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도의 속마음 얘기를 다 들은 유진우는 그 인생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돈 많은 집에서 태어나 호의호식하고 자란 만큼 가문의 이익 때문에 자신을 희생해야 한다는 게 참 슬픈 현실인 것 같았다.능력이 있어서 집안의 사업을 도와주는 게 아니라면 예쁜 얼굴을 무기 삼아 다른 재벌가에 시집가서 가문을 위해 힘쓰는 게 그들의 숙명이었기에 은도같이 예쁘고 우수한 여자는 특히나 가문이 발전하는 좋은 디딤돌이었다.그러니 당연히 결혼도 마음대로 못하고 가문의 무게를 두 어깨로 짊어진 채 집안 어르신들이 정해주는 짝과 결혼해야만 했다.그제야 유진우는 왜 은도가 남들의 입에 오르내리면서까지 제 명성을 더럽혀왔는지 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은도도 정말 궁지에 몰려서 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것이다.“한잔해요.”이번에는 유진우가 맥주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그래요!”그에 은도도 기분 좋게 웃으며 남은 맥주를 다 털어 넣고는 또 두 캔을 새로 까서 하나는 유진우에게 주고 하나는 자신의 앞에 내려놓았다.“사실 나는 진우 씨를 만난 게 엄청 난 행운 같아요. 진우 씨는 나한테 선택할 기회를 줬잖아요.”은도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옥로고가 대박 나고부터는 집안에서 내 위치도 엄청나게 높아졌어요. 더 이상 나한테 결혼하란 소리도 안 하고요. 이젠 내가 은씨 가문을 손에 꼽히는 재벌가로 만들 자질이 있다고 생각하나 봐요. 이것만 인정받으면 우리 집에서는 내가 왕이에요!”“그래요? 축하해요!”“나도 내가 직접 내 삶을 선택하는 날이 올 줄 꿈에도 몰랐었어요. 다 진우 씨 덕분에 복이 굴러들어온 것 같아요.”“나도 똑같아요. 은도 씨 만나고 나서부터 일이 잘 풀려요.”유진우도 웃으며 은도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이제 알았는데 혹시 내 남자친구 안 할래요? 우리 너무 잘 맞는 것 같은데?”뜬금없는 말을 내뱉은 은도는 긴장 반 설렘 반의 마음을 안고 유진우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평소에는 장난스레 이런저런 말도 자주 하지만 이렇게 진지하게 하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조선미는 진국공의 손녀라는 사실이었다.그 신분 하나만으로도 이미 많은 이들이 우러러볼 것 같은데 미모와 몸매까지 받쳐주니 그런 조선미 앞에서 은도의 모든 우세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정도였다.그 순간 은도는 자신이 살짝 부끄럽기도 하면서 그렇게 대단한 여자도 맘에 들어 하는 유진우를 자신도 좋아하는 것이니 보는 눈 하나는 정확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사실 저도 좀 놀라웠어요. 저랑 선미 씨가 만날 때는 저도 선미 씨가 진국공의 외손녀인 줄은 몰랐거든요.”“그래서 잘됐다고요?”어깨를 움츠리며 말하는 유진우에 은도는 또 놀리듯 받아쳤다.“그런 셈이죠.”“그래요, 그럼 이왕 만난 거 백발노인 될 때까지 잘 살아요, 행복하세요!”어색하게 웃는 유진우를 향해 축하 인사를 건넨 은도는 바로 잔을 집어 들며 건배를 청했다.그렇게 감정이라는 것에서 오는 속박이 없으니 둘은 좀 더 편안한 분위기에서 술을 마시며 얘기를 나눴다.인생에 여한 없는 사람은 없기에 은도는 유진우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감추기로 했다.누굴 좋아한다고 해서 꼭 그 사람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가끔씩 만나 이렇게 술 마시면서 얘기하는 걸로도 은도는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았다.그렇게 밤이 점점 깊어져 갔고 유진우는 맥주 한 줄을 다 비우고서야 집으로 향했다.유진우를 보내고 스트레칭을 한 은도는 그대로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좀 아쉽긴 하네.은도가 유진우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고 있을 때 갑자기 집안 어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여보세요, 삼촌? 지금 시간이 몇신데 내일 다시 얘기하면 안 돼요?”귀찮은 듯 느릿느릿 얘기하는 은도와 달리 은도 삼촌은 다급하게 외쳤다.“은도야, 집에 일이 생겼으니까 빨리 좀 와!”“왜요?”“전화로는 할 수 없는 얘기야, 와보면 아니까 빨리 와.”“알겠어요, 금방 가요.”은도는 어딘가 이상했지만 삼촌이 하도 급해 하니 바로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향했다.30분쯤 지나자 은도의 차는
