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대심 가득한 사람들의 표정을 보며 유진우는 저도 모르게 코웃음을 쳤다.‘물에 빠진 사람 건져 주었더니 보따리 내놓으라 하네? 이럴 줄 알았으면 도와주지 않는 건데. 고마워하기는커녕 오히려 날 범인으로 몰아간다고? 정말 재수 없어!’“유진우, 왜 말이 없어? 도둑이 제 발 저려서 찍소리도 못하는 거야?”조준서는 끝까지 캐묻겠다는 기세로 무섭게 몰아붙였다.“당신이 이렇게까지 얘기한 마당에 내가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겠어요?”유진우가 피식 웃었다.“당신들 목숨을 구한 나한테 독을 쓴 범인이라고 몰아붙이지 않나... 당신들처럼 은혜도 모르는 사람들은 처음이에요.”“흥, 아직도 변명이야?”조준서의 눈빛이 서늘해졌다.“만약 네가 독을 쓴 게 아니라면 설명해 봐. 너한테 어떻게 해독약이 있을 수 있어?”“그래! 어떻게 해독약을 갖고 있어?”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물었다. 일이 하도 딱딱 맞아떨어져서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난 의사라서 약물에 대해 잘 알고 있어요. 당신들 독을 해독할 수 있는 건 당연한 거 아니에요?”유진우가 덤덤하게 말했다.“진우 씨의 의술이 뛰어나다는 건 내가 증명할 수 있어요!”조선미가 나서서 유진우에게 힘을 보탰다.“저도 증명할 수 있어요!”조아영도 맞장구를 쳤다.두 사람은 유진우의 의술과 인품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그래. 네가 의사라서 마침 해독약이 있었다고 쳐. 그럼 넌 왜 중독되지 않은 건데? 네 몸이 튼튼해서 그 어떤 독에도 중독되지 않는다는 그런 헛소리는 하지 마.”조준서가 계속하여 캐물었다.“당신 추측이 맞아요. 난 그 어떤 독에도 중독되지 않아요.”유진우가 진지하게 대답했다.그의 실력 앞에 일반 독은 아예 맥도 추지 못한다. 전에 10대 기이한 독 중의 하나인 블랙 스네이크 독에 중독됐을 때도 한잠 자고 일어나니 말끔히 해독되었다.“다들 들었죠? 이 얼마나 가소로운 핑계인지 좀 보세요.”조준서는 코웃음을 치고는 이내 싸늘한 얼굴로 바뀌었다.“유진우, 너 정말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그럼 미안한 짓을 하지 말아야죠. 아무튼 오늘 누구도 진우 씨를 건드릴 수 없어요!”조선미는 그 누구의 체면도 봐주지 않았다. 그녀 눈에 자기 남자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누명이 아니라 진짜로 죄를 지었더라도 끝까지 감쌀 생각이었다.“어디서 배운 버르장머리야!”순간 분노가 치밀어 오른 조군표가 호통쳤다.“가족의 생사가 달린 큰일에 어린 것이 감히 끼어들어? 여봐라, 당장 큰아가씨를 방으로 돌려보내!”“알겠습니다.”오씨 아주머니 등 몇몇은 한시라도 지체할세라 조선미를 연회장 밖으로 끌어냈다.그 모습에 유진우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몇 번이고 나서서 말리고 싶었지만 결국 참았다. 조씨 가문의 행동은 이미 그의 화를 충분히 돋우었다.“유진우, 이젠 널 도와줄 사람이 없어.”조준서가 앞으로 다가와 목소리를 내리깔고 웃었다.“내가 너한테 빨리 떠나라고 진작 얘기했었지? 내 말 듣지 않고 기어코 있더니 꼴좋다. 인제 어때? 후회되지?”“난 독을 쓴 범인이 아니에요.”유진우는 상황을 설명하려 했다.“범인이 옳든 아니든 그게 중요해? 내가 너라고 하면 너인 거야!”조준서가 싸늘하게 웃었다.“그러니까 지금 당신이 날 모함하고 있다는 거죠?”유진우가 눈살을 찌푸렸다. 의심을 당하는 건 당하는 거고 모함은 또 다른 일이었다.“그렇다면 뭐?”조준서가 조롱 섞인 얼굴로 말을 이었다.“아무튼 사람들은 해명이 필요할 뿐이야. 다들 네가 범인이길 기대하는 눈치던데? 어때? 화나고 답답하지? 그렇다고 해도 뭘 어쩔 수 있을 것 같아? 이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권력이 있어야 해. 너 같은 천민은 희생양이 되기 참 쉬워. 그러니까 그냥 인정해!”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소리를 질렀다.“이 자식을 잡아들여서 모질게 고문해. 감히 반항한다면 죽여도 좋다!”“네!”그의 명령에 조씨 가문 경호원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꺼져!”유진우가 몸을 파르르 떨며 무서운 기운을 내뿜자 사람들이 순식간에 튕겨 나갔다.“감히 반항해? 역시 도둑이 제 발 저린 거 맞네! 경
