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그녀도 어디 한번 갈 데까지 가보자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세 번째 차를 따르고 건네려던 그때 누군가 갑자기 손을 내밀어 그녀를 말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낯빛이 얼음장같이 차가운 유진우였다.“이번에는 내가 할게.”“당신이?”이청아가 화들짝 놀랐다.‘진우 씨 성격에 절대 누구한테 고개를 숙일 사람이 아닌데. 설마 나 때문에?’“네까짓 게 뭔데? 무슨 자격으로 우리 할머니께 차를 올리는 건데?”이서우는 대놓고 그를 무시했다. 그녀가 모욕을 주려는 사람은 이청아였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유진우가 아니었다.“시골 사람들은 정말 예의도 없어. 개나 소나 다 나랑 말 섞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오금란은 고개를 쳐들고 불만을 드러냈다.“차 한잔일 뿐인데 누가 올리든 다 마찬가지 아닌가요? 오늘 제가 기분이 좋아서 직접 올릴게요.”유진우는 찻잔을 건네받고 오금란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많은 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차를 오금란의 머리에 그대로 부어버렸다.차에 찻잎이 섞여 있어 떨어진 찻잎이 그녀의 얼굴에 찰싹 달라붙었다.그 순간 현장은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다. 유진우의 간덩이가 이 정도로 부었을 줄은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눈앞의 이분은 이씨 가문에서 덕망이 높은 셋째 사모님이다. 평소 어딜 가든 사람들이 그녀를 추어올리기에 바빴고 아부는 늘 있는 일이었다. 그런 그녀가 언제 이런 수모를 당한 적이 있었겠는가?“유진우, 지금 뭐 하는 짓이야!”가장 먼저 사태를 파악한 이서우가 욕설을 퍼부었다.“감히 우리 할머니를 모욕해?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너, 너... 이 빌어먹을 놈 같으니라고! 천추에 용납 못 할 큰 죄를 지었구나!”오금란이 두 눈을 부릅뜨고 노발대발했다.재벌 출신인 그녀는 지위가 아주 높았다. 지금까지 남에게 모욕을 주는 건 늘 그녀였고 그녀를 모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아직도 화가 덜 풀렸네요? 한잔으로 모자라면 한잔 더 드릴게요.”유진우는 입꼬리를 씩 올리더니 뜨거운 물을 한잔 따라 오금란의 얼굴에 냅다 뿌렸다
오목조목 틀린 부분을 짚어내며 지적하는 유진우를 보면서 장경화는 할 말을 잃어 입을 떡 벌린 채 멍하니 서 있었다.주변 모든 사람이 말문이 막힌 채로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둘을 바라보았다.이 많은 대중 앞에서 덕망 높은 3대 가문의 사모님을 훈계하다니, 어찌 감히...?“이... 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게. 어디서 나한테 이래라저래라야? 내 말 한마디면 네 집안은 바로 풍비박산이야. 알아?”오금란이 창피함에 뜨겁게 달아오른 얼굴을 가리며 소리쳤다.노여움에 전의 점잖음을 모두 잃은 것 같았다.“해보시든가요.”유진우가 조금의 두려움도 보이지 않는 표정으로 대답했다.“그, 그래!” 오금란이 노발대발하더니 대뜸 깔깔 웃었다.“장경화, 이 배은망덕한 것! 내가 이리 고생하며 강능에 온 목적이 바로 너희 가족을 일으키기 위해서인데. 은혜를 모르는 건 둘째 치고, 감사함도 모르고 이리 날뛰는구나! 이 위임장을 보니 주인을 바꾸려는 것 같은데. 너희가 자산이 2조 되는 조경 그룹 회장의 자리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으니 당장 족장에게 알려야겠구나.”그녀가 폰을 꺼내어 전화하려 했다.이를 본 장경화가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무릎을 꿇고 빌었다.“사모님! 제발 멈춰주세요. 이 아이가 한 말은 저희와 아무 관계도 없어요. 저 애 때문에 우리를 탓해서는 안 돼요!”“할머니, 믿지 마세요. 유진우는 장경화의 사위예요!”이서우가 단호하게 말했다.“전 사위! 전 사위라고! 이미 내 딸과 이혼했어!”장경화가 다급히 정정하며 말했다.“흥! 당신네가 어떤 복잡한 관계를 맺고 있든 상관없어! 한번 결혼했으면 당신네 사람이지!”오금란이 음습한 얼굴로 말했다.“이제 당신들은 내가 만족하도록 제대로 된 설명을 해야 할 거야. 난 기회 준 거니까, 내 탓 하지 마.”“예예예... 바로 사과시키도록 하겠습니다.”장경화가 연거푸 고개를 끄덕이며 유진우를 향해 소리쳤다.“야, 너! 거기 서서 뭐 하는 거야? 빨리 머리 박고 사죄해!”“하겠으면 당신이나 하
