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눈길은 그대로 헤라에게 고정되었다.헤라는 나의 시선이 불쾌했는지 나를 한번 흘겨보고는 다시 손에 들려진 시공도에 눈길을 돌렸다.“확실히 시공도가 유출되지 않았음은 저희 측에서 확신할 수 없습니다. 시공도를 천우 그룹의 프로젝트팀과만 주고받은 게 아닌 건 맞습니다.” 나는 거리낌 없이 배현우의 질의에 응하며 인정했다. “이건 확실히 저의 불찰이 맞습니다. 죄송합니다.”“그럼 한 대표님께 묻겠습니다. 누가 또 시공도를 본적이 있습니까?” 배현우는 여전히 날카로운 목소리로 나에게 물었다.배현우의 질문은 확실히 날카로웠지만 나에게는 오히려 더욱 부드럽게 다가왔다. 지금 그는 내가 계속하여 말해나갈 수 있도록 격려하고 있음을 나는 알고있기 때문이다.그때 내 휴대폰의 진동 소리가 느껴졌다.“저는 전에 시공도, 검토 보고서, 설명서, 그리고 합격증명서까지 모든 관련 서류들을 직접 천우 그룹 디자인팀에 제출한 적이 있습니다.”나는 목소리에 힘을 실어 서술했다. 그리고 디자인팀의 의의를 유인하기 위해 일부러 디자인팀에 제출했다는 점을 더욱 강조하여 말했다.아니나 다를까,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디자인팀의 양재준의 불만을 자아냈다.“무슨 뜻입니까 한 대표님. 이 모든 게 저희 디자인 팀이 꾸민 일이라도 된다는 겁니까? 저희 디자인 팀이 이 회의에 참석한 건 오로지 시공 도를 체크해주기 위함인데 이렇게 바로 저희에게 덮어씌우신다면 곤란하죠. 애초에 이번 프로젝트 시공도는 저희 디자인팀에서 검토한 적도 없습니다.”천우 그룹의 디자인팀 소속 인원들은 모두 상당히 오만한 태도를 지녔다. 물론 그 오만함에는 뒤따른 자본이 존재한다. 천우 그룹의 디자인팀은 이미 세계적으로 상당히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국제적으로 유명한 많은 랜드마크들과 건축물이 천우 그룹의 디자인팀을 거쳐왔기 때문이다.하여 그들은 이번 사건에 연유되는 것만으로도 질색을 할 것이다. 역시나 나의 예상대로 그들은 그 자리에서 상당히 아니꼬운 어투로 나의 말을 반박해버렸다.하지만 내가 원하던
내 행동은 즉시 모든 사람을 놀라게 했다.김우연이 금방 나에게 보낸 문자를 보고 사건의 실마리가 잡혔음을 알 수 있었고 나를 뽐낼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그러니 천우 그룹에는 폐를 끼치지 않겠습니다.” 말을 마친 나는 핸드폰을 넣었다. “택배를 보낸 후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제가 반드시 조사해서 여러분께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 순간 내 시선 끝에 배현우의 눈꼬리가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보였다. “우선 천우 그룹 프로젝트팀 기술자분이 정확한 도면을 다시 확인해 주면 제가 사람을 보내 사원 기술팀으로 직접 배송하겠습니다. ” 부드럽지만 단호한 내 말투에 배씨 부인도 순순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한가지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는데 이번 건으로 인한 손실은 귀책 사유가 있는 쪽이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저희 신흥의 책임이라면 절대 회피하지 않고 책임지겠습니다. 그럼, 저희는 이만 먼저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이해월을 데리고 떠나려는 나를 보고 배현우가 냉담한 얼굴로 말했다.“앉으세요.”크지 않았지만, 위압감 있는 그의 목소리에 나는 잠시 멈칫한 후 다시 자리에 앉았다. 