눈도 감지 못하고 죽은 조준서를 본 순간 사람들은 저마다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다들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유진우가 이렇게도 배짱이 있고 조금만 거슬려도 사람을 죽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간결하고 거칠고 잔인했으며 심지어 흥정할 여지조차 없었다.인질을 잡았으면 먼저 협상부터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한마디 말도 없이 다짜고짜 사람을 죽이는 건 또 처음이었다. 그야말로 예측 불허였다.“망했어, 망했어. 완전히 망했어.”조아영은 이마를 짚으며 두 눈을 감았다.조금 전까지 단지 의심이었다면 이젠 사실이 어떻든 유진우가 범인이라는 게 명확해질 판이었다. 지금부터 유진우는 조씨 가문의 공공의 적이 될 것이다!잠깐의 침묵 후, 현장이 발칵 뒤집혔다.“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감히 대놓고 사람을 죽여? 오늘이 네 제삿날이 될 거야!”“젠장, 저 자식 미친 거 아니야? 조씨 가문의 구역에서 이 집 자제를 죽여? 아주 미쳐 날뛰는 놈이야!”“조씨 가문에 대놓고 도전장을 내미는 사람은 처음이야.”유진우의 행동에 현장 전체가 떠들썩해졌다. 어떤 사람은 충격의 도가니에 빠졌고 어떤 사람은 분노했으며 또 어떤 사람은 유진우를 몰래 존경하기도 했다.“이 짐승만도 못한 놈아!”아들의 시체를 본 조군해는 화를 못 이겨 피를 토하며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감히 내 조카를 죽여? 널 갈기갈기 찢어 죽일 것이야!”넋을 잃은 것도 잠시, 조군표가 분노를 터트리며 소리를 질렀다.“가만히 서서 뭐 해? 당장 저놈을 죽여!”“멈춰! 다들 멈춰요!”조금 전 강제로 끌려갔던 조선미가 다시 돌아왔다. 그녀는 인파 속을 뚫고 유진우 앞을 막아서며 그들과 대응했다.“조선미,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설마 아직도 저 범인을 감싸고 도는 거야?”조군표가 노발대발했다.“선미야, 얼른 비켜! 저 사람 이미 미쳤어!”진서현이 황급히 소리를 질렀다.“아까 상황 제가 다 봤어요. 당신들이 너무 몰아붙이지만 않았어도 진우 씨는 절대 이런 짓을 하지 않았
“여러분, 지금 여러분들이 절 원망하는 건 알겠지만 제 말 좀 들어보시겠어요?”유진우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말했다.“일단 제 얘기를 들은 후에 죽이든 말든 마음대로 하세요. 그땐 절대 반항하지 않겠습니다.”“흥! 죽을 때가 됐는데도 아직도 변명하려고?”조군표가 두 눈을 부릅떴다.“당신들이 믿든 말든 전 얘기할 겁니다. 조준서는 죽어도 싼 인간이에요. 왜냐하면 독을 쓴 진짜 범인이 조준서거든요!”유진우가 생각지도 못한 한마디를 내뱉었다.“헛소리!”조군표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준서는 우리 조씨 가문의 자제인데 왜 가족들한테 독을 쓰겠어? 지금 이런 식으로 남한테 죄를 뒤집어씌우려고?”“그러니까 말이야! 이야기를 꾸며내고 싶으면 그럴싸한 이유를 대야지. 조준서가 범인이라는 소리를 누가 믿어?”사람들은 코웃음을 치며 유진우를 아니꼽게 쳐다보았다. 만약 조선미가 그의 앞을 가로막지 않았더라면 아마 진작 손찌검까지 했을 것이다.“준서가 범인이라고요? 증거 있어요?”그때 줄곧 옆에서 아무 말이 없던 조군수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진실이 드러나기 전까지는 아무도 믿지 않았다.“일단 전 조씨 가문과 아무런 원한이 없어요. 그러니 독을 써서 조씨 가문 사람을 죽일 이유가 없죠.”유진우는 계속하여 말을 이었다.“그리고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배후의 진짜 범인은 블랙지존입니다. 하지만 조준서는 해독한 후에도 블랙지존을 탓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절 의심했죠. 심지어 각종 이유와 핑계로 절 모함하고 누명을 씌우려고 했어요. 동기가 아주 불순하고 음험한 사람이에요. 하여 저는 조준서가 블랙지존의 사람이라고 의심했어요. 제가 여러분들을 해독하여 살려줬기 때문에 절 눈엣가시로 여겨서 빨리 없애려고 한 거예요!”그의 말이 끝나자 시끌벅적하던 주변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어떤 사람은 생각에 잠긴 얼굴로 진실이 무엇인지 판단하기 시작했다. 제각기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던 사람들도 유진우의 말을 듣고는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흥! 아주 그럴듯하게
