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우가 다시 평안 의원에 도착했을 때 물건이 잔뜩 깨져 아수라장이 됐던 바닥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의원 전체가 환골탈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많이 피곤했는지 이청아는 책상에 엎드려 곤히 자고 있었다.그녀의 수척해진 얼굴을 내려다보는 유진우의 눈빛이 어딘가 복잡해 보였다. 어쨌거나 그녀가 주정뱅이 영감의 목숨을 살려줬으니 고마운 건 사실이었다.그는 외투를 벗어 이청아에게 덮어주었다.“어?”이청아가 움찔하면서 눈을 번쩍 떴다.“왔어? 다친 데는 없고?”“난 괜찮아. 오늘 고생 많았어.”유진우가 고마움에 인사를 전했다.“고생은 무슨. 할아버지가 다치셨는데 돌봐드리는 건 당연한 거지.”이청아가 입술을 씰룩거렸다.“밤새 힘들었겠는데 배 안 고파?”“조금.”“자주 먹던 비빔 국수 한 그릇 말아줄까?”“응, 그래 주면 고맙고.”“잠깐만 기다려.”유진우는 곧장 주방으로 들어가 솜씨를 발휘하기 시작했다.결혼 생활 3년 동안 매번 이청아가 밤늦게까지 일하고 들어와 배가 고프다고 할 때면 야식을 만들어줬었다. 특히 그가 만들어준 비빔 국수는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두 사람의 거리가 점점 멀어졌고 사이도 점점 서먹서먹해졌다. 그러다가 결국 이혼 도장을 찍고 말았다.“비빔 국수 다 됐어.”15분 후, 유진우는 빛깔 고운 비빔 국수 한 그릇을 내왔다.“너무 맛있게 생겼어.”이청아는 젓가락을 들고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녀는 게 눈 감추듯 설거지를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깔끔하게 먹어 치웠다.“너무 맛있어. 요리 솜씨가 더 는 것 같아.”이청아가 오랜만에 웃어 보였다.“오랜만에 먹어봐서 그럴 거야.”유진우가 무뚝뚝하게 말했다.“그런가? 그럴 수도 있겠네.”이청아의 두 눈에 그늘이 살짝 드리워졌다.눈 깜짝할 사이에 3년이 지났다. 전에 있었던 많은 일이 이젠 습관이 돼버렸다. 추울 땐 누군가 옷을 챙겨줬고, 배가 고플 땐 밥을 차려줬고, 감기에 걸려 열이 날 땐 옆에서 챙겨줬었다. 몸에
“뭐라고? 대주주?”그의 말에 단소홍은 깜짝 놀라더니 이윽고 박장대소했다.“하하하... 유진우, 너 설마 약 잘못 먹었냐? 너 같은 인간이 대주주라고? 지나가던 개도 웃겠다!”여호준도 옆에서 비웃었다.“진우 씨, 다른 사람 앞에서 잘난 척하는 건 참견할 바가 아니지만, 저희 앞에서까지 이러는 건 좀 곤란하네요. 망신당하고 싶어서 환장했어요?”그는 유진우가 어떤 사람인지 낱낱이 조사했고 그저 평범한 흙수저에 별 볼 것 없는 초라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믿거나 말거나, 당신들은 대리권 못 받을 거라고 제가 장담해요.”유진우는 여유롭게 입을 열었다.“쳇! 장담? 당신이 뭐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줄 아나 봐요?”단소홍은 시큰둥하게 입을 삐죽 내밀었다.“오늘 이곳은 강 매니저님이 책임지고 있어. 그 사람 말 한마디에 모든 일이 결정 난다고!”“강 매니저가 누군지 난 잘 모르겠고, 아무튼 그 사람한테 결정 권한이 없다고 내가 확신해.”유진우는 무덤덤하게 말했다.“헛소리하지 마! 강 매니저님한테 권한이 없으면 누구한테 있는데? 설마 너? 주제도 모른 채 나대지 말고 그냥 가만히 있어!”단소홍은 비아냥거렸다.“진우 씨, 여기서 망신당하기 전에 얼른 나가세요!”여호준은 마치 광대를 보듯 그를 조롱했다.‘내가 왜 저런 쓰레기 같은 놈한테 두 번이나 진 거지? 이해가 안 되네.’“소홍아...”대화를 나누는 사이 웬 뚱뚱한 중년 남성이 다가왔고, 바로 조신 의약의 매니저였다.“오빠, 드디어 오셨네요!”단소홍은 두 눈이 반짝이더니 기쁜 마음으로 다가가 그의 팔짱을 끼며 인사를 건넸다.“못 본 사이에 점점 더 이뻐지는 것 같네.”강 매니저는 단소홍의 엉덩이를 툭툭 치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어머...”단소홍은 애교를 부리며 뒤따라갔다.“실은 소개해 드리고 싶은 분이 있어서 이렇게 찾아왔어요. 이분은 서울 대가문 출신의 여호준 도련님이에요.”“이분이 여호준 씨군요?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강 매니저는 눈을 반
강 매니저는 가슴을 내리치며 약속했다.“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랑 유 선생님은 절친한 사이예요. 서로 목숨까지 내어줄 만한 우정을 갖고 있죠. 어젯밤도 같이 밥 먹고 여자들이랑 놀았어요. 제가 입을 열면 친구로서 체면을 세워줄 게 분명해요!”그 말을 들은 유진우는 저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고 생각 없이 말을 내뱉는 강 매니저를 보며 어이가 없었다.“어이! 당신 왜 웃어요?”강 매니저는 불쾌한 듯 시선을 돌렸다.“오빠, 저런 쓸모없는 인간은 신경 쓰지 마세요.”단소홍은 눈을 뒤집으며 그를 째려봤다.“대리권을 가질 수 있게 도와주신다면 일이 성사된 후에 큰 감사 인사를 드리겠습니다!”