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악!”두 무릎이 망가진 도민향은 귀에 거슬리는 비명을 질렀다.그녀는 땅바닥에 누워 아파서 뒹굴었다.이 광경을 보고 모든 사람들이 놀라서 멍해졌다.도민향이 자신의 출신을 말한 후에도 유진우가 사람을 다치게 하고 조금도 체면을 세워주지 않을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눈앞의 이분은 도씨 가문의 아가씨이다. 평소에 어디를 가든 사람들이 그녀를 에워싸고 아무도 건드리지 못했다.하지만 유진우가 뜻밖에도 사람들 앞에서 도씨 가문 아가씨의 다리를 망가뜨렸으니 그야말로 잔인하기 그지없었다.“유진우, 너 미쳤어? 네가 지금 무슨 짓을 했는지 알기나 해?”잠시 충격을 받은 단소홍은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펄쩍 뛰었다.“너... 감히 도 아가씨를 다치게 하다니? 넌 죽었어, 너희들 모두 죽었어!”“맞아! 도씨 가문은 절대 너희들을 가만두지 않을 거야, 이번에 너희가 아무리 많은 돈을 배상해도 소용없어.”그러자 몇 명의 젊은 남녀가 야단법석을 떨며 하나같이 분노했다.가문의 자제로서 항상 그들이 남을 괴롭혔고, 아무도 감히 그들을 괴롭히는 사람이 없었다.‘이 녀석은 정말 간이 크구나!’“오만스럽고 권세를 믿고 설치며 남을 업신여기니 내가 오늘 너희들에게 따끔하게 교훈을 줬을 뿐이야. 만약 불복한다면 언제든지 나를 찾아와도 돼.”유진우가 담담하게 말했다.어차피 처음으로 도씨 가문의 미움을 산 게 아니었다. 얼마 전에는 도석현도 때려서 지금 도민향을 때렸다 해도 별반 다를 게 없었다.“인마, 너 두고 보자!”독한 말을 내던지고 몇 사람은 얼른 도민향을 들고 떠났다. 옛 무세가의 도민향도 유진우의 상대가 아니니 자연히 그들은 스스로 매를 맞을 짓을 하지 않았다.“너... 이 미친놈아, 네가 도 아가씨를 때려서, 우리에게까지 해를 끼쳤어!”단소홍은 당황하기 그지없어하며 말했다.도민향이 맞았으니 도씨 가문도 분명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유진우뿐만 아니라 그녀도 함께 휘말리게 된다.이런 가문들은 한번 난폭하게 군다면 완전히 막무가내이다.“진우 씨,
“언니, 방금 우리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누군가가 사도현이 아서원에서 밥을 먹는 것을 봤다고 해요. 엄마와 이모는 이미 서둘러 갔으니 우리도 빨리 가요.”단소홍이 대답했다.“사도현? 이 사기꾼이 감히 나타나다니?”이청아는 눈썹을 찡그렸다. 얼마 전, 부도난 건물의 그 땅이 하마터면 이청아의 가족을 파산시킬 뻔했지만, 결국 호구인 유진우가 다 뒤집어썼다.그래서 사도현에 대해 그녀는 유달리 불쾌했다.“유진우, 멍하니 있지 말고 당장 운전해. 오늘 반드시 사도현이 사기 친 돈, 전부 돌려받을 거야!”단소홍은 화를 가라앉히지 못하고 씩씩거리며 말했다.“부도 건물은 이미 내가 인수했고 너희들은 손해를 본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흥분하는 거야?”유진우가 좀 이상해하며 물었다.“허, 무슨 소리하는 거야? 사도현 같은 사기꾼은 처벌받아야 돼. 우린 하늘의 뜻을 받아들여 정의를 행해야 해.”단소홍은 엄숙하게 말했다.“그래?”유진우는 웃기만 할 뿐 단소홍의 의도를 간파하지 않았다.하늘의 뜻을 받아들여 정의를 행하는 것은 당연히 허튼소리이다. 아마도 사기를 당한게 내키지 않아 사도현에게서 돈을 좀 얻으려고 하는 것 같다.차를 갈아타고 세 사람은 재빨리 아서원으로 향했다....아서원은 환경도 좋고 서비스도 좋으며 음식도 맛있지만 가격이 비싼 중식당 집이었다.이때, 아서원의 어느 VIP룸에서 번쩍번쩍한 차림의 사도현이 몇몇 친구들과 식사를 하고 있었다.“도현아, 내가 좋은 소식 하나 알려줄게.”이미 술을 먹은 지 좀 된 동그란 얼굴의 한 남자가 갑자기 말을 꺼냈다.“최근 들은 내부소식인데, 부도 건물 쪽 땅을 곧 중점적으로 개발한다고 해. 그래서 지금 값어치가 점점 오르고 있대.”“뭐라고? 중점 개발?”그러자 사도현은 어리둥절해하며 물었다.“아민아, 농담이지? 그 땅은 방치된 지 몇 년인데 어떻게 정부가 중점 개발을 할 수 있겠어?”“진짜야.”동그란 얼굴의 남자는 진지하게 말했다.“우리 아버지가 정부 쪽 사람이야. 이 소식은 이미
“사기꾼, 돈 갚아!”장경화는 들어서자마자 온갖 욕설을 퍼부으며 안색이 매우 흥분하였다.그녀는 더욱 기세를 올리기 위해 덩치가 크고 허리가 둥근 무지막지한 여자 몇 명을 청했다.“당신들이 왜 여기에 있어요?”사도현의 안색이 변하더니 왠지 제 발이 저렸다.‘밥 한 끼 먹는데 누가 문을 막다니.’“흥, 우리가 오지 않으면 어떻게 너 같은 사기꾼을 잡을 수 있겠어?”장홍매는 눈을 부릅떴다.“맞아, 우리 돈을 사기치고 여기서 먹고 마실 낯짝이 있다니, 정말 뻔뻔하기 짝이 없네.”장경화는 두 손으로 허리를 짚었다.“도현아, 이 아줌마들은 누구야? 내가 대신 쫓아낼까?”몇몇 친구들은 좋지 않은 얼굴을 했다. 지금 사도현은 그들의 돈줄이니 당연히 잘 보여야 했다.“괜찮아, 아는 사람이야.”