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미친놈!”유진우의 말은 배수현과 최숙자를 미치고 펄쩍 뛰게 만들었다.감히 봉씨 가문 아가씨에게 함부로 굴다니, 정말 살고 싶지 않나 보다.“너... 나한테 꺼지라고 한 거야?”봉연주는 곧바로 불같이 분노를 터뜨렸다.“천박한 놈이 똥오줌 가리지 못하고 날뛰고 있네! 오늘 난 반드시 네 버릇을 고쳐놔야겠어. 경호원! 지금 당장 저놈을 내 앞에 무릎 꿇게 만들어!”“네!”뒤에 서 있던 몇 명의 경호원들이 곧바로 유진우를 잡으려고 움직이기 시작했다.“퍽, 퍽, 퍽...”눈앞에서 사람의 몸이 휙휙 날렸다. 조금 전 앞으로 달려 나갔던 경호원들이 연이어 바닥에 쓰러지며 정신을 잃었다.“뭐야?”믿을 수 없는 광경에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눈 깜빡할 사이에 벌어진 일에 반응조차 하지 못한 것이다.봉연주가 명령을 내리고 경호원이 움직이기 시작하여 쓰러질 때까지, 불과 2, 3초의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다.어떻게 된 일인지 인지하기도 전에 싸움은 끝나버린 것이다.정말이지 신기한 광경이었다.“어때? 계속 싸울까?”유진우는 애초에 주먹을 휘두르지도 않은 듯 무표정한 얼굴로 태연히 자리에 서 있었다.“너 대체 누구야?”배수현은 겁을 먹고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봉연주가 데려온 경호원은 충분히 강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들 역시 주먹 두세 번에 널브러지고 말았다.쓸모없는 것들!“이럴 수가. 봉씨 집안의 이렇게 많은 경호원들이 저 한 놈을 감당하지 못한다는 게 말이 돼?”서로 마주 보고 있는 최숙자와 장 원장의 눈동자엔 경악과 놀라움이 가득 차 있었다.그 시각, 봉연주 역시 침착함을 유지할 수 없었다.그녀의 옆을 지키는 경호원은 모두 엄격한 훈련을 거친 정예팀이다.평소 혼자의 몸으로 열 명도 거뜬히 상대하던 그들인데, 지금 저 미천한 놈 하나 무릎 꿇리지 못한다고?“유 선생님, 우리 이제 그만 가죠. 일 더 크게 만들 필요 없잖아요.”김정아가 걱정스러운 마음에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녀는 그들 모녀 때문에 유
유진우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그는 일반적으로 여자와 실랑이를 벌이지 않는다. 하지만 상대가 만약 막돼먹은 여자라면 굳이 호의를 베풀지도 않는다.“어...”따귀를 맞는 봉연주의 모습에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저놈 미친 건가?봉씨 집안 경호원을 때린 것도 모자라 아가씨의 몸에까지 손을 댄다고?자그마치 명문가 큰따님이다!연경의 최고 명문가인 봉씨 가문 말이다!정말 죽음이 두렵지 않은 건가?“감히 날 때려?”봉연주는 시뻘게진 얼굴을 감싸쥐고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유진우를 쳐다보았다.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 누구에게도 맞아본 적이 없다. 더욱이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 앞에서 따귀를 맞았으니 수치심에 고개도 들 수 없었다.“당신들은 레퍼토리가 그것밖에 없어? 좀 신선한 거로 바꾸면 안 돼?”유진우도 참지 못하고 비아냥거렸다.“너... 죽여버릴 거야!”봉연주는 꽥 소리를 지르고는 유진우를 향해 달려갔다.“연주야! 침착해! 침착해!”깜짝 놀란 배수현이 다급히 그녀를 껴안았다.이렇게 다짜고짜 덤비는 건 그녀만 손해 보는 일이다.“됐어요!”그때, 문밖에서 돌연 수려한 미모의 여자가 들어왔다.그 몸매 또한 완벽한 곡선을 그리고 있었고, 몸에서 풍기는 은은한 차가운 분위기는 뜨거운 여름날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만큼이나 편안했다.“이청아?”여자를 본 유진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이곳에서 그녀를 볼 줄은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다.“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뒤에 서 있던 조선미가 못마땅한 듯 코를 슥슥 문질렀다.지금까지 팔짱을 끼고 이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던 그녀는 이청아가 나타나자 곧바로 진지해지기 시작했다.인생 가장 큰 연적인 그녀를 신중히 대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 말이다.만에 하나 빈틈이라도 내어주었다간 큰 낭패를 볼 수도 있다.“이청아 씨, 여기서 뭐 하는 거예요?”조선미가 앞으로 걸어 나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이청아를 응시했다.두 경국지색의 여자가 한 공간에 나란히 서 있으니 그야말로 완벽한 풍경이
