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이야?”조선미가 살짝 멈칫했다.“방금 전해들은 소식인데 유진우 씨가 군부대 사람한테 잡혀갔대.”조아영은 사건의 자초지종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설명을 들은 조선미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군부대까지 동원한 걸 보면 배후 세력이 절대 만만한 사람은 아니야.”“언니, 혹시 강씨 가문의 짓이 아닐까?”조아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어제 진우 씨가 강씨 가문에서 사람을 마구 죽이고 강천호의 아들까지 불구로 만들었으니 강씨 가문에서 절대 가만있지 않을 거야.”“이 일 강씨 가문이랑 연관 있는 건 확실해. 하지만 강천호의 인맥으로 군부대까지 동원한다는 건 말이 안 돼. 아무래도 선우 가문에서 힘을 보탠 것 같아.”조선미가 생각에 잠긴 얼굴로 말했다.강준혁의 약혼녀가 선우현정이기에 선우 가문에서 절대 모르는 척하지 않을 것이다. 3대 가문의 일인자인 선우 가문은 강남의 군부대를 휘어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여 아무 배경도 없는 자를 처리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조선미는 유진우에게 언젠가는 일이 생길 거라고 생각했었지만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다.“언니, 우리 인제 어떡해?”조아영이 떠보듯이 물었다.“일단 진우 씨가 어디 갇혔는지 알아봐. 그다음 일은 내가 알아서 할게.”말을 마친 조선미는 곧장 의원을 나섰다.전쟁의 서막이 이미 열렸다. 이번에는 강씨 가문과 무조건 끝장을 보겠다고 다짐했다....그 시각, 천호 리조트.강준혁이 두 팔에 두꺼운 붕대를 칭칭 감은 채 창백한 얼굴로 침대에 누워있었다. 맥없이 축 늘어진 모습이 참으로 안타까웠다.그의 옆에 비범한 분위기를 풍기는 한 영감이 앉아있었는데 침술 치료에 몰두한 나머지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강천호와 강향란은 혹시라도 방해될까 찍소리도 내지 못하고 문 앞에서 조용히 지켜보기만 했다.눈앞의 이분이 바로 명성이 자자한 명의 강보현이었다!한참 후, 강보현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강천호가 참다못해 먼저 입을 열었다.“명의님, 우리 아들 상황이 어떤가요?”“아드
그 시각, 어느 한 군사 기지의 연병장.유진우는 포승줄로 기둥에 묶여있었고 몸에는 팔뚝만한 쇠사슬이 채워져 있었다. 전부 철로 만든 것이라 무척이나 단단했다.오늘따라 뙤약볕이 쏟아졌고 그의 주변에는 총을 지닌 무장 병사들이 물샐틈없이 그를 포위하고 있었다.하지만 유진우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표정으로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전혀 기죽지 않은 그의 여유로운 모습에 병사들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일반인이 이런 상황에 맞닥뜨렸다면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게 정상인데 유진우는 예외였다.“네가 유진우야?”그때 장군 제복을 입은 둥글둥글한 얼굴의 남자가 부하들과 함께 걸어왔다.“날 잡아 오기까지 했으면서 내가 누군지도 몰라?”유진우가 덤덤하게 말했다.“쓸데없는 소리 집어치우고 장군님께서 묻는 물음에만 대답해!”한 장교가 호통 쳤다.“그래. 내가 유진우다.”“그래...”둥근 얼굴의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덤덤하게 말했다.“제대로 잡아 왔으니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일단 채찍으로 50대 후려쳐.”그의 명령에 장교들은 저도 모르게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군의 채찍은 일반 채찍과 확연히 달랐다.일반인은 서너 대만 맞아도 쓰러지고 열 대 만에 정신을 잃게 된다. 스무 대를 맞으면 죽지는 않더라도 남은 인생은 휠체어 신세를 져야 한다. 그리고 50대는 지금까지 버틴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기세를 보아하니 오늘 유진우를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는 뜻인 것 같다.“잠깐.”그때 유진우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이봐, 장군. 아무것도 묻지 않고 다짜고짜 채찍부터 날리는 건 규정에 어긋나는 거 아닌가?”“이곳에선 내 말이 곧 규정이야!”둥근 얼굴의 남자가 우쭐거리며 싸늘하게 말했다.“너 같은 천민은 죽으라고 하면 죽어야지,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지금 권세를 등에 업고 사람을 괴롭히겠다는 거야?”유진우가 눈을 가늘게 떴다.“괴롭히면 뭐? 여기 총이 수백 대나 있는데 너 하나 못 해결하겠어?”둥근 얼굴의 남자가 코웃음을 쳤다.“총이 많다고