“함부로 움직이지 마시죠, 총알은 절대 빗나가는 법이 없으니까.”그녀의 뒤에서 차가운 음성이 들려왔다. 은도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 자신을 향한 검은 총구와 잔인한 표정의 사람들을 마주했다.“당신들은 누구지?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은씨 가문 구역에서 난동을 부려?”은도가 매섭게 소리쳤다.“아가씨, 너무 화내진 마세요. 저희는 단지 명령을 따를 뿐이니까요.”총을 든 남자가 무덤덤하게 말했다.“명령이라고? 누구의 명령이지?”은도가 물었다.“당연히 제 명령이죠.”그 순간, 깡마른 체형에 차가운 인상을 가진 남자가 회의실 안으로 들어왔다.문씨 가문의 문한성이었다.“당신이었어?!”문한성을 발견한 은도의 표정이 순식간에 변했다.은도는 우여곡절 끝에 빈민가를 탈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렇게 문한성을 다시 만나게 됐다.“또 만나네요, 은도 씨.”미소를 지으며 다가온 문한성은 손가락을 뻗어 은도의 턱을 살짝 들어 올리며 말했다.“여전히 아름다우시네요. 저도 마음이 흔들릴 정도예요.““이봐요, 문한성 씨. 당신이랑 나랑은 별 원한이 없는 걸로 기억하는데, 왜 이렇게까지 하는 겁니까?”은도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아무런 원한도 없다고요?”그 말에 문한성이 웃으며 대답했다.“당신들이 옥로고를 팔아 그렇게 엄청난 매출을 내놓고도 나랑은 계약할 생각이 없잖아요, 그게 원한이라면 원한 아닌가?”“한성 씨, 사업 얘기라면 서로 말로 풀어도 되는 거 아닐까요? 굳이 이렇게 서로 불쾌한 상황을 만들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은데요.”은도는 최대한 상대를 진정시키려 애썼다.“사업이 무슨 대수라고. 그냥 당신들보다 돈 좀 덜 벌면 되는 일이잖아요. 제가 정말 짜증 났던 건, 개업하던 그 날에 당신들이 날 웃음거리로 만들었다는 거야!”문한성의 표정이 갑자기 살벌하게 바뀌더니 말을 이었다.“나, 엄연한 문씨 가문의 아들인 내가 당신들한테 한낱 개 따위처럼 농락을 당하고, 모욕을 당했어. 오늘 이 원한 못 갚으면 난 평생을 후회하면서 살아갈 거야!
비록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는 있었지만 문한성의 모습은 누가 봐도 좋은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도대체 뭘 시키려는 거죠?”갑자기 불안해진 은도가 물었다.“간단해요. 내일 은도 씨가 아무 핑계나 대고 유진우를 집으로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면서 이 병에 든 약을 술에 타는 겁니다. 약효가 퍼지면 은도 씨는 자리를 뜨면 되는 거예요. 남은 일은 다 제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문한성은 검은색의 약병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그 안에는 십향연근제라고 하는 약이 들어있었다. 그 약은 주로 무도 고수를 상대할 때 사용하는 약이다.만약 마스터 계급이 아니라면 이 약을 먹는 순간, 온몸의 힘이 다 빠져 꼼짝도 못 하고 도살을 기다리는 양이라도 된 듯 무력해진다.“문한성 씨, 적당히 좀 하죠.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잖습니까.”은도의 표정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문한성이 무슨 짓을 하려는지는 지나가던 개라도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유진우에게 약을 먹인다면 은도 역시 문한성과 공범이 된다.“이렇게까지?”문한성이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하지만 그의 미소에는 조롱의 기운이 함께 서려 있었다.“은도 씨, 이게 뭐가 심해요? 난 더한 짓도 할 수 있는데. 보여줄까요? 예를 들면, 당신네 집안 하나 파탄시키는 거, 아니면 당신 가족들한테 누명 씌워서 다 감방에 처넣는 거. 어때요?”“문한성 씨! 정말 너무 하신 거 아닙니까! 연경에도 법이라는 게 존재합니다!”화가 치밀어오른 은도가 소리쳤다.“법이라고요?”그 말에 문한성이 배를 잡고 깔깔댔다.“은도 씨, 어린 애 아니잖아요. 어떻게 그딴 순진한 소리나 해댈 수 있는 거죠? 정말 실망입니다.”자고로 법이란 것은 권력과 지위가 있는 사람들만 보호해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권력 없는 사람들은 그저 법이라는 존재에 의해 억압만 받을 뿐이다.평민이 범죄를 저지른다면 가차 없이 감옥으로 보내지지만, 귀족은 범죄를 저질러도 여전히 자유로운 생활이 가능했다.이 세상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쭉 이래왔다.
