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세요? 용호걸 씨 맞아요? 청아가 할 얘기가 있다고 해서요.”전화가 통하자 장경화는 곧바로 휴대폰을 딸에게 넘겼다.“청아 씨예요?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요. 될 수 있는 데까지 도울게요.”전화기 너머로 감미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호걸 씨, 저예요.”이청아가 눈을 질끈 감고 말했다.“그게, 친구가 하나 있는데 문제가 생겨서요. 군부 사람들에게 잡혀갔거든요. 지금 생사가 불분명한데 혹시 호걸 씨가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군부 사람들에게 잡혔다고요? 친구분이 사고 치셨나 봐요.”용호걸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저도 웬만해서는 부탁하지 않으려고 했는데요.”이청아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친구분 성함이 어떻게 돼요?”“유진우요.”“좋아요, 도와줄게요. 하지만 조건 하나 있어요.”“무슨 조건이요?”“오늘 저녁밥 한 끼 사세요.”용호걸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그게...”이청아는 난감한 기색을 보였다.“왜요? 이 정도 부탁도 들어주지 않을 건 아니죠?”용호걸이 장난기가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아니요, 당연히 사드려야죠.”이청아가 미소를 짜내며 말했다.“호걸 씨가 도와주신다는데 밥 한 끼쯤이야.”“좋아요, 그럼 약속한 거예요? 오늘 저녁에 봐요!”“...”인사말 몇 마디 더 나누고 이청아는 전화를 끊었다.“뭐래? 용호걸이 도와준대?”장경화가 조심스럽게 물었다.“네. 하지만 오늘 저녁 같이 밥 한 끼 먹자고 하네요.”이청아는 고개를 푹 숙였다.“좋지! 얼른 집 가서 잘 꾸미고 가. 예쁘게 꾸미고 가야지. 최대한 용호걸 맞춰주고!”장경화는 잔뜩 흥분한 채 말했다.“청아야, 이번에야말로 기회를 제대로 잡아야 해.”이서우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강북 쪽에서 항상 용씨 가문과 사돈을 맺고 싶어 했단 말이야. 그래야 사이가 더 가까워지니까. 원래 결혼을 준비한 사람이 따로 있었어. 그런데 용호걸이 딱 네가 마음에 들었대. 제 발로 굴러들어 온 복을 차지 말란 말이야!”“난 명문 가문에 시집가는 데에
“결혼한 건 맞아. 하지만 이미 이혼했어.”유진우가 솔직하게 말했다.“어머, 그럼 잘 됐네!”조무진이 해쭉 웃으며 말했다.“이혼했으면 내 동생한테도 기회가 생긴 거 아니야? 그럼 앞으로 난 진우 형의 형님 아니야?”“저리 가!”유진우는 눈을 희번덕거리며 말했다.“너 같은 오빠가 어디 있어? 아주 여동생을 불구덩이로 밀어 넣는구먼!”“내가 걔를 불구덩이로 밀어 넣는 게 아니라, 걔가 형을 좋아한다니까!”조무진이 어깨를 들썩이며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형은 모르겠지만 걔가 형이 아직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고서 맨날 나한테 매달려 이것저것 물었어. 변경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진작 비행기 타고 형 찾아왔을걸?”“홍연이는 그동안 잘 지냈어?”유진우가 갑자기 물었다.“왜? 진짜 관심이 있어서 물어보는 거야? 걔가 어려서부터 무술을 연마했잖아, 재능도 있고. 이제 완전 마스터야, 나도 상대 안 된다니까. 누가 감히 걔를 건드리겠어?”조무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그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단 두 사람만 무서워했다.한 사람은 어려서부터 그를 제압한 유장혁이었고, 다른 한 사람이 바로 그의 여동생 조홍연이었다.두 사람 앞에서 그는 체면치레라고 할 수 없었다.“하하... 홍연이 재능이 뛰어나긴 하지. 네가 못 이기는 것도 정상이야.”유진우가 웃으면서 말했다.눈 깜짝할 사이에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예전의 껌딱지가 지금 용국의 이름 있는 전쟁의 여제로 될 줄이야.“진우 형, 정말 홍연이를 데려가는 거 어때? 진우 형 말고는 아무도 걔를 이기지 못한다니까!”조무진은 거의 빌다시피 말했다.여동생이 하루라도 빨리 시집을 가야 그도 마음이 놓였다. 아니면 맨날 훈련장으로 끌려가 두들겨 맞는 사람은 계속 그가 될 것이니.“그게 무슨 헛소리야!”유진우가 조무진을 툭 차며 말했다.“난 홍연이를 항상 동생으로만 생각했단 말이야. 다른 마음을 품은 적이 없어.”“하하... 형이 걔를 동생이라고 생각해도, 걔는 형을 그냥 오빠