여호준은 장담하며 말했다.“하하... 어려운 일 아니니 제가 알아서 할게요!”강 매니저는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그럼, 강 매니저님만 믿고 가겠습니다.”비연단의 인기에 힘입어 대리권까지 얻게 된다면 무조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여호준의 입꼬리는 내려올 줄 몰랐다.그때가 되면 가문을 일으켜 세울 날이 머지않았다!“호준 씨, 대리권 외에 다른 사업도 하나 있는데 관심 있으세요?”강 매니저는 의미심장하게 입을 열었다.“네? 무슨 사업이죠?”여호준은 흥미가 생긴 듯 눈썹을 치켜올렸다.강 매니저는 주위를 살피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회사가 비연단에 대한 요구가 매우 높아서 일부 품질이 떨어지는 제품에 대해서는 폐기하고 있었는데, 솔직히 이대로 버리는 건 너무 아깝잖아요. 그래서 담당자들이 불량품을 따로 보관해뒀고, 나중에 일괄 판매할 계획인데 원하시면 싼값에 드릴게요.”“불량품이요? 그게 약효가 있나요?”단소홍은 답답한 듯 물었다.“소홍아, 넌 이해 안 되지? 불량품들이 약효가 조금 떨어지는 건 맞는데 그걸 누가 알아보겠어? 진짜 비연단과 섞이면 아무도 구분 못 해!”강 매니저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정말요?”그의 말에 단소홍은 두 눈이 반짝였다.“오빠가 설마 널 속이겠어? 원한다면 내가 5분의 1 가격으로 싼값에 팔게. 나
“네가 감히... 날 때려?”강 매니저는 화끈거리는 얼굴을 감싸 쥐고 분노를 감출 수 없었다.조씨 가문의 사람으로 살면서 그동안 어디를 가든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고 이렇게 뺨을 맞은 적은 처음이었다.“왜요? 때리면 안 되나요? 불량품을 훔친 것도 모자라 그걸 되팔아 이익을 챙기려고 하는 당신 같은 비열한 인간은 맞아도 싸!”말을 마친 유진우는 또다시 그의 뺨을 때렸고 어느새 강 매니저는 정신을 잃은 채 피를 흘렸다.소란스러운 분위기는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었다.“미친! 저 사람 누구야? 감히 강 매니저님을 때리다니!”“조씨 가문의 구역에서 이런 일을 벌이다니. 정말 대단하네!”“하룻강아지는 범 무서운 줄 모르잖아. 곧 큰일 나겠네!”사람들은 손가락질하며 수군거렸다.“유진우! 너 미쳤어? 그만해!”깜짝 놀란 단소홍은 재빨리 그를 말렸다.“진우 씨! 당신 지금 얼마나 큰 사고쳤는지 모르죠? 강 매니저님을 때리다니, 이곳에서 살아서 나가기는 글렀네요!”여호준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나 유진우는 아무 반응도 없이 계속하여 강 매니저를 사정없이 때렸다.“사람 불러와! 얼른!”강 매니저의 외침에 곧바로 사방에서 경호원들이 몰려들었고 순식간에 유진우는 포위당했다.“유진우! 네가 감히 강 매니저님을 때리다니, 정말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경호원들이 도착하자 단소홍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옆에서 비웃었다.“주제도 모르고 남 일에 참견하더니, 오늘은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네요!”여호준은 지금껏 유진우가 눈에 거슬렸지만, 자신의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손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마침 누군가가 대신해서 혼내주니 잘됐다 싶어 통쾌한 듯 옆에서 상황을 지켜봤다.“가만히 서서 뭐 하는 거야? 당장 이 새끼 손발 하나도 빠짐없이 부러뜨려! 문제 생기면 내가 책임질게!”강 매니저는 유진우를 가리키며 울부짖었다.“무슨 일이야?!”경호원들이 손을 쓰려던 찰나 어디선가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고 곧이어 잘생긴 얼굴의 한 남자가 기세등등하게 여러 사람
“들었어요? 사람들이 전부 당신이 훔쳤다고 하잖아요.”자신의 돈줄을 가로막으려는 유진우를 보며 방민은 그저 비웃었다.“방 대표님은 저 사람 감싸려고 이미 마음을 먹으신 것 같네요?”상황을 지켜보던 유진우는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강 매니저가 이런 인간인데 방민은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기대했던 자신이 바보 같았다.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는 건 둘째 치고, 부하 직원이 잘못을 저질렀는데 핑계 대며 남한테 뒤집어씌우려는 이런 파렴치한 짓은 정말 역겨웠다.“감싸겠다면요? 당신이 뭔데 이곳에서 난리를 피우는 거죠?”방민은 가소로운 듯 말을 이었다.“마지막 기회를 드릴게요. 잘못 인정하고 지금 당장 강 매니저한테 무릎 꿇고 용서를 비세요. 안 그러면 지옥 같은 나날들을 보내게 될 거예요.”“정말로 그렇게 하실 건가요?”유진우가 되물었다.“제가 지금 장난하는 거로 보여요? 개를 때리고 싶어도 주인이 누군지 보면서 손을 써야지, 당신이 뭔데 내 구역에서 행패를 부리는 거죠? 