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설아의 눈빛은 김미애와 빈이 사이에서 맴돌다가 나에게로 향했다.“허지영 씨, 어떻게 여기 있어요?”“옷 좀 사러 왔어요.”나는 덤덤하게 말했다.“지영이 좀 봐. 같은 엄마인데도 어쩜 이렇게 다르니. 너도 빈이 데리고 나와 옷도 좀 사주고 그래.”김미애가 자기도 모르게 잔소리하기 시작했다. 사실 난 알고 있었다. 김미애는 그저 민설아가 마음에 들지 않아 일부러 트집을 잡는다는 걸 말이다. 옷을 사는 일 가지고 이렇게까지 유난일 필요는 없었다.게다가 얼마 전까지 민설아는 외국에서 혼자 아이를 키우면서 많은 정성을 쏟았을 것이다.하지만 김미애는 그런 것 따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냥 이렇게 작은 일 가지고도 민설아를 곤란하게 하고 싶어 했다.민설아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배인호를 쳐다봤다. 배인호가 나서서 그녀를 위해 몇 마디 해줬으면 하는 눈빛이었다. 배건호와 김미애는 그의 부모님이었으니 말이다.배인호도 도와달라는 민설아의 신호를 눈치채고는 그제야 입을 열었다.“엄마, 설아도 요즘 출근하느라 바빠요. 얼마 전까지 외국에서 혼자 빈이 보살피면서 신경 많이 썼을 텐데 너무 그러지 마요.”나는 시선을 아래로 향한 채 로아를 김미애에게서 건네받아 안고는 가려고 했다. 이 사람들의 가족 모순에 끼고 싶지 않았다.“혼자 외국에서 몰래 아이를 키우라고 한 적 없어!”김미애는 이 말을 꺼내자 많이 화가 난 듯 보였다. 맞는 말이긴 했다. 배건호와 김미애가 그렇게 손주를 원했는데 민설아는 그들의 유일한 손주를 데리고 외국에 있으면서 그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그렇게 그들은 몇 년 동안 빈이의 성장 과정을 함께하지 못했다.이 말에 민설아도 결국 표정이 변했다. 내 앞에서 그렇게 얘기하니 더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았다.김미애의 말이 너무 심하다고 생각했는지 배인호가 다시 민설아의 편을 들어줬다.“됐어요. 그때는 엄마가 반대하셨잖아요.”김미애가 멈칫하더니 복잡한 표정으로 나를 힐끔 쳐다봤다. 배인호도 뭔가 생각난 듯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난 이
밖은 비가 점점 더 거세지고 있었다. “쏴”하는 소리에 로아도 잠에서 깨고는 까만 눈동자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나도 천둥소리를 무서워하긴 했지만 여리고 가냘픈 아이를 보니 모성애로 더 단단해지는 느낌이었다. 번개가 치려는 기미가 보이자 나는 로아의 귀를 먼저 살포시 막았다.하늘도 무심하시지, 폭우는 빨리 왔다가 빨리 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점점 더 거세지고 있었다. 밖에서 가끔 비를 맞으며 달려가는 사람이 보였다. 비가 너무 크니 시선도 흐릿해진 것 같았다.이때 엄마가 전화를 걸어왔다.“지영아, 어디야? 우산도 안 가져갔는데 어디 가서 비 좀 피해. 로아는 절대 비 맞으면 안 돼.”“네, 알겠어요. 지금 매장에서 비 피하고 있어요.”내가 대답했다.“정 안되면 아빠한테 우산 좀 가져다주라고 할까? 아니면 네가 사든지.”엄마가 몹시 걱정하며 계속 잔소리했다.나는 엄마와 조금 더 통화를 하다가 전화를 끊었다. 그러자 바로 김미애가 입을 열었다.“지영아, 급하면 인호가 우산 사서 차까지 데려다주는 게 어때?”김미애의 말에 민설아는 바로 배인호를 쳐다봤다.김미애는 이 말이 이상하다는 걸 느끼지 못하고 아예 배인호를 재촉하기 시작했다.“빨리 가서 우산 사와. 남자가 돼서 비 좀 맞는 게 어떻다고. 