“정말 터무니없는 소리만 하는구나!”“당신이 준서를 죽이기 전까지 준서는 아주 생기 있고 팔팔했어. 우리가 똑똑히 봤는데 이제 와서 그게 시체라고? 정말 황당무계하기 짝이 없네!”조군표는 너무도 화가 난 나머지 눈앞의 유진우를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 싶은 심정이었다.“흥, 지금 우릴 바보로 보는 거야? 우리가 그딴 헛소리를 믿을 것 같아?”“맞아! 조준서를 죽인 사람은 분명 당신이야. 우리가 증명할 수 있어!”사람들은 저마다 분노를 터트렸고 의심의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사람을 죽이고도 인정하기는커녕 저런 어처구니없는 핑계를 대? 정말 우리를 세 살짜리 애로 보는 거야?’“젊은이, 지금 본인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기나 해요?”그때 조군수마저도 눈살을 찌푸렸다. 유진우에게 설명할 기회를 주었지만 내뱉는 말마다 황당무계하기만 했다.“다들 믿지 못한다는 거 알지만 저한테 증거가 있어요.”유진우는 조준서의 시체 앞으로 다가가 웃옷을 확 벗겼다. 곧이어 검붉은 반점이 사람들 앞에 드러났다.“봤죠? 이게 바로 시반이에요.”유진우의 말에 사람들은 다시 한번 충격의 도가니에 빠졌다.“시반?”사람들은 서로 얼굴을 멀뚱멀뚱 쳐다보면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한편으로는 유진우의 말에 놀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시반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의심했다.“흥, 당신이 시반이라면 시반이야? 만약 그냥 일반적인 멍이면 어떡하려고?”조군표는 눈살을 찌푸리며 여전히 믿지 않는 눈치였다.“제... 제가 증명할 수 있어요. 이건 확실히 시반이에요!”그때 안경을 낀 한 남자가 갑자기 걸어 나와 놀란 얼굴로 말했다.“예전에 법의관을 한 적이 있어서 시반에 대해 잘 알아요. 시반의 흔적을 놓고 볼 때 조준서 씨는 적어도 죽은 지 12시간이 넘었습니다.”그의 말에 사람들의 낯빛이 확 변했다.“말도 안 돼요. 아까까지 멀쩡하게 살아있었잖아요. 우리가 다 똑똑히 봤고요!”“맞아요!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봤는데 가짜라고요?”충격에 빠진 동시에 많은 이들이 질문을 던졌다. 왜
조군표는 그제야 넋이 나간 표정을 지었고 이 상황이 믿어지지 않았다. 이렇게 괴이한 장면은 살면서 처음이었다.“블랙지존! 블랙지존의 짓이 분명합니다!”그때 조씨 가문의 한 자제가 목청 높이 소리쳤다. 일정 기간마다 가문 중에 갑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이 있긴 했지만 오늘처럼 이렇게 소름 끼칠 정도로 섬뜩하진 않았다.“정말 잔인한 사람이야!”조군수의 낯빛이 말이 아니게 어두워졌다.먼저 조준서를 죽이고 주술로 시체를 조종한 다음 조씨 가문 사람들에게 독을 썼다. 이런 잔인하고 음험한 수단을 지닌 사람은 블랙지존 말고 아무도 없다.“이제 제 말 믿으시겠죠?”유진우가 타이밍을 맞춰 입을 열었다.“그게...”조군표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받아들이기 어려웠지만 사실이 눈앞에 펼쳐져 있어 믿지 않으려야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아빠! 진실이 드러났으니 이젠 경호원들을 전부 물러가게 해요.”조선미가 귀띔했다.“다들 물러가.”조군수는 손을 흔들며 경호원들을 물러가게 했다.“셋째야, 나한테 아들이 하나밖에 없는데 절대 준서의 죽음이 헛되게 해서는 안 돼!”조군해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처참하게 울부짖었다.“큰형님! 이 일은 유진우 씨와 아무런 연관이 없어요. 우리가 복수해야 하는 사람은 블랙지존이라고요!”조군수가 진지하게 말했다.“하지만...”조군해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이 결과를 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큰형님, 걱정하지 마세요. 준서의 죽음이 헛되게 하지 않을게요. 블랙지존을 반드시 잡아내서 준서의 복수를 할 겁니다!”조군수가 그에게 약속했다.“아이고... 가여운 내 아들아!”조군해는 마음 아파하며 눈물을 왈칵 쏟았다. 조군수는 한숨을 내쉬더니 그의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했다. 그러고는 유진우를 보며 모든 이들이 궁금해하는 질문을 던졌다.“진우 씨는 어떻게 알았어요?”“어제부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확신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오늘 가까이에서 보니까 조준서의 안색에 핏기가 없고 사지도 굳은 데다가 시체 썩은 냄새
“배후 세력이요?”그 순간 사람들의 시선이 전부 젊은 여자에게 쏠렸다.만약 조금 전이었더라면 유진우가 이런 얘기를 해도 아무도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코웃음까지 쳤을 테지만 이젠 신중하게 판단하기 시작했다. 시체마저 멀쩡하게 뛰어다니는데 불가능한 일이 뭐가 있겠는가?“명의님, 전 명의님을 건드린 적도 없는데 왜 절 모함하는 겁니까?”젊은 여자의 안색이 별로 좋지 않았다.“진우 씨, 증거도 없으면서 그런 소리를 함부로 해서는 안 됩니다.”조군수가 진지하게 경고했다. 큰형이 방금 아들을 잃은 아픔을 겪었는데 아내까지 내부의 적으로 몰릴 판이다. 이건 큰형을 두 번 울리는 거나 다름없었다.“맞아! 이 일이 큰형수님과 연관 있다는 증거 있어?”조군표가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제가 이런 소리를 했다는 건 그만큼 확신이 있다는 거예요.”