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아가 만족스럽지 않은 표정이었지만 나는 그래도 더 이상 캐물으려 하지 않았다.이우범과 민설아가 동료가 되었다는 게 나도 마음이 불편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이우범에게 바로 입장을 내놓으라고 할 것까지는 없었다.정아가 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우범이 약간 다급한 기색으로 나타났다.“지영 씨!”이우범은 나를 보자마자 빠른 걸음으로 걸어왔다.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이 시간은 이우범의 근무시간이다.엄마와 아빠는 이우범이 온 걸 보고 바로 물었다.“우범아, 점심 먹었어? 배고프지 않아? 밥 좀 덥혀줄까?”이우범은 복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배고프진 않아요. 그냥 지영 씨한테 할 얘기가 있어서 왔어요.”“그래, 그럼, 얘기 나눠.”아빠는 별다른 생각 없이 로아와 승현이를 데리고 마실을 나갔다.베이비시터도 같이 따라나섰고 집에는 나와 이우범만 남았다.그는 일자리에 관해 설명을 늘어놓았다. 원인은 같았다. 그가 이 일자리를 선택한 건 병원의 종합 실력을 고려한 결과이고 민설아와는 다른 과에 속해 있기에 만날 기회가 적다는 것이었다.아까 민설아가 그의 핸드폰을 만질 수 있었던 것도 병원 전체 회의가 있었기에 우연히 마주친 것뿐이고 또 마침 그가 핸드폰을 떨어트리고 가다 보니 민설아가 주었다고 했다.그러다 내가 전화를 걸었고 민설아가 받게 되었다고 설명했다.너무 많은 우연히 겹쳐 보이긴 했지만, 나는 이우범이 진심으로 조급해하고 걱정하는 걸 보아낼 수 있었다. 그 모습을 한참 지켜보던 내가 말했다.“그럼 맹세해요. 민설아 씨와 우범 씨 사이에 내가 모르는 일은 없다고, 몰래 연락한 적 없다고 말이에요.”이우범이 멈칫했다. 그 순간의 멈칫에 나는 묘한 느낌이 들었고 이에 나는 자꾸만 거슬렸다.이내 그는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혹시 내가 민설아와 떳떳하지 못한 관계일까 봐 걱정하는 거예요?”“아니요. 우범 씨도 알잖아요. 우범 씨가 다른 여자를 만난다고 해도 난 괜찮은 거.”이건 진심이었다.이우범의 웃음이 순간 옅어졌다.
내 말투에서 수상함을 느낀 민설아가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허지영 씨, 저 질투하는 거 아니죠?”민설아는 결국 참지 못하고 자기 생각을 털어놓았다. 내가 그녀를 시기 질투해서 이렇게 비꼬는 줄 알고 있었다.나는 웃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제가 왜 질투하겠어요? 민 선생님, 떳떳해야 걱정이 없어요. 본인이 무슨 짓을 했는지 정말 모르는 거예요?”민설아가 안색이 살짝 변하더니 물었다.“이해가 잘 안 되는데 무슨 소리예요?”“내가 잠수하다가 빠져 죽을 뻔했던 거, 그리고 민 선생님이 구한 그 폐질환 환자, 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잖아요.”나도 더는 숨기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이 두 사건은 민설아가 제일 걱정하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내가 잠수하다가 죽을 뻔한 일은 나도 증거가 없으니, 그녀도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아니나 다를까 민설아는 두 번째 사건만 말했다.“제가 섬에서 여자를 구한 건 사실이에요. 그건 지영 씨도 봤잖아요.”나는 부인하지는 않았다.“맞아요. 