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이 간신히 고개를 들자, 이건이 걸어오더니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이진아, 백 년 성학련을 어떻게 찾아내는지 알려주면 내가 가서 따올 게. 넌 헬리콥터에서 쉬면서 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기만 해.”옆에 있던 루트도 얼른 옆에서 맞장구를 쳤다.“맞아요. 성학련은 저와 윤 대표님이 찾으면 되니, 누나는 그냥 안에서 기다려주세요. 밖에 바람이 너무 세고 추우니 이대로 나오시면 큰일 날 거예요!”이진도 더 이상 일어날 힘이 없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성학련의 화심을 보면 돼요. 100년 이상의 성학련의 화심은 붉은색이고, 100년 안 된 것은 연분홍색이에요.”그리고 무슨 생각이 났는지 또 한 마디 당부했다.“100년 안 된 성학련은 꽃가루에 독이 있으니, 절대로 건드려선 안 돼요.”이건은 마음속으로 이진의 말들을 되새기고는 루트를 데리고 헬리콥터에서 내렸다.그들은 30분도 안 되어 돌아왔는데, 두 사람의 손에는 선명한 붉은색을 띠고 있는 성학련들이 가득했다.이건은 돌아오자마자 혼수상태에 빠진 채, 정희의 품에 누워 있는 이진을 보았다. 입을 약간 벌린 채, 끊임없이 몸을 떨고 있는 이진은 얼굴이 조금 파래졌는데 무척 허약해 보였다.이건은 재빨리 손에 든 성학련은 내려놓고, 깊이 잠든 이진을 안아 자신의 다리에 눕혔다.두꺼운 옷을 몇 겹 사이 두었지만, 이건은 여전히 이진의 몸이 불덩이처럼 뜨겁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이건은 미간을 세게 찌푸리고는 시우에게 말했다.“병원으로 가!”이 말을 듣자 시우는 얼른 헬리콥터의 시동을 걸어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갔다.이진은 한참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녀는 먼저 바깥을 한 번 내다보았는데, 하늘은 이미 칠흑같이 어두워졌기에 늦은 시간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눈을 뜨자마자 새하얀 벽에 짙은 소독수 냄새가 코끝을 맴돌았기에, 이진은 이곳이 어딘지 알 수 있었다.이진은 천천히 일어나 앉고 나서야, 옆의 작은 침대에 조용히 누워 있는 이건을 보게
이건의 진지한 표정을 보자, 이진은 감동된 마음에 눈앞의 남자를 품에 안고 싶었다.특히 이건의 준수한 얼굴에는 숨기기 어려울 정도로 피로가 가득 차 있었다. 이진은 그동안 자신을 돌보기 위해 힘써온 이건이, 왠지 모르게 귀여워 보였고 매우 안심이 되었다.이런 생각에 이진은 자기도 모르게 이건의 손을 잡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이건 씨, 이렇게 늘 절 챙겨주고, 제 곁을 지켜주셔서 너무 고마워요.”이진은 오늘 일만을 말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건은 이진의 말을 오해하고는, 매우 언짢은 표정을 보이더니 고개를 돌려 이진을 보지 않으려고 했다.이진은 바로 그의 이상함을 알아차리고는 물었다.“왜 그래요? 제가 한 말에 화나신 거예요?”이건은 이진을 힐끗 쳐다보았는데, 눈을 깜빡이며 무고한 표정을 지은 이진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이건은 어쩔 수 없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자기야, 부부 사이에 이렇게 예의를 차릴 필요는 없잖아. 안 그래?”이진은 그제야 알아차린 듯이 얼른 입을 열었다.“그럼 방금 한 말은 취소할게요! 이제 만족하시는 거죠?”이진은 말을 마치자마자 이건의 올라간 입꼬리를 보았지만, 여전히 고개를 돌리려 하지 않는 이건을 보더니, 손을 내밀어 이건의 얼굴을 잡고는 자신을 마주 보게 했다.하지만 이건은 여전히 고집을 부리며 이진을 쳐다보지 않으려고 했다.“이런다고 내가 봐줄 거라고 생각하지 마.”이진은 이건의 입술에 키스를 하며 그의 말을 끊었다. 두 사람은 또 격렬하게 키스를 하였는데,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서로 놓아주었다.이튿날 이른 아침, 루트는 병원에 입원한 이진을 보러 왔다. 이진이 열이 내렸고 곧 퇴원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루트는, 할머니의 치료에 관한 일을 물어보았다.“이진 누나, 이제 성학련은 준비가 되었는데, 제가 또 뭘 해야 할까요?”이진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우선 할머니께서는 작은 수술을 해야 될 거예요. 그러니 우선 수술할 준비를 해놓으셔야 돼요.”곧이어 이진