배현우의 가늘고 긴 눈매는 서늘하면서도 위압감이 넘쳤다. “천우 그룹 일은 저희가 직접 조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미팅으로 인해 우리 직원들에게 크게 실망했습니다. 시비 앞에서 이렇게 나약하고 몸을 사리다니. 이건 우리 회사 전통이 아닙니다. ”배현우의 날카로운 지적에 모든 사람, 특히 방금 입을 열었던 사람들은 얼굴이 화끈거렸다. 배현우의 단호한 기세와 날카로운 카리스마에 현장의 모든 사람은 순식간에 공포에 휩싸여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배현우의 얼굴만 쳐다보며 판결을 기다렸다. “제가 여러분들이 문제가 생겼을 때 앞다투어 책임을 회피하라고 높은 연봉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작은 회사에서도 아는 도리인데 여러분들은 무슨 염치로 여기에서 그렇게 떳떳하게 말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정 원하신다면 시시비비가 없는
나는 회사에 돌아온 뒤 이동철을 불러 업무를 주려고 하였는데 마침 이동철도 나에게 조사 보고서를 주었다. 보고서를 받은 후 나는 이동철의 업무 속도와 효율에 감탄했다. 반면 이동철은 진지하게 내게 말했다. “지아 누님, 아직 기뻐하기는 이릅니다. 전부 표면적인 자료들뿐이라 보기에 문제가 전혀 없지만 제 직감으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보고서는 이세림에 관한 것이었는데 이세림의 출생, 부모님이 돌아가신 날짜, 입양 연도, 학교 등 내용이 자세하게 적혀있었다. 이동철이 한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바로 이곳입니다.”“분명 이세림이 호주에서 제일 유명한 초등학교를 나왔다고 적혀있는데 관련 영상자료를 찾지 못했습니다.”이동철이 포인트를 짚었다. “그리고 중학교 사진도 한 장밖에 없습니다. 취미가 촬영인 여자애인데 영상자료가 없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이동철은 의혹에 가득 찬 눈빛으로 날 바라보았다. “지아 누님,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저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을 주시면 계속 조사해 보겠습니다.”이동철의 말에 나도 심상치 않음을 느꼈고 이것을 발견한 세심함에 감탄하며 말했다. “어쩌면 그때는 촬영을 좋아하지 않았거나, 또 어쩌면...”“무슨뜻인지 압니다. 그러나 배씨 집안은 자료관리가 엄격하게 되어있어 조사가 어려운데 이세림의 자료만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 나를 바라보는 이동철의 눈이 반짝였다. “제가 이 학교 과거 졸업 사진과 수료식 사진을 찾았습니다.”그리곤 나에게 빛바랜 사진 두 장을 건넸다. 사진으로 눈길을 돌린 나는 머릿속에 어딘가 익숙한 광경이 떠올라 이동철에게 물었다. “이게 호주에 있을 때 사진이에요?”“네!”이동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왜 이렇게 익숙한 느낌이 들죠?”내가 멋쩍은 웃음을 짓자, 이동철도 웃으며 말했다.“예전에 다른 자료에서 이곳을 보셨을 수도 있습니다.”난 아직 해외에 가본 적이 없어서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 조금 우습기도 했다.자료를 다 본 후 고개를
