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돌아가는 길에 유진우는 차를 몰고, 조선미는 조수석에 앉고 김정아와 홍소현은 뒷좌석에 앉아있었다.“소현아, 앞으로 누가 널 괴롭히면 곧바로 이모한테 말해. 이모가 대신 혼내줄게. 알겠지?”조선미는 물티슈로 소현이의 얼굴에 묻은 얼룩을 닦아주며 말했다.“네. 알겠어요.”홍소현이 고개를 끄덕였다.“소현아, 내일부터 아저씨가 싸움 가르쳐줄까?”유진우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누가 괴롭히면 너도 맞받아쳐. 그리고 누굴 혼내고 싶으면 때려!”“무슨 막말을 하는 거예요?”조선미가 얼굴을 찌푸렸다.“그 힘든 걸 왜 우리 소현이한테 시키려고 해요? 그리고 어떤 여자아이가 맨날 싸움만 하고 다닌대요? 피아노나 그림, 이런 걸 배우면 얼마나 좋아요.”“할 줄 아는 게 너무 많은 것도 피곤해요. 격투기가 좋을 것 같은데, 위험에 처하면 자신을 보호할 수도 있고.”유진우가 설명했다.싸움 기술은 어릴 때부터 익혀야 한다.힘들긴 하겠지만 앞으로 큰 도움이 될 것이다.“소현아, 네 생각은 어때?”조선미가 고개를 돌리고 물었다.무엇보다 수양딸의 의견을 묻는 게 제일 중요하다.“전 이모 말 들을 거예요.”소현이가 영리하게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하하하... 알았어. 네가 조금만 더 크면 이모가 다 알아봐 줄게.”조선미는 사랑이 가득 담긴 얼굴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화기애애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그들의 모습에 김정아의 눈시울이 붉어졌다.지금까지 유진우와 조선미가 어떻게 행동했는지 그녀는 모두 눈에 담았다. 어찌 됐든 이렇듯 훌륭한 양부모가 생겼으니, 앞으로 수현이의 미래는 분명 밝을 것이다.“여보, 이왕 나왔는데 외식하고 들어갈까요?”조선미가 소현에게도 물었다.“소현아, 뭐 먹고 싶어?”“음... 감자튀김과 햄버거가 먹고 싶어요. 먹어도 돼요?”홍소현이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이며 물었다.“당연하지. 오늘 이모가 배불리 먹게 해줄게.”조선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앗싸! 감자튀김 햄버거 먹는다!”홍소현은 너무 신나 환호를
김정아는 얼굴이 피투성이 된 채 손발 여러 곳이 골절되었고 심하게 부딪힌 배는 양수가 터져 시뻘건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형수님! 소현아!”유진우는 목이 터지라 울부짖었지만 이미 의식을 잃은 두 사람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망설임 없이 차에서 내린 그는 ‘쾅’ 소리와 함께 찌그러진 문을 잡아당기더니 곧바로 김정아와 홍소현을 끌어안았다.심각한 부상을 입은 두 사람을 보며 유진우는 목숨이라도 살려야겠다는 생각에 재빨리 은침을 꺼내 응급조치를 시작했다.“대표님!”이때 강린파 사람들이 부랴부랴 달려왔다.그들은 유진우가 조선미를 위해 마련한 경호원으로 지금껏 비밀리에 그녀를 보호해 왔기에 교통사고 현장을 목격한 뒤 곧바로 차에서 내렸다.“빨리! 지금 당장 병원으로 이송해!”상황을 진정시킨 후, 그는 김정아와 홍소현을 차에 태웠고 강린파 사람들에게 얼른 두 사람을 병원으로 보내 치료를 받도록 지시했다.그리고 반대편 문을 열어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멍해 있는 조선미를 끌어안았다.“소현이... 소현이는 괜찮아요?”조선미는 허약한 목소리로 물었다.“조금 다치긴 했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으니까 걱정하지 말아요.”유진우는 은침을 놓으며 그녀를 위로했다.“괜찮으면 됐어요. 다행이네요.”그녀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대표님! 운전기사 잡았습니다. 바로 이 사람이에요.”이때 강린파에서 대머리 운전기사를 끌면서 다가왔다.“대표님, 선미 씨, 정말 죄송해요. 브레이크가 갑자기 고장 나는 바람에 제어가 안 됐네요. 저도 어쩔 수가 없었어요.”대머리 운전기사는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푸념을 늘어놓았다.“브레이크가 고장 났다고요?”조선미는 표정이 점점 굳어지더니 곧바로 손을 들어 운전기사의 뺨을 내리쳤다.“브레이크가 고장 났다면서 가속 페달은 왜 밟은 거죠? 누가 봐도 우릴 치려고 일부러 밟은 거잖아요!”“선미 씨, 말씀이 참 지나치시네요.”대머리 운전기사는 화끈거리는 얼굴을 만지며 야비한 웃음을 지었다.“사람은 위급한 상황에 처하면
