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조군수가 고개를 들어 옆에 있던 진서현을 바라보았다.“아까 당신이 위급해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만나게 해주겠다고 했어요.”진서현이 말했다.“알았어. 당신도 급했겠지.”조군수는 따지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만나는 건 좋지만, 허튼짓은 안 하는 게 좋을 거예요. 감시하는 사람도 같이 보낼 거예요.”“알겠습니다!”유진우는 동의했다.“아영아, 모시고 가서 언니랑 만나게 해.”조군수가 명령했다.“네!”조아영의 얼굴이 기쁨으로 밝아졌다.언니가 너무나 유진우를 만나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참, 아저씨, 무독은 작은 일이 아니예요. 아저씨한테 무독을 쓸 수 있는 사람은 보통 사람이 아닐 거예요. 주변 사람을 조심해야 해요.”방을 나가려던 순간 유진우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조군수를 보며 말했다.“알았어요.”조군수가 고개를 끄덕였다.늘 은둔 생활을 해오던 그가 갑자기 무독에 걸렸으니, 상황이 심상치 않은 것이 분명했다.가장 중요한 것은 내일이 조씨 가문의 연회라는 점이었다.족장으로서 그가 빠지면 그 영향은 엄청날 것이다.조씨 가문에 내란이 발생하기에 아주 적절한 타이밍이었다.“여보, 나한테 무독을 쓴 사람이 누굴까?”조군수가 갑자기 물었다.“주술에 능하고 우리 조씨 가문과 원수지간인 블랙지존 말고 누가 또 있겠어요.”진서현의 표정이 신중했다.블랙지존은 조씨 가문의 눈에 든 가시 같은 존재였다.그는 신비롭고 강력했다.조씨 가문에서 블랙지존을 없애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인력과 자원을 투자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수년 동안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게다가 매년 조씨 가문의 핵심 인력들이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가고 있는데 그들 뒤에는 늘 블랙지존의 그림자가 있었다.블랙지존 하나만으로 조씨 가문 전체가 육체적, 정신적으로 공황 상태에 빠졌다고 할 수 있다.“그렇지, 그 사람밖에 없지.”조군수는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불행하게도 우리는 지금 일방적으로 당하고만 있어. 이게 바로 내가 굳이 선미를 선우 가문에 시집보내려
그 시각 조씨 저택 후원.인품과 재능이 제일인 한 여자가 연못 위의 아치형 다리에 걸터앉은 채 물속에서 펄쩍펄쩍 뛰노는 잉어들을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었다.하얗고 앙증맞은 두 발을 앞뒤로 흔들고 있었는데 두 발이 가끔 수면에 닿으면서 잔잔한 물결을 일으켰다.찬란한 햇빛 아래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이 반짝반짝 빛났다. 그 모습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같았고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정원에 갖가지 꽃들이 환하게 피어있었지만 여자의 먹구름이 드리워서인지 빛을 잃어가는 것만 같았다.“스르륵...”여자는 먹이를 한 움큼 쥐고 연못에 뿌렸다. 그 순간 수만 마리에 달하는 잉어들이 펄쩍펄쩍 뛰면서 물보라를 일으켰다.가지각색의 잉어들이 서로 먹이를 빼앗는 모습은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난 아무 걱정 없는 너희들이 참 부러워. 난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좋아하지 않는지조차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데.”여자는 시름에 잠긴 얼굴로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누가 그래요?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고?”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그녀 뒤에서 갑자기 들려왔다. 여자는 잠깐 놀라는가 싶더니 이내 자신을 비웃었다.“대낮에도 환청이 들리네.”“환청? 그 정도로 심각한 건 아니지 않나요?”목소리가 다시 한번 들려왔다. 여자는 그제야 진짜인 걸 깨닫고 숨을 죽인 채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한 잘생긴 남자가 햇살을 맞으며 그녀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는데... 유진우가 아니면 누구겠는가?“진... 진우 씨가 여긴 어떻게 왔어요?”늘 그리워하던 얼굴이 눈앞에 나타난 순간 조선미는 놀라면서도 기뻤고 심지어 잘못 본 건 아닌지 자신의 눈을 의심하기도 했다.그동안 그녀는 집에 갇혀 세상과 단절된 나머지 거의 우울증에 걸릴 지경이었다.“내가 얘기했잖아요. 당신이 강능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서울로 찾아올 거라고. 난 약속 지켰어요.”유진우는 씩 웃어 보였다.“역시 여보가 제일 좋아요!”조선미는 행복한 웃음을 짓고는 물고기 먹이를 그대로 내팽개치고 유진우의 품에 와락 안겼다.
