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말할 때, 그의 신변 경호대는 유진우와 황은아를 에워쌌다.그들을 노려보는 눈빛은 날카롭기 그지없었다.“옥면 군신께 인사 올립니다.”유진우가 고개를 숙인 채 대답했다.“저는 진우섭이고 이건 제 여동생 진은아입니다.”“어디서 본 것 같은데, 우리 예전에 만난 적 있나요?”문관옥이 물었다.그의 눈빛은 마치 칼처럼 날카롭게 유진우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그를 철저히 파악하려는 듯했다.“작년에 군신께서 승리하고 돌아오셨을 때 문 어르신께서 큰 잔치를 여셨는데, 저는 그 자리에 참석해 군신의 위풍을 목격했습니다. 군신께서 저를 기억하신다니, 정말 영광입니다!”유진우는 겸손한 표정을 지었다.이 말은 반은 진실이었고 반은 거짓이었다.사실 작년에 문관옥은 실제로 큰 승리를 거두고 연회를 열었으며, 많은 손님을 초대했다.물론 유진우는 참석할 시간이 없었고, 이 모든 것은 용수현이 제공한 관련 정보였다.만일을 대비해 그는 미리 잘 외워두었고, 지금 그 정보를 활용할 수 있었다.“그래요?”문관옥이 눈을 살짝 가늘게 뜨며, 여전히 유진우를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잠시 후에야 시선을 거두었다.“내가 사람을 잘못 안 것 같네요.”말을 마친 후 그는 사람들을 데리고 전혀 주저 없이 돌아섰다.“아저씨, 이 사람은 만만치 않네요.”황은아는 문관옥의 뒷모습을 보며 좀 더 진지해졌다.이렇게 멀리서도, 악의적인 눈빛을 느낄 수 있다니, 그 감지 능력은 확실히 무서웠다.만약 암살자가 습격을 시도한다면, 미처 손도 쓰기 전에 미리 반격당할 것이다.“용국 군신이 될 수 있는 사람은 평범한 자가 아니지. 그만한 실력이 없다면 어떻게 전쟁터를 종횡무진했겠어?”유진우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문관옥은 다섯 명의 군신 중에서 가장 강력한 실력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그러니 직접 싸워보기 전에는 그도 상대방의 진짜 실력을 예측할 수 없다.전에 용수현이 말했듯이 십 년이 지난 지금 문관옥은 이미 예전과 같지 않다.반면에 그는 서경 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해 수련
유진우는 예전의 그 혐오스러운 얼굴을 보며 무의식적으로 미간을 찌푸렸다.그는 문왕부에서 아는 사람을 만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특별히 변장해 신분이 드러나는 것을 피하려고 했다.하지만 이런 식으로 장경화 일행과 만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정말 재수 없었다.다행히도, 그들은 유진우를 알아보지 못했고, 유진우는 일을 키우고 싶지 않아서, 먼저 사과했다.“죄송합니다, 방금 제가 주의하지 않아서 부딪혔는데 다치지 않으셨나요?”“쳇! 넌 눈이 멀었냐!”장경화는 엉덩이를 툭툭 치며 일어서며, 기세등등하게 말했다.“너, 내가 누구인지 알아? 감히 나를 들이받다니, 너 정말 죽고 싶어?”지금 그녀의 신분은 예전과 다르니, 누구든지 그녀를 건드리면 큰일이었다.“저기요! 방금은 당신이 길을 잘못 보고 부딪힌 거잖아요! 당신이 부딪혔으면서 왜 우리한테 화내요? 정말 너무 뻔뻔해요!”황은아가 코웃음을 쳤다.“야! 넌 뭔데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야!”장경화가 눈을 부라리며, 더욱 오만하게 말했다.“너희들, 당장 사과하고 내 정신적 피해 보상해! 안 그러면 너희들 가만두지 않을 거야!”“허허... 겁주는 거예요? 우리가 사과하고 배상하지 않으면 어쩔 건데요?”황은아가 비웃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이런 조그만 년이! 감히 내 앞에서 말대꾸해? 그 결과가 뭔지 알아?”장경화가 기세등등하게 말했다.“너희들, 조용히 사과하고 보상하는 게 좋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곧 큰 화가 닥칠 테니까.”이때 옆에 있던 단소홍이 거만하게 입을 열었다.여기는 문왕부로 그녀들의 구역이었으니 오는 사람이 누구든 그녀들의 명령을 고분고분 따라야 했다.“죄송합니다, 방금 저의 부주의로 일어난 일이니 부디 용서해 주세요. 제가 보상해 드릴게요.”유진우는 겸손하게 말했다. 평소였다면, 그는 물러서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오늘은 중요한 일이 우선이었다. 그는 귀찮은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고 단지 이 성가신 여자를 빨리 벗어나고 싶을 뿐이었다.“너 혼자 사과한다고 끝날 일이