“두 사람 뭐라고 중얼거리는 거예요?”입꼬리를 실룩거리면서도 연신 한숨을 내뱉는 조선미를 본 이청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저 여자 미친 건가?“아니에요. 제가 사람을 잘못 봤어요. 죄송해요.”조선미는 씩 웃으며 먼저 사과했다.기억상실증 환자와 시시콜콜 따져서 뭣 하겠는가.“이상하네.”이청아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분명 모르는 사람인데 왜 이렇게 눈에 거슬리지?조선미를 스치고 지나가, 그녀의 시선이 유진우에게로 향했다.“잠시만요. 당신은 낯이 익은데... 우리 혹시 만난 적 있나요?”“네?”간단한 그 한마디의 말이 다시 조선미의 경계심을 불러일으켰다.기억상실증이라며? 왜 기억하고 있어?지금 나랑 장난하는 건가?“날 기억해요?”유진우는 화들짝 놀랐다.“아, 기억났어요. 그때 그 보험 설계사 맞죠?”곰곰이 생각해 보던 이청아가 그제야 생각난 듯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얼마 전 저 사람은 병원에서 보험 마케팅 일을 하고 있었었다. 하지만 그녀의 어머니에 의해 쫓겨나 버렸다.“네, 맞아요.”유진우는 부인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보아하니 정말 예전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것도 나쁘지 않았다.깔끔하게 각자의 길을 갈 수 있을 테니 말이다.“난 또 무슨 대단한 인물이라도 되는 줄 알았잖아. 고작 보험이나 팔고 다니는 작자였어?”“사회 가장 밑바닥에서 구르고 있으면서 감히 봉씨 집안 아가씨와 맞서? 자멸의 불길에 몸을 던져넣은 거지!”“몸값 수십억인 나도 이곳에선 목소리를 높이지 못하는데 보험 설계사 따위가 저토록 날뛰었다니. 말도 안 돼!”유진우의 직업을 들은 사람들 사이에서 또다시 한바탕 토론이 벌어졌다.특히 배수현, 최숙자, 장 원장은 멍청이를 보는 듯 멸시가 가득 담긴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고 있었다.그들은 유진우의 뒷배가 꽤 든든한 줄로 여겼었다. 아니면 무슨 배짱으로 봉씨 가문 아가씨를 때리기까지 했겠는가?이제 보니 그저 허풍을 떨었던 것에 불과하다.“청아 언니, 저 사람에 대해 잘 알아요?”“한
그녀는 지금 중재자로 나서고 있다. 이 기회에 못 이기는 척 사과한다면 목숨이라도 부지할 수 있을 텐데.왜 아직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단 말인가?목숨보다 이 세상에 중요한 것이 뭐가 있다고.대체 무슨 생각이지?“당신 말은 잘 알아들었어요. 하지만 당신들은 한 가지 사실을 잘못 알고 있어요. 난 봉씨 가문을 두려워하지 않아요. 반대로 봉씨 가문이 날 두려워해야 하죠.”유진우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그 말에 많은 사람들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봉씨 가문이 널 무서워해야 한다고? 하하하... 약이라도 잘못 먹었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기나 해?”“보험 설계사 따위가 감히 저런 망언을 내뱉다니. 정말 하늘 높은 줄 모르는 놈이야.”“어리석은 놈! 아직도 자신이 누구를 건드렸는지 인지하지 못하고 있네요.”사람들은 모두 멍청이를 보는 듯한 눈빛으로 유진우를 쳐다보며 혀를 끌끌 찼다.“너무 멍청해.”이청아가 고개를 저었다.“난 이미 당신에게 기회를 줬어요. 그 기회를 소중히 여기지 않으니 그만할게요.”평소의 그녀라면 이런 일에 오지랖을 부리지 않았을 텐데 오늘은 어떻게 된 일인지 자꾸 끼어들게 되었다.“제가 몇 마디 할게요. 첫째, 제 남자는 당신이 주는 기회 따위 필요 없어요. 둘째, 지금 유리한 위치에 있는 건 우리예요. 설사 궁지에 몰리더라도 뚫고 나가면 돼요!”조선미가 가슴을 내밀고 당당히 말했다.미모로 논한다면 우열을 가릴 수 없겠으나, 기세를 논한다면 조선미가 한 수 위인 듯했다.“청아 언니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에요? 이분이 누군지 알아요?”봉연주가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문 어르신의 수양딸이라는 신분이 드러난다면 천하가 들썩일 것이다.“됐어요. 이제 당신들의 일에 관여하지 않을게요.”이청아는 더는 말하고 싶지 않았다.나서기 좋아하는 사람도 아닐뿐더러 이런 사소한 일로 사람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싶지 않으니 말이다.“그래요. 관여하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그러다 다칠 수도 있으니까요.”조선미가 배시