유진우는 이런 곳에서 이청아를 만나게 될 줄 생각지도 못했다.게다가 이청아는 낯선 남자와 함께였는데 두 사람은 데이트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이 광경을 본 유진우는 마음이 불편했다.유진우는 방금 군부에게 잡혀가 생사도 알 수 없는 상황일 텐데 이청아가 다른 남자와 데이트를 하고 있었으니 절대 그를 걱정하진 않았을 테고.‘결국 나 일방적으로 좋아한 거였어?’“진우 형, 저 여자 알아?”옆에 있던 조무진은 곧바로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는 유진우에게 물었다.“알지. 저 여자 내 전처야.”유진우는 숨김없이 솔직하게 대답했다.“전처라고?”조무진은 입술을 씰룩거렸다.“그럼 다른 데로 가서 마실까?”‘세상이 참 좁긴 좁아.’전처가 다른 남자와 같이 있는 모습을 보니 그는 마음이 착잡했다.“괜찮아, 여기서 마시자. 잘못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왜 우리가 자리를 피해?”유진우가 덤덤하게 말했다.그는 말을 마치고는 술잔에 있는 술을 쭉 들이켰다. 마치 스트레스를 털어버려내는 듯이 말이다.이때, 이청아와 용호걸은 이미 2층으로 올라왔다. 이청아는 바로 술 마시는 두 사람을 발견했다.“진우 씨, 왜 여기에 있는 거야?”이청아는 놀라움으로 가득 찬 얼굴을 보이더니 두 눈을 반짝였다.“내가 왜 여기에 있으면 안 되는데?”유진우가 퉁명스럽게 말하고는 차가운 얼굴을 보였다.“언제 나오게 되었어? 왜 나한테 연락을 안 했어?”이청아는 그에게 다가가며 반갑게 물었다.“연락을 하든 안 하든 당신이 상관할 건 없지.”유진우가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힐끔 바라봤다.그의 쌀쌀한 태도에 이청아는 흠칫했다.“왜 그래? 그 안에서 다친 거 아니야? 병원이라도 가볼까?”“신경 쓸 것 없어. 나 괜찮으니까 남자친구랑 데이트 잘해. 나 신경 쓸 것 없다고.”유진우가 덤덤하게 말했다.“남자친구?”이청아가 옆에 있는 용호걸을 보더니 곧바로 설명했다.“진우 씨, 오해한 거야. 우린 그냥 친구 사이야.”“설명할 것 없어. 그럴 필요도 없고.”유진우가 차갑게
“그냥 친구 사이라고? 좋아, 그럼 지금 나랑 함께 돌아가!”유진우가 갑자기 고집을 부렸다.“그게...”이청아는 미간을 구겼다.그녀는 유진우를 보다가, 또 옆에 있는 용호걸을 보더니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용호걸에게 호감을 느끼진 못했지만 상대방의 도움을 받았으니 갑자기 자리를 뜨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왜? 못하겠어?”유진우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이게 당신이 말한 그냥 친구 사이야? 지금 이러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당신 말을 믿어?”그는 지금 이 상황에서 이청아가 망설일 줄은 몰랐다.‘그럼 내가 방금 알게 된 친구보다도 못하다는 거야? 우리 관계가 한층 깊어진 줄 알았는데 이 모든 게 나의 착각일 뿐이었구나.’“됐어. 너무 난감해할 것 없어. 우리 두 사람은 그 어떤 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계속 식사해, 나는 이만 갈게.”유진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곧바로 자리를 떴다.“진우 형, 나 기다려.”조무진이 술 두 병을 챙기고는 쫄래쫄래 유진우를 따라갔다.그는 연애 경험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별다른 도움을 줄 수도 없었다.호텔에서 나온 유진우는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마음이 씁쓸했다.이청아에 대한 감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그도 몰랐다.겉으로는 괜찮은 척했지만 막상 이청아가 다른 남자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진우 형,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 여자는 널리고 널렸으니까.”조무진이 그에게 다가가고는 어깨를 툭툭 치며 위로를 건넸다.“형이 또 잘생기고 능력도 좋잖아. 형을 따르는 여자는 줄을 지을 거라고. 아니면 내 동생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건 어때?”“안 돼요!”이때, 뒤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갑자기 들려왔다.두 사람이 고개를 돌려 보니 아름다운 미모의 여인이 그들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그 여인은 다름 아닌 이청아였다.“왜 나왔어?”유진우는 어안이 벙벙했다.이청아가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을 줄 알았는데 쫓아 나올 줄이야.“남자가 왜 그렇게 속이 좁아?”이청아가