사도현은 눈동자를 굴리다가 무슨 생각이 난 듯 급히 말했다.“너희들 먼저 돌아가, 난 사적인 일을 처리할 게 있으니 다음에 너희들에게 밥 사줄게.”말을 하고 사람들을 돌려보냈다.“사도현, 무슨 수작을 부리든 돈부터 빨리 갚아!”장홍매가 기세등등하게 말했다.“아줌마, 할 말 있으면 앉아서 천천히 얘기해요. 왜 이렇게 화를 내세요?”사도현은 미소를 지으며 내친김에 그녀들에게 차를 한 잔씩 따랐다.“수작 부리지 마, 이 사기꾼아!”장홍매는 가차 없이 찻잔을 뒤집었다.“아줌마, 이해가 안 되네요. 제가 뭘 속였다는 거죠?”사도현이 짐짓 의혹을 제기했다.“왜, 이제 와서 변명할 셈이냐?”장홍매가 눈을 부릅떴다.“사도현, 시치미 떼지 마. 그럼 다시 기억나게 해 줄게. 일주일 전에 네가 우리더러 부도 건물 땅을 사게 하여 총 2백억이 넘는 돈을 사기 쳤잖아. 자, 이제 기억났지?”장경화가 예의 주시했다. 부도 건물 쪽 땅은 하마터면 본전을 잃을 뻔했고, 지금까지도 장경화는 밤에 악몽을 꿨다.“아줌마, 두 분 다 오해했네요.”사도현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일부러 애원했다.“그건 모두 제 친구가 한 짓이에요. 부도 건물로 말할 것 같으면 사실 저도 피
그녀들이 기세등등하게 나타난 것은 빚을 독촉하기 위해서였고, 심지어 폭력적인 방법으로 빚을 강요할 각오까지 되어 있었다.사도현이 감히 수작을 부리기만 한다면 그녀들은 방망이로 때릴 생각이었다.하지만 상대방이 잘못을 인정했을 뿐 아니라 말끝마다 손해를 메꾸어주겠다는 말을 할 줄은 몰랐다.두 사람은 잠시 동요하지 않을 수 없었다.‘설마 사도현이 정말 결백하다는 말인가?’“사도현, 네가 피해자라면 어디서 그렇게 많은 돈이 생겨나 빚을 갚을 수 있겠어?”장경화가 의혹을 제기했다.“돈이 없는 건 사실이지만 빌려줄 사람이 있어요.”사도현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어나갔다.“제가 서울에서 인맥이 좀 있는 편이라 친구들을 많이 알고 있어요. 아까 그 사람들 다 봤죠? 제가 그 사람들에게 밥을 사준 것도, 돈을 빌려 당신들이 받은 손해를 갚아주기 위해서예요.”이 말을 듣고 두 사람은 마침내 감동의 표정이 역력했다.돈을 빌려서라도 빚을 갚는다니, 이 인품은 정말 말할 것도 없다.보아하니, 확실히 그녀들이 오해한 것 같았다.“도현아, 그럼 돈은 빌렸니?”장홍매는 말투가 누그러져 떠보며 물었다.“빌렸어요. 때마침 당신들이 사기당한 돈을 갚을 수 있어요.”사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사실 우리도 급하지 않아. 돈이야, 너만 괜찮으면 천천히 갚아도 돼.”장홍매는 멋쩍게 웃었다.“맞아 맞아, 방금 우리가 충동적으로 너를 오해했네, 마음에 두지 않았으면 좋겠어.”장경화도 덩달아 좋게 말했다.“아니에요, 다 제 탓이죠. 당신들까지 힘들게 했으니. 남자라면 책임져야죠, 지금 바로 계좌이체 해줄게요.”사도현은 말하며 곧바로 휴대전화를 꺼냈다.“에헤이, 가족끼리 뭘 그렇게 서둘러?”장경화는 싱글벙글 웃었다.“내 은행 계좌 번호는 622700030...”“잠깐만요!”비밀번호를 절반 입력하다가 사도현이 갑자기 멈추고 언뜻 깨달은 듯이 말했다.“아줌마들, 돈은 돌려드릴 수 있지만, 부도 건물 땅의 소유권은 저에게 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그걸 왜 원하
“어,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그 바보가 벌써 왔네.”장경화의 말이 막 끝나기 무섭게 아서원 입구에서 세 사람이 마침 걸어 들어왔다.바로 유진우, 이청아, 단소홍 세 사람이다.“사도현!”단소홍은 문을 들어서자마자 사방을 둘러보더니 곧 룸 안의 사도현을 보고 분노한 표정으로 앞으로 달려나갔다.“소홍아, 내 말 좀 들어봐...”사도현이 웃으며 막 입을 열려고 할 때 단소홍이 뺨을 후려갈겼다.사도현은 멍하니 얼굴을 가리고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딸, 왜 사람을 때리고 그래?”장홍매는 소리를 내어 꾸짖었다.“엄마, 왜 아직도 저 녀석을 감싸요? 이 사기꾼은 맞아도 싸지 않아요?”단소홍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자신을 꼬시면 그만이지, 감히 돈까지 사기 치다니, 그야말로 매를 버는 격이다.“오해야, 도현이는 사기꾼이 아니야.”장홍매는 얼른 사람을 옆으로 끌어당겼다.“사도현이 사기꾼이 아니라고요? 그럼 내가 거짓말쟁이라는 거예요? 엄마, 정신이 있는 거예요, 없는 거예요? 어떻게 저 녀석을 감쌀 수가 있어요?”단소홍은 화가 풀리지 않았다.“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내 말 좀 들어봐...”장홍매는 머뭇거리지 않고, 급히 방금 사도현이 한 말을 자세히 반복했다.그 과정은 이치를 따지는 방식으로 말했고, 감정이 충만한 방식으로 다른 사람을 감동시킨다고 할 수 있었다. 특히 사도현의 억울하다는 표정까지 더하면 더 그럴듯했다.“뭐라고요? 오빠는 죄가 없다고요? 