집에 돌아가는 길에 유진우는 차를 몰고, 조선미는 조수석에 앉고 김정아와 홍소현은 뒷좌석에 앉아있었다.“소현아, 앞으로 누가 널 괴롭히면 곧바로 이모한테 말해. 이모가 대신 혼내줄게. 알겠지?”조선미는 물티슈로 소현이의 얼굴에 묻은 얼룩을 닦아주며 말했다.“네. 알겠어요.”홍소현이 고개를 끄덕였다.“소현아, 내일부터 아저씨가 싸움 가르쳐줄까?”유진우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누가 괴롭히면 너도 맞받아쳐. 그리고 누굴 혼내고 싶으면 때려!”“무슨 막말을 하는 거예요?”조선미가 얼굴을 찌푸렸다.“그 힘든 걸 왜 우리 소현이한테 시키려고 해요? 그리고 어떤 여자아이가 맨날 싸움만 하고 다닌대요? 피아노나 그림, 이런 걸 배우면 얼마나 좋아요.”“할 줄 아는 게 너무 많은 것도 피곤해요. 격투기가 좋을 것 같은데, 위험에 처하면 자신을 보호할 수도 있고.”유진우가 설명했다.싸움 기술은 어릴 때부터 익혀야 한다.힘들긴 하겠지만 앞으로 큰 도움이 될 것이다.“소현아, 네 생각은 어때?”조선미가 고개를 돌리고 물었다.무엇보다 수양딸의 의견을 묻는 게 제일 중요하다.“전 이모 말 들을 거예요.”소현이가 영리하게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하하하... 알았어. 네가 조금만 더 크면 이모가 다 알아봐 줄게.”조선미는 사랑이 가득 담긴 얼굴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화기애애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그들의 모습에 김정아의 눈시울이 붉어졌다.지금까지 유진우와 조선미가 어떻게 행동했는지 그녀는 모두 눈에 담았다. 어찌 됐든 이렇듯 훌륭한 양부모가 생겼으니, 앞으로 수현이의 미래는 분명 밝을 것이다.“여보, 이왕 나왔는데 외식하고 들어갈까요?”조선미가 소현에게도 물었다.“소현아, 뭐 먹고 싶어?”“음... 감자튀김과 햄버거가 먹고 싶어요. 먹어도 돼요?”홍소현이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이며 물었다.“당연하지. 오늘 이모가 배불리 먹게 해줄게.”조선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앗싸! 감자튀김 햄버거 먹는다!”홍소현은 너무 신나 환호를
김정아는 얼굴이 피투성이 된 채 손발 여러 곳이 골절되었고 심하게 부딪힌 배는 양수가 터져 시뻘건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형수님! 소현아!”유진우는 목이 터지라 울부짖었지만 이미 의식을 잃은 두 사람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망설임 없이 차에서 내린 그는 ‘쾅’ 소리와 함께 찌그러진 문을 잡아당기더니 곧바로 김정아와 홍소현을 끌어안았다.심각한 부상을 입은 두 사람을 보며 유진우는 목숨이라도 살려야겠다는 생각에 재빨리 은침을 꺼내 응급조치를 시작했다.“대표님!”이때 강린파 사람들이 부랴부랴 달려왔다.그들은 유진우가 조선미를 위해 마련한 경호원으로 지금껏 비밀리에 그녀를 보호해 왔기에 교통사고 현장을 목격한 뒤 곧바로 차에서 내렸다.“빨리! 지금 당장 병원으로 이송해!”상황을 진정시킨 후, 그는 김정아와 홍소현을 차에 태웠고 강린파 사람들에게 얼른 두 사람을 병원으로 보내 치료를 받도록 지시했다.그리고 반대편 문을 열어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멍해 있는 조선미를 끌어안았다.“소현이... 소현이는 괜찮아요?”조선미는 허약한 목소리로 물었다.“조금 다치긴 했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으니까 걱정하지 말아요.”유진우는 은침을 놓으며 그녀를 위로했다.“괜찮으면 됐어요. 다행이네요.”그녀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대표님! 운전기사 잡았습니다. 바로 이 사람이에요.”이때 강린파에서 대머리 운전기사를 끌면서 다가왔다.“대표님, 선미 씨, 정말 죄송해요. 브레이크가 갑자기 고장 나는 바람에 제어가 안 됐네요. 저도 어쩔 수가 없었어요.”대머리 운전기사는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푸념을 늘어놓았다.“브레이크가 고장 났다고요?”조선미는 표정이 점점 굳어지더니 곧바로 손을 들어 운전기사의 뺨을 내리쳤다.“브레이크가 고장 났다면서 가속 페달은 왜 밟은 거죠? 누가 봐도 우릴 치려고 일부러 밟은 거잖아요!”“선미 씨, 말씀이 참 지나치시네요.”대머리 운전기사는 화끈거리는 얼굴을 만지며 야비한 웃음을 지었다.“사람은 위급한 상황에 처하면