여자와 아이만 안 맞으면 되지.”배인호는 원래도 기분이 좋지 않은데 안색이 점점 더 굳어졌다. 그는 약간은 차가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괜찮아요. 그냥 배달로 우산 하나 시키면 돼요.”내가 바로 거절했다.“뭐 어때? 맞은편이 바로 마트인데. 배달시키면 오는 거 기다려야 되잖아. 비 오는데 얼마나 번거로워. 그냥 인호한테 시켜.”김미애가 기어코 배인호에게 우산을 사 오라고 했다. 아들이 비를 맞아 감기에 걸리면 어쩌지 하는 걱정은 전혀 하지 않는 것 같았다.“그래요, 인호 씨, 어서 가봐요. 지영 씨 애가 아직 저렇게 작은데 잠 많을 때예요. 여기 너무 시끄러워서 집에 빨리 보내주는 게 좋아요. 그래야 집에서도 덜 걱정하지 않겠어요?”민설
“고마워요. 얼른 들어가 봐요. 가서 샤워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어요.”나는 차에 도착해 배인호에게 말했다.배인호는 폭삭 젖은 걸 개의치 않는 듯 덤덤한 표정이었다. 김미애가 배인호를 괴롭히려 하는데 그도 달리 방법이 없었다.“응, 가볼게.”그냥 이렇게 심플하게 대답하고는 우산을 들고 다시 돌아갔다. 나는 장희선에게 로아와 뒷좌석에 앉으라고 하고는 직접 운전해 집으로 향했다.집에 도착해 엄마가 그 인형을 보고는 물었다.“이거 네가 산 거야?”나는 망설이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네.”옆에 서 있던 장희선이 멈칫하더니 뭔가 말하려는데 나의 눈짓에 도로 삼켰다. 장희선은 총명한 사람이라 말하지 말아야 할 일은 입을 다물 줄 알았다.“그러면 왜 승현이는 안 사줬어?”아빠가 이를 보고는 물었다.“그냥 옷 사면서 준 작은 선물이라 하나밖에 없어요. 승현이는 뒤에 내가 더 사주면 돼요.”나는 아무 이유나 찾아서 둘러댔다. 배인호가 사준 인형인 걸 알면 바로 던져버릴 게 뻔했다.나는 마음 깊은 곳에 이 선물을 로아에게 남겨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배인호 사이는 이미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나 돌이킬 수 없지만 아이는 아무 잘못이 없다.나는 이미 배인호가 이 아이들과 관계를 맺을 수 없게 그 권리를 박탈했는데 작은 선물이라도 남기고 싶었다.다행히 엄마 아빠는 더 이상 묻지 않고 그저 인형을 한쪽에 놓아두었다. 사실 로아와 승현이는 아직 너무 작아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 줄 몰랐다. 잘 넣어두었다가 조금 크면 다시 꺼낼 생각이었다.——“지영아, 우범이 지금 어느 병원에서 일해?”3일 뒤 정아가 애들을 데리고 우리 집에 놀러 왔다. 노성민이 요즘 바빠서 정아는 자주 우리 집에 놀러 오곤 했다.“나도 잘 모르겠어. 요새 바빠서 잘 안 와.”나는 과일을 먹으면서 대답했다.사실 이우범에 관해 많이 묻지 않은 건 맞았다. 어느 병원에서 일하는지도 물어본 적이 없었다. 선을 잘 지키고 계획이 명확한 사람이라 내가 관여하지 않아도 잘할 거라고
정아가 만족스럽지 않은 표정이었지만 나는 그래도 더 이상 캐물으려 하지 않았다.이우범과 민설아가 동료가 되었다는 게 나도 마음이 불편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이우범에게 바로 입장을 내놓으라고 할 것까지는 없었다.정아가 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우범이 약간 다급한 기색으로 나타났다.“지영 씨!”이우범은 나를 보자마자 빠른 걸음으로 걸어왔다.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이 시간은 이우범의 근무시간이다.엄마와 아빠는 이우범이 온 걸 보고 바로 물었다.