이청아가 눈살을 찌푸렸다.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었기 때문에.2,000억의 유동자금이라... 이것은 강능의 내로라하는 금수저들도 쉽게 내놓을 수 있는 금액이 아니었다.“투자를 받아내지 못하면 현명한 청아는 당연히 스스로 회장 자리에서 물러나야겠지? 그룹에 걸림돌이 되면 안 되니까.”오금란이 한쪽 입꼬리를 쓱 올리며 싸늘하게 웃었다.2,000억의 투자는 족장의 요구가 아니라 그녀가 설치한 덫이었다.외부인이 회장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절대 두고 볼 수 없는 그녀였다. 그녀는 기어코 어떤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트집을 잡아내 물러나게 할 셈이었다.그때면 족장이 묻는다 해도 합리적인 이유를 댈 수 있을 것이다.“왜 대답을 안 해. 설마 이런 작은 일도 못 하면서 회장 자리를 넘보는 건 아니지?” 오금란이 비꼬며 코웃음 쳤다.“네가 못하겠다면 그 회장 자리엔 내가 앉으면 되겠네.” 이서우가 고개를 쳐들며 비아냥거린다.2,000억의 자금, 그녀의 인맥으로 못 할 일도 아니었다. 그녀가 도움을 청한다면 할머니께서도 발 벗고 나설 것이었기 때문에.“누가 못한다고 했나요? 고작 2,000억인걸, 3일이면 모을 수 있어요.” 이때 유진우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3일? 미쳤어?!”장경화는 하마터면 펄쩍 뛸 뻔했다. “이렇게 큰돈을 3일 내로 어떻게 모아? 30일이면 몰라도. 아니, 30일이어도 간당간당한데!”“진우 씨. 고작 3일 이내에 내가 어딜 가서 그 많은 돈을 얻겠어?”이청아도 눈살을 찌푸렸다.2,000억의 투자자금을 모으는 것은 온 투자시장을 통틀어서도 손에 꼽을만한 어려운 일이었다.그리고 앞으로 3일뿐이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다.“괜찮아, 나한테 맡겨. 할 수 있어.” 유진우가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그래. 그렇다고 하니 3일 주지.”오금란의 눈이 반짝였다. “하하. 어리석네. 3일 이내에 모으지 못한다면 모두 제 발로 우리 그룹을 나가야 할 거야.”말을 마치고 그녀는 지팡이를 짚고 붙잡을 틈도 없이 떠나버렸다. 다
이 씨네 별장을 나간 유진우가 폰을 꺼내 막 전화하려 할 때 갑자기 벨 소리가 울렸다.화면에는 ‘손기태’ 가 떠 있었다.“네, 손 회장님. 방금 찾으러 가려고 했는데, 먼저 전화해 주실 줄은 몰랐어요.” 유진우가 전화를 받으며 공손히 말했다.“진우 씨가 저를 찾는다고요. 부탁할 일이라도 생겼습니까?” 손기태가 의외라는 듯 물었다.“네. 맞습니다. 제 친구에게 어려움이 생겨서 급히 자금이 필요합니다. 혹시 손 회장님께 빌릴 수 있을까 해서요.”유진우가 물었다.“하하! 무슨 큰일이라도 생긴 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돈을 빌리는 거라면 문제없죠. 제가 다른 건 없어도 돈은 넘쳐나거든요. 얼마나 필요합니까?” 손기태가 긴장을 풀고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2,000억입니다.”“어렵지 않죠. 내일 바로 보내드리겠습니다.”“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진우 씨, 왜 이렇게 딱딱하게 구는겁니까. 의사 선생님께서 제 고질병을 치료해 주신 후로 제가 얼마나 감사하며 살고 있는데요.”“축하합니다... 아, 방금 전화한 건 무슨 일이었어요?” 유진우가 화제를 전환했다.“선생님께서 전에 귀한 약재들을 주의해 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방금 소식을 들었는데 영천에 최근 몇 가지 약재가 나왔답니다. 그런데 그중에 진우 씨가 원하던 천년 청련이 있다지 뭡니까.” 손기태가 벅찬 듯이 한숨에 말했다.“천년 청련이 확실합니까?” 유진우가 다급히 물었다.수명단을 만드는 데에 세 가지 재료 중 최상품의 영약만 부족했다.이 세 가지 영약은 각각 혈정화, 칠색 영지, 그리고 천년 청련이었다.하나하나가 모두 진귀한 것으로서 극히 희귀한 약재들이었다.이렇게 짧은 시간 내에 천년 청련의 소식을 듣는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큰 행운이고 기쁨이었다.“가짜는 아닐 겁니다. 약신궁의 사람들도 모두 나섰다고 하니. 하지만 경매는 늘 이런 식으로 입소문을 타는 법이니 구체적인 상황은 가봐야 압니다.” 손기태가 자신의 추측을 알려주었다.“알겠습니다. 그럼 손