”현우 씨, 언제 돌아왔어요!” 나는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돌아온 지 이틀 됐어요.”배현우는 담담한 말투로 말했다. 배현우에게 나는 그의 일정을 알 필요가 없는 중요하지 않은 사람인 것 같아 서운했다. 바로 기분이 안 좋아져 나는 말을 하지 않았다. 배현우는 바로 말을 이었다. “그 일은 더 이상 신경 쓰지 말아요. 지아 씨 본인의 일만 신경 쓰면 돼요.””“그게 무슨 뜻이에요?”나는 조금 기분이 상했다. “지아씨 기운이 그렇게 넘쳐요?”배현우는 대답 대신 기분이 안 좋은 듯 딱딱한 말투로 내게 물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전화를 끊었다. 마음속으로 너도 전화 끊기는 기분을 느껴보아라고 생각했다. 한참 동안 기다렸지만, 연락이 다시 오지 않아 나는 또다시 실망했다. 사람의 기분이란 어쩌면 말 한마디, 눈빛 하나 혹은 동작 하나에도 큰 영향을 받는다. 마치 지금 좋던 기분이 배현우 때문에 순식간에 엉망진창이 된 것처럼. 핸드폰을 보다가 며칠 동안 이미연과 도혜선을 만나지 못한 것이 생각나 전화를 걸었는데 이미연은 계속 통화 중이어서 도혜선에게 전화했다. 도혜선은 전화를 받자마자 원망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이제야 내가 생각났나 보네!” “너 지금 이미연 같아, 투덜쟁이.” 내가 쏘아붙이자, 도혜선이 깔깔 웃었다. “네가 어머니 모셔 왔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난 아직도 인사드리지 못했어! 그리고 네가 언제 집에 있는지도 모르겠어.” “내가 집에 없어도 혼자 가면 되잖아.”나의 시큰둥한 대답에 도혜선은 밝게 웃으며 음식이 괜찮고 온천도 있는 클럽에 쉬러 갈 건지 물었다. 예전의 나는 매일 아이 혹은 집이었는데 이렇게 좋은 곳이 있다는 말에 바로 이미연도 불러서 같이 가자고 대답했다.그런데 이미연이 계속 통화 중이어서 누구랑 이렇게 오래 통화하는지 궁금했다. 나는 도혜선이 준 주소로 천천히 운전했다. 도혜선과 연락하면 직업 때문에 어디에 새로 오픈한 곳이 있는지, 맛집, 재밌는 곳, 만날 수 있는 사람, 모든 것을 도혜선이
차창 밖, 검은 마이바흐 한 대가 천천히 건물 입구에 멈추었고 훤칠한 뒷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다부진 몸매에 매력적인 눈, 검은 양복바지가 길고 곧은 다리를 감싸고 단추 두 개를 풀어헤친 검은 셔츠 사이로 구릿빛 피부가 드러났다.단정하게 빗어 넘긴 흑발과 선글라스에 가려진 각진 얼굴, 선글라스를 벗자, 조각 같은 얼굴과 완벽한 이목구비가 드러났다. 그는 만인의 주목을 받으며 그곳에 서 있었다. 그가 직접 차 문을 열고 손을 뻗어 화려한 옷차림을 한 여자를 에스코트했다. 그녀는 선글라스, 스카프에 마스크를 한 조금 지나친 옷차림이었다. 하지만 몸매를 보아하니 이세림은 절대 아니었다. 그녀는 요염하게 차에서 내린 뒤 자연스럽게 남자의 팔짱을 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럽고 귀여웠다. 그 남자가 배현우였고 여자는 모르는 사람이었다. 눈앞의 모습이 내 마음을 아프게 찔렀다. 어쩐지 방금 전화할 때 말투가 퉁명스럽더라니, 어쩐지 내가 열정이 넘치는 걸 원하지 않더라니, 어쩐지 나에겐 언제 떠나고 돌아오는지 말하지 않더라니...알고 보니 연인이랑 즐겁게 지내느라 그런 거였구나, 조금 전까지 말투가 좋지 않았는데, 지금은 따뜻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나는 두 사람이 온천에 들어가 내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을 우두커니 바라보았다. 목구멍이 화끈거리고 손발은 차가워져 무기력하게 얼마나 앉아있었을까, 다시 울린 전화벨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나 지금 입구에 도착했어, 바로 들어갈게.”말을 마치고 전화를 끊었다. 보아하니 이곳이 배현우 별장이랑 가까워 돌아가기 편해 일부러 선택한 것 같다.나는 애써 웃음을 지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눈앞은 자욱해졌다. 차에서 내리려는데 누군가 창문을 두드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벌써 이미연이 도착했다. 나는 얼른 차에서 내렸다.“빨리 왔네. 날아왔어?”“빠르다고? 나 30분이나 운전했어!”이미연은 소리치며 날 바라보았다. “안색이 왜 이렇게 안 좋아?”나는 얼른 표정을 감추며 얼굴을 쓰다듬었다.“그래? 나