조선미의 성격이라면 충분히 도망치고도 남았을 것이다. 조씨 가문 송년회가 곧 코앞이라 그 어떤 실수가 있어서도 안 되었다.“됐어요, 됐어요. 그냥 여기 있어요, 그럼.”그녀와 따지고 싶지 않았던 조선미는 유진우와 함께 연못 가운데 있는 정자로 향했다.오씨 아주머니가 따라나서려 하자 조아영이 그녀를 말렸다.“이봐요, 아주머니. 아빠가 아주머니한테 그냥 지켜보라고만 했지, 가깝게 따라다니라고는 하지 않았잖아요. 커플이 사적인 얘기를 하겠다는데 아주머니가 끼어들어서 뭐 하게요?”오씨 아주머니는 잠깐 생각하더니 결국 발걸음을 멈추었다. 어차피 눈에 보이는 범위 내에 있어 두 사람이 수상쩍은 움직임을 보인다고 해도 정확히 알 수 있었다.“여보, 여긴 어떻게 들어왔어요? 우리 아빠 성격에 절대 물러서지 않을 텐데.”정자 안에서 조선미가 먼저 질문을 던지면서 차를 두 잔 따랐다.“선미 씨 아버님 목숨을 살려드리고 그 조건으로 선미 씨랑 만나게 해달라고 했죠.”유진우는 숨김없이 일의 자초지종을 간단하게 말했다. 그의 얘기를 듣고 난 조선미는 살짝 화난 눈치였다.“아빠는 정말 고집이 세네요. 죽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니.”“그래서 이 일 어찌하면 좋을지 얘기하려고 찾아온 거예요.”유진우도 달리 방법이 없었다.“요 며칠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요. 이 결혼을 막으려면 두 가지 선택밖에 없어요. 아빠를 설득해서 생각이 바뀌든지, 아니면 선우 가문에서 먼저 파혼하자고 하든지.”조선미가 생각에 잠긴 얼굴로 말을 이었다.“우리 아빠는 고집불통이라 가족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바칠 분이거든요. 그런 아빠를 설득한다는 건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에요. 그런데 우리가 아빠의 근심거리를 없애준다면 모를까.”“근심거리요? 그게 뭔데요?”유진우는 궁금증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조선미는 숨을 깊게 들이마신 후 천천히 말했다.“아주 오래전에 조씨 가문이 블랙지존이라는 사람을 건드렸거든요. 그 사람은 악랄하고 잔인한 데다가 수단까지 괴이해서 막으려야 막을 수가 없어요. 그동안
유진우는 조선미와 만난 후 바로 떠나지 않고 조군수의 병을 치료한다는 이유로 조씨 저택에 머물렀다.오씨 아주머니는 혹시라도 유진우와 조선미가 도망이라도 칠까 봐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두 사람을 따라다녔다. 두 사람이 조금이라도 친밀한 행동을 보인다 싶으면 바로 말리곤 했다.특히 해가 지고 난 후에는 두 사람을 절대 만나지 못 하게 했다. 유진우는 이런 상황이 어이없기만 했다.밤새 아무 일 없이 무사히 지나갔다.이튿날 오전, 조씨 가문 송년회가 막을 열었다.조씨 가문의 직계 가족과 방계 가족들이 잇달아 현장에 도착했다. 수억 원대의 고급 자동차들이 광장에 즐비해 있었다.5대 재벌 중 하나인 조씨 가문은 대가문답게 자손들이 아주 많았다. 직계와 방계 모두 합하면 적어도 백여 명은 될 것이다.사실 조씨 가문 자제 외에도 회사의 중요 인사나 귀빈도 송년회에 초대받았다. 하여 송년회 당일 조씨 저택은 그야말로 시끌벅적했다.족장인 조군수는 유진우가 놓은 침을 맞고 나서 안색이 눈에 띄게 많이 좋아졌다. 아직 몸이 쇠약하긴 했지만 앉고 서서 걷는 건 별문제 없었다.“조씨 가문 송년회에 매년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이 오나요?”