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건이 없으면 오면 안 돼?”이청아는 배신자를 보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그런 뜻이 아니잖아.”유진우가 말했다.“그래 얘기할게. 진우 씨, 강 명의를 알잖아. 연계해 줘. 병 보일 사람이 있어서 부탁하려고 그래.”이청아가 드디어 목적을 얘기했다.“병을 보인다고?”유진우는 이청아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맥을 짚어보며 말했다.“생리가 불규칙한 것 말고는 다른 이상 없어. 평소에 스트레스 받지 말고 차가운 음식을 먹지 않으면 돼.”“생리가 불규칙한 건 당신이야!”이청아는 얼굴을 붉히며 노려보았다.“내가 아니고, 우리 집 친척이 갑자기 쓰러지더니 계속 머리가 아프다고 해서 병원에 가봤는데 아무 문제가 없어. 그래서 강 명의한테 진찰받아보려고 그래.”“그런 거였구나.”유진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냥 진찰만 받을 거면 강 명의가 아니라도 돼. 내가 가볼게.”“진우 씨가? 정말?”이청아는 조금 의아했다.“내가 이 의원을 개원한 지 몇 년 됐는데, 실력이 없었다면 벌써 오래전에 망했겠지.”유진우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이청아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하루 종일 환자 한 명도 안 보이는 이 형편없는 의원이 망한 거랑 다를 게 뭐지?'“못 믿겠으면 말고.”유진우는 어깨를 으쓱했다.“누가 안 믿는대? 알았어. 진우 씨가 봐줘.”이청아가 단호하게 말했다.“사실 이 친척은 일반 사람이 아니야. 진우 씨가 그 사람 병만 치료해 준다면 큰 보답을 할 거야. 그러면 여자 덕을 본다는 소리 듣지 않아도 돼.”그렇게 말하면서 일부러 조선미를 힐끗 쳐다보았다.“여자 덕을 보면 어때서요?”조선미는 가슴을 치며 말했다.“우리 진우 씨가 내 덕을 보면 어때서요? 그것도 능력이에요. 다른 사람은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거든요.”“흠! 덩치 큰 남자가 하루 종일 여자를 쫓아다닌다는 게 말이 돼요?”이청아가 말했다.“남자가 여자를 쫓아다니지 않으면 뭐 혼자서 놀겠어요?”조선미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당신...”이청
“너?!”유진우를 보자마자 이서우는 자신도 모르게 어리둥절해하며 온 얼굴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유진우 역시 매우 놀란 듯 묘한 표정을 지었다.이청아가 말하는 친척이 이 두 사람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뭐야, 서로 아는 사이야?”이청아는 이상한 표정으로 그들을 둘러보았다.“알기만 하겠어?”이서우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어제 우릴 때린 놈이야!”“뭐?”이서우의 말에 모두 깜짝 놀랐다.“서우야, 너 잘못 본 거 아니야?”장경화가 조심스럽게 물었다.“어떻게 잘못 볼 수 있어요? 이 사람 얼굴은 재가 되어도 알아볼 수 있어요! 그리고 엄마 두통도 이 사람이 뺨을 때려서 생긴 거예요!”이서우의 표정은 매우 사나웠다.“맞아! 지금 두통도 저놈이 나를 때려서 생긴 병이 틀림없어. 저놈 빨리 붙잡아!”병상에 누워 있던 조국화도 포효했다.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어제 일 때문에 계속 화가 났었는데 오늘 이렇게 만나다니?“진우 씨, 어떻게 된 거야? 왜 때렸어?”이청아는 깜짝 놀랐다.원래는 유진우를 한번 보여주려고 했는데, 서로 원한이 있을 줄은 몰랐다.“맞을 짓을 해서 때린 거야!”유진우는 아주 솔직하게 말했다.“어제 저 사람들은 역주행을 하다가 사람을 죽일 뻔했어. 그러고도 사과는 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오만하게 굴어서 도저히 참을 수 없어 한 대씩 때렸어.”“이 빌어먹을 것! 이 두 사람이 누군지 알아? 무슨 배짱으로 두 사람한테 손을 대?”장경화는 순식간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장경화의 부귀신을 때렸다는 것은 그녀의 얼굴을 때린 것과 같았다.“다 필요 없어요, 당장 신고해요!”이서우가 소리쳤다.“잠깐만!”이청아는 즉시 말리며 말했다.“오해가 있었을 거예요. 그러니 일을 크게 만들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오늘 진우 씨가 숙모님 병을 고쳐드려서 어제 일은 만회할 거예요.”“흠! 누가 저놈한테 병을 고쳐 달래? 치료하다가 문제가 생기면 네가 책임질 수 있어?”조국화가 분노하며 말했다.“잘 됐네요. 나도