그런데 눈앞의 이 여자는 전혀 사정을 안 보고 일을 크게 만들고 있었다.이렇게까지 나오니 그는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좋아. 당해봐야 정신을 차리겠다 이거지!”“호위! 빨리 와!”“이 두 사람이 문왕부에서 난동을 부리고 나에게 손까지 댔어. 당장 붙잡아!”장경화는 노발대발하며 소리쳤다.그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문 앞에 있던 호위들이 즉시 모여들었다.이청아는 현재 문왕부에서 총애를 받는 인물이었기에 그녀의 어머니 장경화는 상빈으로 모셔져, 지위가 높고, 감히 그녀를 건드리는 사람이 없었다.“멈춰요!”양측이 막 손을 대려는 순간, 이청아가 갑자기 들어와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무슨 일이에요? 왜 싸우려는 거죠? 오늘이 무슨 날인지 모르세요?!”“딸, 너 마침 잘 왔다!”장경화는 이청아를 보자 곧바로 고자질을 시작했다.“이 두 녀석이 방금 고의로 시비를 걸고 나를 때리기까지 했어. 이건 문왕부를 완전히 무시하는 거잖아. 너 얼른 이 사람들 잡아가. 문 어르신 생신 잔치에 방해되지 않게.”사실을 왜곡하는데 그녀는 전문가였다.“당신들은 누구죠? 감히 문왕부에서 소란을 피우다니요?”이청아는 언짢은 기색으로 유진우와 황은아를 바라보았다.“이청아 씨, 우리가 난동을 부린 게 아니라 당신 어머니가 억지를 부리시는 겁니다.”유진우가 담담하게 말했다.“우리는 원래 문 어르신의 생신을 축하하러 온 건데 막 들어서자마자 당신 어머니와 부딪혔어요. 사모님께서는 사과와 배상을 요구했고, 우리는 이미 사과했으며 보상할 의향도 있었어요.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우리더러 무릎을 꿇으라고 하고 스스로 뺨을 때리라고 하잖아요. 이건 정말 너무 하셨어요.”“어? 그런 일이 있었어요?”이청아가 미간을 찌푸리며 어머니를 돌아봤다.“딸, 저 사람 말을 믿지 마. 그는 분명 일부러 나를 부딪치고 시비를 건 거야. 저 사람 꼴 좀 봐. 분명히 좋은 사람이 아니야!”장경화는 계속해서 횡포를 부렸다.문왕부가 뒤를 봐주고 있으니, 그녀는 검은 것도 흰 것으로 말
장경화를 진정시킨 뒤, 이청아는 유진우와 황은아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두 분, 방금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정말 죄송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놀라셨다면 사과드릴게요.”말을 마치고 그녀는 살짝 몸을 숙여 예의를 표시했다.이 광경을 본 주변의 손님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칭찬을 표했다.문 어르신의 의녀로서, 지위가 문관옥 다음인 인물이 자신의 체면을 내려놓고, 대중 앞에서 사과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이렇게 대의를 생각하는 태도는 문 어르신의 안목이 틀림없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이청아 씨, 너무 겸손하십니다. 저희도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평화롭게 해결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결과죠.”유진우는 고개를 약간 끄덕이며 말했다.“과연 이해심이 깊으신 분이네요.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이청아가 정중하게 물었다.“진우섭이라고 합니다. 이건 제 동생 진은아입니다.”유진우가 소개했다.“진우섭 씨, 진은아 씨. 반가워요.”이청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두 분은 손님이시니 자리에 앉으세요.”그녀는 말하며 손짓으로 직원들을 불러 유진우와 황은아에게 앞쪽 자리를 마련해주었다.“감사합니다.”유진우는 사양하지 않고 황은아를 데리고 앞쪽 자리에 앉았다.비록 방금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지만, 다행히도 싸움으로 번지지는 않아 계획에 큰 영향은 없을 것 같았다.“딸, 저 사람들에게 왜 그렇게 잘해주는 거야? 차라리 쫓아내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별로 대단한 사람 같지 않잖아.”“흥! 그런 말 할 자격이 있어요?”이청아가 차가운 눈빛으로 쳐다보며 말했다.“방금 만약 문제가 커졌다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을지 알아요? 만약 이 일이 퍼지면, 사람들은 우리 문왕부가 갑질한다고 할 거예요. 그렇게 되면 십여 년 동안 쌓아온 명성이 다 더럽혀질 수도 있다고요!”“그렇게 심각할 리가 있겠어? 그냥 버릇없는 두 녀석을 가르쳐준 것뿐인데 문 어르신의 명성과 무슨 관계가 있어?”장경화는 이청아가 좀 과장하는 것 같다고