“우범아, 점심 먹었어? 배고프지 않아? 밥 좀 덥혀줄까?”이우범은 복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배고프진 않아요. 그냥 지영 씨한테 할 얘기가 있어서 왔어요.”“그래, 그럼, 얘기 나눠.”아빠는 별다른 생각 없이 로아와 승현이를 데리고 마실을 나갔다.베이비시터도 같이 따라나섰고 집에는 나와 이우범만 남았다.그는 일자리에 관해 설명을 늘어놓았다. 원인은 같았다. 그가 이 일자리를 선택한 건 병원의 종합 실력을 고려한 결과이고 민설아와는 다른 과에 속해 있기에 만날 기회가 적다는 것이었다.아까 민설아가 그의 핸드폰을 만질 수 있었던 것도 병원 전체 회의가 있었기에 우연히 마주친 것뿐이고 또 마침 그가 핸드폰을 떨어트리고 가다 보니 민설아가 주었다고 했다.그러다 내가 전화를 걸었고 민설아가 받게 되었다고 설명했다.너무 많은 우연히 겹쳐 보이긴 했지만, 나는 이우범이 진심으로 조급해하고 걱정하는 걸 보아낼 수 있었다. 그 모습을 한참 지켜보던 내가 말했다.“그럼 맹세해요. 민설아 씨와 우범 씨 사이에 내가 모르는 일은 없다고, 몰래 연락한 적 없다고 말이에요.”이우범이 멈칫했다. 그 순간의 멈칫에 나는 묘한 느낌이 들었고 이에 나는 자꾸만 거슬렸다.이내 그는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혹시 내가 민설아와 떳떳하지 못한 관계일까 봐 걱정하는 거예요?”“아니요. 우범 씨도 알잖아요. 우범 씨가 다른 여자를 만난다고 해도 난 괜찮은 거.”이건 진심이었다.이우범의 웃음이 순간 옅어졌다.
내 말투에서 수상함을 느낀 민설아가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허지영 씨, 저 질투하는 거 아니죠?”민설아는 결국 참지 못하고 자기 생각을 털어놓았다. 내가 그녀를 시기 질투해서 이렇게 비꼬는 줄 알고 있었다.나는 웃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제가 왜 질투하겠어요? 민 선생님, 떳떳해야 걱정이 없어요. 본인이 무슨 짓을 했는지 정말 모르는 거예요?”민설아가 안색이 살짝 변하더니 물었다.“이해가 잘 안 되는데 무슨 소리예요?”“내가 잠수하다가 빠져 죽을 뻔했던 거, 그리고 민 선생님이 구한 그 폐질환 환자, 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잖아요.”나도 더는 숨기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이 두 사건은 민설아가 제일 걱정하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내가 잠수하다가 죽을 뻔한 일은 나도 증거가 없으니, 그녀도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아니나 다를까 민설아는 두 번째 사건만 말했다.“제가 섬에서 여자를 구한 건 사실이에요. 그건 지영 씨도 봤잖아요.”나는 부인하지는 않았다.“맞아요. 봤죠. 별거 아니에요. 그냥 너무 기막힌 우연인 거 같아서요.”민설아가 더 질문하려는데 표창대회가 시작되었고 그녀는 더 이상 여기 앉아 있을 수 없어 그저 복잡한 눈빛으로 나를 한번 힐끔 보더니 걱정을 안고 그 자리를 떠났다..이런 표창대회는 사실 너무 지루했다. 그저 병원 관리자들이 이것저것 칭찬하는 걸 듣는 자리였다. 나는 병원 관계자도 아니고 내 가족이 표창 명단에 있는 것도 아니라서 듣고 있자니 졸음이 쏟아졌다.무대에서 민설아의 소리가 들려와서야 나는 졸음을 몰아낼 수 있었다.모든 사람의 이목이 민설아에게로 쏠렸다. 그녀의 뒤에 서 있는 병원 고위층과 원장도 자애롭고 뿌듯한 표정으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민설아의 명예로운 업적은 그녀에게만 유리한 게 아니라 전체 병원의 명성에도 좋은 영향을 가져다주었다.나는 고개를 돌려 배인호 쪽을 쳐다봤다. 배인호는 무표정으로 무대 위에 선 민설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안색은 예전처럼 도도하다기보다 조금