유진우의 시선이 젊은 여자에게로 향했다.“저 여자한테서도 조준서의 시체에서 나는 냄새와 똑같은 냄새가 나요. 게다가 더 짙어요. 다들 한번 맡아보세요.”젊은 여자와 가까이 있던 사람들이 다가가 맡아보더니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맞아요! 확실히 특이한 향기가 나요. 조준서한테서 풍기는 거랑 같은 향이에요!”그러자 많은 이들의 얼굴색이 확 변했고 젊은 여자를 쳐다보는 눈빛에도 경계심이 묻어있었다.“전 줄곧 제가 직접 만든 향수만 써왔어요. 준서는 제 아들인데 몸에 제 향기가 밴 게 뭐가 문제 있나요?”젊은 여자는 논리 있게 따졌다.“향은 그저 의심일 뿐이지, 증거가 아니라서 뭘 증명할 수 없어요.”조군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향으로 한 사람의 죄를 단정 짓기에는 증거가 부족했다.“당연히 몸에서 풍기는 향만이 아니죠.”유진우는 젊은 여자 옆으로 다가가 빙 둘러보며 말했다.“사실 주술에 능한 사람은 몸에 특징이 있거든요. 피로 독충을 키우다 보니 시간이 오래 지나면 몸에 변화가 생겨요.”“무슨 변화요?”조군수가 캐물었다.“정상인의 피는 빨간색이지만 주술사의 피는 검은색이고 독성이 있어요.
그가 반응하기도 전에 날카로운 비수 하나가 그의 목에 겨눠졌다. 비수가 검은빛을 띠는 걸 봐서 독이 묻어있는 게 분명했다.“유라야, 대체 왜 이래?”조군해는 당황한 나머지 어쩔 줄을 몰랐다. 함께 잠을 자던 여자가 자신에게 칼을 겨눌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그렇게 부르지 마. 당신네 유라는 며칠 전에 이미 죽었어.”젊은 여자가 씩 웃었다.“유라가 아니라고? 너 대체 누구야?”조군해가 얼굴을 찡그렸다.“블랙지존은 내 사부님이셔. 그럼 내가 누구겠어?”젊은 여자는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았다.“블랙지존의 제자라고?”조군수의 얼굴에 근심이 가득 어렸다. 그렇게 경계했지만 결국 내부의 적은 막지 못했다. 블랙지존의 사람이 조씨 가문 내부까지 침입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역시 당신이었어! 여봐라! 당장 이 여자를 잡아들여!”조군표는 두말없이 바로 명을 내렸다.“멈춰!”젊은 여자는 비수를 살짝 들며 협박했다.“지금 이 칼에 독이 묻어있어니 피부에 살짝만 상처가 나도 당신네 큰형님은 죽어. 그러니까 함부로 덤비지 않는 게 좋을 거야.”그녀의 말에 사람들은 더는 앞으로 나서지 못하고 발걸음을 멈추었다.“우리 큰형님을 풀어줘. 그러면 목숨은 살려줄게!”조군수가 서늘한 목소리로 호통쳤다.“하하... 내가 그 말을 믿을 것 같아?”젊은 여자는 조군해를 인질로 삼은 채 문 쪽으로 뒷걸음질 쳤다.“당신들은 운도 참 좋아. 오늘 원래 전부 멸할 수 있었는데 귀인이 나타나서 당신들을 도왔어.”“쓸데없는 소리 집어치우고 얼른 형님이나 풀어줘. 안 그러면 오늘 이 대문을 한 발짝도 못 나가!”조군표가 서슬푸르게 몰아붙였다.“당신들처럼 무능한 인간들이 날 막을 수 있을 것 같아? 하지만 오늘은 여기까지야. 다음날에 천천히 놀아줄게.”젊은 여자는 문 앞으로 다가가더니 갑자기 유진우를 보며 요염하게 웃었다.“명의님, 약속 잊지 말아요. 이제 시간 될 때 내 방에 와서 천천히 밀담이나 나눠요. 오늘은 여기까지, 나중에 또 봐요.”그러더니 동그란 물건
한참 동안 사람들은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 놀라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비록 유만수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몇 년은 더 버틸 수 있을 거로 생각했고 무엇보다 이제 겨우 내우외환을 해결했는데, 유만수가 자리를 넘겨준다고 하니 사람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여보, 너무 성급한 거 아닌가요?”옆에 있던 이의진이 권유했다.“그러니까요. 위왕 님, 아직 몸도 정정하시고 지금은 백세시대인데 어찌 이렇게 일찍 자리를 넘겨줄 생각을 하십니까?”장범규는 정직하고 솔직하게 물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묻고 싶었지만, 감히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만약 누군가 나서서 유만수를 설득한다면 새로운 위왕 님의 미움을 살 수도 있으니, 머리가 잘 돌아가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조용하게 상황을 살필 수밖에 없었다.“여러분, 제 몸은 제가 잘 압니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마침 여러분들이 모두 있는 자리에서 후사를 미리 안배하는 것도 제 소원을 이루는 셈입니다.”유만수는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여보...”이의진이 뭔가를 말하려는데 유만수가 손을 들어 제재하며 말했다.“그만. 