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방금 우리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누군가가 사도현이 아서원에서 밥을 먹는 것을 봤다고 해요. 엄마와 이모는 이미 서둘러 갔으니 우리도 빨리 가요.”단소홍이 대답했다.“사도현? 이 사기꾼이 감히 나타나다니?”이청아는 눈썹을 찡그렸다. 얼마 전, 부도난 건물의 그 땅이 하마터면 이청아의 가족을 파산시킬 뻔했지만, 결국 호구인 유진우가 다 뒤집어썼다.그래서 사도현에 대해 그녀는 유달리 불쾌했다.“유진우, 멍하니 있지 말고 당장 운전해. 오늘 반드시 사도현이 사기 친 돈, 전부 돌려받을 거야!”단소홍은 화를 가라앉히지 못하고 씩씩거리며 말했다.“부도 건물은 이미 내가 인수했고 너희들은 손해를 본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흥분하는 거야?”유진우가 좀 이상해하며 물었다.“허, 무슨 소리하는 거야? 사도현 같은 사기꾼은 처벌받아야 돼. 우린 하늘의 뜻을 받아들여 정의를 행해야 해.”단소홍은 엄숙하게 말했다.“그래?”유진우는 웃기만 할 뿐 단소홍의 의도를 간파하지 않았다.하늘의 뜻을 받아들여 정의를 행하는 것은 당연히 허튼소리이다. 아마도 사기를 당한게 내키지 않아 사도현에게서 돈을 좀 얻으려고 하는 것 같다.차를 갈아타고 세 사람은 재빨리 아서원으로 향했다....아서원은 환경도 좋고 서비스도 좋으며 음식도 맛있지만 가격이 비싼 중식당 집이었다.이때, 아서원의 어느 VIP룸에서 번쩍번쩍한 차림의 사도현이 몇몇 친구들과 식사를 하고 있었다.“도현아, 내가 좋은 소식 하나 알려줄게.”이미 술을 먹은 지 좀 된 동그란 얼굴의 한 남자가 갑자기 말을 꺼냈다.“최근 들은 내부소식인데, 부도 건물 쪽 땅을 곧 중점적으로 개발한다고 해. 그래서 지금 값어치가 점점 오르고 있대.”“뭐라고? 중점 개발?”그러자 사도현은 어리둥절해하며 물었다.“아민아, 농담이지? 그 땅은 방치된 지 몇 년인데 어떻게 정부가 중점 개발을 할 수 있겠어?”“진짜야.”동그란 얼굴의 남자는 진지하게 말했다.“우리 아버지가 정부 쪽 사람이야. 이 소식은 이미
“사기꾼, 돈 갚아!”장경화는 들어서자마자 온갖 욕설을 퍼부으며 안색이 매우 흥분하였다.그녀는 더욱 기세를 올리기 위해 덩치가 크고 허리가 둥근 무지막지한 여자 몇 명을 청했다.“당신들이 왜 여기에 있어요?”사도현의 안색이 변하더니 왠지 제 발이 저렸다.‘밥 한 끼 먹는데 누가 문을 막다니.’“흥, 우리가 오지 않으면 어떻게 너 같은 사기꾼을 잡을 수 있겠어?”장홍매는 눈을 부릅떴다.“맞아, 우리 돈을 사기치고 여기서 먹고 마실 낯짝이 있다니, 정말 뻔뻔하기 짝이 없네.”장경화는 두 손으로 허리를 짚었다.“도현아, 이 아줌마들은 누구야? 내가 대신 쫓아낼까?”몇몇 친구들은 좋지 않은 얼굴을 했다. 지금 사도현은 그들의 돈줄이니 당연히 잘 보여야 했다.“괜찮아, 아는 사람이야.”사도현은 눈동자를 굴리다가 무슨 생각이 난 듯 급히 말했다.“너희들 먼저 돌아가, 난 사적인 일을 처리할 게 있으니 다음에 너희들에게 밥 사줄게.”말을 하고 사람들을 돌려보냈다.“사도현, 무슨 수작을 부리든 돈부터 빨리 갚아!”장홍매가 기세등등하게 말했다.“아줌마, 할 말 있으면 앉아서 천천히 얘기해요. 왜 이렇게 화를 내세요?”사도현은 미소를 지으며 내친김에 그녀들에게 차를 한 잔씩 따랐다.“수작 부리지 마, 이 사기꾼아!”장홍매는 가차 없이 찻잔을 뒤집었다.“아줌마, 이해가 안 되네요. 제가 뭘 속였다는 거죠?”사도현이 짐짓 의혹을 제기했다.“왜, 이제 와서 변명할 셈이냐?”장홍매가 눈을 부릅떴다.“사도현, 시치미 떼지 마. 그럼 다시 기억나게 해 줄게. 일주일 전에 네가 우리더러 부도 건물 땅을 사게 하여 총 2백억이 넘는 돈을 사기 쳤잖아. 자, 이제 기억났지?”장경화가 예의 주시했다. 부도 건물 쪽 땅은 하마터면 본전을 잃을 뻔했고, 지금까지도 장경화는 밤에 악몽을 꿨다.“아줌마, 두 분 다 오해했네요.”사도현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일부러 애원했다.“그건 모두 제 친구가 한 짓이에요. 부도 건물로 말할 것 같으면 사실 저도 피