나는 물을 한 움큼 들어 세수하고, 점점 충혈된 나의 두 눈을 감추고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도혜선이 술잔을 들어 나에게 한잔 건네주었다. 술을 받아 단숨에 들이키고 나니 많이 진정되었다.나는 수건을 얼굴에 덮은 채 두 사람에게 말했다.“너희들 먼저 이야기 나누고 있어, 난 잠깐 눈 좀 붙일게.”“너는 잠꾸러기처럼 종일 잠만 자네, 방금 밖에서 잤는데 지금 또 자는 거야?”이미연이 나에게 쏘아붙였다.“너 무슨 일 있어?”“나 요즘 일이 많아서 과로사로 죽을 것 같으니 네가 이해 좀 해줘.”나는 수건을 덮고 말했다, 눈에서는 눈물이 차올라 얼굴의 물방울이랑 섞여 흘러내렸다.이미연은 나를 난처하게 하지 않고 도혜선과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서야 얼굴에 있던 수건을 걷어냈다.“안 잘 거야?”이미연이 술을 마시며 나를 보며 웃었다.“에이, 진짜 말도 마, 내가 말한 그 인기 여배우, 너랑 좀 닮았어! 한지아, 언젠가 데뷔하고 싶으면 내가 직접 네 매니저를 해줄게, 하지만, 네가 그녀보다 훨씬 예뻐.”“내가 데뷔를? 내가 출마한다면 모를까, 나는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앞서 진리나 사물의 이치를 깨닫는 능력이 있었으면 좋겠어!”나는 시큰둥하게 손을 뻗어 도혜선이 건넨 술잔을 받아 한 모금 홀짝이고는 탁한 숨을 내쉬었다.그 두 사람은 나의 말을 듣고는 히죽 웃었다.“네 포부 잘 들었고, 알고 보니 너 선녀였구나!”우리끼리 이야기를 나누며 술만 마셔서인지 허탈해졌다, 나는 항의하며 말했다.“그만 마시자! 배고파 죽을 지경이야, 언제 밥 먹을래?”도혜선과 이미연이 깔깔거리며 웃어댔다, 우리 셋은 일어나 가운을 두르고 식당으로 갔다.이곳의 음식은 소문처럼 진짜 맛있었다. 나는 허겁지겁 음식들을 집어 먹으며 에너지도 보충하고 마음의 공허함을 채우고 있었다.배불리 한 끼를 먹은 후 일어나서 우리 방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데, 계단 입구로 통하는 곳에서 나는 보고 싶지 않은 그 두 사람을 보았다, 두 사람은 옷차림이
“그 여자 너랑 좀 닮았지?”이미연이 나를 보며 물었다.“예전에, 나는 한소연에 대한 인상이 정말 괜찮았어. 어디가 너와 닮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나는 친근함을 느꼈었어, 지금은… 썅! 어이가 없네…”이미연의 말에 나는 갑자기 가슴이 쿵쾅거렸다.‘나랑 임윤아랑 닮았고, 한소연이 날 닮았고? 아냐, 그러면 한소연이랑 임윤아도 닮았다고 봐야지. 그러고 보니 배현우, 임윤아에게 정말 애정이 깊었네, 임윤아와 비슷한 여자라면 가만두지 않으니, 임윤아의 그림자를 찾고 있었구나. 나, 한소연 모두. 그러고 보니 너는 임윤아의 대역을 찾아 발걸음을 멈춘 적이 없는 것 같네, 나는 이미 시도해 보았고, 안 맞았겠지.’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술을 한 모금 마시고는 담담하게 물었다.“한소연이 뜬 지 얼마나 됐지?”“방금, 아직 2개월도 안 됐어! 네가 생각해도 이상하지? 갑자기 빵 떴잖아, 그러더니 조금씩 위로 올라가네!”이미연이 시큰둥하게 말했다.가만히 생각해 보니 2개월 전 그때 나는 이미 이혼을 마친 상태였다, 배현우도 이미 천우 그룹을 인수한 것 같았다.‘배현우, 바쁜 중에도 시간은 있었나 봐, 인지도도 없이 갑자기 나타난 연예인도 너의 눈을 피해 갈 수 없었으니 말이야.’