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첫 알루미늄 창이 도착했기 때문에 아이를 일찍 유치원으로 데려다준 나는 차를 몰아 창고로 갔다.상품 검열을 다 마치기도 전에 알 수 없는 전화 한 통을 받았다.지난번 날카로운 인상을 가진 여자가 한 번도 가본적 없는 외곽에 있는 클럽으로 오라며 전화가 왔다.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입력해 보니 평택시 외곽이었다. 꽤 먼 곳이다.나를 만나고자 하는 사람은 그녀가 아니라는 예감이 들었다! 분명히 다른 사람이 있다.나는 차를 몰고 그곳으로 가면서 배현우에게 이 사실을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생각해 보니, 됐다. 아직 그녀들이 나를 만나고자 하는 목적을 모르니. 그를 걱정시킬 필요는 없다... 게다가 나는 이기적이어서 배현우를 잃을까 두렵다.배현우와 멀리 떨어져만 있어도 난 두렵다.클럽에 도착하니 짐작했던 사람이 보였다. 멀리서 한번 본 적 있던 배현우의 고모다..그 날카로운 인상을 가진 여자는 배현우의 고모를 나에게 소개해 주었다.배씨 가문의 유전자가 좋은 것인지, 배현우의 고모는 매우 아름답고 키도 컸으며 꽤 카리스마가 있어 보였다. 이세림의 말이 맞았다. 배현우의 고모에게서 온화한 기질이라고 묘사될 만한 것을 찾을 수 없었다.헤어스타일, 눈썹, 옷, 몸짓 하나하나까지 차갑고 도도했다.나를 본 순간, 배현우의 고모는 실눈으로 잠시 동안 바라보더니 눈썹을 치켜올리며 "앉아요!" 하고 말했다.나는 배현우의 고모 옆 소파에 앉아 차분한 척했지만 사실은 매우 긴장하고 있었다."지아 씨, 내가 왜 당신을 여기로 불렀는지 아세요?" 배현우 고모의 말투는 매우 친절하고 차분했지만 나는 배현우의 고모가 가장 절제하는 말투로 말하고 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질문이 매우 까다롭고 어려워 대답하기 힘들었다.내가 안다고 말한다면 내가 잘못한 것을 시인하는 것이다. 하지만 모른다고 말한다면 배현우의 고모에게 내가 정직하지 못하게 비칠 것이다.나는 배현우의 고모를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배현우의 고모를 존중하지 않아서가 아니
지아 씨가 이렇게 말한다는 건 똑똑하다고 말한 걸 이해했다는 뜻이죠. 배현우의 고모는 웃음기를 거둔 채 잠시 나를 쳐다보며 의심의 여지가 없는 말투로 말했다. "현우 곁에서 떠나요!""그건 그 사람에게 물어보세요!"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물어볼 필요 없어요. 지아 씨가 떠나기만 하면 현우는 받아들일 거예요! " 배현우의 고모는 이미 정해놓은 말들을 내게 했다. "지아 씨는 좋은 여자예요. 영리하고 인내할 줄 알며 야망도 있죠. 난 지아 씨의 이 모든 것들을 좋게 봤어요. 난 지아 씨가 목표한 대로 회사를 더 크게 키울 수 있도록 도와줄 수도 있죠. 그건 지아 씨의 딸을 잘 키울 수 있는 데 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지아 씨는 외국의 학교를 고를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현우는 못해요!"“왜죠?”내가 묻자 배현우의 고모는 갑자기 냉랭한 표정을 지었고 매우 불쾌한 듯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왜냐고요?""현우는 지아 씨와 같은 부류의 사람이 아니에요. 현우가 천우그룹을 갖고자 한다면 반드시 가법에 따라 행동해야 해요. 이세림이 없다 해도 가족이 전권을 행사해서 동일한 결정할 거예요. 현우는 단독으로 어떠한 특권도 가질 수가 없고 이 문제에 대한 선택의 자유도 없어요!" 배현우 고모의 말은 매우 무자비했다."현우가 비록 지아 씨를 사랑한다 해도, 지아 씨의 결혼 이력을 신경 쓰지 않고 또한 지아 씨에게 아이가 있어도 상관없다 해도 그리고 여전히 잊지 못하는 현우를 미치게 만들었던 임윤아마저도 결국은 하나의 결과를 낳죠. 포기하거나! 타협하거나!"배현우를 미치게 만든 임윤아? 이 한마디가 내 마음을 조여왔다. 임윤아가 전에 이세림이 여러 번 말했던 그 여자인지는 알 수 없지만 임윤아는 확실히 배현우와 매우 깊은 관계임이 틀림없다.말을 마친 배현우의 고모는 천천히 다시 얘기했다 "지아 씨도 마찬가지로 선택권이 없어요! 배씨 가문은 다른 성씨를 가진 사람이 배씨 가문의 재산과 자원을 승계 받게 하지 않아요! 지아 씨가 원하는 조건을 말해요!