그는 말하면서 이리저리 손을 흔들어 보였는데 거만한 기색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저 사람이 전설 속의 문 어르신이라고요? 생각보다 좀 다르네요.”앞에 있는 친절한 뚱보 아저씨를 보며, 황은아는 다소 의아해했다.그녀 상상 속의 왕이라면 패기 있고 위엄이 넘치며, 한 번 보기만 해도 고개를 숙여야 할 것 같은 존재여야 했다.하지만 문설봉의 모습과 분위기는 그녀에게 약간의 실망감을 안겨주었다.“상대방이 왕의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거야?”유진우가 웃으며 물었다.“네. 평범한 사람처럼 보이잖아요. 문관옥과 비교하면 너무 차이가 나요.”황은아는 고개를 끄덕였다.“은아야, 그렇게 생각하면 큰 오산이야.”유진우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문관옥은 지금은 대단하지만, 결국 보면 거인의 어깨 위에 서서 업적을 쌓은 거야. 시작부터 높으니까, 한결 더 쉬웠던 거지. 반면, 문 어르신은 맨손으로 시작해서, 자신의 힘으로 제후에 봉해지고 왕에 봉해졌어. 이런 인물이야말로 진정한 영웅호걸이 아니겠어?”오늘날, 문관옥의 화려함은 대부분 문설봉의 인맥과 자원 덕분이었다.그러니 두 사람은 완전히 비교할 수 없었다.“좀 일리가 있는 것 같아요.”황은아가 생각에 잠긴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이른바 이미지라는 것도 문 어르신 정도의 수준에 이르면 전혀 신경 쓰지 않을 거야.”유진우가 감탄하며 말했다.“사실, 명예나 돈, 권력 같은 건 그들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아.”“돈도 중요하지 않다면, 그럼 뭐가 중요해요?”황은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그들은 지금 정신적이고 감정적인 만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지.”유진우가 말했다.“아~ 이해했어요. 어쩐지 문 어르신이 그렇게 많은 의붓자식을 입양했다 했더니, 그게 이유였군요.”황은아는 깨달았다.“그렇다고 할 수 있지.”유진우가 웃으며 말했다.“근데 아저씨는 어떻게 이렇게 많은 걸 아세요?”황은아가 호기심을 보였다.“나? 그냥 짐작한 거야.”유진우는 어깨를 으쓱했다.어떤 사람들은
검은 천이 벗겨지자 현장은 소란스러워졌다.철창 안에 갇힌 것이 놀랍게도 맹수였기 때문이다.맹수는 호랑이처럼 생겼지만 몸집은 훨씬 더 컸고 털은 칠흑같이 검은 데다 금속처럼 반짝였다.길게 뻗은 송곳니는 무려 한 자나 튀어나와 마치 날카로운 검처럼 보였고 발바닥에 튀어나온 발톱은 마치 강철 갈고리 같았는데 그 위에는 피와 살점이 묻어 있었다. 그 모습은 매우 흉악하여 사람들은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것 같았다.다행히도, 맹수는 아직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고, 어떤 사나운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의부님, 이것은 제가 동쪽 국경의 원시림에서 힘들게 잡아 온 변종 흑호입니다.”“이 녀석은 백수의 왕으로, 매우 흉악하며 힘이 무궁무진할 뿐만 아니라, 가죽이 단단하여 칼과 총으로도 상처를 입히기 어렵습니다. 정말로 귀한 놈이죠.”“잡는 데 엄청나게 고생했지만, 다행히 성공했어요. 의부님께서 좋아하실지 모르겠습니다.”문관옥이 낭랑한 목소리로 말하며 손을 뻗어 흑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잘했구나! 내 아들이 정말 대단해. 이런 희귀한 맹수를 잡다니, 정말 자랑스럽구나.”문설봉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역시 옥면 군신이야. 흑호를 생포해 애완동물로 삼다니,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야!”“이런 능력을 가진 사람이 연경에 또 있을까?”순간 연회장의 손님들이 모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보통 생일 선물이라면 금은보화나 골동품, 글씨나 그림 같은 걸 많이 주는데 문관옥은 희귀한 변종 맹수를 선물로 들고 와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물론, 이걸로 문관옥의 비범함이 드러나기도 했다.“의부님, 이 흑호는 영물이란 소문이 있는데 선악과 충성을 구분할 수 있다고 해요. 그러니 곁에 두면 의부님의 안전도 지켜줄 겁니다.”문관옥이 말했다.“그래? 그런 이야기도 있나?”문설봉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의부님께서 못 믿으시겠다면, 한번 시험해 보시겠습니까?”문관옥이 미소를 띠며 말했다.“어떻게 시험하지?”문설봉이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간단해요. 제가 곧 철창을
잠시 후, 잠들어 있던 흑호가 천천히 눈을 떴다.이와 동시에 완전히 무장한 호위들이 흑호를 둘러싸며 반응을 주시했다.혹시라도 흑호가 이상한 행동을 하거나 날뛰기라도 하면 바로 제압할 모양이었다.하지만 흑호는 영물인 듯, 주변 상황을 둘러보고는 움직이지도 않고 가만히 엎드려 있었다.“나와!”문관옥이 소리쳤다.흑호는 콧김을 뿜으며 천천히 철창을 나왔다.그 거대한 몸집은 작은 산과 같아 보는 이들에게 큰 위압감을 줬다.덩치가 큰 문관옥조차 흑호 앞에서는 난쟁이처럼 작아 보였다. 마치 흑호가 입을 벌리기만 하면 문관옥을 통째로 삼킬 수 있을 것 같았다.“네가 악인과 충신을 구분할 수 있다고 들었는데, 여기서 한번 보여 주거라. 물론, 괜히 설치면 잡아다가 국물로 끓여버릴 것이야!”문관옥이 냉랭한 목소리로 경고했다.그 말을 듣자, 흑호는 털을 약간 곤두세우며 문관옥을 피하려는 듯 뒤로 살짝 물러났다. 확실히 겁을 먹은 모습이었다.“가라.”문관옥은 흑호의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흑호는 반항하지 않고, 호위들의 감시 속에서 주변을 살피며 돌아다니기 시작했다.