그녀들이 기세등등하게 나타난 것은 빚을 독촉하기 위해서였고, 심지어 폭력적인 방법으로 빚을 강요할 각오까지 되어 있었다.사도현이 감히 수작을 부리기만 한다면 그녀들은 방망이로 때릴 생각이었다.하지만 상대방이 잘못을 인정했을 뿐 아니라 말끝마다 손해를 메꾸어주겠다는 말을 할 줄은 몰랐다.두 사람은 잠시 동요하지 않을 수 없었다.‘설마 사도현이 정말 결백하다는 말인가?’“사도현, 네가 피해자라면 어디서 그렇게 많은 돈이 생겨나 빚을 갚을 수 있겠어?”장경화가 의혹을 제기했다.“돈이 없는 건 사실이지만 빌려줄 사람이 있어요.”사도현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어나갔다.“제가 서울에서 인맥이 좀 있는 편이라 친구들을 많이 알고 있어요. 아까 그 사람들 다 봤죠? 제가 그 사람들에게 밥을 사준 것도, 돈을 빌려 당신들이 받은 손해를 갚아주기 위해서예요.”이 말을 듣고 두 사람은 마침내 감동의 표정이 역력했다.돈을 빌려서라도 빚을 갚는다니, 이 인품은 정말 말할 것도 없다.보아하니, 확실히 그녀들이 오해한 것 같았다.“도현아, 그럼 돈은 빌렸니?”장홍매는 말투가 누그러져 떠보며 물었다.“빌렸어요. 때마침 당신들이 사기당한 돈을 갚을 수 있어요.”사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사실 우리도 급하지 않아. 돈이야, 너만 괜찮으면 천천히 갚아도 돼.”장홍매는 멋쩍게 웃었다.“맞아 맞아, 방금 우리가 충동적으로 너를 오해했네, 마음에 두지 않았으면 좋겠어.”장경화도 덩달아 좋게 말했다.“아니에요, 다 제 탓이죠. 당신들까지 힘들게 했으니. 남자라면 책임져야죠, 지금 바로 계좌이체 해줄게요.”사도현은 말하며 곧바로 휴대전화를 꺼냈다.“에헤이, 가족끼리 뭘 그렇게 서둘러?”장경화는 싱글벙글 웃었다.“내 은행 계좌 번호는 622700030...”“잠깐만요!”비밀번호를 절반 입력하다가 사도현이 갑자기 멈추고 언뜻 깨달은 듯이 말했다.“아줌마들, 돈은 돌려드릴 수 있지만, 부도 건물 땅의 소유권은 저에게 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그걸 왜 원하
“어,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그 바보가 벌써 왔네.”장경화의 말이 막 끝나기 무섭게 아서원 입구에서 세 사람이 마침 걸어 들어왔다.바로 유진우, 이청아, 단소홍 세 사람이다.“사도현!”단소홍은 문을 들어서자마자 사방을 둘러보더니 곧 룸 안의 사도현을 보고 분노한 표정으로 앞으로 달려나갔다.“소홍아, 내 말 좀 들어봐...”사도현이 웃으며 막 입을 열려고 할 때 단소홍이 뺨을 후려갈겼다.사도현은 멍하니 얼굴을 가리고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딸, 왜 사람을 때리고 그래?”장홍매는 소리를 내어 꾸짖었다.“엄마, 왜 아직도 저 녀석을 감싸요? 이 사기꾼은 맞아도 싸지 않아요?”단소홍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자신을 꼬시면 그만이지, 감히 돈까지 사기 치다니, 그야말로 매를 버는 격이다.“오해야, 도현이는 사기꾼이 아니야.”장홍매는 얼른 사람을 옆으로 끌어당겼다.“사도현이 사기꾼이 아니라고요? 그럼 내가 거짓말쟁이라는 거예요? 엄마, 정신이 있는 거예요, 없는 거예요? 어떻게 저 녀석을 감쌀 수가 있어요?”단소홍은 화가 풀리지 않았다.“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내 말 좀 들어봐...”장홍매는 머뭇거리지 않고, 급히 방금 사도현이 한 말을 자세히 반복했다.그 과정은 이치를 따지는 방식으로 말했고, 감정이 충만한 방식으로 다른 사람을 감동시킨다고 할 수 있었다. 특히 사도현의 억울하다는 표정까지 더하면 더 그럴듯했다.“뭐라고요? 오빠는 죄가 없다고요? 그럼 내가 방금 사람을 잘못 때린 거 아니에요?”말을 들은 단소홍은 순간 설득당했고, 이내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다.“그러니까, 네가 너무 충동적이었어. 얼른 도현이에게 사과해.”장홍매가 꾸짖었다.“오빠, 미안해. 내가 방금 일부러 그런 게 아니야. 얼굴 아직도 아파? 내가 주물러줄까?”단소홍은 방금의 무지막지한 모습을 벗어던지고 몹시 애틋한 표정을 지었다.“난 괜찮아, 내가 전에 제대로 말하지 않아서 오해하게 했네.”사도현은 억지로 웃음을 쥐어짰다.