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람을 지켜주는 것은 내가 해야 할 일이야. 보상 같은 것을 바라지 않아.”눈을 천천히 감은 신경주는 가슴이 아파났다.“내가 빚진 거야. 지금은 지난 3년 동안 내가 저지른 실수를 보상하고 있을 뿐이야.”“목숨으로 보상하는 거야?”“그럼 돈으로 보상해? 구씨 가문의 집안 형편이 어떤지 몰라?”경주는 눈썹을 찌푸렸다.‘그러네, 내 목숨을 살 수 있을 정도로 돈이 많지.’이유희는 머리를 긁적였다.경주는 자기 품에 안겨 있던 피투성이가 된 아람의 얼굴을 떠올리자 가슴이 아파났다.‘깨어났을까? 열은 내렸나? 절벽에서 오랫동안 매달렸는데, 뼈가 부러지지 않았을까?’경주의 머릿속에는 온통 아람뿐이었다.그는 마음속의 욕망을 억누르는 듯 숨을 내쉬며 침대 시트를 꽉 움켜쥐었다.‘내가…… 구아람을 좋아해? 정말, 구아람이 좋아졌어?’경주는 마른침을 삼키며 가슴이 두근거려 숨이 가빠지더니 창백했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어? 경주야, 왜 얼굴이 빨개졌어? 열이 나?”이유희는 황급히 손을 들어 경주의 이마를 만져보려고 했다. 그러나 경주는 짜증 난 듯 그의 손을 내리쳤다.“악! 아파!”이유희는 손을 털며 해맑게 웃었다.“힘이 좋은 것을 보니 컨디션이 괜찮네, 무술 실력이 사라지지 않았어.”이때 급하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두 사람이 대답도 하기 전에 병실 문이 벌컥 열렸다.한무가 황급히 들어와서 인사하며 입을 열려 하자 청량하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귀를 찔렀다.“신경주, 크게 다쳤으면서 병원에 가만히 있지 않고, 나 몰래 병원을 옮겨? 뭐 하자는 거야?”아람이 임수해의 부축으로 기세등등하게 들어온 모습이 엄청난 임팩트가 있었다.그녀는 샤워를 마치고 하늘색 원피스에 세련된 하얀 캐시미어 코트로 갈아입었다. 밝고 윤기가 있는 얼굴은 마치 샘물처럼 경주의 마음속으로 흘러들었다.살짝 치켜올린 아람의 얼굴에 병색이 전혀 드러나지 않았고, 날카로운 하이힐 소리는 그녀를 상징하는 듯했다.아람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빛났지만 경주를 바라보는 눈빛
구아람이 매서운 눈빛으로 바라보자 이유희는 곧바로 눈을 내리깔고 뒤로 물러섰다. 그 모습은 마치 황후 곁에 있는 내시와 같았다.한무가 황급히 다가갔다.“사, 사모님…….”“누가 사모님이야!”아람은 눈썹을 찌푸렸다.“구아람 씨, 구 사장님! 구 사장님께서 신 사장님이 아프다는 소식을 들으면 걱정하고 휴식에 영향을 끼칠까 봐 병원을 옮긴 거예요!”한무는 소심하게 중얼거렸다.지금의 아람은 신씨 가문에 있을 때의 온순하고 모습은 이미 사라졌고 위압적이고 카리스마가 넘쳤다. 그래서 한무가 매번 아가씨를 마주할 때마다 겁에 질려 가슴이 두근거렸다.“허, 신 사장님의 생각이 참 많으시네. 내가 왜 걱정해?”아람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피식 웃었다.“신, 신 사장님을 걱정 안 하신다면, 이렇게 빨리 찾아오지도 않…….”한무는 눈을 들고 용감하게 말대꾸했다.“너!”아람은 화가 나서 눈을 부릅떴다.침대에 기대고 있는 경주는 눈을 깜빡이며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한무 이 녀석, 평소에는 어리벙벙하며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더니, 말은 참 잘하네. 