가끔 코를 킁킁거리며 무언가를 맡는 듯했다.흑호의 거대한 몸집을 본 고관대작들은 긴장하면서도 동시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이런 희귀한 맹수를 직접 볼 기회는 흔치 않으니 그럴 만도 했던 것이다.이걸 애완동물로 키우면 얼마나 위엄이 있겠는가.“이건 진짜 무서운데, 다행히 이미 옥면 군신이 길들여서 이 정도까지 가까이 갈 수 있지, 아니었으면 감히 근처에도 못 갔을 거야.”“흑호 몸집 보니까 일반 호랑이보다 두세 배는 커 보이는데, 사람을 잡으려면 그냥 한입에 꿀꺽일 거 같아.”“헉! 진짜 대박이야!”사람들이 속삭이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두려워했고, 누군가는 흥미로워하며 설레는 표정을 지었다.심지어 몇몇 용감한 젊은이들은 거침없이 흑호의 털을 만지기까지 했다.흑호는 기분 나빠하는 듯했지만, 특별한 반응은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흑호를 만진 젊은이들은 신이 나서 뿌듯해했다.“아저씨,
흑호가 갑자기 멈춰서자, 황은아는 표정이 미묘해지며 마음이 복잡해졌다.겁이 난 건 아니었지만, 자신의 신분이 들킬까 봐 걱정됐던 것이다.“아저씨, 아까 분명 이 짐승이 그런 능력 없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왜 우리 앞에서 멈췄죠? 뭔가 알아챈 걸까요?”황은아가 이를 악물고 속삭였다.“그냥 우연일 거야. 걱정하지 마. 곧 지나갈 거야.”유진우가 차분히 달랬다.그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흑호는 갑자기 고개를 숙였고 긴 송곳니는 거의 유진우의 머리와 닿을 뻔했다.거칠고 무거운 콧김이 유진우의 얼굴에 약간의 비린내와 함께 뿜어져 나왔다.유진우는 숨을 멈추며 속으로 말했다.“이봐, 제발 가만히 있어. 안 그러면 죽여버릴 테니까.”유진우의 위협을 느낀 듯 흑호는 콧김을 뿜으며 얼굴을 황은아 쪽으로 돌렸다.주먹을 꽉 쥔 황은아는 당장이라도 공격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흑호는 덩치가 코끼리만 했고, 거리가 가까웠기에 입만 벌리면 그녀의 머리를 단번에 물어뜯을 수 있었다.‘이 놈이 너무 심한 거 아니야?’“뭐야? 흑호가 왜 저들 앞에서 멈춘 거지? 설마 저 사람들이 문제가 있는 건가?”“흑호의 다음 행동을 보면 알겠지. 만약 더 이상한 행동을 한다면, 저 둘의 신분을 의심해봐야 할 것 같아.”사람들은 수군거리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앞서 지나간 사람들에겐 아무 반응 없던 흑호가 유독 유진우와 황은아 앞에 멈춰 섰으니 당연히 이상하게 느껴진 것이다.“흥! 난 처음부터 저들이 수상하다고 생각했어. 변종 흑호가 딱 내 의심을 증명해 주잖아!”귀빈석에서 장경화는 팔짱을 낀 채 그럴 줄 알았다는 거만한 표정으로 말했다.“흑호가 저 둘의 머리를 물어뜯으면 진짜 짜릿하겠는데.”단소홍이 중얼거리며 기대 어린 눈빛을 보냈다.반면, 이청아는 무표정하게 앉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그녀는 지금도 문관옥이 그냥 헛소리를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단지 짐승일 뿐인데, 어떻게 사람 마음을 알아챌 수 있단 말인가?현장의 분위기가 묘하게 흐르던 중 흑호가 다시
“아니에요?”유장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용호산은 여태껏 무림인의 세계에서 일어난 일에 무관심했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건 다른 의도가 있는 게 분명해.”서태양이 말했다.인재를 선발해 위상을 높이려고 진무사가 나섰다면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었다.하지만 용호산은 전혀 관계가 없지 않은가?“그럼 무슨 의도인데요?”유장미가 되물었다.“내가 어떻게 알아? 나도 궁금하거든?”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는 서태양은 어깨를 으쓱했다.“보혁 씨는 내막에 훤하니까 화두를 꺼낸 거겠죠?”유이슬이 시선을 돌렸다.“내막까지는 아니지만 주워들은 소식이 몇 가지 있긴 해요.”염보혁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제가 알기로는 용호산 뒷산의 금지구역에 최근 신비로운 보물이 나타났는데 향후 100년 동안 무림인들의 흥망성쇠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관련이 있다고 해요.”“무슨 보물이 그렇게 대단해요?”유장미가 깜짝 놀랐다.유이슬과 서태양도 예상치 못한 듯 충격을 금치 못했다.무림인들의 흥망성쇠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만약 제 추측이 맞는다면 용원의 기와 관련된 보물일 거예요.”염보혁이 목소리를 낮추었다.순간, 유진우는 눈썹을 추켜세웠지만 이내 포커페이스로 돌아왔다.“용원의 기? 그게 뭔데요?”유장미가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용맥의 정수이기도 하죠.”유이슬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며칠 전 호룡각이 와해하면서 지하 용맥이 다섯 개의 용원의 기로 변해 세상에 뿔뿔이 흩어졌어. 소문에 의하면 용원의 기를 얻는 자는 천하무적이 되어 승승장구한다고 해.”호룡각이 무너지고 용맥이 파괴된 일이 워낙 큰 이슈였기에 자연스럽게 그녀의 귀에도 흘러 들어갔다.“진짜요? 그렇게 대단한 물건이 있어요?”유장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고서에서 관련된 기록을 본 적이 있는데 용원의 기를 얻은 자들은 세상을 주름잡는 수장이거나 천하를 다스리는 왕이었어.”유이슬이 한마디 보탰다.“맞아요.”염보혁이 대
