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했다니? 말 똑바로 해. 오빠 곧 대박 날 거야!”백령환의 인기가 점점 많아지고 있으니, 돈을 버는 건 시간문제였다.‘사업 비전도 없는 놈들! 이런 기회를 놓치다니.’“언니, 설마 오빠한테 백령환 사지 말라고 얘기 안 해 줬어?”조아영은 고개를 돌려 조선미를 바라봤다.“얘기했는데 안 듣잖아. 더 이상 내가 뭘 어떻게 할 수가 없어.”조선미는 손사래를 쳤다.“오빠, 아직 시간 있으니까 얼른 백령환 싼값에 팔아. 지금 파는 게 손해가 제일 적을 거야.”조아영은 진지하게 말했다.“싼값에 팔라고? 뭔 헛소리야?”조준서는 미간을 찌푸렸다.“내 가치를 10배로 높힐 유일한 기회야. 쉽게 포기 못 해.”“10배는 모르겠는데 내가 봤을 때 파산할 가능성은 있어.”조아영은 한심한 듯 고개를 저었다.“언니가 비연단이라는 신약 하나 개발했는데 몰랐어?”“비연단? 그건 또 무슨 듣보잡이야?”조준서는 경멸하는 표정으로 물었다.“비연단은 백령환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약효가 백령환보다 훨씬 뛰어나고 가격도 저렴해. 생각해 봐, 이런 약이 출시된다면 어떻게 될지!”“풉, 헛소리하지 마!”조준서는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다.“이 세상에 백령환과 비교할 수 있는 약은 없어. 너 지금 날 바보로 생각하는 거니?”“진짜야! 난 직접 먹어봤다고!”조아영은 다급하게 그를 말렸다.“그만해!”조준서는 싸늘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아영아, 난 네가 순진하고 거짓말조차도 못 하는 착한 아이인 줄 알았는데 고작 언니를 도와주려고 이런 헛소리를 해?”“안 믿으면 말고!”대꾸하기 귀찮아진 조아영은 코웃음 치고 몸을 돌렸다. 충고를 건네도 듣지 않는 그의 모습에 앞으로 큰일이 생겨도 전혀 신경 쓰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날 걱정할 시간이 있으면 어떻게 발표회 분위기를 띄울지나 생각해. 개미 한 마리도 없는 주제에 쪽팔린 줄도 모르고!”조준서는 싸늘한 얼굴로 그들을 비꼬았다.“누가 사람 없다고 했어? 봐... 저기 왔잖아?”조선미는 문을 향해 턱
강씨 가문 발표회 현장.북적거리던 행사장은 언제가부터 사람들이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처음에는 모두가 백령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점차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다들 들었어요? 조씨 가문에서도 발표회를 열었는데 손 명의와 연합하여 비연단이라는 약을 출시했대요. 약효가 아주 좋대요. 최상급이래요!”“정말요? 백령환과 비교하면요?”“백령환은 아예 비교가 안 된대요. 친구의 할머니가 방금 비연단을 드셨는데 휠체어에서 일어나셨대요!”“정말요? 그게 말이 돼요?”“못 믿으시겠으면 저와 같이 위층으로 올라가서 봐요!”“...”비연단의 소식이 퍼지면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조씨 가문의 발표회 현장으로 모여들기 시작했고 반대로 강씨 가문 쪽은 사람들이 서서히 줄어들고 있었다.강천호도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강 집사한테 물었다.“강 집사 무슨 일이야? 손님들이 왜 갑자기 줄어들었어?”“그러게요. 무슨 일인지 모르겠습니다.”강 집사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뭐해? 빨리 가서 알아봐.”강천호는 화가 났다.“네, 네, 네 ...”강 집사는 망설일 틈도 없이 서둘러 행사장 밖으로 뛰쳐나가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땀을 뻘뻘 흘리며 돌아왔다.“대표님, 큰일 났습니다. 조선미 대표도 위층에서 발표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비연단이라는 신약을 출시하고 있었는데 여기에서 사라진 손님들이 모두 위층으로 갔습니다.”“뭐라고?”강천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우리가 홍보를 얼마나 했는데 조선미가 무슨 수로 손님을 다 뺏어가?”“손 명의 때문인 것 같습니다!”강 집사는 땀을 닦으며 계속해서 말했다.“비연단은 조씨 가문과 손 명의가 협력하여 연구개발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몰려드는 것 같습니다.”“손명호?”강천호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가자! 올라가 보자!”강천호는 참을 수 없었다.백령환은 조씨 가문에서 수년간 연구한 결과물이자 궁중 비법이었다.아무리 손명호가 명의라고 해도 단 며칠 만에 백령환을 능가하는 신약을 개발할 수
