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깜짝 놀라듯 여이현을 응시했다. 그의 얼굴은 매우 차갑고 눈은 얼음같이 싸늘했다. 그는 냉담하게 입을 열었다. “너 요즘 이상해. 내가 알아차릴까 봐 무서운 거야?”온지유의 심장은 반 박자 천천히 뛰었다. “어디가 이상하다는 거예요? 무슨 걸 알아차린다는 거예요?”여이현은 말했다. “처음 네가 나에게 여자를 소개해줄 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몰래 병원에도 가고!”온지유는 그의 눈을 피하며 말했다. “내 생활은 아무 이상 없어요. 당신이 괜히 의심하는 거예요.”“그럼 이유를 말해봐. 내가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여이현은 온지유가 비밀을 숨기고 있다는 느낌을 계속 받아왔다. 하지만 그녀의 비밀이 무엇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온지유는 손을 맞잡아 긴장을 풀고 나서 말했다. “여이현, 당신이 이상하다는 거 못 느껴요?”“내가 이상해?”겨우 여이현은 그런 이유를 들었다. 그녀의 말은 신빙성이 좀 떨어졌다.“내가 어디가 이상하다는 거야?”온지유는 말했다. “당신 요즘 나에게 너무 신경 쓰고 있어요.”그 말을 듣고 여이현은 약간 입술을 다물었다.“내 생활의 작은 행동들이 당신에게 이상하게 느껴진다면 당신이 너무 예민한 거 아닐까요.”그녀는 화살을 여이현에게 돌리고 자신은 아무 잘못도 없다는 듯 말했다.온지유는 계속해서 말했다. “왜 이렇게 예민해졌을까요? 예전에는 그러지 않았잖아요. 병원에 가는 것조차 신경 쓰지 않았어요. 내가 우유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도 관심 없었잖아요. 그런데 요즘 당신은 나를 더 잘 알게 되었어요.”“당신이 나에게 대해 신경을 쓰고 있기 때문에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거예요. 당신이 나를 더 신경 쓰고 있다는 걸 느끼지 못해요?”온지유는 여이현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물었다. “혹시 나를 좋아하게 된 거 아니예요?”그 말을 듣고 여이현의 얼굴이 굳어지더니 곧바로 냉담하게 말했다. “온지유, 선을 넘었어!”온지유는 담담하게 시선을 돌리며 그가 이런 대답을 할 줄 예상하고 있었다.예전에는 그
두 사람은 서로 마음을 터놓지 않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온지유는 방으로 돌아가 짐을 정리했다. 온재준의 장례식이 끝나고 나니 이제 돌아갈 때가 되었다.“지유야.”정미리가 갑자기 들어왔다.온지유는 움직임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엄마.”정미리는 그녀 옆에 앉았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 같았다. 온지유도 이를 눈치 채고 그녀 옆에 앉았다. “엄마, 무슨 일이에요?”“이번에 여이현이 왔잖니.” 정미리가 말했다.“네.”정미리는 온지유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희가 이혼할 거라고 하지 않았니? 그런데 이번에 도와주러 오고 전혀 이혼하는 것 같지 않더구나. 이렇게 된 거면 굳이 사람을 귀찮게 할 필요 없잖니.”그들은 여이현에게 너무 많은 빚을 지고 싶지 않았다. 나중에 갚기 힘들어질 것이다.온지유는 말했다. “우리가 고향에 오는 걸 여이현에게 말하지 않았어요. 나중에 감사 인사를 할게요.”“그런데 왜 그가 너를 도와주지?” 정미리는 이해하지 못했다. “너희가 말하지 않았다면 나는 네가 좋은 남편을 만난 줄 알았을 거야. 결혼을 숨기든 말든 상관없었을 거야. 지금 사람들은 내가 좋은 사위를 뒀다고 얼마나 열성적인지 몰라. 여이현이 오지 않았다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텐데. 나는 너희를 이해할 수가 없어.”그뿐만 아니라 그녀도 이해할 수 없었다.사랑 없는 결혼인데도 그는 항상 자신의 일처럼 그녀의 일을 챙겨준다.결혼한 지 3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여전히 그를 남편이라고 외부에 말한다.정미리는 다시 말했다. “나는 네가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 너를 사랑하는 남자를 찾고 돈이 있든 없든 상관없어. 물론, 이현이는 모든 면에서 훌륭하지만 결국 한순간의 꿈일 뿐이야.”온지유는 어머니가 자신이 빠져들지 않기를 바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알겠어요, 엄마.”온지유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걱정 마세요. 이 결혼은 반드시 끝낼 거예요.”정미리는 온지유의 손을 잡으며 약간 마음이 아팠다. “미안해, 지유야.”온지유