유진우는 옆에 있는 염보혁을 흘깃 쳐다보았고, 속으로 상대방이 아무리 예뻐도 남자를 좋아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쿨럭!”염보혁은 사레가 들린 나머지 연신 기침하며 쓴웃음을 지었다.“이슬 씨, 지금 절 칭찬하는 건지 비꼬는 건지 모르겠네요.”“당연히 칭찬하는 거죠. 그런 얼굴을 보고도 어떤 남자가 마음이 흔들리지 않겠어요?”유이슬이 정색하며 말했다.“네?”염보혁은 말문이 막혔다.설령 사실일지언정 어찌 면전에서 대놓고 말할 수 있지?왠지 모르게 기분이 이상했다.“정 믿기 어려우면 태양한테 물어봐요.”유이슬이 문득 말했다.한편, 서태양은 염보혁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이름이 언급되는 순간 흠칫 놀라더니 서둘러 시선을 돌렸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은 도둑이 제 발 저린 듯싶었다.“제가요?”서태양은 난감한 얼굴로 대답했다.“선배, 장난하지 마세요. 저랑 무슨 상관이죠?”“뭔가 냄새가 나는데요?”유장미가 눈썹을 까딱하더니 눈알을 굴리며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설마 보혁 씨한테 진짜 반한 건 아니죠?”“이... 계집애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서태양이 펄쩍 뛰면서 얼굴이 벌게진 채 고래고래 외쳤다.“남자끼리 엮일 리가 없잖아.”“침착해요. 단지 농담했을 뿐이에요.”유장미가 키득거리며 말했다.“게다가 남남 커플이 진짜 사랑이죠. 어차피 안 될 건 없잖아요. 만약 사귈 생각이 있다면 진심으로 축복해줄게요. 하하하!”“입만 열면 헛소리 하네.”서태양은 짐짓 화가 난 듯 혼내려는 액션을 취했다.유장미는 잽싸게 유이슬의 등 뒤로 숨어 웃음을 터뜨렸다.갑자기 산으로 흘러가는 대화에 당사자인 염보혁은 말문을 잃었다.더욱이 유장미와 투닥거리는 와중에도 그를 흘끔거리는 서태양 때문에 어이가 없었다.단순히 농담으로 치부할 수 있었지만 몰래 훔쳐보는 탓에 괜히 기분이 세했다.“진우 씨, 이슬 씨, 다들 용호산은 처음이죠? 제가 구경 좀 시켜드릴까요? 주변에 뭐 있는지 소개해줄게요.”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염
술이 몇 잔 오가자 서서히 편하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이슬 씨, 방금 검종의 제자라고 하시던데 무림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용호산에 오른 건가요?”염보혁이 넌지시 물었다.“그런 셈이죠.”유이슬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성격이 무심한 편이라 말주변이 딱히 없었다.“사실 저희는 스승님의 명을 받고 찾아왔어요.”상대적으로 외향적인 유장미가 웃으며 말을 보탰다.“노천사가 용호산에서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소식에 세상이 발칵 뒤집혔거든요. 검종 뿐만 아니라 천하회, 주술교를 포함한 파벌에서 최정예 제자들을 파견해 출전할 예정이에요.”“그럼 검종에서는 세 분이 참석하는 건가요?”염보혁이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아니요.”유장미가 고개를 저었다.“저희는 단지 구경하러 왔을 뿐,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는 따로 있어요.”그녀와 서태양은 선천 후기에 속했고, 유이슬은 실력이 뛰어나긴 했으나 반보 마스터에 불과했다.어찌 됐든 천교에 비하면 열세에 처하는지라 검종을 대표해서 출전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따로 있다니? 설마 홍군림이에요?”염보혁의 눈썹이 까닥했다.“그건 저도 잘 몰라요.”유장미가 생긋 웃었다.“워낙 제멋대로에 신출귀몰하는 사람이라 이번 무림대회에 참가할지 아무도 몰라요. 만약 홍 선배가 진짜 출전한다면 우승은 우리 검종이 차지할 거예요.”홍군림은 천교 랭킹의 1위에 올랐을뿐더러 어린 나이에 경천 랭킹에 진입한 검종의 천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다만 성격이 까칠하고 독불장군이라 종주를 제외하고 아무도 안중에 두지 않았다.“장미야, 그건 네 생각이고.”이때 유이슬이 입을 열었다.“홍 선배가 실력이 뛰어나고 검종의 천재로서 일반 무사들이 함부로 넘볼 수 없는 존재인 건 사실이지만 너도 알다시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능력자가 한 명 더 있잖아.”“누구요?”유장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유장혁.”유이슬이 무덤덤하게 말했다.“그 사람이 홍 선배보다 실력이 더 뛰어나요?”유장미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막상막하야. 천교