이영의 말을 들은 기태는 기뻐하기는커녕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이 소식들은 어디서 난 거야? 정말 정확한 거야? 아빠가 보기에 뭔가 이상한 것 같은데?”기태는 이영과 달리 꽤나 신중한 편이였기에, 난데없이 기밀 자료가 나타나자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고는 마음을 놓지 못했다.그러나 이영은 머릿속으로 이진의 처참한 모습을 상상하며 기뻐하고 있었기에, 기태의 말을 전혀 귀담아듣지 않았다.“아빠, 이 자료들은 분명 하나님이 날 돕기 위해 준 걸 거야. 이번에 반드시 이 자료들을 잘 이용해야 돼!”이영은 주먹을 불끈 쥐고는 맹세하였다.“이진은 이번 주에 분명 파산할 거니, 아빠는 걱정 말고 좋은 소식만 기다려.”이영의 이렇게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이자, 기태는 애써 마음을 가라앉힐 수밖에 없었다.기태는 자기가 괜한 걱정을 한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은 채 엄숙한 표정으로 방을 나섰다.이와 동시에 루트는 이진에게 전화를 걸어 일의 진도에 대해 보고했다.“좋아요, 그럼 저도 이만 모습을 드러내야겠어요. 이영이 자꾸 절 건드리지 못해 안달인 이상, 이번엔 반드시 이영에게 본 때를 보여줘야겠어요.”이진의 차가운 목소리가 큰 병실 안을 맴돌았는데, 그녀의 날카로운 눈동자는 반드시 이길 것이라고 다짐하는 것 같았다.그 기획서의 내용은 절반이 가짜였는데, 이진의 측근이 아닌 이상 그 속의 허점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이진이 인수할 것이라고 적어 두었던 땅도 사실은 이진이 전혀 관심 없었던 곳이다.전에 이진은 이미 그곳에 가서 고찰을 했었다. 현재로서는 조금 가치가 있는 땅이지만, 공사가 실시되기 시작하면 분명 그 땅이 ‘쓸모없는’ 땅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이진의 예상대로라면, 그 기획서는 지금쯤 이영의 뒤에 있는 사람에게 전달되었을 것이다. 심지어 그들은 어떻게 그 땅을 빼앗을 것인지 신이 나게 토론할 것이다.이진이 예상한 대로 이영은 현재 보스와 전화를 하고 있었다.“정말 이 프로젝트에 문제없다고 확신해요?”그 사
“언니!”귓가에 들려오는 맑은 목소리에 이진은 몰래 차갑게 웃었다.‘나를 비웃을 기회를 놓치기라도 할까 봐 애를 쓰네.’이진은 몸을 돌려 고개를 힘없이 숙였는데, 이진의 무기력한 모습은 마치 이번 경매에 실패하여 괴로워하는 것 같았다.이진의 이런 모습을 보자 이영은 몰래 그녀를 비웃더니, 곧 득의양양해하며 입을 열었다.“언니, 정말 미안하게 됐어. 내가 그 땅을 가지게 될 줄은 몰랐어.”이영은 그저 연기를 할 뿐이지, 정말 미안한 감정을 가진 건 아니었다.이진은 이영의 말을 듣자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괜찮아, 원래 사업하는 것 자체가 경쟁인 거잖아. 오늘 이 프로젝트는 너랑 인연인 가보네,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애를 써도 빼앗기 힘든 거 보니.”이진의 말에 다른 뜻이 담겨있었는데, 그건 이진만이 알고 있었다.이영은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은 채 이진이 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이번 기회를 통해 이진에게 제대로 창피를 주고 싶었다.하지만 이진은 더이상 이곳에 남아 연기를 할 시간이 없었다.루트 할머니의 수술 날짜가 오늘이라, 이진은 얼른 달려가 수술할 준비를 해야 했다.이런 생각에 이진은 이영을 보며 말했다.“난 바쁜 일이 있어 이만 가볼 게.”이진은 말을 마치고는 몸을 돌려 경매장을 떠났다.이영은 아무것도 모른 채 이진의 떠나는 뒷모습을 보며 그녀를 비웃기만 했다. 심지어 이진이 떠날 때의 급한 표정을 흉내 내기도 했다.이진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이영은 시큰둥한 얼굴로 중얼거렸다.“무서워 도망친 주제에 아직도 자기가 잘 난 줄 아나 봐?”수술은 오후 1시에 시작되어 오후 4시가 되어서야 끝났다.수술실에서 나왔을 때, 이진의 정교하고 작은 얼굴에는 이미 피곤함이 가득 적혀 있었다.다행히도 이진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수술은 예상대로 엄청나게 성공되었다.루트는 이 소식을 듣자마자 너무 흥분되어 펄쩍 뛰더니, 이진을 보자마자 그녀를 향해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이진이 정신을 차리기 전에, 루트는 이미 몸을 숙여 자신의
루트의 할머니는 방금 수술을 마쳤기에, 아직 마취가 풀리지 않아 한동안 상태를 지켜봐야 했다.이진도 그녀의 상태가 안정적인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병원을 떠나기로 했다.그래서 루트는 계속 할머니의 곁을 지켰고, 이진과 이건은 병실 밖의 의자에 앉아 할머니가 깨어나기를 기다렸다.이진은 오전에 경매에 참가한 후 바로 할머니의 수술을 위해 달려왔기에, 너무 피곤한 나머지 이건의 어깨에 기대 잠이 들었다. 할머니는 시간이 조금 지나서야 깨어나셨다.할머니가 깨어나자 루트는 매우 흥분하며 병실을 뛰쳐나와 큰 소리로 말했다.“할머니가 깨어나셨어요, 드디어 깨어나셨어요!”루트는 병실을 나서자마자, 자고 있는 이진을 보고 또 얼른 입을 다물었다.그러나 이진은 그가 방금 외친 소리를 듣자마자 잠에서 깼다.이진은 몸을 곧게 펴고 눈을 비비더니, 그제야 정신이 들었는지 루트를 따라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이건은 자신의 시큰시큰한 어깨를 만지며 이진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침대에 누워있는 노인은 두 눈을 떴는데 이전과 달리 눈이 매우 맑아 보였다. 