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도씨 가문 사람을 때려요? 제정신이에요?!”죽은 개처럼 바닥에 쓰러져 있는 도석현을 바라보던 장경희 일행은 두려움에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그들은 유진우가 도씨 가문 사람을 이 정도로 만들어 놓을 줄을 몰랐다.“때렸는데 뭐?”유진우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흥! 죽음이 코앞인데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봐요?”장경희는 바보를 보는 표정으로 말했다.“도씨 가문은 서울 5대 가문 중 하나인데, 그런 도씨 가문을 건드렸으니 내일 아침이면 당신 원강에서 시체로 발견지도 몰라요!”“그래? 난 그렇게 생각을 안 하는데.”유진우는 어깨를 으쓱했다.“이봐, 돈이 몇 푼 있다고 해서 서울에서 날뛰면 안 돼. 도씨 가문의 세력은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야.”구양호가 음흉하게 웃으며 말했다.“게다가 도규현이 얼마나 자기 사람을 챙기는데요, 그의 성격에 자기 사람이 다쳤다고 하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아요. 내가 당신이라면 주동적으로 가서 잘못했다고 사과하고 배상할 거예요. 그러면 목숨이라도 건질 수는 있을 거니까요.”이 말을 들은 유진우는 웃었다.“불행하게도 난 당신이 아니야.”“내가 해줄 수 있는 조언은 여기까지예요. 이제 알아서 해요. 얘들아, 우리 그만 가자!”구양호는 차가운 웃음을 터뜨린 뒤, 앞장서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도씨 가문의 사람들이 오면 이 일에 휘말릴까 봐 두려웠다.“흥! 이런 사람하고는 얘기해 봐야 소용없어요. 당해봐야 정신차리죠.”장경희도 한마디 하고는 급히 떠났다.“충고하는데 지금 당장 서울을 떠나는 게 좋을 거예요. 멀면 멀수록 좋고요.”몇 명의 젊은 남녀도 서로 한 마디씩 남기고는 부랴부랴 떠났다.“아저씨, 어떻게 해요? 정말 큰 사고를 치셨나 봐요. 이럴 줄 알았더라면 같이 나오자고 안 하는 건데.”황은아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그녀도 도씨 가문의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녀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거물이었다.“괜찮아, 별거 아니야.”유진우가 웃으
다음 날 아침.유진우가 의학 서적을 읽고 있을 때, 은색 벤틀리 한 대가 갑자기 마당 앞에 멈춰 서더니 조아영이 차에서 내렸다.“유진우 씨! 큰일 났어요! 아빠한테 일이 생겼어요!”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조아영은 불안한 표정으로 연신 외쳤다.“진정해요. 당분간 아무 일 없을 거예요.”유진우는 조금도 놀라지 않고 천천히 책을 내려놓았다.“네? 어떻게 알아요?”조아영은 깜짝 놀랐다.“내가 어제 말했잖아요. 무독에 걸렸다고요. 3일 살 수 있었는데 오늘 둘째 날이니까 이제 하루 남았네요.”유진우가 담담하게 말했다.“어떡해요? 치료할 수 있어요?”조아영이 물었다.“치료할 수 있지만 조건이 있어요.”“무슨 조건요?”“조씨 집안에서 언니의 뜻에 따라 선우 가문과 파혼하는 거요.”“파혼이요?”조아영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그건 작은 일 아니에요. 아빠 절대 동의하지 않을 거예요.”두 집안의 결혼은 세간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다.결혼이 깨지면 두 집안의 관계는 필연적으로 틀어지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조씨 가문 전체가 큰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그게 아버지의 목숨보다 더 중요해요?”유진우가 되물었다.“우리 아빠를 몰라서 그래요. 아빠는 가문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내놓으시는 분이에요.”조아영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그 정도예요?”유진우는 조금 놀랐다.“휴... 아니면 언니가 그냥 지금처럼 당하고만 있겠어요? 나도 유진우 씨가 형부가 되기를 바라긴 하지만 이 결혼은 아빠가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조아영은 한숨을 쉬었다.“참 고집 센 분이네요!”유진우는 미간을 찌푸렸다.원래 그는 이번 무독 건으로 그의 마음을 돌려보려고 했었는데 상황을 봐선 안 될 것 같았다.“유진우 씨, 저한테 좋은 생각이 있어요.”조아영이 갑자기 말했다.“뭔데요?”유진우가 물었다.“저의 아빠는 설득이 안 되니까, 바꿔서 선우 가문을 설득해 보는 건 어떨까요?”조아영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내일 조씨 가문의 연회에 선우
