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어떻게 치료하면 되죠?”임서연은 말을 더듬으며 그저 간신히 버티고 서있었다.의사는 한숨을 쉬었다.“정신질환은 치료가 쉽지 않은데 하 선생님과 아는 사이고 그분이 정신과 의사이니 도와줄 수 있을 것 같네요.”임서연은 아까 하윤재의 행동을 떠올리며 혹시 그가 뭔가 감지했지만 그녀에게 말하지 못한 건 아닐지 생각했다.“어머니 모시고 정신과 진료를 받아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임서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했다.의사를 돌려보낸 임서연은 바닥에 드러누워 선주영이 자기 얼굴을 할퀴는 모습에 마음이 아파 숨조차 쉴 수 없었다.머릿속에는 그녀가 미쳐 날뛰며 자해하던 모습이 계속 떠올랐다.그날로 선주영은 정신과로 이송되었고 정신 이상 증세를 보이며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정신질환 환자라 가족이라 할지라도 무의식적으로 자해를 하거나 타인에게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일정 기간만 면회할 수 있었다.치료를 위해 외부와 거의 고립된 채로 지내야 했다.병원을 나선 임서연은 선주영과 그녀의 물건을 정리한 뒤 집 계약을 물렸다.문에 새겨진 것들 때문에 집주인은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았다.선주영의 병원비는 모두 하윤재가 먼저 대주었는데 갈수록 그에게 큰 빚을 지는 것 같았다.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차는 저택 앞에 멈췄고 그녀는 가방을 챙겨 택시비를 지불한 뒤 차에서 내렸다.저택 앞에 선 그녀는 한동안 이곳에서 지내야 한다는 사실에 넋이 나가 있었다.집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차 한 대가 들어왔고 이곳에 오래 살지 않았지만 김하준의 차를 알아본 그녀는 가만히 서 있었다.김하준은 차에서 내려 가만히 서 있는 임서연을 바라보며 다소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어디 갔었어?” 병원에 갔지만 그녀는 이미 퇴원했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반나절 동안 어디에 가 있었던 걸까.임서연은 선주영의 일로 이미 몸과 마음이 지친 상태라 굳이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덤덤하게 말했다.“일이 좀 있었어요.”김하준은 얼굴을 찡그렸다. 지금 이게 무슨 태도지?그가 성큼
“엄마, 미안해, 날 포기하지 마...”멈칫한 김하준은 자신의 옷깃을 잡은 그녀의 작은 손을 내려다보았고 시선은 천천히 그녀의 얼굴로 향했다. 어딘가 아픈 듯 아주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김하준은 얼굴을 찡그렸다.“임서연?”임서연은 패닉에 빠진 듯 그 말을 못 들었다. 무척 불안해 보였지만 이내 평정심을 되찾고 김하준을 놓아주며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김하준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2초간 그녀를 바라보다가 돌아서서 방 밖으로 나갔다.백재아는 소파에 앉아 두 손으로 물컵을 꼭 쥐고 있었다. 김하준이 1초라도 더 방에 머물수록 그녀의 마음은 괴로웠다.병원에서 엄마를 돌봐야 할 저 여자가 어떻게 여기로 왔을까.강지우가 임서연에 대해 알아보려 할 때 백재아에게 이를 들켰고 강지우가 A국에 사람을 보내서 임서연에 대한 정보를 조사할 때 백재아 측 사람들이 한발 먼저 도착한 뒤 임서연에게 그 일을 소개한 여자를 죽여버리고 ‘사고’로 위장해 건물에서 떨어져 죽은 것처럼 만들었다.강지우가 그날 밤 일의 가장 중요한 점을 알아내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김하준과 임서연이 함께 보내는 시간이 너무 많아질까 봐 그녀는 일부러 임서연 엄마가 지내는 아파트 사람들을 매수해 험한 말로 선주영이 입원하도록 자극하게 하고 임서연과 김하준이 함께 있는 시간을 줄이려고 갖은 애를 썼다.그런데 그 여자가 병원에 있지 않고 김하준 품에 안겼다.생각하면 할수록 백재아는 속이 무너져 내려 표정 관리조차 잊고 있었다.방 밖으로 나온 김하준은 미처 감추지 못한 백재아의 표정을 눈에 담으며 태연하게 걸어왔다.백재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당장이라도 다그치고 싶었지만 다행히 아직 이성이 남아 있었다.“임서연 씨 어디 아파요?”김하준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소파에 앉아 가늘고 긴 다리를 꼰 뒤 천천히 시선을 들어 온기와 냉기가 섞인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백재아를 바라보았다.