나는 일부러 속도를 늦추고 아무렇지 않은 척 뒤쪽의 차량을 관찰했다. 약 2킬로 이동 후 뒤쪽의 SUV 차량이 계속 날 따라오고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차 안의 사람을 확인하기 위해 길가의 작은 슈퍼 앞에 멈췄다. 슈퍼에 들어가 물 한 병 사 마시며 뒤쪽의 차량이 천천히 지나가는 것을 지켜보았지만 창문이 코팅되어 있어 내부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일부러 차가 멀어진 뒤 다시 운전석에 올랐다.차량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 내가 조금 예민했던 것 같다.돌아가는 길에 해안도로가 있는데 그곳만 지나면 순환 고속도로를 따라 시내로 금방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내 착각이었다. 산으로 통하는 교차로를 지날 때 그 차가 갑자기 튀어나와 앞을 막았다. 나는 급히 브레이크를 밟은 후 재빨리 차 문을 잠갔다.후진을 하려고 보니 뒤쪽에는 어느새 낯선 검은색 승용차가 나타나 막고 있었다.당황한 나는 얼른 가방에서 전화기를 꺼내 손에 잡히는 대로 전화를 걸었다.그런데 이때, 헬멧을 쓰고 손에는 소망 망치를 든 건장한 남성 두 명이 만반의 준비를 한 채 차에서 내려 단숨에 창문을 깨고 차 문을 열었다. 그 속도는 내가 정신 못 차릴 만큼 빨랐고 심지어 전화도 아직 연결되지 않았다.나는 큰 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차를 부순 그 남자는 차에 올라타 손에 든 무언가로 나의 코와 입을 막았다. 그러자 갑자기 세상이 빙빙 돌고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나는 의식을 잃었다.정신이 들었을 때 머리가 깨질 듯 아팠고 입이 바싹 말랐다. 몸은 묶여있어 움직일 수 없었고 눌린 두 팔은 감각이 없었다.소리를 내고 싶었지만, 입에 테이프가 붙여져 있어 아무런 소리를 낼 수 없었다. 끝없는 공포가 나를 덮쳐왔다. 나는 몇 번 허우적거리다 몸을 옆으로 돌려 눌린 팔을 꺼냈다. 주위를 둘러보니 버려진 작은 공장 창고인 것 같았는데 여러 가지 도구들도 지저분하게 널려있었다.그런데 이상한 것은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주위를 한 바퀴 둘러보았지만, 시간을 알 수 없었고 내
날이 갈수록 어두워지고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아무도 오지 않았다. 혹시 내가 자생 자멸하기를 원하는 걸까? 그렇다면 아마 내가 사라지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배씨 부인이 한 짓일 것이다.하지만 나처럼 연약하고 어린 여자에게 이런 수단을 쓰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기에 그녀는 아닐 것이다. 신호연도 아닌 것 같다. 만약 신호연이면 나에게 원하는 것은 돈, 회사, 혹은 그가 필요한 자원이다.나는 계속 허튼 생각을 했고, 생각할수록 짜증이 나고 머릿속이 복잡해져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날이 어두워질수록 절망 속에서 희망의 불씨가 조금씩 살아났다. 만약 내가 한 전화를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면 유치원에 아이를 데리러 가지 않은것 때문에 유치원 선생님이 연락했을 것이다. 내가 연락이 안 되면 어떤 방법을 쓰든지 가족을 찾아 아이를 집으로 돌려보내야 하므로 적어도 배현우를 찾았을 가능성이 있다. 