순간 세 사람의 얼굴은 모두 기쁨으로 가득 찼다.이름만 들어도 비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이런 명의야말로 그들의 신분에 걸맞은 존재라고 생각했다.“현아, 허 명의님은 중주의 대단한 분이신데 어떻게 모셔온 거야?”장경화가 호기심에 물었다.“저는 그런 능력이 없고요. 허 명의님을 모신 건 용씨 가문 도련님이에요.”이현이 웃으며 말했다.“용씨 가문 도련님이?”장경화의 눈이 번쩍 뜨였다.용씨 가문 도련님의 이름은 용호걸이고 용씨 가문은 중주의 귀족이었다.중주의 군부와 정계 모두에 인맥이 매우 두터웠다.가장 중요한 것은 용씨 가문과 강북 이씨 가문의 관계가 아주 밀접하다는 것이다.게다가 강북에서는 용호걸과 그의 딸을 혼인시키려고 한다.그의 딸만 동의하면 빠른 시일 내에 중주 대 가문에 시집갈 수 있다는 것이다.그렇게 되면 하루아침에 구름 위를 걷게 되는 것이다.“호걸 씨 정말 멋있다. 엄마가 아프다니까 바로 명의도 보내주다니.”“허 명의님 어서 이쪽으로 오세요!”이서우는 황급히 두루마기 영감을 어머니 침대 옆으로 모셨다.“어디가 불편하세요?”두루마기 영감이 물었다.“두통이 심해요! 너무 아파서 머리가 깨질 것 같아요!”조국화는 이제 온몸이 나른해졌다.“제가 볼게요.”두루마기 영감이 침대 옆에 앉더니 맥을 보기 시작했다.한참 후에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맥박을 보니 큰 문제는 없는 것 같고, 수면 부족과 스트레스가 너무 심한 것 같습니다.”두루마기 영감은 약병을 꺼내더니 흰 알약 세 알을 건네며 말했다.“하루에 한 알씩 사흘 동안 복용하면 괜찮을 겁니다.”“허 명의님 감사합니다!”조국화의 얼굴은 기쁨에 넘쳤다.“역시 명의님이십니다. 많은 의사들이 치료하지 못한 것을 명의님 덕분에 쉽게 고칠 수 있게 되였어요.”장경화는 아부를 시작했다.“흠! 그 자식은 엄마가 피를 토할 거라고 하더니! 그런 사기꾼은 총살해야 돼.”이서우가 분개하며 말했다.“맞아! 병만 나으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조국화는 말하며
의원 문 앞.“진우 씨, 잠깐만!”이청아는 종종걸음으로 유진우를 쫓아가 덥석 잡았다.“왜 그렇게 빨리 가? 하마터면 못 쫓아올 뻔했잖아!”“미안. 당신네 저 두 친척분 수발을 난 못 드니까 다른 사람 알아봐.”유진우가 덤덤하게 말했다. 저런 진상들은 피하는 게 상책이다.“진우 씨더러 꼭 치료하라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예민할 필요 있어?”이청아가 두 눈을 부릅떴다.“난 또...”“또 뭐? 당신한테 웃으라고 강요하면서 억지 부릴 줄 알았어?”이청아가 퉁명스럽게 말했다.“콜록콜록. 그건 아니지만.”유진우가 멋쩍게 웃었다. 사리에 밝은 그녀의 모습이 오히려 더 어색했다.“됐어. 이 일은 저 사람들의 잘못이라는 거 알아. 앞으로는 최대한 멀리 피하는 게 좋을 거야.”이청아가 선의의 충고를 했다.“저들은 강북 사람들이야. 게다가 재벌이라서 가진 권력이 어마어마해. 진짜 저 사람들이랑 등을 돌리면 조선미 씨도 당신을 지켜주지 못할 수 있어.”“그래? 듣기엔 엄청 대단한 것 같은데?”유진우는 그저 덤덤하게 웃기만 할 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대단하기만 한 줄 알아? 강북의 3대 재벌 모두 백 년 이상의 역사를 이어온 가문들이야. 인맥과 세력이 군부대, 정계, 상업계에 전부 분포되어 있어서 그야말로 거물 중의 거물이지!”이청아가 귀밑머리를 뒤로 넘겼다.“원래는 당신이랑 같이 저 사람들한테 빌붙을 생각이었는데 이미 얼굴을 붉혔으니 어쩌겠어. 당신이 출세할 기회를 제 발로 걷어찬 거지, 뭐.”“아주 고맙네, 그래. 그런 기회라면 됐어.”유진우가 어깨를 들먹였다.“흥! 남의 호의를 개떡으로 알아서야 원.”이청아가 그를 째려보았다. 그녀의 표정이 뭔가 평소랑 다른 것 같았다.“야, 유진우! 거기 서!”그때 이서우가 갑자기 땀을 뻘뻘 흘리며 헐레벌떡 뛰어왔다.“우리 엄마가 방금 피를 토했어. 지금 당장 가서 치료해! 이건 명령이야!”유진우를 쫓아오려고 그녀는 엘리베이터도 타지 않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달려왔다.“아까는 죽고 싶
“우리 엄마 병이 다 치료되면 그때 다시 결판을 내겠다!”이서우가 날카롭게 쏘아붙였고 눈빛도 매우 사나웠다.“마음대로 해.”유진우는 어깨를 들먹이며 한껏 여유를 부렸다.“너...”말문이 막힌 이서우는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분통이 터졌지만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아무것도 없었다.두 사람이 한창 대치 중이던 그때 의원 문 앞이 갑자기 시끄러워졌다.고개를 돌려보니 중무장한 차들이 위풍당당하게 달려오고 있었다. 전부 군부대의 차량이었는데 순식간에 분위기를 압도했다. 차에 탄 호위병들 모두 총에 실탄을 장착한 채로 살기를 내뿜었다. 그들이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은 겁에 질려 저도 모르게 뿔뿔이 흩어졌다.“이상하네? 왜 군대까지 출동했지? 수배범을 잡으려고 그러나?”