장수희는 오랫동안 망설인 끝에 온재준이 땅속에서라도 편히 잠들게 하는 것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온재준이 헛되이 죽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온지유, 온재준의 일로 우리가 큰 대가를 치렀어. 우리도 고통을 겪었어.” 장수희는 이 며칠 사이에 한순간에 늙어버린 듯 보였고 머리에는 몇 가닥의 흰머리가 생겼다. “장례식 동안 내가 너에게 심한 말을 한 것에 대해 미안해. 내가 이성을 잃었었어. 이제 온재준을 죽인 범인을 찾을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의향이 있어.”“숙모” 온지유가 한 번 불렀다. “모든 일은 이미 지나갔어요. 저도 마음에 담아두지 않아요.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해요. 옛일에 얽매여서는 안 돼요. 온채린의 실습 문제는 제가 해결할게요. 비록 그녀가 여진그룹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절대 그녀를 억울하게 하지 않을 거예요.”이 말은 그녀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소식이었다.온지유의 인맥은 그녀들보다 훨씬 강했기 때문에 절대 손해 보지 않을 것이다.“고마워, 온지유.” 장수희는 안심하며 웃었다.온채린도 따라서 말했다. “고마워요, 사촌 언니.”본론으로 돌아와, 온지유는 핸드폰을 꺼내 사진 앨범을 열고 바로 사진을 그녀들 앞에 놓고 물었다. “당신들을 꼬드긴 사람이 이 사람이에요?”장수희와 온채린은 사진을 보고 약간 흥분하며 손가락으로 사진을 가리켰다. “맞아요, 맞아요!”그들은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어떻게 알았어요?”온지유는 이미 준비가 되어 있었다.묘지에서 그녀는 주소영의 사진을 몰래 찍어 두었는데 바로 그녀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였다.그녀의 추측이 맞았다.이렇게 멍청한 짓을 할 사람은 그녀밖에 없었다.“이 사람을 알아요. 그녀는 나에게 문제를 일으키려고 내 주변 사람들을 이용해요. 당신들 가족을 노린 거죠.”온지유는 이제 모든 것을 이해했다. 그 뒤에서 이 모든 일을 주도한 사람이 주소영이었다.온채린은 말했다. “난 봤어요. 묘지에서 그 여자가 언니를 해치려 했지만 우리 아빠를
그날 밤 클럽의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오래간만에 연락이 닿아 주소영은 좋은 소식을 전하려고 했다.전화를 받자 그녀는 기쁜 소식을 전하며 웃으며 말했다. “여보세요, 엄마, 저 지금 잘 지내고 있어요. 아기도 건강하고, 큰 집에 살고 있고, 돌봐주는 사람도 있어요. 특히 아이 아빠의 어머니가 저를 아주 좋아해요. 앞으로도 잘 지낼 것 같아요.”하지만 그쪽에서는 다급하게 말했다. “소영아, 내가 너한테 전화한 이유는 문제가 생겼다는 걸 알려주려고 해. 경찰이 너에 대해 물어보고 있어. 무슨 일 저지른 거 아니야?”이 말을 듣자 주소영의 얼굴이 급격히 굳어졌다. “경찰이 정말 나를 찾고 있어요?”“그래, 네 정보를 캐고 있더라고.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말이 끝나기도 전에 주소영은 전화를 끊었다.그들은 자신이 여씨 집안에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경찰이 금방 이곳에 올 것이다.그녀는 경찰에 잡힐 수 없었다. 그래서 이곳을 떠나야 했다.서둘러 집을 나서며 어디로 가는지 말할 수도 없었다. 급히 여씨 집안을 떠났다.그녀가 막 뛰어나왔을 때 경찰차 소리가 들렸다.정말로 그녀를 찾으러 온 것이다.주소영은 얼굴이 창백해졌고 도둑이 제 발 저린 것처럼 몰래 도망갈 수밖에 없었다.경찰에 잡히고 싶지 않았던 그녀는 이제 막 좋은 삶을 살기 시작했는데 남은 인생을 감옥에서 보내고 싶지 않았다.경찰차가 여씨 가문에 도착했다.여이현은 소리를 듣고 약간 당황했다. 경찰이 왜 이곳을 찾아왔을까.알고 보니 그들은 주소영을 찾고 있었다.그렇다면 그녀가 범죄를 저질렀을 것이다. 여이현의 얼굴은 매우 어두워졌다.보기엔 멀쩡한 여자애가 어떻게 경찰에 쫓길 수 있는지 말이 안 되었다.주소영은 경찰이 쫓아올까 봐 빠르게 도망쳤다. 잠시도 멈출 수 없었다.지쳤고 몸이 불편했지만 배를 움켜쥐고 계속 뛰어야 했다.하지만 어디로 갈 수 있을까?주소영은 갑자기 방향을 잃었다.클럽으로 갈 수 없었다.경찰이 분명 고향까지 찾아갈 것이다.어디로도 갈 수 없
타고난 아가씨의 기질. 이런 고귀함은 다른 사람에게서는 볼 수 없는 것이다. 주소영은 이런 점이 부러웠다. 어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승자다. 반면 그녀는 예쁜 얼굴을 가지고 있어도 클럽에서 일할 수밖에 없다.노승아는 거울을 통해 그녀를 바라보며 입 꼬리를 살짝 올리고 차갑게 물었다. “날 찾아온 이유가 뭐죠?”“날 좀 도와줘요, 경찰이 날 잡으려고 해요.”주소영은 지금도 여전히 두려움에 떨고 있었고 경찰차 소리가 들리는 것만으로도 겁이 났다. 오직 노승아만이 그녀를 도울 수 있었다.“김예진, 너는 나가 있어. 내가 그녀와 이야기 좀 할게.”“알겠습니다.”매니저는 대답하고는 방을 나갔다. 방 안에는 두 사람만 남았고 옆에는 수많은 드레스 샘플들이 있었다. 