이것은 두 달 동안, 배현우가 가끔 한소연이랑 함께 있었다는 걸 말해주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가 어떻게 자주 나에게 소식이 없을 수 있었겠는가, 그리고 점점 식어가던 나에 대한 태도는 그가 이미 새로운 사냥감을 사냥 중이라는 것을 말해주었다.‘그래, 그가 왜 나 같이 자신보다 두 살이나 많은, 그것도 아이까지 데리고 있는 이혼한 여자를 좋아하겠어? 그리고 그가 왜 나한테 한 번도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았겠어, 난 정말 바보야, 사랑받길 바라다니? 너무 사치스럽네!’그날 밤, 나는 술을 엄청 많이 마셨다, 마실수록 더욱 명백해졌다. 나는 사실을 직시해야 했다. 마치 봄을 그리워하는 소녀처럼 뜨거운 사랑을 기다리다니, 정말 우스꽝스러웠다.‘내가 너무 많이 생각하고, 원하는 것이 너무
가장 먼저 나의 눈에 들어온 것은, 뜻밖에도 오랫동안 종적을 감추었던 신호연이었다.방금 회사 지하 주차장에 도착해서 차를 세웠는데, 양복 차림을 한 신호연이 내 차 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나도 그가 어떻게 그렇게 정확하게, 단번에 나를 찾아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신호연은 매우 온화하게 웃으며, 손을 뻗어 차 문을 열어 주었다.“지아야.”솔직히 나는 그동안의 자신이 참 대견하게 느껴졌다. 신호연을 까맣게 잊고 지내다 보니 마음도 편안했었다. 그런데 지금 그를 보니, 꿈에서 깨어나 다시 현실로 돌아온 느낌이었다.나는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했다.‘이놈은 왜 아직 살아있는 거야? 나는 지금 꿈에서도 그를 볼 수 없는데.’하지만 그가 나타나자마자, 나는 징그러운 느낌이 또 마음속에서 들끓었다.“비켜!”나는 차갑게 말했다.“지아야, 지난번에는 내가 잘못했어! 너도 더는 마음에 담아 두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는 오늘 진심으로 너에게 사과하러 온 거야.”신호연은 갑자기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지아야, 나 내 딸 보고 싶어.”신호연이 나의 앞길을 막아섰다. 그는 마치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처럼 눈시울도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나는 그의 마음속에 과연 딸이 존재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너도 봐봐, 우리가 헤어진 거 사실은 누구에게도 좋지 않아, 누구도 뜻대로 되지도 않고, 나 진짜 하루가 일 년 같아, 딸이 너무 보고 싶어. 지아야, 콩이를 데리고 나와 나에게 보여줄 수 없겠니? 그리고… 우리 엄마도 많이 아파, 자꾸 네 얘기만 해, 나도 진짜 후회 많이 하고 있어, 지아야, 나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줘, 우리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보자.”“싫어!”나는 차갑게 말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러고는 그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정말 신호연이랑 얽히고 싶지 않았다.“지아야, 부탁이야! 내가 그동안 줄곧 사업상의 일로 아주 바빴거든, 그러면서 그 기회를 빌려 많이 생각해 봤는데, 난 그래도 너랑 함께 있을 때가 가장 즐거웠어!”신호연은 막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