덩치 큰 사내가 채찍을 휘두를 때마다 귀청을 때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아주 먼 곳에서도 선명하게 들렸다.“하하... 아주 잘하고 있어!”어제 유진우가 기고만장한 만큼 오늘 그대로 전부 갚아줄 생각이었다.“현정아, 이 자식이 만만치 않다고 하지 않았어? 내가 봤을 땐 별거 아닌데?”둥근 얼굴의 남자가 흉악스럽게 웃었다.“결국에는 내 손에 잡혀서 얻어맞고 있잖아.”“오빠, 이 자식 무사인데 실력이 어마어마해. 어젯밤 강씨 가문의 그 많은 사람들도 저 자식을 막지 못했다니까.”선우현정이 떨리는 가슴을 쓸어내렸다.“하하... 아무리 강해봤자 무사인데 내 천군만마를 당해낼 수 있겠어?”둥근 얼굴의 남자가 하찮다는 듯이 말했다.“요 몇 년간 군에서 민간의 고수를 얼마나 많이 잡아들였는지 몰라. 하나같이 위풍당당하던 존재들이 결국에는 내 앞에 무릎을 꿇었잖아.”“그건 그래.”선우현정이 부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민간인과 고위급 간부를 어찌 비교할 수 있겠는가? 민간에 고수가 많긴 하지만 권력 앞에서는 결국에는 고개를 숙이게 돼 있었다.두 사람이 한창 얘기를 나누던 그때 덩치 큰 사내는 쇠 채찍으로 유진우의 등을 세게 후려갈겼다.“퍽!”귀청을 때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런데 멀쩡한 유진우와 달리 오히려 쇠 채찍이 산산이 조각났다.“뭐?”끝부분만 남은 쇠 채찍을 본 덩치 큰 사내는 순간 넋을 잃었다.‘이 채찍은 특수 제작한 것이라 칼로 끊을 수도 없고 불에 타지도 않는데 사람 몸에 맞고 나서 부러졌다고? 저 자식은 쇠로 만들어졌어?’고개를 든 덩치 큰 사내의 표정에 의혹이 가득했다.조금 전 적어도 십여 대를 때렸는데 일반인이었더라면 진작 피범벅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유진우는 옷이 찢긴 것 외에는 몸에 상처 하나 나질 않았고 아주 멀쩡했다.“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덩치 큰 사내는 당황함에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쇠 채찍을 후려갈긴 지 수년이지만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었다.“왜? 왜 안 때려?”한창 싱글벙글 얘기를 나누
“응?”한껏 여유로운 모습의 유진우를 본 둥근 얼굴의 남자는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그는 쇠 채찍의 위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단단한 사람도 열대를 버티지 못하는데 유진우는 멀쩡할 뿐만 아니라 채찍을 세 개나 부러뜨렸다. 실로 괴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이 자식아! 너 대체 무슨 수를 쓴 거야?”둥근 얼굴의 남자가 어두운 목소리로 물었다.“때리고 싶으면 때릴 것이지,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유진우는 하품까지 했다. 상대를 업신여기는 그의 모습에 둥근 얼굴의 남자는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젠장! 오늘 널 죽이고 말 것이야!”둥근 얼굴의 남자는 두말없이 부장교의 칼을 뽑아 들고 유진우를 찌르려 했다.“쨍그랑!”하지만 유진우의 몸에는 상처 하나 생기지 않았고 오히려 둥근 얼굴의 남자가 들고 있던 칼이 두 조각으로 쪼개졌다.“강신술?”선우현정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는 누구보다 빨리 상황을 파악했다. 쇠 채찍으로 때리고 칼로 찔러도 상처 하나 나지 않은 건 몸을 지키는 기공을 수련한 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이 무술은 내공을 많이 쓰기에 일반 무사는 얼마 버티지 못한다.“오빠, 일반적인 무기로는 상처 하나 내지 못할 거야. 아무래도 다른 고수를 불러야겠어.”선우현정이 귀띔했다.“저 자식 만만한 놈이 아닌 건 확실해. 그러니까 너희들이 처리하지 못했지. 하지만 내 손에 들어온 이상 걱정할 필요 없어.”둥근 얼굴의 남자가 실눈을 뜨고 말했다.“오빠, 다른 방법이 있어?”선우현정이 떠보듯이 물었다.“우리 군부대는 전쟁에 나가 적을 죽이는 것에만 능숙하지, 이런 고문에는 익숙지 않아. 하지만 괜찮아, 형부에 어마어마한 사람을 알아. 그분을 모셔오면 저 자식도 손이야 발이야 하고 빌게 돼 있어!”둥근 얼굴의 남자가 섬뜩한 웃음을 지었다.“그래? 어떤 사람이기에 그렇게 대단해?”선우현정의 두 눈이 반짝였다.“형부에 도살자가 두 명 있는데 그중 한 명인 혈마라고 불리는 자야.”둥근 얼굴의 남자가 대답했다.