“조심해!”트럭이 정면으로 부딪칠 때, 이청아는 자신의 안위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유진우를 밀어낼 생각밖에 없었다.피할 수 없어 죽음을 직감했을 때 이청아는 저도 모르게 눈을 꼭 감았다.이대로 죽는다면 어쩌면 행복할지도 모른다. 유진우는 평생 자기를 기억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이청아가 눈을 감은 동시에 우람한 몸집의 누군가가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그는 주먹으로 트럭을 툭 치더니 ‘쾅’ 소리와 함께 트럭은 주먹 모양으로 일그러졌다.엄청난 충격으로 트럭 전체가 들썩이더니 심지어 공중에서 한 바퀴 돌아 ‘쿵’ 하는 굉음과 함께 이청아의 뒤로 떨어졌다.“청아야, 괜찮아?”유진우가 주먹을 거두고는 이청아가 괜찮은지 거듭 확인한 후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어떻게 된 거야?”이청아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휑한 앞쪽을 보고, 또 뒤쪽의 산산조각이 난 트럭을 본 이청아는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트럭이 앞쪽으로 온 거 아니었어? 언제 뒤로 간 거지?’만약 유진우가 주먹으로 달려오는 트럭을 내리쳤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이청아는 충격을 금치 못할 것이다.“이청아! 바보 아니야? 위험이 있으면 도망을 가야지, 왜 나를 밀어내!”유진우는 한껏 어두워진 얼굴로 화를 냈다.그가 반응이 빨라서 다행이지, 아니면 이청아는 트럭에 부딪혀 곧바로 사망했을 것이다.“상황이 너무 급해서 나도 딴생각할 시간이 없었어.”이청아는 갑자기 두려움이 몰려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앞으로 기억해! 자신을 보호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유진우가 진지하게 말했다.만약 눈앞의 사람이 자기 때문에 죽게 되었다면 그는 평생 죄책감을 안고 남은 평생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저기, 진우 형. 나도 좀 관심해 줘.”조무진은 겨우 바닥에서 일어서고는 원망의 눈길로 유진우를 바라봤다.‘젠장, 사람을 구하는 마음은 알겠으나 왜 트럭을 나한테 던져? 내 목숨은 중요하지도 않아? 의리를 지키기는커녕 여자 때문에 아주 나를 불구덩이로 몰아넣는구먼.”“안 죽으면
“뭐?”동생의 시체를 본 강준혁은 충격을 금치 못했다.유진우가 정말 말 그대로 사람을 죽일 줄은 전혀 몰랐다. 그것도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말이다.“더 할 말 있어?”유진우가 덤덤하게 물었다.“저... 저 죽이지 마세요! 부탁하는데 저 죽이지 마세요!”강준혁은 당황한 나머지 철썩 무릎을 꿇고는 싹싹 빌기 시작했다.“제가 주제넘었습니다. 눈치 없이 건드렸으니 한 번만 봐주십시오. 한 번만 살려주시면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조심하겠습니다!”“기회를 이미 줬는데 그 기회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 건 당신들이야.”유진우는 무표정으로 말했다. 그리고 그의 눈빛은 얼음장처럼 싸늘했다.“아니에요! 기회를 소중히 여길게요! 꼭 그럴게요! 한 번만 봐주세요. 저 아직 젊고 죽고 싶지 않아요! 이번 한 번만 살려주시면 앞으로 원하는 모든 걸 해드릴게요! 제발요!”강준혁은 미친 듯이 절을 하기 시작했다.전성기 때라도 그는 유진우를 이길 수 없었는데 하물며 지금이야?유진우가 그를 죽이는 건 개미 한 마리 밟아 죽이는 것처럼 쉬웠다.“아까는 그렇게 말한 것 같지 않은데?”유진우가 코웃음을 치고는 말했다.“몸이 회복되면 나를 죽일 때까지 괴롭힌다고 하지 않았어?”“아... 아닙니다!”강준혁은 고개를 연신 저으며 말했다.“제가 무슨 배짱으로 그런 말을 했겠습니다? 정말 아닙니다!”“강천호는 어디에 있어?”유진우는 인내심을 잃은 듯했다.온 리조트를 다 찾아봤는데도 강천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으니 말이다.“몰, 몰라요. 아빠는 서울로 약을 구하러 갔어요. 구체적인 위치는 저도 모른다고요.”강준혁은 울먹이며 말했다.“운도 좋네, 서울로 갔다고?”유진우는 이 상황이 상당히 유감이었다.한 번에 모조리 다 죽이려고 했는데 한 사람이 빠졌으니 말이다.“우리 아빠 찾으시려는 거죠? 괜찮아요, 아빠가 돌아오면 바로 알려드릴게요! 나 아직 쓸데 있으니까 죽이지 말아 주세요. 앞으로 시키는 것 모두 할게요!”강준혁이 아첨을 떨며 살아남을 수 있는 한 가닥의
“좋아! 그래 이거야!”강천호는 큰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비록 적지 않은 돈을 들였지만, 축기단을 얻었으니 보람은 있네!”그가 웃고 있을 때 다른 경호원이 당황한 표정으로 달려들어 왔다.“강 대표님! 큰일 났습니다. 집에 일이 생겼습니다!”경호원은 곧바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렸다.“무슨 일이야?”강천호는 얼굴을 찡그렸다.“방금 강능에서 연락이 왔는데 어젯밤에 천호 리조트가 학살당했는데 엘리트들은 물론이고 도련님과 아가씨도 모두 사망하셨다고 합니다. 강씨 가문 모두 전멸했다고 합니다!”말을 듣는 순간 강천호는 번개에 맞는 느낌이었다.손에 들고 있던 축기단마저 땅에 떨어져서 부서졌다.“내 아들!”강천호는 통곡하며 바닥에 쓰러졌다.그의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모르게 멍하게 한참을 있었다.다시 정신 차리고 비틀거리며 일어선 강천호는 10년은 더 늙어버린 듯 유난히 초췌한 모습이었다.“차 준비해! 현무문의 분타로 가자!”강천호는 충혈 된 눈에 살기 가득한 표정으로 이를 악물고 말했다.