지금의 그녀는 의식을 회복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앉을 수도 있게 되었다.이진의 수술이 엄청나게 성공된 것이다.루트는 할머니에게 다가가, 오랫동안 그녀를 괴롭혀온 병을 치료해 준 사람이 바로 이진이고, 할머니의 몸이 회복되면 곧 침대에서 내려와 걸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주었다.이것들을 알게 된 할머니는 마음속으로 이진에 대해 깊이 감사하고 있었다.그래서 할머니는 이진이 들어오는 것을 보자마자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더니, 입술을 떨며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결국 한참을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이 선생님은 정말 저희들의 은인이에요. 얼마 전에 우리 빈이가 저질렀던 일들을 모두 알게 되었어요. 제가 몸이 이 지경이라, 빈이가 급한 마음에 불의를 저지른 건데, 정말 폐를 끼쳐 죄송합니다. 아직 많이 부족한 제 손자 놈을 너그럽게 받아 주시니 너무 감사드려요!”할머니는 자신의 손자인 이수빈이 국제적으로 유명한 해
이진은 모든 일들을 끝내고 회사를 나섰다.오늘은 이건이 그녀를 데리러 오기로 했는데, 그들은 함께 새로 개업한 프랑스식 식당에 가서 저녁을 먹기로 약속했다.퇴근길에 차가 너무 막히다 보니, 이건이 도착하기 전에 이진이 벌써 회사 앞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마침 심심하던 참에, 이진은 멀지 않은 곳에서 날카롭고 귀를 찌르는 여자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이진!”이진이 고개를 돌리자, 이영이 화가 잔뜩 난 채 자신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오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영의 물결 같은 갈색 머리는, 그녀의 격렬한 동작으로 뒤로 날려 그녀의 얼굴 전체를 드러냈다. 게다가 이영의 화가 난 표정은 정말 험상궂기 그지없었다.이영은 자신의 이미지를 신경 쓰지도 않은 채, 이진의 앞으로 다가가 화가 난 표정으로 손가락을 내밀어 이진의 얼굴을 가리켰다.“네가 만든 기획서가 모든 것을 망쳤어! 너 일부러 그런 기획서를 준비한 거지!”이진은 이영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알고 있었지만, 눈을 깜빡이며 모르는 듯한 표정을 보였다.“무슨 기획서를 말하는 거야? 내가 널 망쳤다고?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이진의 이런 모습을 보자 이영은 그녀가 잊은 줄 알고, 급한 마음에 생각을 거치지 않은 채 말을 내뱉었다.“바로 두 달 전에 내가 경매에서 샀던 땅 말이야! 네가 기획서에 절대 문제가 없다고 적어서 내가 산 거잖아!”이영은 말을 꺼내자마자 문제를 깨닫고, 얼른 입을 다물었지만 이미 늦었다. 이진은 이미 문제점을 발견하였다.이진은 예리한 눈빛으로 이영을 보며 물었다.“내 착한 동생이 어떻게 내 기획서를 보게 된 거지? 내가 기획서를 남에게 공유할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았을 텐데?”이진은 눈동자를 굴리더니,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깨달은 듯한 표정을 보였다.“설마 다른 사람을 찾아 내 기획서를 훔친 거야? 이영아, 이거 불법인 거 알아?”이진은 화를 내기는커녕 피식 웃으며 이영에게 말했다.이영은 이진의 표정을 보더니,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하지만 이진의
이영은 아랫입술을 힘껏 깨물고는, 겨우 땅을 짚고 일어나 절뚝거리며 도망쳤다.이진은 황급히 도망가는 이영의 뒷모습을 보더니, 비꼬는 듯한 눈빛을 보이더니 이건의 팔을 잡았다.“저희도 이만 갑시다.”볼거리가 없게 되자, 구경하던 사람들도 아쉬워하며 점차 흩어졌다.한편 이영은 큰 소리로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다.집에 도착했을 때 이영의 메이크업은 모두 눈물로 지워졌고, 앙증맞은 얼굴에는 마스카라의 흔적이 남아 있었는데, 정말 보기 흉한 모습이었다.기태조차도 이영의 모습에 깜짝 놀라, 얼른 그녀더러 화장을 지우라고 했다.이영이 화장을 지우고 돌아온 뒤 기태가 물었다.“우리 딸, 무슨 일 때문에 운 거야?”이영은 회사에서의 일과, 이진 때문에 받았던 억울함을 모두 기태에게 말했다.그러나 자신이 넘어져 치마가 벗겨진 일은 창피한 마음에 말하지 않았다.사실 이영이 그렇게 심하게 울었던 원인은 바로 그거였다. 오늘 일로 구경꾼들에게 모욕을 당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이영이 예상한 바와 같이, 기태는 가슴을 두드리며 마음 아파하며 말했다.“애초부터 그 기획서에 문제 있다고 생각했어. 아빠가 목숨을 걸어서라도 널 말렸어야 했는데, 지금 후회해 봤자 이미 모두 늦어버렸네!”“아빠, 그건 아빠 잘못이 아니야. 모두.”이영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의 핸드폰이 울렸는데 이영은 잠시 망설이고는 수신 버튼을 눌렀다. 곧 보스의 차가운 목소리가 핸드폰 너머에서 들려왔다.“이영 씨, 회사 고위층의 내린 결과에 따르면, 당신은 회사에 막대한 손실을 입혔기 때문에 더 이상 당신을 회사에 남길 수 없게 되었어요. 내일 와서 사직서를 내시고, 배상 협의에 사인을 하시죠.”이 말을 듣자, 이영은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입술을 오므리고 조심스럽게 물었다.“제가 얼마를 배상해야 되는 거죠?”그러자 상대방은 그녀에게 정확한 숫자를 알려줬다.“50억.”이영은 계속해서 중얼거리며 반복했다.이 50억은 회사가 이번 프로젝트에서의 80%의 손실과, 이영의 거액 위약금이 포함되
