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오, 조씨 저택.유진우와 조아영이 조씨 가문에 도착했다.5대 가문으로서 조씨 가문의 저택은 매우 호화로웠다.내부에는 인공 호수, 암석정원, 농장, 와이너리가 있었고 금빛 찬란한 별장들이 줄지어 있었다.내부와 외부에는 수백 명의 경비원이 있었고 가정 도우미도 수십 명에 달했다.대 가문이라는 것이 어떤 건지 충분히 보여주었다.유진우는 정원의 풍경을 즐기며 내일 있을 조씨 가문의 연회에 대해 생각했다.“도착했어요.”그때 차가 별장 입구에 천천히 멈춰 섰다.두 사람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두 명의 하인과 함께 문 앞에 서서 기다리는 진서현을 보았다.“왔어요?”진서현은 유진우를 위아래로 살피더니 차갑게 말했다.“어제 남편이 무독에 걸렸다고 했는데 사실이에요?”“거짓말이었다면 저를 데려오시지 않았겠죠.”유진우가 대답했다.그 말에 진서현은 어쩔 수 없이 눈을 질끈 감았다.유진우의 말대로 조군수가 갑자기 이상한 병증으로 앓아누웠는데 가문의 의료진은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 따라서 하는 수 없이 유진우를 데려오게 되었다.“하나만 더 물어볼게요. 이 무독을 정말로 치료할 수 있어요?”진서현이 다시 물었다.“그건 환자의 상황을 정확히 봐야 얘기 드릴 수 있습니다만, 아직 초기라면 쉽게 치료가 되는데 심하면 힘들 수도 있습니다.”유진우는 가능성을 열어놓았다.“따라와요.”진서현은 살짝 미간을 찌푸린 채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돌아서서 앞장섰다.유진우와 조아영은 뒤를 따라 각종 의료기구가 가득한 병실로 들어갔다.병실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몇몇 의학 전문가들이 치료 방안을 연구하고 있었고 조군수는 침대에 의식을 잃은 채 누워 있었다.얼굴은 새까맣고 입술은 보라색으로 변해 있었는데 중독된 것이 분명했다.유진우는 병상으로 걸어가 조군수의 맥박을 짚어보고 눈과 입의 상황을 보더니 한 가지를 확신했다. 그건 바로 조군수의 무독이 아주 강하다는 것이다.“유진우 씨, 우리 아빠 어때요? 나을 수 있어요?”조아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쉽지는 않겠
“그럼 동의하는 건가요?”피터가 팔짱을 끼고 물었다.“물론이죠.”유진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렇게 자신감이 넘치시니, 능력이 어느 정도 되는지 보고 싶네요. 후회하지 않길 바랍니다.”“좋아요, 오늘 한의학과 우리 서양의학의 차이를 확실하게 보여주죠.”피터는 자신 있게 미소를 지으며 상자를 열어 초록색 물약 한 병을 꺼내 보이며 설명했다.“보셨죠? 이건 우리 의료진이 개발한 최신 해독제인데, 이걸 먹으면 30분 안에 깨어날 수 있어요.”“행운을 빕니다.”유진우는 한마디만 했다.“눈을 크게 뜨고 과학의 힘이 무엇인지 지켜봐요!”피터는 초록색 물약을 주사기로 조군수의 몸에 조금씩 밀어 넣었다.10분 후.의식을 잃고 있던 조군수가 갑자기 반응을 보였다.이마에서 먼저 땀이 나기 시작하더니 팔다리에도 서서히 온기가 돌기 시작했고 어두웠던 얼굴도 조금씩 정상을 되찾아 가고 있었다.확실히 좋아지는 것 같았다.“효과가 있어요.”이 모습을 본 진서현과 조아영은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최고의 외국 의대 교수에 걸맞게 간단한 주사 한 방으로 기적 같은 효과가 발생했다.“유진우, 봤어? 이게 바로 피터 선생님의 실력이야! 주사 한 방으로 모든 희귀병을 치료하시지!”조준서가 웃었다.“그냥 표면적인 것뿐이에요.”유진우가 무표정으로 한마디 했다.“흥! 아직도 그렇게 버티고 싶어?”조준서는 경멸하는 표정을 지었다.“서양의학은 과학입니다. 당신들 한의학은 귀신 놀음에 불과한데 어찌 우리 서양의학과 비교할 수 있겠어요?”피터는 잘난 체하며 웃었다.“피터 선생님 정말 대단하십니다!”진서현이 고마움을 표했다.“제수씨, 어때요? 제가 잘 모셔 왔죠?”조군해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큰아주버님, 고마워요. 때마침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진서현은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가족인데 당연히 해야죠.”조군해는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내일이면 가족 대 모임인데 군수가 족장으로서 모임에 참석해야지 않겠어요.”“알겠습니다.”진서현은 연신 고