난 이미 결정했으니 더 이상 설득할 필요 없어.”유만수는 다시 모든 사람을 향해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여러분, 저의 자리를 대신할 사람을 선정하는 건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그 사람의 손에 미래 서경의 흥망성쇠가 달려 있습니다. 그러니 이 일은 저 혼자 결정을 내릴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의 생각에는 누가 미래의 서경을 맡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까?”“그건...”유만수의 말에 사람들은 더욱 당황했다. 형세를 보아하니 유만수는 내부 투표를 통해 지지자가 많은 사람한테 서경을 맡길 생각인 것 같았다.그러니 문제는 유진우를 선택할 것인가 유천우를 선택한 것인가였다.재능과 능력 면에서 보면 당연히 유진우가 한 수 위이지만 집안 내력과 배후 세력으로 판단하면 유천우가 한 수 위였다.유천우는 최근 몇 년 동안 전쟁에서 매우 좋은 성과를 거두었고 미래가 기대된다는
보물 지도를 나눈 뒤 유진우는 사람을 안배해 호룡각의 기지를 다시 한번 정리했다. 이곳은 위치가 은밀하여 수비는 쉬우나 공격하기는 아주 어려웠고 또한 두 나라의 국경 지대에 놓여있었다.그러니 이곳을 군사 요새로 만드는 건 어렵지 않았다.만약 앞으로 서방 제국과 충돌이 생긴다면 이곳이 중요 군사 지점이 될 것이고 여기서 출병한다면 반드시 예상치 못한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지금 당장은 쓸모가 없겠지만 미리 준비해 둔다면 필요할 때가 있을 것이다.해당 건을 해결한 뒤 유진우는 사람들을 데리고 서경왕부로 돌아갔다.이번에 유진우가 서경의 복병을 해결하고 대승을 거두었기에 유만수는 서경의 왕으로서 특별히 부내에서 연회를 열어 많은 손님을 초대했다.이번 사건에 공로가 있는 사람들은 모두 초청 명단에 포함되어 있었다.한동안 왕부 안팎은 매우 시끌벅적했다.유만수가 죽지 않았다는 사실은 모든 사람한테 매우 기쁜 소식이었고 호룡각을 멸한 건 더욱 기쁜 일이니 축하할 이유가 충분했다.밤이 되자 왕부 안은 이미 많은 사람으로 가득 찼다. 서경에 있는 모든 사람이 거의 다 모인 것 같았다.각 고급 장교, 각 고위 간부, 그리고 각 방면의 거물들이 모두 왕부에 모여 술을 마시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눴다.“여러분, 후배인 제가 먼저 몇 마디 하겠습니다.”연회에서 유천우는 먼저 일어나 손에 잔을 들고 큰 소리로 말했다.“이번에 왕부가 위기를 맞았었지만, 여러분은 떠나지 않고 앞다투어 왕부의 근심과 어려움을 해결해 주어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자, 제가 먼저 여러분께 한 잔 올리겠습니다.”말을 마친 유천우는 고개를 번쩍 들고 잔에 든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도련님이 너무 겸손하네. 우리는 서경의 신하로서 당연히 왕부와 함께해야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지 별거 아니야.”평양 제후 장범규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맞는 말이야. 오랜 시간을 위왕 님과 함께 보냈고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늘 같이했으니, 왕부가 곤경에 처했다면 당연히 전폭적으로 도와야지. 나라를 위해서
“맞아요. 길이라는 건 한번 잘못 들어서면 다시 돌아오기 힘들죠. 사철수의 모든 행동은 좋은 결과를 맞이할 수가 없어요. 누구처럼 죄를 공으로 대처할 기회조차 없죠.”유천우는 유태범을 의미심장하게 바라보며 말했다.만약 유태범이 셋째 삼촌이 아니고 아버지의 인자함이 없었다면, 그뿐만 아니라 형제의 상잔을 원하지 않았고 손실이 크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역모는 열 번 죽어도 모자란 죄였다.“흠 흠.”유천우의 눈빛에 유태범은 괜히 마음에 찔려 화제를 돌렸다.“장혁아, 세 개의 보물 창고를 모두 합치면 가치가 엄청날 텐데 어떻게 처리할 생각이야?”“당연히 전부 서경으로 가져가야죠. 설마 그 잡놈들한테 남겨두기라도 하겠다는 거예요?”유천우는 눈을 흘기며 말했다.“세 개의 보물 창고를 우리가 전부 독차지할 수는 없어.”유진우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우리만의 힘으로 호룡각을 멸망시킨 건 아니잖아.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야. 그러니 보물 창고도 공평하게 함께 나눠야지.”“공평하게 나눈다고? 장혁아, 장난이지?”유태범은 어리둥절해서 격분한 목소리로 말했다.“너도 방금 사철수의 말을 들었잖아. 호룡각의 보물 창고는 수십 년 동안 축적해 온 것들이고 그 수가 엄청날 텐데, 그걸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나눈다고?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이번에 호룡각을 소탕하는 데 유태범은 뛰어난 공을 세웠으니, 나중에 또 다른 표창을 받을 수도 있었다.다시 말해, 서경왕부가 더 많은 보물을 얻어야만 유태범의 이익도 더 많아지기 때문에 그는 당연히 보물을 나누고 싶지 않았다.“보물도 좋지만, 도의도 지켜야죠. 사람들이 멀리서 우리를 도와주러 왔는데, 우리가 보물을 독차지한다면 그건 배은망덕한 사람이죠.”유진우는 담담하게 말했다.“그건 그렇지만 굳이 똑같이 나눌 필요는 없잖아. 적당하게 성의를 보여주면 되는 거지.”유태범이 말했다.“저는 이미 마음먹었어요. 제 결정이 불만스럽다면 유만수에게 일러바쳐서 그가 어떤 선택을 할지