봤죠. 별거 아니에요. 그냥 너무 기막힌 우연인 거 같아서요.”민설아가 더 질문하려는데 표창대회가 시작되었고 그녀는 더 이상 여기 앉아 있을 수 없어 그저 복잡한 눈빛으로 나를 한번 힐끔 보더니 걱정을 안고 그 자리를 떠났다..이런 표창대회는 사실 너무 지루했다. 그저 병원 관리자들이 이것저것 칭찬하는 걸 듣는 자리였다. 나는 병원 관계자도 아니고 내 가족이 표창 명단에 있는 것도 아니라서 듣고 있자니 졸음이 쏟아졌다.무대에서 민설아의 소리가 들려와서야 나는 졸음을 몰아낼 수 있었다.모든 사람의 이목이 민설아에게로 쏠렸다. 그녀의 뒤에 서 있는 병원 고위층과 원장도 자애롭고 뿌듯한 표정으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민설아의 명예로운 업적은 그녀에게만 유리한 게 아니라 전체 병원의 명성에도 좋은 영향을 가져다주었다.나는 고개를 돌려 배인호 쪽을 쳐다봤다. 배인호는 무표정으로 무대 위에 선 민설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안색은 예전처럼 도도하다기보다 조금
“도대체 뭐 하자는 거야?”배인호가 화두를 나에게 돌렸다. 미간을 찌푸린 모습이 민설아와 부부처럼 조금 닮아 있었다. 내가 민설아를 ‘괴롭히는’ 걸 두고만 볼 수 없었던 건가? 그래서 마음이 아픈 건가?나는 무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그가 다른 사람 편에 서는 건 이미 습관 된 지 오래다. 저번 생에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서란의 편을 들어줬기에 나는 이미 마음의 준비가 어느 정도 된 상태였다. 지금 이 순간 나는 그저 이 상황이 웃길 뿐이었다.“그냥 민 선생님의 명예로운 업적을 더 명확하게 해주려는 거예요. 무슨 문제 있어요?”내가 되물었다.“그래도 이 자리에선 아니야. 그만해.”배인호의 말투는 엄격하기 그지없었다. 잘못을 저지른 아이를 대하는 것처럼 나를 대했다.이 자리에서 말할 수 없다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걸까.이때 배건호와 김미애가 입을 열었다.“지영아, 말해 봐.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의외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배건호와 김미애는 내 편에 섰다. 내가 이 모든 걸 까밝히면 민설아만 쪽팔리는 게 아니라 배인호의 체면도 구겨지게 된다. 뒤에 민설아가 배인호와 결혼한다고 해도 이는 지울 수 없는 오점이 될 것이다.“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죠?”원장도 더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많은 사람이 지켜보고 있었고 이 일을 선전하기 위해서 기자들까지 불렀는데 이런 사단이 터진 것이다.“그 환자라는 사람 민 선생님이 돈 주고 산 사람일 뿐이에요. 왜 그런 짓을 했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네요. 조사해 보세요.”나는 단도직입적으로 진실을 털어놓았다. 그러고는 민설아가 보는 앞에서 핸드폰을 제일 가까이에 서 있는 사람에게 건네줬다. 그 사람은 멍해서 전화를 받더니 눈이 휘둥그레졌다.다른 사람도 모여들어 내용을 확인했다. 이런 소문은 전해지는 것도 빨랐다. 주변 사람 몇 명만 알아도 자연스럽게 모든 사람이 알게 된다.민설아는 핸드폰을 뺏으려고 했지만 이미 다들 내용을 확인한 후였다.어떤 사람이 정의감 넘치게 외쳤다.“그 환자