“네?”염보혁의 한 마디에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한참 동안 넋을 잃었다.특히 잘 보이기 급급했던 서태양은 굳은 얼굴로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허공에 손을 들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이럴 수가?방금 목숨 걸고 구하려던 사람이 남자였다니?“남자...? 농담이죠?”붉은 옷 소녀가 염보혁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경국지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미인이 대체 어디를 봐서 남자란 말인가?푸른 옷 여인은 입만 벙긋했을 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흡혈파 망나니들이 여자가 아닌 남자한테 집적거렸다니?취향 한번 독특했다.“아니요. 진짜 남자예요.”염보혁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밖에 나가면 여자로 오해받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하지만 아무리 봐도...”붉은 옷 소녀가 말을 아꼈다.“외모 때문에 어쩔 수 없어요.”염보혁이 어깨를 으쓱하며 해탈한 듯 말했다.“아쉽네요.”붉은 옷 소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본인이 이렇게 예쁜 얼굴을 가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선배? 왜 그래요? 괜찮아요?”그녀는 아직도 넋을 잃은 서태양을 발견하고 손을 뻗어 어깨를 툭 쳤다.“응? 아, 괜찮아. 단지 조금 놀랐을 뿐이야.”서태양은 꿈에서 깨어난 듯 금세 정신을 차렸다.다만 눈빛만큼은 남자한테서 떠나지 않았다.이렇게 요염한 얼굴이 사내란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그야말로 재능 낭비이지 않은가?“저는 염보혁입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염보혁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유이슬이에요.”푸른 옷 여인이 대답했다.“저는 유장미라고 해요.”붉은 옷 소녀가 활짝 웃었다.비록 남자이지만 미모에 저절로 눈이 갔다.“서태양입니다.”서태양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방금 일어난 일에 대해 찝찝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다 같이 술이나 한잔 하시죠?”염보혁은 손을 내밀더니 소개를 이어갔다.“이쪽은 유진우 씨, 그리고 두 분은 호위무사인...”“춘화와 추월이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수염 난 사내의 몸에 피투성이 상처가 생겼다.눈 깜짝할 사이에 연신 검에 찔린 탓에 저항할 힘조차 없었다.비록 수염 난 사내가 힘은 더 셌지만 기교에서는 한참 못 미쳤다.여자의 화려한 검술은 감탄을 자아냈고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악!”수염 난 사내가 처참한 비명을 질렀다.사지가 부러진 채 바닥에 널브러진 모습은 마치 좀비를 연상케 했다.온몸은 피가 흥건했고 상처로 가득했다. 비록 목숨에 지장은 없지만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다.“형님!”패배한 우두머리를 보자 흡혈파 제자들이 충격과 분노를 금치 못했다.항상 위풍당당하고 기세등등했던 수장이 이런 몰골을 보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젠장! 감히 우리 형님을 다치게 해? 죽고 싶어 환장했어?”“저년을 없애버려!”흡혈파 제자들이 고래고래 외치며 검을 빼 들고 무시무시한 기세로 여자를 덮쳤다.“무용지물이야.”푸른 옷 여인은 콧방귀를 뀌더니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사람들 틈으로 뛰어들었다.얼마 안 되어 흡혈파 제자들은 하나같이 처참한 비명과 함께 바닥에 나뒹굴었다.팔이나 다리가 부러진 채 선혈이 낭자했다.“역시 대단하세요!”눈앞의 광경에 붉은 옷 소녀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망나니 따위가 감히 검종에게 대들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서태양이 바닥에 침을 뱉었다.“뭐... 뭐라고? 너희들이 검종 제자였어?”흡혈파 제자들은 안색이 돌변하더니 두려운 기색이 역력했다.검종은 무림인들의 세계에서 3대 문파 중 하나로 천하회와 주술교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비록 제자들이 많지 않았지만 뛰어난 인재들밖에 없다.특히 검종의 홍군림은 어린 나이에 천교 랭킹 1위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경천 랭킹에 진입하여 세계 10위의 강자가 되었다.경천 랭킹 10위권에 검종 제자가 무려 2명이나 있는데 압도적인 실력으로 3대 파벌의 수장 자리를 거머쥐었다.여기서 검종의 제자들을 만나게 될 줄은 예상치도 못했다.이럴 줄 알았더라면 애초에 무모한 짓을 벌이지 않았을 텐데.“이제야