조씨 가문 발표회 현장은 점점 더 활기를 띠고 있었다.조선미가 발표회는 아주 원만하게 이루어진 것 같다고 생각할 때 사람들 속에서 갑자기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악!”그 소리를 따라가 보니 한 노인에 바닥에 쓰러진 채 경련을 일으키며 입에서 거품을 내뿜더니 곧바로 아무런 움직임도 없어졌다.“아버지, 왜 이러세요? 일어나 봐요!”옆에 있던 한 중년 남성이 당황해하며 외쳤다.“저는 의사입니다, 제가 한번 볼게요!”한 대머리 남자가 나서서 노인의 코를 만져보고 맥박을 짚어보더니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이분 사망하셨습니다.”“사, 사망이요?!”순간 발표회 현장은 충격에 빠졌다.“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죠? 방금 전까지만 해도 괜찮았잖아요?”“그러니까요. 아주 건강해 보였는데 어떻게 갑자기?”“심장병이 있으셨던 거 아닐까요?”사람들은 서로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속삭였다.“말도 안 돼요!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실 수 없어요? 정기적으로 건강 검진도 받으셨고 건강하셨어요.”중년 남성이 울면서 외쳤다.“식중독인 것 같은데, 아까 뭘 드셨어요?”대머리 의사가 물었다.“오늘 점심에 저희 아무것도 안 먹었어요.”중년 남성이 잠깐 생각에 잠기더니 말했다.“아 맞다! 아버지 방금 비연단을 드셨어요. 그리고 이렇게 되였어요. 비연단에 독이 들어있는 거 분명해요.”“독이 있다고요?”독이 있다는 말을 들은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그들도 방금 모두 비연단을 먹었기 때문이다.“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조선미는 미간을 찌푸렸다.발표회 현장에서 갑자기 이런 일이 생긴다는 것은 좋은 징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노인의 죽음이 비연단과 관련이 있든 없든 간에 조신 의약의 명성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뿐만아니라 비연단을 먹고 사람이 죽었다는 소문이 퍼지면 비연단은 판매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이게 다 당신 때문이야!”중년 남자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 조선미를 가리키며 소리쳤다.“당신이 가짜 약을 팔아서 아버지가 사망했어! 아버
“물어봐?”조준서는 놀라 하며 물었다.“이봐, 날 바보로 알아? 이미 죽은 사람한테 뭘 물어봐?”“지금 비록 사망했지만 아직은 기회는 있어요. 저한테 마침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있거든요.”유진우는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말도 안 돼! 네가 신선이라도 되는 줄 알아? 죽은 자를 살린다고? 그냥 하늘을 날수 있다고 하지 그래!”조준서는 경멸하는 표정을 지었다.“이 청년은 뭐 하는 사람이에요? 뭘 믿고 여기서 큰소리치는 거죠?”“그러니까요! 손 명의도 기사회생 얘기는 안 하는데 뭘 믿고 저렇게 큰 소리를 하는 거죠?”“제 생각엔 그냥 조 대표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그러는 것 같아요.”사람들은 모두 유진우를 비웃었다.죽은 사람을 어떻게 살린다는 거지?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지?“말도 안 되는 소리인지 아닌지는 곧 알게 되겠죠.”유진우는 상세한 내용은 설명하지 않고 노인을 향해 걸어갔다.“당신! 뭐 하는 거야? 경고하는데 장난치지 마.”중년 남자는 경계하는 표정으로 유진우를 향해 말했다.“나 이미 신고했어. 우리 아버지 누구도 다치면 안 돼. 경찰이 곧 올 거야.”“진정하세요. 그냥 아버님을 살펴보는 거예요. 또 알아요? 제가 당신의 주장에 손들어줄지.”유진우가 말했다.“난 당신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왜 당신한테 보여줘야 돼!”중년 남자는 경계를 늦추지 않고 말했다.“여기 유진우 씨는 저의 조신 의약의 수석 의사입니다. 만약 아버님께서 정말로 저희 비연단 때문에 사망하신 거라면 저희도 모든 책임을 질 용의가 있습니다.”조선미가 긍정적으로 힘차게 말했다.비록 유진우가 무슨 일을 하려고 하는지는 모르지만 무조건 지지했다.“수석 의사라고 하는데 한번 보여드려요.”“정말 조씨 가문의 약이 사람을 죽인 거라면 우리 모두가 증언할 거예요.”현장의 많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중년 남자가 망설이는 것을 본 유진우가 물었다.“왜요? 당신의 아버지가 정확히 왜 사망하셨는지 알고 싶지 않으세요?”“좋아!
