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유진우를 보자마자 이서우는 자신도 모르게 어리둥절해하며 온 얼굴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유진우 역시 매우 놀란 듯 묘한 표정을 지었다.이청아가 말하는 친척이 이 두 사람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뭐야, 서로 아는 사이야?”이청아는 이상한 표정으로 그들을 둘러보았다.“알기만 하겠어?”이서우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어제 우릴 때린 놈이야!”“뭐?”이서우의 말에 모두 깜짝 놀랐다.“서우야, 너 잘못 본 거 아니야?”장경화가 조심스럽게 물었다.“어떻게 잘못 볼 수 있어요? 이 사람 얼굴은 재가 되어도 알아볼 수 있어요! 그리고 엄마 두통도 이 사람이 뺨을 때려서 생긴 거예요!”이서우의 표정은 매우 사나웠다.“맞아! 지금 두통도 저놈이 나를 때려서 생긴 병이 틀림없어. 저놈 빨리 붙잡아!”병상에 누워 있던 조국화도 포효했다.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어제 일 때문에 계속 화가 났었는데 오늘 이렇게 만나다니?“진우 씨, 어떻게 된 거야? 왜 때렸어?”이청아는 깜짝 놀랐다.원래는 유진우를 한번 보여주려고 했는데, 서로 원한이 있을 줄은 몰랐다.“맞을 짓을 해서 때린 거야!”유진우는 아주 솔직하게 말했다.“어제 저 사람들은 역주행을 하다가 사람을 죽일 뻔했어. 그러고도 사과는 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오만하게 굴어서 도저히 참을 수 없어 한 대씩 때렸어.”“이 빌어먹을 것! 이 두 사람이 누군지 알아? 무슨 배짱으로 두 사람한테 손을 대?”장경화는 순식간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장경화의 부귀신을 때렸다는 것은 그녀의 얼굴을 때린 것과 같았다.“다 필요 없어요, 당장 신고해요!”이서우가 소리쳤다.“잠깐만!”이청아는 즉시 말리며 말했다.“오해가 있었을 거예요. 그러니 일을 크게 만들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오늘 진우 씨가 숙모님 병을 고쳐드려서 어제 일은 만회할 거예요.”“흠! 누가 저놈한테 병을 고쳐 달래? 치료하다가 문제가 생기면 네가 책임질 수 있어?”조국화가 분노하며 말했다.“잘 됐네요. 나도
순간 세 사람의 얼굴은 모두 기쁨으로 가득 찼다.이름만 들어도 비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이런 명의야말로 그들의 신분에 걸맞은 존재라고 생각했다.“현아, 허 명의님은 중주의 대단한 분이신데 어떻게 모셔온 거야?”장경화가 호기심에 물었다.“저는 그런 능력이 없고요. 허 명의님을 모신 건 용씨 가문 도련님이에요.”이현이 웃으며 말했다.“용씨 가문 도련님이?”장경화의 눈이 번쩍 뜨였다.용씨 가문 도련님의 이름은 용호걸이고 용씨 가문은 중주의 귀족이었다.중주의 군부와 정계 모두에 인맥이 매우 두터웠다.가장 중요한 것은 용씨 가문과 강북 이씨 가문의 관계가 아주 밀접하다는 것이다.게다가 강북에서는 용호걸과 그의 딸을 혼인시키려고 한다.그의 딸만 동의하면 빠른 시일 내에 중주 대 가문에 시집갈 수 있다는 것이다.그렇게 되면 하루아침에 구름 위를 걷게 되는 것이다.“호걸 씨 정말 멋있다. 엄마가 아프다니까 바로 명의도 보내주다니.”“허 명의님 어서 이쪽으로 오세요!”이서우는 황급히 두루마기 영감을 어머니 침대 옆으로 모셨다.“어디가 불편하세요?”두루마기 영감이 물었다.“두통이 심해요! 너무 아파서 머리가 깨질 것 같아요!”조국화는 이제 온몸이 나른해졌다.“제가 볼게요.”두루마기 영감이 침대 옆에 앉더니 맥을 보기 시작했다.한참 후에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맥박을 보니 큰 문제는 없는 것 같고, 수면 부족과 스트레스가 너무 심한 것 같습니다.”두루마기 영감은 약병을 꺼내더니 흰 알약 세 알을 건네며 말했다.“하루에 한 알씩 사흘 동안 복용하면 괜찮을 겁니다.”“허 명의님 감사합니다!”조국화의 얼굴은 기쁨에 넘쳤다.“역시 명의님이십니다. 많은 의사들이 치료하지 못한 것을 명의님 덕분에 쉽게 고칠 수 있게 되였어요.”장경화는 아부를 시작했다.“흠! 그 자식은 엄마가 피를 토할 거라고 하더니! 그런 사기꾼은 총살해야 돼.”이서우가 분개하며 말했다.“맞아! 병만 나으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조국화는 말하며