정오, 조씨 저택.유진우와 조아영이 조씨 가문에 도착했다.5대 가문으로서 조씨 가문의 저택은 매우 호화로웠다.내부에는 인공 호수, 암석정원, 농장, 와이너리가 있었고 금빛 찬란한 별장들이 줄지어 있었다.내부와 외부에는 수백 명의 경비원이 있었고 가정 도우미도 수십 명에 달했다.대 가문이라는 것이 어떤 건지 충분히 보여주었다.유진우는 정원의 풍경을 즐기며 내일 있을 조씨 가문의 연회에 대해 생각했다.“도착했어요.”그때 차가 별장 입구에 천천히 멈춰 섰다.두 사람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두 명의 하인과 함께 문 앞에 서서 기다리는 진서현을 보았다.“왔어요?”진서현은 유진우를 위아래로 살피더니 차갑게 말했다.“어제 남편이 무독에 걸렸다고 했는데 사실이에요?”“거짓말이었다면 저를 데려오시지 않았겠죠.”유진우가 대답했다.그 말에 진서현은 어쩔 수 없이 눈을 질끈 감았다.유진우의 말대로 조군수가 갑자기 이상한 병증으로 앓아누웠는데 가문의 의료진은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 따라서 하는 수 없이 유진우를 데려오게 되었다.“하나만 더 물어볼게요. 이 무독을 정말로 치료할 수 있어요?”진서현이 다시 물었다.“그건 환자의 상황을 정확히 봐야 얘기 드릴 수 있습니다만, 아직 초기라면 쉽게 치료가 되는데 심하면 힘들 수도 있습니다.”유진우는 가능성을 열어놓았다.“따라와요.”진서현은 살짝 미간을 찌푸린 채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돌아서서 앞장섰다.유진우와 조아영은 뒤를 따라 각종 의료기구가 가득한 병실로 들어갔다.병실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몇몇 의학 전문가들이 치료 방안을 연구하고 있었고 조군수는 침대에 의식을 잃은 채 누워 있었다.얼굴은 새까맣고 입술은 보라색으로 변해 있었는데 중독된 것이 분명했다.유진우는 병상으로 걸어가 조군수의 맥박을 짚어보고 눈과 입의 상황을 보더니 한 가지를 확신했다. 그건 바로 조군수의 무독이 아주 강하다는 것이다.“유진우 씨, 우리 아빠 어때요? 나을 수 있어요?”조아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쉽지는 않겠
“그럼 동의하는 건가요?”피터가 팔짱을 끼고 물었다.“물론이죠.”유진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렇게 자신감이 넘치시니, 능력이 어느 정도 되는지 보고 싶네요. 후회하지 않길 바랍니다.”“좋아요, 오늘 한의학과 우리 서양의학의 차이를 확실하게 보여주죠.”피터는 자신 있게 미소를 지으며 상자를 열어 초록색 물약 한 병을 꺼내 보이며 설명했다.“보셨죠? 이건 우리 의료진이 개발한 최신 해독제인데, 이걸 먹으면 30분 안에 깨어날 수 있어요.”“행운을 빕니다.”유진우는 한마디만 했다.“눈을 크게 뜨고 과학의 힘이 무엇인지 지켜봐요!”피터는 초록색 물약을 주사기로 조군수의 몸에 조금씩 밀어 넣었다.10분 후.의식을 잃고 있던 조군수가 갑자기 반응을 보였다.이마에서 먼저 땀이 나기 시작하더니 팔다리에도 서서히 온기가 돌기 시작했고 어두웠던 얼굴도 조금씩 정상을 되찾아 가고 있었다.확실히 좋아지는 것 같았다.“효과가 있어요.”이 모습을 본 진서현과 조아영은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최고의 외국 의대 교수에 걸맞게 간단한 주사 한 방으로 기적 같은 효과가 발생했다.“유진우, 봤어? 이게 바로 피터 선생님의 실력이야! 주사 한 방으로 모든 희귀병을 치료하시지!”조준서가 웃었다.“그냥 표면적인 것뿐이에요.”유진우가 무표정으로 한마디 했다.“흥! 아직도 그렇게 버티고 싶어?”조준서는 경멸하는 표정을 지었다.“서양의학은 과학입니다. 당신들 한의학은 귀신 놀음에 불과한데 어찌 우리 서양의학과 비교할 수 있겠어요?”피터는 잘난 체하며 웃었다.“피터 선생님 정말 대단하십니다!”진서현이 고마움을 표했다.“제수씨, 어때요? 제가 잘 모셔 왔죠?”조군해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큰아주버님, 고마워요. 때마침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진서현은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가족인데 당연히 해야죠.”조군해는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내일이면 가족 대 모임인데 군수가 족장으로서 모임에 참석해야지 않겠어요.”“알겠습니다.”진서현은 연신 고
