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우 씨, 한 번만 더 수고해 주세요.”황보춘은 두 손을 맞잡아 가슴까지 올려 예를 표했다.“병을 치료하고 사람을 구하는 것은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황보 가문이 약속을 지키고 돈을 충분히 주셔야 하지 협박과 회유, 권세를 믿고 남을 업신여기지 말았으면 합니다.”유진우가 담담하게 말했다.“협박? 회유? 권세를 믿고 남을 업신여긴다고요?”황보춘은 어리둥절했다.“모르시겠다면 옆에 있는 두 분께 무슨 일을 벌였는지 물어보세요.”“황보추!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황보춘은 눈살을 찌푸렸다.“그게...”황보추가 우물쭈물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돈을 가로채는 일은 당연히 이야기할 수 없었다.“큰아버지, 제가 무슨 일인지 압니다. 셋째 큰아버지가 제멋대로 주장하여 진우 씨의 사례금 600억을 6억으로 바꾸고 심지어 협박까지 했습니다!”황보걸이 진지하게 말했다.“황보추! 너 약 잘못 먹었니?”황보춘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유진우 씨는 우리 아버지의 목숨을 구해주신 황보 가문의 은인인데 네가 이렇게 대하다니!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나. 너 설마 아버지의 목숨이 고작 600억의 가치도 없다고 생각해?”“형님, 저는 그저 이놈이 이렇게 많은 돈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황보추가 중얼거렸다.“헛소리 하지 마!”황보춘은 눈을 크게 떴다.“유진우 씨가 제 능력으로 한 일인데 왜 자격이 없어? 잘못을 저지르고도 반성할 줄 모르고,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다니. 지금 당장 조상의 사당에 가서 무릎을 꿇고 자아 반성을 하거라!”“형님...”“꺼져라!”황보추가 입을 열려고 했지만, 황보춘이 호통치는 바람에 중단되었고, 결국 사당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그리고 너!”황보춘은 또 황보곰을 노려보았다. 황보곰은 목을 움츠리고 감히 어기려 하지 못했다.다만 떠나기 전에, 매섭게 유진우를 노려보고 원망스러운 모습일 뿐이었다.“유진우 씨, 정말 죄송합니다. 다 제가 잘못 가르친 탓입니다. 양해해 주십시오.”황보춘은 부끄러운 기색이었
밤, 성중마을의 양옥.유진우가 거실에 앉아 책을 읽고 있을 때 황은아가 갑자기 2층에서 뛰어 내려왔다.“아저씨! 급한 일이에요, 저랑 같이 나가요!”황은아가 귓속말로 다가와 나직이 말했다.“어디 가는데?”유진우가 궁금해했다.“일단 비밀이에요. 도착하면 알게 될 거예요.”황은아는 소심하게 말했다.“네가 말하지 않는다면 난 가지 않을 거야.”유진우는 한마디로 거절했다.“그럼 내가 말하면 같이 가 줄 거예요?”황은아가 눈썹을 치켜세웠다.“상황 봐서.”유진우가 어깨를 으쓱했다.“좋아요, 오늘 밤 친구 생일인데 같이 놀기로 했어요.”황은아가 말했다.“네 친구 생일인데 나랑 무슨 상관이지? 안 가.”유진우가 눈을 희번덕거렸다.“아, 아저씨 왜 약속 안 지켜요? 방금 분명히 약속했잖아요!”황은아가 좀 급해져서 말했다.“난 상황을 본다고 했지. 꼭 가겠다고는 하지 않았는데?”“아... 아저씨!”황은아는 화가 나서 발을 동동 굴렀다.“너희 젊은 애들 모임에 날 부르지 마. 그러니 난 조용히 책이나 읽을게.”유진우가 손을 내저었다.“내가 지금 아저씨한테 기회를 주는 거예요. 제 친구 인기 좀 있는 연예인이에요, 또 엄청 예쁘게 생겼다고요!”황은아는 유진우를 유혹했다.“예쁜 애 많이 봤어서 관심 없어.”유진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아저씨, 남자 맞아요? 어떻게 여자한테 관심도 없어요?”황은아는 이를 깨물고 유진우의 손에 들고 있던 책을 가로챘다.“아저씨, 제발 부탁이에요. 아저씨가 가지 않으면 나도 못 가요!”“아니, 내가 안 가는 게 너랑 무슨 상관인데?” 유진우는 어이가 없었다.“못 믿겠다는 거죠? 따라오세요!”황은아는 다짜고짜 유진우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그런데 대문 앞에 도착하자 황백이 갑자기 나타나 앞을 가로막았다. 몹시 호시탐탐하게 노리는 모습이었다.“보셨죠?”황은아의 시선이 유진우한테로 향했다.“이게 바로 제가 갈 수 없는 이유예요. 매번 밤에 외출하려고 하면, 아버지가 귀신같이 갑자기 나타나