“사철수 씨, 아직도 멍하니 서서 뭐 하는 거예요? 사진이라도 찍어줘요? 빨리 보물 지도를 찾아내세요.”불만으로 꼴 독 찼던 유태범은 못마땅한 얼굴로 사철수에게 화풀이했다.“알겠어요. 서두를게요.”유태범의 말에 사철수는 즉시 합금으로 되어 있는 대문 앞으로 다가가 채원진의 부러진 손을 들어 중간 부분에 있는 감응 위치를 살짝 눌렀다.띵 하는 소리와 함께 두터운 대문이 천천히 안쪽으로 열리자, 금속으로 만든 금고가 드러났다.금고는 약 33제곱미터 정도의 크기였고 한가운데에는 골드바가 사람의 키보다 더 높게 쌓여 있었다.골드바 외에도 그 주변에는 다양하면서도 진기한 보물들이 빽빽하게 배치되어 있었는데 하나같이 비싸고 귀중한 물건들이었다.“이곳은 채원진의 개인 금고예요. 채원진은 마음에 드는 모든 물건을 전부 이곳에 수집했어요.”사철수가 설명했다.“보물들이 어마어마하네요.”유천우는 사방을 둘러보며 감탄했다.“이것들을 전부 가지고 나가면 성을 하나 사고도 남겠네요.”“이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호룡각의 다른 세 보물 창고에 비하면 눈앞에 있는 것들은 새 발의 피죠.”사철수가 설명했다.“정말이에요?”유천우는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당신 말대로라면 호룡각의 보물을 전부 모으면 산더미가 되겠는데요?”“제가 직접 본건 아니지만 수십 년 동안 쌓아왔으니, 산더미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거예요.”사철수는 진지하게 말했다.“좋아요. 아주 좋아요! 빨리 모든 보물을 긁어모으고 싶네요.”유천우는 정신이 번쩍 들어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보물 지도는 도대체 어디 있는 거예요?”유태범은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여기 있어요.”사철수는 맨 안쪽 선반으로 가서 위에 놓여있는 정교한 박달나무 상자를 꺼내 조심스럽게 유진우에게 건넸다.유진우가 열어보니 안에는 양피지 3장이 들어있었다. 모든 양피지에는 상세한 지도가 그려져 있었고 지도 중앙에는 보물 창고의 위치가 금색으로 표시되어 있었다.보물 지도가 진짜라면, 지도에 그려져 있는
“보물 지도는 어디 있나요?”유진우가 추궁했다.“채원진의 지하 밀실에 있어요. 내가 직접 세자 전하를 모시지요.”사철수가 말했다.“지하 밀실?”유천우는 실눈을 뜨고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혹시 속으로 다른 꿍꿍이를 꾸미는 건 아니죠? 나중에 나를 악랄하다고 탓하기 싫으면 그런 생각은 빨리 접는 게 좋을 거예요.”밀실 같은 건물에는 함정과 암기가 많이 설치되어 있는데 유천우는 사철수가 다른 속셈이 있는 건 아닐까 걱정스러웠다.“저는 이미 독 안에 든 쥐가 아닙니까. 절대 그럴 일 없습니다.”사철수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앞서서 안내하세요.”유진우가 두 근위병에게 눈치를 주자 근위병 두 명이 와서 사철수를 일으켜 세웠다.“잠깐만요. 밀실에 있는 보물 상자를 열려면 채원진의 손이 필요해요.”사철수가 갑자기 말했다.“그건 쉽죠.”유천우는 즉시 칼을 빼 들어 채원진의 오른손을 잘라 사철수에게 건네며 말했다.“자. 선물이에요.”사철수는 징그러웠지만 아무 말도 못 하고 채원진의 손을 받아 들고 앞장섰다.유진우와 몇몇 사람은 사철수를 따라 기지로 들어갔고 마침내 지휘실 입구까지 도착했다.사철수는 문을 열고 벽 쪽으로 다가간 다음 벽에 걸려 있는 그림 하나를 떼어냈다.그림 뒤에는 자세히 보지 않으면 전혀 알아차리기 어려운 하나의 버튼이 있었다.사철수가 손을 내밀어 버튼을 누르자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벽 전체가 갑자기 양쪽으로 열리더니 안에 있던 엘리베이터가 드러났다.사철수가 유진우를 포함한 몇 명을 데리고 엘리베이터로 올라탄 뒤 스위치를 누르자 문이 닫히더니 천천히 지하로 내려갔다.반 시간 남짓 지나자 쿵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멈췄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유진우와 몇 명 사람들의 눈에는 넓고 호화로운 지하 밀실이 들어왔다.말이 밀실이지 사실 호화 저택에 가까웠다. 안에는 없는 것 없이 다양한 생활 시설이 모두 갖춰져 있었고, 많은 물과 식량도 수집되어 있었는데 수십 년 동안 혼자 생활하기에는 충분한 수량이었다.“핵 방지