“도대체 뭐 하자는 거야?”배인호가 화두를 나에게 돌렸다. 미간을 찌푸린 모습이 민설아와 부부처럼 조금 닮아 있었다. 내가 민설아를 ‘괴롭히는’ 걸 두고만 볼 수 없었던 건가? 그래서 마음이 아픈 건가?나는 무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그가 다른 사람 편에 서는 건 이미 습관 된 지 오래다. 저번 생에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서란의 편을 들어줬기에 나는 이미 마음의 준비가 어느 정도 된 상태였다. 지금 이 순간 나는 그저 이 상황이 웃길 뿐이었다.“그냥 민 선생님의 명예로운 업적을 더 명확하게 해주려는 거예요. 무슨 문제 있어요?”내가 되물었다.“그래도 이 자리에선 아니야. 그만해.”배인호의 말투는 엄격하기 그지없었다. 잘못을 저지른 아이를 대하는 것처럼 나를 대했다.이 자리에서 말할 수 없다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걸까.이때 배건호와 김미애가 입을 열었다.“지영아, 말해 봐.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의외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배건호와 김미애는 내 편에 섰다. 내가 이 모든 걸 까밝히면 민설아만 쪽팔리는 게 아니라 배인호의 체면도 구겨지게 된다. 뒤에 민설아가 배인호와 결혼한다고 해도 이는 지울 수 없는 오점이 될 것이다.“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죠?”원장도 더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많은 사람이 지켜보고 있었고 이 일을 선전하기 위해서 기자들까지 불렀는데 이런 사단이 터진 것이다.“그 환자라는 사람 민 선생님이 돈 주고 산 사람일 뿐이에요. 왜 그런 짓을 했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네요. 조사해 보세요.”나는 단도직입적으로 진실을 털어놓았다. 그러고는 민설아가 보는 앞에서 핸드폰을 제일 가까이에 서 있는 사람에게 건네줬다. 그 사람은 멍해서 전화를 받더니 눈이 휘둥그레졌다.다른 사람도 모여들어 내용을 확인했다. 이런 소문은 전해지는 것도 빨랐다. 주변 사람 몇 명만 알아도 자연스럽게 모든 사람이 알게 된다.민설아는 핸드폰을 뺏으려고 했지만 이미 다들 내용을 확인한 후였다.어떤 사람이 정의감 넘치게 외쳤다.“그 환자
나는 오늘 이우범과 같이 오면서 그의 차를 타고 왔다. 차까지 가서야 나는 키가 없음을 발견했다.하는 수 없이 나는 키를 가지러 병원으로 돌아갔다.여기서 출근하는 것도 알고 여전히 심혈관 과에서 일하는 것도 알고 있지만 순간 나는 사무실이 구체적으로 어디 있는지를 몰라 한참을 찾았다.“이우범 선생님 지금 수술 중입니다.”간호사 한 분이 내게 말했다.“알겠어요.”나는 여기서 기다리기보다 차라리 나가서 택시를 부르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사무실에서 나가려는데 이우범의 핸드폰이 테이블에 놓여있는 게 보였다. 아마도 이우범의 자리인 것 같았다.나는 전에 민설아가 그의 전화를 받았던 생각이 나서 홀린 것처럼 그쪽으로 걸어가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나는 핸드폰 잠금번호를 몰랐다. 이우범의 생일을 입력했지만 틀렸다고 나왔다.