문한성의 위협에 은씨 가문의 사람들은 순식간에 공포에 휩싸였다.분명 그들에게는 아무 잘못도 없었지만 난데없이 이런 상황에 부닥쳐졌으니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도련님! 도련님, 제발 용서해주세요!”은도의 넷째 삼촌은 두려움에 곧장 무릎을 꿇고 애원하기 시작했다.“우리 은씨 가문 사람들은 항상 법을 지키며 살아왔습니다. 제발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지 말아주세요!”“도련님! 한 번만 아량을 베풀어주세요, 제발 저희를 그냥 놔주세요!”공포에 질린 은씨 가문 사람들이 울부짖으며 애원했다.하지만 문한성은 조금의 동요도 하지 않고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저한테 애원해봤자 소용없어요. 은도 씨한테 비셔야죠. 여러분들의 생사 여부는 다 은도 씨한테 달려있거든요.”“은도야! 뭐 하고 있어? 얼른 도련님의 제안을 받아들여야지.”마음이 급해진 은도의 넷째 삼촌이 다급하게 소리쳤다.“설마 너, 이대로 우리가 한 명씩 죽어 나가는 꼴을 그냥 지켜보고만 있을 생각이야?”“삼촌! 진우 씨는 제 생명의 은인이에요. 그런 사람을 배신할 수는 없어요!”은도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은인은 무슨 개똥 같은 생명의 은인이야!”분노에 찬 넷째 삼촌이 소리쳤다.“사람은 자고로 본인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 법이야. 유진우 그 한 사람이 우리 온 가족의 목숨보다 더 소중하다는 말이냐?”“삼촌, 우리 은씨 가문은 절대 작은 가문이 아니에요. 문한성이 정말 그 정도로 무리할 리 없어요.”은도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문씨 가문이 아무리 권세가라고 해도 이렇게 대놓고 살인을 저리를 리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못할 거라고?”문한성이 가볍게 웃더니 손가락을 튕겼다.“탕!”곧이어 총성이 울려 퍼졌다.온씨 가문의 한 젊은 남자가 몸을 떨더니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숙여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그 자리에는 커다란 구멍 하나가 뚫려있었다.가슴 한가운데에서 피가 끊임없이 솟구쳐 나왔다.“털썩…”입을 벌린 남자는 무슨 말을 꺼내기도 전에 점점 깜깜해지는 시야를 느끼
또 한 번의 총성이 울렸다.은씨 가문의 두 번째 희생자가 피투성이 사이로 쓰러졌다.회의실은 순식간에 비명소리와 울부짖음으로 아비규환이 되어버리고 말았다.울음소리, 외침소리, 그리고 애원의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이 짐승 같은 새끼가! 오늘 너랑 끝장을 보고 말 거야!”눈이 벌겋게 충혈된 은도가 땅에 떨어진 칼을 주워들더니 다시 문한성에게 돌진했다.하지만 몸을 일으키기 무섭게 다시 날아든 경호원의 발길질에 다시 바닥에 힘없이 쓰러지고 말았다.“은도 씨, 보아하니 이런 평범한 친인척들의 생명이 당신한테는 아직 유진우만큼의 가치가 없나 봅니다. 좋아요, 제가 더 강력한 걸 보여드리죠.”문한성이 손뼉을 쳤다.곧이어 양복 차림의 두 건장한 경호원이 중년 남자를 끌고 안으로 들어섰다.그 남자는 바로 은도의 아버지인 은국성이었다.“아버지!”아버지를 마주한 순간, 공포에 가득 찬 은도의 얼굴은 순식간에 일그러졌다.그녀는 자신의 아버지마저 끌려왔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은도 씨, 당신의 용기는 인정합니다. 하지만 은도 씨 아버지와 유진우 둘 중 한 명만 살 수 있다고 한다면, 누굴 선택할 건가요?”문한성이 물었다.“안돼… 안돼요… 제발!”은도가 계속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눈물을 쏟았다.문한성이 몇 번 손짓하더니 부하에게서 총을 건네받아 은국성의 관자놀이에 겨누며 다시 입을 열었다.“마지막으로 물을게요. 제 제안, 받아들일 겁니까? 제가 인내심이 조금 부족해서요, 시간도 얼마 없으니 굳이 더 질질 끌지는 않을게요. 지금부터 셋을 셀 겁니다. 그 안에 대답하지 않으면 저는 바로 방아쇠를 당길 거고요.”“셋…”“둘…”“하나…”마지막 카운트가 채 끝나기도 전에 은도는 겁에 질린 목소리로 외쳤다.“받아들일게요! 뭐든지 다 받아들일게요! 그러니까 제발 우리 아빠만큼은 살려주세요!”“진작 그렇게 나왔어야지.”문한성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이 쥐고 있던 총을 부하에게 건네더니 천천히 은도에게 다가가 손가락을 뻗어 은도의 턱을 들어