그럼 내가 방금 사람을 잘못 때린 거 아니에요?”말을 들은 단소홍은 순간 설득당했고, 이내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다.“그러니까, 네가 너무 충동적이었어. 얼른 도현이에게 사과해.”장홍매가 꾸짖었다.“오빠, 미안해. 내가 방금 일부러 그런 게 아니야. 얼굴 아직도 아파? 내가 주물러줄까?”단소홍은 방금의 무지막지한 모습을 벗어던지고 몹시 애틋한 표정을 지었다.“난 괜찮아, 내가 전에 제대로 말하지 않아서 오해하게 했네.”사도현은 억지로 웃음을 쥐어짰다.“사실 이런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남자, 진정한 영웅이다!“유진우, 오늘 운이 좋네. 오빠가 너의 부도 건물을 사려고 하는데, 빨리 오빠에게 고맙다고 해.”단소홍은 자랑스러운 얼굴로 말했다.“고마운 건 됐어. 다 친구잖아. 나도 유진우가 상처받는 걸 차마 볼 수 없어. 재산권을 가져와, 우리 현장에서 거래하자.”사도현은 미소를 지으며 반말하기 시작했다.“내가 당신과 거래한다고 말했었나?”유진우가 불쑥 말을 내뱉었다.“응?”사도현은 어리둥절해졌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단소홍과 몇몇 사람들도 놀라고 이유를 몰랐다.‘이 녀석 정말 미친 건가? 돈을 가지지 않고 그딴 쓰레기를 가져서 뭐 하는 거지?’“유진우, 방금 내 말을 잘 듣지 못했어? 부도 건물, 값어치도 없는데, 네가 가지고 있어도 소용없으니, 차라리 나한테 파는 게 어때?”사도현이 설득했다.“그럼 값어치도 없는 걸 가져서 뭘 하려고?”유진우가 되물었다.“나야 당연히 유진우 너를 위해서지.”사도현은 진지한 얼굴을 하고 말했다.“결국 이 일은 모두 다 내가 사람을 대하는 것에 서투른 내 잘못이에요. 하지만 당신들을 휘말리게 할 수는 없으니 무슨 대가가 있으면 모두 내가 책임질게요.”“넌 정말 좋은 사람이네.”유진우가 살짝 웃음을 지었다.“호의를 베풀어줘서 고맙지만 난 팔지 않겠어.”“왜?”사도현이 잠시 멍해졌다.“친구 사이인데 나도 네가 손해를 보는 건 원치 않아.”“괜찮아, 손해 보는 거 두렵지 않아.”“하지만 내가 두려워서 그래. 그러니 그만둬.”“안 돼! 만약 내 성의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면, 내가 돈을 더 줄 수도 있어.”“돈 문제가 아니라 원칙의 문제야. 아까 네가 말했다시피 사람으로서 도덕과 원칙을 지켜야 해.”“너.”사도현은 하마터면 화가 나 피를 토할 뻔했다.‘시발, 왜 이렇게 들어 처먹지 않는 거야? 온갖 좋은 말을 다해줬는데 완전 고집불통이네. 진짜 미치겠네!’“됐어요, 시간이 늦었네요. 아직 회사에 일이 있어서 나랑 청아 씨는 먼저 갈게요. 천천히 얘
돌아가는 길에 이청아는 몇 번이나 말하려다 멈추었다.눈에 밟히자 유진우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봐, 숨기지 말고.”“아까 사도현이 부도 건물을 사려고 하는데 왜 동의하지 않은 거야?”이청아는 끝내 참지 못하고 물어봤다.“그 땅은 손에 쥐고 있어 봤자 아무 가치도 없는 걸 모두 알고 있어. 그러니 차라리 팔아서 손실을 만회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비록 전에 맹세코 유진우의 일을 상관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상대방이 기회를 놓치는 것을 보면 여전히 안타까웠다.“다들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렇다면 왜 사도현은 사려고 하는 걸까?”유진우가 한마디 되물었다.“당신이 방금 말하지 않았어? 다들 친구니까 속이고 싶지 않다고.”이청아가 대답했다.“허허... 사도현이 진짜 호의를 베풀 거라고 생각해?”유진우는 의미심장하게 웃었다.“만약 사도현이 정말 책임감이 있었다면 그전에 갑자기 사라지지 않았을 거야.”“그건...”이청아는 눈썹을 살짝 비틀며 생각에 잠겼다.사도현의 인품에 대해 처음에 그녀는 확실히 의심을 했다. 하지만 상대방의 진실된 모습과 심지어 부도 건물까지 다시 인수한다고 해서 조금 더 믿었다.“솔직히 말할게, 사도현이 부도 건물을 인수하려는 이유는 양심의 가책을 느껴서가 아니라 그 땅의 가치가 오를 걸 알고 있기 때문이야.”유진우가 싱긋 웃었다.“가치가 오른다고? 10년 가까이 아무도 건드린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갑자기 가치가 오를 수 있는 거야?”이청아는 좀 이상했다.“불가능은 없어. 내가 전에 말했듯이, 정부에서 그 땅을 중점적으로 개발하려고 해. 사도현이 갑자기 마음을 돌린 것은 분명 내부소식을 알아낸 것이 틀림없어. 그렇지 않으면 사도현이 어떻게 호의적일 수 있겠어?”유진우는 웃는 듯 마는 듯했다.“그럼 부도 건물 그 땅은 지금 가치가 얼마나 되는데?”이청아가 떠보며 물었다.“아마도 4천억 이상은 될 거야.”“4천억?”이청아는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한 푼의 가치도 없던 땅이,