“오빠, 저 쇠사슬 단단해? 저 자식 실력이 만만치 않아. 혹시라도 풀어버리면 어떡해?”선우현정이 물었다.“걱정하지 마, 우리 쇠사슬은 전부 철로 만들어져서 검으로 부러뜨리지 못할 정도로 단단해. 인간은 물론이고 코끼리도 꼼짝 못 하게 묶을 수가 있거든. 이 쇠사슬을 잠근 이상 키가 없으면 평생 열지 못해!”둥근 얼굴의 남자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전에도 무도 고수를 만난 적이 있었지만 이 쇠사슬을 푼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그럼 다행이고.”선우현정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그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쨍그랑하고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유진우가 팔뚝만한 굵기의 쇠사슬을 아주 손쉽게 부러뜨리고는 여유롭게 기지개까지 켜는 것이었다.“X발!”둥근 얼굴의 남자는 너무도 놀라 들고 있던 디저트를 바닥에 떨어뜨렸고 옆에 있던 선우현정도 넋을 놓긴 마찬가지였다.‘철로 만든 거라서 아주 단단하다며? 그런데 저렇게 손쉽게 부러뜨렸다고?’“당장 저놈을 포위해!”둥근 얼굴의 남자가 명을 내리자 연병장에 있던 병사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유진우를 물샐틈없이 포위했다.“너무 긴장해 하지는 마. 그냥 밥만 먹으려는 것뿐이니까.”유진우는 바닥에 털썩 앉아 유유자적하게 고기를 먹으며 술을 마셨다. 둥근 얼굴의 남자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저 자식 대체 정체가 뭐야? 어떻게 저 많은 총구 앞에서도 저렇게 여유를 부릴 수가 있지? 대단한 실력을 감춘 자일까, 아니면 일부러 침착한 척하는 걸까?’유진우가 배불리 식사를 마친 후, 그들은 다시 한 번 그를 묶어버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더 굵은 쇠사슬이었고 거의 온몸을 칭칭 감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둥근 얼굴의 남자는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경비대에게 계속 지켜보라고 했다. 유진우가 조금이라도 이상한 움직임을 보일 경우 바로 폭탄을 날리라고 했다.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군용 지프차 한 대가 갑자기 군사 기지로 들어와 연병장 안에 멈춰 섰다.차 문이 열리면서 몸이 삐쩍 마른 한 중년 남자가
“뭐야?”갑자기 무릎을 꿇은 혈마를 보며 주 장군과 선우현정은 경악을 금치 못했고 서로 얼굴만 멀뚱멀뚱 쳐다보았다.‘이건 또 무슨 상황이지? 갑자기 왜 무릎을 꿇고 난리야? 고문하기 전에 절이라도 하려는 건가?’의아해하는 주변 사람들과 달리 삐쩍 마른 남자는 겁에 질린 채 식은땀까지 뻘뻘 흘렸다.인간 도살자 홍복홍의 제자인 그가 어찌 기린도의 진짜 의미를 모르겠는가?이런 독특한 검은 기린도는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이었고 권력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어쩐지 낯이 익다 했더니, 이분이 바로 10년 전에 나라를 발칵 뒤집어놓은 유씨 가문의 천재구나! 망했어, 망했어... 내가 대체 무슨 죄를 지었다고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기는 건데! 안 돼! 아직 일이 크게 번지기 전에 얼른 도망가야 해.’“혈마님, 대체 왜 그러십니까? 어디 불편하세요?”혈마가 다리에 힘이 풀려 털썩 주저앉자 주 장군이 황급히 달려와 그를 부축하려 했다.“X발, 다 당신 때문이야!”분노가 치밀어 오른 혈마는 다짜고짜 손을 들어 주 장군의 따귀를 힘껏 후려갈겼다. 그 바람에 주 장군은 중심을 잃고 넘어질 뻔했다.“혈마님, 갑... 갑자기 왜 이러시는 겁니까?”후끈거리는 볼을 움켜잡은 주 장군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왜 이러냐고? 널 죽이지 않은 걸 고맙게 생각해. 내가 뭘 어쨌다고 나한테 이러는 건데? 죽고 싶으면 혼자 죽어. 나까지 끌어들이지 말고!”혈마는 주 장군을 발로 확 차버린 뒤 가방을 들고 냅다 줄행랑을 쳤다. 고문 도구가 떨어져도 줍지도 못하고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황급히 도망쳤다.“뭐야?”주 장군은 여전히 어안이 벙벙했다. 대체 무엇 때문에 사람을 죽여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던 혈마가 부리나케 도망갔을까?“대체 어떻게 된 거야?”선우현정도 눈앞의 상황을 믿을 수가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혈마를 모셔오면 그동안의 복수를 제대로 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었지만 고문을 시작하기도 전에 냅다 도망치고 말았다.대체 무슨 상황인 거지?“이놈아! 대체 뭘 했기에 혈
주 장군이 가슴을 쫙 펴며 우쭐거렸다.“난 조 사령관님 밑에 있는 백호군의 부장군이야. 저 자식이 누구든 쉽게 해결할 수 있어. 기다려봐!”그때 휴대 전화가 갑자기 울렸다.“여보세요? 주 장군님, 전 안씨 가문의 안병서입니다. 당신이 잡아서는 안 되는 사람을 잡았어요. 당장 풀어줘요. 지금이라도 풀어주면 화는 면할 수 있을 거예요.”“당신이 뭔데 이래라 저래라야? 감히 나한테 명령해? 꺼져!”그러고는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오빠, 또 누가 유진우를 풀어달라고 사정하는 거야?”선우현정이 웃을 듯 말 듯 한 얼굴로 물었다. 그녀는 이런 상황이 있을 거라고 진작 예상했다.“흥! 내 손에 잡힌 사람은 절대 못 풀어줘!”주 장군이 하찮다는 듯이 입을 삐죽거렸다. 선우 가문이 뒤를 봐주고 있어 남성 전체에 그가 두려워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따르릉...”곧이어 두 번째 전화가 걸려왔다.“주 장군님, 저는 조씨 가문 사람입니다. 장군님 부하가 제 친구를 잡아갔다고 들었는데 아무래도 무슨 오해가 있는 것 같아요. 넓은 아량으로 풀어주시면 안 될까요?”“안 돼! 유진우는 씻을 수 없는 큰 죄를 지었어. 