‘어차피 별일 없으니 기분 전환이나 할 겸 나가자.’20분 후, 유진우와 황은아는 한 음악식당 입구에서 내렸다.노래방의 떠들썩함에 비해 음악식당은 더 조용하고, 여러 친구들끼리 함께 앉아 술을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노래를 들으며 편안함을 느낀다.“은아야, 여기!”두 사람이 음악식당에 들어서자, 단발머리 소녀가 일어나 황은아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유진우는 소리를 따라가다가 낯익은 얼굴들을 발견했다.한 명은 단발머리 소녀, 장경희.다른 한 명은 학교 풍운인물, 구양호.나머지 몇 명의 젊은 남녀는 낯은 익지만 이름을 모른다.유일한 낯선 얼굴은 JK 유니폼을 입은 젊고 아름다운 여자애였다.여자애는 갸름한 얼굴에 이목구비가 정교하고 아름다우며, 생김새가 청순하고 기질이 남달라 신선 언니의 젊었을 때의 모습과 비슷했다. 보기만 해도 눈에 띄는 존재였다.“늦어서 미안해.”황은아는 웃으며 다가가는 김에 소개했다.“아저씨, 나머지 애들은 다 봤으니 더 소개하지 않을게요. 이 사람은 바로 오늘 우리의 주인공, 하지원이에요. 이건 비밀인데요, 지원이는 백만 명의 팔로워이자 우리 학교의 인기스타이기도 해요.”“은아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난 아직 연습생일 뿐인데 무슨 스타야 스타는.”하지원은 부끄럽다는 듯이 말했다.“네가 노래를 하도 잘 부르니까 그러지. 데뷔는 시간문제야, 난 네가 반드시 히트칠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아!”황은아가 웃으며 말했다.“네가 다 말해 버려서 할 말이 없네!”하지원은 눈을 희번덕거렸다.“아저씨, 제가 거짓말한 거 아니죠? 여기 예쁜 애가 있다고 말했었는데. 어때요, 반했죠?”황은아는 돌아보며 살짝 웃었다.유진우는 상대하기 귀찮아 대충 곁눈질했다.“은아야, 우리 애들끼리 술 마시고 노래하려는데 다른 사람 한 명을 데려와서 뭐 하려고?”구양호가 좀 불쾌해했다.“그래 은아야, 오늘 지원이 생일인데 낯선 사람을 데리고 오는 건 좀 좋지 않아.”단발머리 소녀 장경희가 맞장구를 쳤다.“괜찮아. 사람이 많으
“야! 너 무슨 뜻이야?”변태남이 치근덕거리자, 구양호는 정의감이 폭발해 벌떡 일어나 말했다.“내 친구가 부를 줄 모른다는데 왜 자꾸 그렇게 치근덕거려?”“그러니까! 부를 줄 모르는 노래를 부르라고 강요하는 것은 일부러 사람을 난감하게 하는 것 아닌가?”장경희가 덩달아 떠들어댔다.나머지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다 가슴에 화가 쌓인 모습이었다.“어이쿠! 앞장서는 사람이 있네?”뚱뚱한 남자는 냉소적으로 말했다. “무대에 올랐으면 규칙대로 해야지. 난 어차피 선물을 줬으니까, 오늘은 꼭 노래를 불러줘야 해!”“흥! 당신이 선물한 그까짓 돈이 뭐라고. 내가 차 한 잔 마시기에도 부족해!”구양호는 시큰둥하게 입을 삐죽거렸다“좋아, 규칙대로 하라고? 내가 규칙 하나는 잘 지키지. 여기요, 누가 나한테 장미 100송이 가져다 줘요. 지원이는 첫 번째 노래 마음대로 불러!”얘기하다가 그냥 200만 원을 긁었다.“엄마야, 큰손이다! 아무렇게나 200만 원이라니.”“재벌 2세인가 봐. 재밌는 구경거리가 있네.”두 사람이 다투기 시작하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잇달아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이것은 노래 듣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다. 원하는 것이 바로 이런 효과이다.“허... 엄청 대단한 줄 알았는데 고작 200만 원만 긁다니.”뚱뚱한 남자는 웃음을 터뜨리며 카드를 꺼내 카드단말기에 대고 긁으며 소리쳤다.“사장님, 와인 열 병, 이 여자애에게 선물로 주세요!”와인은 한 병에 200만 원이고, 열 병이면 2000만 원이었다.단숨에 2000만 원을 긁는 것은 실로 대단했다.“와우! 노래 한 곡에 2000만 원을 써버리다니, 정말 부자야!”“부자가 사는 세상은 참 이해하기 힘드네. 2000만 원, 내 1년 치 월급이네.”“아무것도 안 하고 이 돈만 거저 얻는 게 바로 미녀의 영향력인가.”무대 아래에서 놀라움, 선망과 질투로 떠들썩했다. 사장님은 진작부터 싱글벙글해졌다. 평소에 가수가 20만 원 좌우 선물을 받는 것도 이미 많은 축에 속하
