실 필요 없어요! 당신을 보면 저는 지난날 모든 서울 사람의 웃음거리가 되었던 치욕적인 과거가 떠올라요. 당신은 마음 가는 대로 해요. 당신은 아내와 했던 약속을 지켜야 해요.”말을 마친 도혜선은 숨이 차올랐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보였다.
도혜선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계속하여 들려왔다.“당신은 아무런 부담 가질 필요 없어요. 저 같은 여자 마음속에 담아두지 않아도 돼요.”그녀는 자기비하적인 말을 내뱉었다.”선아...”“설사 강민 씨가 와이프와의 약속을 안 지킨다 해도 당신의 신분과 지위로 당신에게 더 어울릴만한 사람 충분히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저는 당신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에요. 하물며 당신네 부부 눈에는 저는 그냥 염치없고 미천한 사람일 뿐이죠. 저 같은 사람은 본처가 되기에 적합하지 않아요. 사모님이라는 호칭도 어울리지 않죠.”“나는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 오해하지 마.”서강민은 조급함에 한 발 앞으로 나서며 해명하려 했다.하지만 도혜선은 손을 들어 그를 막아섰다.“강민 씨... 해명하지 않아도 돼요. 당신의 행동이 모든 걸 설명해 주고 있어요! 장담하건대 아직 당신들이 어떤 의도로 얘기하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바보가 된 건 아니에요. 그녀는 정말 대단하네요. 죽을 때까지도 제가 이길 수 없는 사람이었어요. 그녀는 아무리 병상에 누워있어도 고상한 사람이고 저는 그냥 미천한 사람일 뿐이니 말이에요.”도혜선은 말을 내뱉으며 입가에 처량한 미소를 비췄다. 누가 봐도 가슴 아픈 미소였다.“이전의 저는 확실히 허례허식에 차 있는 사람이었지만 저도 성장했어요. 정신 차렸어요. 당신 앞에 있는 저의 진정한 가치가 어떤 것인지 깨달았어요. 저는 하나의 도구, 들러리뿐이었지만 원망하지 않았어요.”그녀는 여기까지 말하고 한숨 돌렸다. 얼굴빛은 아까보다 더 창백해져 있었다.“하지만 이제 저는 자존감을 챙기며 살고 싶어요. 누군가에게 의탁하지 않고 쓰레기같은 취급을 받더라도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며 살고 싶어졌어요.”점점 더 차가워지는 도혜선을 바라보며 서강민은 답했다.“혜선아, 나는 널 한 번도 무시한 적 없어. 나는 그냥 내가 뭘 하든지 네가 다 이해해 줄 줄 알았어.”도혜선의 서강민의 말을 듣고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안색은 더 창백해져 있었다.“이해? 당신이 어떤 말을
방금 허투루 한 말이 어머니의 진실인가 싶다. 보아하니 어머니가 나를 속이는 일이 있는 것 같았다. 마음속의 의문점이 점점 많아졌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식사를 마치고 차씨 가문의 할머니께 말씀을 드린 후, 위층으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고 도혜선을 보러 가려고 준비했다.그리고 팔도 겸사겸사 검사하려고 했다. 차에 앉고 나서 배현우한테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았다. 이 이른 아침에 뭐 하러 갔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김우연 쪽에 무슨 소식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했다.'생각해 보니 이렇게 빠르진 않겠지? 몇 시간밖에 안 됐는데.'병실에 도착하자마자 도혜선이 노발대발하는 장면을 포착했다. 병실에는 도혜선과 서강민 두 사람만 보이고 이미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내가 들어서자 분위기가 좀 이상하고 심상치 않는 것을 느꼈다.침대 옆 머릿장에는 보온병이 놓여있다. 서강민은 오늘도 도혜선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주러 온 것 같다.서강민은 침대 앞에 떡 하니 서있었고 침대에 있던 도혜선은 차가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도혜선은 내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 같았다.상황을 정리하려고 다가가서 서강민에게 인사를 하고 도혜선에게 다가갔다. "오늘은 좀 어때?""별로야."도혜선은 차갑게 대답하더니 또 말을 건넸다. "지아야, 손님 좀 배웅해 줄래?"난감했다, 도혜선은 서강민을 내쫓으라고 하는 거였다. 난 당연히 그 뜻을 알고 있다. 조심스럽게 서강민을 쳐다보았다. "혜선아, 꼭 이래야 하니?"서강민은 씁쓸한 표정으로 도혜선을 바라보며 물었다."네! 서강민씨, 저는 이미 분명히 말했고 두 번 다시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도혜선은 내가 그 자리에 있다고 해서 서강민의 체면을 세워주지 않았다.참지 못하고 웃어 버렸다. "언니, 화 그만 내고 진정 좀 해. 초조해하는 거 알아, 점차 좋아질 거야. 강민씨랑 얘기 좀 하고 있어. 나는 팔 검사해야 돼서, 금방 돌아올 거야!"나는 핑계를 대고 떠나서 그들에게 자리를 비워주었다.