진서현의 얼굴은 극도로 흉측해졌다.“정말 이상하네요! 저희가 개발한 해독제는 여러 가지로 충분히 검증되어서 실패할 리가 없는데요?”피터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그럼, 이제 어떡해요?”진서현이 얼굴을 찡그렸다.“여긴 환경이 열악해서 저도 더 좋은 해결책이 없습니다.”피터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그러니까 지금까지 아무 소용도 없었다는 거네요?”진서현의 안색이 어두워졌다.구세주인 줄 알았는데 결국에는 돌팔이였다.“피터 선생님, 다른 방법 생각해 보세요.”조준서는 물러서려고 하지 않았다.“소용없어요, 이 나라의 의료 환경이 너무 열악해서 안 돼요. 우리나라에서만 치료가 가능해요.”피터는 고개를 저었다.그의 말 속에는 자기들 대국에 대한 우월감이 담겨 있었다.“능력이 안 되면 그냥 인정하시죠? 장비가 열악하고 조건이 안 좋다고 탓하지 마시고요.”유진우가 냉정하게 말했다.“흥! 나도 고칠 수 없는 것을 그쪽이 할 수 있다고요?”피터의 얼굴이 차가워졌다.“이게 바로 서양의학과 한의학의 차이예요. 당신들은 여러 가지 장비가 필요하겠지만 우리 한의학은 두 손과 은침이면 되거든요.”유진우는 담담하게 말했다.“말도 안 돼요! 당신이 무슨 신이라도 돼요?”피터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의학 최고성지에서 온 그는 유진우를 사기꾼으로 생각했다.“당신네 신이 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할 수 있어요.”유진우가 말했다.“좋아요! 어디 한번 해봐요.”피터는 약간 짜증이 났다.“큰소리만 치지 말고 우리 삼촌부터 살려봐!”조준서도 한마디 했다.“좋아요, 오늘 한의학의 진가를 제대로 보여줄게요.”유진우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조군수의 옷을 벗기고 침착하게 은침을 꺼냈다.조군수를 관찰하더니 순식간에 은침을 십여 개의 혈점에 찔렀는데 모두 허리와 복부 사이에 집중되어 있었다.그는 손가락으로 은침을 튕겼다.“띵!”은침 수십 개가 갑자기 격렬하게 진동하더니 은침이 찔린 부위를 따라 검은 피가 천천히 흘러나왔다.검은
조군수가 깨어났다.검은 피를 뱉어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신을 차렸다.비록 몸은 아직 허약했지만, 목숨은 건진 셈이었다.피터는 조군수가 깨어난 것을 보고 단호하게 패배를 인정하고 유진우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그는 자신이 한의학의 힘을 과소평가했다고 말했다.그리고 돌아가서 교수직을 바로 사임하고 한의학 공부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다고 했다.이에 대해 유진우는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피터 같은 사람은 거만하긴 하지만 진정으로 강한 사람을 만나면 마음속으로부터 상대방을 존경하는 스타일이었다.조군해 일행은 조군수가 무사한 것을 확인한 후 오래 머물지 않고 몇 마디 인사를 주고받은 후 자리를 떠났다.떠나기 직전 조준서의 눈빛은 조금 불친절했다.“아빠, 몸은 좀 어떠세요? 어디 불편한 데는 없으세요?”조아영은 따뜻한 물 한 컵을 들고 병상 옆으로 걸어갔다.“괜찮아, 배가 좀 더부룩할 뿐이야.”조군수는 물을 두 모금 들이켰다.“당연히 더부룩하시겠죠? 토해낸 피를 봐요, 벌레가 가득해요!”조아영이 말했다.“어?”조군수는 아래를 내려다보며 얼굴을 찡그렸다.“어떻게 된 거야?”“유진우 씨가 그러는데 무독이래요. 방금 유진우 씨가 아니었으면 아빠 깨어나지 못했을 거예요.”조아영이 설명했다.“유진우?”조군수는 그제야 옆에 서 있는 유진우를 발견하고는 복잡한 표정으로 말했다.“자네가 나를 구해줬다고요?”“아직은 기뻐할 때가 아닙니다. 몸속에 독충은 제거했지만, 아직 다 나으신 건 아닙니다.”유진우가 찬물을 끼얹었다.“무슨 뜻이에요?”조군수가 눈썹을 치켜올렸다.“무독은 무술과 독충의 결합으로서 독충은 제거됐지만, 무술은 아직 해결되지 않았습니다.”유진우가 설명했다.“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조군수가 물었다.“간단해요, 앞으로 하루에 한 번씩 침을 놓아드릴 건데, 5일 정도 지나면 완치될 겁니다.”유진우가 말했다.“그렇군요. 침을 놓는 비용은 어떻게 되나요?”조군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돈은 필요