“20억?”이 말이 나오자, 모두 놀랍다는 눈길을 보냈다.20억, 그건 보통 사람이 평생 벌 수 없는 돈이다.누가 이렇게 호방한가? 입만 열면 메가톤급 폭탄이다.“아, 아저씨! 돈이 그렇게 많아요?”황은아는 깜짝 놀라며 의아해했다.“돈 없으면 잘난 체하지 마요. 안 그러면 괜히 체면만 깎여요.”구양호는 위아래로 훑어보면서 약간 경멸하는 눈빛을 띠었다.뚱뚱한 남자에 눌려 감히 입을 열지 못했지만, 유진우를 무시하는 데는 방해가 되지 않았다.초라한 옷차림을 한 촌놈이 무슨 근거로 감히 부자에게 도전하는 거지?“흥! 나서려고 아무 말이나 해? 이따가 어떻게 수습하는지 보자!”장경희는 경멸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유진우 같은 사람이 20억을 낼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누구? 누가 말을 하는 거지?”뚱뚱한 남자는 먼저 어리둥절해져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날카로운 눈빛을 보였다.“저예요.”유진우는 천천히 일어섰고 눈빛은 냉랭했다. “너 이 자식! 감히 나한테 도전을 해?”뚱뚱한 남자가 냉소하듯 말했다. “이 궁상맞은 꼴을 봐, 20억을 낼 수나 있겠어?”“내가 낸다면 어떻게 할 거죠?”유진우가 되물었다.“흥! 만약 네가 정말 그런 능력이 있다면, 오늘 밤, 나는 너에게 저 계집애를 양보하지. 만약 없다면, 너는 모든 사람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개처럼 짖어야 할 거야!”말이 나오자, 구경꾼들은 잇달아 소란을 피웠다.이는 이미 돈벼락에서 인신공격으로까지 확대됐다.“아저씨, 그만 해요. 이런 사람과 엮일 필요는 없어요.”황은아가 옆에서 말렸다.솔직히 말하면 황은아도 유진우가 그런 능력이 없다고 생각했다.정말 20억이 있다면, 어떻게 그녀의 집에서 하숙할 수 있겠는가?“남들이 다 도발했으니 자연히 이대로 물러설 수 없지. 그렇지 않으면 쓸모없는 놈과 무슨 차이가 있어?”유진우가 담담하게 말했다.“아저씨, 그건 20억이지, 1원이 아니에요!”황은아가 다급하게 말했다. 황은아는 유진우가 무릎 꿇고 짖는 걸 원하지 않았다.
유진우는 비록 수수한 옷차림을 했지만, 자신감과 침착함은 사람들이 그를 높게 볼 수밖에 없었다.사람들은 그를 상습범이거나 정말로 20억이 있거나 둘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모두가 결과를 기다리고 있을 때 식당 주인이 다가와서 말했다.“죄송하지만, 비밀번호가 오류라고 나옵니다.”“오류요?”유진우는 약간 당황했다.‘비밀번호가 6이 여섯 개가 아니었나? 잘못 기억했나?’“하하하... 이봐, 20억은 어디 갔지?”뚱뚱한 남자는 마치 광대를 보는 것처럼 크게 웃었다.“돈이 없으면 없는 거지, 왜 금방 들킬 거짓말을 하고 그래? 정말 웃겨.”“흥! 얼마나 대단한가 했더니 뻥이었어? 깜빡 속을 뻔했네.”“그러게 말이야. 있는 척은 다 하더니, 속을 뻔했어. 부끄럽지도 않나 봐!”이 순간 유진우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은 경멸과 멸시로 가득 차 있었다.그들의 눈에는 비밀번호를 잘못 알려준 것은 유진우가 일부러 한 짓으로 보였기 때문이다.‘주목을 받고 돈을 쓰지 않으려고? 세상 어디에 그런 좋은 일이 있을까?’“이봐, 너무 멍청한 거 아니야? 비밀번호를 핑계로 대다니? 대단해!”구양호는 대놓고 비웃었다.“은아야, 대체 어떻게 알게 된 친구야? 가난한 것도 모자라서 이런 수작을 쓰다니 정말 역겨워!”장경희는 경멸하는 표정을 지었다.“그래! 생긴 건 멀쩡한데 이런 짓까지 할 줄은 몰랐네.”한 무리의 젊은 남녀가 비웃었다.“아저씨, 잘난 척하지 말랬잖아요.”황은아는 얼굴을 찡그리며 창피해서 뺨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하지만 유진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식당 주인을 쳐다보며 말했다.“6이 여섯 개가 아니면 8이 여섯 개일 거예요. 다시 해봐요.”“정말 다시 해요?”식당 주인은 약간 불쾌한 표정으로 눈썹을 치켜올렸다.그는 자신이 바보로 놀아나고 있다고 느꼈다.“네, 해봐요.”유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 이번엔 오류가 아니었으면 좋겠어요.”주인은 경멸의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번 프런트 데스크 쪽으로 카드를 긁으러 갔다.“하하.