배현우는 나의 우울한 모습을 보고 말했다. "그리고 내가 없는 동안에 회사 일도, 한심로얄의 마지막 한방도 둘 다 포기할 수 없잖아요. 신예 쪽 일도 있고, 전희가 다시 살아날 기회를 얻지 않도록 조심해야 돼요. 지금 모든 게 중요한 시기이니까요.""지금 그 누구도 아버지보다 중요하지 않아요! 수십년간 도망치면서만 살았는데 죄책감도 가지고 있었을 거예요, 분명 아주 괴로워하고 있을 거예요. 그리고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무도 모르고 있는데, 내가... 내가 딸로서, 난..."배현우는 내 말을 듣고 나서 침대에 누워 나를 꼭 껴안고 말했다. "일단 내일 소식을 기다려 봅시다. 김우연 쪽에서 어떤 정보를 얻었는지 보고 결정합시다."배현우는 나의 어깨를 툭툭 쳤다. "제 말 듣고 일단 자세요, 내일 일어나서 먼저 할 일들을 처리하고 준비하고 있으세요, 만약에 상황이 좋으면 내일 같이 데리고 갈게요, 당신 마음 충분히 이해해요."배현우가 지금 나를 위로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다. 내가 기분 나빠하는 모습을 보지를 못한다.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좀 편해지는 것 같았다. 배현우의 따뜻한 품에 안기며 눈을 감고 내일 먼저 무엇을 처리해야 할지 생각했다.근데... 눈을 떠서 배현우를 쳐다보는데 배현우도 잠에 들지 않았다. "현우씨... 할머니가 보존하고 있는 CCTV를 보여주시겠어요?"'그 영상을 꼭 보고 싶었다, 알고 싶었다. 어머니가 어떻게...'"알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자세요, 나중에 보여 드릴게요. " 팔짱을 끼더니 분명히 나를 얼버무리고 있는 것이다. 배현우가 그 장면을 내게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밤이 깊었고,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배현우의품에 안겨 점점 잠이 들었다. 아침이 밝았다. 날씨는 여전히 흐렸다. 배현우는 이미 곁에 없었고, 손을 뻗어 그가 누워 있던 곳을 만졌다. 이미 차가운 걸 보니 배현우는 일찍 침대에서 일어났나 보다.'무슨 소식이라도 왔나?'이
"할머니가 이번 사건을 피할 수 있었던 건 당시 큰 병을 앓은 것에 대해 감사해야 했어요. 제 생각에는 반은 꽤병인것 같아요. 직접 사표를 쓰고 나서도 서둘러 호주를 떠나지 않았다는 게 참 슬기로운 선택이었어요.""네?"너무 놀라서 몸 둘바를 몰랐다.배현우는 인정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는 호주를 떠나지 않으셨어요. 그곳에 머물면서 배씨 저택의 인기척을 살피다가 배씨 저택의 요상한 소문들이 완전히 자취를 감춘 뒤에야 조용히 호주를 떠나셨어요."나도 모르게 할머니의 메커니즘에 감탄했다."저도 그때 상황을 잘 몰라서, 할머니도 몸이 허약했고 내 행방을 알아 볼 길이 없어 그 비밀을 계속 지켜왔었나봐요. 부하들이 할머니를 찾고 나서도 여전히 어리석은 척을 하고 있었지 뭐에요."배현우는 그제야 미소를 지었다."할머니께서 저를 두눈으로 직접 보고서야 그걸 꺼냈어요."배현우의 말을 듣고 나니 할머니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러던 중 배현우가 나를 쳐다보더니 나의 지친 모습을 보고서야 손을 들어 대문을 열어 장벽들이 천천히 열리는 걸 볼 수 있었다.차는 왔던 길을 따라 경원으로 다시 돌아갔다. 벌써 자정이 되어 우리 둘은 차를 세우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층으로 올라가 방에 돌아왔다.'우리를 배신한 소인이 두 집안을 풍비박산 시켰다니. 오늘 밤 일어난 모든 일들은 듣고도 믿기지 않았다.'