그날 밤, 동강 병원의 어느 병실 안.유진우와 조선미는 조용히 침대 옆에 서서 잠든 홍소현을 바라봤고 왠지 모르게 가슴이 미어졌다.다행히 수술로 골절된 부위는 다시 이어졌지만, 몸 곳곳에는 붕대가 칭칭 감겨있었다.체내의 어혈도 유진우의 은침 덕분에 체외로 배출되었다.비록 위험에서 벗어났지만, 교통사고로 인한 공포감과 충격은 다섯 살짜리 아이에게 여전히 큰 상처로 남아 있을 것이다.“걱정하지 말아요. 소현이 괜찮을 거예요.”유진우는 조선미의 손을 잡으며 위로했다.“아이한테까지 손을 대다니... 정말 짐승만도 못한 놈들이네요.”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조선미는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이 일은 제가 끝까지 파헤칠 생각이에요. 배후에 누가 있든 절대 넘어가지 않을 거니까 걱정하지 말아요.”유진우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조선미와 홍소현의 부상은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던 본능을 건드렸고 주제를 망각한 채 선을 넘는 상대에게는 자비를 베풀 생각조차 없었다.“선미야!”“언니!”이때 조군수와 조아영이 부랴부랴 달려왔다.두 사람은 머리에 붕대를 감고 있는 조선미를 보더니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재빨리 상황을 물었다.“아빠, 저 괜찮아요. 피부가 조금 까졌을 뿐이에요.”조선미는 일부러 여유로운 척 웃으며 답했다.“괜찮으면 됐어. 그러면 된 거지.”조군수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교통사고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아니? 별일 없으니 망정이지. 정말 다행이야.”“언니,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게 말이 돼? 설마 음주 운전 한 건 아니지?”조아영은 은근슬쩍 떠보며 물었다.“우리 문제가 아니라 누군가 일부러 계획하고 저지른 일이야.”조선미는 숨기지 않고 간단히 경위를 말했다.이를 들은 조군수와 조아영은 하나같이 눈살을 찌푸렸다.“대낮에 사람을 해칠 생각을 하다니 정말 미쳤구나. 누구인지는 알아냈어?”“지금 조사중이에요. 내일이면 결과가 나올 수 있어요.”유진우가 답했다.“누가 됐든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해요.”조군수
“보물 지도 관련해서는 네 아버지랑 큰아버지께도 설명드렸다. 이미 몇 년 전에 도둑맞아서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도 몰라.”조군수가 답했다.“삼촌, 이러시면 곤란해요.”조일명은 옆에 놓인 바나나 한 개를 쥐더니 천천히 껍질을 벗기기 시작했다.“삼촌이 보물 지도를 목숨보다 소중히 여긴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인데 그걸 잃어버렸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설마 비밀리에 숨겨놓고 독식하려는 건 아니죠?”“아무 증거도 없이 날 의심하는 거니?”“들키고 싶지 않은 일은 처음부터 저지르면 안 돼요. 진실은 언젠가 드러나기 마련이니까요.”미간이 잔뜩 찌푸려진 조군수와 달리 조일명은 여유롭게 바나나를 깨물며 입가에 웃음을 지었다.“그간의 정이 있어서 충고하는데... 순순히 내놓는 게 좋을 거예요. 오늘 같은 일 두 번당하고 싶지는 않잖아요?”이 말이 나오자마자 여러 사람의 표정이 바뀌었다.특히 조선미는 순간 화가 치밀어 올라 망설일 틈도 없이 달려가서 그의 멱살을 잡았다.“방금 뭐라고 했어? 오늘 교통사고, 설마 네가 한 짓이야?”“장난 좀 친 건데 왜 이렇게 흥분했어?”조일명은 야비한 웃음을 지으며 태연하게 바나나를 먹었다.“이 짐승만도 못한 인간아! 선미는 네 동생이잖아. 어떻게 동생한테 그런 짓을 저지를 수가 있니?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야?”조군수는 화를 버럭 내며 말했다.“삼촌, 농담이에요. 그냥 장난친 건데 다들 왜 이렇게 예민해요?”줄곧 웃으며 말을 이어가던 조일명은 순간 표정이 돌변하더니 정색했다.“물론 보물 지도를 내놓지 않는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죠?”“지금 날 협박하는 거니?”조군수는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다.“제가 어떻게 감히 그러겠어요. 그냥 충고라고 생각해 주시면 좋겠네요.”조일명은 입을 씰룩이며 말했다.“삼촌, 그동안 많은 사람의 원수가 된 건 아시죠? 조씨 가문이라는 큰 버팀목이 없어졌으니, 앞으로 사는 게 훨씬 힘들어질 거예요. 그걸 감안해서 잘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어요.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말을 마친
유진우를 포함한 사람들은 이 소식을 듣자마자 서둘러 수술실을 향해 달려갔다.마침 혼수상태인 김정아가 실려 나왔고 그녀의 옆에는 흰 천으로 가려진 무언가도 함께 있었다.유진우는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흰 천을 젖혀보았고 아니나 다를까 안에는 아기의 시신이 들어있었다.두 눈이 빨갛게 충혈된 유진우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분노가 가슴속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오르며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김정아와 홍소현을 지켜주겠다고 홍길수와 약속했다.그러나 교통사고로 인해 모녀가 크게 다쳐 병원에 입원한 것도 모자라 배 속에 있던 아이까지 잃었으니 그 충격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죄책감을 밀려왔지만 분노가 모든 걸 덮어버렸다.