“응?”조군수가 고개를 들어 옆에 있던 진서현을 바라보았다.“아까 당신이 위급해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만나게 해주겠다고 했어요.”진서현이 말했다.“알았어. 당신도 급했겠지.”조군수는 따지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만나는 건 좋지만, 허튼짓은 안 하는 게 좋을 거예요. 감시하는 사람도 같이 보낼 거예요.”“알겠습니다!”유진우는 동의했다.“아영아, 모시고 가서 언니랑 만나게 해.”조군수가 명령했다.“네!”조아영의 얼굴이 기쁨으로 밝아졌다.언니가 너무나 유진우를 만나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참, 아저씨, 무독은 작은 일이 아니예요. 아저씨한테 무독을 쓸 수 있는 사람은 보통 사람이 아닐 거예요. 주변 사람을 조심해야 해요.”방을 나가려던 순간 유진우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조군수를 보며 말했다.“알았어요.”조군수가 고개를 끄덕였다.늘 은둔 생활을 해오던 그가 갑자기 무독에 걸렸으니, 상황이 심상치 않은 것이 분명했다.가장 중요한 것은 내일이 조씨 가문의 연회라는 점이었다.족장으로서 그가 빠지면 그 영향은 엄청날 것이다.조씨 가문에 내란이 발생하기에 아주 적절한 타이밍이었다.“여보, 나한테 무독을 쓴 사람이 누굴까?”조군수가 갑자기 물었다.“주술에 능하고 우리 조씨 가문과 원수지간인 블랙지존 말고 누가 또 있겠어요.”진서현의 표정이 신중했다.블랙지존은 조씨 가문의 눈에 든 가시 같은 존재였다.그는 신비롭고 강력했다.조씨 가문에서 블랙지존을 없애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인력과 자원을 투자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수년 동안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게다가 매년 조씨 가문의 핵심 인력들이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가고 있는데 그들 뒤에는 늘 블랙지존의 그림자가 있었다.블랙지존 하나만으로 조씨 가문 전체가 육체적, 정신적으로 공황 상태에 빠졌다고 할 수 있다.“그렇지, 그 사람밖에 없지.”조군수는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불행하게도 우리는 지금 일방적으로 당하고만 있어. 이게 바로 내가 굳이 선미를 선우 가문에 시집보내려
그 시각 조씨 저택 후원.인품과 재능이 제일인 한 여자가 연못 위의 아치형 다리에 걸터앉은 채 물속에서 펄쩍펄쩍 뛰노는 잉어들을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었다.하얗고 앙증맞은 두 발을 앞뒤로 흔들고 있었는데 두 발이 가끔 수면에 닿으면서 잔잔한 물결을 일으켰다.찬란한 햇빛 아래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이 반짝반짝 빛났다. 그 모습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같았고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정원에 갖가지 꽃들이 환하게 피어있었지만 여자의 먹구름이 드리워서인지 빛을 잃어가는 것만 같았다.“스르륵...”여자는 먹이를 한 움큼 쥐고 연못에 뿌렸다. 그 순간 수만 마리에 달하는 잉어들이 펄쩍펄쩍 뛰면서 물보라를 일으켰다.가지각색의 잉어들이 서로 먹이를 빼앗는 모습은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난 아무 걱정 없는 너희들이 참 부러워. 난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좋아하지 않는지조차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데.”여자는 시름에 잠긴 얼굴로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누가 그래요?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고?”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그녀 뒤에서 갑자기 들려왔다. 여자는 잠깐 놀라는가 싶더니 이내 자신을 비웃었다.“대낮에도 환청이 들리네.”“환청? 그 정도로 심각한 건 아니지 않나요?”목소리가 다시 한번 들려왔다. 여자는 그제야 진짜인 걸 깨닫고 숨을 죽인 채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한 잘생긴 남자가 햇살을 맞으며 그녀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는데... 유진우가 아니면 누구겠는가?“진... 진우 씨가 여긴 어떻게 왔어요?”늘 그리워하던 얼굴이 눈앞에 나타난 순간 조선미는 놀라면서도 기뻤고 심지어 잘못 본 건 아닌지 자신의 눈을 의심하기도 했다.그동안 그녀는 집에 갇혀 세상과 단절된 나머지 거의 우울증에 걸릴 지경이었다.“내가 얘기했잖아요. 당신이 강능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서울로 찾아올 거라고. 난 약속 지켰어요.”유진우는 씩 웃어 보였다.“역시 여보가 제일 좋아요!”조선미는 행복한 웃음을 짓고는 물고기 먹이를 그대로 내팽개치고 유진우의 품에 와락 안겼다.