간단히 씻고 걱정 가득채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태어나서 얼굴도 한번 못 본 아버지가 어디 있는지, 밥은 먹고 다니는지를 걱정해 발 뻗고 자지 못했다. '한강인이랑 한걸은 이미 잡혔는데, 우리 아버지는? 그의 처지는 어떤지.''한씨 부자가 그저 아버지를 인질로 삼아 그들의 안전을 확보하려 했다면 왜 배현우는 그곳의 환경이 복잡하다고 했을가.''이유는 간단하다. 누군가 아버지를 미끼로 삼으려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를 보고 싶으려는 걸가?''배현우? 아니면 배유정?'생각할수록 더욱 걱정이 됬다.아버지의 이번생은 이미 충분히 힘들다.어머니랑 서로
나는 걱정스레 배현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배현우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계속 말했다.“후에 목격자 어르신을 찾고서 한강인을 자세히 조사하니 한강인은 이 모든 것이 일어난 뒤에야 천우 그룹을 떠난 거였어요. 지아 씨도 알잖아요. 그때 당시 천우 그룹은 아직 배유정 손에 있었어요.”“현우 씨의 말은 한강인은 배유정 과도 사이가 틀어졌단 말인가요?”나는 추측하며 물었다.“우리가 조사할 때 이상한 단서 하나가 나왔어요. 한동안 배유정도 한강인을 찾았고 심지어 한강인에 대한 추살령도 내렸어요! 참 이상해요. 배유정은 왜 한강인을 죽이라고 지령을 내린 걸까요?”“이유는 하나뿐이죠. 즉 한강인이 분명 무엇을 알아냈거나? 아니면 어떤 일에 참여하였거나?”나는 대답했다.배현우는 고개를 끄덕이었다.“진백이 죽임을 당했듯이 이 안에는 분명 남들한테 들키면 안 되는 비밀이 있는 거겠죠. 우리는 이 단서를 따라 계속 추적해 보니 한강인의 혐의가 점점 더 드러나더군요. 그리고 그의 아들 한결도 같이 도망쳤어요.”“그러고 보니 이 안에는 분명히 또 다른 요소가 있겠네요!”나는 사색에 잠겼다.“그래서 우리는 추측했죠. 한강인은 확실히 이 사건이랑 연관이 있고 둘이 도주하는 과정에 서로 연락하는 빈도를 보아서 부자 둘은 서로 다른 곳에 있는 것으로 판단했어요.”“그리고 한강인이 도망 다니는 그 시기에 그의 모친이랑 누나 모두 영문도 모른 채 실종되었어요. 지금 보니 그분들은 아마 이미 이 세상을 떠난 것 같네요. 이 때문에 한강인은 고두리에 놀란 새가 돼서 끊임없이 도망치며, 이 또한 한강인이 지금의 상태로 되게 한 원인인 것 같아요. 사실 한강인은 원래 지금의 모양이 아니거든요.”배현우의 말을 듣자 나는 저도 모르게 아까 보았던 한강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한강인은 극도의 공포 속에서 엄청 정신적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아니면 다른 기타 방식으로 정신을 잃지 않게 버티고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사람이 저렇게 말라죽을 정도일 리가 없다.“그리고 한 가
배현우는 나를 한눈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었다.“맞아요. 제 씨 어머니가 얼마나 총명한지 그 누구도 생각지 못했어요. 제 씨 어머니는 책 속에 카메라를 숨겨두고 만약 사고가 난다면 여기에 있는 이 물건을 숨겨두었다가 훗날 믿음직스러운 사람에게 주라고 할머니한테만 똑똑히 당부해 두셨어요!”나는 코가 찡긋거리더니 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다.“보아하니 제 씨 어머니는 분명 위험이 닥칠 거라는 것을 미리 예감했던 거네요!”배현우는 안색이 조금 어두워지더니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갑자기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제 씨 어머니는 만약 자신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할머니더러 애들을 데리고 허씨 가문으로 가라고 할머니한테 당부하셨어요.”