옆에는 베란다도 있었다.주소영은 베란다 옆 의자에 앉아 있었다. 옆에 작은 테이블이 있었고 그 위에는 여전히 따뜻한 차가 있었다. 그녀는 그 차를 손에 들고 손을 데우며 다급하게 말했다. “지금 나는 길이 막혔어요. 경찰이 분명히 날 잡으러 올 거예요. 나는 감옥에 가기 싫어요, 정말 싫어요...”노승아는 매우 침착하게 홍차를 들고 가볍게 마셨다. “무슨 일을 저질렀어요?”“사람을 해쳤어요.” 주소영의 목소리는 떨렸고 그녀는 그 순간을 마음에서 떨쳐낼 수 없었다. “온지유의 삼촌을 내가 죽였어요. 그를 시켜 온지유를 납치하게 했어요. 나는 온지유가 죽길 바랐어요, 하지만 그녀는 목숨이 질겨서 살아남았어요.”“그녀의 삼촌은 손을 대지 않으려고 했어요, 그래서 내가 그녀의 삼촌에게 먼저 그녀를 죽이라고 했어요. 그러면 살인은 내가 한 것이 아닐테니깐요. 하지만 그는 내 말을 듣지 않았어요. 이건 납치죄예요, 감옥에 가야 해요. 나는 감옥에 가기 싫었고 그가 나에게 죄를 떠밀까 봐 무서웠어요. 그는 이미 내 얼굴을 봤고 나는 온지유를 그렇게 많이 해쳤는데 그들이 나를 폭로하면 어떻게 할까요? 그가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해야 했어요. 그래서 차에 손을 대서 폭발하게 해서 그는 죽었고
주소영은 그녀의 눈빛을 보고 처음 만났을 때의 친밀함과는 완전히 다른 것을 느꼈다. 그녀의 안색이 크게 변했다.“당신은 날 이용한 거야!”주소영은 말했다. “당신은 일부러 나에게 그 말을 했고 일부러 내가 행동하게 한 뒤 손을 뗐어. 잔인한 사람은 바로 당신이야.”노승아가 일부러 친근하게 접근하고 아기 옷을 사주며 그 말을 한 것은 주소영을 이용해 자신의 후환을 제거하려는 의도였다. 노승아는 진심으로 그녀를 관심한 것이 아니라, 주소영을 깊은 구렁텅이로 밀어 넣으려 한 것이다.“정말 연기 잘하는구나!” 주소영은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당신은 나를 아주 좋아하는 척, 나를 위해주는 척, 착한 척, 너그러운 척했어.”노승아는 차분하게 차를 마시며 이런 말들은 그녀에게 칭찬에 불과했다.“지금도 내 아이를 해치려고 해.” 주소영은 배를 감싸며 말했다. “당신은 나와 이현 오빠의 아이를 받아들이지 못해. 당신은 잔인한 여자야!”주소영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안 돼, 여기서 머무를 수 없어. 당신은 날 구해주지 않을 거야!”그녀는 도망치려고 했지만 밖에서 경찰차 소리가 들려왔다.그녀는 공포에 질려 다시 노승아를 바라보았다. “경찰이 여기 어떻게 온 거죠? 어떻게 찾아낸 거죠?”노승아는 눈을 들어 미소 지으며 말했다. “물론 신고했죠. 당신이 범죄를 저질렀다면서요? 당연히 경찰에 알려야죠. 나는 착한 사람이니까요.”“노승아!” 주소영은 분노에 차 외쳤다. “너 이 나쁜 년아, 네가 날 망쳤어. 너 이 나쁜 년!”주소영은 격분하여 노승아의 목을 움켜잡았다. “당신은 날 대신 죽게 하려고 했어. 죽을 거면 같이 죽자. 너도 살지 못할 거야!”노승아는 입을 크게 벌리며 소리쳤다. “살려줘! 살인이다, 살인!”그러나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미 노승아에 의해 밖으로 나가 있었다.주소영은 이성을 잃고 탁자 위의 과일 칼을 집어 들고 노승아를 찌르려 했다.노승아는 두려움에 떨며 말했다. “안 돼, 안 돼!”그녀의
죽을 때까지도 이런 집착이 남아 있었다.그녀는 아이를 통해 신분 상승을 꿈꾸었다.아이가 생기면 그녀도 안정될 줄 알았다.모친의 지위로 아이를 통해 자신도 출세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결국은 한낱 헛된 꿈일 뿐이었다.이 말을 다 하고 나서, 주소영은 숨을 멈췄다. 눈은 크게 뜬 채로 전혀 감기지 않았다.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한 채 말이다.경찰이 내려왔을 때, 주소영은 이미 죽어 있었다.그들은 현장을 통제선으로 둘러쌌다.노승아는 경찰에 의해 부축을 받아 내려왔다. 머리는 헝클어지고 얼굴은 창백했으며 온몸은 피투성이였다. 눈물은 눈가에 맺혀 있었고 겁에 질린 표정이었으며 손은 계속 떨리고 있었다.경찰은 그녀를 위로하며 겁먹지 말라고 했다.노승아의 눈물이 서서히 흘러내리며 그녀는 공포에 떨었다.매니저는 그녀를 안아주며 위로했다.온지유가 도착했을 때, 사건은 이미 끝난 상태였다.그녀가 본 것은 한 구의 시체뿐이었다.그 순간, 그녀는 매우 충격을 받았다. 주소영이 왜 추락해서 죽은 것일까?그녀는 다시 한 번 멀리서 노승아를 바라보았다. 노승아는 앉아서 따뜻한 물을 마시고 있었다.“온지유, 용의자는 이미 사망했습니다!” 경찰은 온지유에게 말했다. “이 사건에 다른 의심스러운 인물이 없다면 사건은 일단락될 것입니다!”온지유는 듣고 있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시선은 노승아를 향했고 의심이 생겼다.주소영과 노승아는 몇 번 만나본 적이 없었는데 왜 그녀를 찾아왔을까? 게다가 추락해서 죽었다는 것이 의심스러웠다.주소영의 시체는 운반되었다.그들은 다시 경찰서로 돌아갔다.이번에는 주소영의 사망 사건을 처리하기 위해서였다.노승아는 코트를 걸치고 앉아 있었고 얼굴은 핏기 없이 창백했다. 그녀는 떨리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도 왜 그녀가 저를 찾았는지 모르겠어요...아마 제가 여씨 가문에서 그녀를 몇 번 보고 대화를 나눴을 때, 매우 즐거운 대화였어요. 그래서 그녀가 저를 찾아왔을 때 저도 친절하게 대접했어요. 제