“괜찮아, 아줌마는 작은 집에서 살 수 있어. 너희 같은 젊은이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니, 어른인 우리가 당연히 부담을 덜어줘야지.”“전 부담 같은 거 없이 잘 지내고 있어요.”“...”두 사람은 전화로 주고받으며 밀당을 하면서 진실만을 말하지 않았다.장경화는 유진우를 호구로 여겼고, 유진우는 일부러 멍청한 척했다. 오히려 조수석에 앉은 이청아가 더 이상 들을 수 없었다.그녀는 그제야 철석같이 유진우의 말을 믿었다. 그렇지 않으면 어머니가 이렇게 열정적이지 않았을 것이다.속죄라느니, 스트레스를 덜어준다느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전에 사람을 속일 때는 얼굴에 웃음꽃을 피우더니 이제는 손해를 본 것을 알고 진실을 말하기는커녕 오히려 정의를 내세워 제값에 받으려고 한다. 정말 욕심이 끝이 없다.“이봐, 너 왜 말을 안 들어? 아줌마는 다 널 위해서야. 얼른 부도 건물을 나에게 팔아!”말을 하다가 장경화는 자기도 모르게 약간 조바심을 냈다.돈 때문이 아니라면, 그녀가 쓸데없는 말을 할 리가 있겠는가? 바로 욕부터 퍼부었을 것이다.“아줌마, 부도 건물을 인수하려고 그렇게 서두르는 이유가 뭐예요?”유진우가 다시 물었다. 이건 그가 장경화에게 주는 마지막 기회이다.만약 상대방이 진실을 말한다면, 그는 이익의 일부를 양보할 생각이다.“아줌마가 분명히 말했잖니. 네가 손해를 보는 것을 차마 볼 수 없다고, 무슨 스트레스가 있으면 아줌마가 혼자 짊어질게!”장경화의 말투가 계속 강경했다.“엄마! 그만해!”이때 이청아는 끝내 참지 못하고 한소리 했다.“일이 이렇게 됐는데 아직도 남을 속이고 싶어?”“얘는, 이게 무슨 소리야? 내가 언제 사람을 속였다고.”장경화는 소리 높여 말했다.“흥, 사실대로 말할게. 진우 씨는 이미 진실을 알고 있어. 현재 부도 건물이 4천억의 가치가 있다는 걸. 엄마가 원가로 되찾고 싶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야!”이청아가 소리쳤다.“뭐?”장경화는 잠시 주춤하더니 제 발이 저렸다.“너희들 다 알고 있었어? 왜 진
“아니에요?”유장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용호산은 여태껏 무림인의 세계에서 일어난 일에 무관심했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건 다른 의도가 있는 게 분명해.”서태양이 말했다.인재를 선발해 위상을 높이려고 진무사가 나섰다면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었다.하지만 용호산은 전혀 관계가 없지 않은가?“그럼 무슨 의도인데요?”유장미가 되물었다.“내가 어떻게 알아? 나도 궁금하거든?”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는 서태양은 어깨를 으쓱했다.“보혁 씨는 내막에 훤하니까 화두를 꺼낸 거겠죠?”유이슬이 시선을 돌렸다.“내막까지는 아니지만 주워들은 소식이 몇 가지 있긴 해요.”염보혁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제가 알기로는 용호산 뒷산의 금지구역에 최근 신비로운 보물이 나타났는데 향후 100년 동안 무림인들의 흥망성쇠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관련이 있다고 해요.”“무슨 보물이 그렇게 대단해요?”유장미가 깜짝 놀랐다.유이슬과 서태양도 예상치 못한 듯 충격을 금치 못했다.무림인들의 흥망성쇠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만약 제 추측이 맞는다면 용원의 기와 관련된 보물일 거예요.”염보혁이 목소리를 낮추었다.순간, 유진우는 눈썹을 추켜세웠지만 이내 포커페이스로 돌아왔다.“용원의 기? 그게 뭔데요?”유장미가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용맥의 정수이기도 하죠.”유이슬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며칠 전 호룡각이 와해하면서 지하 용맥이 다섯 개의 용원의 기로 변해 세상에 뿔뿔이 흩어졌어. 소문에 의하면 용원의 기를 얻는 자는 천하무적이 되어 승승장구한다고 해.”호룡각이 무너지고 용맥이 파괴된 일이 워낙 큰 이슈였기에 자연스럽게 그녀의 귀에도 흘러 들어갔다.“진짜요? 그렇게 대단한 물건이 있어요?”유장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고서에서 관련된 기록을 본 적이 있는데 용원의 기를 얻은 자들은 세상을 주름잡는 수장이거나 천하를 다스리는 왕이었어.”유이슬이 한마디 보탰다.“맞아요.”염보혁이 대