의원 문 앞.“진우 씨, 잠깐만!”이청아는 종종걸음으로 유진우를 쫓아가 덥석 잡았다.“왜 그렇게 빨리 가? 하마터면 못 쫓아올 뻔했잖아!”“미안. 당신네 저 두 친척분 수발을 난 못 드니까 다른 사람 알아봐.”유진우가 덤덤하게 말했다. 저런 진상들은 피하는 게 상책이다.“진우 씨더러 꼭 치료하라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예민할 필요 있어?”이청아가 두 눈을 부릅떴다.“난 또...”“또 뭐? 당신한테 웃으라고 강요하면서 억지 부릴 줄 알았어?”이청아가 퉁명스럽게 말했다.“콜록콜록. 그건 아니지만.”유진우가 멋쩍게 웃었다. 사리에 밝은 그녀의 모습이 오히려 더 어색했다.“됐어. 이 일은 저 사람들의 잘못이라는 거 알아. 앞으로는 최대한 멀리 피하는 게 좋을 거야.”이청아가 선의의 충고를 했다.“저들은 강북 사람들이야. 게다가 재벌이라서 가진 권력이 어마어마해. 진짜 저 사람들이랑 등을 돌리면 조선미 씨도 당신을 지켜주지 못할 수 있어.”“그래? 듣기엔 엄청 대단한 것 같은데?”유진우는 그저 덤덤하게 웃기만 할 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대단하기만 한 줄 알아? 강북의 3대 재벌 모두 백 년 이상의 역사를 이어온 가문들이야. 인맥과 세력이 군부대, 정계, 상업계에 전부 분포되어 있어서 그야말로 거물 중의 거물이지!”이청아가 귀밑머리를 뒤로 넘겼다.“원래는 당신이랑 같이 저 사람들한테 빌붙을 생각이었는데 이미 얼굴을 붉혔으니 어쩌겠어. 당신이 출세할 기회를 제 발로 걷어찬 거지, 뭐.”“아주 고맙네, 그래. 그런 기회라면 됐어.”유진우가 어깨를 들먹였다.“흥! 남의 호의를 개떡으로 알아서야 원.”이청아가 그를 째려보았다. 그녀의 표정이 뭔가 평소랑 다른 것 같았다.“야, 유진우! 거기 서!”그때 이서우가 갑자기 땀을 뻘뻘 흘리며 헐레벌떡 뛰어왔다.“우리 엄마가 방금 피를 토했어. 지금 당장 가서 치료해! 이건 명령이야!”유진우를 쫓아오려고 그녀는 엘리베이터도 타지 않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달려왔다.“아까는 죽고 싶
“우리 엄마 병이 다 치료되면 그때 다시 결판을 내겠다!”이서우가 날카롭게 쏘아붙였고 눈빛도 매우 사나웠다.“마음대로 해.”유진우는 어깨를 들먹이며 한껏 여유를 부렸다.“너...”말문이 막힌 이서우는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분통이 터졌지만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아무것도 없었다.두 사람이 한창 대치 중이던 그때 의원 문 앞이 갑자기 시끄러워졌다.고개를 돌려보니 중무장한 차들이 위풍당당하게 달려오고 있었다. 전부 군부대의 차량이었는데 순식간에 분위기를 압도했다. 차에 탄 호위병들 모두 총에 실탄을 장착한 채로 살기를 내뿜었다. 그들이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은 겁에 질려 저도 모르게 뿔뿔이 흩어졌다.“이상하네? 왜 군대까지 출동했지? 수배범을 잡으려고 그러나?”이청아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렸고 이서우도 어안이 벙벙했다.“당장 포위해!”그때 맨 앞에 있는 장교가 명을 내리자 호위병들은 재빨리 차에서 내려 유진우 등 세 사람을 포위했다.수많은 검은 총구가 그들을 겨누었다.“뭐야?”이청아는 너무 놀란 나머지 얼굴빛이 창백해졌다. 원래는 별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여 그냥 구경이나 하려던 참이었는데 호위병들이 그들을 포위할 줄은 생각지 못했다.“놀라지 마, 당신이랑 상관없어. 저들의 목표는 나야.”주변을 쭉 둘러보던 유진우는 단번에 상황을 파악했다.“진우 씨를 잡으러 온 거라고? 왜?”이청아가 경악한 얼굴로 물었다. 유진우가 대체 무슨 죄를 지었기에 군부대까지 직접 나섰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별일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유진우가 덤덤하게 웃어 보였다.“별일이 아니라고?”이청아가 눈살을 찌푸렸다.‘군부대까지 출동했는데 별일이 아니라고?’“유진우! 많은 사람 앞에서 사람을 해친 극악무도한 짓을 벌인 너를 명을 받고 잡으러 왔다! 거역했다간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장교가 싸늘하게 말했다. 그의 살기에 이청아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장교님, 뭔가 오해하신 거 아니에요?”그녀가 떠보듯이
“필요 없어.”유진우가 단칼에 거절했다.“필요 없다고?”그의 말에 이서우는 저도 모르게 멈칫했다. 생사가 오가는 상황에도 그가 거절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죽는 게 두렵지도 않단 말인가?“진우 씨! 너무 감정적으로 그러지 마!”이청아가 그의 옷소매를 잡아당기며 다급하게 설득했다.“당신이 무슨 죄를 지었든 일단 사는 게 중요해. 이씨 가문이 군부대에 인맥이 넓어. 지금 당신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은 서우 언니밖에 없어.”“저 여자도 날 구하지 못해. 그리고 날 구할 필요도 없고.”유진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차량 번호와 깃발을 보니 강남의 군부대에서 온 자들이라 강북 쪽에서는 아예 손을 쓸 수가 없다. 그리고 강천호가 관계까지 동원하여 일을 크게 벌였는데 유진우를 쉽게 놓아줄 리가 없었다.“흥! 죽을 때가 됐는데도 입만 살아서는!”이서우는 턱을 들고 하찮다는 듯이 그를 쳐다보았다.“너 아직 문제의 심각성을 모르는구나. 우리 이씨 가문의 도움 없이는 너 평생 못 나와!”“진우 씨, 내가 이렇게 빌게. 제발 서우 언니가 하라는 대로 해.”이청아는 애가 타서 안절부절못했다.민간인은 고위급 간부와 싸워서 절대 이기지 못한다. 