“아!”노인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자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랐고 일부 여성들은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시 ... 시체가 살아나다니!”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졌다.방금까지 바닥에 누워 있던 시체가 갑자기 벌떡 일어 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아버지 ... 진짜 살아나신 거예요?”중년 남자는 충격을 받은 척했다.“그려, 나 안 죽었어 ...”노인은 틀니가 빠진 탓에 말이 새어 나와 간신히 미소를 지으며 말했는데 돼지머리처럼 부풀어 오른 얼굴과 어우러져 꼴이 말이 아니었다.“세상에!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다니, 이 청년 대단한데요?”“한마디로 완전 쩔어요!”“이상하네요, 요즘 치료법이 이렇게 단순하고 거칠어요?”죽었던 노인이 살아나자 현장은 시끌벅적해졌다.어떤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고 어떤 사람들은 호기심을 보였다.“이봐요! 내가 당신 아버지 목숨을 구해줬는데,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 하는 게 당연하지 않겠어요?”유진우가 웃으며 말했다.“감사는 무슨!”중년 남자는 약간 화를 내며 말했다.“우리 아버지가 살아나신 건 아버지가 명이 길어서 그런 거죠. 하지만 비연단에 독이 있는 건 명백한 사실이에요!”“맞아요! 저는 분명히 당신들 약을 먹고 죽을 뻔했어요. 지금도 온몸이 불편해요.”노인은 이를 갈며 분노로 가득 찼다. 방금 심하게 맞은 것이 너무 분하여 크게 뜯어내고 싶었다.“그래요? 어디가 불편하세요? 제가 다시 봐드릴게요.”유진우가 말하며 노인한테로 다가서자 노인은 겁을 먹고 물러섰다.“뭐, 뭐 하는 거야? 가까이 오지 마! 경고했어!”“긴장하지 마세요. 기사회생은 하셨지만 아직 완치된 건 아니기에 만약을 대비해서라도 한 번 더 진찰을 해드릴게요.”유진우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유진우 씨, 부탁한 칼 여기 있어요!”때마침 조아영이 손에 커다란 식칼을 들고 큰 소리로 말하며 달려왔다.“때맞춰 왔네요.”유진우는 식칼을 받아들고 좌우로 두 번 휘두르며 말했다.“좀 크긴 한데 머리를 열어보기에는
한바탕 소란 끝에 조씨 가문의 발표회는 성공적으로 끝났다.반대로 기세등등하던 강씨 가문의 발표회는 처참한 실패로 끝났다.비연단이 동시에 출시되는 바람에 백령환은 큰 충격을 입었다.비연단이 약효도 훌륭하고 가격마저 상대적으로 저렴하기에 백령환은 도저히 팔릴 수가 없었다.결국 백령환은 두 손 두 발 다 들 수밖에 없었다.강천호가 치밀하게 계획했었지만 철저한 실패로 돌아갔다.이번 실패가 강씨 가문의 기반을 흔들 정도는 아니지만 손해는 적지 않았다.발표회가 끝나고 유진우가 인사하고 떠나려 할 때 조아영이 붙잡았다.“유진우 씨, 부탁할 거 있어요.”“무슨 일요?”유진우는 의아해하며 물었다.“좀 있다가 동창 모임이 있는데 함께 가줘요. 경호원으로요.”조아영은 직설적으로 용건을 말했다.“조씨 집안에 경호원이 몇 명인데 저를 찾아요? 관심 없어요.”유진우는 단호하게 거절했다.“아무 쓸모 없는 사람들이에요. 진우 씨랑 비교도 안 돼요.”조아영은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솔직히 얘기할게요. 동기들 중에 저를 계속 따라다니는 인간이 있어요. 귀찮아서 남자 친구가 있다고 했는데 믿지를 않아요. 그래서 오늘 유진우 씨를 보여주려고요.”“그러니까 저를 방패막이로 삼으려고 하는 거네요. 그렇다면 더 관심이 없어요. 사양할게요.”유진우는 어깨를 으쓱했다.“이봐요. 친구로서 이런 사소한 일도 안 도와줄 거예요? 너무 의리가 없네요.”조아영은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친구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아요.”유진우의 얼굴이 살짝 변했다.“흠! 순진한 척하지 마요.”조아영은 이미 꿰뚫어봤다는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유진우를 쳐다보았다.유진우가 해명하려 하자 조아영이 먼저 말했다.“몰라요. 오늘 도와주지 않으면 바로 엄마한테 다 말할 거예요!”“어?”유진우는 깜짝 놀라며 다급히 말했다.“알았어요, 알았어. 같이 가면 되잖아요.”유진우는 조아영이 이렇게 나올 줄을 몰랐다.“흠! 처음부터 그렇게 나올 것이지.”조아영은 입꼬리를 올리더니
“아영아, 너 언제부터 남자 친구 있었어, 왜 얘기 안 했어?”최우영이 유진우를 바라보는 눈빛은 극도로 불친절해졌다.“남자 친구가 있으면 너한테 다 보고해야 돼? 네가 뭔데?”조아영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말했다. 그녀가 이미 수십 번이나 최우영을 거절했었지만 최우영은 지금까지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계속 그녀를 따라다니며 귀찮게 했다.“네가 속을 가봐 걱정돼서 그러지. 요즘 세상에 사기꾼이 얼마나 많은데.”최우영은 음흉하게 말했다.“진우 오빠는 사기꾼이 아니야!”남궁은설이 급하게 나서서 변명했다.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자, 그녀는 뭔가 생각난 듯 즉시 입을 닫았다.“은설 씨, 앞에 향 주머니는 뭐예요?”유진우가 이상함을 발견하고 물었다.“무슨 문제가 있어요?”남궁은설은 향 주머니를 둘러보면서 물었다.“버려요. 불길한 물건이에요.”유진우는 고개를 저었다.“무슨 말씀이세요. 