연회장 안으로 들어가는 손님들을 보며 유진우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그럼요!”옆에 앉아있던 조아영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우리 조씨 가문이 사업을 크게 하다 보니까 인맥이 넓거든요. 그래서 매년 송년회에 아주 많은 손님들이 축하해주러 와요.”“우리가 선우 가문이랑 사돈을 맺는다는 소식을 듣고 그냥 잘 보이려고 찾아왔을 뿐이에요.”조선미가 코웃음을 쳤다.과거의 송년회는 절대 오늘처럼 이렇게 시끌벅적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어떤 이들은 선우 가문 때문에 온 것이다.“어이, 유진우! 너 왜 아직도 여기 있어?”그때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갑자기 들려왔다.고개를 돌아보니 어제 만났던 젊은 여자와 조준서가 마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젊은 여자는 섹시한 몸매가 돋보이는 레드 드레스를 입었고 정교하고 요염한 얼굴이 아주 유혹적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대체 누구 짓이야!”우르르 쓰러진 사람들을 보고 있는 조선미의 얼굴이 얼음장처럼 차가웠다.만약 한둘이 중독되었더라면 그나마 쉽게 해결할 수 있었을 테지만 백여 명의 사람이 동시에 중독됐으니 결과가 어떻게 될지 아무도 가늠할 수 없었다.독을 탄 사람의 목적은 조씨 가문을 완전히 멸하려는 게 분명했다!“아빠, 엄마, 큰아버지! 둘째 큰아버지!”하나둘 연이어 쓰러지는 가족들을 보고 당황한 조아영이 황급히 달려갔다. 그런데 그녀가 그들에게 달려가기 전에 푸 하고 피를 토하며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아영아!”조선미가 굳어진 얼굴로 다가가려던 그때 유진우가 그녀를 말렸다.“가지 마요! 술에 독을 탄 게 아니라 공기예요!”“그럼 어떡해요? 무슨 방법이라도 써서 저들을 구해야죠.”조선미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가족들이 전부 중독되어 피까지 토하니 도저히 진정할 수가 없었다.“일단 이 약부터 먹어요.”유진우는 하얀 단약을 꺼내 조선미의 입에 쏙 넣었다. 해독단이라 불리는 이 약은 이름 그대로 독을 해독하는데 탁월한 효능이 있었다.“해독하려면 독이 어디서 퍼져나갔는지부터 찾아내야 해요. 나한테 시간을 좀 줘요.”조선미의 안전을 확보한 후 유진우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변을 훑어보았다. 그마저도 알아차리지 못한 독이라면 색깔도 냄새도 없거나 주변 환경과 하나가 되었을 가능성이 컸다.“블랙지존이야! 블랙지존의 짓이 틀림없어!”바닥에 누워있던 조군해가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흥분한 탓에 또 피를 토했다.“저 알았어요! 블랙지존이 이번 송년회에서 우리 조씨 가문을 몰살하려나 봐요!”둘째 조군표가 이를 꽉 깨물고 분노를 터트렸다.다행히 조군표는 실력이 꽤 있는 무사라 몸이 아주 튼튼했다. 하여 중독되었어도 다른 사람들보다 증상이 가벼웠다. 하지만 그래도 독 때문에 목숨을 잃는 건 시간문제였다.“또 블랙지존이야? 벌써 수년이나 지났어. 언제까지 우리 가문을 못살게 굴 작정인데!”조군수는 숨이 멎을 정도로 기침이 심했다. 안