그날 밤, 동강 병원의 어느 병실 안.유진우와 조선미는 조용히 침대 옆에 서서 잠든 홍소현을 바라봤고 왠지 모르게 가슴이 미어졌다.다행히 수술로 골절된 부위는 다시 이어졌지만, 몸 곳곳에는 붕대가 칭칭 감겨있었다.체내의 어혈도 유진우의 은침 덕분에 체외로 배출되었다.비록 위험에서 벗어났지만, 교통사고로 인한 공포감과 충격은 다섯 살짜리 아이에게 여전히 큰 상처로 남아 있을 것이다.“걱정하지 말아요. 소현이 괜찮을 거예요.”유진우는 조선미의 손을 잡으며 위로했다.“아이한테까지 손을 대다니... 정말 짐승만도 못한 놈들이네요.”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조선미는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이 일은 제가 끝까지 파헤칠 생각이에요. 배후에 누가 있든 절대 넘어가지 않을 거니까 걱정하지 말아요.”유진우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조선미와 홍소현의 부상은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던 본능을 건드렸고 주제를 망각한 채 선을 넘는 상대에게는 자비를 베풀 생각조차 없었다.“선미야!”“언니!”이때 조군수와 조아영이 부랴부랴 달려왔다.두 사람은 머리에 붕대를 감고 있는 조선미를 보더니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재빨리 상황을 물었다.“아빠, 저 괜찮아요. 피부가 조금 까졌을 뿐이에요.”조선미는 일부러 여유로운 척 웃으며 답했다.“괜찮으면 됐어. 그러면 된 거지.”조군수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교통사고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아니? 별일 없으니 망정이지. 정말 다행이야.”“언니,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게 말이 돼? 설마 음주 운전 한 건 아니지?”조아영은 은근슬쩍 떠보며 물었다.“우리 문제가 아니라 누군가 일부러 계획하고 저지른 일이야.”조선미는 숨기지 않고 간단히 경위를 말했다.이를 들은 조군수와 조아영은 하나같이 눈살을 찌푸렸다.“대낮에 사람을 해칠 생각을 하다니 정말 미쳤구나. 누구인지는 알아냈어?”“지금 조사중이에요. 내일이면 결과가 나올 수 있어요.”유진우가 답했다.“누가 됐든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해요.”조군수
“보물 지도 관련해서는 네 아버지랑 큰아버지께도 설명드렸다. 이미 몇 년 전에 도둑맞아서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도 몰라.”조군수가 답했다.“삼촌, 이러시면 곤란해요.”조일명은 옆에 놓인 바나나 한 개를 쥐더니 천천히 껍질을 벗기기 시작했다.“삼촌이 보물 지도를 목숨보다 소중히 여긴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인데 그걸 잃어버렸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설마 비밀리에 숨겨놓고 독식하려는 건 아니죠?”“아무 증거도 없이 날 의심하는 거니?”“들키고 싶지 않은 일은 처음부터 저지르면 안 돼요. 진실은 언젠가 드러나기 마련이니까요.”미간이 잔뜩 찌푸려진 조군수와 달리 조일명은 여유롭게 바나나를 깨물며 입가에 웃음을 지었다.“그간의 정이 있어서 충고하는데... 순순히 내놓는 게 좋을 거예요. 오늘 같은 일 두 번당하고 싶지는 않잖아요?”이 말이 나오자마자 여러 사람의 표정이 바뀌었다.특히 조선미는 순간 화가 치밀어 올라 망설일 틈도 없이 달려가서 그의 멱살을 잡았다.“방금 뭐라고 했어? 오늘 교통사고, 설마 네가 한 짓이야?”“장난 좀 친 건데 왜 이렇게 흥분했어?”조일명은 야비한 웃음을 지으며 태연하게 바나나를 먹었다.“이 짐승만도 못한 인간아! 선미는 네 동생이잖아. 어떻게 동생한테 그런 짓을 저지를 수가 있니?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야?”조군수는 화를 버럭 내며 말했다.“삼촌, 농담이에요. 그냥 장난친 건데 다들 왜 이렇게 예민해요?”줄곧 웃으며 말을 이어가던 조일명은 순간 표정이 돌변하더니 정색했다.“물론 보물 지도를 내놓지 않는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죠?”“지금 날 협박하는 거니?”조군수는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다.“제가 어떻게 감히 그러겠어요. 그냥 충고라고 생각해 주시면 좋겠네요.”조일명은 입을 씰룩이며 말했다.“삼촌, 그동안 많은 사람의 원수가 된 건 아시죠? 조씨 가문이라는 큰 버팀목이 없어졌으니, 앞으로 사는 게 훨씬 힘들어질 거예요. 그걸 감안해서 잘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어요.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말을 마친