군부대의 고위급 간부가 일반인을 상대하기란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이다. 어쩌면 단 한마디 말로 쥐도 새도 모르게 그를 없앨지도 모른다.“걱정하지 마, 그냥 가서 차나 한잔 마시다가 금방 나올 거야. 먼저 돌아가 있어.”유진우가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군부대까지 출동했으니 체면 정도는 봐줘야 했다.“쓸데없는 소리 집어치워! 데려가!”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낸 장교가 명을 내리자 부하가 유진우에게 수갑을 채우고 차에 태웠다. 그들은 다시 위풍당당하게 떠났다.전체 과정이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고 머뭇거림이라곤 없었다.이청아는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어 애가 타기만 했다. 그녀의 인맥으로는 군부대의 고위급 간부를 만날 수도 없었기에 유진우를 구하기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였다.문득 뭔가 떠오른 이청아는 재빨리
“무슨 일이야?”조선미가 살짝 멈칫했다.“방금 전해들은 소식인데 유진우 씨가 군부대 사람한테 잡혀갔대.”조아영은 사건의 자초지종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설명을 들은 조선미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군부대까지 동원한 걸 보면 배후 세력이 절대 만만한 사람은 아니야.”“언니, 혹시 강씨 가문의 짓이 아닐까?”조아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어제 진우 씨가 강씨 가문에서 사람을 마구 죽이고 강천호의 아들까지 불구로 만들었으니 강씨 가문에서 절대 가만있지 않을 거야.”“이 일 강씨 가문이랑 연관 있는 건 확실해. 하지만 강천호의 인맥으로 군부대까지 동원한다는 건 말이 안 돼. 아무래도 선우 가문에서 힘을 보탠 것 같아.”조선미가 생각에 잠긴 얼굴로 말했다.강준혁의 약혼녀가 선우현정이기에 선우 가문에서 절대 모르는 척하지 않을 것이다. 3대 가문의 일인자인 선우 가문은 강남의 군부대를 휘어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여 아무 배경도 없는 자를 처리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조선미는 유진우에게 언젠가는 일이 생길 거라고 생각했었지만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다.“언니, 우리 인제 어떡해?”조아영이 떠보듯이 물었다.“일단 진우 씨가 어디 갇혔는지 알아봐. 그다음 일은 내가 알아서 할게.”말을 마친 조선미는 곧장 의원을 나섰다.전쟁의 서막이 이미 열렸다. 이번에는 강씨 가문과 무조건 끝장을 보겠다고 다짐했다....그 시각, 천호 리조트.강준혁이 두 팔에 두꺼운 붕대를 칭칭 감은 채 창백한 얼굴로 침대에 누워있었다. 맥없이 축 늘어진 모습이 참으로 안타까웠다.그의 옆에 비범한 분위기를 풍기는 한 영감이 앉아있었는데 침술 치료에 몰두한 나머지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강천호와 강향란은 혹시라도 방해될까 찍소리도 내지 못하고 문 앞에서 조용히 지켜보기만 했다.눈앞의 이분이 바로 명성이 자자한 명의 강보현이었다!한참 후, 강보현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강천호가 참다못해 먼저 입을 열었다.“명의님, 우리 아들 상황이 어떤가요?”“아드
그 시각, 어느 한 군사 기지의 연병장.유진우는 포승줄로 기둥에 묶여있었고 몸에는 팔뚝만한 쇠사슬이 채워져 있었다. 전부 철로 만든 것이라 무척이나 단단했다.오늘따라 뙤약볕이 쏟아졌고 그의 주변에는 총을 지닌 무장 병사들이 물샐틈없이 그를 포위하고 있었다.하지만 유진우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표정으로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전혀 기죽지 않은 그의 여유로운 모습에 병사들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일반인이 이런 상황에 맞닥뜨렸다면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게 정상인데 유진우는 예외였다.“네가 유진우야?”그때 장군 제복을 입은 둥글둥글한 얼굴의 남자가 부하들과 함께 걸어왔다.“날 잡아 오기까지 했으면서 내가 누군지도 몰라?”유진우가 덤덤하게 말했다.“쓸데없는 소리 집어치우고 장군님께서 묻는 물음에만 대답해!”한 장교가 호통 쳤다.“그래. 내가 유진우다.”“그래...”둥근 얼굴의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덤덤하게 말했다.“제대로 잡아 왔으니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일단 채찍으로 50대 후려쳐.”그의 명령에 장교들은 저도 모르게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군의 채찍은 일반 채찍과 확연히 달랐다.