정신없는 30분이 지나고 나서야 백여 명의 사람들이 전부 해독약을 마셨다. 비록 사지에 힘이 쭉 빠지고 안색이 창백했지만 적어도 생명에는 위험이 없었다.바삐 돌아친 후 조선미는 맥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았고 유진우도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그가 몸에 지닌 약물의 종류가 많았기에 다행이지, 안 그러면 이 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다 챙기지 못했을 것이다.“진우 씨 덕분에 살아났어요. 안 그러면 우리 가문이 이번에 다 몰살당했을 거예요.”조군수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정말 하마터면 조씨 가문 모든 사람들이 다 죽을 뻔했다.“별말씀을요. 당연히 제가 해야죠.”유진우가 손을 내저었다.“작은아버지, 뭔가 이상하지 않아요?”그때 조준서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우리가 중독됐는데 왜 저 자식한테 해독약이 있어요?”“그게 무슨 말이야?”조군수가 눈살을 찌푸렸다.“작은아버지, 송년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전부 조씨 가문의 자제들이거나 귀한 손님들이에요. 다들 서로 잘 알고 있지만 저 자식만 정체를 알 수 없다고요!”조준서는 유진우에게 손가락질했다.“지금 내가 독을 탔다고 의심하는 거예요?”유진우는 두 눈을 가늘게 떴다.“흥, 이번 중독 사건의 범인은 내부에 있는 게 틀림없어. 넌 독의 근원지를 정확하게 찾아냈고 또 해독까지 해줬어. 의심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니야?”조준서의 얼굴에는 그에 대한 의심이 가득했다.“경고하는데 함부로 허튼소리 지껄이지 마! 만약 진우 씨가 범인이라면 당신들을 왜 구했겠어?”조선미가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그걸 꼭 물어봐야 알아? 당연히 우리 믿음을 얻으려고 그러는 거지!”조준서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다시 말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저 자식의 자작극일지도 몰라. 먼저 우리를 중독되게 한 다음 구세주처럼 나타나서 해독해주는 거지. 이런 악랄한 수단을 예전에도 본 적이 있었어.”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람들의 시선이 전부 유진우에게 쏠렸다.경계와 의심, 분노, 그리고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이 뒤섞
적대심 가득한 사람들의 표정을 보며 유진우는 저도 모르게 코웃음을 쳤다.‘물에 빠진 사람 건져 주었더니 보따리 내놓으라 하네? 이럴 줄 알았으면 도와주지 않는 건데. 고마워하기는커녕 오히려 날 범인으로 몰아간다고? 정말 재수 없어!’“유진우, 왜 말이 없어? 도둑이 제 발 저려서 찍소리도 못하는 거야?”조준서는 끝까지 캐묻겠다는 기세로 무섭게 몰아붙였다.“당신이 이렇게까지 얘기한 마당에 내가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겠어요?”유진우가 피식 웃었다.“당신들 목숨을 구한 나한테 독을 쓴 범인이라고 몰아붙이지 않나... 당신들처럼 은혜도 모르는 사람들은 처음이에요.”“흥, 아직도 변명이야?”조준서의 눈빛이 서늘해졌다.“만약 네가 독을 쓴 게 아니라면 설명해 봐. 너한테 어떻게 해독약이 있을 수 있어?”“그래! 어떻게 해독약을 갖고 있어?”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물었다. 