퍽퍽!유진우는 손을 번쩍 들고 소현무를 향해 따귀를 날렸다. 따귀 한 번에 이 귀족 자제는 수 미터나 멀리 날려 벽에 심하게 부딪혔고 생사가 불분명했다.나머지 귀족 자제들은 안색이 많이 변했고 화를 내지도 말하지도 못했다.유진우의 실력은 그들이 보기에도 절대적으로 강한 무도 고수였다.사내대장부는 눈앞의 손해를 보지 않는다. 이길 수 없는 상황에서 그들은 잠시 화를 참아야 했다.물론 눈치 빠른 사람들은 이미 몰래 사람을 부르기 시작했다.그들의 지원군이 도착하면 유진우는 죽은 목숨이었다.“개자식! 감히 내 손을 부러뜨려? 너 죽었어! 너의 가족 모두 죽었어!’소현무는 얼굴이 일그러지며 으르렁거렸다.“손만 부러뜨리는 게 아니라 다리도 부러뜨릴 거야.”유진우는 사양하지 않고 발을 번쩍 들어 소현무의 무릎을 세게 밟았다.캭!또 낭랑한 소리가 났다.소현무의 무릎은 바로 반대 방향으로 구부러져 불가사의한 각도로 뒤틀렸다.아-!소현무는 비명을 지르며 땅바닥에 드러누워 뒹굴었다.“유희주는 어디 있지? 사람을 내놔.”유진우는 소현무의 머리카락을 잡고 상반신을 들어 올리며 차갑게 말했다.“생각할 시간을 3초 줄 테니, 만약 네가 사람을 내놓지 않는다면 난 현장에서 너를 죽일 거야.”“너, 감히!”소현무는 이를 악물며 안색이 엄하게 소리쳤다.“뭐라고?”유진우는 냉소를 흘리며 과도를 집어 들고 소현무의 가랑이에 대고 갑자기 조사했다.“하지 마, 하지 마! 내가 다 말할게!”소현무는 놀라서 실색하고 말았다. 그는 마침내 겁을 집어먹고 연신 용서를 빌었다.“형, 그냥 여자 아닙니까? 이렇게 야단법석을 떨 필요가 있습니까? 마음에 드시면 제가 양보하면 됩니다.”“어디 있지?”유진우는 쓸데없는 말을 하기 귀찮아했고 과도는 소현무의 목숨에 좌우지하고 있었다.“저는 모르겠어요.”소현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바짓가랑이 주위가 더욱 싸늘해지는 것을 보고 그는 즉시 말을 바꾸었다.“비록 유희주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지만, 제 동생은 분명히 알고 있을
펑!한바탕 터지는 소리.유리 테이블은 순식간에 깨졌고 소현무의 머리는 그대로 유진우에 의해 테이블 아래로 내려앉았다.그는 순식간에 피범벅이 되어 비명을 질렀다.네?갑작스러운 변고에 모두가 어리둥절해하며 전혀 반응하지 못했다.무슨 상황이지?이 녀석이 감히 소현무에게 손을 댔다니?설마 목숨을 던지겠다는 말인 건가?소현무는 부잣집 자제이고, 가문이 방대하고, 인맥이 넓었다.평범한 사람은 그에게 손찌검이 아닌 조금이라도 존경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으면 집안이 망가지게 되는 것이 정상이었다.눈앞의 이 녀석은 정말 담이 컸다!“다시 한번 묻겠다, 유희주는 어디에 있는 거지?”유진우는 소현무의 머리를 한사코 누르며 온몸에 살벌한 기운이 감돌았다.소현무의 얼굴은 유리 부스러기로 가득 차 있었고 너무 아파 이를 갈고 있었다. 원래 평범했던 얼굴은 더욱 추해 보였다.“젠장! 감히 나를 건드려? 우리 아빠가 누군지 알아?”소현무는 목청을 돋우어 욕했다.“개자식! 경고하는데, 빨리 손을 떼, 그렇지 않으면 너희 가족 다 죽여버릴 거야.”“우리 가족을 죽인다고?”유진우는 흥 하고 손바닥을 들어 소현무의 뺨을 후려갈겼다.탁!낭랑한 소리.소현무는 온몸이 떨릴 정도로 맞아서 얼굴에 묻었던 유리 조각이 그대로 살 속으로 빠져들었고 선혈이 더욱 많이 흘렀다.소현무는 심한 통증에 비명을 질렀다.“젠장, 너희들 다 죽었어? 빨리 이놈을 죽여라!”소현무는 경호원 몇 명을 향해 소리쳤다.“감히 소현무를 때려? 정말 죽고 싶어?”경호원 몇 명이 꿈에서 깨어난 듯 잇달아 총을 뽑아 유진우를 향해 겨누었다.유진우는 소현무의 머리카락을 잡고 직접 들어 올려 자신의 앞을 막아 방패로 사용했다.“그만, 쏘지 마! 날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새까맣게 뚫린 총구를 보고 소현무는 놀라서 온몸에 흠칫 놀라며 비명을 질렀다.경호원 몇 명이 서로를 쳐다보더니, 즉시 총사용을 포기하고 막대기를 꺼내 곧장 유진우를 향해 달려갔다.몇 사람은 아주 훈련이 잘되어있었고
유진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계단을 한 걸음씩 올라가더니 자연스럽게 소현무 맞은편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그의 행동에 소현무는 눈살을 약간 찌푸리고 화가 냈다.“야! 인마! 너 누구야? 내가 앉으라고 했어?”소현무는 눈을 부릅뜨고 불쾌해했다.“네가 소현무야?”유진우는 자신에게 술을 따라주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감히!”“네가 감히!”“감히 소현무의 이름을 부르다니, 너 정말 살고 싶지 않구나!”소현무가 아직 입을 열기도 전에 주변 사람들은 이미 소란을 피우기 시작했다.그들은 모두 관리의 자제이며 함께 영웅방을 조직하여 평소에 갑질을 하고 다녔으며 누구도 감히 그들을 건드리지 못했다.감히 그들에게 무례하게 굴면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는 것이었다.“소현무 맞아?”유진우는 술을 한 모금 마시고 다시 입을 열었다.“너, 젠장.”막 발작을 일으키려는데 소현무가 손을 들어 제지하였다.“이놈, 너 지금 누구와 이야기하고 있는지 아니? 감히 내 이름을 부르다니, 죽고 싶은 거야?”“네가 소현무인가 보네.”유진우는 고개를 끄덕이고 잔을 내려놓으며 차갑게 말했다.“유희주는 어디에 있어?”“무슨 유희주? 듣도 보도 못한 소리야.”소현무는 소파에 등을 기대고 두 손을 벌린 채 거만한 표정을 지었다.“이놈아, 내가 보기에 네가 술을 마시러 온 것이 아니라 트집을 잡으러 온 것 같은데.”그가 말하는 동안 뒤에 있던 경호원 몇 명이 천천히 손을 허리춤에 넣었다.새까만 권총이 보일락 말락 하였다.“유희주, 우성의 여동생, 유림장군의 딸.”유진우는 차가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얼마 전에 네가 유희주의 미색을 탐내다가 사람을 납치해서 유씨 가문에 불을 질렀을 뿐만 아니라 유씨 부인을 죽였다. 이 일을 기억하고 있느냐?”“어, 그년 이름이 유희주였구나, 기억이 나.”소현무는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따라 입꼬리를 잡아당기며 씩 웃었다.“네 말이 맞아. 나는 유씨 가문을 태우고 유희주를 납치했지. 그런데 그게 뭐? 설마 아