일반인은 서너 대만 맞아도 쓰러지고 열 대 만에 정신을 잃게 된다. 스무 대를 맞으면 죽지는 않더라도 남은 인생은 휠체어 신세를 져야 한다. 그리고 50대는 지금까지 버틴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기세를 보아하니 오늘 유진우를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는 뜻인 것 같다.“잠깐.”그때 유진우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이봐, 장군. 아무것도 묻지 않고 다짜고짜 채찍부터 날리는 건 규정에 어긋나는 거 아닌가?”“이곳에선 내 말이 곧 규정이야!”둥근 얼굴의 남자가 우쭐거리며 싸늘하게 말했다.“너 같은 천민은 죽으라고 하면 죽어야지,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지금 권세를 등에 업고 사람을 괴롭히겠다는 거야?”유진우가 눈을 가늘게 떴다.“괴롭히면 뭐? 여기 총이 수백 대나 있는데 너 하나 못 해결하겠어?”둥근 얼굴의 남자가 코웃음을 쳤다.“총이 많다고
덩치 큰 사내가 채찍을 휘두를 때마다 귀청을 때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아주 먼 곳에서도 선명하게 들렸다.“하하... 아주 잘하고 있어!”어제 유진우가 기고만장한 만큼 오늘 그대로 전부 갚아줄 생각이었다.“현정아, 이 자식이 만만치 않다고 하지 않았어? 내가 봤을 땐 별거 아닌데?”둥근 얼굴의 남자가 흉악스럽게 웃었다.“결국에는 내 손에 잡혀서 얻어맞고 있잖아.”“오빠, 이 자식 무사인데 실력이 어마어마해. 어젯밤 강씨 가문의 그 많은 사람들도 저 자식을 막지 못했다니까.”선우현정이 떨리는 가슴을 쓸어내렸다.“하하... 아무리 강해봤자 무사인데 내 천군만마를 당해낼 수 있겠어?”둥근 얼굴의 남자가 하찮다는 듯이 말했다.“요 몇 년간 군에서 민간의 고수를 얼마나 많이 잡아들였는지 몰라. 하나같이 위풍당당하던 존재들이 결국에는 내 앞에 무릎을 꿇었잖아.”“그건 그래.”선우현정이 부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민간인과 고위급 간부를 어찌 비교할 수 있겠는가? 민간에 고수가 많긴 하지만 권력 앞에서는 결국에는 고개를 숙이게 돼 있었다.두 사람이 한창 얘기를 나누던 그때 덩치 큰 사내는 쇠 채찍으로 유진우의 등을 세게 후려갈겼다.“퍽!”귀청을 때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런데 멀쩡한 유진우와 달리 오히려 쇠 채찍이 산산이 조각났다.“뭐?”끝부분만 남은 쇠 채찍을 본 덩치 큰 사내는 순간 넋을 잃었다.‘이 채찍은 특수 제작한 것이라 칼로 끊을 수도 없고 불에 타지도 않는데 사람 몸에 맞고 나서 부러졌다고? 저 자식은 쇠로 만들어졌어?’고개를 든 덩치 큰 사내의 표정에 의혹이 가득했다.조금 전 적어도 십여 대를 때렸는데 일반인이었더라면 진작 피범벅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유진우는 옷이 찢긴 것 외에는 몸에 상처 하나 나질 않았고 아주 멀쩡했다.“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덩치 큰 사내는 당황함에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쇠 채찍을 후려갈긴 지 수년이지만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었다.“왜? 왜 안 때려?”한창 싱글벙글 얘기를 나누
“아니에요?”유장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용호산은 여태껏 무림인의 세계에서 일어난 일에 무관심했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건 다른 의도가 있는 게 분명해.”서태양이 말했다.인재를 선발해 위상을 높이려고 진무사가 나섰다면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었다.하지만 용호산은 전혀 관계가 없지 않은가?“그럼 무슨 의도인데요?”유장미가 되물었다.“내가 어떻게 알아? 나도 궁금하거든?”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는 서태양은 어깨를 으쓱했다.“보혁 씨는 내막에 훤하니까 화두를 꺼낸 거겠죠?”유이슬이 시선을 돌렸다.“내막까지는 아니지만 주워들은 소식이 몇 가지 있긴 해요.”염보혁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제가 알기로는 용호산 뒷산의 금지구역에 최근 신비로운 보물이 나타났는데 향후 100년 동안 무림인들의 흥망성쇠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관련이 있다고 해요.”“무슨 보물이 그렇게 대단해요?”유장미가 깜짝 놀랐다.유이슬과 서태양도 예상치 못한 듯 충격을 금치 못했다.무림인들의 흥망성쇠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만약 제 추측이 맞는다면 용원의 기와 관련된 보물일 거예요.”염보혁이 목소리를 낮추었다.순간, 유진우는 눈썹을 추켜세웠지만 이내 포커페이스로 돌아왔다.“용원의 기? 그게 뭔데요?”유장미가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용맥의 정수이기도 하죠.”유이슬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며칠 전 호룡각이 와해하면서 지하 용맥이 다섯 개의 용원의 기로 변해 세상에 뿔뿔이 흩어졌어. 소문에 의하면 용원의 기를 얻는 자는 천하무적이 되어 승승장구한다고 해.”호룡각이 무너지고 용맥이 파괴된 일이 워낙 큰 이슈였기에 자연스럽게 그녀의 귀에도 흘러 들어갔다.“진짜요? 그렇게 대단한 물건이 있어요?”유장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고서에서 관련된 기록을 본 적이 있는데 용원의 기를 얻은 자들은 세상을 주름잡는 수장이거나 천하를 다스리는 왕이었어.”유이슬이 한마디 보탰다.“맞아요.”염보혁이 대