지금 당장 무릎 꿇고 잘못을 인정해요!”방민은 두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들었지? 당장 무릎 끓어!”순식간에 자신감을 되찾은 강 매니저는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유진우! 이게 바로 네가 쓸데없이 남의 일에 참견한 대가야! 이제 후회해도 소용없어.”단소홍은 만족스러운 듯 웃음을 보였다.“주제넘게 나대더니 꼴좋네.”여호준은 바보를 쳐다보듯 그를 무시했다.절대적인 권력 앞에서는 옳고 그름이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아무리 억울하다고 주장해도 모든 건 권력을 가진 사람의 뜻대로 흘러가게 된다!“그래요. 당신이 이런 결정을 내렸다면 어쩔 수 없죠. 후회하지 마세요.”말을 마친 유진우는 핸드폰을 꺼내 특정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왜요? 사람이라도 부르려고? 하하하...”그의 행동이 우스운 듯 방민은 웃음을 터뜨렸다.“어이!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되나 본데, 여긴 내 구역이고 모든 건 내 뜻대로 진행될 거예요. 누가 영웅처럼 나타나 당신을
“네? 유 선생님?!”방민은 경악을 금치 못한 채 그대로 자리에 얼어붙었다.비연단의 개발자 유 선생이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다는 소식은 미리 접했지만 이렇게 젊은 사람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아니죠? 그, 그, 저... 저분이 정말 유 선생님이라고요?!”강 매니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이 휘둥그레졌다.‘방금 눈 하나 깜빡 안 하고 헛소리를 내뱉었는데 당사자가 바로 옆에 있었다니! 큰일 났네!’“유 선생? 유진우?!”단소홍은 주위를 살피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잘못 들은 건가? 정말 유진우가 유 선생이라고? 비연단을 개발한 그 대단한 사람? 말도 안 돼!’여호준의 놀라움은 금세 질투로 바뀌었다.‘저 자식은 어떻게 비연단의 처방전을 손에 넣게 된 거지?’비연단같은 영약을 개발한 순간, 가문을 일으켜 세우는 건 식은 죽 먹기였고 이런 절호의 기회가 유진우의 손에 넘어갔으니 배가 아팠다!“방 대표님, 다시 한번 물을게요.”조선미가 다시 입을 열었다.“정말로 유 선생님이 비연단을 훔쳤다고 생각해요?”“그게... 오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방민은 눈을 파르르 떨며 애써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오해요?”조선미는 단호했다.“그렇다면 비연단을 훔친 사람이 따로 있다는 거네요?”“그럼요, 유 선생님이 어떻게 자신의 물건을 훔칠 수 있겠습니까?”방민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 그럼 이 불량품은 누가 훔친 건지 방 대표님이 직접 말해봐요.”조선미가 싸늘하게 물었다.“이제 알겠어요!”방민은 뭔가 깨달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강 매니저가 훔친 게 틀림없어요! 그래 놓고 권력을 이용해서 중간에서 이간질하다니... 회사에 도움 안 되는 저런 인간은 지금 당장 해고하겠습니다!”“방 대표님, 전...”“닥쳐!”강 매니저가 입을 열려고 하자, 방민은 시원하게 그의 뺨을 내리치며 단호하게 말했다.“파렴치한 것! 잘못을 저질렀으면 솔직하게 인정해야지.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제가 다 잘못했어요. 대표님, 한 번만
“지금 절 때리신 거예요?”방민은 얼굴을 가린 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때릴 뿐만 아니라 지금 당장 내쫓을 거예요. 지금부터 방민 씨는 회사의 부대표가 아닙니다!”조선미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조선미 씨! 정말 너무하네요! 제가 회사에 바친 세월만 해도 몇십 년인데 어떻게 저런 자식 때문에 절 해고할 수가 있죠? 그동안 큰 공로는 못 세워도 온갖 궂은 일 해가며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는데, 직원들의 원성이 두렵지 않은가 봐요?”방민은 분노하며 말했다.“그래서요? 지금 절 협박하는 건가요? 당신이 그럴 자격 있나요?”조선미는 비웃으며 말을 이었다.“솔직하게 말할게요. 해고할 뿐만 아니라 감옥에 처넣을 겁니다! 그동안 당신이 했던 더러운 짓들을 제가 하나도 빠짐없이 기록했거든요. 평생 감옥에서 썩을 만큼 준비했으니 각오하세요!”“조선미 씨! 어딜 감히! 난 당신 사촌오빠 조준서의 사람이라고요!”방민은 울분을 토하며 말했다.“조준서? 흠... 그럼 불러와 봐요, 내가 똑같이 대해줄 테니까!”조선미의 패기 넘치는 말에 방금 문을 들어선 조준서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조선미는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당신이 그러면 안 되지. 