유진우는 옆에 있는 염보혁을 흘깃 쳐다보았고, 속으로 상대방이 아무리 예뻐도 남자를 좋아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쿨럭!”염보혁은 사레가 들린 나머지 연신 기침하며 쓴웃음을 지었다.“이슬 씨, 지금 절 칭찬하는 건지 비꼬는 건지 모르겠네요.”“당연히 칭찬하는 거죠. 그런 얼굴을 보고도 어떤 남자가 마음이 흔들리지 않겠어요?”유이슬이 정색하며 말했다.“네?”염보혁은 말문이 막혔다.설령 사실일지언정 어찌 면전에서 대놓고 말할 수 있지?왠지 모르게 기분이 이상했다.“정 믿기 어려우면 태양한테 물어봐요.”유이슬이 문득 말했다.한편, 서태양은 염보혁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이름이 언급되는 순간 흠칫 놀라더니 서둘러 시선을 돌렸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은 도둑이 제 발 저린 듯싶었다.“제가요?”서태양은 난감한 얼굴로 대답했다.“선배, 장난하지 마세요. 저랑 무슨 상관이죠?”“뭔가 냄새가 나는데요?”유장미가 눈썹을 까딱하더니 눈알을 굴리며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설마 보혁 씨한테 진짜 반한 건 아니죠?”“이... 계집애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서태양이 펄쩍 뛰면서 얼굴이 벌게진 채 고래고래 외쳤다.“남자끼리 엮일 리가 없잖아.”“침착해요. 단지 농담했을 뿐이에요.”유장미가 키득거리며 말했다.“게다가 남남 커플이 진짜 사랑이죠. 어차피 안 될 건 없잖아요. 만약 사귈 생각이 있다면 진심으로 축복해줄게요. 하하하!”“입만 열면 헛소리 하네.”서태양은 짐짓 화가 난 듯 혼내려는 액션을 취했다.유장미는 잽싸게 유이슬의 등 뒤로 숨어 웃음을 터뜨렸다.갑자기 산으로 흘러가는 대화에 당사자인 염보혁은 말문을 잃었다.더욱이 유장미와 투닥거리는 와중에도 그를 흘끔거리는 서태양 때문에 어이가 없었다.단순히 농담으로 치부할 수 있었지만 몰래 훔쳐보는 탓에 괜히 기분이 세했다.“진우 씨, 이슬 씨, 다들 용호산은 처음이죠? 제가 구경 좀 시켜드릴까요? 주변에 뭐 있는지 소개해줄게요.”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염
술이 몇 잔 오가자 서서히 편하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이슬 씨, 방금 검종의 제자라고 하시던데 무림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용호산에 오른 건가요?”염보혁이 넌지시 물었다.“그런 셈이죠.”유이슬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성격이 무심한 편이라 말주변이 딱히 없었다.“사실 저희는 스승님의 명을 받고 찾아왔어요.”상대적으로 외향적인 유장미가 웃으며 말을 보탰다.“노천사가 용호산에서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소식에 세상이 발칵 뒤집혔거든요. 검종 뿐만 아니라 천하회, 주술교를 포함한 파벌에서 최정예 제자들을 파견해 출전할 예정이에요.”“그럼 검종에서는 세 분이 참석하는 건가요?”염보혁이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아니요.”유장미가 고개를 저었다.“저희는 단지 구경하러 왔을 뿐,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는 따로 있어요.”그녀와 서태양은 선천 후기에 속했고, 유이슬은 실력이 뛰어나긴 했으나 반보 마스터에 불과했다.어찌 됐든 천교에 비하면 열세에 처하는지라 검종을 대표해서 출전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따로 있다니? 설마 홍군림이에요?”염보혁의 눈썹이 까닥했다.“그건 저도 잘 몰라요.”유장미가 생긋 웃었다.“워낙 제멋대로에 신출귀몰하는 사람이라 이번 무림대회에 참가할지 아무도 몰라요. 만약 홍 선배가 진짜 출전한다면 우승은 우리 검종이 차지할 거예요.”홍군림은 천교 랭킹의 1위에 올랐을뿐더러 어린 나이에 경천 랭킹에 진입한 검종의 천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다만 성격이 까칠하고 독불장군이라 종주를 제외하고 아무도 안중에 두지 않았다.“장미야, 그건 네 생각이고.”이때 유이슬이 입을 열었다.“홍 선배가 실력이 뛰어나고 검종의 천재로서 일반 무사들이 함부로 넘볼 수 없는 존재인 건 사실이지만 너도 알다시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능력자가 한 명 더 있잖아.”“누구요?”유장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유장혁.”유이슬이 무덤덤하게 말했다.“그 사람이 홍 선배보다 실력이 더 뛰어나요?”유장미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막상막하야. 천교