“어떻게 이럴 수가 있죠? 올 때까지만 해도 멀쩡했잖아요? 말도 안 돼...”조선미는 이 상황이 믿기지 않은 듯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로 현실을 부정했다.임신 9개월이면 태아도 자리를 잡아 곧 출산을 앞둔 상태였다.금방이라도 울부짖으며 세상의 빛을 맞이할 작은 생명체가 이렇게 허무하게 세상을 떠났다니?“죄송합니다. 최선을 다했습니다.”의사 한 명이 안타까워하며 입을 열었다.“태아는 교통사고 당시에 활력징후를 잃은 거로 보입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정아 씨의 목숨을 지킨 것만으로도 천운입니다.”“내 아이... 우리 아가...”어느새 눈을 뜬 김정아는 의사의 말에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몸이 너무 허약해져 울 힘조차 없었고 고통과 절망으로 가득 찬 그녀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가슴이 미어졌다.“미안해요... 괜히 저희 때문에...”조선미는 눈시울이 붉어진 채로 그녀의 손을 잡았다.이 교통사고는 조선미를 겨냥한 게 틀림없었기에 김정아와 홍소현은 억울하게 연루된 것이다.그러니 그녀는 아이의 죽음에 대한 책임이 있다.“소현... 소현이는요?”순간 정신을 차린 김정아는 조선미의 손을 힘껏 잡으며 물었다.“소현이는 괜찮아요. 며칠 뒤면 퇴원해도 되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위로의 말을 듣고서야 김정아는 안
레드카펫은 별장 입구부터 거실까지 몇백 미터가 넘는 길이로 깔려있었다.오늘은 조군해가 조씨 가문의 수장을 맡는 자리로, 예전에는 내부적으로 인정을 받았다면 오늘은 공식적으로 대외에 발표하는 날이다.이에 조씨 가문은 특별히 손님을 초대하여 축하 파티를 열었다.조씨 가문과 가깝게 지내거나 그들과 친해지고 싶어 아부하는 사람들이 잇달아 방문하여 인사를 건넸다.가문을 이끄는 수장이 바뀌었으니 너 나 할 것 없이 찾아와 축하를 건네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그 시각, 회의실.조군해를 비롯한 조씨 가문의 권력자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다만 달라진 게 있다면 예전에 비해 인원이 많이 줄었다는 것이다.여러 차례의 사건으로 핵심 구성원의 절반이 쫓겨났기에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은 모두 조군해의 측근이라고 해도 무방하다.“오늘부터 형님은 조씨 가문의 수장이네요. 축하드립니다.”조군표는 아부를 떨며 인사를 건넸다.“형님처럼 현명하고 재능있는 사람이 수장이 되는 게 가문의 발전에 훨씬 이로울 겁니다. 전략적인 분이시니 앞으로 조씨 가문은 더 잘될 일밖에 없겠네요.”“맞아요! 전 조씨 가문이 더욱 번영하리라 굳게 믿습니다.”“당연한 것 아닙니까! 하하하.”조씨 가문 사람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하며 분분히 치켜세우기 시작했다.한바탕 아첨으로 기분이 좋아진 조군해는 싱글벙글 웃으며 거들먹거렸다.뭔가를 이끌어가는 리더가 된다는 게 위엄 넘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만인의 칭찬과 존중을 받으니 그 기분은 짜릿하기 그지없었다.“제가 이 자리에 앉게 된 건 여기 계신 모든 분의 공이 크니 추후에 섭섭하지 않을 만큼 두둑한 보상을 드리도록 하죠.”조군해는 호기롭게 웃으며 말했다.“감사합니다!”사람들은 기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잇달아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큰아버지가 수장이 된 것에 더불어 윤지 누나가 곧 선우 가문에 시집을 가다니, 이거야말로 겹경사 아니겠어요?”조일명은 웃으며 입을 열었다.“맞는 말이야.”조군표도 고개를 끄덕였다.“
“X발, 이게 뭐야!”사람 머리가 굴러나오자 모두 깜짝 놀라 무의식중에 뿔뿔이 흩어졌다.상황을 파악하고선 하나같이 경악을 금치 못했고 좋은 날에 이딴걸 선물로 보냈다는 건 일부러 문제를 일으키려는 의도가 다분했다.아니, 문제를 일으키는 게 아니라 단지 한방 먹이고 싶어 도발하는 걸 수도 있다.“누구야! 누가 감히 이딴걸 보내?”좋았던 기분마저 산산조각난 조군해는 버럭 화를 냈다.“개자식이, 넌 일 처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조군표는 화가 치밀어 올라 집사의 뺨을 후려갈겼다.조씨 가문의 집사로서 물건을 확인하지도 않고 아무렇게나 들여보내다니... 만약 그 안에 폭탄이라도 담겼으면 다 같이 죽는 거나 다름없다.“전... 그냥 평범한 하객인 줄 알았어요. 정말 이럴 줄은 아예 몰랐어요.”집사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발이 손이 되도록 빌었다.활짝 웃는 얼굴로 선물 상자를 건넸으니 당연히 아부하러 온 손님인 줄 알았는데, 그 안에 사람 머리가 있을 것이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X발, 왜 멍하니 있어? 당장 가서 조사해!”