“사실 이런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남자, 진정한 영웅이다!“유진우, 오늘 운이 좋네. 오빠가 너의 부도 건물을 사려고 하는데, 빨리 오빠에게 고맙다고 해.”단소홍은 자랑스러운 얼굴로 말했다.“고마운 건 됐어. 다 친구잖아. 나도 유진우가 상처받는 걸 차마 볼 수 없어. 재산권을 가져와, 우리 현장에서 거래하자.”사도현은 미소를 지으며 반말하기 시작했다.“내가 당신과 거래한다고 말했었나?”유진우가 불쑥 말을 내뱉었다.“응?”사도현은 어리둥절해졌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단소홍과 몇몇 사람들도 놀라고 이유를 몰랐다.‘이 녀석 정말 미친 건가? 돈을 가지지 않고 그딴 쓰레기를 가져서 뭐 하는 거지?’“유진우, 방금 내 말을 잘 듣지 못했어? 부도 건물, 값어치도 없는데, 네가 가지고 있어도 소용없으니, 차라리 나한테 파는 게 어때?”사도현이 설득했다.“그럼 값어치도 없는 걸 가져서 뭘 하려고?”유진우가 되물었다.“나야 당연히 유진우 너를 위해서지.”사도현은 진지한 얼굴을 하고 말했다.“결국 이 일은 모두 다 내가 사람을 대하는 것에 서투른 내 잘못이에요. 하지만 당신들을 휘말리게 할 수는 없으니 무슨 대가가 있으면 모두 내가 책임질게요.”“넌 정말 좋은 사람이네.”유진우가 살짝 웃음을 지었다.“호의를 베풀어줘서 고맙지만 난 팔지 않겠어.”“왜?”사도현이 잠시 멍해졌다.“친구 사이인데 나도 네가 손해를 보는 건 원치 않아.”“괜찮아, 손해 보는 거 두렵지 않아.”“하지만 내가 두려워서 그래. 그러니 그만둬.”“안 돼! 만약 내 성의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면, 내가 돈을 더 줄 수도 있어.”“돈 문제가 아니라 원칙의 문제야. 아까 네가 말했다시피 사람으로서 도덕과 원칙을 지켜야 해.”“너.”사도현은 하마터면 화가 나 피를 토할 뻔했다.‘시발, 왜 이렇게 들어 처먹지 않는 거야? 온갖 좋은 말을 다해줬는데 완전 고집불통이네. 진짜 미치겠네!’“됐어요, 시간이 늦었네요. 아직 회사에 일이 있어서 나랑 청아 씨는 먼저 갈게요. 천천히 얘
돌아가는 길에 이청아는 몇 번이나 말하려다 멈추었다.눈에 밟히자 유진우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봐, 숨기지 말고.”“아까 사도현이 부도 건물을 사려고 하는데 왜 동의하지 않은 거야?”이청아는 끝내 참지 못하고 물어봤다.“그 땅은 손에 쥐고 있어 봤자 아무 가치도 없는 걸 모두 알고 있어. 그러니 차라리 팔아서 손실을 만회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비록 전에 맹세코 유진우의 일을 상관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상대방이 기회를 놓치는 것을 보면 여전히 안타까웠다.“다들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렇다면 왜 사도현은 사려고 하는 걸까?”유진우가 한마디 되물었다.“당신이 방금 말하지 않았어? 다들 친구니까 속이고 싶지 않다고.”이청아가 대답했다.“허허... 사도현이 진짜 호의를 베풀 거라고 생각해?”유진우는 의미심장하게 웃었다.“만약 사도현이 정말 책임감이 있었다면 그전에 갑자기 사라지지 않았을 거야.”“그건...”이청아는 눈썹을 살짝 비틀며 생각에 잠겼다.사도현의 인품에 대해 처음에 그녀는 확실히 의심을 했다. 하지만 상대방의 진실된 모습과 심지어 부도 건물까지 다시 인수한다고 해서 조금 더 믿었다.“솔직히 말할게, 사도현이 부도 건물을 인수하려는 이유는 양심의 가책을 느껴서가 아니라 그 땅의 가치가 오를 걸 알고 있기 때문이야.”유진우가 싱긋 웃었다.“가치가 오른다고? 10년 가까이 아무도 건드린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갑자기 가치가 오를 수 있는 거야?”이청아는 좀 이상했다.“불가능은 없어. 내가 전에 말했듯이, 정부에서 그 땅을 중점적으로 개발하려고 해. 사도현이 갑자기 마음을 돌린 것은 분명 내부소식을 알아낸 것이 틀림없어. 그렇지 않으면 사도현이 어떻게 호의적일 수 있겠어?”유진우는 웃는 듯 마는 듯했다.“그럼 부도 건물 그 땅은 지금 가치가 얼마나 되는데?”이청아가 떠보며 물었다.“아마도 4천억 이상은 될 거야.”“4천억?”이청아는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한 푼의 가치도 없던 땅이,