이건 수면을 도와주는 향 주머니에요. 왜 불길해요?”옆에 있던 도윤진은 기분이 상했다.“사실대로 솔직하게 말씀드린 거예요.”“모르면 가만히 계세요. 아는 척하지 말고요.”도윤진은 사정없이 말했다.“언니!”남궁은설은 입을 삐쭉거리며 불만을 표했다.“됐어,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 그래. 자자, 앉아서 술이나 마시며 노래하자.”조아영은 남궁은설을 끌어당겨 자리에 앉히며 어색한 분위기를 바꾸려 했다.유진우는 옆으로 밀려났다.“흠!”도윤진은 유진우를 힐끗 노려보았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왠지 유진우만 보면 불쾌했다.“누님, 이 사람 뭐 하는 사람이에요?”최우영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출신은 별 볼 거 없고 그냥 의사야. 굳이 말하자면 암살스킬을 잘 다루는 사람!”도윤진은 냉정하게 말했다.“무슨 거물인 줄 알았더니 그냥 의사였군요.”최우영은 차갑게 웃으며 얼굴에는 경멸을 드러냈다.“유진우 씨, 경고하는데 우리 모임은 쉽게 들어올 수 있는 데가 아니니까, 눈치가 있다면 빨리 떠나는 게 좋겠네요.”“맞아요. 당신 같은 사람은 우리 아영이랑
“기습 공격하다니!”최우영은 피가 나는 코를 막고 우두머리를 노려보았다.“싸우면서도 정신 집중하지 않다니, 죽고 싶은 건 확실하네.”우두머리는 최우영을 비웃었다.“너 나를 성공적으로 도발시켰어. 지금 무릎 꿇고 빌 수 있는 기회를 한번 줄게. 기회를 놓치면 진정한 실력이 뭔지를 보여줄 거야.”최우영의 말에는 살기가 가득했다.그는 말하면서 다리로 허공에 차는 모습까지 보였다.“죽음을 자초하다니!”우두머리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고, 나머지 십여 명의 부하들과 함께 달려들었다.“최우영 씨 조심해요.”소녀들은 걱정돼서 소리쳤다.“주제도 모르고 덤비다니!”최우영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만의 특기를 펼치기 시작했다.앞으로 차고, 뒤로 차고, 양옆으로 차고, 휘둘러 차면서 발차기로 위풍을 뽐내더니 우두머리는 물론이고 모든 킬러들을 쓰러뜨렸다.지금 이 순간 최우영은 천하무적이였다.“젠장! 제법인데!”“다리 기술이 장난 아닌데요?”“역시, 대단하네요.”구경을 하고 있던 사람들은 바닥에 쓰러져 있는 풍경을 보고는 하나같이 구세주를 본 듯 눈에서 빛났다.“그냥 좀도둑일 뿐이에요.”최우영은 무심한 듯 손을 뒤로 가져가고 어깨를 으쓱 폈다.그리고 조아영 쪽을 힐끔 쳐다보며 마치 자기를 숭배하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최우영, 대단한데. 너의 옆에 있으면 안전감이 넘치겠다. 누가 될지 모르겠지만 너의 여자 친구는 정말 행복하겠어.”노란 옷을 입은 여자는 최우영에 대한 감탄을 감추지 못했다.“별거 아니야.”최우영은 겸손하게 웃으며 말했다.“남자가 여자를 보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나는 비겁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위험이 있을 때 여자 뒤에 숨는 그런 인간은 되지 말아야지?”말하면서 그는 일부러 유진우를 의미심장하게 바라봤다.“유진우 씨, 아까 말은 잘하더니 왜 가만히 보고만 있었어요? 갑자기 벙어리가 됐어요?”노란 옷을 입은 여자는 경멸하는 눈빛으로 비웃었다.“내가 보기에는 그냥 입만 살아있는 거야. 정작 일이 생기면 꼼짝
왕부의 편전.네 명의 제후는 차례대로 자리에 앉아 묵묵히 기다리고 있었다. 각기 다른 표정으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보였다.제갈영군은 한가롭게 차를 음미했고, 은성종은 눈을 감은 채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었다. 주한휘는 이리저리 둘러보며 왕부 편전의 장식을 구경했고, 장범규는 다소 초조한 기색으로 일어나 앉았다가 몇 걸음 왔다 갔다 하며 마음을 졸이는 모습이었다.한 차례 시간이 흘러, 이의진이 유천우와 석태혁을 데리고 마침내 편전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의 손에는 정교한 상자가 들려 있었다.“여러분, 병부를 가져왔어요.”이의진이 상자를 책상 위에 내려놓고 열자, 그 안에는 금빛의 호부가 놓여 있었다. 호랑이 형상을 정교하게 조각해 위엄이 깃들어 보였다. 호부 한가운데에는 ‘병갑지부, 좌재왕, 우재경’이라는 금색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역시 병부군요!”호부를 본 장범규가 눈을 반짝였다.“이 병부만 손에 넣으면 흑용군을 동원할 수 있어요. 그러면 유태범의 음모도 허무하게 끝나겠죠.”“천우야, 지체할 시간 없어. 병부를 들고 흑용군 주둔지로 가서 그 장수들을 만나. 신분을 확실히 밝혀야 해. 유태범이 틈탈 구석이 없도록.”주한휘가 서둘러 재촉했다.“병부는 매우 중요한 물건이야. 유태범이 순순히 보고만 있진 않을 테니 가는 길은 결코 만만치 않을 거다. 철저히 준비해야 해.”은성종이 경고하듯 말했다.“알겠습니다, 제후님. 이미 어머니께도 상의드렸어요. 열 개 정찰팀을 꾸려 여러 갈래로 성을 나갈 거고, 저 역시 그중 한 무리에 섞여서 움직일 겁니다. 유태범이 대비하고 있어도 쉽게 제 위치를 알아내진 못하겠죠. 유태범이 위협을 눈치챌 무렵이면 저는 이미 흑용군 주둔지에 도착해 있을 거예요.”유천우가 굳은 얼굴로 답했다.“그거면 충분하겠군.”은성종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한번 당부했다.“천우야, 이번 행선지는 너랑 왕비님만 아는 걸로 해. 괜히 입 밖에 새면 사고가 터질 수 있어.”“명심하겠습니다, 제후님.”“자, 그럼 빨리 움직이자.