“허! 안 믿네? 그럼 두고 보시든가.”빵떡모자 소녀는 둘을 아니꼽게 보면서 입을 삐죽거린다.이에 둘은 그저 웃기만 할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시간이 일분일초 흘러갔고 경매는 점차 막바지에 이르렀다. 일부 값이 나가는 물건들이 하나하나 나왔다.드디어 많고 많은 사람이 꿈에도 그리던 천년 청련이 모습을 드러냈다.“게스트 여러분, 다음으로 경매에 내놓을 물건은 바로바로, 이 최상품 영약입니다! 희귀하고 진귀하기로 소문난 이 영약! 세계에서도 보기가 드물다고 하는데요! 오늘날까지 천년이나 살아온 영약이죠! 이름하여... 천년 청련!”사회자가 손을 흔들자 직원들이 조심스럽게 박달나무 상자를 들고 들어왔다.뚜껑을 여니 안에는 푸른빛을 띠는 연꽃 한 송이가 정중앙에 놓여 있었다.연꽃의 꽃잎도, 잎사귀도 전체가 옥처럼 맑고 투명했다.잎은 청색, 연꽃의 중심은 금색을 띠고 있었는데 마치 세상에서 가장 완벽하고 정교한 예술품처럼 아름다웠다.불빛이 비치자 더더욱 투명한 청 빛을 발하며 찬란히 빛났다.“역시 천년 청련이구만. 이건 꼭 가져가야겠어!”빵떡모자 소녀의 눈이 확 밝아지며 생기를 띠었다. 소녀는 방방 뛰며 흥분을 가라앉지 못했다.다른 경매자들도 모두 눈에 쌍심지를 켜고 설레는 마음으로 천년 청련을 보고 있었다.“자. 물품은 모두 확인했고 그 가치는 여러분들이 잘 알 거라 믿습니다. 경매 시작 가격은 200억, 매번의 인상 가격은 10억 이상입니다. 지금부터 천년 청련의 경매를 시작합니다!”사회자의 외침과 함께 현장은 순식간에 값을 부르는 사람들로 가득해졌다.“240억!”“260억!”“모두 비키세요, 300억이요!”여기저기서 사람들이 경매에 나서자, 경매는 점점 경쟁처럼 번져갔고 더 많은 부자가 너도나도 참여하기 시작했다.천년 청련 같은 귀한 약재는 값어치가 나간다는 것을 모두가 잘 알고 있었으므로 많은 사람은 수중에 충분한 자금이 준비되어 있었다.누군가 경매에 성공한다면, 그의 경매가격은 처음 시작 가격보다 몇십 배나 불어있을
“선우희재?”소녀의 말에 순식간에 경매장이 소란스러워졌다.모두가 익숙히 들어본 이름이기 때문이다. 이곳 남성에서 그의 이름을 모르면 간첩이라는 말도 과언이 아니다.그는 용국 신시대의 하늘에서 점 찍은 대장군이다. 어려서부터 여러 차례 공을 세워 호풍장군으로 봉해진, 아무나 감히 넘볼 수 없는 자리에 있는 대장군.남성 전체에서 젊은 세대를 이끄는 가장 강한 선두 주자이기도 하다.심지어 어떤 인사들은 그가 앞으로 더 강해질 것이라 주장했다.본디 3대 가문 중 하나인 선우 가문에 이런 천재가 나왔으니.그 지위는 더 말할 것도 없이 하늘로 우뚝 치솟았다.근 몇 년간 아무도 건드릴 엄두도 내지 못한 걸 보아도.그런 가문의 선우영채가 직접 본인의 이름을 말하는 걸 듣고 사람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특히나 약신궁의 긴 셔츠를 입은 남자가 제일 놀란 모습이었다. 보기 흉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약신궁의 지위가 비록 높긴 했으나 그건 무림인들의 세계에서만 해당하는 말이었다. 아무리 약신궁이라 해도 3대 가문 중 하나인 선우네 가문과 비교할 수는 없었다.게다가 이렇게 선우희재가 떡하니 뒤를 봐주고 있으니.“왜 아무 말도 못 하세요? 아까 약신궁의 거만한 태도는 어디 갔어요? 지금도 그 태도로 말씀해 보시지, 왜.” 선우영채가 한껏 경멸하며 비아냥거렸다.어려서부터 좋은 집안에서 부둥부둥 섬겨지며 자란 그녀가 이 세상에 무서운 것이 있겠는가.긴 셔츠 남자는 고개를 숙이고 입을 열지 않았다.“흥. 못났네.”선우영채가 흥미를 잃은 얼굴로 입을 삐죽였다.“자. 영채 아가씨가 1,600억을 제시했습니다! 더 높은 것이 있습니까?”사회자가 형식적으로 물었다.그는 선우영채가 신분을 말한 순간부터 이 천년 청련이 그녀의 손에 들어가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어느 누가 감히 선우 가문과 겨루려 할까.“2,000억 낼게요.”이때 조금 높은 목소리가 들려왔다.뒤를 돌아보니 조금 살찐 중년 남자가 카드를 높이 들었다.손기태가 아니면
아무리 그녀가 선우 가문의 둘째 아가씨라 할지언정 단숨에 4,000억을 내놓는 것은 이미 한계였다.더 가격이 높아진다면 어쩔 수 없이 집에 도와달라 청해야 했다.“4,200억.”손기태는 아무렇지도 않은 침착한 표정이었다.“5,000억!”선우영채가 이를 악물고 가격을 불렀다. 화가 잔뜩 나 사람을 잡아먹을 기세로.오늘은 돈을 빌리는 한이 있더라도 체면을 구길 수 없다.“5,200억.”손기태가 여전히 담담하게 얼굴에 미소를 띤 채 가격을 불렀다.재물 신이라는 칭호는 결코 그냥 얻은 별명이 아니었다. 이 정도의 돈은 그에게 있어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6,000억!”선우영채의 눈이 빨개졌다. 마치 곧 이성을 잃을 사람처럼 얼굴이 일그러졌다.“6,2...”망설임 없이 가격을 부르려던 손기태의 손이 유진우에 의해 내려졌다. “됐습니다. 그만 이 아가씨에게 양보합시다.”“네?”손기태가 영문을 몰라 멍하니 유진우를 쳐다보았다. “유진우 씨, 당신이 필요로 하던 귀한 재료가 아닙니까? 