“괜찮아, 아줌마는 작은 집에서 살 수 있어. 너희 같은 젊은이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니, 어른인 우리가 당연히 부담을 덜어줘야지.”“전 부담 같은 거 없이 잘 지내고 있어요.”“...”두 사람은 전화로 주고받으며 밀당을 하면서 진실만을 말하지 않았다.장경화는 유진우를 호구로 여겼고, 유진우는 일부러 멍청한 척했다. 오히려 조수석에 앉은 이청아가 더 이상 들을 수 없었다.그녀는 그제야 철석같이 유진우의 말을 믿었다. 그렇지 않으면 어머니가 이렇게 열정적이지 않았을 것이다.속죄라느니, 스트레스를 덜어준다느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전에 사람을 속일 때는 얼굴에 웃음꽃을 피우더니 이제는 손해를 본 것을 알고 진실을 말하기는커녕 오히려 정의를 내세워 제값에 받으려고 한다. 정말 욕심이 끝이 없다.“이봐, 너 왜 말을 안 들어? 아줌마는 다 널 위해서야. 얼른 부도 건물을 나에게 팔아!”말을 하다가 장경화는 자기도 모르게 약간 조바심을 냈다.돈 때문이 아니라면, 그녀가 쓸데없는 말을 할 리가 있겠는가? 바로 욕부터 퍼부었을 것이다.“아줌마, 부도 건물을 인수하려고 그렇게 서두르는 이유가 뭐예요?”유진우가 다시 물었다. 이건 그가 장경화에게 주는 마지막 기회이다.만약 상대방이 진실을 말한다면, 그는 이익의 일부를 양보할 생각이다.“아줌마가 분명히 말했잖니. 네가 손해를 보는 것을 차마 볼 수 없다고, 무슨 스트레스가 있으면 아줌마가 혼자 짊어질게!”장경화의 말투가 계속 강경했다.“엄마! 그만해!”이때 이청아는 끝내 참지 못하고 한소리 했다.“일이 이렇게 됐는데 아직도 남을 속이고 싶어?”“얘는, 이게 무슨 소리야? 내가 언제 사람을 속였다고.”장경화는 소리 높여 말했다.“흥, 사실대로 말할게. 진우 씨는 이미 진실을 알고 있어. 현재 부도 건물이 4천억의 가치가 있다는 걸. 엄마가 원가로 되찾고 싶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야!”이청아가 소리쳤다.“뭐?”장경화는 잠시 주춤하더니 제 발이 저렸다.“너희들 다 알고 있었어? 왜 진
해질녘 어느 지하 카지노 안.텍사스 포커를 즐기고 있는 이현의 옆에는 섹시한 단발머리의 여자가 앉아 있었다.테이블 위의 칩 양으로 볼 때 두 사람은 분명히 많이 이겼다.“난 피단 한 쌍, 빨리 열어.”그때 맞은편에서 매부리코 남자가 카드를 뒤집었다.“그까짓 피단 한 쌍을 가지고 감히 나를 도전하는 거야? 눈 크게 뜨고 잘 봐, 나 세 개!”이현은 씩 웃다가 카드를 뒤집었다. 두 장의 6이었다.공통 카드 5장 중 한 장에 6이 써져 있어 마침 3장의 6 즉 트리플이었다.텍사스 홀덤의 규칙은 간단하다. 공유하는 5장의 공용 카드와 개인별로 받은 2장의 카드를 임의로 조합하여 5장 카드로 홀덤 족보를 완성하여 승부를 겨루는 게임이다. 로얄 플러쉬가 가장 크고 그다음으로 스트레이트 플러쉬, 포카드, 풀하우스, 플러시, 스트레이트, 트리플, 투페어, 원페어, 하이카드 순이다.“오빠, 또 이겼어, 정말 대단해!”단발머리 여자는 환호성을 지르며 숭배하는 얼굴이었다.“허허허... 텍사스 홀덤은 운만 따지는 게 아니라 실력도 있어야 해. 그까짓 수단을 진작에 간파했는데, 어떻게 안 이길 수 있겠어?”이현은 득의양양했다.“오빠, 오늘 칩 보니까 2억은 땄지?”단발머리 여자는 두 눈을 반짝였다.“비슷하지. 자, 이건 너에게 주는 상이야.”이현은 웃으며 4백만 원짜리 칩 한 장을 꺼내 그대로 여자의 품에 넣었다.“고마워, 오빠!”단발머리 여자는 싱글벙글 웃다가 내친김에 이현의 얼굴에 뽀뽀까지 했다.“가자, 오늘 이 오빠가 너를 데리고 놀러 갈게.”이현은 손을 뻗어 여자의 턱을 감쌌다.돈도 땄으니 가서 좀 쉬어야겠다.“오빠, 오늘 끗발이 이렇게 좋은데 승승장구해야지, 좀 더 놀까? 한번 많이 이겨봐.”단발머리 여자가 좀 만족해하지 않았다.“인마, 요까짓 돈을 따고 도망가다니, 정말 못났네. 배짱이 있으면 나와 더 대결해보지 않겠어?”맞은편 매부리코 남자가 도발했다.“오빠, 분명 오빠한테 떠먹여 주는 거야, 절대 기회를 놓치면 안 돼.”