영재 유치원에 가게 된 것도 배현우 덕분이고 그 배후에는 두터운 내막이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유일한 희망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나는 마음이 놓이고 또 희망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실망한 콩이의 모습을 떠올리면 나는 가슴이 미어졌다. 나 때문에 내 딸이 고생하는 날이 올 줄 생각도 못 했다. 그래도 부모님이 안 계셨을 때 발생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안 그랬으면 아버지가 나를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다. 어둠의 장막이 서서히 드리워졌다. 콩이를 누가 데려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쯤 내가 실종된 것을 누군가 발견했고, 곧 찾으러 올 것이라고 확신한다. 날이 완전히 어두워지고 사방이 고요해지자 쥐가 찍찍거리고 움직이는 소리만 끊임없이 들려왔다. 놀란 나는 두 눈을 부릅뜨고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손과 발이 뒤로 함께 묶여 있어 몸을 펼 수조차 없었다.같은 자세로 계속 있다 보니 어깨가 너무 아파 나는 애써 몸을 돌려 자세를 바꾸었다. 나는 누군가 빨리 이곳을 찾을 수 있기를 기도했다. 누군가가 나를 구하러 올 것이라는 희망에 부풀어
한지아는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그 사람들이 걸어오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들 중 선두로 걸어오는 사람 손에는 손전등이 들려있었다.그 사람의 손에 들려있던 손전등은 금세 한지아를 향해 비췄다, 강렬하고 눈 부신 빛에 한지아는 눈을 감았다. 그 사람들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들려오는 그들의 목소리는 낯설었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었다.“진짜 예쁘게 생겼네, 아쉽다!”그들 중 한 명이 작은 소리로 한마디 하였다.“헛소리하지 말고 입 다물어!”그들 중 한 명이 엄숙하게 말했고 모두 입을 다물었다.“데리고 가자!”깜짝 놀란 한지아는 눈을 번쩍 떴다, 한지아는 빛을 거스르고 한 명이 귀신처럼 괴상하게 달려는 것을 보았다. 한지아는 엉엉 울부짖으며 말을 하려고 했다.그 남자는 한 손으로 한지아를 번쩍 들어 올렸다, 한지아는 있는 힘껏 몸부림치며 온몸을 비틀어댔고 그는 한지아를 발로 걷어찼다.“얌전히 있어, 발버둥 치지 말고, 체력 아껴야지? 발버둥 쳐도 소용없어!”한지아는 저 멀리 서 있는 몇몇을 바라보았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람은 키가 매우 컸고 몸집도 건장했다. 모두 얼굴을 가리고 있어서 두 눈만 보일 뿐 다른 특징들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한지아는 여전히 몸부림치고 있었다, 한지아를 들고 있던 그 남자가 손을 떼자 한지아는 그대로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한지아는 아픈지도 모르고 말을 하려고 애썼다. 한지아의 애원하는 두 눈이 얼굴을 가린 채 눈만 내놓은 그들의 두 눈을 애처롭게 바라보았다.그 남자는 한지아를 바라보다가 멈칫하더니 허리를 굽히고 손을 뻗어 한지아의 볼을 만졌다.“형님, 정말 이 여자를 죽이려고요? 아쉬운데, 우리 형제 몇 명… 아, 아닙니다. 형님, 형님이 먼저 재미 보세요, 그리고 우리도…” “닥쳐! 헛소리 그만하고 빨리 가자!”얼굴을 가렸지만, 말을 꺼낸 그놈을 쳐다보는 그의 눈빛에는 살기가 가득했다.그는 한지아를 확 잡아당겼고 그 순간, 한지아는 불빛을 빌어 그의 손목에 뱀 모양의 문신이 새겨져 있는
