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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남자의 마음 공략법
이 남자의 마음 공략법
작가: 라엘

제1화

후끈거리는 열기가 등을 서서히 감쌌고 뜨거운 숨결이 귓가를 적셨다.

“처음이야?”

낯선 이의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자 온몸이 움찔거려서 감히 소리를 내지 못했다.

임서연은 이 남자가 잠시 동작을 멈추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곧이어 그의 목소리가 전해졌다.

“지금이라도 안 늦었어. 후회되면 나가.”

그녀는 바짝 긴장한 채 두 손을 꼭 잡고 고개를 내저었다.

“후회 안 해요...”

그녀는 18살 한창 꽃 필 나이에 그만...

말로 이루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 온몸에 퍼졌다.

남자의 품에 안긴 그녀는 찢어지는 듯한 고통에 몸을 파르르 떨었다.

마지막 자존심만은 지켜내야 했기에 임서연은 입술을 꼭 깨물고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처음이라는 두려움 외에도 이 남자한테서 전해지는 저돌적인 몸놀림과 놀라운 힘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지칠 줄 모르는 듯 그녀의 몸 구석구석을 거침없이 탐했고 긴긴밤의 고통은 쭉 이어져갔다...

새벽녘, 남자는 드디어 침대에서 일어나 욕실로 들어갔고 임서연도 그제야 지친 몸을 이끌고 겨우 일어나서 옷을 대충 걸치고는 문밖을 나섰다.

호텔 밖에서 그녀에게 이 거래를 소개해준 중년 여자가 임서연이 나오는 걸 보더니 검은 봉투를 쓱 건넸다.

“보수에요. 받아요.”

임서연은 망설임 없이 돈을 받고 하반신에서 전해지는 고통을 아예 무시한 채 부랴부랴 병원으로 달려갔다.

아직 날이 밝지 않아 복도가 유난히 조용했고 수술실 앞에는 들것 두 개가 싸늘하게 놓여 있었다. 돈을 내지 않아 수술실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임서연은 갈기갈기 찢어지는 마음을 뒤로한 채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돈 있어요. 돈 있으니까 얼른 엄마랑 동생 구해주세요...”

그녀는 손에 든 돈을 의사에게 건네며 애원했고 의사는 힐긋 보더니 간호사더러 정산하라고 한 뒤에야 환자를 수술실로 들여보냈다.

하지만 남동생은 안으로 들이지 않았고 이를 본 임서연이 재빨리 앞으로 다가가며 의사를 꽉 붙잡고 애원했다.

“제 동생도 있어요. 제발 꼭 좀 구해주세요...”

이때 의사가 한숨을 내쉬었다.

“유감스럽지만 임서진 씨는 이미 사망하셨습니다...”

‘뭐라고?! 사망?!’

임서연은 순간 벼락을 맞은 듯 머리가 띵해지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심장을 난도질당하듯 고통스러웠고 극한의 고통에 바닥에 주저앉아 온몸에 경련을 일으켰다. 8년 전 그녀가 10살 때, 아빠는 바람을 피우고 그녀와 엄마를 매정하게 버렸다. 그 당시 임신 중이었던 엄마와 임서연은 이 낯선 외국으로 보내졌다.

그 후 동생 임서진이 태어났는데 3살 때 자폐증 증상을 발견했다. 가뜩이나 생활고에 시달리는데 동생의 병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다가왔고 임서연과 엄마 선주영은 이곳저곳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겨우 생계를 유지했다. 그러던 중 교통사고를 당했고 가족도, 돈도, 인간미도 없는 이 해외에서 임서연은 궁지에 몰린 기분이 어떤 건지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그녀는 마지못해 제 몸을 팔았지만 끝내 동생을 살려내지 못했다.

어떤 아픔은 바닥까지 내리치는 아픔이 아니라 가슴이 꽉 막히고 숨을 쉴 수가 없는 아픔이다. 그 순간의 하늘은 회색빛으로 물들고 있지만 그녀에겐 아직 엄마가 있기에 애써 웃으면서 이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엄마는 그녀가 필요하니까.

치료를 받고 엄마의 몸 상태는 많이 좋아졌지만, 동생의 사망 소식을 듣고 난 뒤 멘탈이 무너질 지경이었다.

임서연은 엄마를 꼭 안고 울면서 말했다.

“엄만 아직 내가 있잖아요. 날 위해서라도 열심히 살아가야죠.”

병원에 있는 한 달 동안 선주영은 늘 침대에 앉아 넋 놓고 있었다. 임서연은 엄마가 동생을 향한 그리움에 젖어있다는 걸 잘 안다. 그녀만 아니라면 선주영은 진작 아들 따라 저세상으로 떠났을 것이다. 엄마를 보살피느라 임서연은 학교에서 해고를 당했지만 다행히 엄마의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

음식을 들고 병원에 도착한 그녀는 병실 문 앞에서 이제 막 문을 열려다가 안에서 들리는 말소리에 동작을 멈췄다.

더없이 익숙한 이 목소리, 8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그녀는 여전히 엄마에게 이혼을 강요하던 아빠의 몰골을 잊을 수가 없다.

그들을 이곳으로 보내온 후 단 한 번도 보는 척 않더니 오늘은 왜 갑자기 불쑥 나타난 걸까?

“주영아, 너 애초에 김 회장님 부인이랑 자매처럼 친하게 지냈잖아. 애들 어릴 때 결혼 약속까지 해줬는데 순리대로라면 네가 정한 혼약이니 서연이를 시집 보내는 게 맞겠지...”

“그게 대체 무슨 헛소리야?!”

선주영은 가녀린 몸에 상처가 남아있음에도 그를 때리려고 아등바등했다.

‘짐승만도 못한 놈!’