“네?”염보혁의 한 마디에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한참 동안 넋을 잃었다.특히 잘 보이기 급급했던 서태양은 굳은 얼굴로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허공에 손을 들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이럴 수가?방금 목숨 걸고 구하려던 사람이 남자였다니?“남자...? 농담이죠?”붉은 옷 소녀가 염보혁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경국지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미인이 대체 어디를 봐서 남자란 말인가?푸른 옷 여인은 입만 벙긋했을 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흡혈파 망나니들이 여자가 아닌 남자한테 집적거렸다니?취향 한번 독특했다.“아니요. 진짜 남자예요.”염보혁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밖에 나가면 여자로 오해받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하지만 아무리 봐도...”붉은 옷 소녀가 말을 아꼈다.“외모 때문에 어쩔 수 없어요.”염보혁이 어깨를 으쓱하며 해탈한 듯 말했다.“아쉽네요.”붉은 옷 소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본인이 이렇게 예쁜 얼굴을 가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선배? 왜 그래요? 괜찮아요?”그녀는 아직도 넋을 잃은 서태양을 발견하고 손을 뻗어 어깨를 툭 쳤다.“응? 아, 괜찮아. 단지 조금 놀랐을 뿐이야.”서태양은 꿈에서 깨어난 듯 금세 정신을 차렸다.다만 눈빛만큼은 남자한테서 떠나지 않았다.이렇게 요염한 얼굴이 사내란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그야말로 재능 낭비이지 않은가?“저는 염보혁입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염보혁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유이슬이에요.”푸른 옷 여인이 대답했다.“저는 유장미라고 해요.”붉은 옷 소녀가 활짝 웃었다.비록 남자이지만 미모에 저절로 눈이 갔다.“서태양입니다.”서태양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방금 일어난 일에 대해 찝찝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다 같이 술이나 한잔 하시죠?”염보혁은 손을 내밀더니 소개를 이어갔다.“이쪽은 유진우 씨, 그리고 두 분은 호위무사인...”“춘화와 추월이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수염 난 사내의 몸에 피투성이 상처가 생겼다.눈 깜짝할 사이에 연신 검에 찔린 탓에 저항할 힘조차 없었다.비록 수염 난 사내가 힘은 더 셌지만 기교에서는 한참 못 미쳤다.여자의 화려한 검술은 감탄을 자아냈고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악!”수염 난 사내가 처참한 비명을 질렀다.사지가 부러진 채 바닥에 널브러진 모습은 마치 좀비를 연상케 했다.온몸은 피가 흥건했고 상처로 가득했다. 비록 목숨에 지장은 없지만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다.“형님!”패배한 우두머리를 보자 흡혈파 제자들이 충격과 분노를 금치 못했다.항상 위풍당당하고 기세등등했던 수장이 이런 몰골을 보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젠장! 감히 우리 형님을 다치게 해? 죽고 싶어 환장했어?”“저년을 없애버려!”흡혈파 제자들이 고래고래 외치며 검을 빼 들고 무시무시한 기세로 여자를 덮쳤다.“무용지물이야.”푸른 옷 여인은 콧방귀를 뀌더니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사람들 틈으로 뛰어들었다.얼마 안 되어 흡혈파 제자들은 하나같이 처참한 비명과 함께 바닥에 나뒹굴었다.팔이나 다리가 부러진 채 선혈이 낭자했다.“역시 대단하세요!”눈앞의 광경에 붉은 옷 소녀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망나니 따위가 감히 검종에게 대들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서태양이 바닥에 침을 뱉었다.“뭐... 뭐라고? 너희들이 검종 제자였어?”흡혈파 제자들은 안색이 돌변하더니 두려운 기색이 역력했다.검종은 무림인들의 세계에서 3대 문파 중 하나로 천하회와 주술교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비록 제자들이 많지 않았지만 뛰어난 인재들밖에 없다.특히 검종의 홍군림은 어린 나이에 천교 랭킹 1위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경천 랭킹에 진입하여 세계 10위의 강자가 되었다.경천 랭킹 10위권에 검종 제자가 무려 2명이나 있는데 압도적인 실력으로 3대 파벌의 수장 자리를 거머쥐었다.여기서 검종의 제자들을 만나게 될 줄은 예상치도 못했다.이럴 줄 알았더라면 애초에 무모한 짓을 벌이지 않았을 텐데.“이제야