방금 황은아가 던진 검은 안개 폭탄은 그녀가 이전에 만든 하얀 안개보다 독성이 백 배 더 강했다.하얀 안개는 만성 독으로 중독되면 사지가 힘없이 늘어지고 의식을 잃고 쓰러지며 신속히 구출되면 살 가능성도 있다.하지만 검은 안개는 달랐다.강력한 부식성은 몇 초 만에 살아있는 사람을 피와 살이 뒤섞여 형체도 알아볼 수 없는 시체로 만들었다.“괴물 같은 여자네.”문관옥은 하늘에서 맴돌고 있는 황은아를 보며 이를 악물고 분노했다.독 안개 하나만으로 수백 미터를 뒤덮던 정예병들을 순식간에 몰살시켰으니 살상 능력은 그야말로 경악스러웠다.만약 황은아가 같은 폭탄을 몇 개 더 던진다면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죽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어때? 내가 얼마나 대단한지 이제 좀 감이 와?”황은아는 거대한 독수리를 타고 상공에서 내려다보며 소리쳤다.“늙은이들! 상황 파악됐으면 얼른 꺼져! 아니면 폭탄 몇 개 더 던져서 여기를 너희들이 무덤으로 만들어주겠다.”그녀는 말하며 몇 개의 검은 구슬을 꺼내 흔들었다.명백한 위협이었다.지하의 병사들은 두려움에 떨며 흩어져 숨을 곳을 찾았다.하지만 이 황무지에 독 안개를 피할 만한 적당한 은신처는 없었다.피신처라 해봐야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이었다.“이제 어떡하죠? 일단 철수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한 총수가 땀범벅인 상태로 달려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유장혁만 상대할 때는 병력이 많아서 밀어붙일 수 있었지만 강력한 황은아의 독은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처참한 죽음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직접 키운 병사들이 처참한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을 더 이상 지켜보기는 힘들었다.“철수?”부규환이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상부의 명령은 그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유장혁을 죽이는 것이다. 이대로 탈영병이 되려는 것이냐?”“도망가려는 것이 아닙니다! 잠시 숨어서 해독 방법을 찾은 후 임무를 수행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합니다.”총수가 얼른 해명했다.“십만 대군이 어린애한테 쫓겨 도망친 일이
하늘 위에서 검은 독수리를 타고 맴돌던 황은아는 냉정한 눈빛으로 지상에 빼곡히 들어선 병사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부규환의 빠른 대처로 인해 이전에 퍼진 독 안개는 절반 정도의 병사들만 쓰러뜨리는 데 그쳤지만 그녀의 능력으로 남은 병사들도 쓰러뜨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주술교가 제일 두려워하지 않는 게 바로 인해전술이었다.“은아?”독수리를 타고 하늘을 나는 황은아를 보며 유진우는 다소 놀란 표정을 지었다.자신에게 가장 먼저 도착한 이가 다른 누구도 아닌 제자라는 사실에 감탄이 나왔다.“아저씨! 괜찮으세요?”황은아가 멀리서 물었다.“괜찮다. 아직 버틸 수 있어.”유진우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그는 황은아에게 답하여 얼른 허리춤에서 단약 한 알을 꺼내 입에 털어 넣었다.계속된 전투로 인해 기력과 진기가 크게 소모된 상태였지만 몸에 항상 지니고 다니는 단약 덕분에 어느 정도 기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어린 계집아이가 어디서 감히 나서느냐? 정체를 밝혀라!”부규환이 고개를 들어 황은아를 바라보며 외쳤다.“내 입에서 정보를 빼내려는 거라면 헛수고야! 내가 그렇게 멍청해 보여?”황은아가 비웃으며 말을 이었다.“늙은이! 다시 한번 경고하지. 당장 사람들을 데리고 꺼져! 그렇지 않으면 독을 살포해 모두 황천길로 보내버릴 테니까!”“흥! 어린 것이 말은 호기롭구나! 우리가 누군지는 알고 하는 소리냐?”부규환이 차가운 얼굴로 응수했다.“네가 누구든 내 알 바 아니야! 또 지껄이면 네 입부터 독으로 봉해버릴 줄 알아!”황은아가 외쳤다.“건방진 계집이네!”부규환은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손바닥을 들어 허공을 향해 강하게 내리쳤다.웅!순식간에 금빛으로 빛나는 커다란 손바닥 모양의 기운이 허공을 가르며 황은아와 독수리를 향해 날아갔다.부규환의 공격이 황은아와 독수리에 닿기 직전 흰빛의 검기가 측면에서 날아들어 금빛 손바닥을 베어내며 폭발을 일으켰다.쾅! 하는 소리와 함께 검기과 기운이 서로 부딪히며 산산이 흩어졌다.검기를 날린 이는 다름 아
쿵! 쿵! 털썩!여 무사들이 쓰러진 지 얼마 되지 않아 또다시 많은 무사가 잇따라 쓰러졌다.이 상황은 빠르게 확산하며 이제는 손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후방에 서 있던 가장 먼저 안개를 들이마신 병사들은 도미노처럼 차례로 쓰러지기 시작했다.열 명, 백 명, 천 명, 만 명...엄청난 수의 병사들이 중독 증상을 보이며 속수무책으로 쓰러져 갔다.안개가 지나간 자리마다 마치 강풍에 낙엽이 쓸리듯 몇 분 만에 십만 대군의 절반이 쓰러졌다.“이게 무슨 일이야! 왜 뒤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쓰러지는 거지?”여덟 명의 지휘관은 곧 이상함을 감지하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독이다! 안개에 독이 섞여 있어! 모두 조심해!”한 교가 외쳤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중독되어 쓰러지는 병사들의 수는 계속 늘어났고 멈출 기미가 없었다.이대로 가다가는 전군이 괴멸할 위기였다.“어서! 해독제를 복용하라!”여덟 명의 지휘관이 연신 외쳤다.의무병들이 일부 해독제를 비축하긴 했지만 십만 대군 전체를 상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그러나 지금은 한 명이라도 구할 수 있다면 그조차도 다행인 상황이었다.“이게 무슨 일이야! 멀쩡하던 전장에 왜 갑자기 독 안개가 나타난 것이냐! 대체 누가 이런 짓을 꾸민 거지?”문관옥이 미간을 찌푸리며 사방을 두리번거렸다.하지만 현장이 워낙 혼란스러웠던 탓에 단서를 찾기 어려웠다.“설마 유장혁에게 동료가 있는 건가?”눈을 가늘게 뜬 부규환의 얼굴에 음산한 기운이 스쳤다.안개의 독성은 미미했기에 무도 고수들에게는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하지만 무장한 병사들에게는 매우 치명적이었다.몇 분만 더 지나면 십만 병사 중 90%가 쓰러질 것이 분명했다.그렇게 되면 인해전술은 더 이상 펼칠 수 없을 것이다.“일어나라!”결국 부규환이 직접 움직이기 시작했다.그가 몸을 떨자 금빛 광채가 전신에서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그 금빛은 마치 생명력을 가진 듯 빠르게 형태를 갖추더니 눈 깜짝할 새에 거대한 금강 형상으로 변했다.“으아아!”