이청아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렸고 이서우도 어안이 벙벙했다.“당장 포위해!”그때 맨 앞에 있는 장교가 명을 내리자 호위병들은 재빨리 차에서 내려 유진우 등 세 사람을 포위했다.수많은 검은 총구가 그들을 겨누었다.“뭐야?”이청아는 너무 놀란 나머지 얼굴빛이 창백해졌다. 원래는 별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여 그냥 구경이나 하려던 참이었는데 호위병들이 그들을 포위할 줄은 생각지 못했다.“놀라지 마, 당신이랑 상관없어. 저들의 목표는 나야.”주변을 쭉 둘러보던 유진우는 단번에 상황을 파악했다.“진우 씨를 잡으러 온 거라고? 왜?”이청아가 경악한 얼굴로 물었다. 유진우가 대체 무슨 죄를 지었기에 군부대까지 직접 나섰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별일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유진우가 덤덤하게 웃어 보였다.“별일이 아니라고?”이청아가 눈살을 찌푸렸다.‘군부대까지 출동했는데 별일이 아니라고?’“유진우! 많은 사람 앞에서 사람을 해친 극악무도한 짓을 벌인 너를 명을 받고 잡으러 왔다! 거역했다간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장교가 싸늘하게 말했다. 그의 살기에 이청아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장교님, 뭔가 오해하신 거 아니에요?”그녀가 떠보듯이
“필요 없어.”유진우가 단칼에 거절했다.“필요 없다고?”그의 말에 이서우는 저도 모르게 멈칫했다. 생사가 오가는 상황에도 그가 거절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죽는 게 두렵지도 않단 말인가?“진우 씨! 너무 감정적으로 그러지 마!”이청아가 그의 옷소매를 잡아당기며 다급하게 설득했다.“당신이 무슨 죄를 지었든 일단 사는 게 중요해. 이씨 가문이 군부대에 인맥이 넓어. 지금 당신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은 서우 언니밖에 없어.”“저 여자도 날 구하지 못해. 그리고 날 구할 필요도 없고.”유진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차량 번호와 깃발을 보니 강남의 군부대에서 온 자들이라 강북 쪽에서는 아예 손을 쓸 수가 없다. 그리고 강천호가 관계까지 동원하여 일을 크게 벌였는데 유진우를 쉽게 놓아줄 리가 없었다.“흥! 죽을 때가 됐는데도 입만 살아서는!”이서우는 턱을 들고 하찮다는 듯이 그를 쳐다보았다.“너 아직 문제의 심각성을 모르는구나. 우리 이씨 가문의 도움 없이는 너 평생 못 나와!”“진우 씨, 내가 이렇게 빌게. 제발 서우 언니가 하라는 대로 해.”이청아는 애가 타서 안절부절못했다.민간인은 고위급 간부와 싸워서 절대 이기지 못한다. 군부대의 고위급 간부가 일반인을 상대하기란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이다. 어쩌면 단 한마디 말로 쥐도 새도 모르게 그를 없앨지도 모른다.“걱정하지 마, 그냥 가서 차나 한잔 마시다가 금방 나올 거야. 먼저 돌아가 있어.”유진우가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군부대까지 출동했으니 체면 정도는 봐줘야 했다.“쓸데없는 소리 집어치워! 데려가!”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낸 장교가 명을 내리자 부하가 유진우에게 수갑을 채우고 차에 태웠다. 그들은 다시 위풍당당하게 떠났다.전체 과정이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고 머뭇거림이라곤 없었다.이청아는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어 애가 타기만 했다. 그녀의 인맥으로는 군부대의 고위급 간부를 만날 수도 없었기에 유진우를 구하기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였다.문득 뭔가 떠오른 이청아는 재빨리
“무슨 일이야?”조선미가 살짝 멈칫했다.“방금 전해들은 소식인데 유진우 씨가 군부대 사람한테 잡혀갔대.”조아영은 사건의 자초지종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설명을 들은 조선미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군부대까지 동원한 걸 보면 배후 세력이 절대 만만한 사람은 아니야.”“언니, 혹시 강씨 가문의 짓이 아닐까?”조아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어제 진우 씨가 강씨 가문에서 사람을 마구 죽이고 강천호의 아들까지 불구로 만들었으니 강씨 가문에서 절대 가만있지 않을 거야.”“이 일 강씨 가문이랑 연관 있는 건 확실해. 하지만 강천호의 인맥으로 군부대까지 동원한다는 건 말이 안 돼. 아무래도 선우 가문에서 힘을 보탠 것 같아.”조선미가 생각에 잠긴 얼굴로 말했다.