조선미의 성격이라면 충분히 도망치고도 남았을 것이다. 조씨 가문 송년회가 곧 코앞이라 그 어떤 실수가 있어서도 안 되었다.“됐어요, 됐어요. 그냥 여기 있어요, 그럼.”그녀와 따지고 싶지 않았던 조선미는 유진우와 함께 연못 가운데 있는 정자로 향했다.오씨 아주머니가 따라나서려 하자 조아영이 그녀를 말렸다.“이봐요, 아주머니. 아빠가 아주머니한테 그냥 지켜보라고만 했지, 가깝게 따라다니라고는 하지 않았잖아요. 커플이 사적인 얘기를 하겠다는데 아주머니가 끼어들어서 뭐 하게요?”오씨 아주머니는 잠깐 생각하더니 결국 발걸음을 멈추었다. 어차피 눈에 보이는 범위 내에 있어 두 사람이 수상쩍은 움직임을 보인다고 해도 정확히 알 수 있었다.“여보, 여긴 어떻게 들어왔어요? 우리 아빠 성격에 절대 물러서지 않을 텐데.”정자 안에서 조선미가 먼저 질문을 던지면서 차를 두 잔 따랐다.“선미 씨 아버님 목숨을 살려드리고 그 조건으로 선미 씨랑 만나게 해달라고 했죠.”유진우는 숨김없이 일의 자초지종을 간단하게 말했다. 그의 얘기를 듣고 난 조선미는 살짝 화난 눈치였다.“아빠는 정말 고집이 세네요. 죽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니.”“그래서 이 일 어찌하면 좋을지 얘기하려고 찾아온 거예요.”유진우도 달리 방법이 없었다.“요 며칠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요. 이 결혼을 막으려면 두 가지 선택밖에 없어요. 아빠를 설득해서 생각이 바뀌든지, 아니면 선우 가문에서 먼저 파혼하자고 하든지.”조선미가 생각에 잠긴 얼굴로 말을 이었다.“우리 아빠는 고집불통이라 가족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바칠 분이거든요. 그런 아빠를 설득한다는 건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에요. 그런데 우리가 아빠의 근심거리를 없애준다면 모를까.”“근심거리요? 그게 뭔데요?”유진우는 궁금증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조선미는 숨을 깊게 들이마신 후 천천히 말했다.“아주 오래전에 조씨 가문이 블랙지존이라는 사람을 건드렸거든요. 그 사람은 악랄하고 잔인한 데다가 수단까지 괴이해서 막으려야 막을 수가 없어요. 그동안
유진우는 조선미와 만난 후 바로 떠나지 않고 조군수의 병을 치료한다는 이유로 조씨 저택에 머물렀다.오씨 아주머니는 혹시라도 유진우와 조선미가 도망이라도 칠까 봐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두 사람을 따라다녔다. 두 사람이 조금이라도 친밀한 행동을 보인다 싶으면 바로 말리곤 했다.특히 해가 지고 난 후에는 두 사람을 절대 만나지 못 하게 했다. 유진우는 이런 상황이 어이없기만 했다.밤새 아무 일 없이 무사히 지나갔다.이튿날 오전, 조씨 가문 송년회가 막을 열었다.조씨 가문의 직계 가족과 방계 가족들이 잇달아 현장에 도착했다. 수억 원대의 고급 자동차들이 광장에 즐비해 있었다.5대 재벌 중 하나인 조씨 가문은 대가문답게 자손들이 아주 많았다. 직계와 방계 모두 합하면 적어도 백여 명은 될 것이다.사실 조씨 가문 자제 외에도 회사의 중요 인사나 귀빈도 송년회에 초대받았다. 하여 송년회 당일 조씨 저택은 그야말로 시끌벅적했다.족장인 조군수는 유진우가 놓은 침을 맞고 나서 안색이 눈에 띄게 많이 좋아졌다. 아직 몸이 쇠약하긴 했지만 앉고 서서 걷는 건 별문제 없었다.“조씨 가문 송년회에 매년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이 오나요?”연회장 안으로 들어가는 손님들을 보며 유진우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그럼요!”옆에 앉아있던 조아영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우리 조씨 가문이 사업을 크게 하다 보니까 인맥이 넓거든요. 그래서 매년 송년회에 아주 많은 손님들이 축하해주러 와요.”“우리가 선우 가문이랑 사돈을 맺는다는 소식을 듣고 그냥 잘 보이려고 찾아왔을 뿐이에요.”조선미가 코웃음을 쳤다.과거의 송년회는 절대 오늘처럼 이렇게 시끌벅적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어떤 이들은 선우 가문 때문에 온 것이다.“어이, 유진우! 너 왜 아직도 여기 있어?”그때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갑자기 들려왔다.고개를 돌아보니 어제 만났던 젊은 여자와 조준서가 마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젊은 여자는 섹시한 몸매가 돋보이는 레드 드레스를 입었고 정교하고 요염한 얼굴이 아주 유혹적