진서현의 얼굴은 극도로 흉측해졌다.“정말 이상하네요! 저희가 개발한 해독제는 여러 가지로 충분히 검증되어서 실패할 리가 없는데요?”피터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그럼, 이제 어떡해요?”진서현이 얼굴을 찡그렸다.“여긴 환경이 열악해서 저도 더 좋은 해결책이 없습니다.”피터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그러니까 지금까지 아무 소용도 없었다는 거네요?”진서현의 안색이 어두워졌다.구세주인 줄 알았는데 결국에는 돌팔이였다.“피터 선생님, 다른 방법 생각해 보세요.”조준서는 물러서려고 하지 않았다.“소용없어요, 이 나라의 의료 환경이 너무 열악해서 안 돼요. 우리나라에서만 치료가 가능해요.”피터는 고개를 저었다.그의 말 속에는 자기들 대국에 대한 우월감이 담겨 있었다.“능력이 안 되면 그냥 인정하시죠? 장비가 열악하고 조건이 안 좋다고 탓하지 마시고요.”유진우가 냉정하게 말했다.“흥! 나도 고칠 수 없는 것을 그쪽이 할 수 있다고요?”피터의 얼굴이 차가워졌다.“이게 바로 서양의학과 한의학의 차이예요. 당신들은 여러 가지 장비가 필요하겠지만 우리 한의학은 두 손과 은침이면 되거든요.”유진우는 담담하게 말했다.“말도 안 돼요! 당신이 무슨 신이라도 돼요?”피터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의학 최고성지에서 온 그는 유진우를 사기꾼으로 생각했다.“당신네 신이 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할 수 있어요.”유진우가 말했다.“좋아요! 어디 한번 해봐요.”피터는 약간 짜증이 났다.“큰소리만 치지 말고 우리 삼촌부터 살려봐!”조준서도 한마디 했다.“좋아요, 오늘 한의학의 진가를 제대로 보여줄게요.”유진우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조군수의 옷을 벗기고 침착하게 은침을 꺼냈다.조군수를 관찰하더니 순식간에 은침을 십여 개의 혈점에 찔렀는데 모두 허리와 복부 사이에 집중되어 있었다.그는 손가락으로 은침을 튕겼다.“띵!”은침 수십 개가 갑자기 격렬하게 진동하더니 은침이 찔린 부위를 따라 검은 피가 천천히 흘러나왔다.검은
조군수가 깨어났다.검은 피를 뱉어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신을 차렸다.비록 몸은 아직 허약했지만, 목숨은 건진 셈이었다.피터는 조군수가 깨어난 것을 보고 단호하게 패배를 인정하고 유진우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그는 자신이 한의학의 힘을 과소평가했다고 말했다.그리고 돌아가서 교수직을 바로 사임하고 한의학 공부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다고 했다.이에 대해 유진우는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피터 같은 사람은 거만하긴 하지만 진정으로 강한 사람을 만나면 마음속으로부터 상대방을 존경하는 스타일이었다.조군해 일행은 조군수가 무사한 것을 확인한 후 오래 머물지 않고 몇 마디 인사를 주고받은 후 자리를 떠났다.떠나기 직전 조준서의 눈빛은 조금 불친절했다.“아빠, 몸은 좀 어떠세요? 어디 불편한 데는 없으세요?”조아영은 따뜻한 물 한 컵을 들고 병상 옆으로 걸어갔다.“괜찮아, 배가 좀 더부룩할 뿐이야.”조군수는 물을 두 모금 들이켰다.“당연히 더부룩하시겠죠? 토해낸 피를 봐요, 벌레가 가득해요!”조아영이 말했다.“어?”조군수는 아래를 내려다보며 얼굴을 찡그렸다.“어떻게 된 거야?”“유진우 씨가 그러는데 무독이래요. 방금 유진우 씨가 아니었으면 아빠 깨어나지 못했을 거예요.”조아영이 설명했다.“유진우?”조군수는 그제야 옆에 서 있는 유진우를 발견하고는 복잡한 표정으로 말했다.“자네가 나를 구해줬다고요?”“아직은 기뻐할 때가 아닙니다. 몸속에 독충은 제거했지만, 아직 다 나으신 건 아닙니다.”유진우가 찬물을 끼얹었다.“무슨 뜻이에요?”조군수가 눈썹을 치켜올렸다.“무독은 무술과 독충의 결합으로서 독충은 제거됐지만, 무술은 아직 해결되지 않았습니다.”유진우가 설명했다.“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조군수가 물었다.“간단해요, 앞으로 하루에 한 번씩 침을 놓아드릴 건데, 5일 정도 지나면 완치될 겁니다.”유진우가 말했다.“그렇군요. 침을 놓는 비용은 어떻게 되나요?”조군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돈은 필요