진산 기슭 아래, 포효와 함성 그리고 비명이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유진우는 한 자루의 검을 들고 십만 대군 속을 종횡무진하며 검 끝이 닿는 곳마다 무적의 기세를 보였다.검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수십 명이 피 웅덩이 속에 쓰러졌다.그러나 유진우가 아무리 격렬히 싸우고 있다고 해도 주변의 병사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점점 더 많아졌다.밀려오는 파도처럼 한 무리를 척살하면 또 다른 무리의 병사들이 덮쳐왔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병사들은 끝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십만 대군이 가만히 서서 목을 길게 빼고 죽기를 기다린다 해도 사흘 밤낮으로 베어야 할 것이다.하지만 십만 대군은 모두 정예병들이었다.갑옷을 입고 방패를 든 그들을 처단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유진우의 실력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혼자서 십만 대군을 도륙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사람은 기계가 아니니 고강도의 싸움을 계속 유지할 수는 없었다.유진우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조금씩 체력이 소모됐다.단시간 내에는 눈에 띄지 않겠지만 시간이 길어질수록 피로는 서서히 누적되고 기력은 점차 소진될 것이다.결국 유진우는 병사들의 인해전술에 의해 패배할 운명이었다.“흥! 죽여라!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지켜보겠다!”문관옥은 멀리서 전투를 관전하며 냉소를 지었다.어차피 죽는 건 자기 병사가 아니니 그는 조금의 안타까움도 느끼지 못했다.‘실력으로 보니 많아야 만 명 적도 죽이는 게 한계겠네.’체력이 고갈되면 유진우는 곧 도살될 양처럼 무력해질 것이다.“1년 사이에 실력이 이 정도로 향상되다니 역시 남겨두면 안 될 불씨야.”부규환이 중얼거리며 무표정한 얼굴로 유진우의 전투를 지켜보았다.유진우의 재능으로 볼 때 몇 년만 더 성장할 시간을 준다면 아무도 그를 막을 수 없게 될 것이다.“죽여라! 다 죽여라! 전진!”여덟 명의 지휘관이 병사들을 독려하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 전진하도록 지시했다.상부의 명령을 받은 그들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반드시 임무를 완수해야 했다.