삼촌을 죽인 범인이 없어졌다.이제 더 이상 조사를 할 필요가 없어졌다. 증거를 찾을 필요도 없다. 이 사건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노 아가씨, 당신의 진술은 끝났습니다. 이제 상처를 치료하러 가세요.” 경찰이 말했다.매니저가 말했다. “노승아 언니, 당신은 너무 착해요. 자신도 다쳤는데 병원에 가지 않고 먼저 경찰서에 와서 일을 마무리하다니.”노승아의 눈가는 빨갛고 얼굴은 매우 창백했다. “그만 말해, 이미 끝났어. 이제 병원에 가자.”매니저는 노승아를 부축하며 걸었다. 그녀는 매우 허약해 보였지만 억지로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그들은 바로 온지유와 마주쳤다.노승아는 온지유를 보며 말했다. “정말 우연이네요, 경찰서에서도 만나게 되다니.”온지유는 노승아의 손이 다쳤고 옷이 피로 범벅인 것을 보았다. “우연이 한두 가지가 아니죠. 사람이 떨어져 죽었는데 하필 당신 집에서 떨어졌다고요?”노승아는 잠시 멈췄다가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며 말했다. “그 소녀 말하는 거예요?”그녀는 태연하게 서 있었고 다시 말했다. “그 소녀가 왜 날 찾아왔는지 모르겠어요. 나를 죽이려고 했던 거예요. 너무 무서웠어요. 그녀가 범죄를 저질렀다고 들었어요. 아마도 도망치다가 이미 모든 것을 포기한 걸 거예요.”“맞아요, 그녀와 몇 번 만났어요. 항상 여씨 가문에서 봤어요. 그녀는 여이현의 아이를 임신했다고 들었어요. 그녀는 내가 여이현과 관련이 있는 것을 알고 질투해서 나를 죽이려고 했을지도 몰라요.” 노승아는 모든 것을 명확하게 말하며 덧붙였다. “그녀는 여이현을 좋아했어요. 단 하룻밤의 관계였지만 그녀는 이미 자신을 여주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사람은 좋은 사람이 아니예요. 안타깝게도 젊은 나이에 잘못된 길을 걸었어요.”노승아는 모든 책임을 자신과는 무관하게 돌렸다.“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온지유는 노승아를 주시하며 말했다. “주소영이 저지른 어리석은 일들은 당신이 뒤에서 조종한 거겠죠.”“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난 그녀와 친하지
온지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노래를 잘 부르는 것은 아니나 음치는 아니었다.별이는 기쁜 얼굴로 손뼉을 쳤다.“너무 좋아요. 아빠, 엄마, 내일 어린이집에서 가족 이벤트를 한다고 했어요. 노래 대회라고 했는데 별이랑 같이 참가해줄 거죠?”내일은 주말이었다. 어린이집에서 주말에 이런 이벤트를 계획한 것도 평일 출근할 학부모를 고려해서였다.만약 여이현에게 다른 일정이 없다면 당연히 아내와 함께 별이의 어린이집으로 갈 것이었지만 하필이면 새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다.배진호는 권다솔의 마음을 되돌리느라 시간이 없으니 그가 해야 했다.“여보, 여보가 별이랑 같이 가줘. 난 그날 거래처 만나봐야 하거든.”신호를 기다리는 틈을 타 여이현이 온지유에게 말했다.온지유는 당연히 고개를 끄덕였다.아이의 일에 부모 모두 책임을 져야 했지만 두 사람은 부부였던지라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도 필요했다.여이현이 바쁘게 일하는 것도 더 유복하고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함이라는 것을 온지유도 잘 알고 있었다.별이는 더욱 배려심이 깊은 아이였다. 고집을 부리지도 않고 온지유의 팔을 꼬옥 잡아 기대며 말했다.“그럼 아빠는 일하러 가세요. 별이는 엄마만 있어도 괜찮아요. 선생님도 두 분 중 한 명만 있어도 된다고 했어요. 물론 두 분이 같이 가면 더 환영한댔어요.”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세 사람은 웃고 떠들다 보니 어느새 집에 도착했다.세 사람이 돌아왔다는 것을 눈치채기라도 한 것인지 자고 있던 온하윤도 눈을 떴다. 작은 입을 벌리며 하품했다.옆에 있던 김명자는 얼른 주방으로 가서 분유를 탄 뒤 온하윤의 입에 물려주었다. 향긋한 분유 냄새를 맡은 온하윤은 꿀꺽꿀꺽 젖병을 빨아 먹었다.세 사람이 집 안으로 들어왔을 때 마침 이 모습을 보게 되었다. 너무도 행복했다.“오늘 저녁은 내가 할게. 별이가 먹고 싶다는 햄버거를 만들고 있을 테니까 당신은 아이들이랑 놀아줘.”온지유는 여이현에게 뽀뽀한 뒤 앞치마를 두르곤 주방으로 들어갔다.거실에선 웃고 떠드는 소리가 울