난...”“입 닥쳐요!”조선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손을 들어 그의 뺨을 내리쳤고 방민은 코피를 터뜨렸다.“전 분명히 기회를 드렸고 그걸 발로 차버린 건 당신이니까 후회하지 마세요. 여기! 이 두 사람 묶어서 경찰서로 보내요!”그녀의 명령과 함께 한 무리의 경호원이 다가오더니 단숨에 그들을 제압했다.“조 대표님! 제가 잘못했어요!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다시는 이런 실수 범하지 않겠습니다!”상황이 심상치 않게 흘러가자, 당황한 방민은 그대로 무릎을 꿇어 용서를 빌기 시작했다.“한순간의 욕심이 이런 큰 화를 불러일으킬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회사에 충성한 그간 세월을 생각해서라도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유일한 버팀목이었던 방민이 무너지자 더 이상 의지할
“됐어요. 지나간 일로 다투지 말고 이제 본론으로 들어갑시다...”여호준이 입을 열며 상황을 정리했다.“진우 씨, 전 비연단의 대리권에 관심이 많아요. 여기 2억짜리 수표를 드릴 테니 대리상 자리 하나만 넘겨주세요.”“2억이요? 지금 장난해요?”유진우는 이 상황이 어이가 없었다.“야! 2억이 적다고? 너 욕심이 너무 많은 거 아니야?”단소홍은 불만스러운 듯 말을 이었다.“조씨 가문에 처방전 하나 줬다고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줄 아나 본데 착각하지 마!”“진우 씨, 차라리 시원하게 금액 불러요. 얼마를 주면 대리권 얻을 수 있을까요?”여호준은 애써 침착함을 유지했다.“돈 필요 없어요. 당신 같은 인품을 가진 사람은 비연단의 대리권을 얻을 자격이 없으니까.”유진우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뭐요? 내가 돈주고 산다는데도 지금 거절하는 거예요?”여호준은 믿기지 않은듯 눈을 부릅떴다.“돈도 누구 돈인지 봐야죠. 당신같은 더러운 인간의 돈은 받고 싶지도 않네요.”유진우는 단칼에 거절했다.“유진우 씨! 주제넘게 행동하지 마요!”여호준은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이미 당신의 체면도 세워줬고, 전에 있었던 일도 더 이상 따지지 않고 넘어갈 테니까 내 앞길 막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맞아! 호준 오빠가 대리해 준다면 영광인 줄 알아야지, 감사한 줄도 모르고 뻔뻔스럽긴!”단소홍은 목소리를 높였다.“지금 절 협박하는 거예요?”유진우는 흥미로운 듯 물었다.“어떻게 해석하냐에 따라 다르겠죠. 충고일 수도 있고, 협박일 수도 있고.”여호준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답했다.“충고든 협박이든 내 알 바 아니고, 대리권을 얻는 건 꿈도 꾸지 마세요!”유진우는 직설적으로 말했다.“유진우 씨, 꼭 이렇게 서로 빈정 상하게 일 크게 만들고 싶어요?”여호준은 이를 악물며 말했고 그 눈빛은 독사처럼 음산했다.“그게 어때서요? 제가 겁이라도 먹을 줄 아나 봐요?”유진우는 피식 웃었다.“좋아요! 어디 한번 두고 봐요!”여호준은 그를 매섭게 노려본 후
“아니에요?”유장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용호산은 여태껏 무림인의 세계에서 일어난 일에 무관심했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건 다른 의도가 있는 게 분명해.”서태양이 말했다.인재를 선발해 위상을 높이려고 진무사가 나섰다면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었다.하지만 용호산은 전혀 관계가 없지 않은가?“그럼 무슨 의도인데요?”유장미가 되물었다.“내가 어떻게 알아? 나도 궁금하거든?”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는 서태양은 어깨를 으쓱했다.“보혁 씨는 내막에 훤하니까 화두를 꺼낸 거겠죠?”유이슬이 시선을 돌렸다.“내막까지는 아니지만 주워들은 소식이 몇 가지 있긴 해요.”염보혁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제가 알기로는 용호산 뒷산의 금지구역에 최근 신비로운 보물이 나타났는데 향후 100년 동안 무림인들의 흥망성쇠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관련이 있다고 해요.”“무슨 보물이 그렇게 대단해요?”유장미가 깜짝 놀랐다.유이슬과 서태양도 예상치 못한 듯 충격을 금치 못했다.무림인들의 흥망성쇠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만약 제 추측이 맞는다면 용원의 기와 관련된 보물일 거예요.”염보혁이 목소리를 낮추었다.순간, 유진우는 눈썹을 추켜세웠지만 이내 포커페이스로 돌아왔다.“용원의 기? 그게 뭔데요?”유장미가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용맥의 정수이기도 하죠.”유이슬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며칠 전 호룡각이 와해하면서 지하 용맥이 다섯 개의 용원의 기로 변해 세상에 뿔뿔이 흩어졌어. 소문에 의하면 용원의 기를 얻는 자는 천하무적이 되어 승승장구한다고 해.”호룡각이 무너지고 용맥이 파괴된 일이 워낙 큰 이슈였기에 자연스럽게 그녀의 귀에도 흘러 들어갔다.“진짜요? 그렇게 대단한 물건이 있어요?”유장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고서에서 관련된 기록을 본 적이 있는데 용원의 기를 얻은 자들은 세상을 주름잡는 수장이거나 천하를 다스리는 왕이었어.”유이슬이 한마디 보탰다.“맞아요.”염보혁이 대