“죽여라!”500명의 정예병이 차량에서 뛰어내리며 앞으로 돌진했다.그때 대형 트럭의 측면 문이 열리며 빼곡히 들어있던 사람들이 드러났다.그들은 검은 전투복을 입은 채 가면을 쓰고 강철 검을 들고 있었다.하나같이 기운이 강대했는데 무도 고수가 분명했다.“돌격!”트럭 위의 가면을 쓴 남자가 장도를 휘두르자 트럭 안의 무사들은 주저 없이 앞으로 나아갔다.양측 병력은 곧바로 격렬한 혈투를 벌이기 시작했다.조무진의 병력이 더 많았다. 게다가 훈련도 잘되어 있어 공격과 방어가 일체화된 강력한 전력을 자랑했다.반면 가면을 쓴 암살자들은 다섯 명씩 조를 이루어 완벽한 호흡으로 협력하며 매우 맹렬하게 돌격했다.일순간 양측은 팽팽히 맞서며 승부를 가릴 수 없는 치열한 전투를 이어갔다.“진무사?”조무진은 자세히 살펴보다가 이내 단서를 발견했다.가면을 쓴 암살자들은 모두 정예 무사로 각별히 선발된 사람들이 분명했다.일반적인 무림 문파였다면 격전속에서 이토록 통일된 움직임을 보여줄 수 없었다.오직 공식적이고 엄격한 훈련을 받은 무사만이 이러한 수준에 도달할 수 있었다.연경 전체에서 봤을 때, 이 정도의 실력과 동기를 가진 집단은 진무사밖에 없었다.진무사까지 출동한 것을 보니 조무진은 사태는 예상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이때 500리 떨어진 한적한 산림 속.조홍연이 정예 병력 한 부대를 이끌고 산적 토벌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일부 저항이 있을 거라 예상했지만 산적들은 정예군을 보자마자 쥐가 고양이를 보듯이 산채를 버리고 도망치기 시작했다.그들은 이렇다 할 저항도 하지 않았다.조홍연은 단 한 명의 병력 손실도 없이 가볍게 임무를 완수했다.“홍연 님, 산적들은 이미 도망쳤고 저희는 무사히 산채를 점령했습니다. 현재 전리품 정리 중입니다.”조홍연의 측근 중 하나인 여자 장군 공요가 다가와 보고했다.조홍연은 산채의 나무 성벽 위에 서서 가볍게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그녀의 얼굴에서 기쁨은 찾아볼 수 없었다.“홍연 님, 왜 그
홍군림이 백준을 막아서 검을 상대하고 있을 때, 다른 한편 동방의 진산에서 백 리 떨어진 곳에서 조무진이 정예병 500명을 이끌고 급히 진산으로 향하고 있었다.상황이 갑작스럽게 발생한 탓에 병력이 많지 않았지만 이 500명은 그의 직속 친위대로 구성된 강력한 전투력의 부대였다.안에는 적지 않은 무도 고수들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만 명 규모의 일반 군사들과 맞서도 전혀 밀리지 않을 실력을 보유하고 있었다.“더 빨리! 더 속도를 내라! 반드시 최단 시간 안에 서하사에 도착해야 한다.”조무진은 차량에 앉아 연신 재촉하며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그의 이런 반응은 함께 차량에 타고 있던 두 명의 여자 부하에게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왔다.평소 조무진은 전쟁의 신으로 불리며 세상이 무너진다 해도 침착함을 잃지 않고 담담히 대응하던 사람이었다.‘그 어떤 위급한 상황에서도 냉철한 판단으로 대응해 온 그가 지금 이토록 다급한 모습을 보이다니...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조홍연 쪽은 어떠한가? 연락이 닿았느냐?”조무진이 갑자기 물었다.“아가씨는 가문 장로들에 의해 긴급 임무에 차출되어 현재로서는 연락이 닿지 않지 않아 일단 메시지를 남겨놓았습니다. 아가씨께서 돌아오시는 대로 즉시 지원하러 올 것입니다.”한 여자 부하가 답했다.“무슨 임무? 다 헛소리야! 늙은 놈들이 일부러 방해를 놓은 게 틀림없어!”조무진이 분을 참지 못하고 욕설을 내뱉었다.이 중요한 시점에 가장 강력한 전투력을 가진 조홍연을 멀리 차출보내는 건 조씨 가문에서 황가와의 충돌을 피하고자 유장혁이 죽는 것을 암묵적으로 허용하는 행위였다.“도련님, 유 도련님께서는 복이 많으신 분이니 분명히 무사하실 겁니다. 너무 염려 마세요.”여자 부하가 조심스럽게 위로를 건넸다.“상황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조무진의 얼굴은 심각하게 굳어 있었다.“지금 연경성은 이미 폭풍전야다. 황권 뒤에 숨은 세력들조차 움직이기 시작했어. 내 추측이 맞다면 10년 전의 그 비극적인 사건이 다시 벌어질
그의 옷자락은 바람에 나부끼며 속세를 벗어난 듯 초탈한 기운을 뿜어냈다.보통 사람이 이 광경을 봤다면 곧바로 무릎을 꿇고 선인을 외쳤을 것이다.슉!흰옷의 검객이 열심히 목적지를 향해 가던 중 갑자기 하얀 보검 하나가 땅에서 솟구쳐 오르며 그의 앞길을 가로막았다.그 검은 마치 도전장을 내미는 듯했다.“누가 내 길을 막는 것이냐!”흰옷의 검객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검선 선배님의 검술이 뛰어나다는 소문은 오래전부터 들어왔습니다. 하여 후배가 가르침을 청하러 왔습니다.”이때 웃통을 벗은 준수한 청년이 천천히 허공으로 떠올라 하얀 보검 위에 가볍게 발을 디뎠다.허공에 떠오른 청년과 검이 검선 백준과 마주 섰다.“네 놈은 누구냐?”백준이 청년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후배 검종, 홍군림이라 합니다. 천 리 길을 달려와 검선 선배님께 몇 수 가르침을 청하고자 합니다.”준수한 청년 홍군림이 두 손을 모아 공손히 인사했다. 그의 태도는 비굴하지도 오만하지도 않았다.“홍군림? 검종에서 천하를 누비며 다니는 자?”백준은 눈을 가늘게 뜨며 약간 놀란 기색을 보였다.“검종에서 절세의 천재가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오늘 보니 과연 소문대로네. 어린 나이에 대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다니... 유장혁 그 자식보다 낫구나.”“선배님, 과찬입니다.”홍군림의 얼굴에는 일말의 동요도 없었다.“홍군림, 오늘 중요한 일이 있으니 정말 가르침을 청하려 한다면 다음 기회로 미뤄라.”백준이 담담하게 말했다.“다음을 기약하기보다 어렵게 만났으니 이번 기회에 부디 선배님께서 가르침을 내려주시길 바랍니다.”홍군림은 물러서지 않았다.“네 말은 일부러 날 막고 있다는 거냐? 설마 검종이 호룡각이 부리는 개가 된 것은 아니겠지?”백준의 얼굴이 서서히 차가워졌다.“제 행동은 검종과도, 호룡각과도 무관합니다. 순전히 개인적인 흥미일 뿐입니다.”홍군림은 담담히 대답했다.“저는 세 살 때부터 검을 익혀 검도의 극한에 이르렀습니다. 선배님의 검이 빠를지 제 검이 빠를지