이미 형부에 넘겼으니까 누가 와서 사정해도 소용없어!”주 장군은 할 얘기만 하고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런데 그 뒤로도 전화가 끊이질 않았다. 두 번째 전화 뒤에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전화가 연거푸 걸려왔다.“여보세요? 주 장군님, 저 손기태입니다...”“주 장군님, 저는 강북의 이씨 가문을 대표하여...”“주 장군, 부탁할 일이 하나 있는데...”전화가 끊임없이 걸려왔고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처음에 주 장군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전화를 받다가 나중에는 화를 낼 힘도 없었다. 이젠 같은 급의 장군마저 유진우를 대신해 사정했다. 두려운 건 아니지만 귀찮은 일이 생기는 건 아닌지 걱정되었다. 결국 그는 참다못해 휴대 전화를 꺼버렸다.“너 인맥이 꽤 넓구나. 내가 널 과소평가했어.”주 장군이 고개를 천천히 들며 싸늘하게 웃
“짝!”장 부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귀싸대기부터 날렸다.얻어맞은 주 장군은 어안이 벙벙했고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못했다.‘내가 웃는 얼굴로 맞아줬더니 X발 나한테 귀싸대기를 날려? 정말 너무하네!’“장 부관님! 왜 이러시는 거죠?”주 장군의 얼굴색은 어두워졌고 불만을 드러냈다.아무리 상대가 남궁을용의 부관이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에게 멋대로 수모를 안겨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의 뒤에는 남궁을용보다 관직이 더 높은 조 사령관이 받쳐주고 있었으니 말이다.“주 장군, 이 한 방은 당신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서야.”장 부관이 차갑게 말했다.“진우 도련님에게 손을 댄 것부터 문제야. 지금 당장 풀어줘, 아니면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지금 나를 협박하는 거예요?”주 장군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장씨, 겨우 장군님의 말 잘 듣는 개인 주제에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명령하는 거야?”“내게 그럴 자격이 없는 건 맞지만, 장군님에게는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으시지. 혼쭐나고 싶지 않으면 지금 당장 사람을 풀어줘.”장 부관이 무표정으로 말했다.“흥, 장군님으로 날 겁주려는 거야?”주 장군은 약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나는 극악무도한 사람밖에 잡지 않아. 게다가 확실한 증거도 있는데 당신이 풀어주라고 하면 내가 풀어줘야 하는 거야?”만약 상대가 처음에 좋은 말로 설득했다면 그는 남궁을용의 체면을 봐서라도 유진우를 풀어줬을지도 모른다.하지만 귀싸대기를 맞고 나니 더는 참지 못하고 벌컥 화를 냈다.“주 장군, 내가 경고를 안 한 건 아니야. 아직도 고집을 부린다면 나중에 아무도 당신을 못 구할 거야!”장 부관이 경고했다.“내가 그까짓 말로 겁을 먹을 줄 알아?”주 장군이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솔직히 말할게. 나 조 사령관님 밑의 사람이야. 나를 건드리면 조 사령관님을 건드린 거나 다름없다고!”“그러니까 당신 말은 사람을 절대 풀어줄 수 없다는 거지?”장 부관이 미간을 찌푸렸다.“그래! 오늘 옥황상제가 와도 나는 절대
“유장혁?”그 소리에 주변이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한때 유씨 가문의 천재는 이름을 널리 떨쳤었다. 그런데 10년 전 자금성의 난이 터진 후 완전히 종적을 감추었고 현재까지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그런 그의 이름을 갑자기 들으니 놀랄 만도 했다.“도련님, 지금 농담하시는 거죠? 세자 전하의 생사도 불투명한 데다가 어디 있는지도 아무도 몰라요. 그런 분한테 서경왕의 자리를 맡긴다는 건 너무 터무니없는 소리 아닌가요?”조군영은 어이가 없다는 듯 두 손까지 펼쳐 보였다.“그러게요, 도련님. 제발 현실을 잘 알고 말씀하세요. 세자 전하께 기댈 바엔 차라리 대장군님께 기대는 게 더 낫죠.”고원도 나서서 맞장구를 쳤다.유천우가 자기 자신을 얘기할 줄 알았는데 실종된 지 10년이나 된 사람을 얘기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정말 이보다 더 터무니없는 얘기는 없었다.“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형도 꼭 돌아올 겁니다. 그때 가서 형이 왕위를 이어받아도 문제없죠.”유천우가 싸늘하게 말했다.“도련님, 제가 하는 말이 거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만약 세자 전하께서 이미 돌아가셨으면 어떡해요? 서경왕의 자리를 계속 비워둘 작정인가요?”조군영이 비꼬는 말투로 말했다.“형님 죽지 않았고 멀쩡하게 살아있어요. 그러니까 조 장군님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유천우가 말했다.“살아있다면 지금 어디 계시는 거죠? 왜 나타나지 않는 겁니까?”조군영은 일부러 주변을 두리번거렸다.“형님한테 소식을 전했으니 꼭 올 겁니다.”유천우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도련님, 설마 지금 일부러 시간을 끌고 있는 건 아니죠?”조군영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위왕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퍼지면 서경 전체가 크게 흔들릴 거예요. 기다릴 시간이 많지 않다고요. 지금 당장 그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합니다.”“맞아요, 도련님. 대국을 생각하셔야죠!”고원도 나서서 유천우를 설득했다.“형한테 자리를 물려주는 건 아버지의 유언이에요. 지금 명령을 거역하겠단 겁니까?”