유진우는 옆에 있는 염보혁을 흘깃 쳐다보았고, 속으로 상대방이 아무리 예뻐도 남자를 좋아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쿨럭!”염보혁은 사레가 들린 나머지 연신 기침하며 쓴웃음을 지었다.“이슬 씨, 지금 절 칭찬하는 건지 비꼬는 건지 모르겠네요.”“당연히 칭찬하는 거죠. 그런 얼굴을 보고도 어떤 남자가 마음이 흔들리지 않겠어요?”유이슬이 정색하며 말했다.“네?”염보혁은 말문이 막혔다.설령 사실일지언정 어찌 면전에서 대놓고 말할 수 있지?왠지 모르게 기분이 이상했다.“정 믿기 어려우면 태양한테 물어봐요.”유이슬이 문득 말했다.한편, 서태양은 염보혁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이름이 언급되는 순간 흠칫 놀라더니 서둘러 시선을 돌렸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은 도둑이 제 발 저린 듯싶었다.“제가요?”서태양은 난감한 얼굴로 대답했다.“선배, 장난하지 마세요. 저랑 무슨 상관이죠?”“뭔가 냄새가 나는데요?”유장미가 눈썹을 까딱하더니 눈알을 굴리며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설마 보혁 씨한테 진짜 반한 건 아니죠?”“이... 계집애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서태양이 펄쩍 뛰면서 얼굴이 벌게진 채 고래고래 외쳤다.“남자끼리 엮일 리가 없잖아.”“침착해요. 단지 농담했을 뿐이에요.”유장미가 키득거리며 말했다.“게다가 남남 커플이 진짜 사랑이죠. 어차피 안 될 건 없잖아요. 만약 사귈 생각이 있다면 진심으로 축복해줄게요. 하하하!”“입만 열면 헛소리 하네.”서태양은 짐짓 화가 난 듯 혼내려는 액션을 취했다.유장미는 잽싸게 유이슬의 등 뒤로 숨어 웃음을 터뜨렸다.갑자기 산으로 흘러가는 대화에 당사자인 염보혁은 말문을 잃었다.더욱이 유장미와 투닥거리는 와중에도 그를 흘끔거리는 서태양 때문에 어이가 없었다.단순히 농담으로 치부할 수 있었지만 몰래 훔쳐보는 탓에 괜히 기분이 세했다.“진우 씨, 이슬 씨, 다들 용호산은 처음이죠? 제가 구경 좀 시켜드릴까요? 주변에 뭐 있는지 소개해줄게요.”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염
술이 몇 잔 오가자 서서히 편하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이슬 씨, 방금 검종의 제자라고 하시던데 무림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용호산에 오른 건가요?”염보혁이 넌지시 물었다.“그런 셈이죠.”유이슬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성격이 무심한 편이라 말주변이 딱히 없었다.“사실 저희는 스승님의 명을 받고 찾아왔어요.”상대적으로 외향적인 유장미가 웃으며 말을 보탰다.“노천사가 용호산에서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소식에 세상이 발칵 뒤집혔거든요. 검종 뿐만 아니라 천하회, 주술교를 포함한 파벌에서 최정예 제자들을 파견해 출전할 예정이에요.”“그럼 검종에서는 세 분이 참석하는 건가요?”염보혁이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아니요.”유장미가 고개를 저었다.“저희는 단지 구경하러 왔을 뿐,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는 따로 있어요.”그녀와 서태양은 선천 후기에 속했고, 유이슬은 실력이 뛰어나긴 했으나 반보 마스터에 불과했다.어찌 됐든 천교에 비하면 열세에 처하는지라 검종을 대표해서 출전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따로 있다니? 설마 홍군림이에요?”염보혁의 눈썹이 까닥했다.“그건 저도 잘 몰라요.”유장미가 생긋 웃었다.“워낙 제멋대로에 신출귀몰하는 사람이라 이번 무림대회에 참가할지 아무도 몰라요. 만약 홍 선배가 진짜 출전한다면 우승은 우리 검종이 차지할 거예요.”홍군림은 천교 랭킹의 1위에 올랐을뿐더러 어린 나이에 경천 랭킹에 진입한 검종의 천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다만 성격이 까칠하고 독불장군이라 종주를 제외하고 아무도 안중에 두지 않았다.“장미야, 그건 네 생각이고.”이때 유이슬이 입을 열었다.“홍 선배가 실력이 뛰어나고 검종의 천재로서 일반 무사들이 함부로 넘볼 수 없는 존재인 건 사실이지만 너도 알다시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능력자가 한 명 더 있잖아.”“누구요?”유장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유장혁.”유이슬이 무덤덤하게 말했다.“그 사람이 홍 선배보다 실력이 더 뛰어나요?”유장미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막상막하야. 천교