강준혁의 약혼녀가 선우현정이기에 선우 가문에서 절대 모르는 척하지 않을 것이다. 3대 가문의 일인자인 선우 가문은 강남의 군부대를 휘어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여 아무 배경도 없는 자를 처리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조선미는 유진우에게 언젠가는 일이 생길 거라고 생각했었지만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다.“언니, 우리 인제 어떡해?”조아영이 떠보듯이 물었다.“일단 진우 씨가 어디 갇혔는지 알아봐. 그다음 일은 내가 알아서 할게.”말을 마친 조선미는 곧장 의원을 나섰다.전쟁의 서막이 이미 열렸다. 이번에는 강씨 가문과 무조건 끝장을 보겠다고 다짐했다....그 시각, 천호 리조트.강준혁이 두 팔에 두꺼운 붕대를 칭칭 감은 채 창백한 얼굴로 침대에 누워있었다. 맥없이 축 늘어진 모습이 참으로 안타까웠다.그의 옆에 비범한 분위기를 풍기는 한 영감이 앉아있었는데 침술 치료에 몰두한 나머지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강천호와 강향란은 혹시라도 방해될까 찍소리도 내지 못하고 문 앞에서 조용히 지켜보기만 했다.눈앞의 이분이 바로 명성이 자자한 명의 강보현이었다!한참 후, 강보현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강천호가 참다못해 먼저 입을 열었다.“명의님, 우리 아들 상황이 어떤가요?”“아드
그 시각, 어느 한 군사 기지의 연병장.유진우는 포승줄로 기둥에 묶여있었고 몸에는 팔뚝만한 쇠사슬이 채워져 있었다. 전부 철로 만든 것이라 무척이나 단단했다.오늘따라 뙤약볕이 쏟아졌고 그의 주변에는 총을 지닌 무장 병사들이 물샐틈없이 그를 포위하고 있었다.하지만 유진우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표정으로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전혀 기죽지 않은 그의 여유로운 모습에 병사들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일반인이 이런 상황에 맞닥뜨렸다면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게 정상인데 유진우는 예외였다.“네가 유진우야?”그때 장군 제복을 입은 둥글둥글한 얼굴의 남자가 부하들과 함께 걸어왔다.“날 잡아 오기까지 했으면서 내가 누군지도 몰라?”유진우가 덤덤하게 말했다.“쓸데없는 소리 집어치우고 장군님께서 묻는 물음에만 대답해!”한 장교가 호통 쳤다.“그래. 내가 유진우다.”“그래...”둥근 얼굴의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덤덤하게 말했다.“제대로 잡아 왔으니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일단 채찍으로 50대 후려쳐.”그의 명령에 장교들은 저도 모르게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군의 채찍은 일반 채찍과 확연히 달랐다.일반인은 서너 대만 맞아도 쓰러지고 열 대 만에 정신을 잃게 된다. 스무 대를 맞으면 죽지는 않더라도 남은 인생은 휠체어 신세를 져야 한다. 그리고 50대는 지금까지 버틴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기세를 보아하니 오늘 유진우를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는 뜻인 것 같다.“잠깐.”그때 유진우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이봐, 장군. 아무것도 묻지 않고 다짜고짜 채찍부터 날리는 건 규정에 어긋나는 거 아닌가?”“이곳에선 내 말이 곧 규정이야!”둥근 얼굴의 남자가 우쭐거리며 싸늘하게 말했다.“너 같은 천민은 죽으라고 하면 죽어야지,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지금 권세를 등에 업고 사람을 괴롭히겠다는 거야?”유진우가 눈을 가늘게 떴다.“괴롭히면 뭐? 여기 총이 수백 대나 있는데 너 하나 못 해결하겠어?”둥근 얼굴의 남자가 코웃음을 쳤다.“총이 많다고
문관옥이 어찌 할 바를 몰라 할 때 발밑의 땅이 갑자기 진동하기 시작했다.그와 함께 약간의 ‘쿵쿵’ 소리가 들려왔다.“뭐야? 지진이 난 건가?”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무관옥이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자 후방의 산림 속에서 언제부터인가 수천, 수만의 병마들이 나타나 있었다.눈길이 닿는 곳마다 빽빽하게 가득 찬 병마들로 산과 들이 전부 뒤덮여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이 거대한 병력은 하나로 합쳐진 단일 부대가 아니었다.오히려 여덟 개의 정예 부대가 각기 다른 방향에서 몰려들고 있었다.