미친 듯이 고개 숙여 사과하는 사장의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충격에 빠졌다.하나둘씩 입을 다물지 못하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20억을 200억으로 카드를 긁었는데 성공했다니, 대체 카드에 얼마나 들어있는 거야?’순간 모두 더 이상 웃을 수 없었다.유진우를 바라보는 눈빛은 충격과 부러움으로 가득했다.보통 사람이 열 평생을 노력해도 벌 수 없는 돈 200억을 아무렇지도 않게 긁다니?이야말로 진정한 부자다!“말... 말도 안 돼!”충격을 받은 구양호의 첫 반응은 불신이었다.“사장님! 잘못 보신 거 아니에요? 이 자식이 어디를 봐서 그렇게 많은 돈이 있다는 거예요?”싸구려 옷차림을 한 사람이 200억이 있다니?“맞아요! 가짜일 거예요! 누가 200억을 그냥 들고 다녀요?”장경희도 의문을 품었다.나머지 사람들도 비록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이상하다는 표정이 역력했다.“흠! 우물 밑에 개구리들, 두 눈 똑바로 뜨고 잘 보세요!”식당 주인은 영수증을 곧바로 테이블 위에 놓았다.몇몇 사람들은 영수증에 눈을 고정하더니 충격을 받고 아무 말도 못 했다.“정... 정말이네?”구양호도 장경희도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그동안 유진우를 얕잡아보고 의심했던 사람들 모두 놀란 건 마찬가지였다.눈앞에서 확인한 사실이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아저씨, 이 많은 돈은 어떻게 된 거예요?”황은아 역시 깜짝 놀라며 물었다.20억도 놀랄 일인데 200억이라니?“당연히 내 힘으로 벌었지, 뺏은 것일까 봐?”유진우가 담담하게 말했다.“정확히 무슨 일을 하세요? 어떻게 그렇게 많은 돈을 벌 수 있어요?”황은아는 더욱 궁금해졌다.“나는 직업이 의사이고 부자와 유명 인사들을 치료해 줘.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유진우는 숨기지 않고 대답했다.“그런 거군요.”황은아는 마음속으로 무술을 포기하고 의사가 되는 건 어떨지 고민했다.“손님, 정말 죄송합니다, 바로 연락해서 환불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식당 주인은 계속 사과했다.200억의 거액을
강호에서 그의 실력은 선우희재와 경쟁할 수 있는 정도였다.“흥! 돈 있으면 뭐 해? 도씨 가문을 만났으니 굴복할 수밖에 없지?”이를 본 구양호는 흐뭇하게 웃었다.도씨 가문은 무술이 뛰어났고 매우 위압적이었다.그러한 가문의 도석현이 체면이 깎였으니 결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도씨 집안의 세력에 저 사람은 이제 큰일 났다.”장경희는 재미나 보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돈이 있는 것과 권력이 있는 것은 두 가지 개념이다.힘 있는 자의 눈에 졸부는 아무런 가치가 없었다.“이봐, 이제 무섭지?”도석현은 유진우를 비웃었다.“내 정체를 알았으니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겠지?”비록 20억은 없지만 형을 잘 둔 덕에 서울 어디를 가든 그를 건드리는 사람이 없었다.“도규현이 뭐? 내기에서 졌으면 말한 대로 해야지.”유진우는 무덤덤한 표정을 지었다.“뭐라고? 지금 네가 뭐라고 했는지 알고 있는 거야? 감히 우리 도씨 가문에 덤벼?”도석현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내기에서 졌으면 인정하고 말했던 대로 무릎을 꿇어야지. 어서!”유진우가 말했다.“정말 끝까지 이럴 거야?”도석현은 탁자를 치며 소리쳤다.“얘들아, 이 자식 좀 혼내줘!”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구석에서 키가 큰 경호원 두 명이 걸어 나왔다.“도씨 가문을 건드렸으니, 대가를 치러야지. 오늘은 한쪽 손을 잘라줄 거야!”두 경호원은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유진우를 향해 걸어왔는데 이를 본 사람들은 겁에 질려 뒤로 물러섰다.“꺼져!”두 경호원이 다가오자, 유진우는 무심한 듯 두 경호원의 뺨을 직접 때려 그 자리에서 날려 보냈다.그 순간 테이블과 의자가 부서지고 술병들도 날아다녔다.“젠장!”도석현이 깜짝 놀랐다.그가 데리고 온 경호원은 엘리트급인데 유진우한테 이토록 힘없이 당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무릎 꿇어!”유진우는 차가운 눈빛으로 앞으로 다가서며 말했다.“이봐, 나 건드리지 마! 나를 털끝 하나 건드리면 우리 형이 당신 가만두지 않을 거야!”도석현이 비장한 표