사람들이 뒤돌아보니 거친 삼베옷을 입고 상복 모자를 쓴 젊은 남자가 차가운 얼굴로 걸어오고 있었다.남자는 위엄이 넘쳤고 온몸에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 오랜 시간 전장을 누빈 조군영과 고원마저도 그를 보자마자 눈살을 살짝 찌푸리더니 표정이 진지해졌다.그 남자는 다름 아닌 유만수의 작은 아들 유천우였다.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유천우는 온 집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 하여 예전에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일도 많이 저질렀었고 서경의 사고뭉치라 불리기도 했다.그런데 최근 2년 동안 유천우는 갑자기 다른 사람으로 변한 듯 더는 빈둥빈둥 놀지 않고 군에 들어가 열심히 살기 시작했다.처음에 사람들은 유천우가 군대에서 3일도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쨌거나 어릴 적부터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산 도련님이 군대의 혹독한 훈련을 버틴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그런데 뜻밖에도 유천우는 군대에서 자리를 잡았고 공까지 세웠다.짧은 2년 사이에 병사에서 흑용군의 부장으로 성장했다. 든든한 배경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무척이나 놀라운 성과였다.사람들은 그제야 유천우가 응석받이로 자란 도련님이 아니라 군사 천재라는 걸 알게 되었다.“천우야, 드디어 온 거야?”아들을 보자마자 이의진의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겨우 가라앉았던 슬픔이 다시 저도 모르게 밀려왔다.“어머니, 소식 다 들었어요. 제가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유천우는 어머니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군영과 고원에게 시선을 옮겼다.“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이렇게 몰아붙이는 겁니까?”“그게...”조군영은 고원의 눈치를 슬쩍 봤다가 어쩔 수 없이 말했다.“도련님, 오해하지 마세요. 저희도 대국을 위해서 이러는 겁니다. 현재 서경왕부에 리더가 없어서 누군가 나서서 이끌어가야 합니다. 안 그러면 많은 문제가 생길 거예요.”“맞아요, 도련님. 대국을 생각하셔야죠.”고원은 충성을 다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대국?”유천우는 코웃음을 치고는 더는 두 사람을 거들떠보지 않
“서경 대원수의 직위는 매우 중요합니다. 내부 투표를 거칠 뿐만 아니라 폐하께 보고하여 최종적으로는 폐하의 결정을 받아야 해요. 우리가 마음대로 결정할 수는 없어요.” 이의진의 눈빛이 경계로 가득했다.유태범이 왔을 때 그녀는 처음에는 형제 간의 정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조군영과 고원의 몇 마디 말에 그녀는 갑자기 깨달았다. 일이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유태범은 흑용군에서 유만수 다음가는 위망을 가지고 있었다.표기대장군으로서 그는 많은 심복 장수들을 거느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절반의 병권도 장악하고 있었다.왕이 세상을 떠난 후 가장 큰 이득을 보는 사람은 유태범이 분명했다.가장 중요한 것은 유태범이 지금 이미 자신의 야심을 드러냈다는 점이다.왕이 돌아가신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권력을 탈취하려 하다니, 그녀는 그의 불순한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심지어 유만수의 죽음이 이 자들과 호룡각 잔당들이 암묵적으로 결탁한 결과일지도 모른다!만약 유태범이 병권을 완전히 장악하게 되면 그 결과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무시무시할 것이다.“마마, 급할 때는 권력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습니까. 지금 이런 상황에서 어찌 폐하의 결정을 기다릴 시간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반드시 빨리 국면을 안정시켜야 합니다.” 조군영이 계속해서 말했다.“맞습니다!”고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장수가 밖에 있으면 군령도 받지 않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폐하는 상황을 전혀 모르니 결정을 내릴 수 없습니다. 반드시 우리가 스스로 결정해야 하며 그래야만 소인배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을 수 있습니다.”“폐하에게 보고하지 않더라도 반드시 내부 투표를 거쳐야 합니다. 그래야만 모두가 승복할 수 있어요.” 이의진이 다시 말했다.“투표라니요? 이게 투표할 일입니까? 전 서경을 둘러봐도 대장군님보다 원수 자리에 더 적합한 분이 누가 있습니까?” 조군영이 말했다.“그렇습니다, 왕비마마! 공적으로 보나, 위망으로 보나, 경력으로 보나, 무공으로 보나 어르신을 제외하고는