30분 후.승합차 한 대가 평청만리 술집 입구에 도착했다.유진우와 이청성은 차례로 차에서 내렸고 둘 다 역용술을 거쳤기 때문에 신분이 탄로 날 염려가 없었다.평청만리 술집은 규모가 크고 밖에 줄도 서 있었다.다행히 두 사람은 밀정이 있어 술집에 순리롭게 들어갈 수 있었다.술집 안은 시끄러운 소리와 눈부신 조명으로 가득 찼다.한 무리의 남녀가 음악에 맞추어 미친 듯이 춤을 추며 자신의 열정을 마음껏 발산하고 있었다.유진우는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고 이런 시끄러운 환경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다.“왜요? 술집에 잘 안 오시죠?”이청성은 옆모습을 보며 웃었다.“여긴 저랑 안 맞는 곳이라 말할 수밖에 없네요.”유진우는 답했다.그는 차라리 집에서 책을 볼지언정 이런 곳에 와서 고생하고 싶지 않았다.“기회가 되면 시도해 볼 수 있잖아요. 그들을 보세요. 재밌게 춤을 추고 있잖아요.”이청성이 웃었다.“이런 삶은 결국 구름과 연기일 뿐이고, 모든 사람이 그런 식이라면 이 나라는 강해질 수 없습니다.”유진우는 담담하게 답했다.“당신은 정말 재미없네요. 지금 서경 백성들이 편안히 살면서 즐겁게 일하는 것이 좋은 일이 아닙니까?”이청성이 물었다.“즐겁게 생활을 느끼는 것도 좋지만,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서경이 오늘의 영광을 누리게 된 것은 모두 선대 열사들의 피와 맞바꾼 것입니다. 유성 같은 공신들까지 괴롭힘을 당하고 억울함을 풀 길이 없다면 근본부터 문제를 찾아야 합니다. 번화 후에 생겨난 해충이 너무 많습니다!”유진우의 표정은 진지했다.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곁에 있던 밀정이 갑자기 손가락을 뻗어 2층 모처를 향해 소리쳤다.“이봐, 소현무다!”유진우는 소리를 따라가 2층 좌석에 앉아 사람을 보았다.올백 머리에 피어싱한 화려한 차림의 젊은 남자가 여우 같은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있었다.그리고 매 사람 옆에는 몸매가 괜찮은 두 명의 미녀가 앉아 있다.마음껏 마시고, 만지고, 뽀뽀하고,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듯 했
“네, 정말 고마워요.”유성은 자신의 부러진 다리를 쳐다보고는 따라가도 도움이 되기는커녕 짐만 될 것 같아서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유성 씨, 혹시 여동생 사진 있어요? 얼굴이라도 알고 찾는 것이 빠를 것 같아서요.”“네, 여기 있어요.”유성은 바로 휴대전화를 꺼내 동생이랑 찍은 사진을 보여줬다.유진우는 사진을 한번 훑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유성의 여동생은 하얀 피부에 아름다운 미모를 가지고 있었으며 사진 속에서 밝은 미소를 띄고 있는 것을 보니 성격도 매우 활발하고 밝아 보였다.어쩌면 이렇게 완벽한 여성이라 소현무 같은 악당들이 눈여겨보았을지도 모른다.“진우 씨, 소현무의 부하들도 엄청 강해요. 당신들도 조심해야 해요.”유성은 엄숙하게 당부하였다.장군의 아들인 유성은 어려서부터 무술을 배워왔고 그 실력은 혼자 백 명도 거뜬히 상대할 정도로 뛰여났지만, 소현무의 부하들을 상대하기엔 실력이 아주 부족했었다.“걱정하지 말아요. 제가 알아서 할 테니 여기서 소식 기다리고 있어요.”유진우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이청성과 함께 재빨리 움직여 차에 탔다.차 안에서 이청성은 갑자기 유진우를 보고 말했다.“사실 이 일을 진우 씨 아버지께 알려 처리하면 빠를 것 같아요.”“아니요, 이 일은 당분간 아버지께 알리면 안 돼요. 아버지가 이 일에 개입하면 경솔하게 행동할 수 있어요. 소씨 가문은 부유한 집안으로 각 방면의 권력을 가지고 있고 심지어 왕부 내부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그들과 한통속이에요. 만약 이 일을 아버지께 알려 해결해달라고 하면 아마 아버지가 출발 하기도 전에 소현무 일행들은 소식을 듣고 줄행랑을 쳤을지도 몰라요. 그렇게 되면 일은 처리하기가 더 번거로워질 것이니 우리가 직접 나서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유진우의 말을 듣더니 이청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맞는 말인 거 같아요. 그들이 다 한통속이면 소현무를 잡는 것이 오히려 쉽지 않겠네요. 일단 소현무부터 잡아 피나무 껍질 벗기듯 하나하나 파헤쳐 연관된 악당들을 전부 끌어내는