한참 동안 사람들은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 놀라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비록 유만수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몇 년은 더 버틸 수 있을 거로 생각했고 무엇보다 이제 겨우 내우외환을 해결했는데, 유만수가 자리를 넘겨준다고 하니 사람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여보, 너무 성급한 거 아닌가요?”옆에 있던 이의진이 권유했다.“그러니까요. 위왕 님, 아직 몸도 정정하시고 지금은 백세시대인데 어찌 이렇게 일찍 자리를 넘겨줄 생각을 하십니까?”장범규는 정직하고 솔직하게 물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묻고 싶었지만, 감히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만약 누군가 나서서 유만수를 설득한다면 새로운 위왕 님의 미움을 살 수도 있으니, 머리가 잘 돌아가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조용하게 상황을 살필 수밖에 없었다.“여러분, 제 몸은 제가 잘 압니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마침 여러분들이 모두 있는 자리에서 후사를 미리 안배하는 것도 제 소원을 이루는 셈입니다.”유만수는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여보...”이의진이 뭔가를 말하려는데 유만수가 손을 들어 제재하며 말했다.“그만. 난 이미 결정했으니 더 이상 설득할 필요 없어.”유만수는 다시 모든 사람을 향해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여러분, 저의 자리를 대신할 사람을 선정하는 건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그 사람의 손에 미래 서경의 흥망성쇠가 달려 있습니다. 그러니 이 일은 저 혼자 결정을 내릴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의 생각에는 누가 미래의 서경을 맡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까?”“그건...”유만수의 말에 사람들은 더욱 당황했다. 형세를 보아하니 유만수는 내부 투표를 통해 지지자가 많은 사람한테 서경을 맡길 생각인 것 같았다.그러니 문제는 유진우를 선택할 것인가 유천우를 선택한 것인가였다.재능과 능력 면에서 보면 당연히 유진우가 한 수 위이지만 집안 내력과 배후 세력으로 판단하면 유천우가 한 수 위였다.유천우는 최근 몇 년 동안 전쟁에서 매우 좋은 성과를 거두었고 미래가 기대된다는
보물 지도를 나눈 뒤 유진우는 사람을 안배해 호룡각의 기지를 다시 한번 정리했다. 이곳은 위치가 은밀하여 수비는 쉬우나 공격하기는 아주 어려웠고 또한 두 나라의 국경 지대에 놓여있었다.그러니 이곳을 군사 요새로 만드는 건 어렵지 않았다.만약 앞으로 서방 제국과 충돌이 생긴다면 이곳이 중요 군사 지점이 될 것이고 여기서 출병한다면 반드시 예상치 못한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지금 당장은 쓸모가 없겠지만 미리 준비해 둔다면 필요할 때가 있을 것이다.해당 건을 해결한 뒤 유진우는 사람들을 데리고 서경왕부로 돌아갔다.이번에 유진우가 서경의 복병을 해결하고 대승을 거두었기에 유만수는 서경의 왕으로서 특별히 부내에서 연회를 열어 많은 손님을 초대했다.이번 사건에 공로가 있는 사람들은 모두 초청 명단에 포함되어 있었다.한동안 왕부 안팎은 매우 시끌벅적했다.유만수가 죽지 않았다는 사실은 모든 사람한테 매우 기쁜 소식이었고 호룡각을 멸한 건 더욱 기쁜 일이니 축하할 이유가 충분했다.밤이 되자 왕부 안은 이미 많은 사람으로 가득 찼다. 서경에 있는 모든 사람이 거의 다 모인 것 같았다.각 고급 장교, 각 고위 간부, 그리고 각 방면의 거물들이 모두 왕부에 모여 술을 마시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눴다.“여러분, 후배인 제가 먼저 몇 마디 하겠습니다.”연회에서 유천우는 먼저 일어나 손에 잔을 들고 큰 소리로 말했다.“이번에 왕부가 위기를 맞았었지만, 여러분은 떠나지 않고 앞다투어 왕부의 근심과 어려움을 해결해 주어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자, 제가 먼저 여러분께 한 잔 올리겠습니다.”말을 마친 유천우는 고개를 번쩍 들고 잔에 든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도련님이 너무 겸손하네. 우리는 서경의 신하로서 당연히 왕부와 함께해야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지 별거 아니야.”평양 제후 장범규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맞는 말이야. 오랜 시간을 위왕 님과 함께 보냈고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늘 같이했으니, 왕부가 곤경에 처했다면 당연히 전폭적으로 도와야지. 나라를 위해서
“맞아요. 길이라는 건 한번 잘못 들어서면 다시 돌아오기 힘들죠. 사철수의 모든 행동은 좋은 결과를 맞이할 수가 없어요. 누구처럼 죄를 공으로 대처할 기회조차 없죠.”유천우는 유태범을 의미심장하게 바라보며 말했다.만약 유태범이 셋째 삼촌이 아니고 아버지의 인자함이 없었다면, 그뿐만 아니라 형제의 상잔을 원하지 않았고 손실이 크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역모는 열 번 죽어도 모자란 죄였다.“흠 흠.”유천우의 눈빛에 유태범은 괜히 마음에 찔려 화제를 돌렸다.“장혁아, 세 개의 보물 창고를 모두 합치면 가치가 엄청날 텐데 어떻게 처리할 생각이야?”“당연히 전부 서경으로 가져가야죠. 설마 그 잡놈들한테 남겨두기라도 하겠다는 거예요?”유천우는 눈을 흘기며 말했다.“세 개의 보물 창고를 우리가 전부 독차지할 수는 없어.”