나는 오늘 이우범과 같이 오면서 그의 차를 타고 왔다. 차까지 가서야 나는 키가 없음을 발견했다.하는 수 없이 나는 키를 가지러 병원으로 돌아갔다.여기서 출근하는 것도 알고 여전히 심혈관 과에서 일하는 것도 알고 있지만 순간 나는 사무실이 구체적으로 어디 있는지를 몰라 한참을 찾았다.“이우범 선생님 지금 수술 중입니다.”간호사 한 분이 내게 말했다.“알겠어요.”나는 여기서 기다리기보다 차라리 나가서 택시를 부르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사무실에서 나가려는데 이우범의 핸드폰이 테이블에 놓여있는 게 보였다. 아마도 이우범의 자리인 것 같았다.나는 전에 민설아가 그의 전화를 받았던 생각이 나서 홀린 것처럼 그쪽으로 걸어가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나는 핸드폰 잠금번호를 몰랐다. 이우범의 생일을 입력했지만 틀렸다고 나왔다.내 생일, 로아와 승현이 생일을 입력해 봤지만 다 틀렸다.세 번을 잘못 입력해서 10분 뒤 다시 시도하라는 알람이 떠서야 나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의심만 커진 채 사무실에서 나왔다.이우범에 대해 아무런 의심도 없다면 가짜였다. 하지만 그가 애들한테 매우 잘한다는 건 인정해야 했다. 그래서 우리를 해치진 않을 것 같았다.다시 병원에서 나오는데 배건호와 김미애, 민설아는 가고 없고 배인호만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병원 밖 도로의 가로등은 조금 어두웠고 내 시야도 따라서 흐릿해지는 것 같았다. 나는 배인호를 힐끔 쳐다보고는 그를 무시한 채 차를 불러서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다.“잠깐만.”배인호가 나를 불러세웠다.“무슨 일이죠?”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설아에 관해서 얘기 좀 할까?”배인호는 역시나 민설아 때문에 나를 불러세운 것이었다. 나는 일이 그냥 이렇게 해결되고 더는 후속이 없을 줄 알았다.하지만 그건 내 오산이었다.나는 거리감이 느껴지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나는 얘기할 거 없어요. 할 말은 이미 표창대회에서 다 했어요. 그냥 돌아가서 위로해 주는 게 더 좋을 거예요. 다음부터는 돌을 들어 자
배인호는 입을 꾹 다문 채 나를 바라봤고, 나는 그 눈빛이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그 이유는 민설아가 내 자식의 엄마니까, 난 걔가 상처받게 놔두지 않을 거야.”한참 뒤 그는 그제야 내 질문에 대답했지만, 그 대답은 무척 의외였다.그 뜻은, 그가 민설아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보호하기 위함이고, 그 보호하는 이유는 민설아가 자기 아들 빈이의 엄마이기 때문이라고 한다.“민설아 사랑해요?”나는 참지 못하고 그에게 또 물었다.배인호는 그 질문에 또 답이 없었고, 그의 심정은 더욱 복잡해 보였다.그러다 나는 갑자기 나에 대해 궁금하여 이어서 질문했다.“인호 씨, 저한테 아직 감정 남아있어요? 노성민 씨와 협업한 그 프로젝트도 왜 하필 제주도를 선택한 거예요?”그 질문을 던진 후 나는 바로 후회했다. 그렇게 질문을 했다는 건 마치 배인호의 마음을 테스트해 보는 것 같았고, 내가 아직도 그를 좋아해서, 혹시나 나에게 마음이 아직 남아있는지 물어보려는 사람 같으니 말이다.배인호도 깜짝 놀란듯한 표정이었고, 나에게서 이런 질문이 나올 줄 생각지도 못한 느낌이었다.그가 입을 열어 내 질문에 대답하려 할 때쯤, 갑자기 나의 전화가 울렸고, 확인해보니 엄마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지영아, 너랑 우범이 지금 어디야? 아이고, 오늘 로아가 갑자기 엄마, 아빠가 보고 싶은가 봐. 우리가 암만 달래도 달랠 수가 없어!”