아들과 딸이 죽었으니 이제 그의 목표는 단 하나뿐이었다.바로 자식들의 복수를 하는 것이었다!그는 모든 자산을 들여서라도 복수를 할 것이다!한 시간 후.현무문 분타 회의실.“뭐라고요? 강준혁 후배가 죽었다고요?”청색 셔츠를 입은 남자가 테이블을 치며 분노했다.“누가 감히 우리 현무문 사람을 건드려요?”“조씨 가문의 조선미와 유진우라는 놈이에요!”강천호가 말했다.“흠! 한낱 조씨 가문이 감히 현무문을 건드려요? 죽으려고 작정한 거네요!”청색 셔츠 남자의 얼굴은 차갑고 살벌하였다.“당장 현무문 제자들 집합시켜. 이번에 반드시 강준혁 후배를 위해서 정의를 구현한다!”“예!”현무문 제자 한 명이 명령을 받고 자리를 떴다.곧이어 현무문의 분타 전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현무문 세력으로 말하자면 수십만 명의 제자들이 강남 전역에 퍼져 있었다.이번 기수 제자들은 고수들이 많아서 현무문 제자들 중에서도 출중했는데
강능, 천향원 내.“뭐? 강준혁이 죽었다고? 강씨 가문이 하룻밤 사이에 전멸됐다고? 천호 리조트가 모두 불타버렸다고?”경호원의 보고를 들은 진서현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강씨 가문은 강능에서 오랫동안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비록 아직 조씨 가문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그 뒤에 현무문이 있기에 얕잡아 볼 수 없는 상대였다.그렇다면 누가 감히 그들을 전멸시켰단 말인가?“누가 이런 짓을 했는지 알아?!”진서현이 다시 물었다.“화재로 현장이 전소되어서 진범을 추적하기가 어려웠습니다.”경호원들은 고개를 저었다.“진범을 못 찾으면 우리한테 문제가 생겨!”진서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과거에 강씨 가문이 멸망했다면 진서현은 기뻐했을 건데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강씨 가문과 조선미의 관계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일이 발생했기에 조선미가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의심을 받을 것이다.게다가 현무문이 추궁을 하게 되면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기에 진서현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무슨 일이에요?”그때 조선미가 비단 잠옷을 입고 방에서 나왔다.“강준혁은 죽고, 강씨 가문 전체가 몰살당했고, 강천호는 행방불명이야!”진서현은 전해 들은 소식을 간결하게 말했다.“알아요. 별거 아니에요.”조선미가 기지개를 켜며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응? 언제 알았어?”진서현이 놀래서 물었다.“어젯밤에 진우 씨가 전화했어요.”조선미가 가볍게 말했다.“어젯밤?”살짝 놀란 진서현은 곧바로 정신 차리고 물었다.“그럼 이게 다 유진우가 한 짓이라는 거야?!”“맞아요.”조선미는 고개를 끄덕였다.“미쳤어? 어떻게 감히 강준혁을 죽일 수 있어? 강준혁의 스승이 누군지 알아? 현무문의 강 당주야! 현무문의 복수가 두렵지 않다는 거야?!”진서현이 말했다.“강씨 가문과는 이미 관계가 틀어져서인지 진우 씨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조선미는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사실 그녀는 유진우가 군부에 잡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미 강씨
“아니에요?”유장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용호산은 여태껏 무림인의 세계에서 일어난 일에 무관심했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건 다른 의도가 있는 게 분명해.”서태양이 말했다.인재를 선발해 위상을 높이려고 진무사가 나섰다면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었다.하지만 용호산은 전혀 관계가 없지 않은가?“그럼 무슨 의도인데요?”유장미가 되물었다.“내가 어떻게 알아? 나도 궁금하거든?”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는 서태양은 어깨를 으쓱했다.“보혁 씨는 내막에 훤하니까 화두를 꺼낸 거겠죠?”유이슬이 시선을 돌렸다.“내막까지는 아니지만 주워들은 소식이 몇 가지 있긴 해요.”염보혁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제가 알기로는 용호산 뒷산의 금지구역에 최근 신비로운 보물이 나타났는데 향후 100년 동안 무림인들의 흥망성쇠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관련이 있다고 해요.”“무슨 보물이 그렇게 대단해요?”유장미가 깜짝 놀랐다.유이슬과 서태양도 예상치 못한 듯 충격을 금치 못했다.무림인들의 흥망성쇠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만약 제 추측이 맞는다면 용원의 기와 관련된 보물일 거예요.”