유진우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우리만의 힘으로 호룡각을 멸망시킨 건 아니잖아.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야. 그러니 보물 창고도 공평하게 함께 나눠야지.”“공평하게 나눈다고? 장혁아, 장난이지?”유태범은 어리둥절해서 격분한 목소리로 말했다.“너도 방금 사철수의 말을 들었잖아. 호룡각의 보물 창고는 수십 년 동안 축적해 온 것들이고 그 수가 엄청날 텐데, 그걸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나눈다고?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이번에 호룡각을 소탕하는 데 유태범은 뛰어난 공을 세웠으니, 나중에 또 다른 표창을 받을 수도 있었다.다시 말해, 서경왕부가 더 많은 보물을 얻어야만 유태범의 이익도 더 많아지기 때문에 그는 당연히 보물을 나누고 싶지 않았다.“보물도 좋지만, 도의도 지켜야죠. 사람들이 멀리서 우리를 도와주러 왔는데, 우리가 보물을 독차지한다면 그건 배은망덕한 사람이죠.”유진우는 담담하게 말했다.“그건 그렇지만 굳이 똑같이 나눌 필요는 없잖아. 적당하게 성의를 보여주면 되는 거지.”유태범이 말했다.“저는 이미 마음먹었어요. 제 결정이 불만스럽다면 유만수에게 일러바쳐서 그가 어떤 선택을 할지
“사철수 씨, 아직도 멍하니 서서 뭐 하는 거예요? 사진이라도 찍어줘요? 빨리 보물 지도를 찾아내세요.”불만으로 꼴 독 찼던 유태범은 못마땅한 얼굴로 사철수에게 화풀이했다.“알겠어요. 서두를게요.”유태범의 말에 사철수는 즉시 합금으로 되어 있는 대문 앞으로 다가가 채원진의 부러진 손을 들어 중간 부분에 있는 감응 위치를 살짝 눌렀다.띵 하는 소리와 함께 두터운 대문이 천천히 안쪽으로 열리자, 금속으로 만든 금고가 드러났다.금고는 약 33제곱미터 정도의 크기였고 한가운데에는 골드바가 사람의 키보다 더 높게 쌓여 있었다.골드바 외에도 그 주변에는 다양하면서도 진기한 보물들이 빽빽하게 배치되어 있었는데 하나같이 비싸고 귀중한 물건들이었다.“이곳은 채원진의 개인 금고예요. 채원진은 마음에 드는 모든 물건을 전부 이곳에 수집했어요.”사철수가 설명했다.“보물들이 어마어마하네요.”유천우는 사방을 둘러보며 감탄했다.“이것들을 전부 가지고 나가면 성을 하나 사고도 남겠네요.”“이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호룡각의 다른 세 보물 창고에 비하면 눈앞에 있는 것들은 새 발의 피죠.”사철수가 설명했다.“정말이에요?”유천우는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당신 말대로라면 호룡각의 보물을 전부 모으면 산더미가 되겠는데요?”“제가 직접 본건 아니지만 수십 년 동안 쌓아왔으니, 산더미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거예요.”사철수는 진지하게 말했다.“좋아요. 아주 좋아요! 빨리 모든 보물을 긁어모으고 싶네요.”유천우는 정신이 번쩍 들어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보물 지도는 도대체 어디 있는 거예요?”유태범은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여기 있어요.”사철수는 맨 안쪽 선반으로 가서 위에 놓여있는 정교한 박달나무 상자를 꺼내 조심스럽게 유진우에게 건넸다.유진우가 열어보니 안에는 양피지 3장이 들어있었다. 모든 양피지에는 상세한 지도가 그려져 있었고 지도 중앙에는 보물 창고의 위치가 금색으로 표시되어 있었다.보물 지도가 진짜라면, 지도에 그려져 있는
“보물 지도는 어디 있나요?”유진우가 추궁했다.“채원진의 지하 밀실에 있어요. 내가 직접 세자 전하를 모시지요.”사철수가 말했다.“지하 밀실?”유천우는 실눈을 뜨고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혹시 속으로 다른 꿍꿍이를 꾸미는 건 아니죠? 나중에 나를 악랄하다고 탓하기 싫으면 그런 생각은 빨리 접는 게 좋을 거예요.”밀실 같은 건물에는 함정과 암기가 많이 설치되어 있는데 유천우는 사철수가 다른 속셈이 있는 건 아닐까 걱정스러웠다.“저는 이미 독 안에 든 쥐가 아닙니까. 절대 그럴 일 없습니다.”사철수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앞서서 안내하세요.”유진우가 두 근위병에게 눈치를 주자 근위병 두 명이 와서 사철수를 일으켜 세웠다.“잠깐만요. 밀실에 있는 보물 상자를 열려면 채원진의 손이 필요해요.”사철수가 갑자기 말했다.“그건 쉽죠.”유천우는 즉시 칼을 빼 들어 채원진의 오른손을 잘라 사철수에게 건네며 말했다.“자. 선물이에요.”사철수는 징그러웠지만 아무 말도 못 하고 채원진의 손을 받아 들고 앞장섰다.유진우와 몇몇 사람은 사철수를 따라 기지로 들어갔고 마침내 지휘실 입구까지 도착했다.사철수는 문을 열고 벽 쪽으로 다가간 다음 벽에 걸려 있는 그림 하나를 떼어냈다.그림 뒤에는 자세히 보지 않으면 전혀 알아차리기 어려운 하나의 버튼이 있었다.사철수가 손을 내밀어 버튼을 누르자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벽 전체가 갑자기 양쪽으로 열리더니 안에 있던 엘리베이터가 드러났다.사철수가 유진우를 포함한 몇 명을 데리고 엘리베이터로 올라탄 뒤 스위치를 누르자 문이 닫히더니 천천히 지하로 내려갔다.반 시간 남짓 지나자 쿵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멈췄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유진우와 몇 명 사람들의 눈에는 넓고 호화로운 지하 밀실이 들어왔다.말이 밀실이지 사실 호화 저택에 가까웠다. 안에는 없는 것 없이 다양한 생활 시설이 모두 갖춰져 있었고, 많은 물과 식량도 수집되어 있었는데 수십 년 동안 혼자 생활하기에는 충분한 수량이었다.“핵 방지