나는 끝내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고 코를 훌쩍이었다.배현우는 자기 손을 꽉 움켜쥐며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참 생각지도 못한 게 모든 것이 제 씨 어머니의 예상대로 일어났고 감춰둔 카메라에 모든 것이 담겼어요! 근데 할머니는 제 씨 어머니의 뜻대로 우리 둘을 순리롭게 허씨 가문으로 데려가지 못했어요.”“급한 나머지 할머니는 고씨 가문에만 소식을 전했고 그마저도 나쁜 놈들보다 동작이 빠르지 못해 그들이 지아 씨를 데려간 후였어요. 그래서 저만 고씨 가문에서 데려갔어요.”나는 눈물을 닦아내면서 그때 당시의 내가 얼마나 힘없고 무력했을지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다. 갑작스럽게 어머니가 돌아가신 데다가 배현우와 억지로 갈라지게 되었다.배현우는 내 손을 꽉 잡으며 손에 힘을 주었다.나도 배현우 지금의 심정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날 배현우는 눈앞에서 억지로 끌려 나가는 나를 보기만 하고 반항할 수도 없는 그런 무능력함은 아마 배현우한테 평생 잊지 못할 아픔이 되었을 것이다.차 안은 갑자기 조용해졌고 자동차가 앞으로 가는 소리밖에 안 들렸다.한참 뒤에야, 배현우의 잠긴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이런 것들을 찾은 후에야 비행기 추락 사고가 떠올랐고 이로써 모든 것들이 비로소 한강인을 추측하게 했으며 그 이후에 우리는 한강인
이 소식은 그야말로 나를 입이 떡 벌어지게 했다. ‘나를 데려간 게 어떻게 그 사람이지?’“맞아요. 우리는 유일한 목격자를 찾았어요. 그 당시 그쪽 산에서 약재를 캐는 어르신이신데 그때는 중년인이셨어요. 하늘의 뜻인지, 우리가 수년을 찾아 헤맨 끝에야 비로소 이 참극의 전부를 직접 목격한 증인을 찾아냈어요.”“그 어르신 정말로 전체 과정을 모두 목격하셨나요?”나는 믿어지지가 않았다. 배현우 얘네가 얼마나 큰 공을 들여야 바다에서 바늘 건지는 것 같은 일을, 그것도 몇 년이 지났는데도 당시의 목격자를 찾아낸 걸까.“어르신의 말로는, 당시 자기는 산 위에서 내려오는 도중에 잠시 계단에서 쉬고 있었는데 그러다가 아래 도로에서 일어나는 광경을 목격했다고 해요. 알다시피 외국에서는 약재를 캐는 일은 엄청 드물어요.”배현우는 엄청 뿌듯한 말투로 말했다.“우리 형제들이 엄청나게 고생 많았어요. 십수 년을 하루같이 귀찮음을 마다하고 사건 지역을 탐방하러 다니면서 일말의 흔적도 소홀히 하지 않았어요.”나도 믿어지지 않아 입을 열었다.“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어요. 참 노고가 많았어요.”“어르신이 말씀하기를 당시의 장면은 엄청 아슬아슬했대요. 부딪힌 차는 거의 굴러떨어지기에 일보 직전이었는데 후에 폭발했대요. 어르신은 우리의 차가 폭발한 뒤 키 크고 마른 한 남자가 차에서 내리는 걸 똑똑히 봤다고 해요. 그리고 그 남자는 길 왼쪽의 언덕 아래로 달려가 무언가를 찾았대요.”배현우는 그때 당시의 장면을 묘사하였다. 나는 머릿속으로 그때 당시의 상황을 필사적으로 상상해 내려고 하니 머리가 또 아파 났지만, 배현우가 말을 멈출까 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당시에 일어난 이 모든 것, 전부 나한테는 엄청난 매력이었다. 나는 지금 내가 찾아낸 산산조각 난 퍼즐들을 하루빨리 제 위치에 맞춰서 하나의 완전한 그림을 만들어 내고 싶었으며 그때 당시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을 되찾고 싶었다.그 뒤로 난 어떻게 Z 국의 만덕동에서 떠돌게 되었고 또 어떻게 지금의 한지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