“네?”염보혁의 한 마디에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한참 동안 넋을 잃었다.특히 잘 보이기 급급했던 서태양은 굳은 얼굴로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허공에 손을 들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이럴 수가?방금 목숨 걸고 구하려던 사람이 남자였다니?“남자...? 농담이죠?”붉은 옷 소녀가 염보혁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경국지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미인이 대체 어디를 봐서 남자란 말인가?푸른 옷 여인은 입만 벙긋했을 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흡혈파 망나니들이 여자가 아닌 남자한테 집적거렸다니?취향 한번 독특했다.“아니요. 진짜 남자예요.”염보혁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밖에 나가면 여자로 오해받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하지만 아무리 봐도...”붉은 옷 소녀가 말을 아꼈다.“외모 때문에 어쩔 수 없어요.”염보혁이 어깨를 으쓱하며 해탈한 듯 말했다.“아쉽네요.”붉은 옷 소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본인이 이렇게 예쁜 얼굴을 가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선배? 왜 그래요? 괜찮아요?”그녀는 아직도 넋을 잃은 서태양을 발견하고 손을 뻗어 어깨를 툭 쳤다.“응? 아, 괜찮아. 단지 조금 놀랐을 뿐이야.”서태양은 꿈에서 깨어난 듯 금세 정신을 차렸다.다만 눈빛만큼은 남자한테서 떠나지 않았다.이렇게 요염한 얼굴이 사내란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그야말로 재능 낭비이지 않은가?“저는 염보혁입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염보혁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유이슬이에요.”푸른 옷 여인이 대답했다.“저는 유장미라고 해요.”붉은 옷 소녀가 활짝 웃었다.비록 남자이지만 미모에 저절로 눈이 갔다.“서태양입니다.”서태양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방금 일어난 일에 대해 찝찝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다 같이 술이나 한잔 하시죠?”염보혁은 손을 내밀더니 소개를 이어갔다.“이쪽은 유진우 씨, 그리고 두 분은 호위무사인...”“춘화와 추월이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수염 난 사내의 몸에 피투성이 상처가 생겼다.눈 깜짝할 사이에 연신 검에 찔린 탓에 저항할 힘조차 없었다.비록 수염 난 사내가 힘은 더 셌지만 기교에서는 한참 못 미쳤다.여자의 화려한 검술은 감탄을 자아냈고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악!”수염 난 사내가 처참한 비명을 질렀다.사지가 부러진 채 바닥에 널브러진 모습은 마치 좀비를 연상케 했다.온몸은 피가 흥건했고 상처로 가득했다. 비록 목숨에 지장은 없지만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다.“형님!”패배한 우두머리를 보자 흡혈파 제자들이 충격과 분노를 금치 못했다.항상 위풍당당하고 기세등등했던 수장이 이런 몰골을 보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젠장! 감히 우리 형님을 다치게 해? 죽고 싶어 환장했어?”“저년을 없애버려!”흡혈파 제자들이 고래고래 외치며 검을 빼 들고 무시무시한 기세로 여자를 덮쳤다.“무용지물이야.”푸른 옷 여인은 콧방귀를 뀌더니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사람들 틈으로 뛰어들었다.얼마 안 되어 흡혈파 제자들은 하나같이 처참한 비명과 함께 바닥에 나뒹굴었다.팔이나 다리가 부러진 채 선혈이 낭자했다.“역시 대단하세요!”눈앞의 광경에 붉은 옷 소녀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망나니 따위가 감히 검종에게 대들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서태양이 바닥에 침을 뱉었다.“뭐... 뭐라고? 너희들이 검종 제자였어?”흡혈파 제자들은 안색이 돌변하더니 두려운 기색이 역력했다.검종은 무림인들의 세계에서 3대 문파 중 하나로 천하회와 주술교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비록 제자들이 많지 않았지만 뛰어난 인재들밖에 없다.특히 검종의 홍군림은 어린 나이에 천교 랭킹 1위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경천 랭킹에 진입하여 세계 10위의 강자가 되었다.경천 랭킹 10위권에 검종 제자가 무려 2명이나 있는데 압도적인 실력으로 3대 파벌의 수장 자리를 거머쥐었다.여기서 검종의 제자들을 만나게 될 줄은 예상치도 못했다.이럴 줄 알았더라면 애초에 무모한 짓을 벌이지 않았을 텐데.“이제야