유진우는 옆에 있는 염보혁을 흘깃 쳐다보았고, 속으로 상대방이 아무리 예뻐도 남자를 좋아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쿨럭!”염보혁은 사레가 들린 나머지 연신 기침하며 쓴웃음을 지었다.“이슬 씨, 지금 절 칭찬하는 건지 비꼬는 건지 모르겠네요.”“당연히 칭찬하는 거죠. 그런 얼굴을 보고도 어떤 남자가 마음이 흔들리지 않겠어요?”유이슬이 정색하며 말했다.“네?”염보혁은 말문이 막혔다.설령 사실일지언정 어찌 면전에서 대놓고 말할 수 있지?왠지 모르게 기분이 이상했다.“정 믿기 어려우면 태양한테 물어봐요.”유이슬이 문득 말했다.한편, 서태양은 염보혁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이름이 언급되는 순간 흠칫 놀라더니 서둘러 시선을 돌렸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은 도둑이 제 발 저린 듯싶었다.“제가요?”서태양은 난감한 얼굴로 대답했다.“선배, 장난하지 마세요. 저랑 무슨 상관이죠?”“뭔가 냄새가 나는데요?”유장미가 눈썹을 까딱하더니 눈알을 굴리며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설마 보혁 씨한테 진짜 반한 건 아니죠?”“이... 계집애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서태양이 펄쩍 뛰면서 얼굴이 벌게진 채 고래고래 외쳤다.“남자끼리 엮일 리가 없잖아.”“침착해요. 단지 농담했을 뿐이에요.”유장미가 키득거리며 말했다.“게다가 남남 커플이 진짜 사랑이죠. 어차피 안 될 건 없잖아요. 만약 사귈 생각이 있다면 진심으로 축복해줄게요. 하하하!”“입만 열면 헛소리 하네.”서태양은 짐짓 화가 난 듯 혼내려는 액션을 취했다.유장미는 잽싸게 유이슬의 등 뒤로 숨어 웃음을 터뜨렸다.갑자기 산으로 흘러가는 대화에 당사자인 염보혁은 말문을 잃었다.더욱이 유장미와 투닥거리는 와중에도 그를 흘끔거리는 서태양 때문에 어이가 없었다.단순히 농담으로 치부할 수 있었지만 몰래 훔쳐보는 탓에 괜히 기분이 세했다.“진우 씨, 이슬 씨, 다들 용호산은 처음이죠? 제가 구경 좀 시켜드릴까요? 주변에 뭐 있는지 소개해줄게요.”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염
술이 몇 잔 오가자 서서히 편하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이슬 씨, 방금 검종의 제자라고 하시던데 무림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용호산에 오른 건가요?”염보혁이 넌지시 물었다.“그런 셈이죠.”유이슬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성격이 무심한 편이라 말주변이 딱히 없었다.“사실 저희는 스승님의 명을 받고 찾아왔어요.”상대적으로 외향적인 유장미가 웃으며 말을 보탰다.“노천사가 용호산에서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소식에 세상이 발칵 뒤집혔거든요. 검종 뿐만 아니라 천하회, 주술교를 포함한 파벌에서 최정예 제자들을 파견해 출전할 예정이에요.”“그럼 검종에서는 세 분이 참석하는 건가요?”염보혁이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아니요.”유장미가 고개를 저었다.“저희는 단지 구경하러 왔을 뿐,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는 따로 있어요.”그녀와 서태양은 선천 후기에 속했고, 유이슬은 실력이 뛰어나긴 했으나 반보 마스터에 불과했다.어찌 됐든 천교에 비하면 열세에 처하는지라 검종을 대표해서 출전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따로 있다니? 설마 홍군림이에요?”염보혁의 눈썹이 까닥했다.“그건 저도 잘 몰라요.”유장미가 생긋 웃었다.“워낙 제멋대로에 신출귀몰하는 사람이라 이번 무림대회에 참가할지 아무도 몰라요. 만약 홍 선배가 진짜 출전한다면 우승은 우리 검종이 차지할 거예요.”홍군림은 천교 랭킹의 1위에 올랐을뿐더러 어린 나이에 경천 랭킹에 진입한 검종의 천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다만 성격이 까칠하고 독불장군이라 종주를 제외하고 아무도 안중에 두지 않았다.“장미야, 그건 네 생각이고.”이때 유이슬이 입을 열었다.“홍 선배가 실력이 뛰어나고 검종의 천재로서 일반 무사들이 함부로 넘볼 수 없는 존재인 건 사실이지만 너도 알다시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능력자가 한 명 더 있잖아.”“누구요?”유장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유장혁.”유이슬이 무덤덤하게 말했다.“그 사람이 홍 선배보다 실력이 더 뛰어나요?”유장미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막상막하야. 천교