백재아는 심장이 목구멍으로 튀어나올 지경이었고 이런 김하준의 모습에 덜컥 겁에 질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의 눈을 마주한 백재아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싸늘한 그의 눈빛에 그녀는 저도 모르게 긴장했다.“난...”문득 평소 얌전하고 단아하던 그녀의 표정이 다소 일그러졌다.“무서워서요, 무서워서 그래요!”그녀는 김하준의 품에서 벗어나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고통스럽게 울먹였다.“당신이 이 땅을 임서연 씨에게 줄까 봐, 임서연 씨가 아내라는 이유로 그 여자를 사랑하게 될까 봐 무서워서 그래요. 그래서 날 버릴까 봐...”백재아는 너무 슬픈 표정으로 서럽게 울면서 말했고 이는 김하준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표정이었다.눈을 질끈 감고 미간을 찌푸린 김하준의 복잡한 표정은 속내를 알 수 없었다.오랜 시간이 흐른 뒤 백재아는 울음에서 흐느낌으로 바뀌었다.그녀는 참을 땐 꾹 참지만 때로는 눈물과 호소로 남자의 마음을 흔들어야 한다는 걸 잘 알았다.눈을 뜬 김하준은 침착함을 되찾고 손을 뻗어 그녀를 다시 품에 안았다.“그렇게 속상해?”백재아는 그의 품에 기댄 채 흐느꼈다.“그냥 당신을 잃을까 봐 무서워서 그래요.”김하준은 한숨을 내쉬었다.“안 그래.”그녀는 조금은 수작을 부리고 계산적이며 겉보기만큼 순수하지 않을지라도 몇 년 동안 그의 곁을 지킨 건 사실이라 김하준도 더 캐묻지 않았다.방안에서 임서연은 휴대폰 벨 소리에 잠에서 깼다.하윤재가 보낸 메시지였는데 자신이 살던 동네 이웃들 사진이었고 사진을 보니 어떤 여자와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았다.이 뒷모습은...임서연은 어딘가 익숙한 것 같았지만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았고 뒷모습의 주인공이 누구일지 고민하고 있을 때 문득 속이 울렁거렸다.“욱...”그녀는 안방을 뛰쳐나가 화장실로 달려간 뒤 세면대 앞에 엎드려 헛구역질했다.거실에 있던 강지우는 임서연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굳어버렸고 화장실 문도 닫히지 않아 엎드린 채 토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무척 괴로워 보였다.“임서연 씨 임신했어요.” 백재아는 구토하는 임서연을 바라보다가 김하준이 모른다고 생각했는지 일부러 그렇게
임서연은 그렇게 문 앞에 서서 백재아를 바라보고 있었다.백재아는 그녀의 시선에 괜히 긴장하며 휴대폰 화면을 슬쩍 봤지만 멀리 떨어져 있어서 휴대폰 안에 무엇이 있는지 볼 수 없었다. 게다가 김하준이 앞에 있으니 화를 낼 엄두도 내지 못한 채 덤덤하게 물었다.“임서연 씨, 왜 그렇게 쳐다봐요?”백재아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임서연은 김하준 앞에서 그녀에게 다그쳐 묻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침착함을 되찾고 그렇게 하지 않았다.백재아는 김하준이 사랑하는 여자였고 설령 그녀가 무슨 짓을 했다 해도 김하준이 어떻게 고작 계약 결혼한 아내를 위해 사랑하는 여자를 벌하겠나.임서연은 손에 든 휴대폰을 꽉 움켜쥔 채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진정하고 백재아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백재아 씨가 너무 예쁜 것 같아서 넋을 잃고 봤네요. 괜찮으시죠?”그렇게 말하며 임서연은 두 사람을 향해 다가갔다가 테이블 위에 놓인 서류에 시선이 닿았고 손을 뻗어 서류를 집어 드니 리버타운 양도 계약서였다.그녀는 시선을 들어 김하준을 바라보고는 웃으며 물었다.“나한테 주는 거예요?”처음부터 끝까지 아무런 동요도 없던 김하준이 덤덤하게 대꾸했고 백재아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크게 떴다.이, 이게 정말 임서연을 위한 거라고? 대체 왜?백재아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임서연은 백재아를 돌아보았다. 분명 화가 나면서도 참는 모습에 속으로 코웃음이 났다.“백재아 씨, 내가 김하준 씨 아내라서 나한테 주는 건데 이 정도는 괜찮잖아요?”백재아는 분노에 몸서리치고 있었다. 이 망할 여자가 뻔뻔하게!감히 김하준의 아내라고 말해? 주제도 모르고!김하준만 없었으면 당장이라도 그녀의 뺨을 후려쳤을 거다!“당연하죠.”백재아는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다.“임서연 씨가 진짜 안주인인데 제까짓 게 뭐라고요...”“백재아 씨는 대표님이 좋아하는 분이고 오랫동안 곁에 있었는데 왜 그렇게 자기를 낮춰요?”강지우는 고개를 들어 임서연을 슬쩍 보았다. 이 여자