임국진은 조강지처 선주영과 딸 임서연을 이 낯선 곳에 내다 버린 후 그들의 사활을 전혀 신경 쓰지 않더니 오늘 딸아이를 재벌가에 시집 보내려고 이렇게 찾아오다니?!

“김씨 일가 큰아들은 네 친한 친구 아들이기도 하잖니. 외모도 훤칠하고 김씨 일가의 재력이 어느 수준인지 너도 잘 알잖아. 그리로 시집가면 평생 행복하게 살 거야...”

그의 목소리가 점점 더 기어들어 갔다.

김씨 일가 큰아들은 고귀한 신분에 훤칠한 외모를 지닌 건 사실이다. 하지만 한 달 전 일적으로 해외에 나갔다가 독사에게 물려 신경이 마비되어 걸어 다닐 수도 없고 남자의 기능조차 상실하게 되었다.

그런 남자에게 시집가면 임서연은 평생 생과부로 지내야만 한다.

“시집갈게요.”

이때 임서연이 벌컥 문을 열고 들어와 도시락을 꽉 잡은 채 꿋꿋이 말했다.

“시집갈게요. 대신 조건이 있어요.”

임국진은 8년 만에 보는 딸아이가 조금은 낯선 지 몇 초 동안 머뭇거렸다. 이곳에 보내올 땐 고작 열 살짜리 아이였는데 어느덧 성인이 되어 새하얀 피부에 심하게 야윈 몸을 지니고 있었다. 주먹만 한 얼굴에 삐쩍 마른 몸매,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눈빛은 마치 발육이 덜 된 듯싶었다.

집에 있는 사랑스러운 작은딸과는 전혀 비할 바가 못 됐다.

이에 임국진은 안쓰러웠던 마음이 조금은 가셨다. 어쨌거나 임서연도 너무 예쁜 축은 아니니 설사 남자의 도리를 못 하는 이에게 시집간다고 해도 굳이 그렇게까지 서러운 건 아니니까.

여기까지 생각한 임국진은 나름 괜찮은 거래인 듯싶었다.

“말해. 조건이 뭔데?”

“엄마랑 귀국하고 엄마에게 속했던 물건들, 그 혼수들 전부 돌려주세요. 그러면 시집갈게요.”

임서연은 주먹을 꽉 쥐고 있다가 서서히 마음을 가라앉혔다.

해외로 나온 지 수년째 됐지만 그녀는 어려서부터 B시의 김씨 일가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수십조 자산을 보유한 방대한 가문이니 그런 집안의 자제분도 당연히 신분이 고귀하겠지. 이런 횡재가 임서연에게 차려졌다는 건 그 남자가 말이 안 되게 못생겼다거나 몸에 어떤 결함이 있다는 걸 설명해준다.

하지만 그걸 다 감수하는 조건으로 엄마와 함께 귀국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게 된다. 게다가 잘 이용하기만 하면 엄마가 혼수로 준비해왔던 재산까지 전부 돌려받을 수 있다.

“서연아...”

선주영은 딸아이를 말리고 싶었다. 결혼이란 중요한 일을 이토록 쉽게 정할 순 없으니까.

‘못난 엄마를 만나 이미 충분히 고생이란 고생을 다 겪었는데 결혼까지 희생하게 할 순 없어.’

한편 옆에 있던 임국진은 선주영이 딸아이의 결혼을 말릴까 봐 재빨리 말을 가로챘다.

“좋아. 너만 시집가길 원한다면 국내로 보내줄게.”

“엄마 혼수는요?”

임서연은 명의상의 아버지를 쳐다보며 한없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애초에 선주영이 임국진에게 시집올 때 혼수로 어마어마한 자산을 들고 왔다. 이제 와서 그 자산을 다 내놓으라고 하니 임국진은 아깝고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아빠, 내 동생은 엄청 예쁘겠죠? 그런 애한테는 더 나은 남자가 어울려요. 몸에 결함 있는 남자를 만나면 평생 망치는 거잖아요. 게다가 아빠도 이젠 엄마랑 이혼했으니 애초에 엄마가 임씨 일가에 가져온 자산들 전부 돌려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임국진은 가슴이 찔린 듯 시선을 피하며 감히 그녀를 쳐다보지 못했다.

수년간 해외에 있은 임서연인데 대체 어떻게 김씨 일가 큰 도련님이 성 기능을 잃은 걸 알게 됐을까?

다만 임국진은 전혀 짐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임서연도 단지 추측일 뿐이었다는 것을.

그녀가 비정상적인 남자에게 시집갈 걸 생각하니 임국진은 결국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

“너 결혼식 마치거든 바로 줄게.”

그의 소중한 딸이자 임서연의 이복동생은 절대 성 기능을 잃은 남자에게 시집갈 수가 없다.

아무리 고귀한 신분이라도 부부로서 남자의 도리를 못 하는 건 폐인이나 다름없으니까.

여기까지 생각한 임국진은 좀전의 괴로움이 싹 가셨다.

하지만 속으론 임서연이 좀 더 원망스러워졌다. 오직 그에게서 돈을 앗아내려는 마음뿐이니까.

그는 싸늘한 시선으로 임서연을 노려봤다.

“대체 너희 엄마가 어떻게 키웠길래 예절이라곤 전혀 없어!”

임서연은 간절하게 외치고 싶었다. 아빠인 당신은 책임이 전혀 없냐고? 그녀를 이곳에 버리고 거들떠보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다만 지금은 입밖에 내뱉을 수 없다. 그녀의 손에 쥔 카드가 너무 약하기에 임국진을 건드려봤자 그녀에게 이로울 건 없다.

“다 정리하고 내일 돌아가.”

임국진은 옷을 툭툭 털고 병실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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