조군표가 집사를 발로 차자, 그는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도망치듯 자리를 떠났다.“저... 죽은 사람이 누군지 알아요. 제 측근이에요.”이때 조일명이 잔뜩 어두워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처음 머리를 봤을 때는 겁이 났지만, 어딘가 낯이 익은 모습에 자세히 보니 다름 아닌 그의 부관이었다.“아는 사람이라고?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조군표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어제 일 좀 봐줬는데 들켜서 보복당한 모양이에요.”조일명은 생각에 잠긴 듯 눈을 가늘게 뜨며 답했다.불과 얼마 전 교통사고를 주선한 사람이 바로 이 부관이었는데, 하룻밤 만에 사망했다.예상이 맞다면 이건 조선미가 벌인 일이 틀림없다.“그러니까 이 일은 너 때문이라는 거네?”조군표는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아마도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조일명은 어깨를 으쓱이며 담담하게 말했다.“이런 작은 일은 깨끗하게 처리할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만
유진우는 대충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감사합니다.”파란 옷을 입은 여자가 예의 바른 미소를 지은 뒤 같이 온 친구들을 불러 함께 앉았다.유진우의 수수한 옷차림은 친근함을 자아냈고 테이블에 빈자리가 가장 많아 어쩔 수 없이 다들 이쪽으로 다가왔다.툭 까놓고 말하면 이 장소에서 유진우가 가장 접근하기 쉽고 부담 없게 생겼기 때문이다.“안녕하세요. 전 서인아예요. 여긴 연지유, 그리고 여긴 진성혁이에요. 그쪽은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서인아는 모두를 소개한 뒤 솔선해서 질문을 했다. 보아하니 성격이 활발한 편인듯하다.“이런 자리에서 굳이 이름 교환할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유진우는 싸늘하게 말했다.그는 사람을 죽이러 온 것이지 친구를 사귀러 온 것이 아니다.“음...”서인아는 멋쩍은 듯 표정이 굳어졌다.“이봐요, 당신이 뭔데 이러는 거죠?”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연지유는 참다못해 불쾌한 표정으로 말했다.“이름을 물어본 게 그렇게 큰일이에요? 당신이 뭐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줄 아나 봐요? 옷차림 보니까 돈도 없는 것 같은데 도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허세를 부리는 거죠?”“우리를 알게 된 걸 영광으로 생각해도 모자랄 판에 어이가 없네.”진성혁 역시 경멸하는 기색을 보였다.“됐어. 너희들도 그만해.”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서인아는 재빨리 상황을 수습하기 시작했다.“인아야, 저런 찌질한 놈한테는 예의를 차릴 필요 없어.”연지유는 팔짱을 낀 채 매우 거만하게 말했다.“왜 당신 곁에 아무도 안 앉는지 알아요? 그쪽이랑 엮이는 게 불쾌하거든요. 누가 봐도 격 떨어지잖아요?”절세의 미녀가 먼저 말을 걸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는 유진우의 태도가 그들은 이해되지 않았다.“인아야, 네가 왜 저런 사람을 상대해? 우린 수십조의 자산을 가진 사람이라고. 저런 인간이랑은 노는 물이 다르잖아.”진성혁은 명품 넥타이를 단정하게 정리하더니 내친김에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과시하기 시작했다.“여기 시계 보이죠? 1억 6천만 원이에요. 당신 같은
“아니에요?”유장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용호산은 여태껏 무림인의 세계에서 일어난 일에 무관심했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건 다른 의도가 있는 게 분명해.”서태양이 말했다.인재를 선발해 위상을 높이려고 진무사가 나섰다면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었다.하지만 용호산은 전혀 관계가 없지 않은가?“그럼 무슨 의도인데요?”유장미가 되물었다.“내가 어떻게 알아? 나도 궁금하거든?”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는 서태양은 어깨를 으쓱했다.“보혁 씨는 내막에 훤하니까 화두를 꺼낸 거겠죠?”유이슬이 시선을 돌렸다.“내막까지는 아니지만 주워들은 소식이 몇 가지 있긴 해요.”염보혁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제가 알기로는 용호산 뒷산의 금지구역에 최근 신비로운 보물이 나타났는데 향후 100년 동안 무림인들의 흥망성쇠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관련이 있다고 해요.”“무슨 보물이 그렇게 대단해요?”유장미가 깜짝 놀랐다.유이슬과 서태양도 예상치 못한 듯 충격을 금치 못했다.