“정말 중요한 일이 있는 데, 전화로 말하기 힘들어 직접 만나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연락드렸어요. 물론 시혁 씨에 관한 일이에요.”이진은 입을 오므리더니 물었다.“한시혁이 또 무언가를 계획하고 있나요?”연서는 이진의 말을 듣고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했다.“비슷한 거예요. 어쨌든 급한 일인데, 언제 시간이 되시나요? 꼭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해야 되는 일이에요.”“그럼 내일 점심에 만나요.”이진은 무슨 생각이 났는지 또 한마디 덧붙였다.“주소는 제가 정하고 보내 드릴 게요.”“좋아요!”전화를 끊은 뒤 이진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한동안 조용했던 연서가 갑자기 만나자고 연락 온 것도 모자라, 급한 일이고 시혁과 관련된 일이라고 말했는데, 그건 마치 이진이 나타나지 않을까 봐 걱정되어 말한 것만 같았다.연서의 성격에 따라, 겉으로는 이진과 합작하겠다고 약속하겠지만, 또 언제 배신할 줄은 모르는 일이다. 심지어 연서는 단 한 번도 이진에게 진실을 말한 적이 없었다.그래서 이번도 마찬가지로 치밀하게 설계한 음모일 수 있어서, 이진은 약속 장소를 자신이 정하기로 했다. 이진이 주소를 정한다면 주도권을 손에 쥔 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만약 연서가 정말 말한 것처럼 이진에게 시혁의 최근 행동에 관한 단서를 제공한다면, 다시 합작을 하는 것을 고려할 수도 있었다.이런 생각에 이진은 한 커피숍의 주소를 연서에게 보냈다.이튿날 점심, 약속대로 두 여자는 커피숍의 룸에서 만났다.연서는 짙은 메이크업으로 울었던 흔적을 가리려고 했지만, 붉게 부어오른 눈을 가리진 못했다.이진을 보자마자 연서는 또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는데, 도저히 눈물을 그칠 수 없었다.억울하다는 듯이 울기만 하는 연서를 보자, 이진은 자기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그만 울어요. 설마 당신이 우는 걸 보여주기 위해 부르신 거예요? 할 말이 있으시다면 얼른 하시죠.”이진의 짜증 섞인 목소리를 듣자, 연서는 그제야 눈물을 멈추고 간절한 표정으로 이진을 쳐다보았다.“이진 씨, 제가
결혼식 날짜는 8월 초로 정해졌으며, 국내와 해외에서 각각 한 차례씩 진행될 예정이다.웨딩드레스 가게에서 청혼한 이건의 이야기는 곧 널리 퍼지게 되었다. 오늘날까지 두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인터넷에 널리 퍼지고 있었다.이건이 바라던 대로, 전 세계의 사람들은 이진이 윤이건의 아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두 사람의 결혼식은 더욱 화려하고 시끌벅적했다.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두 사람은 친한 지인들 외에 회사 직원들만 초대했다.윤이건의 가족들은 보기 드물게 모두 현장에 참석했지만, 이진 쪽은 텅 비어 있었다.한편 이씨 가문은 여전히 다툼이 지속되고 있었다.“이것 봐! 내가 애초에 뭐라 그랬어? 이진 그년이 양심 없는 년이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 이제 알겠지? 그년은 결혼식처럼 중요한 날조차 아버지인 당신을 부르지 않았어. 이기태, 정말 당신이 뭐라도 되는 줄 알아?”백윤정은 노발대발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그녀에게는 예전의 자애로운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앞으로 달려들어 이기태를 때리려고 들었다.이기태는 화가 난 마음에 백윤정을 밀어냈다.“좀 저리 꺼져!”‘그래봤자 이진이는 내 친 딸인데, 지금 일이 이 지경이 된 건 모두 백윤정 때문이잖아. 백윤정이 중간에서 이간질을 하지 않았다면, 내가 이진이를 그렇게 대했겠어? 백윤정이 자꾸 끼어들어 모순을 만들어내지 않았다면, 이진도 날 이렇게까지 미워하진 않았을 거야.’물론 이기태의 눈에는 그저 이익밖에 없다. 그가 후회하는 건 오직 이진을 통해 이건의 도움을 받지 못한 것뿐이다.지금의 이기태는 백윤정과 사이가 완전히 틀어지고 말았다. 두 사람은 매일 싸우기 바빴다.이기태는 결혼식이 끝날 때가 되자 뻔뻔스럽게 이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이진아.”“이기태 씨, 전에 제가 전화를 끊을 때 했던 말을 잊으신 거예요?”이기태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이진의 차가운 목소리가 전화 너머 들려왔다. 그는 등골이 서늘해지더니 그제야 기억난 듯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이진, 너!”