돈 문제라면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저에게 맡기시면 됩니다.”“돈 문제가 아닙니다.”유진우가 물건을 주시해 보더니 아쉬운 표정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저 물건은 천년 청련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어요.”“당신의 말은 저것이 가짜란 말입니까?”손기태가 깜짝 놀랐다. 경매에서 감히 가짜를 파는 일은 흔치 않았다. 그것은 곧 목숨을 내놓는 것과 마찬가지일 정도로 위험한 일이었다.“가짜는 아닌 듯합니다만, 천년은 되지 않습니다.”유진우가 고개를 저었다. “방금 자세히 보았습니다. 비록 이 청련은 나름 오래되었지만 900년밖에 안 된 듯합니다. 아직 100년의 성숙기가 남아있습니다.”900년 청련과 천년 청련은 고장 100년의 차이였지만 약효는 하늘과 땅의 차이였다.수명단을 정제하는 데는 단 한 번의 기회만 있을뿐더러 한 치의 오차여도 아예 다른 약을 만들어 내게 되기에 청련의 성숙기는 몹시 중요한 것이었다.천년 청련은 말 그대로 값조차
‘귀한 물건이다.'루비를 보았을 때 유진우는 정신이 확 돌아왔다.헛걸음을 한 줄 알았는데 마지막에 이렇게 진귀한 보물을 보게 되다니.“흥. 역시 촌놈은 촌놈이야. 고작 루비 원석 하나 가지고 놀라기는.”유진우가 깜짝 놀라는 것을 본 옆의 선우영채의 얼굴에 한껏 멸시하는 표정이 내비쳤다.“이런 물건이야 우리 집에는 셀 수도 없이 많지요. 당신들처럼 세상 모르는 촌놈들이야 신기하겠지만요.”유진우는 소녀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단상 위의 루비만 뚫어지게 쳐다보았다.보석은 피 같은 투명한 암홍색 빛을 띠었고 모양은 흡사 조롱박 같았다.겉으로 보기에는 그다지 놀랍지 않은 모양새이지만 보석의 크기가 크기에 절단하고 연마하고 가공을 거친다면 그 가치가 결코 넘볼 수 없을 것이었다.보석상에게 이 루비는 절대적으로 가장 탐나는 물건일 것이다.“유진우 씨, 이 물건이 마음에 드십니까?” 손기태는 조금 의문스러웠다.그가 알기로 유진우의 재력으로 값비싼 진주와 보석은 부족하지 않기 때문이다.그저 루비 원석일 뿐, 귀중하다고는 하나 이 정도로 흥분할 정도는 아니었다.“이 루비는 제가 가져야겠습니다.”유진우의 대답은 간단하면서도 확고했다.“그래요! 유진우 씨가 좋아한다면 제 전 재산을 털어서라도 가져야지요!” 손기태는 손이 크고 담대했다.모처럼 한번 환심을 살 기회가 생겼으니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루비를 얻어내야만 했다.“이 보석은 깊은 바다에서 건져낸 것으로 몹시 희귀한 것입니다. 경매 시작 가격은 100억이며 매번 인상 가격은 2억이상입니다.”“자. 이제 경매를 시작합니다!”사회자가 간단한 소개를 끝으로 경매 시작을 선포했다.순식간에 장내의 분위기가 다시금 끓어올랐다.“110억 낼게요.”“120억이요.”“136억 낼게요.”내로라하는 금수저들이 잇달아 카드를 들고 경쟁하기 시작했다.이렇게 큰 루비는 어림잡아 추정해도 적어도 400, 600억의 가치가 있어야 한다.당연히 상인으로서의 손기태도 그 가치를 알고 있었다.그는 다른 말
그의 옷자락은 바람에 나부끼며 속세를 벗어난 듯 초탈한 기운을 뿜어냈다.보통 사람이 이 광경을 봤다면 곧바로 무릎을 꿇고 선인을 외쳤을 것이다.슉!흰옷의 검객이 열심히 목적지를 향해 가던 중 갑자기 하얀 보검 하나가 땅에서 솟구쳐 오르며 그의 앞길을 가로막았다.그 검은 마치 도전장을 내미는 듯했다.“누가 내 길을 막는 것이냐!”흰옷의 검객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검선 선배님의 검술이 뛰어나다는 소문은 오래전부터 들어왔습니다. 하여 후배가 가르침을 청하러 왔습니다.”이때 웃통을 벗은 준수한 청년이 천천히 허공으로 떠올라 하얀 보검 위에 가볍게 발을 디뎠다.허공에 떠오른 청년과 검이 검선 백준과 마주 섰다.“네 놈은 누구냐?”백준이 청년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후배 검종, 홍군림이라 합니다. 천 리 길을 달려와 검선 선배님께 몇 수 가르침을 청하고자 합니다.”준수한 청년 홍군림이 두 손을 모아 공손히 인사했다. 그의 태도는 비굴하지도 오만하지도 않았다.“홍군림? 검종에서 천하를 누비며 다니는 자?”백준은 눈을 가늘게 뜨며 약간 놀란 기색을 보였다.“검종에서 절세의 천재가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오늘 보니 과연 소문대로네. 어린 나이에 대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다니... 유장혁 그 자식보다 낫구나.”“선배님, 과찬입니다.”홍군림의 얼굴에는 일말의 동요도 없었다.“홍군림, 오늘 중요한 일이 있으니 정말 가르침을 청하려 한다면 다음 기회로 미뤄라.”백준이 담담하게 말했다.“다음을 기약하기보다 어렵게 만났으니 이번 기회에 부디 선배님께서 가르침을 내려주시길 바랍니다.”홍군림은 물러서지 않았다.“네 말은 일부러 날 막고 있다는 거냐? 설마 검종이 호룡각이 부리는 개가 된 것은 아니겠지?”백준의 얼굴이 서서히 차가워졌다.“제 행동은 검종과도, 호룡각과도 무관합니다. 순전히 개인적인 흥미일 뿐입니다.”홍군림은 담담히 대답했다.“저는 세 살 때부터 검을 익혀 검도의 극한에 이르렀습니다. 선배님의 검이 빠를지 제 검이 빠를지