무림인들의 흥망성쇠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만약 제 추측이 맞는다면 용원의 기와 관련된 보물일 거예요.”염보혁이 목소리를 낮추었다.순간, 유진우는 눈썹을 추켜세웠지만 이내 포커페이스로 돌아왔다.“용원의 기? 그게 뭔데요?”유장미가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용맥의 정수이기도 하죠.”유이슬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며칠 전 호룡각이 와해하면서 지하 용맥이 다섯 개의 용원의 기로 변해 세상에 뿔뿔이 흩어졌어. 소문에 의하면 용원의 기를 얻는 자는 천하무적이 되어 승승장구한다고 해.”호룡각이 무너지고 용맥이 파괴된 일이 워낙 큰 이슈였기에 자연스럽게 그녀의 귀에도 흘러 들어갔다.“진짜요? 그렇게 대단한 물건이 있어요?”유장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고서에서 관련된 기록을 본 적이 있는데 용원의 기를 얻은 자들은 세상을 주름잡는 수장이거나 천하를 다스리는 왕이었어.”유이슬이 한마디 보탰다.“맞아요.”염보혁이 대
유진우는 옆에 있는 염보혁을 흘깃 쳐다보았고, 속으로 상대방이 아무리 예뻐도 남자를 좋아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쿨럭!”염보혁은 사레가 들린 나머지 연신 기침하며 쓴웃음을 지었다.“이슬 씨, 지금 절 칭찬하는 건지 비꼬는 건지 모르겠네요.”“당연히 칭찬하는 거죠. 그런 얼굴을 보고도 어떤 남자가 마음이 흔들리지 않겠어요?”유이슬이 정색하며 말했다.“네?”염보혁은 말문이 막혔다.설령 사실일지언정 어찌 면전에서 대놓고 말할 수 있지?왠지 모르게 기분이 이상했다.“정 믿기 어려우면 태양한테 물어봐요.”유이슬이 문득 말했다.한편, 서태양은 염보혁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이름이 언급되는 순간 흠칫 놀라더니 서둘러 시선을 돌렸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은 도둑이 제 발 저린 듯싶었다.“제가요?”서태양은 난감한 얼굴로 대답했다.“선배, 장난하지 마세요. 저랑 무슨 상관이죠?”“뭔가 냄새가 나는데요?”유장미가 눈썹을 까딱하더니 눈알을 굴리며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설마 보혁 씨한테 진짜 반한 건 아니죠?”“이... 계집애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서태양이 펄쩍 뛰면서 얼굴이 벌게진 채 고래고래 외쳤다.“남자끼리 엮일 리가 없잖아.”“침착해요. 단지 농담했을 뿐이에요.”유장미가 키득거리며 말했다.“게다가 남남 커플이 진짜 사랑이죠. 어차피 안 될 건 없잖아요. 만약 사귈 생각이 있다면 진심으로 축복해줄게요. 하하하!”“입만 열면 헛소리 하네.”서태양은 짐짓 화가 난 듯 혼내려는 액션을 취했다.유장미는 잽싸게 유이슬의 등 뒤로 숨어 웃음을 터뜨렸다.갑자기 산으로 흘러가는 대화에 당사자인 염보혁은 말문을 잃었다.더욱이 유장미와 투닥거리는 와중에도 그를 흘끔거리는 서태양 때문에 어이가 없었다.단순히 농담으로 치부할 수 있었지만 몰래 훔쳐보는 탓에 괜히 기분이 세했다.“진우 씨, 이슬 씨, 다들 용호산은 처음이죠? 제가 구경 좀 시켜드릴까요? 주변에 뭐 있는지 소개해줄게요.”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염
술이 몇 잔 오가자 서서히 편하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이슬 씨, 방금 검종의 제자라고 하시던데 무림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용호산에 오른 건가요?”염보혁이 넌지시 물었다.“그런 셈이죠.”유이슬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성격이 무심한 편이라 말주변이 딱히 없었다.“사실 저희는 스승님의 명을 받고 찾아왔어요.”상대적으로 외향적인 유장미가 웃으며 말을 보탰다.“노천사가 용호산에서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소식에 세상이 발칵 뒤집혔거든요. 검종 뿐만 아니라 천하회, 주술교를 포함한 파벌에서 최정예 제자들을 파견해 출전할 예정이에요.”“그럼 검종에서는 세 분이 참석하는 건가요?”염보혁이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아니요.”유장미가 고개를 저었다.“저희는 단지 구경하러 왔을 뿐,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는 따로 있어요.”그녀와 서태양은 선천 후기에 속했고, 유이슬은 실력이 뛰어나긴 했으나 반보 마스터에 불과했다.어찌 됐든 천교에 비하면 열세에 처하는지라 검종을 대표해서 출전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따로 있다니? 설마 홍군림이에요?”염보혁의 눈썹이 까닥했다.“그건 저도 잘 몰라요.”유장미가 생긋 웃었다.“워낙 제멋대로에 신출귀몰하는 사람이라 이번 무림대회에 참가할지 아무도 몰라요. 만약 홍 선배가 진짜 출전한다면 우승은 우리 검종이 차지할 거예요.”홍군림은 천교 랭킹의 1위에 올랐을뿐더러 어린 나이에 경천 랭킹에 진입한 검종의 천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다만 성격이 까칠하고 독불장군이라 종주를 제외하고 아무도 안중에 두지 않았다.“장미야, 그건 네 생각이고.”이때 유이슬이 입을 열었다.“홍 선배가 실력이 뛰어나고 검종의 천재로서 일반 무사들이 함부로 넘볼 수 없는 존재인 건 사실이지만 너도 알다시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능력자가 한 명 더 있잖아.”“누구요?”유장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유장혁.”유이슬이 무덤덤하게 말했다.“그 사람이 홍 선배보다 실력이 더 뛰어나요?”유장미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막상막하야. 천교