한참 동안 사람들은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 놀라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비록 유만수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몇 년은 더 버틸 수 있을 거로 생각했고 무엇보다 이제 겨우 내우외환을 해결했는데, 유만수가 자리를 넘겨준다고 하니 사람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여보, 너무 성급한 거 아닌가요?”옆에 있던 이의진이 권유했다.“그러니까요. 위왕 님, 아직 몸도 정정하시고 지금은 백세시대인데 어찌 이렇게 일찍 자리를 넘겨줄 생각을 하십니까?”장범규는 정직하고 솔직하게 물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묻고 싶었지만, 감히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만약 누군가 나서서 유만수를 설득한다면 새로운 위왕 님의 미움을 살 수도 있으니, 머리가 잘 돌아가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조용하게 상황을 살필 수밖에 없었다.“여러분, 제 몸은 제가 잘 압니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마침 여러분들이 모두 있는 자리에서 후사를 미리 안배하는 것도 제 소원을 이루는 셈입니다.”유만수는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여보...”이의진이 뭔가를 말하려는데 유만수가 손을 들어 제재하며 말했다.“그만. 난 이미 결정했으니 더 이상 설득할 필요 없어.”유만수는 다시 모든 사람을 향해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여러분, 저의 자리를 대신할 사람을 선정하는 건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그 사람의 손에 미래 서경의 흥망성쇠가 달려 있습니다. 그러니 이 일은 저 혼자 결정을 내릴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의 생각에는 누가 미래의 서경을 맡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까?”“그건...”유만수의 말에 사람들은 더욱 당황했다. 형세를 보아하니 유만수는 내부 투표를 통해 지지자가 많은 사람한테 서경을 맡길 생각인 것 같았다.그러니 문제는 유진우를 선택할 것인가 유천우를 선택한 것인가였다.재능과 능력 면에서 보면 당연히 유진우가 한 수 위이지만 집안 내력과 배후 세력으로 판단하면 유천우가 한 수 위였다.유천우는 최근 몇 년 동안 전쟁에서 매우 좋은 성과를 거두었고 미래가 기대된다는
보물 지도를 나눈 뒤 유진우는 사람을 안배해 호룡각의 기지를 다시 한번 정리했다. 이곳은 위치가 은밀하여 수비는 쉬우나 공격하기는 아주 어려웠고 또한 두 나라의 국경 지대에 놓여있었다.그러니 이곳을 군사 요새로 만드는 건 어렵지 않았다.만약 앞으로 서방 제국과 충돌이 생긴다면 이곳이 중요 군사 지점이 될 것이고 여기서 출병한다면 반드시 예상치 못한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지금 당장은 쓸모가 없겠지만 미리 준비해 둔다면 필요할 때가 있을 것이다.해당 건을 해결한 뒤 유진우는 사람들을 데리고 서경왕부로 돌아갔다.이번에 유진우가 서경의 복병을 해결하고 대승을 거두었기에 유만수는 서경의 왕으로서 특별히 부내에서 연회를 열어 많은 손님을 초대했다.이번 사건에 공로가 있는 사람들은 모두 초청 명단에 포함되어 있었다.한동안 왕부 안팎은 매우 시끌벅적했다.유만수가 죽지 않았다는 사실은 모든 사람한테 매우 기쁜 소식이었고 호룡각을 멸한 건 더욱 기쁜 일이니 축하할 이유가 충분했다.밤이 되자 왕부 안은 이미 많은 사람으로 가득 찼다. 서경에 있는 모든 사람이 거의 다 모인 것 같았다.각 고급 장교, 각 고위 간부, 그리고 각 방면의 거물들이 모두 왕부에 모여 술을 마시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눴다.“여러분, 후배인 제가 먼저 몇 마디 하겠습니다.”연회에서 유천우는 먼저 일어나 손에 잔을 들고 큰 소리로 말했다.“이번에 왕부가 위기를 맞았었지만, 여러분은 떠나지 않고 앞다투어 왕부의 근심과 어려움을 해결해 주어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자, 제가 먼저 여러분께 한 잔 올리겠습니다.”말을 마친 유천우는 고개를 번쩍 들고 잔에 든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도련님이 너무 겸손하네. 우리는 서경의 신하로서 당연히 왕부와 함께해야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지 별거 아니야.”평양 제후 장범규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맞는 말이야. 오랜 시간을 위왕 님과 함께 보냈고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늘 같이했으니, 왕부가 곤경에 처했다면 당연히 전폭적으로 도와야지. 나라를 위해서
“맞아요. 길이라는 건 한번 잘못 들어서면 다시 돌아오기 힘들죠. 사철수의 모든 행동은 좋은 결과를 맞이할 수가 없어요. 누구처럼 죄를 공으로 대처할 기회조차 없죠.”유천우는 유태범을 의미심장하게 바라보며 말했다.만약 유태범이 셋째 삼촌이 아니고 아버지의 인자함이 없었다면, 그뿐만 아니라 형제의 상잔을 원하지 않았고 손실이 크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역모는 열 번 죽어도 모자란 죄였다.“흠 흠.”유천우의 눈빛에 유태범은 괜히 마음에 찔려 화제를 돌렸다.“장혁아, 세 개의 보물 창고를 모두 합치면 가치가 엄청날 텐데 어떻게 처리할 생각이야?”“당연히 전부 서경으로 가져가야죠. 설마 그 잡놈들한테 남겨두기라도 하겠다는 거예요?”유천우는 눈을 흘기며 말했다.“세 개의 보물 창고를 우리가 전부 독차지할 수는 없어.”