염보혁이 목소리를 낮추었다.순간, 유진우는 눈썹을 추켜세웠지만 이내 포커페이스로 돌아왔다.“용원의 기? 그게 뭔데요?”유장미가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용맥의 정수이기도 하죠.”유이슬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며칠 전 호룡각이 와해하면서 지하 용맥이 다섯 개의 용원의 기로 변해 세상에 뿔뿔이 흩어졌어. 소문에 의하면 용원의 기를 얻는 자는 천하무적이 되어 승승장구한다고 해.”호룡각이 무너지고 용맥이 파괴된 일이 워낙 큰 이슈였기에 자연스럽게 그녀의 귀에도 흘러 들어갔다.“진짜요? 그렇게 대단한 물건이 있어요?”유장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고서에서 관련된 기록을 본 적이 있는데 용원의 기를 얻은 자들은 세상을 주름잡는 수장이거나 천하를 다스리는 왕이었어.”유이슬이 한마디 보탰다.“맞아요.”염보혁이 대
유진우는 옆에 있는 염보혁을 흘깃 쳐다보았고, 속으로 상대방이 아무리 예뻐도 남자를 좋아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쿨럭!”염보혁은 사레가 들린 나머지 연신 기침하며 쓴웃음을 지었다.“이슬 씨, 지금 절 칭찬하는 건지 비꼬는 건지 모르겠네요.”“당연히 칭찬하는 거죠. 그런 얼굴을 보고도 어떤 남자가 마음이 흔들리지 않겠어요?”유이슬이 정색하며 말했다.“네?”염보혁은 말문이 막혔다.설령 사실일지언정 어찌 면전에서 대놓고 말할 수 있지?왠지 모르게 기분이 이상했다.“정 믿기 어려우면 태양한테 물어봐요.”유이슬이 문득 말했다.한편, 서태양은 염보혁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이름이 언급되는 순간 흠칫 놀라더니 서둘러 시선을 돌렸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은 도둑이 제 발 저린 듯싶었다.“제가요?”서태양은 난감한 얼굴로 대답했다.“선배, 장난하지 마세요. 저랑 무슨 상관이죠?”“뭔가 냄새가 나는데요?”유장미가 눈썹을 까딱하더니 눈알을 굴리며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설마 보혁 씨한테 진짜 반한 건 아니죠?”“이... 계집애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서태양이 펄쩍 뛰면서 얼굴이 벌게진 채 고래고래 외쳤다.“남자끼리 엮일 리가 없잖아.”“침착해요. 단지 농담했을 뿐이에요.”유장미가 키득거리며 말했다.“게다가 남남 커플이 진짜 사랑이죠. 어차피 안 될 건 없잖아요. 만약 사귈 생각이 있다면 진심으로 축복해줄게요. 하하하!”“입만 열면 헛소리 하네.”서태양은 짐짓 화가 난 듯 혼내려는 액션을 취했다.유장미는 잽싸게 유이슬의 등 뒤로 숨어 웃음을 터뜨렸다.갑자기 산으로 흘러가는 대화에 당사자인 염보혁은 말문을 잃었다.더욱이 유장미와 투닥거리는 와중에도 그를 흘끔거리는 서태양 때문에 어이가 없었다.단순히 농담으로 치부할 수 있었지만 몰래 훔쳐보는 탓에 괜히 기분이 세했다.“진우 씨, 이슬 씨, 다들 용호산은 처음이죠? 제가 구경 좀 시켜드릴까요? 주변에 뭐 있는지 소개해줄게요.”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염
술이 몇 잔 오가자 서서히 편하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이슬 씨, 방금 검종의 제자라고 하시던데 무림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용호산에 오른 건가요?”염보혁이 넌지시 물었다.“그런 셈이죠.”유이슬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성격이 무심한 편이라 말주변이 딱히 없었다.“사실 저희는 스승님의 명을 받고 찾아왔어요.”상대적으로 외향적인 유장미가 웃으며 말을 보탰다.“노천사가 용호산에서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소식에 세상이 발칵 뒤집혔거든요. 검종 뿐만 아니라 천하회, 주술교를 포함한 파벌에서 최정예 제자들을 파견해 출전할 예정이에요.”“그럼 검종에서는 세 분이 참석하는 건가요?”염보혁이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아니요.”유장미가 고개를 저었다.“저희는 단지 구경하러 왔을 뿐,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는 따로 있어요.”그녀와 서태양은 선천 후기에 속했고, 유이슬은 실력이 뛰어나긴 했으나 반보 마스터에 불과했다.어찌 됐든 천교에 비하면 열세에 처하는지라 검종을 대표해서 출전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따로 있다니? 설마 홍군림이에요?”염보혁의 눈썹이 까닥했다.“그건 저도 잘 몰라요.”유장미가 생긋 웃었다.“워낙 제멋대로에 신출귀몰하는 사람이라 이번 무림대회에 참가할지 아무도 몰라요. 만약 홍 선배가 진짜 출전한다면 우승은 우리 검종이 차지할 거예요.”홍군림은 천교 랭킹의 1위에 올랐을뿐더러 어린 나이에 경천 랭킹에 진입한 검종의 천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다만 성격이 까칠하고 독불장군이라 종주를 제외하고 아무도 안중에 두지 않았다.“장미야, 그건 네 생각이고.”이때 유이슬이 입을 열었다.“홍 선배가 실력이 뛰어나고 검종의 천재로서 일반 무사들이 함부로 넘볼 수 없는 존재인 건 사실이지만 너도 알다시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능력자가 한 명 더 있잖아.”“누구요?”유장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유장혁.”유이슬이 무덤덤하게 말했다.“그 사람이 홍 선배보다 실력이 더 뛰어나요?”유장미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막상막하야. 천교