보통 사람이라면 분명 시언의 모습에 마음이 약해졌을 것이다.하지만 이진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이진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그의 말을 듣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한마디 내뱉었다.“제가 사랑하는 남자는 윤이건 씨밖에 없다는 것을,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어요.”시언은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팠다. 그리고 힘겹게 한 마디 물었다.“제가 몇 년 더 빨리 나타났다면.”“그래도 결과는 똑같아요.”이진은 그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또박또박 말했다.말을 마친 뒤, 이진은 더 이상 시언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이건을 향해 걸어갔다.애초에 이진은 시우가 이 연회를 통해 정희와의 결혼 소식을 발표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이진은 마침내 시우의 의도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몸과 마음이 피곤했던 이진은 이건의 가슴에 기대어 말했다.“이건 씨, 저 해외여행 가고 싶어요.”“해외여행?”이건은 원래 뭔가를 계획하고 있었기에, 얼마 후 이진을 데리고 출국할 생각이었다.이진이 먼저 제기한 이상, 이건도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는 활짝 웃으며 이진을 껴안고 말했다.“그래, 자기가 가고 싶은 곳이라면 어디든 좋아.”이를 위해 이건은 비행기 티켓을 예약하고 모든 일들 미뤘다. 하지만 이건의 원래 계획까지는 아직 시간이 좀 남았다.YS그룹에는 이건이 직접 처리해야 될 큰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이건은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이진을 데리고 해외로 여행을 간 것이다.이 소식을 전해 들은 YS그룹의 고위층들은 미치기 직전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이건에게 전화를 걸어 돌아와 달라고 부탁을 했다. 어쨌든 프로젝트는 끝내고 가야지.하지만 이건의 대답은 그저 한마디뿐이었다. 결혼식을 마친 후.결혼식을 마친 후, 이건은 분명 이진과의 아이를 돌보는 데 집중할 것이다.그러기에 앞으로 일에 전념하는 시간은 점점 적어질 게 뻔했다.옆에 있던 이진은 한쪽에 놓인 핸드폰이 끊임없이 울리는 것을 보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내가 너무 충동적인 건 아니겠지? 이건 씨는 날
이진은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내가 남학생을 꼬드겼다는 건 무슨 말이야? 아예 기억조차 나지 않는 데다가, 시우 씨의 동생인 건 아예 모르던 일이야. 도대체 이 일이 나랑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야?’이진은 화를 내며 이건을 노려보았다.“제가 언제 그런 행동을 했다고 그래요. 전 그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기억이 안 나거든요.”“정말이야?”이건은 일부러 장난친 거다. 사실 메시지를 보고 불쾌한 기분이 조금 들었는데, 이진의 반응은 그를 매우 기쁘게 했다.이건은 입술을 오므리며 말했다.“그렇다면 자기 마음속에는 나밖에 없다는 거지?”‘그럼 더 이상 시간 낭비하지 않아도 되겠네. 시우 이놈은 겁도 없네, 감히 내 아내더러 자기 사촌 동생을 위로해달라는 거야?’이건은 차갑게 웃으며 이진의 핸드폰을 가지고 시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시우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이진 씨, 제가 보낸 메시지를 보셨나요? 저도 어쩔 수 없어서 연락을 드린 거예요. 이 녀석이 술에 취해 밤새 이진 씨의 이름을 부르더니,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또.”“또 뭐 했는데?”이건은 그의 말을 끊은 뒤 질투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네 사촌 동생이 대단한 사랑꾼인가 봐.”‘윤이건?’전화 너머의 시우는 하마터면 심장이 터질 뻔했다.“이건아, 이진 씨 핸드폰이 왜 네 손에 있는 거야? 난.”“나랑 이진이가 부부인 걸 잊은 거야?”이건은 더 이상 시간 낭비하기 싫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내 아내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는, 내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그럼 내 아내를 좋아하는 사람마다 직접 가서 위로해 줘야 되는 거야? 내가 동의할지 말지는 둘째 치고, 이진이 정말 간다고 해도 네 동생이 괜찮아질 리는 없어.”마침 뭔가 생각난 이건은 잠시 망설이더니 협박하듯이 말했다.“술에서 깨면 네 동생한테 전해. 어제 같은 일이 또다시 일어나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이건은 다른 남자들이 자신의 아내에게 들러붙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이