이 여자, 표정이 참 순식간에 바뀐다.아까는 상처받아 무너진 모습이었는데 어느새 이렇게 쏘아붙이고 있었다.그녀는 도대체 어떤 여자일까?김하준의 태도는 늘 그의 곁을 따르는 강지우조차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절대 저 두 여자를 같은 공간에 둬선 안 된다는 건 분명하게 알았다.강지우는 앞뒤 상황을 다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똑똑한 그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 처세술을 제대로 알고 있었다.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백재아의 어깨를 두드렸다.“가요.”백재아는 주저했다.김하준의 마음속에서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하지만 김하준이 정말 임서연을 선택하면 완전히 끝장이고 지금까지의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된다. 김하준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김하준이 잘해주는 것도 그날 밤 일과 그동안 따라다닌 정성 때문이었지 호감도 애정도 없었다.감히 도박할 수는 없지만 지고 싶지도 않았다.“난 하준 씨 난처하게 하고 싶지 않아요. 당신이 이겼어요.”백재아는 마지막까지 사람 좋은 소리를 하고 나서야 자리를 떴다.패배를 인정하는 게 아니라 김하준이 난처한 걸 원하지 않는단다.참 착하고 너그러운 여자다.이내 집안은 적막감이 감돌아 아주 작은 숨소리도 선명하게 들릴 정도로 조용했다.이런 분위기가 3분 가까이 이어지자 임서연의 등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한참 후 그녀는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먼저 방으로 가볼게요.”조금 전엔 단지 백재아 때문에 그렇게 행동한 것이고 그녀가 갔으니 자신도 여기 더 남아있을 필요가 없었다.그녀가 막 발걸음을 떼는 순간 김하준이 손목을 낚아채더니 힘껏 당기자 임서연의 몸이 허공을 가르며 그대로 핑 돌아 품에 안겼다.임서연은 본능적으로 저항했지만 손목이 붙잡힌 채 상대가 단단히 옭아매고 있어 움직일 수가 없었다.“뭐 하는 거예요?”임서연은 당황했다.허.“뭐 하긴? 아까는 그렇게 날카롭게 쏘아붙이더니?”김하준이 그녀의 턱을 그러쥐었다.“내가 널 과소평가했어.”백재아가 아니었다면 굳이
김하준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임서연이 자기 위로 쓰러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그녀의 이마가 그의 턱에 부딪히며 생경한 고통이 밀려왔고 그녀의 입술은 그 아래 불쑥 튀어나온 물건에 닿으며 익숙한 듯 낯선 향기가 훅 밀려왔다.임서연은 잠시 굳어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얼른 몸을 일으키고 나서야 자신의 입술이 그의 목울대에 닿았다는 걸 깨달았다.아픈 이마를 어루만지는 그녀의 볼이 화끈거렸다.창피했다.김하준도 조금 전 접촉에 잠시 정신을 잃었다가 천천히 시선을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내가 변태면 넌 뭐야?”임서연이 말하기도 전에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일부러 옷깃을 정리하는 척 손끝으로 임서연이 방금 입 맞춘 곳을 훑더니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우린 부부잖아. 입 맞추고 싶으면 그냥 말해. 나 그렇게 속 좁은 사람 아니야.”임서연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누가 입 맞추고 싶어 한다고!방금 그건 분명 사고였다!“난 당신이랑 입 맞추고 싶지 않아요!”임서연이 고개를 돌리며 서둘러 거실을 빠져나가려는데 소파에 가만히 앉아 있던 김하준은 자신과 입 맞추고 싶지 않다는 그녀의 말에 왠지 화가 나서 비꼬듯 말했다.“그럼 누구랑 키스하고 싶은데?”그는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널 임신시킨 남자?”두려움과 수치심이 파헤쳐지며 피투성이가 된 기분이었다.배 속의 아기가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싶지 않았다.김하준의 차가운 말투에 그녀는 가슴에 둔탁한 아픔만 느껴졌다.분명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은데도 그녀는 애써 센 척을 했다.“당연... 당연히 애 아빠는 좋죠.”그래, 아주 대단한 여자야!“임서연, 나한테 빚진 것 잊었어?”김하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먼지가 묻지 않은 코트 자락을 툭툭 털더니 느긋하게 고개를 들어 침실 문 앞에 굳어 있는 임서연을 바라보았다.“번역가가 필요해. 내일부터 회사로 출근해.”땅 계약서를 넘겨줬으니 그도 바라는 게 있을 것이다.이것만 갚으면 그에게 빚진 것도 없었기에 나쁘지 않았다.“알겠어요.”그