권다솔은 이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바로 결혼할 수 없었다.게다가 남태건과 평생 묶여 살고 싶지도 않았다.설령 어젯밤 이상한 약물 탓에 그와 밤을 보내게 되었다고 해도 그녀의 마음속엔 온통 배진호뿐이었다. 오늘 아침 눈을 떴을 때 그녀의 온몸이 남태건의 터치를 거부하고 있었다. 설령 그저 손을 잡는 것일 뿐이라고 해도 말이다.남태건은 잔뜩 실망한 기색이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그래, 일단 생각은 해봐. 다솔아, 급하게 답을 주지 않아도 돼.”그녀가 계속 거절한다면 그녀의 부모님을 찾아가 설득하면 그만이었다.권다솔의 부모님은 그를 아주 좋아했다. 어떻게든 그녀와 이어주려고 했으니 그들과 손을 잡는다면 권다솔과 결혼할 수 있을 것이다.권다솔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설령 오랫동안 생각을 해본다고 해도 남태건을 받아줄 리가 없었다....한편 온지유 쪽.권다솔이 떠난 후 두 사람은 서로 연락하지 않았다.그동안 여이현은 배진호를 찾아간 적 있었다. 기획하고 있던 프로젝트를 넘겨주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배진호는 집안일로 상태가 아주 좋지 못했다. 지금까지 혼자 회사를 운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힘들어 보였으며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을 기력은 없었다.배진호는 여이현의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 솔직하게 말했다.그가 솔직하게 말하니 여이현도 강요하지 않았다.“일단 집안일부터 처리하세요.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고요. 집안일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나한테 다시 찾아와도 돼요. 그때 또 새로운 일을 줄 테니까요.”여하간에 여진 그룹은 대기업이었기에 프로젝트는 언제든지 있었다.한번 기회를 놓친다고 해서 문제가 될 건 없었다.배진호는 그런 여이현이 너무도 고마웠다. 이미 충분히 그를 도와주고 있었다.하지만 감정이라는 건 결국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는 법이었다. 물을 마셔도 뜨거운 것인지 차가운 것인지 본인만 아는 것처럼 말이다. 너무 많은 사람이 끼어들면 때로는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킬 때도 있었다.그는 권다솔과 다시 함께 살고 싶었지만, 전제가
“참.”권다솔은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체크아웃 해야겠어요.”“그럴 필요 없어. 어젯밤 방은 내가 예약한 거거든. 우린 그냥 바로 병원으로 가면 돼. 나머진 내가 알아서 다 처리할 거야.”남태건은 급하게 그녀를 말렸다.두 사람이 나가자마자 배진호가 돌아왔다.그의 손에는 금방 만든 샌드위치가 있었다. 맛집으로 소문난 가게였던지라 그는 족히 반 시간은 기다려서야 살 수 있었다.하지만 괜찮았다. 권다솔이 좋아하기만 한다면 반 시간이든 한 시간이든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었다.“손님.”이때 로비 직원이 그를 불렀다.그녀는 배진호를 측은한 눈길로 보았다. 즐거운 마음으로 아침을 사러 나갔다가 그의 여자친구가 다른 남자와 함께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모르는 그는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직원은 결국 참지 못하고 말해주었다.“여자친구분이 이미 떠나셨어요. 체크아웃하시겠어요?”“네, 체크아웃할게요.”배진호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잠에서 깨어난 권다솔이 그에게 말도 없이 가버린 것을 보면 아직 그를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모르는 것 같았다.그래서 그가 나간 사이에 생각을 정리할 겸 먼저 가버린 것으로 생각했다.체크 아웃을 한 뒤 배진호도 호텔에서 나왔다.그는 누군가 자신을 사칭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남태건은 권다솔을 데리고 병원으로 온 뒤 기본적인 검사를 진행했다. 권다솔은 아주 건강했다.하지만 그녀는 기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두 눈에서 눈물이 똑똑 떨어지고 있었다.“다솔아, 나랑 함께 밤을 보낸 게 그렇게 슬픈 일이야? 너한테 나는 그런 존재였어?”그녀를 집으로 데려다주던 남태건은 눈가가 붉어졌다.권다솔은 오직 배진호만 원했다. 그 사실에 그는 가슴이 쓰라리면서 분노가 치밀었다.그는 이미 권다솔을 자신의 아내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배진호는 그의 아내와 밤을 보내지 않았는가.권다솔은 고개를 저었다.“그런 게 아니에요. 전 그냥 이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을 뿐이에요. 전 태건 씨를 여전히 친구로만 생각하고 있거든요.