다음 날 아침.뜬눈으로 밤을 지낸 은도는 어쩔 수 없이 유진우에게 전화를 걷어 자신의 집으로 점심을 먹으러 오라는 초대를 했다. 그리고 유진우는 조금의 의심도 없이 그녀의 초대를 승낙했다.전화를 끊은 은도는 마치 온몸에 힘이 빠져버린 듯 의자에 주저앉았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했고 두 눈에는 생기가 없었다.하룻밤 사이에 그녀는 몰라보게 수척해져 있었다.“딸, 어떻게 됐어? 유진우랑 연락은 해봤니?”그때, 은국성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 질문에 은도는 아무 말 없이 그저 고개만 가볍게 끄덕였다.넋이 완전히 나가버린 딸의 표정을 보던 은국성은 한숨을 내쉬며 위로했다.“은도야, 네가 지금 얼마나 괴로울지 나도 알아. 하지만 지금 우리한테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 문한성의 힘이 너무 센 데다가 문왕부가 그 뒤를 봐주고 있으니 말이야. 우리가 문한성을 직접 건드릴 수는 없어. 그리고 우리 가문 사람 중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이 문한성에게 잡혀 있잖니. 우리가 저항하는 순간, 그 사람들은 모두 죽게 될 거야. 우리가 악역을 맡는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거야.”말을 마친 은국성의 표정도 어두웠디.그 역시 유진우에게 좋은 인상을 느끼고 있었다.젊고 능력도 있는 데다가 잘난 척도 하지 않고 차분한 사람으로 잠재력이 충분하다고 여겨왔다.하지만 그런 유진우가 문왕부의 사람들을 건드릴 줄은 미처 몰랐다.게다가 그 일로 인해 자신의 목숨까지 위태로워졌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아빠, 정말 다른 방법은 없는 걸까요? 다른 사람들한테 도움을 청해서라도 이 원한을 풀 수는 없는 거냐는 말이에요.”온도가 조심스레 물었다.“이미 여러 방법을 시도해봤지만 다 소용없더구나.”은국성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친구들한테 부탁해봤지만 문왕부라는 말을 듣자마자 전화부터 끊어버리더구나. 너도 알다시피 문왕부의 힘이 여간 막강한 게 아니잖니. 연경 전체를 샅샅이 뒤져봐도 문왕부를 감히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다.”연경의 대 왕족 가문 중,
그 반면, 곁에 서 있던 은도는 시종일관 기운 없이 멍한 상태였다. 은국성이 팔꿈치로 그녀를 툭툭 치며 눈치를 주자 은도는 그제야 정신을 차린 것인지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진우 씨, 음식과 술은 제가 미리 다 준비해뒀어요. 얼른 들어가죠.”“네, 들어가죠.”유진우가 미소로 화답했다.세 사람은 이런저런 인사를 나누며 안으로 들어섰다. 오늘의 은씨 가문 저택은 평소와 달리 조용했고 사람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세 사람은 대화를 나누며 거실에 손님 접대실에 도착했다.곧이어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요리들이 하나둘씩 테이블 위에 올려졌다.“은도 씨, 단순히 이런 식사나 대접하려고 저를 부른 건 아닌 것 같은데요. 무슨 할 말이라도 있나요?”유진우가 물었다.“저… 그게…”은도의 말문이 순간적으로 막혔다.그녀는 하루 종일 온전치 못한 정신으로 있었던 탓에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다행히 은국성이 재빨리 상황을 수습하며 말했다.“진우 군, 무슨 말을 그렇게 하나. 아무 일 없어도 밥 한 끼 정도는 대접할 수 있는 거지. 우리 은씨 가문이 진우 군 도움으로 그렇게나 큰 기회를 잡았는데 당연히 감사의 뜻을 담아서라도 이렇게 초대를 해야 마땅하지.”“과찬이십니다. 어차피 서로의 이익을 위한 일이었으니 그냥 서로 돕고 산 것뿐입니다.”유진우가 겸손하게 웃으며 말했다.“게다가 저와 은도 씨는 이제 친구가 되었잖아요.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협력할 일이 많을 것 같으니 아저씨께서도 많이 도와주시길 바랍니다.”“하하… 좋아!”은국성은 과장된 손짓을 하며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여기! 내가 아끼던 그 술 좀 내와 봐. 오늘은 진우 군이랑 마음껏 마셔볼 테니까!”은국성의 부름에 오래된 술 한 병이 테이블 위에 올라왔다.뚜껑을 열자 진한 술 향이 애주가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엔 충분했다.“이 향이라면 50년은 족히 넘은 술인 것 같은데요?”유진우가 코를 킁킁대며 말했다.“맞아! 이 술은 80년 동안이나 숙성된 거야. 어렵게 구한 거라서