‘윤이건? 윤이건이 어떻게?’시언은 도저히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그와 시우는 사촌 형제이기에, 이건과 시우가 친한 친구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소문에 의하면 이건은 이미 결혼했고 사랑하는 아내가 있다.‘설마.’시언은 갑자기 깊은 생각에 잠겼다.이건과 이진이 어떤 사이든, 이진이 이건을 얼마나 의지하든, 그는 자신이 이진을 좋아한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시언은 몸 옆에 늘어진 손을 꽉 주먹 쥐었다. 이때 정신을 차린 그는 앞으로 나아가, 이건의 앞길을 막고 환한 미소를 선보였다.“윤 대표님, 전 민시언입니다. 시우 형의 사촌 동생이에요. 시우 형한테서 얘기 많이 들었는데, 이렇게 만나 뵙게 되니 너무 영광입니다. 혹시 이진 씨랑은.”“이건 씨, 나 돌아가고 싶어요.”시언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이진은 취기를 못 이겨 남자의 가슴에 얼굴을 가볍게 문질렀다.이건의 차가운 표정은 순식간에 눈 녹듯이 녹아내렸다.이건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몸을 숙여 이진을 안았다. 그리고 시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이진을 조수석에 태웠다. 세심하게 안전벨트를 맨 후 무심코 뒤쪽을 스쳐보자, 시언은 방금 자세를 유지한 채 제 자리에 서 있었다.“이건 씨, 얼른 돌아가요.”이진은 아직도 이건에게 바짝 달라붙어 있었다.이건은 시선을 돌려 이진의 희고 정교한 얼굴을 보자 계획이 하나 떠올랐다.‘그동안 결혼식 하나 제대로 치르지 못했는데, 반드시 전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결혼식을 선물해 줄게.’이건이 직접 이진을 데려간 것을 목격한 시언은, 정신을 잃은 듯이 축 처진 채로 시우의 아파트를 찾았다. “민시언?”시우는 갑작스럽게 나타난 시언을 보자 조금 놀란 듯했다.“네가 이곳엔 왜 온 거야?”시언은 쓴웃음을 지으며 물었다.“형, 술 한잔하실 래요?”두 사람은 오랜만에 만났기에 술 한잔하는 것쯤은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하지만 시우는 정희와 함께 임신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최근 술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았다.시언의 상
하룻밤 푹 자고 난 뒤, 다음날 아침 이진은 호텔에서 출발해 학교로 갔다.서현도 마찬가지로 이번 만남을 무척 중시하였다. 그녀는 이진을 만나기 위해 일부러 수업을 오후로 미뤘다.카페에 앉은 서현은 커피잔을 만지작거리더니 웃으며 말했다.“이 대표님, 제가 오만해 보이긴 해도, 평범한 작가들과 비슷한 꿈을 꾸고 있거든요. 제가 쓴 시나리오를 대중들에게 알려, 널리 선보이는 게 제 꿈이에요. 하지만 제가 글을 쓸 때에는 저만의 요구가 있기에, 미리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요.”서현의 요구는 별로 지나치진 않았다. 그저 세훈이 제기했던 요구처럼 원칙적인 문제에 관한 것들이다. 이 방면의 문제는 서현이 말하지 않아도 이진이 끼어들지 않을 것이다.이진이 바로 동의하자 서현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이진의 시원시원한 성격은 전에 그녀를 찾아온 사람들과 사뭇 달랐다.서현은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어제 너무 지나친 행동을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야. 안 그러면 이진 씨처럼 훌륭하신 분을 놓치게 되었을 지도 몰라.’ 세부사항을 토론한 후, 이진은 세훈과 서현을 데리고 원작자를 찾아가 판권을 따냈다.그 후 배우의 캐스팅으로부터 촬영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엄청나게 심혈을 기울였다. 배우들의 캐릭터 소화는 물론, 배우들 사이의 호흡은 날이 갈수록 좋아졌다.몇 달 후, 영화는 이건의 도움으로 성공적으로 상영되었다.의 원작 팬이 워낙 많았고, 호기심으로 본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그러나 영화관을 나설 때 모두 영화 속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정도로 영화에 푹 빠져 있었다.개봉 첫날, 전국의 영화관 티켓은 모두 매진되었다.심지어 대부분 영화관에서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영화를 예정했던 시간보다 더 오랫동안 상영하였다.개봉한지 한 달이 되었을 때, 는 수십 년간 1위를 차지했던 영화를 뛰어넘기도 했다.이 영화의 촬영 제작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도 엄청난 인지도를 가지게 되었다.그들은 마치 다크호스처럼 갑자기 대중들의 시선 속에 나