우진경은 한숨을 쉬었다.“다 도련님을 위해서 이러는 거잖아요.”말을 마치고 그녀가 뒤돌아 가버리자 넓은 부엌에는 김하준만 남았고 천장에 드리워진 크리스털 샹들리에가 동그란 빛을 뿜어대며 그를 감쌌다. 그는 브로콜리 한 조각을 입에 넣고 천천히 씹었다.다음날, 김하준이 회사로 출근한 후 임서연도 따라나섰다. 회사에 출근하기로 했으니 레스토랑은 그만두어야 했기에 가서 말해야 했다.현관에서 신발을 갈아 신던 중 우진경이 다가왔다.“외출하세요?”임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외박하지 말고 일찍 들어오세요. 결혼하신 유부녀잖아요.”우진경이 상기시켜 주었다.“네.” 임서연은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갔다.거긴 버스가 없었기에 거리로 나가 택시를 잡고 레스토랑으로 갔다.임서연이 입사하자마자 휴가에 그만두겠다는 말까지 하자 매니저는 당연히 못마땅해했다.“일하기 싫으면 그때 왜 지원했어요? 우리도 일하는 데 문제 생기잖아요.”임서연도 무척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매니저가 굳어진 표정으로 막 보내려는데 점장이 다가와 지금 너무 바쁘다고 말했다.매니저는 임서연을 바라보았다.“지금 먼저 도와주고 한가할 때 가요.”“네.”직업상 윤리에 따라 임서연은 그러겠다 답했고 유니폼을 갈아입으러 갔다. 오늘은 아주 바쁜 날인 것 같았다.“이건 88번 방으로 갖다줘요.”임서연이 음식을 가지러 왔을 때 요리사가 말했고 대답을 마친 임서연이 정교한 음식이 담긴 그릇을 룸으로 서빙하러 갔다.한 손으로 음식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 방문을 열자 밝고 넓으면서도 비밀이 프라이빗한 룸에 마호가니 원탁에는 두 사람만 앉아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은 아는 사람이었다.김하준.서로를 발견한 둘은 그대로 굳어버렸다.헤븐은행 은행장이었던 단철호가 김하준에게 무슨 얘기를 하고 있다가 사람이 들어오니 대화를 멈췄다.임서연은 고개를 숙인 채 들어와 음식을 테이블 위로 세팅했다.“레몬가든에 점점 더 어린 여직원이 들어오네요.”단철호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
후끈거리는 열기가 등을 서서히 감쌌고 뜨거운 숨결이 귓가를 적셨다.“처음이야?”낯선 이의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자 온몸이 움찔거려서 감히 소리를 내지 못했다.임서연은 이 남자가 잠시 동작을 멈추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곧이어 그의 목소리가 전해졌다.“지금이라도 안 늦었어. 후회되면 나가.”그녀는 바짝 긴장한 채 두 손을 꼭 잡고 고개를 내저었다.“후회 안 해요...”그녀는 18살 한창 꽃 필 나이에 그만...말로 이루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 온몸에 퍼졌다.남자의 품에 안긴 그녀는 찢어지는 듯한 고통에 몸을 파르르 떨었다.마지막 자존심만은 지켜내야 했기에 임서연은 입술을 꼭 깨물고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처음이라는 두려움 외에도 이 남자한테서 전해지는 저돌적인 몸놀림과 놀라운 힘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지칠 줄 모르는 듯 그녀의 몸 구석구석을 거침없이 탐했고 긴긴밤의 고통은 쭉 이어져갔다...새벽녘, 남자는 드디어 침대에서 일어나 욕실로 들어갔고 임서연도 그제야 지친 몸을 이끌고 겨우 일어나서 옷을 대충 걸치고는 문밖을 나섰다.호텔 밖에서 그녀에게 이 거래를 소개해준 중년 여자가 임서연이 나오는 걸 보더니 검은 봉투를 쓱 건넸다.“보수에요. 받아요.”임서연은 망설임 없이 돈을 받고 하반신에서 전해지는 고통을 아예 무시한 채 부랴부랴 병원으로 달려갔다.아직 날이 밝지 않아 복도가 유난히 조용했고 수술실 앞에는 들것 두 개가 싸늘하게 놓여 있었다. 돈을 내지 않아 수술실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임서연은 갈기갈기 찢어지는 마음을 뒤로한 채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저 돈 있어요. 돈 있으니까 얼른 엄마랑 동생 구해주세요...”그녀는 손에 든 돈을 의사에게 건네며 애원했고 의사는 힐긋 보더니 간호사더러 정산하라고 한 뒤에야 환자를 수술실로 들여보냈다.하지만 남동생은 안으로 들이지 않았고 이를 본 임서연이 재빨리 앞으로 다가가며 의사를 꽉 붙잡고 애원했다.“제 동생도 있어요. 제발 꼭 좀 구해주세요...”이때 의사가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