“뭐라고?”부규환의 말에 유진우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유진우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유만수는 서경에 머물면서 막대한 병력을 쥐고 있을 뿐 아니라 주변에는 실력 있는 고수들이 많이 있다. 그런 사람을 상대로 너희가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호룡각의 세력이 아무리 막강하다 해도 서경왕부 역시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그렇지 않았다면 이토록 오랜 세월 동안 호룡각이 눈엣가시 같은 서경왕부의 존재를 참을 리가 없었다.호룡각이 움직이지 않았던 것은 서경왕부를 상대하기에 껄끄러웠기 때문이었다.다시 말해 유만수가 건재한 서경왕부의 세력은 절대 약화하지 않을 것이며 호룡각또한 함부로 손댈 수 없는 세력이라는 뜻이었다.그러나 부규환의 말투를 보니 지금은 상황이 이미 많이 바뀐 듯했다.“도련님, 이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부규환이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호룡각은 10년간 치밀하게 준비해 왔습니다. 언젠가 서경왕부를 제거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이제 그날이 머지않았습니다.”“대체 뭘 하려고 하는 거야!”유진우가 외쳤다.“도련님,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어차피 오늘 살아서 나갈 수 없을 테니까요.”부규환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말했다.“흥! 나를 죽이려고? 그렇게 쉽지는 않을 거야!”유진우가 냉정한 얼굴로 말했다.“아무리 숨겨둔 병력이 많다고 해도 나도 혼자 온 게 아니다! 지원군이 오고 있으니 누가 이길지는 두고 봐야겠지.”“도련님의 계획은 이미 호룡각에 간파되었습니다. 말씀하신 지원군은 아마 오늘 도착하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의 도련님은 저희 수중에 들어온 먹잇감에 불과합니다.”부규환이 담담하게 말했다.“하하하, 유장혁! 설마 이런 날이 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겠지?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고 실력이 강하더라도 죽음은 피할 수 없겠구나!”문관옥이 참지 못하고 조소를 터트렸다.경천 랭킹 10위에 오른 강자가 직접 나섬과 더불어 10만 외성 군의 정예병을 내세웠으니 유장혁이 아무리 숨겨둔 비장의 수가 있다고 해도 마지막 발버둥
왜 무림에는 고수들이 넘쳐나고 강자가 끊임없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공무원과 정면으로 맞서지 못했는지를 사람들은 이제야 알았다.그 이유는 실력의 차이가 너무나도 크기 때문이다.수십만 대군이 밀고 들어오면 설령 하늘을 찌르는 능력을 갖췄다 하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다.어떤 문파라도 관군의 정예 병력과 대적하게 되면 결국 멸망의 길을 걷게 될 뿐이다.“포위하라!”명령과 함께 10만 대군이 안팎으로 유진우와 일행을 완전히 둘러쌌다.병사들은 각자 창과 칼을 들고 눈빛은 날카롭게 빛났으며 살기 가득한 기운이 사방을 압도했다.“나는 옥면 군신 무관옥이에요. 팔방제후는 어디 있어요?”그 순간 무관옥이 앞으로 나와 위세를 떨치기 시작했다.초품 군신의 위엄을 지닌 그는 이품 고급 장교에게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존재처럼 느껴졌다.팔방제후로 불리는 실권자들도 무관옥의 앞에서는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그의 질문은 대답 없이 공허하게 메아리쳤고 병사들은 오직 무표정하게 대형을 유지하며 무관옥을 무시했다.“이게 무슨 일이죠? 당신들의 고급 장교 어디 있는 거예요?”무관옥은 불만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무관옥은 30만의 백호랑을 연경으로 보낼 수 없지만, 군신으로서 어떠한 고급 장교도 그를 보고 정중하게 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군신님, 오늘 외성군의 지휘는 제가 맡고 있습니다.”