“네?”염보혁의 한 마디에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한참 동안 넋을 잃었다.특히 잘 보이기 급급했던 서태양은 굳은 얼굴로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허공에 손을 들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이럴 수가?방금 목숨 걸고 구하려던 사람이 남자였다니?“남자...? 농담이죠?”붉은 옷 소녀가 염보혁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경국지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미인이 대체 어디를 봐서 남자란 말인가?푸른 옷 여인은 입만 벙긋했을 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흡혈파 망나니들이 여자가 아닌 남자한테 집적거렸다니?취향 한번 독특했다.“아니요. 진짜 남자예요.”염보혁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밖에 나가면 여자로 오해받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하지만 아무리 봐도...”붉은 옷 소녀가 말을 아꼈다.“외모 때문에 어쩔 수 없어요.”염보혁이 어깨를 으쓱하며 해탈한 듯 말했다.“아쉽네요.”붉은 옷 소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본인이 이렇게 예쁜 얼굴을 가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선배? 왜 그래요? 괜찮아요?”그녀는 아직도 넋을 잃은 서태양을 발견하고 손을 뻗어 어깨를 툭 쳤다.“응? 아, 괜찮아. 단지 조금 놀랐을 뿐이야.”서태양은 꿈에서 깨어난 듯 금세 정신을 차렸다.다만 눈빛만큼은 남자한테서 떠나지 않았다.이렇게 요염한 얼굴이 사내란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그야말로 재능 낭비이지 않은가?“저는 염보혁입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염보혁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유이슬이에요.”푸른 옷 여인이 대답했다.“저는 유장미라고 해요.”붉은 옷 소녀가 활짝 웃었다.비록 남자이지만 미모에 저절로 눈이 갔다.“서태양입니다.”서태양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방금 일어난 일에 대해 찝찝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다 같이 술이나 한잔 하시죠?”염보혁은 손을 내밀더니 소개를 이어갔다.“이쪽은 유진우 씨, 그리고 두 분은 호위무사인...”“춘화와 추월이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수염 난 사내의 몸에 피투성이 상처가 생겼다.눈 깜짝할 사이에 연신 검에 찔린 탓에 저항할 힘조차 없었다.비록 수염 난 사내가 힘은 더 셌지만 기교에서는 한참 못 미쳤다.여자의 화려한 검술은 감탄을 자아냈고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악!”수염 난 사내가 처참한 비명을 질렀다.사지가 부러진 채 바닥에 널브러진 모습은 마치 좀비를 연상케 했다.온몸은 피가 흥건했고 상처로 가득했다. 비록 목숨에 지장은 없지만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다.“형님!”패배한 우두머리를 보자 흡혈파 제자들이 충격과 분노를 금치 못했다.항상 위풍당당하고 기세등등했던 수장이 이런 몰골을 보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젠장! 감히 우리 형님을 다치게 해? 죽고 싶어 환장했어?”“저년을 없애버려!”흡혈파 제자들이 고래고래 외치며 검을 빼 들고 무시무시한 기세로 여자를 덮쳤다.“무용지물이야.”푸른 옷 여인은 콧방귀를 뀌더니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사람들 틈으로 뛰어들었다.얼마 안 되어 흡혈파 제자들은 하나같이 처참한 비명과 함께 바닥에 나뒹굴었다.팔이나 다리가 부러진 채 선혈이 낭자했다.“역시 대단하세요!”눈앞의 광경에 붉은 옷 소녀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망나니 따위가 감히 검종에게 대들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서태양이 바닥에 침을 뱉었다.“뭐... 뭐라고? 너희들이 검종 제자였어?”흡혈파 제자들은 안색이 돌변하더니 두려운 기색이 역력했다.검종은 무림인들의 세계에서 3대 문파 중 하나로 천하회와 주술교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비록 제자들이 많지 않았지만 뛰어난 인재들밖에 없다.특히 검종의 홍군림은 어린 나이에 천교 랭킹 1위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경천 랭킹에 진입하여 세계 10위의 강자가 되었다.경천 랭킹 10위권에 검종 제자가 무려 2명이나 있는데 압도적인 실력으로 3대 파벌의 수장 자리를 거머쥐었다.여기서 검종의 제자들을 만나게 될 줄은 예상치도 못했다.이럴 줄 알았더라면 애초에 무모한 짓을 벌이지 않았을 텐데.“이제야