일이 하도 딱딱 맞아떨어져서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난 의사라서 약물에 대해 잘 알고 있어요. 당신들 독을 해독할 수 있는 건 당연한 거 아니에요?”유진우가 덤덤하게 말했다.“진우 씨의 의술이 뛰어나다는 건 내가 증명할 수 있어요!”조선미가 나서서 유진우에게 힘을 보탰다.“저도 증명할 수 있어요!”조아영도 맞장구를 쳤다.두 사람은 유진우의 의술과 인품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그래. 네가 의사라서 마침 해독약이 있었다고 쳐. 그럼 넌 왜 중독되지 않은 건데? 네 몸이 튼튼해서 그 어떤 독에도 중독되지 않는다는 그런 헛소리는 하지 마.”조준서가 계속하여 캐물었다.“당신 추측이 맞아요. 난 그 어떤 독에도 중독되지 않아요.”유진우가 진지하게 대답했다.그의 실력 앞에 일반 독은 아예 맥도 추지 못한다. 전에 10대 기이한 독 중의 하나인 블랙 스네이크 독에 중독됐을 때도 한잠 자고 일어나니 말끔히 해독되었다.“다들 들었죠? 이 얼마나 가소로운 핑계인지 좀 보세요.”조준서는 코웃음을 치고는 이내 싸늘한 얼굴로 바뀌었다.“유진우, 너 정말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그럼 미안한 짓을 하지 말아야죠. 아무튼 오늘 누구도 진우 씨를 건드릴 수 없어요!”조선미는 그 누구의 체면도 봐주지 않았다. 그녀 눈에 자기 남자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누명이 아니라 진짜로 죄를 지었더라도 끝까지 감쌀 생각이었다.“어디서 배운 버르장머리야!”순간 분노가 치밀어 오른 조군표가 호통쳤다.“가족의 생사가 달린 큰일에 어린 것이 감히 끼어들어? 여봐라, 당장 큰아가씨를 방으로 돌려보내!”“알겠습니다.”오씨 아주머니 등 몇몇은 한시라도 지체할세라 조선미를 연회장 밖으로 끌어냈다.그 모습에 유진우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몇 번이고 나서서 말리고 싶었지만 결국 참았다. 조씨 가문의 행동은 이미 그의 화를 충분히 돋우었다.“유진우, 이젠 널 도와줄 사람이 없어.”조준서가 앞으로 다가와 목소리를 내리깔고 웃었다.“내가 너한테 빨리 떠나라고 진작 얘기했었지? 내 말 듣지 않고 기어코 있더니 꼴좋다. 인제 어때? 후회되지?”“난 독을 쓴 범인이 아니에요.”유진우는 상황을 설명하려 했다.“범인이 옳든 아니든 그게 중요해? 내가 너라고 하면 너인 거야!”조준서가 싸늘하게 웃었다.“그러니까 지금 당신이 날 모함하고 있다는 거죠?”유진우가 눈살을 찌푸렸다. 의심을 당하는 건 당하는 거고 모함은 또 다른 일이었다.“그렇다면 뭐?”조준서가 조롱 섞인 얼굴로 말을 이었다.“아무튼 사람들은 해명이 필요할 뿐이야. 다들 네가 범인이길 기대하는 눈치던데? 어때? 화나고 답답하지? 그렇다고 해도 뭘 어쩔 수 있을 것 같아? 이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권력이 있어야 해. 너 같은 천민은 희생양이 되기 참 쉬워. 그러니까 그냥 인정해!”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소리를 질렀다.“이 자식을 잡아들여서 모질게 고문해. 감히 반항한다면 죽여도 좋다!”“네!”그의 명령에 조씨 가문 경호원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꺼져!”유진우가 몸을 파르르 떨며 무서운 기운을 내뿜자 사람들이 순식간에 튕겨 나갔다.“감히 반항해? 역시 도둑이 제 발 저린 거 맞네! 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