유진우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우리만의 힘으로 호룡각을 멸망시킨 건 아니잖아.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야. 그러니 보물 창고도 공평하게 함께 나눠야지.”“공평하게 나눈다고? 장혁아, 장난이지?”유태범은 어리둥절해서 격분한 목소리로 말했다.“너도 방금 사철수의 말을 들었잖아. 호룡각의 보물 창고는 수십 년 동안 축적해 온 것들이고 그 수가 엄청날 텐데, 그걸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나눈다고?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이번에 호룡각을 소탕하는 데 유태범은 뛰어난 공을 세웠으니, 나중에 또 다른 표창을 받을 수도 있었다.다시 말해, 서경왕부가 더 많은 보물을 얻어야만 유태범의 이익도 더 많아지기 때문에 그는 당연히 보물을 나누고 싶지 않았다.“보물도 좋지만, 도의도 지켜야죠. 사람들이 멀리서 우리를 도와주러 왔는데, 우리가 보물을 독차지한다면 그건 배은망덕한 사람이죠.”유진우는 담담하게 말했다.“그건 그렇지만 굳이 똑같이 나눌 필요는 없잖아. 적당하게 성의를 보여주면 되는 거지.”유태범이 말했다.“저는 이미 마음먹었어요. 제 결정이 불만스럽다면 유만수에게 일러바쳐서 그가 어떤 선택을 할지
“사철수 씨, 아직도 멍하니 서서 뭐 하는 거예요? 사진이라도 찍어줘요? 빨리 보물 지도를 찾아내세요.”불만으로 꼴 독 찼던 유태범은 못마땅한 얼굴로 사철수에게 화풀이했다.“알겠어요. 서두를게요.”유태범의 말에 사철수는 즉시 합금으로 되어 있는 대문 앞으로 다가가 채원진의 부러진 손을 들어 중간 부분에 있는 감응 위치를 살짝 눌렀다.띵 하는 소리와 함께 두터운 대문이 천천히 안쪽으로 열리자, 금속으로 만든 금고가 드러났다.금고는 약 33제곱미터 정도의 크기였고 한가운데에는 골드바가 사람의 키보다 더 높게 쌓여 있었다.골드바 외에도 그 주변에는 다양하면서도 진기한 보물들이 빽빽하게 배치되어 있었는데 하나같이 비싸고 귀중한 물건들이었다.“이곳은 채원진의 개인 금고예요. 채원진은 마음에 드는 모든 물건을 전부 이곳에 수집했어요.”사철수가 설명했다.“보물들이 어마어마하네요.”유천우는 사방을 둘러보며 감탄했다.“이것들을 전부 가지고 나가면 성을 하나 사고도 남겠네요.”“이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호룡각의 다른 세 보물 창고에 비하면 눈앞에 있는 것들은 새 발의 피죠.”사철수가 설명했다.“정말이에요?”유천우는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당신 말대로라면 호룡각의 보물을 전부 모으면 산더미가 되겠는데요?”“제가 직접 본건 아니지만 수십 년 동안 쌓아왔으니, 산더미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거예요.”사철수는 진지하게 말했다.“좋아요. 아주 좋아요! 빨리 모든 보물을 긁어모으고 싶네요.”유천우는 정신이 번쩍 들어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보물 지도는 도대체 어디 있는 거예요?”유태범은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여기 있어요.”사철수는 맨 안쪽 선반으로 가서 위에 놓여있는 정교한 박달나무 상자를 꺼내 조심스럽게 유진우에게 건넸다.유진우가 열어보니 안에는 양피지 3장이 들어있었다. 모든 양피지에는 상세한 지도가 그려져 있었고 지도 중앙에는 보물 창고의 위치가 금색으로 표시되어 있었다.보물 지도가 진짜라면, 지도에 그려져 있는
“보물 지도는 어디 있나요?”유진우가 추궁했다.“채원진의 지하 밀실에 있어요. 내가 직접 세자 전하를 모시지요.”사철수가 말했다.“지하 밀실?”유천우는 실눈을 뜨고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혹시 속으로 다른 꿍꿍이를 꾸미는 건 아니죠? 나중에 나를 악랄하다고 탓하기 싫으면 그런 생각은 빨리 접는 게 좋을 거예요.”밀실 같은 건물에는 함정과 암기가 많이 설치되어 있는데 유천우는 사철수가 다른 속셈이 있는 건 아닐까 걱정스러웠다.“저는 이미 독 안에 든 쥐가 아닙니까. 절대 그럴 일 없습니다.”사철수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앞서서 안내하세요.”유진우가 두 근위병에게 눈치를 주자 근위병 두 명이 와서 사철수를 일으켜 세웠다.“잠깐만요. 밀실에 있는 보물 상자를 열려면 채원진의 손이 필요해요.”사철수가 갑자기 말했다.“그건 쉽죠.”유천우는 즉시 칼을 빼 들어 채원진의 오른손을 잘라 사철수에게 건네며 말했다.“자. 선물이에요.”사철수는 징그러웠지만 아무 말도 못 하고 채원진의 손을 받아 들고 앞장섰다.유진우와 몇몇 사람은 사철수를 따라 기지로 들어갔고 마침내 지휘실 입구까지 도착했다.사철수는 문을 열고 벽 쪽으로 다가간 다음 벽에 걸려 있는 그림 하나를 떼어냈다.그림 뒤에는 자세히 보지 않으면 전혀 알아차리기 어려운 하나의 버튼이 있었다.사철수가 손을 내밀어 버튼을 누르자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벽 전체가 갑자기 양쪽으로 열리더니 안에 있던 엘리베이터가 드러났다.사철수가 유진우를 포함한 몇 명을 데리고 엘리베이터로 올라탄 뒤 스위치를 누르자 문이 닫히더니 천천히 지하로 내려갔다.반 시간 남짓 지나자 쿵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멈췄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유진우와 몇 명 사람들의 눈에는 넓고 호화로운 지하 밀실이 들어왔다.말이 밀실이지 사실 호화 저택에 가까웠다. 안에는 없는 것 없이 다양한 생활 시설이 모두 갖춰져 있었고, 많은 물과 식량도 수집되어 있었는데 수십 년 동안 혼자 생활하기에는 충분한 수량이었다.“핵 방지