“윽!”서태양은 이를 악물고 이마에 핏줄이 튀어나온 채 낮은 신음을 내뱉었다.이내 양손으로 검을 쥐고 온 힘을 다해 어깨를 짓누른 흡혈검을 떼어내려고 했다.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상대방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오히려 힘이 점점 더 가해졌고 무릎이 닿은 바닥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고작 이런 실력으로 감히 우리 흡혈파한테 덤비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수염 난 사내가 냉소를 지었다.“형님! 멋져요.”“역시 대단하세요.”부하들이 질세라 감탄했다.북쪽에서 흡혈파라고 하면 꽤 이름 있는 큰 파벌인지라 애송이 같은 놈이 도발할 만한 게 아니었다.“감히 내 앞에서 영웅 행세해? 넌 오늘 인생에서 가장 잘못된 결정을 내린 거야. 교훈 삼아 사지를 부러뜨려줄게!”수염 난 사내가 비열한 미소를 짓더니 흡혈검을 들어 올려 서태양의 손목을 향해 휘둘렀다.챙!검이 닿기 직전 청색 보검이 불쑥 나타나 허공에서 공격을 막아냈다.“응?”수염 난 사내가 눈살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푸른 옷 여인이 보검을 들고 싸늘한 눈빛을 보냈다.“선배?”서태양의 표정이 밝아지더니 그제야 한숨 돌렸다.조금만 늦었더라도 오른손을 잃어버렸을 텐데 그나마 선배가 제때 도움을 줘서 천만다행이었다.“괜히 참견하지 마.”수염 난 사내가 음흉하게 웃었다.“우리 후배한테 손을 대는 순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여자가 싸늘하게 말했다.“맞아! 너희들 같은 망나니는 벌을 받아 마땅하지.”이때, 붉은 옷 소녀가 검을 빼 들고 낭랑한 목소리로 외쳤다.“언니, 제가 도와줄게요.”“아니야. 넌 태양이랑 지켜보고 있어. 이런 놈들은 나 혼자서도 충분하니까.”푸른 옷 여인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어디서 나온 자신감이지?”수염 난 사내가 히죽 웃었다.“그런 왜소한 몸으로 오빠의 검을 어찌 막으려고? 차라리 무기는 내려놓고 침대에서 겨뤄보는 건 어때?”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부하들이 폭소를 터뜨렸다.곧이어 음흉한 시선으로 여자를 훑으며 멋대로 평가하
서태양이 움직이자 수염 난 사내의 뒤에서 덩치가 산만 한 남자 두 명이 튀어나왔다.두 사람은 무기로 길쭉한 검을 들고 있었다.몸체는 강한 피비린내와 함께 은은한 살기가 감돌았다. 이는 칼날이 오랫동안 선혈에 노출된 결과였다.무림인들의 세계에서는 흡혈검이라고 불렀다.다만 아쉽게도 그들이 지닌 검은 아직 미성숙 단계였고 기세가 한창 부족했다.챙! 챙!서태양이 먼저 검을 빼 들고 혼자서 두 명의 사내와 대결을 벌였다.그들은 기세등등하게 맞서 싸웠지만 힘만 강했을 뿐 행동이 굼뜬 편이었다.공격할 때마다 동작이 다소 어설펐다.반면, 서태양은 누가 봐도 고수의 가르침을 받았고 실전 경험도 풍부했다.스피드, 힘, 기술 등 모든 면에서 높은 수준에 도달했으며 어느 하나 뒤처진 데 없었다.세 사람이 공격을 주고받는 순간 실력 차이가 현저했고, 서태양은 눈 깜짝할 사이에 두 사내를 쓰러뜨렸다.그리고 응징할 겸 각자의 다리에 검을 관통했다.“흥! 고작 이런 실력으로 우쭐거려? 제 주제도 모르고.”서태양은 장검을 비스듬히 겨누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죽기 싫으면 당장 꺼져.”“좋아! 잘했어!”승리를 거머쥔 서태양을 보자 구경하던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비록 나서서 싸울 용기는 없었지만 응원의 박수를 보내는 것쯤은 충분히 가능했다.“그래도 실력은 꽤 있나 보네? 어쩐지 참견하더라니.”수염 난 사내가 눈을 가늘게 뜬 채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천천히 뽑아 들고 음침한 목소리로 협박했다.“하지만 오늘 임자를 만났지. 흡혈파를 마주친 이상 살아남을 방법은 없어.”“흡혈파는 무슨, 들어보지도 못했구먼.”서태양의 표정은 기고만장했다.“하! 괜찮아. 네 피를 전부 흡수하고 나면 우리가 왜 흡혈파라고 불리는지 알 거야.”수염 난 사내가 이죽거리더니 두말없이 공격을 개시했다.그가 발을 내딛자마자 맹렬한 기세가 솟구쳤고, 손에 든 흡혈검은 핏빛을 뿜어내며 곧장 서태양을 덮쳤다.앞서 상대했던 부하들과 달리 수염 난 사내의 흡혈검은 살기로 가득했다