고원이 갑자기 큰 소리로 외치며 바로 땅에 무릎을 꿇고 세 번 크게 머리를 조아렸다.그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고 가까운 사람을 잃은 듯한 모습이었다.비록 똑같이 연기였지만 조군영보다는 훨씬 진실되어 보였다.“표기대장군 도착하셨습니다!”이때 문밖에서 우렁찬 외침이 울렸다.곧이어 금빛 갑옷을 입고 기상이 비범한 중년 남자가 급하게 걸어 들어왔다.이 사람이 바로 일품 표기대장군 유태범이었다!유태범은 표기대장군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유만수의 사촌 동생이기도 했다.유태범은 어릴 때부터 문무를 겸비하고 천부적 재능이 있어 모든 면에서 매우 뛰어났다.만약 유만수가 없었다면 분명 유씨 가문의 가장 빛나는 천재였을 것이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유만수라는 세상에 둘도 없는 영웅 앞에서는 아무리 대단한 천재라도 빛이 바랠 수밖에 없었다.“대장군께 인사드립니다!”유태범을 보자 조군영과 고원은 즉시 가식적인 표정을 거두고 공손히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그들 둘은 모두 유태범을 지지하는 사람들로 진정한 측근 장수들이었다.마치 유만수와 석태혁의 관계처럼 영광도 함께 하고 손실도 함께했다.“형님!”유태범은 두 심복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영당에 들어서자마자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땅에 무릎을 꿇었다.그의 두 눈은 붉게 충혈되었고 입술은 떨리며 얼굴에는 비통함과 분노의 빛이 어려 있었다.“어찌 이럴 수가? 우리 형님이 어찌 돌아가실 수가 있단 말입니까? 도대체 누가 한 짓입니까?!”유태범이 붉은 눈으로 연달아 분노의 외침을 터뜨렸다.“호룡각의 잔당들입니다. 그들이 자객을 부내에 잠입시켜 어젯밤 어르신을 암살했습니다.” 이의진의 얼굴이 흐리멍덩했다.“호룡각?”유태범이 이를 갈며 분노에 차 있다가 즉시 고함쳤다. “누구 없느냐! 즉시 군대를 집결시켜 전 성을 수색하라. 반드시 범인을 체포해야 한다!”“잠깐만요!”이의진이 갑자기 나서서 제지했다.“태범 씨, 매우 비통한 것을 알지만 지금은 아직 일을 크게 만들 수 없습니다.”“형님이 이미 돌아가셨는데 무
이 말이 나오자 조군영과 고원의 안색이 순간 변했다.두 사람이 오늘 온 것은 본래 기세를 과시하려는 것이었는데 뜻밖에도 이의진이 이렇게 강경한 태도를 보일 줄은 몰랐다.입을 열자마자 반역이라는 죄명을 들이대다니.이런 죄가 뒤집어씌워진다면 그들은 아마 왕부의 대문을 살아서 나가지 못할 것이다.“마마, 농담 마십시오. 반역은 사형감입니다. 저희가 아무리 대범하다 해도 그런 일은 감히 못 하지요!” 고원이 연달아 해명했다.“맞습니다. 저희는 왕께 항상 충성을 다해왔는데 어찌 이런 짓을 저지를 수 있겠습니까?” 조군영도 따라서 부인했다.비록 두 사람 모두 그런 야심이 조금은 있었지만 명백히 겉으로 드러낼 수는 없었다.적어도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반역할 생각이 없다면 어째서 갑옷을 입고 부내에 들어오시는 것입니까? 규칙도 모르십니까?” 이의진이 조금도 봐주지 않고 꾸짖었다.그저 이품 장군일 뿐인데 군권이 조금 있다고 감히 왕부 안에서 눈깔을 찌푸리고 있다니.유만수가 살아있을 때 이 둘은 감히 이러지 못했다.“아이고! 제 정신 좀 보세요, 왕부의 규칙을 잊었네요. 마마께서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조군영이 헛웃음을 지었다.이어서 갑옷을 벗고 차고 있던 칼을 내려 왕부의 경비에게 건넸다.“저희가 급히 오느라 깊이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의도치 않은 행동이었으니 개의치마시지요.” 고원이 웃으며 말했고 즉시 갑옷과 칼을 벗었다.이 광경을 보고 이의진의 안색이 비로소 조금 누그러졌지만 어조는 여전히 차가웠다. “갑자기 찾아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왕께서 자객의 습격을 받아 위험한 상황이라는 소식을 듣고 저희 둘이 특별히 문안드리러 왔습니다.”고원이 가식적으로 말했다.“소식통이 꽤나 빠르군요. 하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이의진이 차갑게 말했다.“늦었다니요? 무슨 뜻입니까?” 두 사람이 의아한 척했다.이의진은 설명할 가치도 느끼지 못하고 몸을 돌려 영당으로 향했다.왕부 밖은 비록 동정이 없었지만 왕부 안에는 이미 흰 만장이 가득