“유진우?”무릎을 꿇은 채 냉정한 표정을 한 유진우를 바라보는 사철수의 얼굴은 매우 복잡해 보였다. 놀라움과 기쁨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미안함과 죄책감이 더욱 컸다.흑용군이 매복되어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사철수는 이미 호룡각의 대세가 기울었음을 알아차렸다.아니나 다를까 호룡각의 기지는 파괴되었고 채원진은 목숨을 잃었으며 사철수는 유진우한테 체포되었다. 하지만 사철수는 어쩌면 이게 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비록 사철수가 호룡각의 사람이긴 했지만, 서경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고 서경은 이미 사철수한테는 고향 같은 곳이었고 주변에 가족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아주 많았다.사철수가 저질렀던 많은 일들은 어쩔 수 없이 억지로 했던 거라 마음이 늘 불편했었다.오늘,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도 모두 사철수의 업보였고 그가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이였다.“아저씨,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죠? 채원진이 패했으니, 당신도 패한 것과 마찬가지예요. 이제 와서 더 할말이 남았나요?”유진우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이기면 영웅이고 지면 도적이 되는 법이지요. 세자 전하께서 죽이시든 벌을 주든 저는 다 괜찮습니다. 다만 무고한 사람에게 해를 가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사철수는 간절한 마음으로 간청했다.“당신이 지금 나한테 그런 조건을 내세울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세요?”유진우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세자 전하, 죄인인 저는 죽어도 마땅합니다. 하지만 제 아내와 딸은 죄가 없지 않습니까? 그들은 용서해 주십시오.”사철수는 허리를 굽혀 땅바닥에 머리를 세게 박으며 유진우에게 절을 올렸다.“당신 말대로 그들은 아무 짓도 하지 않았죠. 하지만 못난 남편과 아비 때문에 그들도 죄인이 된 겁니다. 설마 당신은 어리석게도 그렇게 큰 죄를 지어 놓고 가족은 아무 일 없이 무사할 거로 생각한 겁니까?”유진우는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세자 전하, 공을 세우는 거로 저의 죄를 보상하면 안 될까요? 세자 전하께서 소가 되라면 소가 될 것이고 말이 되라면 말이 될 것입니다.
바로 이때 조무진이 앞을 가리키며 말했다. 조무진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눈길을 돌리자 완전 무장을 한 군부가 보였는데 족히 수만 명은 되는 것 같았다.검은 갑옷을 입고 긴 칼을 허리에 찬 병사들은 기세가 매우 위풍당당했다.얼핏 보면 마치 강철로 되어 있는 호수 같았는데 멀리서부터 강한 압박감을 주는 이 부대는 바로 서경의 최강 정예 부대 흑용군이었다.“보아하니 사철수는 이미 체포된 것 같네요.”이청성은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이 흥용군의 리더는 바로 유천우였다.당시 유천우는 명령에 따라 천여 명의 군대를 이끌고 포위망을 뚫고 들어가 호룡각의 정예 부대를 미리 파놓은 함정에 빠지게 만든 뒤 절대적인 병력 우세로 오천여 명의 적을 죽이고 나머지는 모두 포로로 체포했다.쿵 쿵 쿵!수만 명의 흑용군이 가까워질수록 그 압박감은 점점 더 강해졌다. 성벽 위에 있던 백호군들도 겁에 질려 얼굴이 창백해졌다.소문에 의하면 흑용군은 용국의 최강 군부로서 창시 이래 백전백승을 이뤘고 여러 차례 뛰어난 공을 세웠으며 어떠한 군부도 흑용군과 정면으로 맞서 싸울 수 없다고 했다.이렇게 직접 눈으로 보니 그 소문은 거짓이 아닌듯했다. 흑용군의 강렬함과 살벌함은 충분히 다른 군부를 경시할 만했다.“형! 임무를 완성했어요. 호룡각의 남은 사람은 한 명도 빠짐없이 전부 잡아들였어요.”유천우가 먼저 앞으로 다가와 보고했다.“잘했어.”유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이쪽은 어떻게 됐어요? 채원진은 죽었어요?”유천우는 여기저기 둘러보며 말했다.“머리가 잘렸는데 살아있을 리가 없잖아?”조무진은 발로 채원진의 머리를 슬쩍 건드리며 말했다.채원진의 머리는 축구공처럼 땅바닥에서 굴러 유천우의 발밑에 멈추었다.“뭐야! 이렇게 못생겼다고? 어쩐지 맨날 가면을 쓰고 다니더라니.”유천우는 바닥에 침을 뱉었다. 자신의 아버지를 암살하고 서경을 해친 놈을 미워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채원진은 이미 죽었고 밑에 있던 정예들은 모두 체포되었으니, 호룡각은 이제 완전히 멸망한 셈이에요.