아름다운 얼굴은 쉽게 화를 부르는 법이다.염보혁은 남자였지만 여자보다도 더 아름다운 요염한 얼굴을 지녔다.길을 나서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도리가 없었고 지금처럼 깡패 무리와 마주할 때면 번번이 시비에 휘말리기 일쑤였다.유진우는 모른 척하며 조용히 술잔을 기울였다.“어이, 이쁜이. 저런 나약한 놈이랑 술 마셔서 뭐 하겠어? 차라리 우리랑 한잔하지, 아주 즐겁게 해줄 테니 말이야!”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사내가 염보혁의 턱을 손가락으로 건드리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이 손 치우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 후회하게 될 테니까.”염보혁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차가운 눈빛을 보냈다.어여쁜 외모 탓에 남녀를 불문하고 다가오는 사람이 많았지만 이처럼 대놓고 희롱하는 경우는 드물었다.“오, 이쁜이가 화를 내네?”수염 난 사내는 턱을 문지르며 비웃었다.“솔직히 말해서 화난 얼굴이 더 매력적인데?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더욱 감탄스럽군.”그의 말에 뒤따르던 무리들이 일제히 폭소를 터뜨렸다.유진우는 피식 웃으며 술잔을 내려놓았다. 눈앞의 이 사내는 제법 능숙하게 수작을 부렸다.염보혁이 남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셋을 센다. 그 안에 사라지지 않으면 내가 직접 손봐주지.”염보혁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손 본다고? 하하하!”수염 난 사내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이거 제법 앙칼진데?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위층으로 올라가서 천천히 우리를 손 봐줘, 어때?”“맞아, 맞아! 방도 넉넉하니 차례대로 너랑 놀아줄 수 있다고!”그의 동료들도 시시덕거리며 말을 보탰다.“셋.”염보혁은 더 이상 말을 섞을 필요도 없다는 듯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이쁜이, 괜히 버티지 말고 그냥 올라가자. 내가 아주 다정하게 대해줄 테니 말이야.”수염 난 사내는 입을 커다랗게 벌려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낄낄댔다.“둘.”염보혁은 여전히 냉랭한 표정을 유지했다.“싫다면 어쩔 수 없지. 내가 직접 안아 올라가는 수밖에.”그가 손을
유진우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보혁 씨가 이렇게까지 많은 걸 알고 있을 줄은 몰랐군요. 제 생각엔 장일청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 것 같은데요.”용호산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염보혁이 이렇게나 많이 알고 있다니, 이건 그가 평범한 인물이 아님을 증명하는 셈이었다.“진우 씨께서 과찬해 주시는군요. 저는 그저 사람들 사이에 끼어 듣는 걸 좋아해서 호기심에 이런저런 소문을 알아본 것뿐입니다. 사실 별다른 능력은 없어요.”염보혁은 겸손하게 웃으며 덧붙였다.“하지만 만약 진우 씨께서 무림대회에 참가하신다면 전 온 힘을 다해 진우 씨가 우승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보혁 씨, 저를 너무 과대평가하시는군요.”유진우는 담담하게 말했다.“전 그저 세상 구경이나 해볼 겸 참가하는 것뿐입니다. 우승 같은 건 감히 꿈도 꾸지 않아요. 애초에 제 실력으로 어떻게 그 내로라하는 강자들과 겨룰 수 있겠습니까?”“진우 씨는 너무 겸손하시군요. 저는 사람을 보는 눈이 정확합니다.”염보혁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진우 씨는 외모도 준수하고 기품 또한 비범하시죠. 멀리서 봐도 강렬한 기세가 느껴졌습니다. 비록 진우 씨의 신분은 알 수 없지만 이것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진우 씨는 절대 범상한 인물이 아닙니다!”“보혁 씨께서 저를 이렇게까지 칭찬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유진우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평범한 출신에 보잘것없는 실력을 갖췄을 뿐입니다. 아마 실망할 겁니다.”“하하, 괜찮습니다. 커다란 황금 잉어가 어찌 작은 연못에서만 머물겠습니까? 바람과 구름을 만나면 반드시 용이 되어 날아오를 것입니다. 지금 진우 씨의 명성이 미미할지라도 저는 믿습니다. 언젠가 반드시 하늘 높이 날아오를 날이 올 거라고!”염보혁은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말했다. 그 눈빛은 절대적인 믿음을 담고 있는 듯했다.유진우는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이 사람, 도대체 뭐지? 분명 오늘 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