보너스를 챙겨줘야겠어.’“모두 나가 있어.”아람은 차갑게 명령을 했다.“아가씨…….”걱정스러운 임수해는 입을 열자마자 말이 끊였다.“수해야, 너도 나가.”여왕님이 명을 내리면 그 누구도 감히 거스를 수 없었다. 그래서 세 남자는 일렬로 줄을 서서 병실을 나갔다.문이 닫히자 아람은 경주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화가 나고 걱정되어 눈썹을 찌푸리고 있었다.“진료차트를 봤어. 심각한 타박상이던데. 조금만 더 늦었다면 장기에 출현이 심해 생명을 위협했을 거야.”“제때에 치료받았잖아. 죽지 않았어.”경주의 부드러운 목소리에는 약간 섹시한 콧소리를 지녔다. 아람을 바라보는 눈빛은 다정하고 깊었다. “구아람, 잊었어? 난 전쟁에 나갔던 사람이야. 온갖 고생을 겪어봤고 다치기도 했었어. 이런 상처는 별일 아니야.”경주의 이글거리는 눈빛을 보자 함께 L 국 전쟁에서 싸우고 의지했던 기억이 떠올랐다.겉으로
늘 오만하고 반골 기질이 있는 경주는 말을 잘 들었다. 그는 마치 프라이팬에 있는 물고기처럼 몸을 뒤집었다.그가 고분고분하자 아람은 살짝 넋을 잃고 붉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남자의 넓적한 등은 그녀 앞에 숨김없이 들어냈다.끔찍한 멍든 상처가 눈에 들어온 순간, 아람은 눈동자가 흔들렸다. 애써 감정을 억누르려 했지만 마음이 덜컹 내려앉았다.아람이가 잠자코 있자 경주는 그녀가 놀란 줄 알고 몸을 돌리려고 했지만, 그녀에게 힘껏 눌렸다.“움직이지 마. 자세히 볼 거야.”“의사가 몸조리를 잘하면 멍이 없어진다고 했어.”다친 사람은 경주지만, 아람을 부드럽게 위로했다.“말 안 해도 알아. 내가 보면 모를 것 같아?”아람은 퉁명스럽게 내뱉었다.경주는 말문이 막혀 어쩔 수 없었다.“내 곁에 있을 때는 성질이 강직하고 말을 독하게 하고 담이 이렇게 큰 줄은 몰랐네.”“예전에는 너한테 잘 보이려고 위장한 거야.”아람은 눈을 내리깔고 손끝으로 등의 상처를 검사하며 냉정하게 말했다.“모든 일에 결과가 있고 응답이 있는 것은 당연 한 줄 알았어. 너에게 다정하게 섬세하게 대해주면, 언젠간 너도 날 사랑하게 될 줄 알았어. 나중에 너의 무정한 마음을 알게 된 후, 당연히 물러서고 위장할 필요도 없어졌어. 그때 난 참 바보였어. 영원히 나를 사랑하지 않을 사람을 위해 나 자신을 너무 괴롭혔어. 정말 아무런 가치가 없네.”경주는 숨이 막히며 마음이 씁쓸해졌다.그 당시 경주는 다른 것에 눈이 멀어 가치가 없는 것에 고집스럽게 매달렸다.어려서부터 받은 억울과 불공평은 그를 일득일식에 끙끙 앓게 했다. 가진 것을 단단히 잡고 싶었고, 실패를 받아들일 수 있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버려지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김은주에게 끌렸다기보다는 오히려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 같았다.“구아람…….”“이쪽 다 봤어. 몸을 돌려 봐.”아람은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의사가 이미 검사해 주셨어…….”“남을 못 믿겠어. 난 나만 믿어. 몸 돌려.”의사 뒷배를 들