유진우와 이청성은 원래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는데 포니테일 여자가 갑자기 방향을 바꿔 화살을 두 사람에게 겨누자 잠시 반응이 없었다.“그래! 저 사람들은 열몇 가지 음식이 있고 전부 보기에도 좋고 맛도 좋아 보이잖아. 근데 우리 상에 올라온 건 전부 쓰레기야!”“당장 우리 음식도 바꿔줘! 그렇지 않으면 정말 화낼 거야!”많은 사람들이 소란을 피웠고 말하면서 식탁 위의 음식을 바닥에 힘껏 내던져 온통 엉망진창이 되었다.“죄송합니다. 저희 작은 가게 능력으로는 정말 저렇게 유명한 음식으로 바꿀 수가 없어요.”종업원이 울상을 지으며 난감해했다.“바꿀 수 없다고? 그 말은 우리가 저런 음식을 먹을 돈이 없다는 거야?”매부리코 남자가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지금 사람을 차별 대우하겠다는 거야? 우리가 누군지 알아? 우리가 바로 강호에서 유명한 비설파 제자들이야. 만약 우리의 심기를 건드린다면 이 가게는 오늘로 끝이야!”포니테일 여자가 흉악하게 소리쳤다.“오해, 모두 오해입니다.”종원은 화들짝 놀라며 설명했다.“저 유명한 음식들은 전부 손님이 직접 데려온 요리사가 요리한 겁니다. 저희는 그저 주방만 제공했을 뿐이에요.”“뭐? 요리사를 데리고 왔다고? 지금 장난쳐? 누가 요리사를 데리고 다녀?”포니테일 여자는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죽음의 사막에 온 사람들은 대부분 보물을 찾으러 오는데 요리사를 곁에 두는 것이 말도 안 되었다.“정말입니다. 제가 직접 봤어요. 제가 어찌 감히 여러분을 속이겠어요.”종업원이 확신에 차서 말했다.그 말을 들은 비설파 제자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더니 결국 유진우와 이청성에게 시선을 돌렸다.“이봐, 그 음식들 정말 그쪽 사람들이 만든 거야?”포니테일 여자가 앞으로 나서더니 위에서 내려다보며 물었다.“맞아요.”이청성은 고개를 끄덕였다.“밖에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서 직접 요리사를 데리고 왔어요.”“그래?”포니테일 여자는 식탁 위의 요리를 자세히 보고는 저도 모르게 혀를 내둘렀다.“새우 볶음, 쏘가리구
“에취!”여관에서 막 옷을 갈아입던 유진우는 갑자기 재채기하고 속으로 ‘도대체 누가 나를 생각하는 거지?'라고 중얼거렸다.유진우는 코를 비비고 방을 나와 여관 식당에 도착했다.이 여관은 초등학교를 개조했기 때문에 식당의 면적도 작지 않았는데 대략 이삼백 제곱미터였다.백여 명이 식사하기에 넉넉했다.“여기요!”유진우가 식당에 도착하자마자 이청성이 손을 들어 흔드는 것을 보았다.앞으로 다가가 보니 테이블 위에 이미 십여 가지 맛있는 음식이 놓여 있었다.“이 음식들은 전부 우리 주방장이 만든 거예요. 안전하고 맛도 있으니 안심하고 드세요.”이청성이 설명하자 유진우가 웃으며 말했다.“조심성이 많으시네요.”그는 사양하지 않고 의자에 앉아 우걱우걱 먹기 시작했다.“집 밖에 나오면 조심하는 게 맞죠. 이곳은 죽음의 사막 경계지역으로 아주 혼잡해요. 경각심을 늦추면 언제 죽을지 몰라요.”이청성은 젓가락을 집어 들고 천천히 씹으며 우아하게 먹었다.두 사람이 밥을 먹고 있을 때, 청의를 입고 보검을 든 젊은 남녀들이 갑자기 들어왔다.이 사람들은 분위기가 강하고 눈빛이 날카로우며 압박감이 넘쳤다. 옷차림을 보니 강호의 문파 제자일 것이다.그중 선두주자는 마른 체구의 매부리코 남자로, 서른이 넘은 나이에 인상이 다소 험상궂어 좋은 사람 같지 않았다.“대선배님, 이곳은 너무 낡았어요. 그리고 더러운 물건도 많은데 어떻게 여기서 식사를 하겠어요?”포니테일을 한 여자가 사방을 둘러보며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어쩔 수 없어. 이번에는 상황이 열악하니 대충 때워.”매부리코 남자가 좋은 말로 달랬다.“그래요. 온 김에 대충 먹죠 뭐. 배고파 죽겠어요.”포니테일 여자는 그나마 깨끗한 자리를 찾아 앉더니 외쳤다.“종업원! 여기에서 가장 좋은 요리로 당장 준비해!”“네!”종업원이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그리고 요리사에게 몇 가지 귀한 요리를 준비해서 먼저 내놓으라고 당부했다.그러나 포니테일 여자가 음식을 집어 한 입 먹자마자 곧바로 토했다.“퉤! 이
“전에는 이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정말 달라요.”팀원들의 비웃음에 진이수는 부인하지 않았다.서로 생사를 함께한 형제자매들이라 못할 말이 없었다.“청성 아가씨는 정말 특별해요. 비록 실제로 뵌 적은 없지만 분명 절세미인인 느낌이 들어요.”체격이 우람진 한 대머리 남자가 늠름하게 말했다.“황소야, 청성 아가씨는 대장님이 마음에 두신 여자야. 분수에 넘치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아.”“너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난 그냥 한 말인데 왜 내가 감히 대장님 여자를 뺏는 것처럼 말해?”대머리 남자가 멋쩍게 웃었다.“대장님, 모처럼 설레는 여자를 만났으니 너무 많은 생각하지 마시고 용감하게 행동하세요. 대장님의 남성적인 매력이라면 충분할 거예요!”단발머리 여자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왠지 한발 늦은 것 같은 느낌이 들어.”진이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아가씨 옆에 수행 경호원이 있는데 두 사람 같은 차에 타고 온 걸 보면 보통 사이가 아닌 것 같아. 난 아마 기회가 없을 거야.”전에 유진우를 겨냥한 건 질투심 때문이었다.게다가 이청성이 유진우를 옹호하는 태도를 보면 두 사람은 분명 평범한 친구 사이가 아닐 것이다.“대장님, 방법만 정확하면 넘어오지 않는 여자는 없어요.”