“베이비시터는?”나는 다급히 물었다.“저녁에 갑자기 몸이 안 좋다고 해서 병원에 가보라고 했어. 집에는 지금 네 아빠와 나 둘만 있어.”엄마가 답했다.“우범 씨는 수술 때문에 아마 안될 거예요. 이따 내가 가서 달랠게요!”나는 아이가 울고 있다는 말에 갑자기 가슴이 아파 나며, 전화를 끊은 뒤 바로 길가에 차 잡으러 갔다.하지만 그 시간대에 차 잡기가 어려웠고, 마치 하나님이 내 시간을 방해하는 것만 같았다.나는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이때 병원에서 민설아가 걸어 나오는 게 보였고, 그녀는 옷을 갈아입은 뒤 큰 검은색 가방을 한
“네, 저도 알고 있어요. 근데 민설아가 스스로 더는 버틸 수 없다고 하면서 사직하겠다고 하니 별다른 방법이 없죠.”나는 담담하게 답했다.이우범이 현재 나에게 주는 느낌은, 날이 가면 갈수록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전에 이우범이 서란과 협력한 일 또한 나는 잊지 않고 있다. 하지만 현재는 내가 어떻게 거절하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나를 잘해주니, 그걸 가슴 깊숙이 넣어두고 다시 언급하지 않을 뿐이다.“됐어요. 이 일은 여기까지 얘기해요. 민설아가 사직하면 더 좋은 일이죠. 지영 씨도 더는 나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요.”이우범은 내가 의심하고 있다는 걸 눈치챈 듯 나를 향해 웃어 보였다. 그렇게 우리는 더 이상 이 주제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집에 도착해보니, 로아와 승현이는 울음을 이미 그친 상태였다. 하지만 평소에 나와 같이 자는 게 습관이 되었는지, 우리 엄마, 아빠와 같이 잠자리에 들려 하지 않는 것이었다.나는 두 아이를 내 침실로 데리고 들어가 휴식을 취할 준비를 했고, 이우범은 옆집으로 돌아갔다.왜인지 모르게 나는 그날 저녁 잠이 오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계속 이우범과 민설아 사이의 의문이 풀리지 않았고, 직감적으로 그 둘의 관계는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 그렇게 단순한 사이가 아닐 것 같았다.게다가 배인호가 민설아에 대한 태도 또한 내 예상을 벗어났다.이튿날, 그날 저녁에 발생한 일이 뉴스 기사에 떠돌았지만 그렇게 핫이슈는 아녔다. 아마 배인호가 사람을 시켜 입막음시킨 듯했고, 그건 그한테 있어 식은 죽 먹기이다. 그는 자신이 보호하려는 사람이 있으면, 모든 수단을 가리지 않곤 했다.하지만 그 일은 아마 배인호 부모님에게 있어서는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칠 것이다.“인호가 좋아하는 여자는 다 쉽지 않은 인물들이네!”엄마는 뉴스를 보며 재차 감탄하셨다.“그 서란 이라는 애는 아직도 감옥에 있다면서. 이제는 민설아라는 애가 나타난 거야?쟤도 보아하니 쉬운 스타일은 아니네.”그렇다, 민설아는 서란 보다도 더 강한 존재이며 절대 나약한
나는 그들이 우리 집까지 찾아올 줄 생각지도 못했다.게다가 나는 단 한 번도 그들한테 우리 집 주소를 알려준 적도 없었다.“인호가 알려주었어.”배인호 모친은 내가 뭘 생각하고 있는지 이미 알고 있는 듯 바로 답했다.“아저씨, 아줌마. 얼른 들어와 앉아요.”나는 정신을 차리고 얼른 그들을 우리 집 안으로 초대했다. 빈이도 그 뒤를 따라 들어왔고 오늘따라 무척 얌전하였다.배인호 부모님은 거실에 앉았고, 나는 그들에게 차를 준비해주었다. 그리고 빈이에게는 장난감과 간식을 준 뒤에야 나도 그들 맞은 편에 자리 잡고 앉았다.소파 옆에는 그들이 가져온 선물이 있었고, 보기에도 엄청 귀중한 물건 같았다.