“유진우?”무릎을 꿇은 채 냉정한 표정을 한 유진우를 바라보는 사철수의 얼굴은 매우 복잡해 보였다. 놀라움과 기쁨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미안함과 죄책감이 더욱 컸다.흑용군이 매복되어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사철수는 이미 호룡각의 대세가 기울었음을 알아차렸다.아니나 다를까 호룡각의 기지는 파괴되었고 채원진은 목숨을 잃었으며 사철수는 유진우한테 체포되었다. 하지만 사철수는 어쩌면 이게 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비록 사철수가 호룡각의 사람이긴 했지만, 서경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고 서경은 이미 사철수한테는 고향 같은 곳이었고 주변에 가족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아주 많았다.사철수가 저질렀던 많은 일들은 어쩔 수 없이 억지로 했던 거라 마음이 늘 불편했었다.오늘,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도 모두 사철수의 업보였고 그가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이였다.“아저씨,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죠? 채원진이 패했으니, 당신도 패한 것과 마찬가지예요. 이제 와서 더 할말이 남았나요?”유진우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이기면 영웅이고 지면 도적이 되는 법이지요. 세자 전하께서 죽이시든 벌을 주든 저는 다 괜찮습니다. 다만 무고한 사람에게 해를 가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사철수는 간절한 마음으로 간청했다.“당신이 지금 나한테 그런 조건을 내세울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세요?”유진우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세자 전하, 죄인인 저는 죽어도 마땅합니다. 하지만 제 아내와 딸은 죄가 없지 않습니까? 그들은 용서해 주십시오.”사철수는 허리를 굽혀 땅바닥에 머리를 세게 박으며 유진우에게 절을 올렸다.“당신 말대로 그들은 아무 짓도 하지 않았죠. 하지만 못난 남편과 아비 때문에 그들도 죄인이 된 겁니다. 설마 당신은 어리석게도 그렇게 큰 죄를 지어 놓고 가족은 아무 일 없이 무사할 거로 생각한 겁니까?”유진우는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세자 전하, 공을 세우는 거로 저의 죄를 보상하면 안 될까요? 세자 전하께서 소가 되라면 소가 될 것이고 말이 되라면 말이 될 것입니다.
바로 이때 조무진이 앞을 가리키며 말했다. 조무진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눈길을 돌리자 완전 무장을 한 군부가 보였는데 족히 수만 명은 되는 것 같았다.검은 갑옷을 입고 긴 칼을 허리에 찬 병사들은 기세가 매우 위풍당당했다.얼핏 보면 마치 강철로 되어 있는 호수 같았는데 멀리서부터 강한 압박감을 주는 이 부대는 바로 서경의 최강 정예 부대 흑용군이었다.“보아하니 사철수는 이미 체포된 것 같네요.”이청성은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이 흥용군의 리더는 바로 유천우였다.당시 유천우는 명령에 따라 천여 명의 군대를 이끌고 포위망을 뚫고 들어가 호룡각의 정예 부대를 미리 파놓은 함정에 빠지게 만든 뒤 절대적인 병력 우세로 오천여 명의 적을 죽이고 나머지는 모두 포로로 체포했다.쿵 쿵 쿵!수만 명의 흑용군이 가까워질수록 그 압박감은 점점 더 강해졌다. 성벽 위에 있던 백호군들도 겁에 질려 얼굴이 창백해졌다.소문에 의하면 흑용군은 용국의 최강 군부로서 창시 이래 백전백승을 이뤘고 여러 차례 뛰어난 공을 세웠으며 어떠한 군부도 흑용군과 정면으로 맞서 싸울 수 없다고 했다.이렇게 직접 눈으로 보니 그 소문은 거짓이 아닌듯했다. 흑용군의 강렬함과 살벌함은 충분히 다른 군부를 경시할 만했다.“형! 임무를 완성했어요. 호룡각의 남은 사람은 한 명도 빠짐없이 전부 잡아들였어요.”유천우가 먼저 앞으로 다가와 보고했다.“잘했어.”유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이쪽은 어떻게 됐어요? 채원진은 죽었어요?”유천우는 여기저기 둘러보며 말했다.“머리가 잘렸는데 살아있을 리가 없잖아?”조무진은 발로 채원진의 머리를 슬쩍 건드리며 말했다.채원진의 머리는 축구공처럼 땅바닥에서 굴러 유천우의 발밑에 멈추었다.“뭐야! 이렇게 못생겼다고? 어쩐지 맨날 가면을 쓰고 다니더라니.”유천우는 바닥에 침을 뱉었다. 자신의 아버지를 암살하고 서경을 해친 놈을 미워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채원진은 이미 죽었고 밑에 있던 정예들은 모두 체포되었으니, 호룡각은 이제 완전히 멸망한 셈이에요.