단발머리 여자가 실눈을 뜨며 말했다.“그래? 무슨 좋은 방법이라도 있어?”진이수는 순간 흥미가 돋았다.“아주 간단해요. 아가씨 옆에 있는 그 경호원이 죽기만 하면 대장님에게 기회가 생기지 않겠어요?”단말 머리 여자가 놀라운 말을 하자 진이수는 안색이 굳어져서 좌우를 둘러보며 아무도 엿듣지 않는 것을 발견하고는 목소리를 낮추었다.“은하야, 함부로 말하지 마. 행동에는 규칙이 있는 법이야. 우리는 탐험대이지 용병이 아니야. 사람을 죽이고 물건을 훔치는 일은 일단 소문이 나면 앞으로 누가 우리를 찾겠어?”“저희가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하면 누가 알겠어요?”은하는 웃을 듯 말 듯 말했다.오랜 세월 강호를 누비며 서로 속고 속이며 생사를 걸고 싸웠으니
진이수의 갑작스러운 적대적 태도에 유진우는 잠시 당황하며 이해할 수 없었다. ‘나와 초면이고 아무런 악연도 없는 상황인데 왜 이렇게 나를 무시하는 태도를 보일까?’ “진 대장님, 우리가 전에 만난 적 있나요?” 유진우는 가볍게 물으며 손을 천천히 내렸다. “만난 적 없는데요.” 진이수의 표정은 차가웠다. “그렇다면 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거죠?” 유진우가 되물었다. “저는 그저 청성 씨가 걱정돼서 그러는 거예요” 진이수는 여전히 단호하게 말했다. “죽음의 사막은 위험이 도사리는 곳으로서 들어간 사람 중 살아 돌아온 사람이 거의 없어요. 강한 실력과 전문적인 지식, 경험이 없다면 일반적인 사람은 하루도 살아남지 못해요. 청성 씨가 저를 고용한 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저는 청성 씨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죠. 그런데 당신은 전문적인 경호원이 아닌 게 분명해 보이기 때문에 당신의 능력이 의심되네요. 사막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청성 씨가 오히려 당신에게 해를 입지 않을까 걱정돼요.” 진이수의 말은 매우 직설적이고 거칠었다. “진 대장님, 청성 씨가 저를 데려온 이유가 있습니다. 당신의 역할은 단지 길을 안내하는 것뿐이에요. 위험을 피하고 그것만 잘하면 됩니다. 그 이상은 신경 쓰지 마세요. 저를 평가할 권리는 없습니다. 제가 할 일은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유진우는 차분하게 답했다. 그는 성격이 온화한 편이지만 이처럼 자신을 함부로 평가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았다. “돈을 받는 일도 적당히 해야죠. 이건 단순히 돈 문제가 아니라 목숨이 걸린 일입니다. 그렇게 대충할 수 없어요.” 진이수는 여전히 진지하게 말했다. 그의 눈빛은 이청성을 향했다. “청성 씨, 이 일과 관련된 뛰어난 경호원을 몇 명 알고 있습니다. 만약 저를 믿으신다면 그들을 데려올 수 있습니다. 물론 비용이 더 들겠지만요.” “진 대장님, 그 마음은 고맙지만 저는 유진우의 능력을 믿습니다. 그가 있기 때문에 제 안전은 문제가 없을 거예요.” 이청성은
차량은 일정한 속도로 순조롭게 달렸다. 결국, 그들은 다음 날 오전에 죽음의 사막의 가장자리 지역에 도착했다. 사막의 가장자리에는 크지 않은 마을이 하나 있었다. 약 500-600가구가 살고 있는 곳이었다. 마을에는 여관, 주유소, 마트 등이 있었다. 규모는 작지만 필요한 물건들은 다 갖추어져 있었다. 탐험대들에게 이 마을은 중요한 보급소로 위험한 순간에 생명의 은인이 되기도 한다. 사막에 들어가기 전이나 사막을 빠져나오는 이들은 모두 이 마을에 잠시 머물며 정보를 얻고 물자도 보충한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사막으로 물자를 운반하기 어려운 탓에 마을의 물가가 외부보다 몇 배나 비쌌다는 것이다. 이청성의 차량 행렬은 마을에 들어가 ‘희망의 집’이라는 이름의 여관 앞에 멈췄다. 이 여관은 원래 초등학교 건물을 개조한 곳으로 방이 아주 많아 100명 넘게 수용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청성 씨, 도착했습니다.” 차량이 멈추고 한 명의 용병 옷을 입은 남자가 이청성의 차 창문을 두드렸다. 그 남자는 30대 중반의 키 큰 남자였고 황색 군복을 입고 가죽 부츠를 신고 있었다. 강한 인상의 얼굴을 지닌 그 남자는 사람들에게 강력한 느낌을 주었다. 그 남자의 이름은 진이수, 탐험대의 대장이며 죽음의 사막에 두 번 들어가 성공적으로 살아 돌아온 경험이 있는 유능한 인물이었다. 이청성은 그에게 큰돈을 주고 가이드를 맡겼다. 이번 탐험도 그가 이끌게 되었다. “진 대장님, 이곳이 바로 사막의 마을인가요?” 이청성은 차 문을 열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을은 그리 크지 않았다. 대부분의 건물은 낮고 허름해 보였다. 사막의 모래바람에 오랜 세월 닳고 닳아 마을은 전반적으로 허술하고 거칠게 보였다. 하지만 ‘희망의 집’이라는 여관은 예외였다. 깨끗하고 정돈된 모습이었다. 자주 청소하는 듯했다. “맞습니다. 반경 100리 내에 이 마을 하나뿐입니다. 죽음의 사막에 가까워서 ‘사막의 마을’이라 불리죠.” 진이수는 미소 지으며 설명했다. “이