이진은 말을 마친 후 정희를 데리고 성큼성큼 떠났다.“이진아, 넌 저분이 동의할 거라고 확신하는 거야?”한참을 걸은 뒤 정희가 호기심에 물었다.이진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서현이 딱 봐도 설득하기 어려운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재능이 있는 작가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데, 굳이 모욕을 당하면서 저 여자를 선택할 필요는 없잖아.’정희는 잠시 생각해 보더니 말했다.“내가 연예계에 아는 사람이 꽤나 있는데, 그냥 이서현 말고 다른 작가 소개해 줄까?”“아직은 필요 없어.”이진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아마 날 거절하지 않을 거야.”이진이 거절한 이상 정희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정희가 포기한 채 택시를 잡으려던 찰나, 앞에서 엄청난 비주얼을 가진 키 큰 남학생이 두 사람에게 달려왔다.“예쁜 누나들, 어디 가시려는 거예요?”두 사람을 향해 한 말이지만, 남학생은 줄곧 이진을 훔쳐보고 있었다.이 모습을 지켜보던 정희는 몰래 웃음을 터뜨렸다.“왜요? 학생, 지금 대시하는 거예요?”생각이 들통난 남학생은 부인하기는커녕 겸연쩍은 듯 손을 들어 뒤통수를 긁었다. 그리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누나들은 저희 학교 학생이 아닌 것 같네요.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연락처라도 주시면 안 될까요?”“두 사람 연락처를 모두 받아 가시려는 거예요? 생각보다 욕심이 많으시네요.”정희는 눈썹을 찡긋거리며 장난을 쳤다.그러자 남학생은 볼이 빨갛게 달아오르더니, 용기를 내어 이진에게 핸드폰을 건넸다.“누나, 전화번호 주시면 안 될까요? 절대로 귀찮게 굴진 않을 게요!”‘지금 충분히 귀찮은 것 같은데.’이진은 눈썹을 찌푸리더니 깔끔하게 거절했다.“죄송하지만, 안될 것 같네요.”난생처음 대시를 시도해 본 남학생은, 자신이 이렇게 무자비하게 거절당할 줄은 몰랐다. 남학생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실망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옆에 있던 정희는 차마 이대로 지나치기 힘들어, 가방에서 이진의 명함을 한 장 꺼내 남학생의 손에 쥐여 주었다.“연락처는
이진은 자신의 가장 진실된 생각을 전한 것은 물론, 판권을 반드시 따내려는 결심으로 원작자를 두 번이나 찾아갔다. 결국 원작자는 그녀에게 한 번 만날 기회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진은 이번 기회를 제대로 이용하기 위해, 전에 조사한 자료들을 들고 사람을 찾으러 대학으로 향했다.그녀 스스로 배역을 연구하는 것은 턱없이 부족했기에, 이진은 전문적인 작가를 찾아야 했다. 현재 대학교 교수인 이서현이 가장 좋은 선택지였다.출발하기 전에 이진은 특별히 학교의 포털 사이트를 통해, 서현의 수업시간표를 찾았다. 그리고 교장에게 부탁하여 수업에 참석할 수 있게 되었다.이진의 신분을 알게 된 교장은, 단번에 그녀의 의도를 알아차리고는 두 손 두 발 들어 환영했다.한편 이 일을 알게 된 정희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애초에 이진이 연예계에 투자할 의향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평소에 경제 뉴스밖에 안 보던 이진이 정말 영화를 찍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진심이었던 거야? 왜 갑자기 영화를 찍으려는 거지?’정희는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이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이진아, 네가 의 판권을 따내 영화로 제작한다고 들었는데, 정말 사실이야?”“내가 언제 거짓말한 적 있어?”비행기 탑승 시간이 10분밖에 남지 않았기에, 이진은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끊었다.“나중에 다시 얘기해, 지금.”“너 지금 공항이야?”눈치 빠른 정희는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마침 한가하던 정희는 이진을 따라 서현을 찾으러 갈 생각이었다.‘우리 이진이가 갑자기 영화를 찍다니, 어떻게 된 일인지 내 눈으로 확인해 봐야겠어.’정희는 결정을 내린 듯이 말했다.“이진아, 좀만 기다려 금방 갈게!”정희는 줄곧 생각나는 대로 움직이는 성격이라, 이진은 핸드폰을 거두고 방금 정희의 말을 신경 쓰지 않았다.비행기는 한 시간도 안 되어 착륙했다.이진은 택시를 타고 바로 학교로 향했다. 그리고 사전에 알아보았던 수업시간표를 따라 강의실을 찾았다. 분명 수업이 시작되기까지 시간