채원진은 죽고 호룡각 기지는 함락되었다. 이로써 호룡각은 조직 전체가 완전히 멸망했고 남은 사람이라고는 흩어져 있는 병사들뿐이라 크게 위험이 되지는 않았다.하지만 유진우는 방심하지 않고 호룡각이 관련된 모든 사람은 전부 체포하라고 명을 내렸다. 만약 그들이 자진해서 항복한다면 죽음을 면할 수 있지만 끝까지 저항한다면 남은길은 죽음뿐이었다.“형, 드디어 이 재앙 같았던 놈을 처리했네. 축하해!”조무진은 앞으로 걸어가 채원진의 시신을 발로 차 완전히 숨이 끊어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미소를 지었다.“다 네 덕분이야. 네가 20만 명의 백호군을 데리고 채원진의 퇴로를 끊어놓지 않았다면 채원진은 또 다른 기회를 찾아 연명했을지도 몰라.”유진우가 말했다. 그는 채원진을 죽이기 위해 모든 방법을 다 동원했고 심지어 자신의 목숨까지 걸었다. 결국 채원진은 죽었고 그는 승리했다.“난 별로 한 게 없어. 고마워할 거면 공주마마께 고마워해야지.”조무진은 고개를 돌려 뒤에 서있는 이청성을 보며 미소를 짓고 말했다.“공주마마께서 형을 돕는다고 엄청 바쁘셨어. 한순간도 긴장을 놓지 않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독촉하느라 발등에 불이 붙을 뻔했다니까.”“조무진 씨! 지금 무슨 말 하는 거예요?”이청성은 앞으로 걸어 나오며 퉁명스러운 말투로 말했다.“별거 아니에요. 공주마마께서 학식과 도리가 깊고 외모와 지혜가 뛰어나다고 칭찬하고 있었어요.”조무진은 아첨하며 웃음을 지었다.“흥! 말은 번지르르하게 잘하네요.”이청성은 조무진을 흘겨보며 말했다.“공주마마, 감사합니다.”유진우는 공수하며 말했다.“뭘 그렇게 예의를 갖춰요? 도와주기로 했으니까, 끝까지 도와줬을 뿐이에요.”이청성은 조용한 어조로 말했다.“게다가 채원진은 우리 공공의 적이잖아요. 유진우 씨뿐만 아니라 나를 위한 일이기도 해요. 전체적으로 보면 백성을 위해 나쁜 놈을 제거 한 거죠.”“공주마마의 대의가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유진우가 웃으며 말했다.“이 얘기는 그만하죠. 비록 채원진이 죽었다고 하
반면 채원진은 피를 토하며 그 자리에서 십여 미터나 날아가 끊임없이 피를 토했다. 팔 전체가 파열되었고 용담적염창도 튕겨 나갔으며 온몸이 너덜너덜해진 채 바닥에 누워 거의 죽어가고 있었다.“도련님, 괜찮으십니까?”홍복홍은 재빨리 달려가 떨고 있는 유진우를 부축했다.“괜찮아요.”유진우는 몸에 기혈이 들끓고 팔이 저리고 검도 제대로 잡지 못할 것 같았다.비록 채원진이 중상을 입기는 했지만 방금 전력으로 내뿜은 일격은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힘이었고 결국 유진우도 피를 토하고 말았다.채원진의 몸에 있는 멸신독이 퍼지지 않았다면 오늘 그를 제압하지 못했을 것이다.“왜? 이럴 수 없어. 절대 이럴 수는 없어...”땅에 엎드려 맥 빠진 목소리로 으르렁거리는 채원진의 두 손은 긴 손가락 자국을 남긴 채 땅바닥에 푹 꺼져 있었다.안 그래도 흉측하던 얼굴이 더욱 흉측해 보였다.“남길 유언이라도 있나?”유진우는 창궁검을 손에 들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 채원진을 내려다보며 말했다.한 세대의 효웅이었던 채원진은 마치 죽음을 앞둔 늙은 개처럼 낭패와 처참함 그리고 빨리 죽기 위해 발악하는 듯한 모습도 보이는 것 같았다.“유진우! 이 비열한 새끼야! 네가 이런 모함을 꾸미지 않았다면 내가 패할 가능성은 절대 없었고 이 지경까지 되지도 않았을 거야. 인정 못 해. 죽어도 인정 못 해!”채원진은 미친 사람처럼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고함을 질렀다.그의 상대는 용국의 지존인 서경 왕 유만수처럼 천하를 뒤흔든 거물이었는데, 젖비린내 나는 아이들 몇 명에게 패했다는 사실을 채원진은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비열?”유진우는 콧방귀를 뀌고 말을 이었다.“이런 단어가 네 입에서 나오니까 정말 어이없구나. 사람을 시켜서 내 아버지를 암살하고 이간질로 삼촌을 유혹하여 반역을 도모해 서경을 혼란에 빠뜨리고. 네가 했던 일 중에 어느 하나 비열하지 않은 일이 없어. 죽을 때가 되니 이제 와서 도리를 따지는 거야? 쪽팔리지도 않아? 그리고 네가 인정하든 못하든 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