내가 먼저 그들에게 물었다.“아저씨, 아주머니. 오늘 어찌한 일로 이렇게 갑자기 오셨어요? 오시는 줄도 모르고 아무런 준비도 못 했어요.”“그냥 갑자기 너와 네 부모님도 볼 겸 왔어. 네가 어디 사는지 몰라서 인호한테 물어봤더니, 인호가 여기 알려줬어.”배인호 모친은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답하더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네 아이는?”“베이비시터가 데리고 산책하러 나갔어요.”내가 답했다.“그렇구나. 산책 좋지!”그녀는 비록 답은 그렇게 해도 왠지 모를 실망감이 있는 듯 보였다.설마 로아와 승현이를 보러 온 건가?나는 조금 걱정이 되었다. 로아와 승현이가 나와 이우범의 아이라 했고, 이우범이 친자확인도 했다고 알려줬는데 과연 배인호 부모님은 그걸 믿을지, 어떻게 생각할지 그 누구도 모르니 말이다.이때 빈이가 정원으로 달려나갔다. 나는 다칠까 봐 조금 걱정이 됐지만, 배인호 모친은 되려 나를 말렸다.“괜찮아. 가서 놀라고 해. 어른들 얘기 듣는 거도 재미없을 거야.”그 말이 끝나기 바쁘게 빈이는 다시 들어왔으며, 이번에는 말없이 바닥에 앉아 장난감을 갖고 놀고 있었다.한창 스몰토크 좀 한 뒤에, 배인호 부친 배건호가 나를 찾아온 이유에 대해 말을 꺼냈다.“지영아, 이번에 우리가 너 찾아온 이유는 네가 뭘 좀 도와줬으면 해서 찾아왔어. 네가
나는 산책하러 나갔던 그들이 지금 타이밍에만 오질 않길 바랐지만, 그건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일이 아녔다.배인호 부모님은 두 아이를 보더니 얼굴에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특히 배인호 모친은 유모차 옆에 다가오더니 로아를 들어 안으며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로아도 배인호 모친의 품이 좋은지 울지도 않고 소란 피우지도 않았다. 로아는 동그란 눈망울로 그녀를 바라보며 가끔 몇 마디 옹알이도 선보였다.“아이고, 진짜 이쁘네. 어쩜 이렇게 귀여워!”그 모습을 보고 있던 나와 배인호는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결국은 배인호가 직접 가서 로아를 다시 안아왔다.“엄마 손녀도 아니잖아요. 그러니 앞으로 다시는 지영이 찾아와서 이런 얘기 하지 마세요.”전에 배인호가 매번 로아와 승현이를 안을뻔하다 실패했었지만, 오늘 이런 상황에서 그가 직접 로아를 안을 줄 생각지도 못했다.로아는 작은 꽃무늬가 있는 핑크 점프슈트를 입고 있었고, 도자기처럼 하얗고 사랑스러웠다. 배인호처럼 큰 남자가 로아를 품에 안고 있으니, 마치 쿠션을 들고 있는 것처럼 신체적 차이가 크게 났다.“너 조심해! 아이들 허리는 약해서 허리를 받쳐줘야 한다고!”배인호 모친은 배인호가 로아를 안고 있는 자세가 틀린 걸 보고 다급히 뭐라 하셨다.배인호는 그제야 급하게 그 큰 손으로 자세를 바꿔 안았지만, 아이를 안는 게 아직은 미숙하여 급하면 급할수록 잘되지 않았다. 결국은 로아를 세로로 끌어안았지만, 로아가 몸을 똑바로 세울 수 없어 순식간에 비스듬해졌다.나는 깜짝 놀라 바로 손을 뻗어 로아를 다시 안아왔다.만약 평소에 누가 이렇게 로아를 안았다면, 로아는 아마 불편함에 이미 울기 시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배인호가 이리저리 자세를 바꾸며 안아도 로아는 전혀 울지 않고 오히려 무척 조용했다.나는 마음속으로 알 수 없는 미묘한 감정을 느꼈지만, 입 밖으로 내뱉을 수는 없었다.“나 애를 안을 줄 잘 몰라서.”배인호는 뻘쭘한 듯 나에게 설명했다.“전에 성민이네 애들 몇 번 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