땅의 진동은 바로 이 여덟 부대가 달려오며 만들어낸 소리였다.“저거 봐요! 저게 뭐예요?”“맙소사! 엄청난 규모잖아요! 산 전체가 덮일 것 같아요!”“저기 깃발을 봐요. 우리 지원군인 것 같아요!”“뭐라고요? 지원군이 왔다고요? 정말 잘됐어요!”사람들은 상황을 자세히 살핀 뒤 크게 기뻐하며 외쳤다.너무나 강력한 힘을 지닌 유장혁을 그들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더 많은 병력의 지원이 반드시 필요했으며 그들이 바라던 대로 엄청난 지원군이 도착한 것이다.사람을 압도하는 수적 우위로 유장혁을 포위하거나 아니면 절대 강자가 나서서 그를 제압해야만 했다.현재 이곳에 도착한 방대한 군력은 무려 10만에 달했다. 사람마다 한 개 기술을 써도 유장혁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하하하...팔방제후에요! 팔방제후의 병력이 도착했어요!”상황을 제대로 파악한 무관옥은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연경에는 세 개의 주요 군사력이 존재한다. 첫째는 치안을 유지하는 성위군 둘째는 자금성 안에서 황족을 보호하는 금위군이다.그리고 셋째가 바로 외성에서 제8대 총수가 지휘하는 특수 군대인데 이는 연경의 안전을 지키고 반란이나 사태를 진압하기 위해 존재하는 부대이다.팔방 제후라고 불리는 이 총수는 높은 관직이 아니지만, 실제 권력은 거의 제1제후와 맞먹는다.그래서 이들은 종종 ‘팔방제후’라는 존칭으로 불리며 고위 관료들도 이들에게 함부로
“으윽!”전신 법상이 산산조각 난 순간 한비영은 마치 심각한 타격을 입은 듯 입에서 피를 쏟아냈다.얼굴은 순식간에 창백해졌고 몸은 힘이 빠진 듯 휘청거렸다. 마치 기운을 전부 뺏긴 것 같은 모습이었다.“어떻게 이럴 수 있지? 내가...내가 졌다고?”한비영은 자신의 두 손을 바라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그는 늘 다른 사람들보다 앞서 있었고 어떤 천재가 나타나더라도 그 앞에서는 빛을 잃었다.자신이 무적이라 믿었고 누구도 자신의 적수가 될 수 없으리라 자부했다.그러나 오늘 한비영은 아주 처참하게 패배했다.천신사상결의 모든 기술을 남김없이 펼쳤지만, 결국 상대를 넘지 못했다.반면 유장혁은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매 순간 정면으로 맞섰다.이번 싸움은 오직 절대적인 힘과 기술의 대결이었고 속임수 같은 건 없었다.결과적으로 한비영이 졌고 유장혁은 강력한 실력으로 천신사상결을 완전히 깨부수며 자신의 불패 신화를 끝장냈다.한비영은 자신이 졌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맙소사! 유장혁이 이겼다고요? 유장혁이 한비영을 이겼다고?”“천신사상결을 막아낸 사람이 있다니 이건 기적이에요!”“이게 바로 전설 속의 천재인가? 정말 두렵군요!”“...”유장혁이 당당히 서 있는 모습을 보며 주변 사람들은 모두 충격에 휩싸였다.그들은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유장혁의 압도적인 존재감에 경악했다.한비영마저 이길 수 없다면 이들 중 유장혁을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젠장! 천하회의 도련님이라는 사람인데 이런 망신을 당하다니!”문관옥은 얼굴이 어두워지며 불쾌감을 감추지 못했다.문관옥은 한비영과 유장혁이 서로 치명적인 상처 입기를 기대했지만, 결과는 완전히 예상 밖이었다.한비영은 이미 심각한 부상을 입었고 유장혁은 멀쩡한 상태였다.유장혁이 얼마나 숨겨온 실력을 갖추고 있는지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천신사상결은 정말 대단한 기술이에요. 도련님께서 대 마스터 경지에 도달했다면 나는 이 기술을 막지 못했을지도 몰라요.”유장혁은 담담히 말
“왔다! 드디어 천신사상결의 최강 필살기가 나왔어요!”“전설에 따르면 전신의 분노를 본 사람은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다죠. 오늘 우리가 그것을 직접 볼 줄은 몰랐어요!”“천신사상결에 의해 죽는다면 그 또한 유장혁의 명성에 어울리는 최후가 될 것 같아요.”“...”공중에 떠올라 위풍당당한 모습을 드러낸 한비영을 바라보며 사람들은 두려움과 경외심에 휩싸였다.천신사상결은 천하회의 종주가 세상에 이름을 알린 필살기로 무림의 5대 필살기 중 하나로 꼽힌다.사람들은 그저 소문으로만 들어왔을 뿐 실제로 본 적은 없었다.조금 전 보여준 세 가지 기술만으로도 이미 천지개벽할 정도였는데 이제 마지막 기술이 펼쳐질 순간이었다. 그 위력이 어느 정도일지 아무도 가늠할 수 없었다.“전신의 분노!”공중에 떠 있는 한비영이 갑자기 포효했다.순간 한비영의 몸에서 전신 법상이 폭발적으로 나타났고 순식간에 키가 30미터가 넘는 거대한 거인으로 변했다.유진우는 그 발끝에서 마치 개미처럼 보잘것없어 보였다.마치 발을 한 번 내디디기만 해도 간단히 짓밟힐 것처럼 보였다.“검법 파장술!”한비영은 천천히 손을 들어 던지는 자세를 취하더니 거칠게 손을 아래로 내리눌렀다.