큰 부상을 당해도 경주의 힘은 여전히 셌다. 눈동자가 깊어지며 팔을 확 잡아당기더니 아람의 몸은 경주의 품으로 덮였고, 뜨거운 몸이 꼭 붙어 있었다.그리고 경주는 링거를 맞고 있는 왼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고 꼭 껴안았다.“신…….”아람은 급한 마음에 눈에 눈물이 고였다. 말을 하려고 입을 열자 갑작스러운 키스가 그녀의 말을 전부 삼켜버렸다.경주의 촉촉한 입술은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에 맞추었다. 맛을 들인 짐승이 이성을 잃은 듯 강제로 그녀의 입을 열어 탐욕스럽게 호흡을 낚아챘다. 아람은 혼란스러운 키스에 머리가 어지러워지고 저도 모르게 끙끙거렸다.두 손으로 경주의 가슴을 움켜쥐자 그의 피부에 수치스러운 자국을 남겼다.남감함, 수치심, 억울함…… 아람의 예민한 마음들이 떠올랐다.순간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사납게 경주의 입술을 깨물었다.그러나 그는 눈썹 하나 찌푸리지 않은 채 내버려 두고 그녀를 꼭 껴안았다.서로의 향기가 입안에서 서서히 퍼졌다.경주는 그녀가 준 아픔을 묵묵히 견뎌내며 놓아주지 않았다.아람이 숨이 막히자 그는 아쉬워하며 입술을 떼었다.숨을 헐떡이는 두 사람은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그리고 경주의 아랫입술은 물려서 피범벅으로 되었다.“신경주, 날 구했다고……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착각하지 마!”얼굴이 붉게 물든 아람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그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네가 말했었잖아.”경주는 그녀를 깊이 바라보며 입술의 피를 닦았다.“신세를 갚을 거라고 했잖아. 지나친 요구만 아니면 괜찮다고.”“이게 지나친 일이 아니야? 너무 하네!”말을 마치자 아람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그녀는 자신이 우는 것도 모른 채 경주를 향해 화를 내기만 했다.“언제 날 놓아줄 거야? 우리는 이미 이혼했어! 네가 날 버렸잖아! 이 나쁜 놈아, 언제 날 놔줄 거야? 난 이미 널 사랑하지 않아. 너는 나를 건드릴 자격이 없어!”“후회돼.”경주는 울컥하며 이 말을 내뱉더니 눈가가 촉촉해졌다.다만 아람처럼 울고 싶으면 울고,
“우리 아빠가 말했었어. 아름다운 사랑은 처음부터 끝까지 순조롭다고. 우리가 3년 동안 부부로 인연을 맺은 것은, 모두 내가 자존심을 버리며 바꿔온 거잖아. 이런 산산조각 난 감정에 무슨 미련이 있겠어? 내가 왜…… 너랑 다시 시작하겠어?”아람의 날카로운 말들은 경주의 마음을 찔렀다.경주는 그녀를 잃기 싫어 다시 손을 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민첩하게 피하며 기회를 주지 않았다.“다시는 안 그럴게.”경주는 숨을 헐떡이며 울컥했다.“다시는 안 그럴게. 구아람, 이번에는 아무것도 할 필요 없어. 그냥 거기 있어. 내가 너에게…… 구애할게.”아람의 가슴은 거칠고 가파른 롤러코스터처럼 흔들렸다.손바닥에는 땀이 나며 호흡도 흐트러지더니 가슴이 쿵쾅거렸다.“구애? 전에 나를 염치없고 음흉한 여자라고 하지 않았어? 나는 김은주처럼 애교가 많은 여우가 아니야. 왜 날 좋아해?”아람은 코를 훌쩍이며 차갑게 입꼬리를 올렸다.“지금의 구아람은 더 이상 네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백소아가 아니야. 날 좋아해 주는 남자가 많고도 많아. 너처럼 블랙리스트에 오른 나쁜 남자가 내 흑기사들 사이에서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해?”“구아람. 