“네?”염보혁의 한 마디에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한참 동안 넋을 잃었다.특히 잘 보이기 급급했던 서태양은 굳은 얼굴로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허공에 손을 들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이럴 수가?방금 목숨 걸고 구하려던 사람이 남자였다니?“남자...? 농담이죠?”붉은 옷 소녀가 염보혁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경국지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미인이 대체 어디를 봐서 남자란 말인가?푸른 옷 여인은 입만 벙긋했을 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흡혈파 망나니들이 여자가 아닌 남자한테 집적거렸다니?취향 한번 독특했다.“아니요. 진짜 남자예요.”염보혁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밖에 나가면 여자로 오해받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하지만 아무리 봐도...”붉은 옷 소녀가 말을 아꼈다.“외모 때문에 어쩔 수 없어요.”염보혁이 어깨를 으쓱하며 해탈한 듯 말했다.“아쉽네요.”붉은 옷 소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본인이 이렇게 예쁜 얼굴을 가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선배? 왜 그래요? 괜찮아요?”그녀는 아직도 넋을 잃은 서태양을 발견하고 손을 뻗어 어깨를 툭 쳤다.“응? 아, 괜찮아. 단지 조금 놀랐을 뿐이야.”서태양은 꿈에서 깨어난 듯 금세 정신을 차렸다.다만 눈빛만큼은 남자한테서 떠나지 않았다.이렇게 요염한 얼굴이 사내란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그야말로 재능 낭비이지 않은가?“저는 염보혁입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염보혁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유이슬이에요.”푸른 옷 여인이 대답했다.“저는 유장미라고 해요.”붉은 옷 소녀가 활짝 웃었다.비록 남자이지만 미모에 저절로 눈이 갔다.“서태양입니다.”서태양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방금 일어난 일에 대해 찝찝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다 같이 술이나 한잔 하시죠?”염보혁은 손을 내밀더니 소개를 이어갔다.“이쪽은 유진우 씨, 그리고 두 분은 호위무사인...”“춘화와 추월이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수염 난 사내의 몸에 피투성이 상처가 생겼다.눈 깜짝할 사이에 연신 검에 찔린 탓에 저항할 힘조차 없었다.비록 수염 난 사내가 힘은 더 셌지만 기교에서는 한참 못 미쳤다.여자의 화려한 검술은 감탄을 자아냈고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악!”수염 난 사내가 처참한 비명을 질렀다.사지가 부러진 채 바닥에 널브러진 모습은 마치 좀비를 연상케 했다.온몸은 피가 흥건했고 상처로 가득했다. 비록 목숨에 지장은 없지만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다.“형님!”패배한 우두머리를 보자 흡혈파 제자들이 충격과 분노를 금치 못했다.항상 위풍당당하고 기세등등했던 수장이 이런 몰골을 보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젠장! 감히 우리 형님을 다치게 해? 죽고 싶어 환장했어?”“저년을 없애버려!”흡혈파 제자들이 고래고래 외치며 검을 빼 들고 무시무시한 기세로 여자를 덮쳤다.“무용지물이야.”푸른 옷 여인은 콧방귀를 뀌더니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사람들 틈으로 뛰어들었다.얼마 안 되어 흡혈파 제자들은 하나같이 처참한 비명과 함께 바닥에 나뒹굴었다.팔이나 다리가 부러진 채 선혈이 낭자했다.“역시 대단하세요!”눈앞의 광경에 붉은 옷 소녀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망나니 따위가 감히 검종에게 대들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서태양이 바닥에 침을 뱉었다.“뭐... 뭐라고? 너희들이 검종 제자였어?”흡혈파 제자들은 안색이 돌변하더니 두려운 기색이 역력했다.검종은 무림인들의 세계에서 3대 문파 중 하나로 천하회와 주술교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비록 제자들이 많지 않았지만 뛰어난 인재들밖에 없다.특히 검종의 홍군림은 어린 나이에 천교 랭킹 1위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경천 랭킹에 진입하여 세계 10위의 강자가 되었다.경천 랭킹 10위권에 검종 제자가 무려 2명이나 있는데 압도적인 실력으로 3대 파벌의 수장 자리를 거머쥐었다.여기서 검종의 제자들을 만나게 될 줄은 예상치도 못했다.이럴 줄 알았더라면 애초에 무모한 짓을 벌이지 않았을 텐데.“이제야