그의 머리 위 거대한 법상 역시 똑같은 동작을 취했지만, 그 손에는 푸른 번개로 뒤덮인 거대한 창이 들려 있었다!“쿵!”번개 창은 마치 미사일처럼 유진우를 향해 내리꽂혔다.순식간에 천지가 뒤바뀌고 공간이 뒤틀렸다.극에 달한 공포스러운 위압감이 순식간에 온 사방을 덮쳤다.마치 하늘에서 신이 벌을 내려주듯 사람들을 공포와 전율로 몰아넣었다.번개 창이 가까이 다가오기도 전에 그 강력한 힘은 이미 대지를 붕괴시키고 바위를 산산조각 냈다. 백 미터 이내에 있던 풀과 나무는 모두 먼지로 변했다.멀리서 지켜보던 무사들은 겁에 질려 연신 뒤로 물러나며 얼굴에는 공포가 가득했다.“강린!”번개 창이 내려오는 순간 유진우의 몸에 새겨진 강린 문신이 갑자기 빛을 발했다.검은 불빛이 그의 몸에서 터져 나와 거대한
허공에 드리운 거대한 형상은 온몸이 불길에 휩싸여 있었고 뜨거운 열기는 대지를 녹일 듯 위협적이었다.“화신의 분노!”기운이 최고조에 달하자 한비영은 양손을 앞으로 세차게 밀어내었다.그의 등 뒤에 나타난 화신 또한 똑같이 손바닥을 내지르는 동작을 취했다.곧이어 새빨간 불꽃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화염 용이 하늘로 솟구치며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유진우를 향해 맹렬히 돌진했다.“주작!”유진우는 기운을 전환하며 몸에서 뿜어져 나온 현청진기를 머리 위로 끌어올렸다. 순식간에 그의 머리 위에는 거대한 불꽃의 신조 주작이 모습을 드러냈다.“끼오!”주작은 커다란 날개를 힘차게 펼치며 수많은 불빛을 흩뿌렸다. 화살처럼 치솟아 오른 주작은 한비영의 용과 정면으로 충돌했다.“쾅!”굉음과 함께 두 거대한 존재는 격렬히 부딪혔다.주작은 폭발하여 수많은 불꽃 조각으로 흩어졌고 용 또한 흔적만 남긴 채 사라졌다. 두 사람의 대결은 다시 한번 무승부로 끝났다.이 결과를 본 한비영의 표정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그는 세 번째 기술을 준비하며 자세를 가다듬었다.한비영은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그의 배는 바다를 삼키는 고래처럼 부풀어 오르며 천지의 영기를 거칠게 빨아들였다.그 순간 그의 등 뒤에 검은 구름 같은 형상을 띤 신상이 나타났다.이 신상은 흉측한 얼굴에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무시무시한 위압감을 발산하고 있었다.멀리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무사들은 공포에 질려 다리가 후들거리고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 기세는 감당할 수 없는 무게로 짓눌러왔다.“천둥의 분노!”한비영이 긴 함성을 내지르며 허공을 향해 강렬한 주먹을 내질렀다.그의 등 뒤의 천둥의 형상 또한 거대한 주먹을 휘둘러 유진우를 향해 내리쳤다.그 주먹은 마치 태산이 내려앉는 듯한 기세로 막강한 압박감을 뿜어냈다.“청룡!”유진우는 다시 한번 몸속의 현청진기를 뿜어내 머리 위에 푸른 청룡을 소환했다.푸른 용은 생동감이 넘쳤으며 비늘 하나하나가 빛을 받아 찬란하게 반짝였다.용의 신비롭
“너희들 생각엔 한비영이랑 유진우 둘 중에 누가 더 셀 것 같아?”“만약 두 사람 모두 전성기 시절의 실력대로라면 아마 비등비등하지 않을까 싶은데. 결국은 누가 더 전략을 잘 짜느냐가 관건이겠지만.”“말도 안 돼! 당연히 한비영 도련님께서 훨씬 월등하시지! 유진우는 이미 한물갔어. 이제는 한비영 도련님께서 진정한 천하제일 천재란 말이야!”“나도 도련님께서 이기실 것 같아. 어쨌든 유진우는 방금까지 싸워서 체력을 다 써버렸으니 꽤 지쳤을 거야.”“...”대치 중인 한비영과 유진우를 바라보며 무인들은 귓속말로 여러 추측들을 주고받았다.두 사람 모두 알아주는 천재로서 결코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이런 두 사람이 공개적으로 맞붙는다고 하니 그 누가 기대를 품지 않을 수 있으랴.물론 대다수는 한비영의 승리를 예상했다.한비영은 최근 몇 년간 천하에 이름을 떨치며 대단한 기세를 뽐냈고 자질로 봤을 때는 이미 무적이었다.그 반면, 유진우도 과거엔 알아주는 무인이었지만 지금의 한비영과 비교하기엔 역부족으로 보였다.“그래, 싸워라, 싸워. 얼른 너희 둘이 싸우다가 둘 다 죽거나 크게 다쳐야 내가 얻는 게 있지.”문관옥은 두 사람을 조롱하는 듯한 냉소를 지었다.생사가 걸렸는데 아직까지 무슨 무림인들의 규칙을 지킨다고 설쳐대는 모습이 너무 우스웠다.전략으로 상대의 빈틈을 노려 승리를 쟁취하는 것이 결투의 기본 상식이거늘.“유진우, 난 지금부터 천신사상결을 사용할 거다. 잘 사리는 게 좋을 거야.”“받아라!”한비영은 경고 한 마디를 마친 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공격을 시작했다.그의 몸에서는 강렬한 기운이 폭발하더니 푸른빛의 잔상이 등 뒤에서 뿜어져 나왔다.그 잔상은 여섯에서 일곱 미터에 달하는 엄청난 크기로 마치 신마와 같은 위풍당당하고도 압도적인 위압감을 주었다.“세상에, 시작부터 천신사상결이라니. 아무래도 도련님께서 싸움을 한 번에 끝내실 생각인가 보구나!”“천신사상결이라니, 저건 천하에 위세를 떨친 기술이야. 신이 앞을