유진우가 자신 있게 말하자 유성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정말 저희 동생을 구해내고 어머니의 원수를 갚아 주신다면 나중에 그 은혜는 꼭 갚을게요.”유성이 무릎을 꿇으며 감사의 표식을 전하려 했지만, 유진우는 황급히 일으켜 세우며 정중하게 말했다.“유성 씨, 이러실 필요 없어요. 지나가던 사람도 힘든 일에 처하면 도와줄 수 있는 세상인데 필경 서경 사람이라면 더욱 그냥 지나칠 수 없어요.”“유 선생, 여기서 이러실 게 아니라 묘원 밖에 나가면 찻집이 있어요. 우리 그 곳에 가서 다시 대책을 논의 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둘의 대화를 듣던 이청성이 말했다.“그렇게 합시다.”유성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지팡이를 짚고 두 사람과 함께 묘원 밖의 향명각이라는 찻집으로 향했다.찻집은 2층으로 되어 있고 1층은 차를 마시며 연극을 보고 노래를 듣는 곳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어 시끌벅적했고 2층은 방이라 차를 마시며 연극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적인 비밀도 나눌 수 있을 만큼 조용한 공간으로 되어 있었다.유진우 세 사람은 방으로 예약하고 차 한 주전자와 간단한 디저트 몇 접시를 주문하고 2층으로 올라갔다.“유성 씨, 이젠 제가 이 일에 대해 구체적인 상황을 좀 알아야겠어요.”유진우는 따뜻한 차 한 잔을 건네며 물었다.유성은 목이 말랐던지라 찻잔을 들고 단숨에 비우고는 말했다.“어떤 물음이든 전부 사실대로 말씀드릴게요.”“혹시 그 소현무라는 사람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아세요?”“그의 행방은 정해져 있지 않아요. 보통 나이트클럽이나 술집, 노래방 같은 유흥업소들을 잘 찾아다니는 것 같았어요.”유성은 갑자기 뭐라도 생각이 난 듯 말했다.“아! 기억났어요. 소현무가 자주 드나드는 평청왕리라는 술집이 있는데 평소에 별일 없으면 그 악당무리들을 데리고 그 집에서 술을 마시면서 거래하곤 했어요.”“평청완리요?”유진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어서 물었다.“동생분의 현재 상황은 어떤지요. 혹시 무슨 단서라도 있나요?”동생의 말이 나오자, 유
“제가 이길 수 없어도 서경에는 왕이 계시잖아요. 그들의 세력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왕보다 더 강할까요?”“이보게 친구,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한 일들이 아니에요. 그 악당들의 아버지들은 전부 지위가 높은 사람들로 유명하며 대부분 서경 황족과 친분이 두텁고 개인적인 금융거래도 엉켜있어 아무도 그들을 건드릴 수 없어요.”유성은 울먹이면서 말했다.“이런 벌레 같은 놈들을 설마 어르신도 상관하지 않는다고요?”유진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어르신 인품으로 보면 일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절대 가만히 있었을 수 없었을 것이다.“어르신께서 처리해야 될 일이 그렇게나 많은데 어찌 이런 작은 일까지 일일이 신경 써주시겠어요. 게다가 그 나쁜 관리자 놈들이 이런 추악한 일들이 생겨도 말이 전달되지 못하도록 입막음했으니, 어르신께서는 절대 알 리도 없고 우리를 위해 정의를 밝혀줄 기회도 없었어요.”유성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전 서경이 이 정도로 난잡해졌을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어요.”유진우는 서경에서 손가락에 꼽힐 수 있는 집안의 세자로서 시민들이 이런 압박을 받고 있으면서도 하소연할 길이 없다는 것에 대해 마음속으로 분노가 차올라 낯색이 어두워졌다.게다가 장군의 아들인 유성마저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일반 시민들은 또 어떤 압박을 받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지금의 서경은 겉보기엔 번화한 것 같지만, 인성은 예전 같지가 않아요. 어르신도 이젠 연세가 많으셔서 몸이 예전보다 못해지다 보니 많은 일들을 직접 처리할 수 없기에 관리자들에게 기회를 주어 처리하게 하는데 그들 또한 이런 추악한 일들은 어르신께 보고 없이 내부에서 숨기고 있어서 우리한텐 이런 불공평한 일들은 자주 볼 수 있는 일들이에요.”유성은 실망이 가득 찬 표정으로 말했다.“이런 일들은 금시초문이에요. 이젠 제가 알았으니 절대 이대로 내버려둘 수는 없어요.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상세하게 저한테 말만 해주시면 제가 반드시 되돌려 놓을 거예요.”유진우는 엄숙한 태도로 말했다