“안 돼요! 그건 너무 위험해요!”육진우가 모험을 강행하려 하자 유천우는 곧바로 제지하고 나섰다.유천우는 그가 강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유태범의 주변에는 정말 많은 고수가 몰려들어 있었다.두 주먹이 네 손을 이기지 못한다는 말처럼, 만약 암살에 실패라도 하면 수많은 고수들의 포위망에 걸려들 위험이 컸다. 장차 서경왕이 될 몸으로서, 유천우는 결코 함부로 유진우가 위험을 감수하도록 둘 수 없었다.“천우야, 때로는 위험을 감수해야 할 때도 있는 법이야. 지금 같은 중요한 시기에는 누군가 희생을 감내해야 하지. 게다가 호위는 하나일 뿐인데 그렇게까지 긴장할 필요가 있을까?”주한휘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안 된다면 안 되는 겁니다!”유천우는 거의 고함치듯 외쳤다.강한 기세가 순간 터져 나와 주한휘는 뒷걸음질 치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던 사람들까지 서로 눈길을 주고받으며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했다.아무도 유천우가 이렇게까지 격한 반응을 보이리라 예상하지 못했다.자신이 좀 과격했음을 깨달은 듯, 유천우는 한숨을 길게 내쉬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담담히 말을 이었다.“제후님, 호위의 목숨도 저희와 똑같이 소중해요. 괜히 헛된 희생을 치르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어떻게 모두를 납득시키겠어요?”“그래, 그래... 네 말도 일리가 있네.”주한휘는 어색하게 웃었다. 속으로는 그가 호위 하나 때문에 호들갑을 떤다고 생각했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된다면, 저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죠? 설마 그냥 손 놓고 당하기만 할 생각은 아니겠죠?”장범규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사실 제게 좋은 방법이 하나 있긴 합니다.”제갈영군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오? 어떤 방법인데요?”이의진이 살짝 미간을 올리며 물었다.“유태범이 믿는 가장 큰 무기는 흑용군이에요. 우린 이 점을 공략하면 됩니다.”제갈영군은 신중하게 말을 이어갔다.“다들 아시다시피, 전쟁 시기가
석태혁의 발언은 순간적으로 모든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이의진은 무언가 말하려다가 머뭇거리며 술을 다물었다.석태혁은 왕부의 친위이자 그녀가 굳게 신뢰해 온 인물이기에 솔직히 그가 목숨을 걸고 위험에 뛰어들길 바라진 않았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그보다 더 적합한 사람을 찾기 어려웠다.“장군님께서는 워낙 강하시고 충성도 깊으니 유태범을 암살하러 간다면 가능성이 있겠죠.”장범규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르신의 친위대장인 만큼 실력이나 충성심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장군님, 제가 괜히 이런 말씀 드리는 건 아니지만 혼자 가시는 건 좀 무리가 있을 수도 있어요.”제갈영군이 갑작스레 말했다.“잠깐! 아직 그 전설 속의 인도가 있잖아요?”주한휘가 문득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인도란 이름은 모르는 사람이 없겠죠. 인도의 실력이라면 장군님 못지않을 텐데요?”“아니요, 홍복홍께서는 저보다 훨씬 뛰어나십니다.”석태혁이 차분하게 답했다.그가 친위대장이기는 해도 왕부의 진정한 비책은 사실 인도 홍복홍이다. 서경의 세 고수 중 검선은 세상을 떠났고, 주광은 행방이 묘연하다. 결국 남은 인도가 서경에서도 손꼽히는 고수다.대 마스터 급의 인도는 그가 견줄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와, 그럼 잘됐네요! 인도가 장군님보다 훨씬 강하시다면, 그분께 부탁드리는 게 훨씬 확실하지 않을까요?”주한휘가 기대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유감이지만, 홍복홍께서는 왕부를 떠나신 뒤로 지금까지 종적을 감추셨어요. 그분께 부탁드리긴 힘들 것 같네요.”석태혁이 고개를 저었다.“종적이 묘연하다니...”장범규가 미간을 찌푸렸다.“홍복홍이라는 분, 왕부가 이렇게 위태로운데 어디 가신 건지 모르겠군요.”“설마 상황이 안 좋아 보이니까 도망쳐 버린 건 아니겠죠?”주한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주 제후, 그런 말씀은 삼가주세요. 홍복홍께서는 나라와 백성을 위해 몸 바쳐 오신 분이에요. 도망칠 리가 없습니다.”석태혁의 얼굴이 굳어졌다.“아, 죄송해요.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주한