“윽!”서태양은 이를 악물고 이마에 핏줄이 튀어나온 채 낮은 신음을 내뱉었다.이내 양손으로 검을 쥐고 온 힘을 다해 어깨를 짓누른 흡혈검을 떼어내려고 했다.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상대방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오히려 힘이 점점 더 가해졌고 무릎이 닿은 바닥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고작 이런 실력으로 감히 우리 흡혈파한테 덤비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수염 난 사내가 냉소를 지었다.“형님! 멋져요.”“역시 대단하세요.”부하들이 질세라 감탄했다.북쪽에서 흡혈파라고 하면 꽤 이름 있는 큰 파벌인지라 애송이 같은 놈이 도발할 만한 게 아니었다.“감히 내 앞에서 영웅 행세해? 넌 오늘 인생에서 가장 잘못된 결정을 내린 거야. 교훈 삼아 사지를 부러뜨려줄게!”수염 난 사내가 비열한 미소를 짓더니 흡혈검을 들어 올려 서태양의 손목을 향해 휘둘렀다.챙!검이 닿기 직전 청색 보검이 불쑥 나타나 허공에서 공격을 막아냈다.“응?”수염 난 사내가 눈살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푸른 옷 여인이 보검을 들고 싸늘한 눈빛을 보냈다.“선배?”서태양의 표정이 밝아지더니 그제야 한숨 돌렸다.조금만 늦었더라도 오른손을 잃어버렸을 텐데 그나마 선배가 제때 도움을 줘서 천만다행이었다.“괜히 참견하지 마.”수염 난 사내가 음흉하게 웃었다.“우리 후배한테 손을 대는 순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여자가 싸늘하게 말했다.“맞아! 너희들 같은 망나니는 벌을 받아 마땅하지.”이때, 붉은 옷 소녀가 검을 빼 들고 낭랑한 목소리로 외쳤다.“언니, 제가 도와줄게요.”“아니야. 넌 태양이랑 지켜보고 있어. 이런 놈들은 나 혼자서도 충분하니까.”푸른 옷 여인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어디서 나온 자신감이지?”수염 난 사내가 히죽 웃었다.“그런 왜소한 몸으로 오빠의 검을 어찌 막으려고? 차라리 무기는 내려놓고 침대에서 겨뤄보는 건 어때?”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부하들이 폭소를 터뜨렸다.곧이어 음흉한 시선으로 여자를 훑으며 멋대로 평가하
서태양이 움직이자 수염 난 사내의 뒤에서 덩치가 산만 한 남자 두 명이 튀어나왔다.두 사람은 무기로 길쭉한 검을 들고 있었다.몸체는 강한 피비린내와 함께 은은한 살기가 감돌았다. 이는 칼날이 오랫동안 선혈에 노출된 결과였다.무림인들의 세계에서는 흡혈검이라고 불렀다.다만 아쉽게도 그들이 지닌 검은 아직 미성숙 단계였고 기세가 한창 부족했다.챙! 챙!서태양이 먼저 검을 빼 들고 혼자서 두 명의 사내와 대결을 벌였다.그들은 기세등등하게 맞서 싸웠지만 힘만 강했을 뿐 행동이 굼뜬 편이었다.공격할 때마다 동작이 다소 어설펐다.반면, 서태양은 누가 봐도 고수의 가르침을 받았고 실전 경험도 풍부했다.스피드, 힘, 기술 등 모든 면에서 높은 수준에 도달했으며 어느 하나 뒤처진 데 없었다.세 사람이 공격을 주고받는 순간 실력 차이가 현저했고, 서태양은 눈 깜짝할 사이에 두 사내를 쓰러뜨렸다.그리고 응징할 겸 각자의 다리에 검을 관통했다.“흥! 고작 이런 실력으로 우쭐거려? 제 주제도 모르고.”서태양은 장검을 비스듬히 겨누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죽기 싫으면 당장 꺼져.”“좋아! 잘했어!”승리를 거머쥔 서태양을 보자 구경하던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비록 나서서 싸울 용기는 없었지만 응원의 박수를 보내는 것쯤은 충분히 가능했다.“그래도 실력은 꽤 있나 보네? 어쩐지 참견하더라니.”수염 난 사내가 눈을 가늘게 뜬 채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천천히 뽑아 들고 음침한 목소리로 협박했다.“하지만 오늘 임자를 만났지. 흡혈파를 마주친 이상 살아남을 방법은 없어.”“흡혈파는 무슨, 들어보지도 못했구먼.”서태양의 표정은 기고만장했다.“하! 괜찮아. 네 피를 전부 흡수하고 나면 우리가 왜 흡혈파라고 불리는지 알 거야.”수염 난 사내가 이죽거리더니 두말없이 공격을 개시했다.그가 발을 내딛자마자 맹렬한 기세가 솟구쳤고, 손에 든 흡혈검은 핏빛을 뿜어내며 곧장 서태양을 덮쳤다.앞서 상대했던 부하들과 달리 수염 난 사내의 흡혈검은 살기로 가득했다