왕부에 돌아온 유진우는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조용히 두 통의 편지를 썼다. 하나는 유만수의 서재에 두었고 다른 하나는 유천우의 침실에 놓았다. 이 두 통의 편지는 사실 떠나기 전에 그들에게 남기는 작별 인사였다. 유진우는 감정적인 문제를 잘 처리하지 못했다. 때로는 침묵 속에서 떠나는 것이 가장 나은 선택일 때가 있었다. 황혼이 내려앉을 무렵, 유진우는 이청성의 차에 몸을 싣고 서남의 사막으로 향했다. 서남에서 가장 거대한 사막은 ‘죽음의 사막'이라고 불린다. 이 사막은 환경이 극도로 험하고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잘못 들어가면 거의 죽음을 면치 못한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 물론 죽음의 사막은 위험하지만 그 안에는 보물도 숨겨져 있고 금광도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 때문에 수많은 탐험대가 생명을 걸고 사막에 들어가 운을 시험하려 한다. 운이 좋으면 보물을 발견해 하루아침에 부자가 될 수 있지만 운이 나쁘면 목숨을 잃고 만다. 과장하지 않고 말하자면 매년 수백 명이 보물을 찾아 사막에 들어가다가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그런데도 죽음의 사막에는 끝없이 많은 탐험대가 몰려든다. ‘사람은 재물을 위해 죽고 새는 먹이를 위해 죽는다'는 말처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여전히 일확천금을 꿈꾸며 사막에 발을 들여놓는다. 이청성은 당연히 죽음의 사막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었다. 그녀는 그 신비로운 오아시스를 찾기 위해 죽음의 사막에서 탐험했던 경험이 있는 전문 탐험대에게 큰돈을 지급해 길잡이를 맡겼다. 자신의 호위대와 합쳐 총 100명 이상의 인원과 30대가 넘는 차량이 함께 떠났다. 그중 절반 이상은 물자를 실은 차량이었다. 음식, 물, 나침반, 통신 장비, 응급처치 키트, 자외선 차단복, 구조 도구 등 필요한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었다. 이청성은 부족함 없이 모든 물품을 준비했다. 밤이 깊어졌다. 차량 행렬은 계속해서 전진하고 있었다. 유진우는 자리에 기대어 창밖으로 달빛을 바라보며 얼굴에 어떤 감정도 드러내
점심을 먹고 난 후, 유진우는 갑자기 이청성의 전화를 받았다. 중요한 일이 있어서 상의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만날 장소는 성서의 옛 저택으로 정했다. 성서에 있는 그 오래된 집은 유진우가 이미 구매해 놓은 곳으로 주로 밀사 훈련을 위한 장소로 사용되고 있었다. 이전에 소현무에게 피해를 보았던 여자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서경의 밀사 대열에 합류했다. 그들의 큰 뜻은 다시는 자신들처럼 고통을 겪는 사람이 없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런 깊은 뜻에 유진우는 존경을 표했으며 그들을 지원해 주기로 했다. 손도운의 훈련을 거친 그 여자들은 이제 입문 단계에 있지만 진짜 임무를 수행하려면 최소한 3년 이상의 연습이 필요했다. 유진우는 그들이 평생 임무를 수행할 일이 없기를 바랐다. 그렇다면 그것은 곧 모든 것이 평화롭다는 의미였다. 밀사들은 잠재적인 위협이 있을 때만 활동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경우, 그들은 거의 죽을 각오로 임무를 수행한다. 30분 후, 유진우는 성서의 오래된 집에 도착해 회의실에 들어갔다. 그곳에는 이청성이 이미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이청성은 푸른 옷을 입고 있었다. 얼굴은 여전히 면사포와 모자로 가리고 있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몸매만 봐도 여전히 매우 유혹적이었다. 특히 그녀에게서 풍기는 신비롭고도 매혹적인 기운은 마치 타고난 매력처럼 사람들을 쉽게 끌어당기는 느낌을 주었다. “왔어요?” 이청성은 직접 유진우에게 차를 따라 주었다. “공주마마, 갑자기 절 찾으시다니, 무슨 일로 저를 부르신 겁니까?” 유진우는 태연하게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우리 이렇게 친해졌는데 공주마마라 부르는 게 좀 어색하지 않나요? 다른 호칭을 쓰는 건 어때요?” 이청성은 미소를 머금은 듯, 아닌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뭐라 부르면 되나요? 아가씨? 아니면 여사님?” 유진우는 다소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에이, 그런 거 말고 그냥 청성 씨라고 불러도 되잖아요. 왜 그렇게 격식을 차려요?” 이청성은