난 정말…….”“그만해, 듣기 싫어.”아람은 두 손으로 귀를 막고 돌아서서 도망치듯 빠른 걸음으로 문밖을 향해 걸어갔다.“오늘 한 말들은 네가 뇌진탕으로 헛소리를 한 거라고 생각할 게. 널 치료해 주는 것은 신세를 갚기 위해서야. 다 나으면 우리는 아무런 관계도 없어!”펑 하는 소리와 함께 병실 문이 다시 닫혔다.눈시울이 붉은 경주는 그녀를 잡으려던 손을 부들부들 떨며 내렸다.“나는 정말…… 네가 좋아졌어.”……병실에서 떠난 아람은 돌아가지 않고 한무에게 찾아갔다. 그녀는 병세를 알기 위해 검사 보고서와 진료기록부를 가져갔다.‘돌아가서 자세히 연구해 봐야겠어.’방금 신경주에게 전면적으로 예비 검사를 해보니 상태가 좋지 않았다. 가벼운 상처가 아니라 치료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고질병으로 될 수 있다.롤스로이스는 해문
순간 차 안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세 남자는 일제히 눈을 부릅떴다. 운전하고 있는 임수해조차 어리둥절해져 핸들을 못할 뻔했다.“아람아, 뭐, 뭐라고 했어?”항상 침착하던 구윤도 깜짝 놀랐다.“신경주가 이혼한 것을 후회한대. 기회를 한 번 더 달라더라고. 이번에는 신경주가 나에게 구애하겠대.”아람은 앙증맞은 얼굴을 치켜들고 어린아이처럼 맑은 눈으로 구윤을 바라보았다.“오빠. 이게 무슨 뜻이야? 고백하는 건가?”“당연하지!”백진과 임수해는 이구동성으로 말했다.“참, 뻔뻔하네!”구윤은 눈을 깜빡이며 눈썹을 찌푸렸다.“오빠, 믿겨? 우리의 미래를 직접 찢어버리던 남자가, 지금 나에게 구애하겠다고 하네. 마치 진짜처럼 맹세까지 했어.”아람은 입술을 벌리고 억지로 웃었다.예전의 아람이라면 기뻐서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마음만 혼란스러웠다.어린 시적 그토록 갖고 싶었던 인형을 갖지 못한 것 같았다. 커서 더 좋고 비싼 인형을 주어도 다시 사랑할 수 없었다.게다가 경주가 자신에게 구애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내가 그렇게 잘해줘도 무시했잖아. 지금은 계속 신경주와 맞서고 모욕감을 주는데. 왜…….’“뒤늦은 사랑은 아무것도 아니야, 신경주의 고백은 그보다 더 더러워!”백진은 이를 악물고 원망했다.“그니까요! 진작에 뭘 했는지!”임수해는 핸들을 꼭 잡고 나지막하게 맞장구를 쳤다.“아람아, 결혼해서 네가 정성을 다할 때, 신경주가 너를 어떻게 대했었는지 잊은 것은 아니지? 지금 부잣집 아가씨가 돼서 사랑을 받고, 인생 절정으로 돌아가서 많은 사람들이 너에게 잘 해주는 것을 보니 마음이 불편하고 달갑지 않는 거야! 그 당시 눈이 삐어서 널 버렸다고 생각하겠지. 그리고 널 되찾아서 자신의 허영심을 만족하려는 거야! 같은 남자로서, 내가 잘 알아!”“허영심은 아니야.”아람은 입을 삐죽거렸다.“하지만 셋째 오빠 말이 맞아. 내가 예전보다 매력이 있다고 생각해서 흥미가 생긴 거야. 내가 구씨 가문 아가씨로 돌아온 후 신경주가 나
“하지만 속은 부드럽고 달콤하잖아.”구윤은 눈웃음을 지으며 손끝으로 아람의 코를 만졌다.“우리 아람과 많이 닮았네.”“흥!”아람은 얼굴을 돌리며 화난 척했다. 그녀가 애교 부리는 모습은 너무 귀여웠다.“아람아, 어찌 됐건 신경주에게 넘어가면 안 돼! 이 세상에 좋은 남자가 하나도 없어!”백진은 아람의 마음이 흔들릴까 봐 노파심에 거듭 충고했다.“저, 저를 빼주세요, 도련님.”수해는 나지막하게 말했다.“나도.”“네네네…… 우리 구씨 가문의 남자들은 괜찮아.”백진은 서둘러 만회했다.“음, 모두 괜찮은 것은 아니지. 