이진은 별장을 나선 뒤 홀로 국장의 집으로 향했다.공교롭게도 여태껏 이진을 만나보고 싶어 하던 가정의도 국장의 집에 있었다.하지만 연이은 실패로 가정의도 이진의 성격을 알 수 있었다.이진은 엄청 겸손한 데다가 이건의 아내다. 그녀가 어떤 신분이든 간에, 외부에 자신의 실력을 알릴 생각이 없다면, 가정의도 더 이상 묻진 않을 것이다.두 사람은 자리에 앉은 후, 국장의 건강에 대해 자세히 토론하기 시작했다.옆에 있던 국장은 조용히 듣고 있다가, 때때로 몇 마디 맞장구를 치자 분위기는 매우 화기애애했다.이진은 경계심을 내려놓고 많은 의견을 제기하였다. 국장은 모든 의견들을 자세히 기록하였다.모든 이야기를 마친 후, 국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눈물을 글썽였다.“모두 이진 씨 덕분이에요. 이진 씨가 아니었다면 이 늙은이가 고질병 때문에 죽을 때까지 고생했을 거예요. 어쩌면 어느 날 갑자기.”“국장님, 곧 괜찮아질 테니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이진은 국장의 말을 얼른 끊은 뒤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게다가 할아버지의 친구분이시니, 제가 당연한 일을 한 것뿐이에요. 전엔 제가 생각이 짧은 데다가 일 때문에 바쁘다 보니, 줄곧 시간을 내지 못했는데 너무 탓하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어요.”“탓하다니, 그럴 리가 있겠는가.”‘나한테 이렇게 큰 도움을 줬는데, 고마워하기도 모자랄 판에 탓할 리가 있겠어?’마을의 개발 프로젝트는 정상적으로 진행되었다.이진도 마찬가지로 세훈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이 대표님, 제가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워낙 조건이 후해 거절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더라고요.”진심 어린 이야기를 마친 후, 세훈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을 이어갔다.“하지만 저한테 특별한 요구가 하나 있는데, 이 대표님께서 허락해 주셨으면 좋겠어요.”“어떤 요구죠?”이진은 호기심에 눈썹을 찡긋거렸다.세훈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이 대표님께서 절 좋게 봐주시는 건 알고 있어요. 하지만 영화가 방영되었을 때 괜한 추측들이 떠돌아다니는 것을 방
오 감독은 전략을 바꾸기로 결정 내렸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진에게 사과하기로 한 것이다.이진은 전에 말했던 대로 마음에 들었던 감독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작품마저 몇 개 없는 신인 감독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오 감독은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나처럼 유명한 감독을 마다하고 신인 감독과 합작한다는 거야? 내가 그동안 받은 상이 얼마인데! 이진 그년은 분명 사람 보는 눈이 삐뚤어진 거야! 신인 감독 주제에 얼마나 잘 찍을지 똑똑히 지켜봐야겠어.’오 감독은 불만이 가득했으나 자신의 앞날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이진에게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모두 이진이 예상했던 대로다. 전화를 받은 순간, 이진은 만만에게 눈빛을 보내 모 플랫폼에서 생방송을 시작했다.이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던 오 감독은, 애써 웃으며 이진의 용서를 구하는 척했다.“이진 씨, 전엔 제가 너무 무례한 행동을 보였던 것 같네요. 의 촬영을 양세훈한테 맡길 생각인 거죠? 제가 양 감독을 소개해 줄 테니, 실시간 검색어의 글들을 내려 주시면.”“글을 내려달라고요?”이진은 오 감독이 뜻밖의 비장 카드라도 쥐고 있는 줄 알았다. 그가 이 정도로 파렴치한 인간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지금 말 같지 않은 조건으로 나와 협상하려는 거야?’이진은 마음속으로 차갑게 비웃고는 비꼬듯이 입을 열었다.“오 감독님, 본인이 지금 어떤 처지인지 잊으신 거예요? 지금 저한테 조건을 제기할 것이 아니라 사과를 하셔야죠. 제가 양세훈 감독님을 선택한 건 사실이지만, 제 방식대로 촬영에 참여하도록 설득시킬 것이니, 당신의 도움 따위는 필요 없어요.” “당신, 좋은 말로 할 때 그냥 넘어가지 그래?”오 감독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모욕을 당했기에, 이대로 참고 있을 수 없었다. 결국 위선적인 모습을 집어치우더니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내가 굽신거려주니까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아? 네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모두 윤이건 덕분이라는걸, 내가 모를 줄 알아? 아마 윤 대표한테 들러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