“네?”염보혁의 한 마디에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한참 동안 넋을 잃었다.특히 잘 보이기 급급했던 서태양은 굳은 얼굴로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허공에 손을 들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이럴 수가?방금 목숨 걸고 구하려던 사람이 남자였다니?“남자...? 농담이죠?”붉은 옷 소녀가 염보혁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경국지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미인이 대체 어디를 봐서 남자란 말인가?푸른 옷 여인은 입만 벙긋했을 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흡혈파 망나니들이 여자가 아닌 남자한테 집적거렸다니?취향 한번 독특했다.“아니요. 진짜 남자예요.”염보혁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밖에 나가면 여자로 오해받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하지만 아무리 봐도...”붉은 옷 소녀가 말을 아꼈다.“외모 때문에 어쩔 수 없어요.”염보혁이 어깨를 으쓱하며 해탈한 듯 말했다.“아쉽네요.”붉은 옷 소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본인이 이렇게 예쁜 얼굴을 가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선배? 왜 그래요? 괜찮아요?”그녀는 아직도 넋을 잃은 서태양을 발견하고 손을 뻗어 어깨를 툭 쳤다.“응? 아, 괜찮아. 단지 조금 놀랐을 뿐이야.”서태양은 꿈에서 깨어난 듯 금세 정신을 차렸다.다만 눈빛만큼은 남자한테서 떠나지 않았다.이렇게 요염한 얼굴이 사내란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그야말로 재능 낭비이지 않은가?“저는 염보혁입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염보혁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유이슬이에요.”푸른 옷 여인이 대답했다.“저는 유장미라고 해요.”붉은 옷 소녀가 활짝 웃었다.비록 남자이지만 미모에 저절로 눈이 갔다.“서태양입니다.”서태양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방금 일어난 일에 대해 찝찝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다 같이 술이나 한잔 하시죠?”염보혁은 손을 내밀더니 소개를 이어갔다.“이쪽은 유진우 씨, 그리고 두 분은 호위무사인...”“춘화와 추월이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수염 난 사내의 몸에 피투성이 상처가 생겼다.눈 깜짝할 사이에 연신 검에 찔린 탓에 저항할 힘조차 없었다.비록 수염 난 사내가 힘은 더 셌지만 기교에서는 한참 못 미쳤다.여자의 화려한 검술은 감탄을 자아냈고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악!”수염 난 사내가 처참한 비명을 질렀다.사지가 부러진 채 바닥에 널브러진 모습은 마치 좀비를 연상케 했다.온몸은 피가 흥건했고 상처로 가득했다. 비록 목숨에 지장은 없지만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다.“형님!”패배한 우두머리를 보자 흡혈파 제자들이 충격과 분노를 금치 못했다.항상 위풍당당하고 기세등등했던 수장이 이런 몰골을 보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젠장! 감히 우리 형님을 다치게 해? 죽고 싶어 환장했어?”“저년을 없애버려!”흡혈파 제자들이 고래고래 외치며 검을 빼 들고 무시무시한 기세로 여자를 덮쳤다.“무용지물이야.”푸른 옷 여인은 콧방귀를 뀌더니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사람들 틈으로 뛰어들었다.얼마 안 되어 흡혈파 제자들은 하나같이 처참한 비명과 함께 바닥에 나뒹굴었다.팔이나 다리가 부러진 채 선혈이 낭자했다.“역시 대단하세요!”눈앞의 광경에 붉은 옷 소녀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망나니 따위가 감히 검종에게 대들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서태양이 바닥에 침을 뱉었다.“뭐... 뭐라고? 너희들이 검종 제자였어?”흡혈파 제자들은 안색이 돌변하더니 두려운 기색이 역력했다.검종은 무림인들의 세계에서 3대 문파 중 하나로 천하회와 주술교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비록 제자들이 많지 않았지만 뛰어난 인재들밖에 없다.특히 검종의 홍군림은 어린 나이에 천교 랭킹 1위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경천 랭킹에 진입하여 세계 10위의 강자가 되었다.경천 랭킹 10위권에 검종 제자가 무려 2명이나 있는데 압도적인 실력으로 3대 파벌의 수장 자리를 거머쥐었다.여기서 검종의 제자들을 만나게 될 줄은 예상치도 못했다.이럴 줄 알았더라면 애초에 무모한 짓을 벌이지 않았을 텐데.“이제야