원인은 간단했다. 유진우는 배신자를 극도로 혐오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중적인 자들은 마땅히 엄벌에 처해야 했다. 반란을 일으킨 다섯 명을 처형한 후, 그들을 따랐던 고급 장교들은 각자의 상황에 따라 처분이 내려졌다. 강등될 자는 강등되고 포섭할 자는 포섭하며 감옥에 가야 할 자들은 감옥에 보냈다. 구체적인 처분은 자발적인 배신이었는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는지에 따라 달라졌다. 유진우는 반란을 수습하는 동시에 홍복홍에게 유만군의 한 부대를 이끌고 보물 지도의 위치를 따라 호룡각의 보물 창고를 찾아가도록 지시했다. 모든 과정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호룡각에도 고수들이 지키고 있었지만 대 마스터인 홍복홍 앞에서는 상대도 되지 않았다. 손쉽게 호룡각의 잔당을 소탕하고 보물 창고에 있던 모든 재물을 회수해 왔다. 사철수의 말이 사실이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보물 창고 안에는 재물이 그야말로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서경 왕부에서 동원한 수백 대의 대형 트럭과 수만 명의 인력을 총동원해야만 창고를 완전히 비울 수 있었다. 그 모든 재물의 양과 가치는 어마어마해서 가늠조차 하기 어려웠다. 보수적으로 계산해도, 이 보물만으로 서경의 향후 20년 군자금은 걱정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창고 하나만으로 이 정도라면 남은 세 개의 보물 창고까지 합치면 그야말로 나라를 사고도 남을 부가 될 것이었다. 보물을 가져온 뒤 가장 먼저 진행된 것은 바로 공로를 논하고 상을 주는 일이었다. 남방의 세 명의 제후인 회음 제후 은성종, 평양 제후 장범규, 선평 제후 주한휘는 모두 큰 공을 세운 자들이었기에 마땅한 보상을 받았다. 그들의 휘하에 있던 장군과 병사들도 저마다 공훈에 따라 상을 받았다. 모든 일이 마무리된 후 어느덧 사흘이 지나 있었다. 3일 후, 정오. 유진우가 식사하던 중 홍복홍이 갑작스레 찾아왔다. 그의 손에는 나무 상자가 들려 있었다. “세자 전하, 아뢸 일이 있습니다.” 홍복홍은 몸을 숙이며 최대한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 “
“됐어, 시간도 늦었으니 일찍 방에 들어가서 쉬어.”유만수는 피곤한 얼굴로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유만수가 유진우한테 왕위를 계승해 줄 생각을 했던 건 한편으로는 유진우의 능력을 높이 평가한 것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죄책감 때문에 조금이나마 보상을 해주고 싶어서였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유진우는 야망도 없고 많은 사람이 우러러보는 존재가 되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었다.그러니 유만수도 싫다는 아들을 억지로 강요하고 싶지는 않았다.얼마 남지 않은 삶이니 이젠 두 아들이 평안하고 행복하게 지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고 그 외에 일은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유진우는 뭔가를 말하려다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유진우는 아직 왕이 될 각오가 되어 있지 않았다. 적어도 지금은 확실히 아니었다.다른 사람들한테는 서경의 왕은 최고의 권세를 대표하고 무궁무진한 부귀영화를 대표하며 세계 정상에 서는 위풍을 대표하겠지만, 유진우한테 서경의 왕은 너무 무거운 자리였다.그 자리는 오르기만 하면 짊어져야 할 것이 너무 많고 더 이상 자기 자신보다 전체 서경, 더 나아가 천하의 백성을 생각해야 한다.유진우는 자신은 그냥 평범한 사람일 뿐 이렇게 무거운 책임을 질 자신이 없었다. 유진우는 이번만큼은 그냥 이기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다.며칠 동안 유진우는 왕부에서 시간을 보냈다.반역을 평정하는 이번 일은 호룡각을 소탕하는 것을 제외하고도 처리해야 할 사소한 일이 많았다.유만수의 건강이 좋지 않아 유진우가 그를 대신하여 일을 처리했다.먼저 유태범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문제였다. 유진우는 유태범에게 두 가지 선택지를 주었다.첫째, 병권을 반납하고 서경에 머물며 매일 개를 산책시키고 말을 타고 활을 쏘며 한가로운 귀족으로서 부귀한 삶을 누린다. 단, 어떤 세력도 있어서는 안 되며 수중의 호위대도 백 명을 넘지 말아야 한다.둘째, 어느 정도의 금전을 가지고 서경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서 발전한다. 결과가 어떻든 간에 왕부는 절대 간섭하지 않을 것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