“방법 자체는 나쁘지 않은데 문제가 좀 있어요.”제갈영군이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새 왕이 즉위하려면 폐하의 허가와 백관의 승인이 필요한데,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이 납득하기 어려워요. 게다가 폐하의 뜻을 받고 백관을 모시려면 앞뒤로 최소 사흘은 걸려요. 지금 우리 상황으로는 그렇게 오래 버틸 수 없죠.”“에이, 설마? 즉위가 그렇게나 복잡해요?”장범규가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다들 천우가 어르신의 아들이라는 걸 알잖아요. 그럼 당연히 서경왕 자리를 잇는 게 맞지 않나요?”“맞아요! 급할 때는 융통성도 발휘해야 하는 거잖아요.”주한휘가 곁에서 맞장구쳤다.“두 분 다 서경왕위를 산적 두목 뽑듯 생각하시는 건가요? 깃발 하나 꽂고 술 몇 사발 마신 다음 큰소리 몇 마디로 끝낼 일이 아니에요. 농담하지 마세요.”제갈영군이 약간 어이없다는 듯 말을 이었다.“서경왕위는 서경 백성만이 아니라 천하 모든 사람의 안위와도 연결돼 있죠. 서경이 혼란스러워지면 천하가 뒤숭숭해지고, 서경이 안정되면 천하도 평안해져요. 과장이 아니라 서경왕위의 무게는 폐하의 황위에 전혀 뒤지지 않아요. 그런 중요한 자리를 함부로 정하고 아무나 앉을 수 있겠습니까?”“맞아요. 저도 천우가 빨리 왕위를 이어서 군심을 안정시키면 좋겠지만, 왕위 계승은 장난이 아니죠. 너무 서두르면 오히려 역효과만 날 거고 남들 입방아에 오르기 딱이니까요.”이의진이 고개를 저었다.규율과 절차 없이는 질서가 서기 어려운 법. 서경왕 자리의 무게는 그만큼 무겁다. 폐하의 명령과 문무백관의 증인이 없으면 공식적으로 인정받기 어렵다.“다들 너무 규칙만 따져서 이 좋은 기회를 그냥 흘려보내고 있어요.”장범규가 못마땅한 듯 말했다.“지금 도련님이 왕위를 잇지 못하면 유태범의 대군이 쳐들어올 때 어쩌자는 겁니까?”주한휘가 난처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은 제후님, 혹시 다른 방도가 있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그냥 말씀 좀 해주세요. 더는 뜸 들이지 말고요.”제갈영군이 은성종을 바라봤다.“두
“뭐라고요? 목격자를 전부 없애버린다고요?”그 말을 듣자 장범규의 안색이 급변했다.“농담하는 거 아니죠? 북쪽 4대 제후는 모두 유태범의 사람인데 적과 아군을 구별하지 않고 전부 죽인다는 게 말이 돼요?”“큰일을 하는 자는 마음이 독해야 하는 법입니다. 오랫동안 전장을 누빈 사람한테 약간의 희생은 아무것도 아닙니다.”제갈영군이 덤덤하게 말했다.“물론 이건 마지막 계획이에요. 만약 북쪽 4대 제후가 무사히 왕위를 빼앗고 병부를 손에 넣는다면 유태범은 위험을 감수할 필요 없이 바로 왕위를 이어받으면 됩니다. 하지만 만약 북쪽 4대 제후가 실패하면 유태범은 큰일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거예요.”욕심이 많은 자일수록 더욱 광기 어린 행동을 보일 것이다.예전에 유태범은 위왕에게 억눌려 힘을 숨기고 기회를 기다렸다. 위왕이 세상을 떠난 지금 속박을 벗어난 유태범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그렇다면 정말 조심해야 할 것 같네요.”장범규는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흑용군은 서경에서 가장 강하고 세계 최강의 전투력을 지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흑용군을 장악한다면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을 것이다.만약 유태범이 표기 대장군이라는 신분을 이용하여 다시 왕실을 구원한다는 명분을 내세운다면 흑용군을 대량으로 동원할 가능성이 컸다.일단 싸움이 시작되면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었다. 오직 승자만이 왕이 되고 패자는 반역자가 될 뿐이니까.“제후님들은 모두 서경의 기둥입니다. 혹시 좋은 해결책이라도 있습니까?”이의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전 싸우는 것만 잘하지, 머리를 쓰는 건 절대 안 돼요.”장범규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저도 그렇습니다.”주한휘도 고개를 내저었다.“회음 제후님은 재능이 뛰어나니 뾰족한 수가 있으면 얘기해보시죠.”제갈영군의 시선이 은성종에게 향했다.그들이 성문 앞의 십만 대군을 설득할 수 있었던 건 모두 은성종의 회유책 덕분이었다.장교들의 가족과 친구를 이용하여 그들을 설득하고 항복하게 했다.많