“유진우?”무릎을 꿇은 채 냉정한 표정을 한 유진우를 바라보는 사철수의 얼굴은 매우 복잡해 보였다. 놀라움과 기쁨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미안함과 죄책감이 더욱 컸다.흑용군이 매복되어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사철수는 이미 호룡각의 대세가 기울었음을 알아차렸다.아니나 다를까 호룡각의 기지는 파괴되었고 채원진은 목숨을 잃었으며 사철수는 유진우한테 체포되었다. 하지만 사철수는 어쩌면 이게 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비록 사철수가 호룡각의 사람이긴 했지만, 서경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고 서경은 이미 사철수한테는 고향 같은 곳이었고 주변에 가족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아주 많았다.사철수가 저질렀던 많은 일들은 어쩔 수 없이 억지로 했던 거라 마음이 늘 불편했었다.오늘,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도 모두 사철수의 업보였고 그가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이였다.“아저씨,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죠? 채원진이 패했으니, 당신도 패한 것과 마찬가지예요. 이제 와서 더 할말이 남았나요?”유진우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이기면 영웅이고 지면 도적이 되는 법이지요. 세자 전하께서 죽이시든 벌을 주든 저는 다 괜찮습니다. 다만 무고한 사람에게 해를 가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사철수는 간절한 마음으로 간청했다.“당신이 지금 나한테 그런 조건을 내세울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세요?”유진우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세자 전하, 죄인인 저는 죽어도 마땅합니다. 하지만 제 아내와 딸은 죄가 없지 않습니까? 그들은 용서해 주십시오.”사철수는 허리를 굽혀 땅바닥에 머리를 세게 박으며 유진우에게 절을 올렸다.“당신 말대로 그들은 아무 짓도 하지 않았죠. 하지만 못난 남편과 아비 때문에 그들도 죄인이 된 겁니다. 설마 당신은 어리석게도 그렇게 큰 죄를 지어 놓고 가족은 아무 일 없이 무사할 거로 생각한 겁니까?”유진우는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세자 전하, 공을 세우는 거로 저의 죄를 보상하면 안 될까요? 세자 전하께서 소가 되라면 소가 될 것이고 말이 되라면 말이 될 것입니다.
바로 이때 조무진이 앞을 가리키며 말했다. 조무진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눈길을 돌리자 완전 무장을 한 군부가 보였는데 족히 수만 명은 되는 것 같았다.검은 갑옷을 입고 긴 칼을 허리에 찬 병사들은 기세가 매우 위풍당당했다.얼핏 보면 마치 강철로 되어 있는 호수 같았는데 멀리서부터 강한 압박감을 주는 이 부대는 바로 서경의 최강 정예 부대 흑용군이었다.“보아하니 사철수는 이미 체포된 것 같네요.”이청성은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이 흥용군의 리더는 바로 유천우였다.당시 유천우는 명령에 따라 천여 명의 군대를 이끌고 포위망을 뚫고 들어가 호룡각의 정예 부대를 미리 파놓은 함정에 빠지게 만든 뒤 절대적인 병력 우세로 오천여 명의 적을 죽이고 나머지는 모두 포로로 체포했다.쿵 쿵 쿵!수만 명의 흑용군이 가까워질수록 그 압박감은 점점 더 강해졌다. 성벽 위에 있던 백호군들도 겁에 질려 얼굴이 창백해졌다.소문에 의하면 흑용군은 용국의 최강 군부로서 창시 이래 백전백승을 이뤘고 여러 차례 뛰어난 공을 세웠으며 어떠한 군부도 흑용군과 정면으로 맞서 싸울 수 없다고 했다.이렇게 직접 눈으로 보니 그 소문은 거짓이 아닌듯했다. 흑용군의 강렬함과 살벌함은 충분히 다른 군부를 경시할 만했다.“형! 임무를 완성했어요. 호룡각의 남은 사람은 한 명도 빠짐없이 전부 잡아들였어요.”유천우가 먼저 앞으로 다가와 보고했다.“잘했어.”유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이쪽은 어떻게 됐어요? 채원진은 죽었어요?”유천우는 여기저기 둘러보며 말했다.“머리가 잘렸는데 살아있을 리가 없잖아?”조무진은 발로 채원진의 머리를 슬쩍 건드리며 말했다.채원진의 머리는 축구공처럼 땅바닥에서 굴러 유천우의 발밑에 멈추었다.“뭐야! 이렇게 못생겼다고? 어쩐지 맨날 가면을 쓰고 다니더라니.”유천우는 바닥에 침을 뱉었다. 자신의 아버지를 암살하고 서경을 해친 놈을 미워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채원진은 이미 죽었고 밑에 있던 정예들은 모두 체포되었으니, 호룡각은 이제 완전히 멸망한 셈이에요.