늘 발목을 잡는 어르신이 계시잖아!”아람은 희고 늘씬한 다리를 꼬며 농담을 던졌다.세 남자가 서로를 쳐다보면서 동시에 한 이름을 떠올랐다.‘구회장!’……“몰라!”아람이가 경주를 살려달라는 것을 들은 유민지는 화가 나서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늘 아람의 뜻을 따르던 둘째 새엄마는 경주를 치료해 달라는 요청을 단호하게 거절했다.“이모, 제 말 좀 들어봐요…….”아람은 어쩔 수 없었다.“난 할 말이 없어.”유민지는 손을 흔들며 차갑게 말했잖아.“신경주가 전에 너를 어떻게 대했는지 다 기억해. 나뿐만 아니라 연서 이모와 소연 이모도 기억할 거야! 저놈이 신씨 그룹 사장이잖아! 능력이 있으니 알아서 해결하라고 해!”“이모…….”“참, 신경주 곁에 여자가 많잖아. 왜 이럴 때는 한 명도 없대?”날카롭게 말하는 유민지는 경주를 죽이고 싶었다.”“이모, 신경주가 밉상이긴 하지만, 이번에는 날 살려준 생명의 은인이에요.”아람은 유민지의 손을 잡고 소파에 앉았다.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은 아람이가 더 어른다워 보였다.유민지는 눈썹을 찌푸렸다.“그게 무슨 말이야?”아람은 기락산에서 사람을 구하기 위해 조난당하고, 경주가 그녀를 구해주기 위해 다친 일까지 낱낱이 얘기해 주었다.듣고 난 유민지는 아람을 잡고 있는 손이 차가워지며 잔뜩 겁을 먹었다.“아람이, 너! 네가 내 친딸이라면 널 가두어 놓고 한 대 때렸을 거야!
“아람아, 솔직히 말해 봐. 이 일 때문에 신경주에게 마음이 흔들렸어?”유민지는 걱정스럽게 물었다.“아니요.”아람은 단호하게 대답했다.“제가 바보도 아니고, 왜 같은 불구덩이에 뛰어들겠어요. 그냥 신세 진 느낌을 싫어서 그래요.”왠지 모르게 당황한 느낌이 있었지만 곧 가라앉았다.“다행이네. 신경주와 재결합하고 싶다면, 아마 고아로 됐을 거야.”유민지는 차갑게 그녀를 흘겨보았다.“가족이야, 나쁜 남자야. 알아서 선택해.”아람은 순간 겁에 질려 소름 돋은 팔을 쓰다듬었다.“아람아! 둘째 언니!”이때 강소연이 문을 두드리고 성큼성큼 걸어왔다.“셋째 언니의 생일 파티 의상이 왔어. 빨리 나와서 입어봐. 결혼할 때도 청바지를 입어서, 여자들의 옷은 잘 모르겠어.”“그래! 바로 갈게!”유민지가 이것저것 물을까 봐 아람은 급히 그녀를 끌고 초연서에게 갔다.……세 여인은 허둥지둥 초연서의 방으로 왔다.이동식 행거에 화려한 드레스가 줄지어 걸려 있었다. 드레스들은 모두 글로벌 한정판이고 파리 패션 위크의 최신 모델이다.그 드레스들은 하나같이 빛이 났다.바닥에는 고급 하이힐이 줄줄이 있었다. 몇 켤레의 앞코에는 반짝이는 다이아몬드가 박혀있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다른 여자라면 벌써 흥분해서 소리를 질렀을 것이다. 위에 있는 다이아몬드만 해도 집을 살 수 있었다.하지만 초연서는 평범한 연보라색 니트를 입은 채 소파에 앉아서 보고만 있었다.“연서 이모, 왜 그래요? 곧 생일인데 왜 기분이 안 좋아요?”아람은 초연서의 곁에 앉아 그녀를 패기 있게 끌어안았다.“아람아, 생일 파티를 취소하자고 아버지에게 얘기해 봐.”초연서는 마지못해 한숨을 내쉬었다.“내가 보름이나 얘기했어. 가족끼리 집에서 모이면 돼. 밖에 음식들이 입에 맞지도 않아. 많은 손님을 접대하는 것도 힘들어. 돈 낭비하잖아. 내가 아무리 말해도 만복이가 듣지 않아. 어쩌면 좋아?”“와! 셋째 언니, 지금 자랑하는 거지?”강소연은 옆에서 장난쳤다.“언니가 어떤 사람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