“윽!”서태양은 이를 악물고 이마에 핏줄이 튀어나온 채 낮은 신음을 내뱉었다.이내 양손으로 검을 쥐고 온 힘을 다해 어깨를 짓누른 흡혈검을 떼어내려고 했다.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상대방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오히려 힘이 점점 더 가해졌고 무릎이 닿은 바닥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고작 이런 실력으로 감히 우리 흡혈파한테 덤비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수염 난 사내가 냉소를 지었다.“형님! 멋져요.”“역시 대단하세요.”부하들이 질세라 감탄했다.북쪽에서 흡혈파라고 하면 꽤 이름 있는 큰 파벌인지라 애송이 같은 놈이 도발할 만한 게 아니었다.“감히 내 앞에서 영웅 행세해? 넌 오늘 인생에서 가장 잘못된 결정을 내린 거야. 교훈 삼아 사지를 부러뜨려줄게!”수염 난 사내가 비열한 미소를 짓더니 흡혈검을 들어 올려 서태양의 손목을 향해 휘둘렀다.챙!검이 닿기 직전 청색 보검이 불쑥 나타나 허공에서 공격을 막아냈다.“응?”수염 난 사내가 눈살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푸른 옷 여인이 보검을 들고 싸늘한 눈빛을 보냈다.“선배?”서태양의 표정이 밝아지더니 그제야 한숨 돌렸다.조금만 늦었더라도 오른손을 잃어버렸을 텐데 그나마 선배가 제때 도움을 줘서 천만다행이었다.“괜히 참견하지 마.”수염 난 사내가 음흉하게 웃었다.“우리 후배한테 손을 대는 순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여자가 싸늘하게 말했다.“맞아! 너희들 같은 망나니는 벌을 받아 마땅하지.”이때, 붉은 옷 소녀가 검을 빼 들고 낭랑한 목소리로 외쳤다.“언니, 제가 도와줄게요.”“아니야. 넌 태양이랑 지켜보고 있어. 이런 놈들은 나 혼자서도 충분하니까.”푸른 옷 여인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어디서 나온 자신감이지?”수염 난 사내가 히죽 웃었다.“그런 왜소한 몸으로 오빠의 검을 어찌 막으려고? 차라리 무기는 내려놓고 침대에서 겨뤄보는 건 어때?”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부하들이 폭소를 터뜨렸다.곧이어 음흉한 시선으로 여자를 훑으며 멋대로 평가하
서태양이 움직이자 수염 난 사내의 뒤에서 덩치가 산만 한 남자 두 명이 튀어나왔다.두 사람은 무기로 길쭉한 검을 들고 있었다.몸체는 강한 피비린내와 함께 은은한 살기가 감돌았다. 이는 칼날이 오랫동안 선혈에 노출된 결과였다.무림인들의 세계에서는 흡혈검이라고 불렀다.다만 아쉽게도 그들이 지닌 검은 아직 미성숙 단계였고 기세가 한창 부족했다.챙! 챙!서태양이 먼저 검을 빼 들고 혼자서 두 명의 사내와 대결을 벌였다.그들은 기세등등하게 맞서 싸웠지만 힘만 강했을 뿐 행동이 굼뜬 편이었다.공격할 때마다 동작이 다소 어설펐다.반면, 서태양은 누가 봐도 고수의 가르침을 받았고 실전 경험도 풍부했다.스피드, 힘, 기술 등 모든 면에서 높은 수준에 도달했으며 어느 하나 뒤처진 데 없었다.세 사람이 공격을 주고받는 순간 실력 차이가 현저했고, 서태양은 눈 깜짝할 사이에 두 사내를 쓰러뜨렸다.그리고 응징할 겸 각자의 다리에 검을 관통했다.“흥! 고작 이런 실력으로 우쭐거려? 제 주제도 모르고.”서태양은 장검을 비스듬히 겨누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죽기 싫으면 당장 꺼져.”“좋아! 잘했어!”승리를 거머쥔 서태양을 보자 구경하던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비록 나서서 싸울 용기는 없었지만 응원의 박수를 보내는 것쯤은 충분히 가능했다.“그래도 실력은 꽤 있나 보네? 어쩐지 참견하더라니.”수염 난 사내가 눈을 가늘게 뜬 채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천천히 뽑아 들고 음침한 목소리로 협박했다.“하지만 오늘 임자를 만났지. 흡혈파를 마주친 이상 살아남을 방법은 없어.”“흡혈파는 무슨, 들어보지도 못했구먼.”서태양의 표정은 기고만장했다.“하! 괜찮아. 네 피를 전부 흡수하고 나면 우리가 왜 흡혈파라고 불리는지 알 거야.”수염 난 사내가 이죽거리더니 두말없이 공격을 개시했다.그가 발을 내딛자마자 맹렬한 기세가 솟구쳤고, 손에 든 흡혈검은 핏빛을 뿜어내며 곧장 서태양을 덮쳤다.앞서 상대했던 부하들과 달리 수염 난 사내의 흡혈검은 살기로 가득했다