백발의 노인은 구세주를 본 듯한 표정을 지으며 기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경원종이 유명하다고는 해도 천하회와 비교하면 그 차이는 말도 안 될 정도였다.이미 2년 전부터 한비영이 대 마스터에 접어들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이런 절세의 천재는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존재였다.“한비영 도련님이 나서주셨으니 이제 유진우도 도망치지는 못할 거야!”미모의 부인은 기쁨으로 두 눈을 반짝였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도망쳐야 하나 싶었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한비영이 와주었으니 이제는 마음 놓고 전투를 지켜볼 수 있을 것이다.“한비영 도련님을 뵙습니다!”한비영이 땅으로 착지하자 사람들은 일제히 공손한 인사를 건네며 존경을 표했다.“다들 물러나 계십시오. 이제 전투는 제가 맡습니다.”한비영이 큰 소리로 말했다.“네!”사람들 역시 큰 소리로 대답하며 양옆으로 물러서 자리를 내어주었다.위험을 피하면서도 공로를 나눌 수 있는 이 상황에 사람들은 기꺼이 옆으로 물러나 한비영의 실력을 구경할 준비를 마쳤다.“도련님, 유진우는 절대 쉬운 상대가 아닙니다. 혼자서 상대하시기엔 무리일 수도 있으니 같이 힘을 합치는 건 어떨까요?”“관옥 도련님, 호의는 감사하지만 저는 혼자 싸우는 걸 좋아해서요. 그러니 도련님께선 잠시 쉬시는 게 좋을 겁니다.”“하지만 비영 도련님, 이번 일은 중대한 사안입니다. 만일의 사태를 위해 함께 싸우시는 편이 어떠신지요.”문관옥이 다시 입을 열었다.“왜 그러십니까, 도련님께선 이 한비영을 못 믿으신다는 겁니까? 설마 제가 유진우 하나 상대 못 할 것 같나요?”한비영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도련님의 실력을 의심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지금은 자존심을 내세우실 때가 아니라 임무가 우선입니다. 만에 하나 문제라도 생긴다면 도련님 혼자 책임을 지시기 버거울 겁니다.”문관옥이 경고하듯 말했다.“저는 무림인으로서 무림인들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겁니다. 도련님께서 책임에 대해 걱정하실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이봐요!”문관
“응?”유진우의 시선이 느껴지자 문관옥은 밀려오는 불안함에 눈꺼풀이 떨렸다.조금 전, 백호랑이 시간을 끄는 틈을 타 그는 이미 단약을 삼켜 빠르게 상처를 치유하는 동시에 체력 역시 회복하고 있었다.몇 분 정도 지나자 상처에서 느껴지는 불편함은 금세 사라졌고 체력도 빠르게 돌아왔다.그 반면, 유진우는 계속 이어지는 전투에 엄청난 체력을 소모했을 것이다.이제 역전된 기세에 문관옥은 어쩌면 자신에게도 승산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그런 생각이 들자 문관옥은 더 자신감을 얻었다.물론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여러 명이 한꺼번에 공격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비겁한 방식일지라도 단독으로 모든 위험을 감수하는 것보다는 나았다.“영웅 여러분, 유진우의 기력이 거의 다 소진되었을 겁니다. 우리 다 같이 힘을 합치기만 한다면 분명 죽일 수 있을 겁니다.”문관옥이 큰 소리로 외쳤다.그 말에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유진우의 모습은 문관옥의 말처럼 체력이 부족해 보이지도 않았다. 그런 유진우에게 무모하게 덤비는 것은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것이나 다름없었다.백호랑이 데리고 온 군사들의 시신은 아직도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 광경은 피로 새겨진 교훈이었다. 그 누가 감히 선뜻 나설 수 있을까?“오늘의 임무를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리스크가 있어야만 성공이 따르는 겁니다. 저놈만 죽이면 여러분들은 평생의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문관옥이 차분한 말투로 사람들을 유혹했다.그 말에 사람들의 눈빛이 이글거리기 시작하더니 각자의 얼굴에 의욕이 넘쳤다.유진우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결국은 혼자일 뿐이었고 방금 몇 차례의 전투를 통해 체력도 많이 소모되었을 것이다.그들이 힘을 모아 공격하기만 한다면 승산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죽는 게 무섭지 않다면, 어디 한 번 앞으로 나와 봐.”유진우가 앞으로 한 걸음 나서자 사람들은 놀란 기색으로 뒷걸음질 쳤다.조금 전의 혈투를 똑똑히 목격한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이미 두려움으