“어?”의외인 듯 미간을 찌푸리며 비석을 다시 똑똑히 쳐다본 유진우는 이 비석의 주인이 뜻밖에도 자신이랑 친분 있는 당시 흑용군의 선봉에 섰던 유림 부 장군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선봉군은 모두 신중하게 고른 실력 있는 사람들로 부 장군까지 될 수 있었다는 건 그 누구보다 더 우수했을 것이다.유진우의 기억 속에 부 장군 유림은 천성적으로 신력을 가진 사람으로 전쟁터에서 매우 사납고 흉악했으며 무수한 적을 죽여 일생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이었다.유림 장군은 또한 자신의 아버지 유만수를 위해 서경을 평정시키고 적들을 방어하는데 큰공을 세웠었고 희생된 후에도 관직이 바로 한 계급 올라 선봉군 주 장군으로 바뀌었다.그리하여 장례식도 매우 성대하게 치렀고 후손들은 덕분에 각종 우대를 받으며 생활했다.‘이대로라면 유림 장군의 후손들은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데 왜 이렇게 처참해진 걸까?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걸까?’유진우는 혼자 생각하다 천천히 젊은 남자한테로 다가가 자초지종을 들어보려 했다.“누구냐!”젊은 남자는 인기척을 눈치챈 듯 살짝 경계하는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긴장하지 말아요. 우리도 당신처럼 가족한테 제사를 지내러 왔어요.”경계심이 가득한 남자를 본 유진우는 급하게 대답했다.“가족한테 제사 지내러 오셨다고요?”젊은 남자는 아래위로 훑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그의 눈빛을 보니 경계심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네, 저희도 방금 제사가 끝나고 돌아가려던 찰나 너무 슬피 우시길래 걱정되어 찾아왔어요.”“죄송해요. 방금 제가 감정이 조금 격했어요. 두 분이 널리 양해해 주시길 바라요.”유진우의 걱정 어린 말투에 젊은 남자는 그제야 사과의 말을 전했다.“괜찮아요. 저희도 다 이해해요.”유진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모르고 있었다는 듯 눈앞의 비석을 쳐다보며 놀란 어조로 물었다.“어머! 여기는 위대한 유림 장군님의 묘지가 아니에요? 설마 귀하께서는 유 장군님의 후손이신가요?”“네, 제 이름은 유성이고 유림 장군은 바로 저희 아버지예요
유진우는 어머니의 비석 앞에서 무릎 꿇고 절을 올렸다.어머니를 살해한 주범 이원무는 살해되였고 호룡각도 무너졌으니 이젠 채원진과 사철수 일행만 남았다.이 사람들만 없애면 어머니의 피맺힌 원수는 완전히 갚을 수 있다.“어머니, 너무 보고 싶어요!”유진우는 눈앞의 비석을 바라보면서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유진우의 기억 속에 아버지는 일 년 내내 나랏일에만 힘쓰시며 집에 거의 들어오지 않으셨고 어머니 혼자 고생스럽게 자신을 키우셨다.어렸을 때 어머니가 너무 엄하게 다스린 탓에 반항심이 생겨 걸핏하면 엉덩이를 몇 대씩 더 맞곤 했지만 어른이 되어서야 어머니의 고된 마음을 이해 할수 있었다.유진우는 서경 세자로서 어려서부터 부유했고 만인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었다.이런 환경에서 어머니가 잘 가르치지 않았다면 그는 남을 쉽게 깔보는 부잣집 도련님이 되었을 것이다.유진우의 오늘이 있게 된 것은 모두 어머니가 정성껏 길러주신 덕분이다.무술이든 군사든 의약이든 아니면 기이한 비술이든 모두 어머니의 교육을 벗어나지 못했다.어머니는 그에게 생명을 줬을 뿐만 아니라 장래의 모든 길을 열어 주셨다.“휴...”슬픔에 젖어 있는 유진우를 보며 이청성은 한숨을 내쉬며 눈치껏 자리를 피해주었다.그녀는 두 모자가 몇 년 동안 만나지 못했으니 해야 할 이야기들이 많을거로 생각했다.한 시간 뒤, 유진우는 하소연을 마치고 어머니의 비석 앞에서 정중하게 세 번 절을 한 후 일어섰다.날은 이미 어두워졌고 커다란 묘지에는 몇몇 사람들이 간혹 슬피 통곡하는 소리만 들릴 뿐 아무도 없었다.“미안해요, 많이 기다렸죠.”유진우는 마음을 추스르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이청성 앞으로 다가가며 말했다.“괜찮아요. 전 진 왕비의 인품을 항상 매우 탄복하고 있어요. 이곳에서 그녀의 수상을 보게 된 것도 저의 영광이에요.”이청성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날도 이미 저물었으니 우리 일단 쉴 곳이라도 찾아봐요.”유진우는 어머니의 말이 나오면 더 슬퍼질까 봐 다시 말을 돌렸다.“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