아름다운 얼굴은 쉽게 화를 부르는 법이다.염보혁은 남자였지만 여자보다도 더 아름다운 요염한 얼굴을 지녔다.길을 나서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도리가 없었고 지금처럼 깡패 무리와 마주할 때면 번번이 시비에 휘말리기 일쑤였다.유진우는 모른 척하며 조용히 술잔을 기울였다.“어이, 이쁜이. 저런 나약한 놈이랑 술 마셔서 뭐 하겠어? 차라리 우리랑 한잔하지, 아주 즐겁게 해줄 테니 말이야!”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사내가 염보혁의 턱을 손가락으로 건드리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이 손 치우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 후회하게 될 테니까.”염보혁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차가운 눈빛을 보냈다.어여쁜 외모 탓에 남녀를 불문하고 다가오는 사람이 많았지만 이처럼 대놓고 희롱하는 경우는 드물었다.“오, 이쁜이가 화를 내네?”수염 난 사내는 턱을 문지르며 비웃었다.“솔직히 말해서 화난 얼굴이 더 매력적인데?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더욱 감탄스럽군.”그의 말에 뒤따르던 무리들이 일제히 폭소를 터뜨렸다.유진우는 피식 웃으며 술잔을 내려놓았다. 눈앞의 이 사내는 제법 능숙하게 수작을 부렸다.염보혁이 남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셋을 센다. 그 안에 사라지지 않으면 내가 직접 손봐주지.”염보혁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손 본다고? 하하하!”수염 난 사내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이거 제법 앙칼진데?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위층으로 올라가서 천천히 우리를 손 봐줘, 어때?”“맞아, 맞아! 방도 넉넉하니 차례대로 너랑 놀아줄 수 있다고!”그의 동료들도 시시덕거리며 말을 보탰다.“셋.”염보혁은 더 이상 말을 섞을 필요도 없다는 듯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이쁜이, 괜히 버티지 말고 그냥 올라가자. 내가 아주 다정하게 대해줄 테니 말이야.”수염 난 사내는 입을 커다랗게 벌려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낄낄댔다.“둘.”염보혁은 여전히 냉랭한 표정을 유지했다.“싫다면 어쩔 수 없지. 내가 직접 안아 올라가는 수밖에.”그가 손을
유진우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보혁 씨가 이렇게까지 많은 걸 알고 있을 줄은 몰랐군요. 제 생각엔 장일청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 것 같은데요.”용호산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염보혁이 이렇게나 많이 알고 있다니, 이건 그가 평범한 인물이 아님을 증명하는 셈이었다.“진우 씨께서 과찬해 주시는군요. 저는 그저 사람들 사이에 끼어 듣는 걸 좋아해서 호기심에 이런저런 소문을 알아본 것뿐입니다. 사실 별다른 능력은 없어요.”염보혁은 겸손하게 웃으며 덧붙였다.“하지만 만약 진우 씨께서 무림대회에 참가하신다면 전 온 힘을 다해 진우 씨가 우승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보혁 씨, 저를 너무 과대평가하시는군요.”유진우는 담담하게 말했다.“전 그저 세상 구경이나 해볼 겸 참가하는 것뿐입니다. 우승 같은 건 감히 꿈도 꾸지 않아요. 애초에 제 실력으로 어떻게 그 내로라하는 강자들과 겨룰 수 있겠습니까?”“진우 씨는 너무 겸손하시군요. 저는 사람을 보는 눈이 정확합니다.”염보혁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진우 씨는 외모도 준수하고 기품 또한 비범하시죠. 멀리서 봐도 강렬한 기세가 느껴졌습니다. 비록 진우 씨의 신분은 알 수 없지만 이것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진우 씨는 절대 범상한 인물이 아닙니다!”“보혁 씨께서 저를 이렇게까지 칭찬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유진우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평범한 출신에 보잘것없는 실력을 갖췄을 뿐입니다. 아마 실망할 겁니다.”“하하, 괜찮습니다. 커다란 황금 잉어가 어찌 작은 연못에서만 머물겠습니까? 바람과 구름을 만나면 반드시 용이 되어 날아오를 것입니다. 지금 진우 씨의 명성이 미미할지라도 저는 믿습니다. 언젠가 반드시 하늘 높이 날아오를 날이 올 거라고!”염보혁은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말했다. 그 눈빛은 절대적인 믿음을 담고 있는 듯했다.유진우는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이 사람, 도대체 뭐지? 분명 오늘 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