지금 그들의 유일한 희망은 유태범이 흑용군을 이끌고 오는 것이었다.“너희 둘은 주모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조력자야. 사형은 면해도 처벌은 면치 못해.”이의진이 차갑게 말했다.“여봐라. 저 두 놈을 끌고 가서 감시하고 내 명령 없이는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게 하거라.”“알겠습니다.”몇 명의 친위대가 재빨리 다가가 포박된 진승민과 강윤기를 강제로 끌고 갔다.“장군님, 항복한 병사들을 처리해 주십시오. 오늘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으니 더 이상 사상자가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이의진이 석태혁을 보며 말했다.“알겠습니다.”석태혁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왕비님 자비에 진심으로 감탄했습니다.”그때 네 명이 군중 속에서 걸어 나왔다.그들이 지나가는 곳마다 병사들이 자동으로 길을 터주었는데 네 사람이 바로 남쪽 4대 제후였다.맨 왼쪽으로부터 제갈영군, 그다음은 은성종, 주한휘, 장범규가 나란히 서 있었다.“저희가 너무 늦게 온 바람에 왕비님께서 많이 놀라셨죠? 부디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은성종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맞잡고 겸손한 태도로 예를 표했다.“그런 말씀 마십시오. 만약 제때 와주시지 않았다면 왕부가 위험에 처했을 겁니다. 제후님들 모두 공신이십니다.”이의진은 재빨리 다가가 허리 굽힌 은성종을 일으켜 세웠다.사실 남쪽 4대 제후가 이렇게 빨리 군대를 보내 지원해 줄 거라는 건 그녀의 예상 밖이었다. 다들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밤낮으로 달려왔다는 걸 보아낼 수 있었다.“왕부를 지키고 서경을 지키는 건 우리의 책임이고 당연히 해야 하는 일입니다.”은성종이 환하게 웃어 보였다.“맞습니다. 만약 위왕님께서 저를 살려주지 않으셨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겁니다. 왕부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기꺼이 내놓을 수 있어요.”장범규가 호탕하게 말했다.남쪽 4대 제후 중에서 그는 가장 솔직하고 충성스러운 사람이었다.“왕비님, 앞으로 우리는 한 가족입니다. 왕부의 어려움은 곧 우리의 어려움이니 당연히 도와야죠.”주한휘가 웃으며 말했다.
항복하는 자는 살려주겠다는 말이 서경왕부 상공에 계속 맴돌았다.이미 공포에 질려 있던 반군들은 더욱 두려움에 떨었고 전투 의지를 완전히 잃었다.쨍그랑, 쨍그랑, 쨍그랑...점점 더 많은 병사들이 손에 든 무기를 던졌고 고집을 부리는 일부 병사들은 즉시 체포되어 포박당했다.왕부를 오랜 시간 공격했음에도 함락되지 않았고 성문을 지키던 군대도 모두 패배하고 말았다.네 명의 제후 중에 둘은 포로가 되어 잡혔고 둘은 도망쳤다. 대세를 잃을 그들은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항복하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였다.하지만 명분도 없는 상황에서 그들은 목숨을 헛되이 버리려 하지 않았다.“난 방금 한 약속을 지킬 것이다. 항복한 사람에게는 죄를 묻지 않겠다.”무기를 던진 반군을 보며 이의진이 다시 말했다. 강압적이지 않았고 강렬한 기세도 내뿜지 않았으며 오히려 말투가 부드러워졌다.항복한 병사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동시에 부끄러움을 느꼈다.“왕비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많은 장교들이 무릎을 꿇고 감사를 표했다.“왕비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장교들이 앞장서자 많은 병사들도 무릎을 꿇었다.몇 분 만에 조금 전까지 죽이겠다고 달려들던 사람들의 무릎을 전부 꿇렸다.이의진의 자비에 모든 병사들은 진심으로 감동했다.“너희 둘은 어떡할 거야?”이의진이 뒤에 매달려 있는 진승민과 강윤기를 돌아보았다. 그들은 왕부 대문에 매달려 있었는데 꼴이 비참하기 짝이 없었다.“저... 저희도 항복하겠습니다.”진승민과 강윤기는 서로를 바라보며 어쩔 수 없이 굴복했다.왕부의 지원군이 도착했다는 건 그들이 성문 밖에 주둔시킨 군대가 패배했다는 것을 의미했다.게다가 왕부를 포위 공격하던 선봉 부대는 모두 무릎을 꿇고 항복했고 그들 두 사람까지 인질이 되었다.이런 상황에서는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겉으로는 항복하는 척이라도 해야 했다.하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한 줄기 희망이 남아 있었다.만약 대장군 유태범이 흑용군을 이끌고 도착한다면 다시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거라