“윽!”서태양은 이를 악물고 이마에 핏줄이 튀어나온 채 낮은 신음을 내뱉었다.이내 양손으로 검을 쥐고 온 힘을 다해 어깨를 짓누른 흡혈검을 떼어내려고 했다.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상대방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오히려 힘이 점점 더 가해졌고 무릎이 닿은 바닥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고작 이런 실력으로 감히 우리 흡혈파한테 덤비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수염 난 사내가 냉소를 지었다.“형님! 멋져요.”“역시 대단하세요.”부하들이 질세라 감탄했다.북쪽에서 흡혈파라고 하면 꽤 이름 있는 큰 파벌인지라 애송이 같은 놈이 도발할 만한 게 아니었다.“감히 내 앞에서 영웅 행세해? 넌 오늘 인생에서 가장 잘못된 결정을 내린 거야. 교훈 삼아 사지를 부러뜨려줄게!”수염 난 사내가 비열한 미소를 짓더니 흡혈검을 들어 올려 서태양의 손목을 향해 휘둘렀다.챙!검이 닿기 직전 청색 보검이 불쑥 나타나 허공에서 공격을 막아냈다.“응?”수염 난 사내가 눈살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푸른 옷 여인이 보검을 들고 싸늘한 눈빛을 보냈다.“선배?”서태양의 표정이 밝아지더니 그제야 한숨 돌렸다.조금만 늦었더라도 오른손을 잃어버렸을 텐데 그나마 선배가 제때 도움을 줘서 천만다행이었다.“괜히 참견하지 마.”수염 난 사내가 음흉하게 웃었다.“우리 후배한테 손을 대는 순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여자가 싸늘하게 말했다.“맞아! 너희들 같은 망나니는 벌을 받아 마땅하지.”이때, 붉은 옷 소녀가 검을 빼 들고 낭랑한 목소리로 외쳤다.“언니, 제가 도와줄게요.”“아니야. 넌 태양이랑 지켜보고 있어. 이런 놈들은 나 혼자서도 충분하니까.”푸른 옷 여인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어디서 나온 자신감이지?”수염 난 사내가 히죽 웃었다.“그런 왜소한 몸으로 오빠의 검을 어찌 막으려고? 차라리 무기는 내려놓고 침대에서 겨뤄보는 건 어때?”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부하들이 폭소를 터뜨렸다.곧이어 음흉한 시선으로 여자를 훑으며 멋대로 평가하
서태양이 움직이자 수염 난 사내의 뒤에서 덩치가 산만 한 남자 두 명이 튀어나왔다.두 사람은 무기로 길쭉한 검을 들고 있었다.몸체는 강한 피비린내와 함께 은은한 살기가 감돌았다. 이는 칼날이 오랫동안 선혈에 노출된 결과였다.무림인들의 세계에서는 흡혈검이라고 불렀다.다만 아쉽게도 그들이 지닌 검은 아직 미성숙 단계였고 기세가 한창 부족했다.챙! 챙!서태양이 먼저 검을 빼 들고 혼자서 두 명의 사내와 대결을 벌였다.그들은 기세등등하게 맞서 싸웠지만 힘만 강했을 뿐 행동이 굼뜬 편이었다.공격할 때마다 동작이 다소 어설펐다.반면, 서태양은 누가 봐도 고수의 가르침을 받았고 실전 경험도 풍부했다.스피드, 힘, 기술 등 모든 면에서 높은 수준에 도달했으며 어느 하나 뒤처진 데 없었다.세 사람이 공격을 주고받는 순간 실력 차이가 현저했고, 서태양은 눈 깜짝할 사이에 두 사내를 쓰러뜨렸다.그리고 응징할 겸 각자의 다리에 검을 관통했다.“흥! 고작 이런 실력으로 우쭐거려? 제 주제도 모르고.”서태양은 장검을 비스듬히 겨누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죽기 싫으면 당장 꺼져.”“좋아! 잘했어!”승리를 거머쥔 서태양을 보자 구경하던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비록 나서서 싸울 용기는 없었지만 응원의 박수를 보내는 것쯤은 충분히 가능했다.“그래도 실력은 꽤 있나 보네? 어쩐지 참견하더라니.”수염 난 사내가 눈을 가늘게 뜬 채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천천히 뽑아 들고 음침한 목소리로 협박했다.“하지만 오늘 임자를 만났지. 흡혈파를 마주친 이상 살아남을 방법은 없어.”“흡혈파는 무슨, 들어보지도 못했구먼.”서태양의 표정은 기고만장했다.“하! 괜찮아. 네 피를 전부 흡수하고 나면 우리가 왜 흡혈파라고 불리는지 알 거야.”수염 난 사내가 이죽거리더니 두말없이 공격을 개시했다.그가 발을 내딛자마자 맹렬한 기세가 솟구쳤고, 손에 든 흡혈검은 핏빛을 뿜어내며 곧장 서태양을 덮쳤다.앞서 상대했던 부하들과 달리 수염 난 사내의 흡혈검은 살기로 가득했다