“윽!”서태양은 이를 악물고 이마에 핏줄이 튀어나온 채 낮은 신음을 내뱉었다.이내 양손으로 검을 쥐고 온 힘을 다해 어깨를 짓누른 흡혈검을 떼어내려고 했다.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상대방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오히려 힘이 점점 더 가해졌고 무릎이 닿은 바닥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고작 이런 실력으로 감히 우리 흡혈파한테 덤비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수염 난 사내가 냉소를 지었다.“형님! 멋져요.”“역시 대단하세요.”부하들이 질세라 감탄했다.북쪽에서 흡혈파라고 하면 꽤 이름 있는 큰 파벌인지라 애송이 같은 놈이 도발할 만한 게 아니었다.“감히 내 앞에서 영웅 행세해? 넌 오늘 인생에서 가장 잘못된 결정을 내린 거야. 교훈 삼아 사지를 부러뜨려줄게!”수염 난 사내가 비열한 미소를 짓더니 흡혈검을 들어 올려 서태양의 손목을 향해 휘둘렀다.챙!검이 닿기 직전 청색 보검이 불쑥 나타나 허공에서 공격을 막아냈다.“응?”수염 난 사내가 눈살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푸른 옷 여인이 보검을 들고 싸늘한 눈빛을 보냈다.“선배?”서태양의 표정이 밝아지더니 그제야 한숨 돌렸다.조금만 늦었더라도 오른손을 잃어버렸을 텐데 그나마 선배가 제때 도움을 줘서 천만다행이었다.“괜히 참견하지 마.”수염 난 사내가 음흉하게 웃었다.“우리 후배한테 손을 대는 순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여자가 싸늘하게 말했다.“맞아! 너희들 같은 망나니는 벌을 받아 마땅하지.”이때, 붉은 옷 소녀가 검을 빼 들고 낭랑한 목소리로 외쳤다.“언니, 제가 도와줄게요.”“아니야. 넌 태양이랑 지켜보고 있어. 이런 놈들은 나 혼자서도 충분하니까.”푸른 옷 여인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어디서 나온 자신감이지?”수염 난 사내가 히죽 웃었다.“그런 왜소한 몸으로 오빠의 검을 어찌 막으려고? 차라리 무기는 내려놓고 침대에서 겨뤄보는 건 어때?”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부하들이 폭소를 터뜨렸다.곧이어 음흉한 시선으로 여자를 훑으며 멋대로 평가하
서태양이 움직이자 수염 난 사내의 뒤에서 덩치가 산만 한 남자 두 명이 튀어나왔다.두 사람은 무기로 길쭉한 검을 들고 있었다.몸체는 강한 피비린내와 함께 은은한 살기가 감돌았다. 이는 칼날이 오랫동안 선혈에 노출된 결과였다.무림인들의 세계에서는 흡혈검이라고 불렀다.다만 아쉽게도 그들이 지닌 검은 아직 미성숙 단계였고 기세가 한창 부족했다.챙! 챙!서태양이 먼저 검을 빼 들고 혼자서 두 명의 사내와 대결을 벌였다.그들은 기세등등하게 맞서 싸웠지만 힘만 강했을 뿐 행동이 굼뜬 편이었다.공격할 때마다 동작이 다소 어설펐다.반면, 서태양은 누가 봐도 고수의 가르침을 받았고 실전 경험도 풍부했다.스피드, 힘, 기술 등 모든 면에서 높은 수준에 도달했으며 어느 하나 뒤처진 데 없었다.세 사람이 공격을 주고받는 순간 실력 차이가 현저했고, 서태양은 눈 깜짝할 사이에 두 사내를 쓰러뜨렸다.그리고 응징할 겸 각자의 다리에 검을 관통했다.“흥! 고작 이런 실력으로 우쭐거려? 제 주제도 모르고.”서태양은 장검을 비스듬히 겨누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죽기 싫으면 당장 꺼져.”“좋아! 잘했어!”승리를 거머쥔 서태양을 보자 구경하던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비록 나서서 싸울 용기는 없었지만 응원의 박수를 보내는 것쯤은 충분히 가능했다.“그래도 실력은 꽤 있나 보네? 어쩐지 참견하더라니.”수염 난 사내가 눈을 가늘게 뜬 채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천천히 뽑아 들고 음침한 목소리로 협박했다.“하지만 오늘 임자를 만났지. 흡혈파를 마주친 이상 살아남을 방법은 없어.”“흡혈파는 무슨, 들어보지도 못했구먼.”서태양의 표정은 기고만장했다.“하! 괜찮아. 네 피를 전부 흡수하고 나면 우리가 왜 흡혈파라고 불리는지 알 거야.”수염 난 사내가 이죽거리더니 두말없이 공격을 개시했다.그가 발을 내딛자마자 맹렬한 기세가 솟구쳤고, 손에 든 흡혈검은 핏빛을 뿜어내며 곧장 서태양을 덮쳤다.앞서 상대했던 부하들과 달리 수염 난 사내의 흡혈검은 살기로 가득했다