채원진은 죽고 호룡각 기지는 함락되었다. 이로써 호룡각은 조직 전체가 완전히 멸망했고 남은 사람이라고는 흩어져 있는 병사들뿐이라 크게 위험이 되지는 않았다.하지만 유진우는 방심하지 않고 호룡각이 관련된 모든 사람은 전부 체포하라고 명을 내렸다. 만약 그들이 자진해서 항복한다면 죽음을 면할 수 있지만 끝까지 저항한다면 남은길은 죽음뿐이었다.“형, 드디어 이 재앙 같았던 놈을 처리했네. 축하해!”조무진은 앞으로 걸어가 채원진의 시신을 발로 차 완전히 숨이 끊어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미소를 지었다.“다 네 덕분이야. 네가 20만 명의 백호군을 데리고 채원진의 퇴로를 끊어놓지 않았다면 채원진은 또 다른 기회를 찾아 연명했을지도 몰라.”유진우가 말했다. 그는 채원진을 죽이기 위해 모든 방법을 다 동원했고 심지어 자신의 목숨까지 걸었다. 결국 채원진은 죽었고 그는 승리했다.“난 별로 한 게 없어. 고마워할 거면 공주마마께 고마워해야지.”조무진은 고개를 돌려 뒤에 서있는 이청성을 보며 미소를 짓고 말했다.“공주마마께서 형을 돕는다고 엄청 바쁘셨어. 한순간도 긴장을 놓지 않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독촉하느라 발등에 불이 붙을 뻔했다니까.”“조무진 씨! 지금 무슨 말 하는 거예요?”이청성은 앞으로 걸어 나오며 퉁명스러운 말투로 말했다.“별거 아니에요. 공주마마께서 학식과 도리가 깊고 외모와 지혜가 뛰어나다고 칭찬하고 있었어요.”조무진은 아첨하며 웃음을 지었다.“흥! 말은 번지르르하게 잘하네요.”이청성은 조무진을 흘겨보며 말했다.“공주마마, 감사합니다.”유진우는 공수하며 말했다.“뭘 그렇게 예의를 갖춰요? 도와주기로 했으니까, 끝까지 도와줬을 뿐이에요.”이청성은 조용한 어조로 말했다.“게다가 채원진은 우리 공공의 적이잖아요. 유진우 씨뿐만 아니라 나를 위한 일이기도 해요. 전체적으로 보면 백성을 위해 나쁜 놈을 제거 한 거죠.”“공주마마의 대의가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유진우가 웃으며 말했다.“이 얘기는 그만하죠. 비록 채원진이 죽었다고 하
반면 채원진은 피를 토하며 그 자리에서 십여 미터나 날아가 끊임없이 피를 토했다. 팔 전체가 파열되었고 용담적염창도 튕겨 나갔으며 온몸이 너덜너덜해진 채 바닥에 누워 거의 죽어가고 있었다.“도련님, 괜찮으십니까?”홍복홍은 재빨리 달려가 떨고 있는 유진우를 부축했다.“괜찮아요.”유진우는 몸에 기혈이 들끓고 팔이 저리고 검도 제대로 잡지 못할 것 같았다.비록 채원진이 중상을 입기는 했지만 방금 전력으로 내뿜은 일격은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힘이었고 결국 유진우도 피를 토하고 말았다.채원진의 몸에 있는 멸신독이 퍼지지 않았다면 오늘 그를 제압하지 못했을 것이다.“왜? 이럴 수 없어. 절대 이럴 수는 없어...”땅에 엎드려 맥 빠진 목소리로 으르렁거리는 채원진의 두 손은 긴 손가락 자국을 남긴 채 땅바닥에 푹 꺼져 있었다.안 그래도 흉측하던 얼굴이 더욱 흉측해 보였다.“남길 유언이라도 있나?”유진우는 창궁검을 손에 들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 채원진을 내려다보며 말했다.한 세대의 효웅이었던 채원진은 마치 죽음을 앞둔 늙은 개처럼 낭패와 처참함 그리고 빨리 죽기 위해 발악하는 듯한 모습도 보이는 것 같았다.“유진우! 이 비열한 새끼야! 네가 이런 모함을 꾸미지 않았다면 내가 패할 가능성은 절대 없었고 이 지경까지 되지도 않았을 거야. 인정 못 해. 죽어도 인정 못 해!”채원진은 미친 사람처럼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고함을 질렀다.그의 상대는 용국의 지존인 서경 왕 유만수처럼 천하를 뒤흔든 거물이었는데, 젖비린내 나는 아이들 몇 명에게 패했다는 사실을 채원진은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비열?”유진우는 콧방귀를 뀌고 말을 이었다.“이런 단어가 네 입에서 나오니까 정말 어이없구나. 사람을 시켜서 내 아버지를 암살하고 이간질로 삼촌을 유혹하여 반역을 도모해 서경을 혼란에 빠뜨리고. 네가 했던 일 중에 어느 하나 비열하지 않은 일이 없어. 죽을 때가 되니 이제 와서 도리를 따지는 거야? 쪽팔리지도 않아? 그리고 네가 인정하든 못하든 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