그때 중앙 대열에서 하얀 옷을 입은 얼굴 창백하고 수염이 없는 노인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노인의 키는 훤칠하고 체격은 마른 편이며 날카로운 음성이 다소 섬뜩하게 들렸다.“부 내관님?”부 내관을 본 순간 무관옥의 눈동자가 급격히 수축하였다. 좀 전까지 드러냈던 거만한 태도는 순식간에 사라졌다.눈앞에 서 있는 사람은 비록 관직은 높지 않지만, 그 지위는 매우 특별한 존재였다.그는 천자의 측근이자 대내 제1고수로 꼽히는 인물이고 경천 랭킹 10위에 오른 절정 고수 부규환이었다.“군신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 문제는 이제 제가 처리하겠습니다.”부규환은 고개를 살
문관옥이 어찌 할 바를 몰라 할 때 발밑의 땅이 갑자기 진동하기 시작했다.그와 함께 약간의 ‘쿵쿵’ 소리가 들려왔다.“뭐야? 지진이 난 건가?”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무관옥이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자 후방의 산림 속에서 언제부터인가 수천, 수만의 병마들이 나타나 있었다.눈길이 닿는 곳마다 빽빽하게 가득 찬 병마들로 산과 들이 전부 뒤덮여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이 거대한 병력은 하나로 합쳐진 단일 부대가 아니었다.오히려 여덟 개의 정예 부대가 각기 다른 방향에서 몰려들고 있었다.땅의 진동은 바로 이 여덟 부대가 달려오며 만들어낸 소리였다.“저거 봐요! 저게 뭐예요?”“맙소사! 엄청난 규모잖아요! 산 전체가 덮일 것 같아요!”“저기 깃발을 봐요. 우리 지원군인 것 같아요!”“뭐라고요? 지원군이 왔다고요? 정말 잘됐어요!”사람들은 상황을 자세히 살핀 뒤 크게 기뻐하며 외쳤다.너무나 강력한 힘을 지닌 유장혁을 그들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더 많은 병력의 지원이 반드시 필요했으며 그들이 바라던 대로 엄청난 지원군이 도착한 것이다.사람을 압도하는 수적 우위로 유장혁을 포위하거나 아니면 절대 강자가 나서서 그를 제압해야만 했다.현재 이곳에 도착한 방대한 군력은 무려 10만에 달했다. 사람마다 한 개 기술을 써도 유장혁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하하하...팔방제후에요! 팔방제후의 병력이 도착했어요!”상황을 제대로 파악한 무관옥은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연경에는 세 개의 주요 군사력이 존재한다. 첫째는 치안을 유지하는 성위군 둘째는 자금성 안에서 황족을 보호하는 금위군이다.그리고 셋째가 바로 외성에서 제8대 총수가 지휘하는 특수 군대인데 이는 연경의 안전을 지키고 반란이나 사태를 진압하기 위해 존재하는 부대이다.팔방 제후라고 불리는 이 총수는 높은 관직이 아니지만, 실제 권력은 거의 제1제후와 맞먹는다.그래서 이들은 종종 ‘팔방제후’라는 존칭으로 불리며 고위 관료들도 이들에게 함부로
“으윽!”전신 법상이 산산조각 난 순간 한비영은 마치 심각한 타격을 입은 듯 입에서 피를 쏟아냈다.얼굴은 순식간에 창백해졌고 몸은 힘이 빠진 듯 휘청거렸다. 마치 기운을 전부 뺏긴 것 같은 모습이었다.“어떻게 이럴 수 있지? 내가...내가 졌다고?”한비영은 자신의 두 손을 바라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그는 늘 다른 사람들보다 앞서 있었고 어떤 천재가 나타나더라도 그 앞에서는 빛을 잃었다.자신이 무적이라 믿었고 누구도 자신의 적수가 될 수 없으리라 자부했다.그러나 오늘 한비영은 아주 처참하게 패배했다.천신사상결의 모든 기술을 남김없이 펼쳤지만, 결국 상대를 넘지 못했다.반면 유장혁은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매 순간 정면으로 맞섰다.이번 싸움은 오직 절대적인 힘과 기술의 대결이었고 속임수 같은 건 없었다.결과적으로 한비영이 졌고 유장혁은 강력한 실력으로 천신사상결을 완전히 깨부수며 자신의 불패 신화를 끝장냈다.한비영은 자신이 졌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맙소사! 유장혁이 이겼다고요? 유장혁이 한비영을 이겼다고?”“천신사상결을 막아낸 사람이 있다니 이건 기적이에요!”“이게 바로 전설 속의 천재인가? 정말 두렵군요!”“...”유장혁이 당당히 서 있는 모습을 보며 주변 사람들은 모두 충격에 휩싸였다.그들은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유장혁의 압도적인 존재감에 경악했다.한비영마저 이길 수 없다면 이들 중 유장혁을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젠장! 천하회의 도련님이라는 사람인데 이런 망신을 당하다니!”문관옥은 얼굴이 어두워지며 불쾌감을 감추지 못했다.문관옥은 한비영과 유장혁이 서로 치명적인 상처 입기를 기대했지만, 결과는 완전히 예상 밖이었다.한비영은 이미 심각한 부상을 입었고 유장혁은 멀쩡한 상태였다.유장혁이 얼마나 숨겨온 실력을 갖추고 있는지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천신사상결은 정말 대단한 기술이에요. 도련님께서 대 마스터 경지에 도달했다면 나는 이 기술을 막지 못했을지도 몰라요.”유장혁은 담담히 말