‘탕’또 한 발의 총성이 울려 퍼졌다. 한지아의 얼굴에 뜨거운 무언가가 가득 뿌려졌고 짙은 피비린내가 콧구멍을 가득 채웠다. 한지아는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한지아가 눈을 떴을 때 짙은 피비린내 대신 코를 찌르는 소독수 냄새가 났다.눈앞에는 이미연의 초조한 눈빛이 보였다.“한지아, 드디어 깨어났구나!”한지아는 눈을 깜빡거렸다. 온몸이 몹시 아팠다, 특히 얼굴이 너무 아팠다.한지아는 갑자기 기뻐졌다.‘죽은 줄 알았었는데 살아있었구나, 그럼 그때 총을 맞은 건 그 칼을 든 남자인가?’생각할수록 아찔해졌다.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한지아는 내일에 뜨는 태양을 볼 수가 없었을 것이다.번쩍이던 칼날이 자신을 찌르던 느낌을 한지아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했다.“하느님 부처님 진짜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너 진짜 깨어났구나!”이미연은 병실 밖으로 달려나갔다. 뒤이어 이미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깨어났어요, 지아가 깨어났어요!”뛰어 들어오는 배현우의 얼굴을 보자 한지아는 눈물이 밀려 나왔다, 그는 허리를 굽혀 그녀를 꼭 안아주며 말했다.“괜찮아요, 울지 말아요!”한지아는 한동안 마음을 추스르고 나서 물었다.“도대체 누구예요?”배현우는 묵묵히 고개를 저었다.“그 우두머리는 도망쳤고, 똘마니를 잡았는데 그놈은 몰라요, 누가 그들을 사서 이런 일을 벌였는지, 아직도 추적 중이에요.”그가 말한 이유는 매우 충분했다.“내가 없어진 건 누가 알았어요?”한지아는 정말 알고 싶었다.“유치원이야, 너랑도 연락이 안 되고, 아무도 콩이를 데리러 가지 않아서 콩이가 선생님에게 내 번호를 알려줬어, 내가 서둘러 콩이를 데리러 갔고, 너에게 연락을 해봤지만, 연락이 안 되더라, 그래서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배 선생에게 전화했어, 배 선생이 위치추적으로 네 차를 찾았고, 차가 해안도로 옆길에 있더라, 휴대전화며 가방이며 다 차 안에 있었고 차창유리도 깨져있었어.”이미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날 일들을 거의 모두 말해주었다. 배현우의 눈은 계속 나를 쳐다보고
다음날.내가 일어났을 때 콩이는 이미 유치원에 간 후였다. 배현우는 없었고 이미연이 내 곁을 지키고 있었다.얼굴엔 여전히 통증이 남아있었다. 어젯밤 샤워할 때 거울을 보니 긁힌 상처가 많았고 그중에 깊은 상처도 있었는데 흉터가 남을지도 모르겠다.“장영식이 널 만나러 왔어, 나랑 같이 가. 회사엔 가지 말고!” 이미연이 나에게 말했다. “지아야….”이미연은 말하기를 주저했지만 나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고 있었다.“난 괜찮아.” 나는 담담하게 그녀를 위로했다. “내 차는?”“수리하라고 보냈으니 오늘은 나가지 마!” 이미연은 조금 불안해 보였다. “얼굴이 좀 나아진 후에 다시 얘기하자!”“그래!” 