채원진은 죽고 호룡각 기지는 함락되었다. 이로써 호룡각은 조직 전체가 완전히 멸망했고 남은 사람이라고는 흩어져 있는 병사들뿐이라 크게 위험이 되지는 않았다.하지만 유진우는 방심하지 않고 호룡각이 관련된 모든 사람은 전부 체포하라고 명을 내렸다. 만약 그들이 자진해서 항복한다면 죽음을 면할 수 있지만 끝까지 저항한다면 남은길은 죽음뿐이었다.“형, 드디어 이 재앙 같았던 놈을 처리했네. 축하해!”조무진은 앞으로 걸어가 채원진의 시신을 발로 차 완전히 숨이 끊어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미소를 지었다.“다 네 덕분이야. 네가 20만 명의 백호군을 데리고 채원진의 퇴로를 끊어놓지 않았다면 채원진은 또 다른 기회를 찾아 연명했을지도 몰라.”유진우가 말했다. 그는 채원진을 죽이기 위해 모든 방법을 다 동원했고 심지어 자신의 목숨까지 걸었다. 결국 채원진은 죽었고 그는 승리했다.“난 별로 한 게 없어. 고마워할 거면 공주마마께 고마워해야지.”조무진은 고개를 돌려 뒤에 서있는 이청성을 보며 미소를 짓고 말했다.“공주마마께서 형을 돕는다고 엄청 바쁘셨어. 한순간도 긴장을 놓지 않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독촉하느라 발등에 불이 붙을 뻔했다니까.”“조무진 씨! 지금 무슨 말 하는 거예요?”이청성은 앞으로 걸어 나오며 퉁명스러운 말투로 말했다.“별거 아니에요. 공주마마께서 학식과 도리가 깊고 외모와 지혜가 뛰어나다고 칭찬하고 있었어요.”조무진은 아첨하며 웃음을 지었다.“흥! 말은 번지르르하게 잘하네요.”이청성은 조무진을 흘겨보며 말했다.“공주마마, 감사합니다.”유진우는 공수하며 말했다.“뭘 그렇게 예의를 갖춰요? 도와주기로 했으니까, 끝까지 도와줬을 뿐이에요.”이청성은 조용한 어조로 말했다.“게다가 채원진은 우리 공공의 적이잖아요. 유진우 씨뿐만 아니라 나를 위한 일이기도 해요. 전체적으로 보면 백성을 위해 나쁜 놈을 제거 한 거죠.”“공주마마의 대의가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유진우가 웃으며 말했다.“이 얘기는 그만하죠. 비록 채원진이 죽었다고 하
반면 채원진은 피를 토하며 그 자리에서 십여 미터나 날아가 끊임없이 피를 토했다. 팔 전체가 파열되었고 용담적염창도 튕겨 나갔으며 온몸이 너덜너덜해진 채 바닥에 누워 거의 죽어가고 있었다.“도련님, 괜찮으십니까?”홍복홍은 재빨리 달려가 떨고 있는 유진우를 부축했다.“괜찮아요.”유진우는 몸에 기혈이 들끓고 팔이 저리고 검도 제대로 잡지 못할 것 같았다.비록 채원진이 중상을 입기는 했지만 방금 전력으로 내뿜은 일격은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힘이었고 결국 유진우도 피를 토하고 말았다.채원진의 몸에 있는 멸신독이 퍼지지 않았다면 오늘 그를 제압하지 못했을 것이다.“왜? 이럴 수 없어. 절대 이럴 수는 없어...”땅에 엎드려 맥 빠진 목소리로 으르렁거리는 채원진의 두 손은 긴 손가락 자국을 남긴 채 땅바닥에 푹 꺼져 있었다.안 그래도 흉측하던 얼굴이 더욱 흉측해 보였다.“남길 유언이라도 있나?”유진우는 창궁검을 손에 들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 채원진을 내려다보며 말했다.한 세대의 효웅이었던 채원진은 마치 죽음을 앞둔 늙은 개처럼 낭패와 처참함 그리고 빨리 죽기 위해 발악하는 듯한 모습도 보이는 것 같았다.“유진우! 이 비열한 새끼야! 네가 이런 모함을 꾸미지 않았다면 내가 패할 가능성은 절대 없었고 이 지경까지 되지도 않았을 거야. 인정 못 해. 죽어도 인정 못 해!”채원진은 미친 사람처럼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고함을 질렀다.그의 상대는 용국의 지존인 서경 왕 유만수처럼 천하를 뒤흔든 거물이었는데, 젖비린내 나는 아이들 몇 명에게 패했다는 사실을 채원진은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비열?”유진우는 콧방귀를 뀌고 말을 이었다.“이런 단어가 네 입에서 나오니까 정말 어이없구나. 사람을 시켜서 내 아버지를 암살하고 이간질로 삼촌을 유혹하여 반역을 도모해 서경을 혼란에 빠뜨리고. 네가 했던 일 중에 어느 하나 비열하지 않은 일이 없어. 죽을 때가 되니 이제 와서 도리를 따지는 거야? 쪽팔리지도 않아? 그리고 네가 인정하든 못하든 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