“뭐라고?”부규환의 말에 유진우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유진우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유만수는 서경에 머물면서 막대한 병력을 쥐고 있을 뿐 아니라 주변에는 실력 있는 고수들이 많이 있다. 그런 사람을 상대로 너희가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호룡각의 세력이 아무리 막강하다 해도 서경왕부 역시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그렇지 않았다면 이토록 오랜 세월 동안 호룡각이 눈엣가시 같은 서경왕부의 존재를 참을 리가 없었다.호룡각이 움직이지 않았던 것은 서경왕부를 상대하기에 껄끄러웠기 때문이었다.다시 말해 유만수가 건재한 서경왕부의 세력은 절대 약화하지 않을 것이며 호룡각또한 함부로 손댈 수 없는 세력이라는 뜻이었다.그러나 부규환의 말투를 보니 지금은 상황이 이미 많이 바뀐 듯했다.“도련님, 이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부규환이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호룡각은 10년간 치밀하게 준비해 왔습니다. 언젠가 서경왕부를 제거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이제 그날이 머지않았습니다.”“대체 뭘 하려고 하는 거야!”유진우가 외쳤다.“도련님,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어차피 오늘 살아서 나갈 수 없을 테니까요.”부규환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말했다.“흥! 나를 죽이려고? 그렇게 쉽지는 않을 거야!”유진우가 냉정한 얼굴로 말했다.“아무리 숨겨둔 병력이 많다고 해도 나도 혼자 온 게 아니다! 지원군이 오고 있으니 누가 이길지는 두고 봐야겠지.”“도련님의 계획은 이미 호룡각에 간파되었습니다. 말씀하신 지원군은 아마 오늘 도착하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의 도련님은 저희 수중에 들어온 먹잇감에 불과합니다.”부규환이 담담하게 말했다.“하하하, 유장혁! 설마 이런 날이 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겠지?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고 실력이 강하더라도 죽음은 피할 수 없겠구나!”문관옥이 참지 못하고 조소를 터트렸다.경천 랭킹 10위에 오른 강자가 직접 나섬과 더불어 10만 외성 군의 정예병을 내세웠으니 유장혁이 아무리 숨겨둔 비장의 수가 있다고 해도 마지막 발버둥
왜 무림에는 고수들이 넘쳐나고 강자가 끊임없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공무원과 정면으로 맞서지 못했는지를 사람들은 이제야 알았다.그 이유는 실력의 차이가 너무나도 크기 때문이다.수십만 대군이 밀고 들어오면 설령 하늘을 찌르는 능력을 갖췄다 하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다.어떤 문파라도 관군의 정예 병력과 대적하게 되면 결국 멸망의 길을 걷게 될 뿐이다.“포위하라!”명령과 함께 10만 대군이 안팎으로 유진우와 일행을 완전히 둘러쌌다.병사들은 각자 창과 칼을 들고 눈빛은 날카롭게 빛났으며 살기 가득한 기운이 사방을 압도했다.“나는 옥면 군신 무관옥이에요. 팔방제후는 어디 있어요?”그 순간 무관옥이 앞으로 나와 위세를 떨치기 시작했다.초품 군신의 위엄을 지닌 그는 이품 고급 장교에게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존재처럼 느껴졌다.팔방제후로 불리는 실권자들도 무관옥의 앞에서는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그의 질문은 대답 없이 공허하게 메아리쳤고 병사들은 오직 무표정하게 대형을 유지하며 무관옥을 무시했다.“이게 무슨 일이죠? 당신들의 고급 장교 어디 있는 거예요?”무관옥은 불만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무관옥은 30만의 백호랑을 연경으로 보낼 수 없지만, 군신으로서 어떠한 고급 장교도 그를 보고 정중하게 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군신님, 오늘 외성군의 지휘는 제가 맡고 있습니다.”그때 중앙 대열에서 하얀 옷을 입은 얼굴 창백하고 수염이 없는 노인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노인의 키는 훤칠하고 체격은 마른 편이며 날카로운 음성이 다소 섬뜩하게 들렸다.“부 내관님?”부 내관을 본 순간 무관옥의 눈동자가 급격히 수축하였다. 좀 전까지 드러냈던 거만한 태도는 순식간에 사라졌다.눈앞에 서 있는 사람은 비록 관직은 높지 않지만, 그 지위는 매우 특별한 존재였다.그는 천자의 측근이자 대내 제1고수로 꼽히는 인물이고 경천 랭킹 10위에 오른 절정 고수 부규환이었다.“군신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 문제는 이제 제가 처리하겠습니다.”부규환은 고개를 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