“알겠습니다. 제가 경비병 신분을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들어가시기 전에 먼저 변장을 하셔야 합니다.” 손도운이 결국 타협했다.비록 위험이 있긴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았다....정오 무렵, 서경 왕부 안.비록 유만수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봉쇄되었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관리들이 소식을 듣고 찾아왔다.어떤 이들은 비통한 마음으로 조문을 왔고 또 어떤 이들은 다른 목적을 품고 있었다.“보국대장군 도착!”“운미대장군 도착!”왕부 문 앞에서 두 번의 외침이 들렸다.곧이어 갑옷을 입은 체격이 우람한 중년 남자 둘이 각각 친병들을 대동하고 걸어 들어왔다.이 친병들은 모두 허리에 장도를 차고 있었고 보기에도 험상궂었다.온 이들은 바로 이품 관직인 보국대장군 조군영과 운미대장군 고원이었다.“두 분, 왕부에 들어오시기 전에는 반드시 갑옷과 무기를 해제하셔야 합니다.”한 왕부 친위가 조군영과 고원을 막아서며 동시에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흥! 난 밖에 나올 때 갑옷을 벗지 않아. 꺼져!” 조군영이 노하여 꾸짖었다.“조 장군, 이건 왕부의 규칙입니다. 따라주시기 바랍니다.”왕부 친위가 말했다.“규칙? 나한테 감히 규칙을 운운한 건가?”조군영이 왕부 친위의 얼굴을 때리며 소리쳤다. “네가 무슨 자격으로 감히 규칙을 들먹이며 나를 압박하느냐? 죽고 싶나?”“조 장군, 소인도 명령을 받들어 행하는 것뿐입니다.” 왕부 친위는 동요하지 않았다.“헛소리 작작 하고 비켜. 그렇지 않으면 네 목을 벨 것이다!”조군영이 갑자기 칼을 뽑아 왕부 친위의 목에 겨누었고 그의 모습은 매우 포악하고 극도로 횡포했다.“제 머리를 베신다 해도 규칙은 지켜야 합니다.” 왕부 친위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이 개자식! 관짝을 보기 전에는 정신을 못 차리겠구나!”조군영은 마침내 화를 내며 칼을 거세게 들어 왕부 친위의 팔을 향해 내리쳤다.“멈추세요!”이때 한 소리의 여성의 호통이 울렸다.삼베 흰옷을 입은 이의진이 석태혁 일행을 데
이 순간 유진우의 눈이 피를 뿜을 듯 분노로 가득 차 있었고 살기가 솟구쳤다.비록 예전에 아버지와 약간의 거리감이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점차 아버지의 선택을 이해하게 되었다. 특히 아버지가 중병에 걸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은 후에는 그동안 품었던 그 작은 분노마저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는 단지 호룡각의 일을 완전히 해결한 후 아버지의 마지막 시간에 효도를 제대로 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둘이 만나기도 전에 아버지가 암살당해 돌아가셨다. 이 충격은 그에게 너무나도 큰 것이었다.“창공!” 유진우가 갑자기 분노에 찬 고함을 지르며 손을 뻗어 창공보검을 불러들이고는 밖으로 달려 나가려 했다. 아버지를 죽인 원수와는 하늘을 함께 이고 살 수 없었다. 그는 반드시 호룡각의 잔당들을 모조리 섬멸해야만 했다!“전하! 제발 진정하십시오!” 유진우가 이성을 잃을 것 같은 모습을 보고 손도운이 급히 그를 막아서며 침착하게 조언했다. “호룡각은 준비를 하고 온 것입니다. 만약 전하께서 이렇게 무모하게 뛰쳐나가신다면 복수는커녕 오히려 자신까지 위험에 빠뜨리실 수 있습니다!”“비키세요!” 유진우의 눈이 붉게 충혈된 채 창공검의 칼날을 손도운의 목에 바로 겨누었다. 예리한 기운이 피부를 스치며 상처를 내자 피가 천천히 배어 나왔다.“전하! 저를 죽이시더라도 전 전하를 막아야만 합니다. 제가 어찌 전하께서 죽으러 가시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있겠습니까!”“왕께서는 이미 돌아가셨습니다. 전하께 더 이상의 불상사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될 것입니다!”손도운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대로 유진우 앞을 가로막은 채 죽음도 불사하는 자세를 취했다.유진우는 이를 악물었고 그의 손에 든 검이 미세하게 떨렸다. 몇 초간의 대치 끝에 그는 깊은 숨을 내쉬고 마침내 검을 내렸다.손도운의 말이 맞았다. 그는 지금 냉정해져야만 했다. 유만수가 죽었으니 왕부가 분명 큰 혼란에 빠졌을 것이고 이때