“윽!”서태양은 이를 악물고 이마에 핏줄이 튀어나온 채 낮은 신음을 내뱉었다.이내 양손으로 검을 쥐고 온 힘을 다해 어깨를 짓누른 흡혈검을 떼어내려고 했다.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상대방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오히려 힘이 점점 더 가해졌고 무릎이 닿은 바닥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고작 이런 실력으로 감히 우리 흡혈파한테 덤비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수염 난 사내가 냉소를 지었다.“형님! 멋져요.”“역시 대단하세요.”부하들이 질세라 감탄했다.북쪽에서 흡혈파라고 하면 꽤 이름 있는 큰 파벌인지라 애송이 같은 놈이 도발할 만한 게 아니었다.“감히 내 앞에서 영웅 행세해? 넌 오늘 인생에서 가장 잘못된 결정을 내린 거야. 교훈 삼아 사지를 부러뜨려줄게!”수염 난 사내가 비열한 미소를 짓더니 흡혈검을 들어 올려 서태양의 손목을 향해 휘둘렀다.챙!검이 닿기 직전 청색 보검이 불쑥 나타나 허공에서 공격을 막아냈다.“응?”수염 난 사내가 눈살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푸른 옷 여인이 보검을 들고 싸늘한 눈빛을 보냈다.“선배?”서태양의 표정이 밝아지더니 그제야 한숨 돌렸다.조금만 늦었더라도 오른손을 잃어버렸을 텐데 그나마 선배가 제때 도움을 줘서 천만다행이었다.“괜히 참견하지 마.”수염 난 사내가 음흉하게 웃었다.“우리 후배한테 손을 대는 순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여자가 싸늘하게 말했다.“맞아! 너희들 같은 망나니는 벌을 받아 마땅하지.”이때, 붉은 옷 소녀가 검을 빼 들고 낭랑한 목소리로 외쳤다.“언니, 제가 도와줄게요.”“아니야. 넌 태양이랑 지켜보고 있어. 이런 놈들은 나 혼자서도 충분하니까.”푸른 옷 여인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어디서 나온 자신감이지?”수염 난 사내가 히죽 웃었다.“그런 왜소한 몸으로 오빠의 검을 어찌 막으려고? 차라리 무기는 내려놓고 침대에서 겨뤄보는 건 어때?”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부하들이 폭소를 터뜨렸다.곧이어 음흉한 시선으로 여자를 훑으며 멋대로 평가하
서태양이 움직이자 수염 난 사내의 뒤에서 덩치가 산만 한 남자 두 명이 튀어나왔다.두 사람은 무기로 길쭉한 검을 들고 있었다.몸체는 강한 피비린내와 함께 은은한 살기가 감돌았다. 이는 칼날이 오랫동안 선혈에 노출된 결과였다.무림인들의 세계에서는 흡혈검이라고 불렀다.다만 아쉽게도 그들이 지닌 검은 아직 미성숙 단계였고 기세가 한창 부족했다.챙! 챙!서태양이 먼저 검을 빼 들고 혼자서 두 명의 사내와 대결을 벌였다.그들은 기세등등하게 맞서 싸웠지만 힘만 강했을 뿐 행동이 굼뜬 편이었다.공격할 때마다 동작이 다소 어설펐다.반면, 서태양은 누가 봐도 고수의 가르침을 받았고 실전 경험도 풍부했다.스피드, 힘, 기술 등 모든 면에서 높은 수준에 도달했으며 어느 하나 뒤처진 데 없었다.세 사람이 공격을 주고받는 순간 실력 차이가 현저했고, 서태양은 눈 깜짝할 사이에 두 사내를 쓰러뜨렸다.그리고 응징할 겸 각자의 다리에 검을 관통했다.“흥! 고작 이런 실력으로 우쭐거려? 제 주제도 모르고.”서태양은 장검을 비스듬히 겨누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죽기 싫으면 당장 꺼져.”“좋아! 잘했어!”승리를 거머쥔 서태양을 보자 구경하던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비록 나서서 싸울 용기는 없었지만 응원의 박수를 보내는 것쯤은 충분히 가능했다.“그래도 실력은 꽤 있나 보네? 어쩐지 참견하더라니.”수염 난 사내가 눈을 가늘게 뜬 채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천천히 뽑아 들고 음침한 목소리로 협박했다.“하지만 오늘 임자를 만났지. 흡혈파를 마주친 이상 살아남을 방법은 없어.”“흡혈파는 무슨, 들어보지도 못했구먼.”서태양의 표정은 기고만장했다.“하! 괜찮아. 네 피를 전부 흡수하고 나면 우리가 왜 흡혈파라고 불리는지 알 거야.”수염 난 사내가 이죽거리더니 두말없이 공격을 개시했다.그가 발을 내딛자마자 맹렬한 기세가 솟구쳤고, 손에 든 흡혈검은 핏빛을 뿜어내며 곧장 서태양을 덮쳤다.앞서 상대했던 부하들과 달리 수염 난 사내의 흡혈검은 살기로 가득했다