명령을 받은 후 진승민의 병사들은 모두 무기를 버렸다.“그리고 너. 네 부하들도 전부 무기를 내려놓으라고 해.”이의진은 칼끝을 돌려 강윤기의 목에 겨누었다.살기등등한 이의진의 눈빛에 강윤기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큰 소리로 말했다.“무기 전부 내려놔.”쨍그랑, 쨍그랑, 쨍그랑...금속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또 한 번 들렸고 강윤기가 통솔하던 병사들도 무기를 버렸다.전장의 약 60%에 달하는 군대가 전투를 포기했다. 나머지 40%는 무기를 버리지는 않았지만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전투는 사기가 떨어지면 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대부분이 이미 무기를 버렸는데 어찌 더 공격할 수 있겠는가?물론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의 제후가 이미 사라져 수만 명의 군대를 지휘하는 우두머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두머리가 사라졌으니 당연히 당황하는 수밖에.“다들 잘 듣거라. 너희들의 제후는 이미 도망갔고 너희들이 죽든 말든 아무 관심이 없어. 아직도 그런 사람을 위해 싸울 것인가? 너희들이 명령에 따라 움직인 것이고 어쩔 수 없었다는 걸 알아. 그래서 무기를 내려놓으면 오늘 일어난 일은 없었던 것으로 해주겠다.”“물론 계속 저항하면 책임을 물을 것이고 그땐 모든 사람을 반역자로 취급할 것이다. 그럼 너희들은 참수될 뿐만 아니라 가족들까지 심각한 처벌을 받을 것이니 너희들이 알아서 판단하거라.”이의진의 강렬하고 힘찬 목소리가 전장에 울려 퍼졌다. 보이지 않는 위엄이 온몸에서 뿜어져 나왔다.“제후님이 정말 도망갔어? 그럼 우린 어떡해?”“나한테 물으면 내가 누구한테 물어?”“이 싸움은 원래 해서는 안 되는 싸움이었어. 왕실을 구원하고 범인을 잡긴 개뿔. 이건 그냥 반역이야. 이 일에 책임을 묻는다면 우린 모두 죽을 거라고.”“진 제후님과 강 제후님도 이미 항복했는데 우리도 항복할까? 왕비님께서 우리한테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하셨잖아.”“...”전장에 수군거리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고 의견이 분분했다.그들은 이미 전투 의지를 완전히 잃었지만 명령이
“됐어. 그만 좀 웅얼거려. 유태범이 왕이 될 수 있을지는 오늘 밤이 지나면 알게 될 거야.”제갈영군은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낸 듯 손을 크게 휘둘렀다.“여봐라. 반역자들을 잡아들여서 감시하거라!”“알겠습니다.”친위대가 즉시 앞으로 나와 노정한과 하원휘를 포박했다.“제갈영군. 우리 모두 한 지역의 제후이고 동등한 위치에 있는데 사람들 앞에서 이러는 건 우리 체면을 너무 짓밟는 거 아니야?”노정한이 소리쳤다.“체면?”제갈영군이 코웃음을 쳤다.“이미 반역자로 잡혔는데 무슨 체면이 더 있어?”“제갈영군, 아직 승패가 결정된 것도 아니고 대세도 정해지지 않았어. 대장군님이 왕이 된다면 결과가 어떻게 될지 생각해봤어?”노정한이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맞아. 세상일은 돌고 돈다고 했어. 지금 한껏 위세를 부려도 영원히 부릴 수 있을 것 같아? 아무도 모르는 게 사람 일이야. 그러니까 적당히 해.”하원휘가 맞장구를 쳤다.“너희들이 오늘 밤을 넘길 수 있을지도 아직 모르는데 감히 내 앞에서 큰소리를 쳐? 정말 주제를 모르는구나. 여봐라, 어서 저 둘의 입을 막아라. 더 이상 시끄럽게 떠들지 않게.”제갈영군이 다시 명령을 내렸다.“너...”노정한과 하원휘가 뭐라 더 말하려던 그때 입을 강제로 틀어막은 바람에 웅얼거리는 소리밖에 내지 못했다.“끌고 가.”제갈영군이 손을 휘두르자 부하들이 바로 그들을 차에 태웠다.제갈영군의 시선이 앞쪽의 유진우에게 향하더니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어딘가 낯이 익은데 우리 전에 만난 적이 있나?”“네, 만난 적이 있어요. 전 서경왕부 사람입니다.”유진우가 대답했다.“그래?”제갈영군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의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왕부의 고수들은 내가 전부 알고 있는데 당신은 전혀 모르겠어. 대체 누구지?”“제 신분은 나중에 아시게 될 겁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유진우는 제갈영군에게 두 손을 가슴 앞에 맞잡고 인사한 뒤 순식간에 사라졌다.“빠르네.”제갈영군은 놀란 나머지 두 눈이 다 휘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