“윽...”그때 문관옥이 몸을 부르르 떨더니 갑자기 피를 내뿜었다.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그는 손에 든 빙화검을 바닥에 꽂아 가늘게 떨리는 몸을 지탱했다.마지막 공격에서 문관옥이 크게 다친 것이 분명했다.“뭐라고요?”이 광경을 본 사람들이 경악했다.다들 눈이 휘둥그레져서 믿을 수 없어 하는 모습이었다.‘문관옥이 졌다고? 말도 안 돼!’문관옥은 4대 군신들의 우두머리였고 전쟁터에서 많은 사람들과 싸워왔었다.방금 공격에서 보여준 건 대 마스터가 되어야만 쓸만한 기술들이었다.‘그런 고수가 어떻게 질 수 있어? 유진우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문관옥도 이길 수 없을 만큼?’“계속 실력을 숨기고 있었어?”문관옥은 경악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그가 전력을 쓴 공격도 쉽게 막아냈으니 말이다.문관옥은 유진우를 쉽게 죽일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죽이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이 다쳐버렸다.‘정말 말도 안 돼!’‘어떻게 된 거지? 유진우는 분명 사라진 지 10년이나 지났어. 서경왕부의 도움이 없는데 어떻게 이 정도로 강한 실력을 갖춘 거지?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야?’“내가 실력을 숨긴 게 아니라 네가 너무 약한 거야. 제대로 된 싸움으로 받아들이지도 못할 만큼.”유진우가 담담하게 말했다.“너!”문관옥은 이를 악물고 뭐라 말하려 했지만 또 피를 뿜었다.“4대 도련님 중에서 네가 최약체 아니야?”유진우가 말했다.실력으로만 봐서는 천하회의 한비영이 문관옥보다 훨씬 나았다.“날 너무 업신여기는 거 아니야?”화가 난 문관옥이 명령했다.“백호랑! 내 명을 들어. 당장 이놈을 죽여!”“돌진!”명령을 받은 백호랑들은 칼을 들고 유진우를 향해 돌진했다.이 백호랑들은 모두 문관옥이 정성껏 길러낸 호위무사들로 충성심이 강할 뿐만 아니라 실력도 강했다.물론 그도 백호랑이 정말 유진우를 죽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공격하라고 명령한 건 시간을 끌면서 유진우의 기력을 소모하기 위해서였다.이번 작전에 참여한 세력들은
“대 마스터...문 도련님의 한 방은 분명 대 마스터에 버금 가는 실력입니다!”채지웅은 그를 올려다보며 놀라움이 가득 찬 표정으로 말했다.그는 유진우도 충분히 강하다고 생각했지만 문관옥이 더 강할 줄은 몰랐다.‘마스터의 경지로 대 마스터의 실력을 발휘하다니... 말도 안 돼. 역시 천교는 다르다는 건가?’“이런 기술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온 세상에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노윤하는 입을 딱 벌린 채 충격을 금치 못했다.그녀는 스스로 자신이 고수라고 생각했지만 문관옥 같은 고수 앞에서 자기는 정말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너무 대단하시네요. 제 실력이 문 도련님 절반이라도 됐으면 얼마나 좋을까요...”사호문 제자들도 깜짝 놀랐을 뿐만 아니라 속으로 경외심을 느꼈고 뛰어난 실력을 갖춘 문관옥을 부러워하는 것 같았다.인제야 그들은 마침내 천교가 어떤 사람인지 깊이 깨달았다.“뭐가 그렇게 대단하다고...”문관옥이 칼을 휘두르는 걸 보면서 유진우는 피하지 않았다. 그저 살짝 스텝을 밟고는 칼을 들어 앞으로 찌를 뿐이었다.군더더기 없는 동작이었지만 화려한 테크닉도 없는 그저 단순한 공격이었다.그러나 문관옥이 들고 있는 거대한 칼날에 비하면 유진우는 코끼리 앞에 선 개미처럼 작고 약해 보였다. 입김만 불어도 부서질 듯이 말이다.“죽어!”유진우가 정면으로 맞서자 문관옥은 칼을 든 손에 힘을 더 세게 주었다. 그리고는 양손에 칼을 꼭 쥐고 아래로 내리쳤다.쾅 하는 소리와 함께 유진우의 칼끝이 무관옥의 칼날을 정확하게 찔렀다.순간, 공포스러운 파동이 하늘 높이 치밀어 오르더니 사방으로 휘몰아쳤다.지나가는 곳에 있던 꽃과 나무는 온데간데없이 증발해 버렸고 바닥마저도 한층 벗겨져 버렸다.관전하는 무사들도 쓰러져서 곤두박질쳤다.모든 것이 가라앉고 나서야 무사들이 바닥에서 일어났다. 저 멀리에 또 거대한 구덩이가 생겼다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구덩이 안에는 흑백의 그림자로 보이는 두 사람이 대치하고 있었다.흰색은 유진우였고 검은색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