권다솔은 눈을 떴다.옆에 누워있는 남태건을 본 순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머릿속도 하얘졌다.그녀는 힘겹게 입을 뗐다.“어젯밤에... 그럴 리가 없잖아요?”머릿속에 남아 있던 기억이 알려주고 있었다. 어젯밤 그녀와 함께 있었던 사람은 배진호라고. 하지만 왜 남태건이 눈앞에 있는 것일까?그녀는 이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다솔아, 내가 어제 일찍 집에 들어가라고 했잖아. 그런데 네가 싫다면서 나더러 먼저 가라고 했지. 내가 어떻게 너만 혼자 남겨두고 집에 가? 주위에 남자들이 득실거리는데. 정말로 내가 먼저 갔다면 이상한 파리들이 너한테 꼬였을 거라고. 내가 그렇게 경계하고 있었는데도 너한테 파리가 꼬였을 줄은 몰랐네.”남태건은 태연하게 거짓말을 해댔다.얼굴도 붉지 않고 가슴도 요동치지 않을 정도로 태연했지만 두 눈엔 안타까움만 남아 있었다.“누가 네 술잔에 뭔가를 탔어. 그걸 눈치 못 챈 네가 주스를 가지러 갈 때 결국 정신을 잃게 되었었지. 하마터면 처음 보는 놈들에게 끌려갈 뻔한 걸 내가 막은 거야.”권다솔은 어젯밤 있었던 일을 기억해내려고 애를 썼다.그녀는 확실히 자신에게 치근대던 남자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그녀에게 손을 대려고 했으나 배진호가 나타나 남자를 때려주며 무사하게 되었다.분명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을 구해준 사람이 배진호라는 것을. 애초에 남태건이 아니었다.“정말로 절 구해준 사람이 태건 씨예요? 거짓말 하고 있는 건 아니죠?”권다솔은 반신반의하며 말했다.남태건은 손을 번쩍 들며 맹세했다.“당연히 거짓말이 아니야. 어젯밤 널 구한 사람이 내가 아니라면 내가 어떻게 너랑 같은 방에 있겠어? 다솔아, 그 약은 아주 위험한 약이야. 사람 기억까지 흐릿하게 만들 수 있는 약이지. 이따가 나랑 같이 병원에 가자. 후유증이라도 남으면 안 되잖아.”기억까지 흐릿하게 만든다는 말에 권다솔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설마 진호 씨랑 보낸 시간이 전부 꿈인 거야? 약 때문에 환각이 생긴 거야?'그녀는 어제 꿈속에서 배
만약 권다솔이 모른다고 한다면 그는 이곳을 떠나 그녀가 푹 쉴 수 있게 해줄 생각이었다.그는 알고 있었다. 권다솔이 취했다는 것을. 술에 취한 사람과 억지로 하고 싶지 않았다.“진호 씨, 내가 어떻게 진호 씨 얼굴을 잊겠어요. 설마 내가 진호 씨를 못 알아볼 거로 생각한 거예요?”권다솔은 그를 보았다.그녀는 지금 술기운이 올라오고 있었다. 호텔 불빛 아래 보이는 배진호의 얼굴도 흐릿했다.이 모든 게 꿈일 거로 생각했다.현실에서는 감정을 꾹꾹 누르고 있었으니 꿈에서만큼은 전부 표현하리라 생각했다.그녀는 한번 또 한 번 배진호의 이름을 불렀다.그저 그의 이름을 불렀을 뿐인데 배진호는 이성을 잃고 말았다.그는 옷을 하나씩 벗으며 방 안의 불을 꺼버렸다. 그리고 고개를 내려 권다솔에게 키스했다. 두 사람은 뜨거운 키스를 나누었다.얼마나 지났을까, 두 사람은 전부 힘이 빠진 상태였다. 그제야 서로에게서 떨어졌다.권다솔은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손가락 하나조차 움직일 수 없었기에 샤워하는 것은 더욱 불가능했다.그래서 그대로 눈을 감고 자버렸다.그날 밤, 그녀와 배진호는 그 어느 때보다 푹 자게 되었다.다음 날 아침이 되자 열린 커튼 틈 사이로 햇볕이 들어와 배진호는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옆에 누워있는 권다솔을 본 그는 전례 없던 행복을 느끼게 되었고 이대로 시간이 멈추길 바랐다.그는 권다솔에게 이불을 덮어준 뒤 옷을 입었다. 아침을 사러 갈 생각이었다.어젯밤 두 사람은 아주 격렬하게 서로를 원했기에 권다솔이 깨어나면 분명 배고플 것이었다.아침을 먹은 후에 두 사람을 편히 잠 못 이루게 했던 문제들을 해결해볼 생각이었고 이혼도 취소할 생각이었다.그는 그렇게 호텔을 나섰다.그 모습을 마침 남태건이 목격했다. 그는 어젯밤 내내 권다솔을 찾아다니느라 잠도 자지 못했지만 찾지 못했다.조급해진 그가 경찰에 실종 신고를 하려던 때 배진호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심지어 배진호는 호텔에서 나왔다.그렇다는 건...남태건은 이를 빠득 갈며 호텔