내 생일, 로아와 승현이 생일을 입력해 봤지만 다 틀렸다.세 번을 잘못 입력해서 10분 뒤 다시 시도하라는 알람이 떠서야 나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의심만 커진 채 사무실에서 나왔다.이우범에 대해 아무런 의심도 없다면 가짜였다. 하지만 그가 애들한테 매우 잘한다는 건 인정해야 했다. 그래서 우리를 해치진 않을 것 같았다.다시 병원에서 나오는데 배건호와 김미애, 민설아는 가고 없고 배인호만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병원 밖 도로의 가로등은 조금 어두웠고 내 시야도 따라서 흐릿해지는 것 같았다. 나는 배인호를 힐끔 쳐다보고는 그를 무시한 채 차를 불러서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다.“잠깐만.”배인호가 나를 불러세웠다.“무슨 일이죠?”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설아에 관해서 얘기 좀 할까?”배인호는 역시나 민설아 때문에 나를 불러세운 것이었다. 나는 일이 그냥 이렇게 해결되고 더는 후속이 없을 줄 알았다.하지만 그건 내 오산이었다.나는 거리감이 느껴지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나는 얘기할 거 없어요. 할 말은 이미 표창대회에서 다 했어요. 그냥 돌아가서 위로해 주는 게 더 좋을 거예요. 다음부터는 돌을 들어 자
배인호는 입을 꾹 다문 채 나를 바라봤고, 나는 그 눈빛이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그 이유는 민설아가 내 자식의 엄마니까, 난 걔가 상처받게 놔두지 않을 거야.”한참 뒤 그는 그제야 내 질문에 대답했지만, 그 대답은 무척 의외였다.그 뜻은, 그가 민설아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보호하기 위함이고, 그 보호하는 이유는 민설아가 자기 아들 빈이의 엄마이기 때문이라고 한다.“민설아 사랑해요?”나는 참지 못하고 그에게 또 물었다.배인호는 그 질문에 또 답이 없었고, 그의 심정은 더욱 복잡해 보였다.그러다 나는 갑자기 나에 대해 궁금하여 이어서 질문했다.“인호 씨, 저한테 아직 감정 남아있어요? 노성민 씨와 협업한 그 프로젝트도 왜 하필 제주도를 선택한 거예요?”그 질문을 던진 후 나는 바로 후회했다. 그렇게 질문을 했다는 건 마치 배인호의 마음을 테스트해 보는 것 같았고, 내가 아직도 그를 좋아해서, 혹시나 나에게 마음이 아직 남아있는지 물어보려는 사람 같으니 말이다.배인호도 깜짝 놀란듯한 표정이었고, 나에게서 이런 질문이 나올 줄 생각지도 못한 느낌이었다.그가 입을 열어 내 질문에 대답하려 할 때쯤, 갑자기 나의 전화가 울렸고, 확인해보니 엄마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지영아, 너랑 우범이 지금 어디야? 아이고, 오늘 로아가 갑자기 엄마, 아빠가 보고 싶은가 봐. 우리가 암만 달래도 달랠 수가 없어!”“베이비시터는?”나는 다급히 물었다.“저녁에 갑자기 몸이 안 좋다고 해서 병원에 가보라고 했어. 집에는 지금 네 아빠와 나 둘만 있어.”엄마가 답했다.“우범 씨는 수술 때문에 아마 안될 거예요. 이따 내가 가서 달랠게요!”나는 아이가 울고 있다는 말에 갑자기 가슴이 아파 나며, 전화를 끊은 뒤 바로 길가에 차 잡으러 갔다.하지만 그 시간대에 차 잡기가 어려웠고, 마치 하나님이 내 시간을 방해하는 것만 같았다.나는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이때 병원에서 민설아가 걸어 나오는 게 보였고, 그녀는 옷을 갈아입은 뒤 큰 검은색 가방을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