다른 처녀들도 모두 이마를 바닥에 찧으며 진심 어린 간청을 했다.이 광경을 본 유진우는 넋이 나갔다.노란 옷 처녀의 말은 그의 귀를 때리는 듯했다.지옥 같은 일을 겪고도 이 아이들이 자신이 아닌 천하의 모든 약자들을 생각하다니... 상상도 못 했다.이런 원대한 뜻과 깨달음은 그조차도 이루지 못할 것이었다.이청성이 말했듯, 이들은 어둠 속에 있으면서도 빛을 향하는 처녀들이었다.귀하고 감탄할 만한 일이었다.누가 여자가 남자만 못하다 했는가?진정한 대의 앞에서 이 여자들이야말로 하늘의 절반을 떠받치고 있었다.이런 의로운 용사들이 있는데 어찌 서경이 부흥하지 않을까? 어찌 천하가 평안하지 않을까?“오빠, 결정해요. 받아주지 않으면 저 애들은 살아갈 희망조차 잃을 거예요.” 이청성이 진지하게 말했다.“이 선택을 후회하지 않겠어요?” 유진우가 엄숙하게 물었다.“절대 후회하지 않겠습니다!”모든 소녀들이 한목소리로 대답했다.“좋아요! 허락하죠!”유진우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늘부터 특별 훈련을 시작할 거예요. 견뎌낼 수 있다면 여러분들의 원대한 뜻을 이루도록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하지만 견디지 못한다면 편한 곳에서 평안히 살도록 해요.”“은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노란 옷의 소녀가 힘찬 목소리로 말했다.“은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나머지 소녀들도 따라 외쳤다.유진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이청성을 바라보았다. “당분간 네가 돌봐. 내일 저애들의 거처를 정하도록 해.”“알겠어요.”이청성이 살짝 미소 지으며 소녀들을 데리고 떠났다.일행이 막 나가자 손도운이 급하게 달려 들어왔다.그의 표정이 매우 당황스러워 보였고 큰일이라도 난 듯했다.“전하! 큰일 났습니다!”유진우를 보자마자 손도운은 ‘쿵’하고 무릎을 꿇고 충혈된 눈으로 말했다. “왕부에 변고가 생겼습니다. 왕께서 자객의 암살로 돌아가셨습니다!”“뭐라고요?”이 말을 듣자 유진우는 벼락을 맞은 듯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잠시 후 정신을 차린 유
“오빠, 급한 건 알지만 내 말 좀 끝까지 들어봐요.” 이청성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 아가씨들은 지금 오빠만 믿고 있고 목숨의 은인으로 여기고 있어요. 받아들이면 좋은 점이 많을 거예요. 예를 들어, 오빠가 외로울 때...”“농담하지 말고 요점이나 말해요!” 유진우가 짜증스럽게 말했다.“알았어요, 그럼 솔직히 말할게요.”이청성이 웃음을 거두고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장혁 씨, 사실 이 처녀들은 보기 드문 인재예요. 제가 이미 선별했는데 모두 영리하고 의지가 강해요. 조금만 가르치면 반드시 큰 인물이 될 거예요.”“무슨 뜻이에요?” 유진우가 눈을 가늘게 떴다.“밀사의 중요성은 잘 아실 거예요. 특히 여자 밀사는 어떤 면에서 타고난 장점이 있죠. 이 처녀들을 밀사로 키우면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이청성이 말했다.“말은 쉽지, 밀사 하나 키우는 데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해요. 전 지금 제 몸 하나도 챙기기 힘든데 그럴 여유가 어디 있어요?” 유진우가 고개를 저었다.솔직히 그는 이 처녀들이 평온하게 살기를 바랐지, 이용당하거나 장기말이 되는 걸 원치 않았다.“밀사에게 가장 중요한 건 충성심인데 그들은 이미 그걸 가지고 있어요. 장혁 씨가 그들을 구해줬고 장혁 씨의 빛이 그들의 어두운 세상을 비춰줬죠. 저애들은 장혁 씨를 신처럼 여기고 있어요.”“시간과 노력은 걱정하지 마요. 장혁 씨가 직접 가르칠 필요 없이 좋은 스승만 찾아주면 돼요. 장혁 씨 곁의 손도운이라면 아주 적합할 것 같은데요.” 이청성이 살짝 미소 지었다.“그건 청성 씨 생각이고 저 애들한테는 물어봤어요?” 유진우가 물었다.“당연히 물어봤죠. 모두 하겠대요. 필요하다면 목숨도 바칠 수 있다고요.” 이청성이 말했다.“불쌍한 사람들인데 그럴 필요까지야...” 유진우가 눈썹을 찌푸렸다.“장혁 씨, 어둠 속에 있어도 빛을 향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직접 물어보는 게 어때요? 그들의 생각을 들어보세요.” 이청성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제발 저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