“응?”조군수가 고개를 들어 옆에 있던 진서현을 바라보았다.“아까 당신이 위급해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만나게 해주겠다고 했어요.”진서현이 말했다.“알았어. 당신도 급했겠지.”조군수는 따지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만나는 건 좋지만, 허튼짓은 안 하는 게 좋을 거예요. 감시하는 사람도 같이 보낼 거예요.”“알겠습니다!”유진우는 동의했다.“아영아, 모시고 가서 언니랑 만나게 해.”조군수가 명령했다.“네!”조아영의 얼굴이 기쁨으로 밝아졌다.언니가 너무나 유진우를 만나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참, 아저씨, 무독은 작은 일이 아니예요. 아저씨한테 무독을 쓸 수 있는 사람은 보통 사람이 아닐 거예요. 주변 사람을 조심해야 해요.”방을 나가려던 순간 유진우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조군수를 보며 말했다.“알았어요.”조군수가 고개를 끄덕였다.늘 은둔 생활을 해오던 그가 갑자기 무독에 걸렸으니, 상황이 심상치 않은 것이 분명했다.가장 중요한 것은 내일이 조씨 가문의 연회라는 점이었다.족장으로서 그가 빠지면 그 영향은 엄청날 것이다.조씨 가문에 내란이 발생하기에 아주 적절한 타이밍이었다.“여보, 나한테 무독을 쓴 사람이 누굴까?”조군수가 갑자기 물었다.“주술에 능하고 우리 조씨 가문과 원수지간인 블랙지존 말고 누가 또 있겠어요.”진서현의 표정이 신중했다.블랙지존은 조씨 가문의 눈에 든 가시 같은 존재였다.그는 신비롭고 강력했다.조씨 가문에서 블랙지존을 없애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인력과 자원을 투자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수년 동안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게다가 매년 조씨 가문의 핵심 인력들이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가고 있는데 그들 뒤에는 늘 블랙지존의 그림자가 있었다.블랙지존 하나만으로 조씨 가문 전체가 육체적, 정신적으로 공황 상태에 빠졌다고 할 수 있다.“그렇지, 그 사람밖에 없지.”조군수는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불행하게도 우리는 지금 일방적으로 당하고만 있어. 이게 바로 내가 굳이 선미를 선우 가문에 시집보내려
그 시각 조씨 저택 후원.인품과 재능이 제일인 한 여자가 연못 위의 아치형 다리에 걸터앉은 채 물속에서 펄쩍펄쩍 뛰노는 잉어들을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었다.하얗고 앙증맞은 두 발을 앞뒤로 흔들고 있었는데 두 발이 가끔 수면에 닿으면서 잔잔한 물결을 일으켰다.찬란한 햇빛 아래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이 반짝반짝 빛났다. 그 모습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같았고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정원에 갖가지 꽃들이 환하게 피어있었지만 여자의 먹구름이 드리워서인지 빛을 잃어가는 것만 같았다.“스르륵...”여자는 먹이를 한 움큼 쥐고 연못에 뿌렸다. 그 순간 수만 마리에 달하는 잉어들이 펄쩍펄쩍 뛰면서 물보라를 일으켰다.가지각색의 잉어들이 서로 먹이를 빼앗는 모습은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난 아무 걱정 없는 너희들이 참 부러워. 난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좋아하지 않는지조차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데.”여자는 시름에 잠긴 얼굴로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누가 그래요?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고?”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그녀 뒤에서 갑자기 들려왔다. 여자는 잠깐 놀라는가 싶더니 이내 자신을 비웃었다.“대낮에도 환청이 들리네.”“환청? 그 정도로 심각한 건 아니지 않나요?”목소리가 다시 한번 들려왔다. 여자는 그제야 진짜인 걸 깨닫고 숨을 죽인 채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한 잘생긴 남자가 햇살을 맞으며 그녀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는데... 유진우가 아니면 누구겠는가?“진... 진우 씨가 여긴 어떻게 왔어요?”늘 그리워하던 얼굴이 눈앞에 나타난 순간 조선미는 놀라면서도 기뻤고 심지어 잘못 본 건 아닌지 자신의 눈을 의심하기도 했다.그동안 그녀는 집에 갇혀 세상과 단절된 나머지 거의 우울증에 걸릴 지경이었다.“내가 얘기했잖아요. 당신이 강능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서울로 찾아올 거라고. 난 약속 지켰어요.”유진우는 씩 웃어 보였다.“역시 여보가 제일 좋아요!”조선미는 행복한 웃음을 짓고는 물고기 먹이를 그대로 내팽개치고 유진우의 품에 와락 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