아름다운 얼굴은 쉽게 화를 부르는 법이다.염보혁은 남자였지만 여자보다도 더 아름다운 요염한 얼굴을 지녔다.길을 나서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도리가 없었고 지금처럼 깡패 무리와 마주할 때면 번번이 시비에 휘말리기 일쑤였다.유진우는 모른 척하며 조용히 술잔을 기울였다.“어이, 이쁜이. 저런 나약한 놈이랑 술 마셔서 뭐 하겠어? 차라리 우리랑 한잔하지, 아주 즐겁게 해줄 테니 말이야!”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사내가 염보혁의 턱을 손가락으로 건드리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이 손 치우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 후회하게 될 테니까.”염보혁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차가운 눈빛을 보냈다.어여쁜 외모 탓에 남녀를 불문하고 다가오는 사람이 많았지만 이처럼 대놓고 희롱하는 경우는 드물었다.“오, 이쁜이가 화를 내네?”수염 난 사내는 턱을 문지르며 비웃었다.“솔직히 말해서 화난 얼굴이 더 매력적인데?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더욱 감탄스럽군.”그의 말에 뒤따르던 무리들이 일제히 폭소를 터뜨렸다.유진우는 피식 웃으며 술잔을 내려놓았다. 눈앞의 이 사내는 제법 능숙하게 수작을 부렸다.염보혁이 남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셋을 센다. 그 안에 사라지지 않으면 내가 직접 손봐주지.”염보혁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손 본다고? 하하하!”수염 난 사내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이거 제법 앙칼진데?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위층으로 올라가서 천천히 우리를 손 봐줘, 어때?”“맞아, 맞아! 방도 넉넉하니 차례대로 너랑 놀아줄 수 있다고!”그의 동료들도 시시덕거리며 말을 보탰다.“셋.”염보혁은 더 이상 말을 섞을 필요도 없다는 듯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이쁜이, 괜히 버티지 말고 그냥 올라가자. 내가 아주 다정하게 대해줄 테니 말이야.”수염 난 사내는 입을 커다랗게 벌려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낄낄댔다.“둘.”염보혁은 여전히 냉랭한 표정을 유지했다.“싫다면 어쩔 수 없지. 내가 직접 안아 올라가는 수밖에.”그가 손을
유진우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보혁 씨가 이렇게까지 많은 걸 알고 있을 줄은 몰랐군요. 제 생각엔 장일청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 것 같은데요.”용호산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염보혁이 이렇게나 많이 알고 있다니, 이건 그가 평범한 인물이 아님을 증명하는 셈이었다.“진우 씨께서 과찬해 주시는군요. 저는 그저 사람들 사이에 끼어 듣는 걸 좋아해서 호기심에 이런저런 소문을 알아본 것뿐입니다. 사실 별다른 능력은 없어요.”염보혁은 겸손하게 웃으며 덧붙였다.“하지만 만약 진우 씨께서 무림대회에 참가하신다면 전 온 힘을 다해 진우 씨가 우승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보혁 씨, 저를 너무 과대평가하시는군요.”유진우는 담담하게 말했다.“전 그저 세상 구경이나 해볼 겸 참가하는 것뿐입니다. 우승 같은 건 감히 꿈도 꾸지 않아요. 애초에 제 실력으로 어떻게 그 내로라하는 강자들과 겨룰 수 있겠습니까?”“진우 씨는 너무 겸손하시군요. 저는 사람을 보는 눈이 정확합니다.”염보혁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진우 씨는 외모도 준수하고 기품 또한 비범하시죠. 멀리서 봐도 강렬한 기세가 느껴졌습니다. 비록 진우 씨의 신분은 알 수 없지만 이것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진우 씨는 절대 범상한 인물이 아닙니다!”“보혁 씨께서 저를 이렇게까지 칭찬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유진우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평범한 출신에 보잘것없는 실력을 갖췄을 뿐입니다. 아마 실망할 겁니다.”“하하, 괜찮습니다. 커다란 황금 잉어가 어찌 작은 연못에서만 머물겠습니까? 바람과 구름을 만나면 반드시 용이 되어 날아오를 것입니다. 지금 진우 씨의 명성이 미미할지라도 저는 믿습니다. 언젠가 반드시 하늘 높이 날아오를 날이 올 거라고!”염보혁은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말했다. 그 눈빛은 절대적인 믿음을 담고 있는 듯했다.유진우는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이 사람, 도대체 뭐지? 분명 오늘 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