아름다운 얼굴은 쉽게 화를 부르는 법이다.염보혁은 남자였지만 여자보다도 더 아름다운 요염한 얼굴을 지녔다.길을 나서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도리가 없었고 지금처럼 깡패 무리와 마주할 때면 번번이 시비에 휘말리기 일쑤였다.유진우는 모른 척하며 조용히 술잔을 기울였다.“어이, 이쁜이. 저런 나약한 놈이랑 술 마셔서 뭐 하겠어? 차라리 우리랑 한잔하지, 아주 즐겁게 해줄 테니 말이야!”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사내가 염보혁의 턱을 손가락으로 건드리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이 손 치우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 후회하게 될 테니까.”염보혁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차가운 눈빛을 보냈다.어여쁜 외모 탓에 남녀를 불문하고 다가오는 사람이 많았지만 이처럼 대놓고 희롱하는 경우는 드물었다.“오, 이쁜이가 화를 내네?”수염 난 사내는 턱을 문지르며 비웃었다.“솔직히 말해서 화난 얼굴이 더 매력적인데?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더욱 감탄스럽군.”그의 말에 뒤따르던 무리들이 일제히 폭소를 터뜨렸다.유진우는 피식 웃으며 술잔을 내려놓았다. 눈앞의 이 사내는 제법 능숙하게 수작을 부렸다.염보혁이 남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셋을 센다. 그 안에 사라지지 않으면 내가 직접 손봐주지.”염보혁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손 본다고? 하하하!”수염 난 사내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이거 제법 앙칼진데?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위층으로 올라가서 천천히 우리를 손 봐줘, 어때?”“맞아, 맞아! 방도 넉넉하니 차례대로 너랑 놀아줄 수 있다고!”그의 동료들도 시시덕거리며 말을 보탰다.“셋.”염보혁은 더 이상 말을 섞을 필요도 없다는 듯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이쁜이, 괜히 버티지 말고 그냥 올라가자. 내가 아주 다정하게 대해줄 테니 말이야.”수염 난 사내는 입을 커다랗게 벌려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낄낄댔다.“둘.”염보혁은 여전히 냉랭한 표정을 유지했다.“싫다면 어쩔 수 없지. 내가 직접 안아 올라가는 수밖에.”그가 손을
유진우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보혁 씨가 이렇게까지 많은 걸 알고 있을 줄은 몰랐군요. 제 생각엔 장일청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 것 같은데요.”용호산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염보혁이 이렇게나 많이 알고 있다니, 이건 그가 평범한 인물이 아님을 증명하는 셈이었다.“진우 씨께서 과찬해 주시는군요. 저는 그저 사람들 사이에 끼어 듣는 걸 좋아해서 호기심에 이런저런 소문을 알아본 것뿐입니다. 사실 별다른 능력은 없어요.”염보혁은 겸손하게 웃으며 덧붙였다.“하지만 만약 진우 씨께서 무림대회에 참가하신다면 전 온 힘을 다해 진우 씨가 우승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보혁 씨, 저를 너무 과대평가하시는군요.”유진우는 담담하게 말했다.“전 그저 세상 구경이나 해볼 겸 참가하는 것뿐입니다. 우승 같은 건 감히 꿈도 꾸지 않아요. 애초에 제 실력으로 어떻게 그 내로라하는 강자들과 겨룰 수 있겠습니까?”“진우 씨는 너무 겸손하시군요. 저는 사람을 보는 눈이 정확합니다.”염보혁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진우 씨는 외모도 준수하고 기품 또한 비범하시죠. 멀리서 봐도 강렬한 기세가 느껴졌습니다. 비록 진우 씨의 신분은 알 수 없지만 이것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진우 씨는 절대 범상한 인물이 아닙니다!”“보혁 씨께서 저를 이렇게까지 칭찬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유진우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평범한 출신에 보잘것없는 실력을 갖췄을 뿐입니다. 아마 실망할 겁니다.”“하하, 괜찮습니다. 커다란 황금 잉어가 어찌 작은 연못에서만 머물겠습니까? 바람과 구름을 만나면 반드시 용이 되어 날아오를 것입니다. 지금 진우 씨의 명성이 미미할지라도 저는 믿습니다. 언젠가 반드시 하늘 높이 날아오를 날이 올 거라고!”염보혁은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말했다. 그 눈빛은 절대적인 믿음을 담고 있는 듯했다.유진우는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이 사람, 도대체 뭐지? 분명 오늘 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