남자는 머리가 어질거렸다. 고개를 들자 보이는 잔뜩 화가 난 배진호의 얼굴에 그는 꼬리를 내리게 되었고 이내 배진호에게 비위를 맞추려고 했다.“깼어요, 깼어요. 이 여자는 형님한테 넘길게요. 두 사람 방해하지 않고 바로 여기서 꺼져드릴 테니까 형님은 천천히 즐기십시오!”“여자도 사람이야. 우리랑 같은 인간이라고. 물건처럼 넘기느니 마느니 할 자격 없어, 너한테.”배진호는 손을 뻗어 남자의 멱살을 잡으며 엄숙하게 경고했다.그는 방금 이곳에서 나는 소리를 들었다. 나서서 도와준 이유는 아무 잘못도 없는 여자가 괴롭힘당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그저 한 몫 챙겨보려고 구하러 온 것이 아니었다.그의 마음속에 권다솔 외에는 누구도 들어올 수 없었다.“네, 네.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남자는 바닥을 기어 다니더니 빠르게 몸을 일으켜 도망쳤고 중얼거리며 배진호를 욕했다.‘어디서 허세를 부려!'‘세상에 욕망이 없는 남자가 어디에 있다고! 다들 여자를 원한다고!'배진호는 쫓아가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방금 남자에게 당하고 있었던 여자에게 밤늦게 술집에 왔을 땐 조심하라고 말하고 싶었다.그런데 그는 권다솔을 발견하게 되었다.“진호 씨? 내가 지금 헛것을 보고 있는 건 아니죠? 진호 씨가 왜 여기에 있어요?”권다솔은 그를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갔다.그녀는 눈앞에 있는 남자를 보았다. 자신이 그렇게나 그리워했던 남자가 지금 바로 눈앞에 있자 땜이 무너져버린 저수지처럼 감정이 흘러나왔다.이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권다솔은 속으로 자신에 말했지만, 여전히 참지 못하고 손을 뻗게 되었다. 배진호를 직접 만지며 꿈인지 현실인지 확인하고 싶었다.“나예요. 우리가 같은 목적으로 여기에 온 것 같네요.”배진호는 씁쓸하게 웃었다.방금 그는 차를 몰고 이곳으로 오면서 안에서 빛나는 불빛 보며 생각했었다. 만약 이곳에 권다솔이 있다면 분명 안으로 들어가 한잔 마셨을 것이라고.그 생각으로 이 안까지 들어온 것이다.그러나 그는 정말로 이곳에서 권다솔을 만나게
“태건 씨, 다시 말하지만 나는 도움이 필요 없어요. 빨리 돌아가세요.”권다솔의 목소리엔 이미 지친 듯한 짜증이 묻어났다.그녀가 밤늦게 클럽에 온 이유는 마음을 풀고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이지 남태건이 옆에서 잔소리를 늘어놓으라고 온 게 아니었다. 하지만 남태건은 그녀의 말을 듣지 않고 오히려 그녀 옆에 자리를 잡고 자신도 맥주 한 병을 땄다.“네가 술을 마시고 싶다면 내가 같이 마셔줄게. 네가 집에 가고 싶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데려다줄게.”권다솔은 한동안 대답하지 못했다.갑자기 술 마실 기분이 뚝 떨어진 그녀는 술병을 옆으로 밀어두고 춤추는 남녀들로 가득한 스테이지를 멍하니 바라봤다.‘이 순간에 배진호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다솔아, 우리도 같이 춤출래?”남태건이 먼저 제안했다.아까 이쪽으로 오면서 그는 배진호를 봤다.그 남자는 정말로 끈질기게 권다솔의 앞에 나타났다. 아니면 둘 사이엔 정말 인연이라도 있는 걸까? 이렇게 힘들고 지칠 때 찾는 곳이 똑같다는 것 자체가.하지만 남태건은 그런 인연도 자신이 있는 한 반드시 끊어낼 거라 다짐했다.그는 배진호가 자신의 두 눈으로 확인하도록 만들고 싶었다. 권다솔과 자신이 춤을 추며 두 사람의 몸이 밀착해 있는 모습을 말이다.권다솔은 고개를 저었다.“혼자 가세요. 난 그냥 조용히 있고 싶어요.”“네가 안 간다면 나도 안 가. 나는 너하고만 있고 싶어. 다른 여자는 보지도 않을 거야.”남태건은 천천히 그녀에게 더 가까이 다가갔다.둘 사이의 거리가 한층 더 좁혀졌다.남태건이 손을 내밀어 권다솔의 손끝에 닿으려는 순간, 권다솔이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다솔아, 어디 가려고?”남태건은 그녀가 화난 줄 알고 얼른 따라가려고 몸을 일으켰다.권다솔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주스 좀 받아어려고요. 금방 올 테니까 여기 있으세요.”그제야 남태건은 안심하고 자리에 앉았다.그는 미리 준비해 둔 액세서리를 가방에서 꺼냈다. 권다솔이 돌아오면 그녀에게 선물할 생각에 미소를 지