“왔다! 드디어 천신사상결의 최강 필살기가 나왔어요!”“전설에 따르면 전신의 분노를 본 사람은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다죠. 오늘 우리가 그것을 직접 볼 줄은 몰랐어요!”“천신사상결에 의해 죽는다면 그 또한 유장혁의 명성에 어울리는 최후가 될 것 같아요.”“...”공중에 떠올라 위풍당당한 모습을 드러낸 한비영을 바라보며 사람들은 두려움과 경외심에 휩싸였다.천신사상결은 천하회의 종주가 세상에 이름을 알린 필살기로 무림의 5대 필살기 중 하나로 꼽힌다.사람들은 그저 소문으로만 들어왔을 뿐 실제로 본 적은 없었다.조금 전 보여준 세 가지 기술만으로도 이미 천지개벽할 정도였는데 이제 마지막 기술이 펼쳐질 순간이었다. 그 위력이 어느 정도일지 아무도 가늠할 수 없었다.“전신의 분노!”공중에 떠 있는 한비영이 갑자기 포효했다.순간 한비영의 몸에서 전신 법상이 폭발적으로 나타났고 순식간에 키가 30미터가 넘는 거대한 거인으로 변했다.유진우는 그 발끝에서 마치 개미처럼 보잘것없어 보였다.마치 발을 한 번 내디디기만 해도 간단히 짓밟힐 것처럼 보였다.“검법 파장술!”한비영은 천천히 손을 들어 던지는 자세를 취하더니 거칠게 손을 아래로 내리눌렀다.그의 머리 위 거대한 법상 역시 똑같은 동작을 취했지만, 그 손에는 푸른 번개로 뒤덮인 거대한 창이 들려 있었다!“쿵!”번개 창은 마치 미사일처럼 유진우를 향해 내리꽂혔다.순식간에 천지가 뒤바뀌고 공간이 뒤틀렸다.극에 달한 공포스러운 위압감이 순식간에 온 사방을 덮쳤다.마치 하늘에서 신이 벌을 내려주듯 사람들을 공포와 전율로 몰아넣었다.번개 창이 가까이 다가오기도 전에 그 강력한 힘은 이미 대지를 붕괴시키고 바위를 산산조각 냈다. 백 미터 이내에 있던 풀과 나무는 모두 먼지로 변했다.멀리서 지켜보던 무사들은 겁에 질려 연신 뒤로 물러나며 얼굴에는 공포가 가득했다.“강린!”번개 창이 내려오는 순간 유진우의 몸에 새겨진 강린 문신이 갑자기 빛을 발했다.검은 불빛이 그의 몸에서 터져 나와 거대한
허공에 드리운 거대한 형상은 온몸이 불길에 휩싸여 있었고 뜨거운 열기는 대지를 녹일 듯 위협적이었다.“화신의 분노!”기운이 최고조에 달하자 한비영은 양손을 앞으로 세차게 밀어내었다.그의 등 뒤에 나타난 화신 또한 똑같이 손바닥을 내지르는 동작을 취했다.곧이어 새빨간 불꽃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화염 용이 하늘로 솟구치며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유진우를 향해 맹렬히 돌진했다.“주작!”유진우는 기운을 전환하며 몸에서 뿜어져 나온 현청진기를 머리 위로 끌어올렸다. 순식간에 그의 머리 위에는 거대한 불꽃의 신조 주작이 모습을 드러냈다.“끼오!”주작은 커다란 날개를 힘차게 펼치며 수많은 불빛을 흩뿌렸다. 화살처럼 치솟아 오른 주작은 한비영의 용과 정면으로 충돌했다.“쾅!”굉음과 함께 두 거대한 존재는 격렬히 부딪혔다.주작은 폭발하여 수많은 불꽃 조각으로 흩어졌고 용 또한 흔적만 남긴 채 사라졌다. 두 사람의 대결은 다시 한번 무승부로 끝났다.이 결과를 본 한비영의 표정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그는 세 번째 기술을 준비하며 자세를 가다듬었다.한비영은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그의 배는 바다를 삼키는 고래처럼 부풀어 오르며 천지의 영기를 거칠게 빨아들였다.그 순간 그의 등 뒤에 검은 구름 같은 형상을 띤 신상이 나타났다.이 신상은 흉측한 얼굴에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무시무시한 위압감을 발산하고 있었다.멀리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무사들은 공포에 질려 다리가 후들거리고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 기세는 감당할 수 없는 무게로 짓눌러왔다.“천둥의 분노!”한비영이 긴 함성을 내지르며 허공을 향해 강렬한 주먹을 내질렀다.그의 등 뒤의 천둥의 형상 또한 거대한 주먹을 휘둘러 유진우를 향해 내리쳤다.그 주먹은 마치 태산이 내려앉는 듯한 기세로 막강한 압박감을 뿜어냈다.“청룡!”유진우는 다시 한번 몸속의 현청진기를 뿜어내 머리 위에 푸른 청룡을 소환했다.푸른 용은 생동감이 넘쳤으며 비늘 하나하나가 빛을 받아 찬란하게 반짝였다.용의 신비롭