아름다운 얼굴은 쉽게 화를 부르는 법이다.염보혁은 남자였지만 여자보다도 더 아름다운 요염한 얼굴을 지녔다.길을 나서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도리가 없었고 지금처럼 깡패 무리와 마주할 때면 번번이 시비에 휘말리기 일쑤였다.유진우는 모른 척하며 조용히 술잔을 기울였다.“어이, 이쁜이. 저런 나약한 놈이랑 술 마셔서 뭐 하겠어? 차라리 우리랑 한잔하지, 아주 즐겁게 해줄 테니 말이야!”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사내가 염보혁의 턱을 손가락으로 건드리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이 손 치우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 후회하게 될 테니까.”염보혁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차가운 눈빛을 보냈다.어여쁜 외모 탓에 남녀를 불문하고 다가오는 사람이 많았지만 이처럼 대놓고 희롱하는 경우는 드물었다.“오, 이쁜이가 화를 내네?”수염 난 사내는 턱을 문지르며 비웃었다.“솔직히 말해서 화난 얼굴이 더 매력적인데?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더욱 감탄스럽군.”그의 말에 뒤따르던 무리들이 일제히 폭소를 터뜨렸다.유진우는 피식 웃으며 술잔을 내려놓았다. 눈앞의 이 사내는 제법 능숙하게 수작을 부렸다.염보혁이 남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셋을 센다. 그 안에 사라지지 않으면 내가 직접 손봐주지.”염보혁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손 본다고? 하하하!”수염 난 사내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이거 제법 앙칼진데?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위층으로 올라가서 천천히 우리를 손 봐줘, 어때?”“맞아, 맞아! 방도 넉넉하니 차례대로 너랑 놀아줄 수 있다고!”그의 동료들도 시시덕거리며 말을 보탰다.“셋.”염보혁은 더 이상 말을 섞을 필요도 없다는 듯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이쁜이, 괜히 버티지 말고 그냥 올라가자. 내가 아주 다정하게 대해줄 테니 말이야.”수염 난 사내는 입을 커다랗게 벌려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낄낄댔다.“둘.”염보혁은 여전히 냉랭한 표정을 유지했다.“싫다면 어쩔 수 없지. 내가 직접 안아 올라가는 수밖에.”그가 손을
유진우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보혁 씨가 이렇게까지 많은 걸 알고 있을 줄은 몰랐군요. 제 생각엔 장일청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 것 같은데요.”용호산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염보혁이 이렇게나 많이 알고 있다니, 이건 그가 평범한 인물이 아님을 증명하는 셈이었다.“진우 씨께서 과찬해 주시는군요. 저는 그저 사람들 사이에 끼어 듣는 걸 좋아해서 호기심에 이런저런 소문을 알아본 것뿐입니다. 사실 별다른 능력은 없어요.”염보혁은 겸손하게 웃으며 덧붙였다.“하지만 만약 진우 씨께서 무림대회에 참가하신다면 전 온 힘을 다해 진우 씨가 우승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보혁 씨, 저를 너무 과대평가하시는군요.”유진우는 담담하게 말했다.“전 그저 세상 구경이나 해볼 겸 참가하는 것뿐입니다. 우승 같은 건 감히 꿈도 꾸지 않아요. 애초에 제 실력으로 어떻게 그 내로라하는 강자들과 겨룰 수 있겠습니까?”“진우 씨는 너무 겸손하시군요. 저는 사람을 보는 눈이 정확합니다.”염보혁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진우 씨는 외모도 준수하고 기품 또한 비범하시죠. 멀리서 봐도 강렬한 기세가 느껴졌습니다. 비록 진우 씨의 신분은 알 수 없지만 이것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진우 씨는 절대 범상한 인물이 아닙니다!”“보혁 씨께서 저를 이렇게까지 칭찬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유진우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평범한 출신에 보잘것없는 실력을 갖췄을 뿐입니다. 아마 실망할 겁니다.”“하하, 괜찮습니다. 커다란 황금 잉어가 어찌 작은 연못에서만 머물겠습니까? 바람과 구름을 만나면 반드시 용이 되어 날아오를 것입니다. 지금 진우 씨의 명성이 미미할지라도 저는 믿습니다. 언젠가 반드시 하늘 높이 날아오를 날이 올 거라고!”염보혁은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말했다. 그 눈빛은 절대적인 믿음을 담고 있는 듯했다.유진우는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이 사람, 도대체 뭐지? 분명 오늘 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