술병이 박살 나며 바닥이 깨진 조각들로 가득 찼다.여자는 눈앞의 상황에 깜짝 놀라 화들짝 일어섰다.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배진호를 쳐다보는 그녀의 심장은 놀라서 요동쳤다."당신 지금 뭐 하는 거야?""비키라고 했잖아."배진호는 마침내 그녀를 바라보았다.그의 눈빛엔 감정이 전혀 없었다. 욕망은커녕 오히려 혐오감만 가득 차 있었다.그 순간, 여자는 철저히 무너지는 기분을 느꼈다.‘내가 그렇게 형편없나?’제 발로 찾아온 여자도 거부할 뿐만 아니라 맥주병까지 깨버리다니."알았어. 가면 되잖아. 설마 내가 당신 아니면 안 될 줄 알아?"그녀도 자존심에 화가 났다.체면을 세우고 싶었던 그녀는 독설을 날렸다."당신 같은 사람 나 말고 누가 좋아한다고 그래? 사람들한테 방해받기 싫으면 여기엔 왜 온 건데?"클럽은 남녀가 자유롭게 어울리는 곳 아닌가?자기가 순진한 남자라도 되는 줄 아는가?배진호는 그녀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주변이 조용해진 뒤, 그는 다시 자리에 앉아 조용히 술잔을 들었다.만약 권다솔이 여기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일 뿐이라는 것을.그가 술잔을 집으려 고개를 숙인 순간, 남태건이 그의 옆을 지나 안쪽 자리로 향했다.권다솔이 그곳에 앉아 있었다.그녀는 자신이 쫓아낸 남자들이 몇 명인지 셀 수도 없었다. 몇몇은 버티며 소란을 피우려 했지만 그녀의 손에 든 맥주병은 그들을 봐주지 않았다.머리를 맞을 뻔한 남자들은 당연히 더 이상 그녀를 귀찮게 하지 못했다.하지만 그들 역시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틈틈이 이쪽을 힐끔거리며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그때 남태건이 다가왔다.그는 권다솔의 손에 있던 술병을 순식간에 낚아챘다.“다솔아,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밤늦게 집에 안 들어가고 왜 여기서 혼자 술을 마시고 있어?”“이건 내 일이에요. 당신이랑은 아무 상관 없어요.”권다솔은 그의 말을 듣고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권다솔은 방금 뺏긴 술병 대신 새로운 술병
클럽에는 예쁜 여자들이 많았지만 권다솔 같은 분위기의 사람은 얼마 보이지 않았다.권다솔이 들어서자마자 한 남자가 술잔을 들고 와서 말을 걸었다.“저희 이미 자리 잡았는데 오실래요? 스페이드 에이스도 깠어요. 마시러 와요.”“저 사람 따라가실 거면 그만두고 이쪽으로 오세요. 전 이 클럽 회원이에요. 마시고 싶은 술이 있으면 아무거나 불러요.”하지만 권다솔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그들을 밀어냈다.“비켜주세요.”권다솔은 곧장 카운터로 걸어가서 테이블 석과 맥주를 한 박스 주문했다.그녀는 혼자서 자리에 앉아 기계식으로 맥주를 열고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곧 테이블 위에는 빈 맥주병들이 줄을 지었다.알콜로 정신을 마비시키고 싶었지만 이렇게 많은 술을 마셔도 머리는 점점 맑아지기만 했다.머릿속에는 심지어 배진호의 모습이 그려지기까지 했다.같이 일을 하던 장면들, 행복한 연애를 하던 장면들, 많은 조각들이 모여져 무릎을 꿇고 프러포즈를 하는 배진호의 모습으로 변했다.한때 그녀는 자신이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인 것 같았다. 크면서 한 번도 억울함을 겪은 적 없었고 일도 순조로웠다. 배진호라는 사랑하는 남자도 만났고 말이다.하지만 지금은 그저 광대가 돼버린듯한 기분이었다.“웨이터.”권다솔은 빈 술병을 한쪽에 치워두고 휘청거리며 일어섰다.“소주 몇 병 추가해 주세요.”맥주로는 아무리 마셔도 도저히 취하지 않았다.소주라도 더 마셔야 할 것 같았다.취하고 나면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더 이상 슬프지도 않을 것이다.머지않은 곳 다른 테이블 석에서 배진호도 한잔 또 한잔 술을 입안에 들이붓고 있었다.잘 생기고 분위기 있는 그의 모습에 고급스러운 옷차림, 게다가 주변에는 다른 여자도 없었다.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바에 있는 여자들의 이목을 끌었다.곧 노출이 심한 복장을 항 여자 한 명이 그의 곁에 와서 앉으며 배진호의 허리를 두 손으로 감쌌다.“오빠, 혼자 왔어? 혼자 마셔도 재미없는데 나랑 게임 할까? 진 사람이 옷 하나씩 벗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