아름다운 얼굴은 쉽게 화를 부르는 법이다.염보혁은 남자였지만 여자보다도 더 아름다운 요염한 얼굴을 지녔다.길을 나서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도리가 없었고 지금처럼 깡패 무리와 마주할 때면 번번이 시비에 휘말리기 일쑤였다.유진우는 모른 척하며 조용히 술잔을 기울였다.“어이, 이쁜이. 저런 나약한 놈이랑 술 마셔서 뭐 하겠어? 차라리 우리랑 한잔하지, 아주 즐겁게 해줄 테니 말이야!”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사내가 염보혁의 턱을 손가락으로 건드리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이 손 치우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 후회하게 될 테니까.”염보혁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차가운 눈빛을 보냈다.어여쁜 외모 탓에 남녀를 불문하고 다가오는 사람이 많았지만 이처럼 대놓고 희롱하는 경우는 드물었다.“오, 이쁜이가 화를 내네?”수염 난 사내는 턱을 문지르며 비웃었다.“솔직히 말해서 화난 얼굴이 더 매력적인데?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더욱 감탄스럽군.”그의 말에 뒤따르던 무리들이 일제히 폭소를 터뜨렸다.유진우는 피식 웃으며 술잔을 내려놓았다. 눈앞의 이 사내는 제법 능숙하게 수작을 부렸다.염보혁이 남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셋을 센다. 그 안에 사라지지 않으면 내가 직접 손봐주지.”염보혁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손 본다고? 하하하!”수염 난 사내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이거 제법 앙칼진데?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위층으로 올라가서 천천히 우리를 손 봐줘, 어때?”“맞아, 맞아! 방도 넉넉하니 차례대로 너랑 놀아줄 수 있다고!”그의 동료들도 시시덕거리며 말을 보탰다.“셋.”염보혁은 더 이상 말을 섞을 필요도 없다는 듯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이쁜이, 괜히 버티지 말고 그냥 올라가자. 내가 아주 다정하게 대해줄 테니 말이야.”수염 난 사내는 입을 커다랗게 벌려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낄낄댔다.“둘.”염보혁은 여전히 냉랭한 표정을 유지했다.“싫다면 어쩔 수 없지. 내가 직접 안아 올라가는 수밖에.”그가 손을
유진우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보혁 씨가 이렇게까지 많은 걸 알고 있을 줄은 몰랐군요. 제 생각엔 장일청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 것 같은데요.”용호산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염보혁이 이렇게나 많이 알고 있다니, 이건 그가 평범한 인물이 아님을 증명하는 셈이었다.“진우 씨께서 과찬해 주시는군요. 저는 그저 사람들 사이에 끼어 듣는 걸 좋아해서 호기심에 이런저런 소문을 알아본 것뿐입니다. 사실 별다른 능력은 없어요.”염보혁은 겸손하게 웃으며 덧붙였다.“하지만 만약 진우 씨께서 무림대회에 참가하신다면 전 온 힘을 다해 진우 씨가 우승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보혁 씨, 저를 너무 과대평가하시는군요.”유진우는 담담하게 말했다.“전 그저 세상 구경이나 해볼 겸 참가하는 것뿐입니다. 우승 같은 건 감히 꿈도 꾸지 않아요. 애초에 제 실력으로 어떻게 그 내로라하는 강자들과 겨룰 수 있겠습니까?”“진우 씨는 너무 겸손하시군요. 저는 사람을 보는 눈이 정확합니다.”염보혁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진우 씨는 외모도 준수하고 기품 또한 비범하시죠. 멀리서 봐도 강렬한 기세가 느껴졌습니다. 비록 진우 씨의 신분은 알 수 없지만 이것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진우 씨는 절대 범상한 인물이 아닙니다!”“보혁 씨께서 저를 이렇게까지 칭찬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유진우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평범한 출신에 보잘것없는 실력을 갖췄을 뿐입니다. 아마 실망할 겁니다.”“하하, 괜찮습니다. 커다란 황금 잉어가 어찌 작은 연못에서만 머물겠습니까? 바람과 구름을 만나면 반드시 용이 되어 날아오를 것입니다. 지금 진우 씨의 명성이 미미할지라도 저는 믿습니다. 언젠가 반드시 하늘 높이 날아오를 날이 올 거라고!”염보혁은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말했다. 그 눈빛은 절대적인 믿음을 담고 있는 듯했다.유진우는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이 사람, 도대체 뭐지? 분명 오늘 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