“너희들 생각엔 한비영이랑 유진우 둘 중에 누가 더 셀 것 같아?”“만약 두 사람 모두 전성기 시절의 실력대로라면 아마 비등비등하지 않을까 싶은데. 결국은 누가 더 전략을 잘 짜느냐가 관건이겠지만.”“말도 안 돼! 당연히 한비영 도련님께서 훨씬 월등하시지! 유진우는 이미 한물갔어. 이제는 한비영 도련님께서 진정한 천하제일 천재란 말이야!”“나도 도련님께서 이기실 것 같아. 어쨌든 유진우는 방금까지 싸워서 체력을 다 써버렸으니 꽤 지쳤을 거야.”“...”대치 중인 한비영과 유진우를 바라보며 무인들은 귓속말로 여러 추측들을 주고받았다.두 사람 모두 알아주는 천재로서 결코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이런 두 사람이 공개적으로 맞붙는다고 하니 그 누가 기대를 품지 않을 수 있으랴.물론 대다수는 한비영의 승리를 예상했다.한비영은 최근 몇 년간 천하에 이름을 떨치며 대단한 기세를 뽐냈고 자질로 봤을 때는 이미 무적이었다.그 반면, 유진우도 과거엔 알아주는 무인이었지만 지금의 한비영과 비교하기엔 역부족으로 보였다.“그래, 싸워라, 싸워. 얼른 너희 둘이 싸우다가 둘 다 죽거나 크게 다쳐야 내가 얻는 게 있지.”문관옥은 두 사람을 조롱하는 듯한 냉소를 지었다.생사가 걸렸는데 아직까지 무슨 무림인들의 규칙을 지킨다고 설쳐대는 모습이 너무 우스웠다.전략으로 상대의 빈틈을 노려 승리를 쟁취하는 것이 결투의 기본 상식이거늘.“유진우, 난 지금부터 천신사상결을 사용할 거다. 잘 사리는 게 좋을 거야.”“받아라!”한비영은 경고 한 마디를 마친 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공격을 시작했다.그의 몸에서는 강렬한 기운이 폭발하더니 푸른빛의 잔상이 등 뒤에서 뿜어져 나왔다.그 잔상은 여섯에서 일곱 미터에 달하는 엄청난 크기로 마치 신마와 같은 위풍당당하고도 압도적인 위압감을 주었다.“세상에, 시작부터 천신사상결이라니. 아무래도 도련님께서 싸움을 한 번에 끝내실 생각인가 보구나!”“천신사상결이라니, 저건 천하에 위세를 떨친 기술이야. 신이 앞을
백발의 노인은 구세주를 본 듯한 표정을 지으며 기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경원종이 유명하다고는 해도 천하회와 비교하면 그 차이는 말도 안 될 정도였다.이미 2년 전부터 한비영이 대 마스터에 접어들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이런 절세의 천재는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존재였다.“한비영 도련님이 나서주셨으니 이제 유진우도 도망치지는 못할 거야!”미모의 부인은 기쁨으로 두 눈을 반짝였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도망쳐야 하나 싶었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한비영이 와주었으니 이제는 마음 놓고 전투를 지켜볼 수 있을 것이다.“한비영 도련님을 뵙습니다!”한비영이 땅으로 착지하자 사람들은 일제히 공손한 인사를 건네며 존경을 표했다.“다들 물러나 계십시오. 이제 전투는 제가 맡습니다.”한비영이 큰 소리로 말했다.“네!”사람들 역시 큰 소리로 대답하며 양옆으로 물러서 자리를 내어주었다.위험을 피하면서도 공로를 나눌 수 있는 이 상황에 사람들은 기꺼이 옆으로 물러나 한비영의 실력을 구경할 준비를 마쳤다.“도련님, 유진우는 절대 쉬운 상대가 아닙니다. 혼자서 상대하시기엔 무리일 수도 있으니 같이 힘을 합치는 건 어떨까요?”“관옥 도련님, 호의는 감사하지만 저는 혼자 싸우는 걸 좋아해서요. 그러니 도련님께선 잠시 쉬시는 게 좋을 겁니다.”“하지만 비영 도련님, 이번 일은 중대한 사안입니다. 만일의 사태를 위해 함께 싸우시는 편이 어떠신지요.”문관옥이 다시 입을 열었다.“왜 그러십니까, 도련님께선 이 한비영을 못 믿으신다는 겁니까? 설마 제가 유진우 하나 상대 못 할 것 같나요?”한비영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도련님의 실력을 의심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지금은 자존심을 내세우실 때가 아니라 임무가 우선입니다. 만에 하나 문제라도 생긴다면 도련님 혼자 책임을 지시기 버거울 겁니다.”문관옥이 경고하듯 말했다.“저는 무림인으로서 무림인들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겁니다. 도련님께서 책임에 대해 걱정하실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이봐요!”문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