나는 대답은 했지만, 머릿속은 여전히 어제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배현우는 배윤정이 나를 만났다고 생각했고 이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배현우가 그 사진들을 보면 어떤 일이 생겼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사진이 생각나자마자 난 이미연에게 물었다. “내 가방은?”“아, 난 모르는데?” 이미연은 곧바로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내가 아래층으로 내려가 살펴볼게.”얼마 지나지 않아 이미연은 손에 내 가방을 들고 올라왔고 나는 몸을 급히 일으켜 가방을 열고 사진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사진 속 각도가 너무 가까워 보여 매우 불안했고, 나는 매일 우리 곁에 이렇게 많은 불안요소가 있는지도 몰랐다.이미연의 전화는 끊임없이 울렸고 그녀는 전화를 받기 위해 나갔다. 다시 방에 들어온 이미연에게 물었다. “일이 있는 거지? 바쁘면 나가서 일 봐도 돼. 난 괜찮아. 안 나갈 거야. 좀 더 자고 싶어.”“그럼 뭐 좀 먹고 있어, 금방 다녀올게.” 이미연은 나를 보며 말했다. “내가 가서 꼭 처리해야 할 일이 좀 있어. 오래는 안 걸릴 거야. 너무 많은 생각은 하지 말고, 어쨌든 배현우 씨는 화가 많이 난 모양이니 결코 포기할 것 같지는 않더라.”“그래!” 난 이미연에게 너무 많은 말은 하고 싶지 않아 가볍게 대답했다.” 열쇠 가지고 가. 문 열어주기 귀찮으니까
나는 서둘러 일어나 침대에서 빠르게 내려왔고 동작이 컸던 탓인지 온몸이 조금 아파졌다. 먼저 커튼을 젖혀 아래를 내려다보니 뜻밖에도 대문 밖에 서 있는 사람은 이세림 이었다.이세림이 어떻게 내가 사는 곳을 알았을까? 나는 그녀에게 골드 빌리지에 산다고 말한 기억이 없다.나는 슬리퍼를 신고 서둘러 아래층으로 내려갔고 이세림은 그 사이 초인종을 두 번 더 울렸다.나는 거실에 있는 스위치를 누른 후 현관으로 가서 문을 열어 주었다. 이세림은 손에 과일 바구니를 들고 미소를 지으며 들어왔다.그 표정은 사람의 탈을 쓴 짐승이 악의 없이 순수함을 표현한듯했다.“이세림 씨!” 나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맞이했다. “여긴 어떻게 찾은 거예요?”“하하, 지아 씨. 우여곡절이 많았다면서요!” 이세림은 들어와서 사방을 둘러보았고 이곳이 아주 익숙해 보였다. “집 좋은데요, 아주 클래식해요!”“앉으세요, 뭐 마실래요? 커피와 차가 있어요.” 난 주방의 티 테이블을 향해 걸어갔다.“아무거나요, 서두르지 마세요!” 이세림은 매우 다정하게 나를 따라왔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죠? 정말 무섭네요. 누굴 기분 상하게 한 적 있어요? 왜 납치된 거예요?보아하니 이세림은 내게 일어난 일을 아주 잘 알고 있는 것 같아서 조금 수상쩍었다.“이세림 씨는 소식이 정말 빠르네요!” 나는 웃으며 말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매우 의심스러웠다.“그런가요? 어제 현우오빠와 저녁 식사 중이었어요. 현우오빠는 전화 한 통을 받자마자 바로 떠났고 난 분명히 들었어요, 당신이 사라졌다고!” 이세림의 말은 합리적이었다. “줄곧 이 일을 걱정했어요. 나중에 현우오빠에게 전화해서 물었더니 지아 씨를 찾았다고 하더라고요. 정말 놀라 죽는 줄 알았어요!”그 둘이 함께 식사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나니 마음이 씁쓸해졌다.이세림이 내 얼굴을 주시하며 말했다. “지아 씨, 얼굴이 왜 이렇게 다친 거예요?”이세림은 마치 방금 들어왔을 때 전혀 보지 못한 것처럼 섬세하고 아름다운 작은 얼굴 위에 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