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구에서 마주 오는 사람은 키가 크지 않았고 몸매가 수척하여 평범해 보였다.임지환이 아니라면 또 누구겠는가?웃음기가 가득했던 유옥진의 얼굴은 순간 어두워졌고 차가운 냉기를 뿜었다.이 녀석, 일부러 소란을 피우러 온 건가?그녀는 멀리서 손님들과 담소를 나누는 배지수를 보고 몰래 마음을 먹었다.임지환 이 나쁜 녀석이 소란을 피우게 해서는 안 된다!"재수 없는 녀석, 정말 끈질기게 달라붙는구나? 강한에서 여기까지 따라오다니, 대체 무슨 속셈인 거야?"유옥진이 기세등등하게 달려들어 임지환을 막아섰다."엄마, 이 녀석은 그냥 밥이나 얻어먹으러 왔을 거예요."배준영이 옆에서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눈앞에서 주거니 받거니, 말을 하는 모자를 보며 임지환은 담담하게 말했다."외할아버지의 생신을 축하드리러 왔어요.""축하? 네가 그럴 자격이 있어? 게다가 너를 요청한 적도 없는 걸로 기억하는데, 눈치가 있으면 어서 꺼져."배준영은 임지환의 아픈 곳을 찔렀다."오늘은 어르신의 생신이니 당신들과 따지지 않을게요."임지환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말을 마치고 그는 안으로 걸어가려 했다."왜, 말로 이기지 못하니까 그냥 가려고? 오늘 왜 왔는지 이유를 말하지 않으면 떠날 생각 하지 마!"배준영이 임지환의 옷깃을 덥석 잡고 사납게 위협했다."경비는 어딨어? 빨리 와서 사람을 내쫓아요!"유옥진이 큰 소리로 소리쳤다.떠들썩한 소리가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당겼다."무슨 일이냐?"쌍방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을 때 묵직하고 중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유 씨네 가족과 손님들의 안내하에 유가 어르신 유복주가 지팡이를 짚고 걸어왔다."아버지!""외할아버지!"유옥진과 배준영은 안색이 갑자기 변하더니 바로 임지환을 놓았다."이게 무슨 일이냐?"팔순이 된 유복주는 백발이었지만 그래도 정정하다.팔순 잔치에 이런 상황이 벌어지니 그의 표정은 조금 엄숙해 보였다."아버지. 저 사람이 손님으로 사칭하고 여기서 얻어먹고 마시려 했어요. 우리한테 들통났는데도 아직 인
이혼은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니 그녀도 주동적으로 유 씨 가족에게 알리지 않았다."오늘 내 생일이니 오는 사람은 모두 손님이다. 사람을 밖으로 내쫓는 법이 어디 있냐. 게다가 임지환도 반은 유가네 사람이야."유복주는 임지환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오늘 걱정하지 말고 여기에 있거라. 누가 감히 더 말한다면 쉽게 용서하지 않을 것이야!"어르신은 비록 연세가 드셨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우렁찼다."어르신, 감사합니다."임지환은 고개를 끄덕이고 손에 든 상자를 어르신에게 건네주었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이것은 제가 드리는 선물입니다. 꼭 받아주시길 바랍니다.""신경을 썼구나! 얘야."유복주는 무심히 상자를 건네받아 사람들 앞에서 천천히 열어보았다.짙은 청옥과도 같은 빛을 내뿜고 있는 환약이 사람들의 시선에 들어왔다.가장 가까이에 있는 유복주는 은은한 용의 그림자가 그 속에서 움직이는 것을 어렴풋이 본 것 같았다.그러나 순식간에 그 모습은 사라졌다.유복주는 눈이 침침해진 것인지 확인하려 눈을 비볐다.그러나 아무리 장수단을 쳐다봐도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진 용의 그림자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그는 손을 뻗어 장수단을 들어 올렸다. 그 순간 차가운 기운이 손에 닿았고 코끝에 놓고 가볍게 냄새를 맡자 산뜻한 향이 코를 찔렀다.향이 몸속으로 들어간 순간 유복주는 몸이 갑자기 가벼워지고 마치 몇 살 젊어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정말 좋은 선물이구나."유복주가 감격에 겨워 임지환을 바라보았고 눈빛에는 칭찬이 담겨 있었다."단지 이 물건이 무엇인지 모르겠구나.""어르신, 이것은 제가 어르신의 팔순 잔치를 위해 특별히 만든 장수단입니다. 어르신께서 백세까지 장수하시고 건강하시기를 축원합니다!"임지환이 공손하게 말했다."좋다! 좋아! 장수단이라니, 신경을 많이 썼구나!"유복주는 환하게 웃으며 기뻐했다.이 장수단은 향을 맡기만 해도 온몸이 상쾌해지는데 복용까지 한다면 정말 장수할 수 있을지 모른다.임지환이 이런 약을 선물로 꺼낸 것으로 보아 결코
"만주 실업 회사의 이 회장님!""빈주 약업의 김 사장님!""중주 그룹의 박 사장님!""이 사람들 모두 젊은 나이에 성공하셨고 얼굴이든 실력이든 다 당신 같은 촌놈과는 하늘과 땅 차이야! 무슨 자격으로 저분들과 비교할 수 있어?"유기린은 자세히 그들의 신분을 일일이 알렸다.그에게 거론된 사람들은 조금도 화를 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얼굴에는 오히려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이 사람들은 모두 유가와 사업상의 거래가 있고 관계를 더 가까이하려 생신을 축하드리러 왔다.그들은 유가 도련님이 그들의 기세를 빌어 임지환이 상황 파악을 하고 물러가게 하려는 것을 알고 있다!"나는 누구와도 비교할 필요가 없어."임지환이 고개를 저었고 표정은 담담했다."흥, 다른 사람과 비교할 능력은 있고?"유기린은 그를 비웃었다. 임지환의 온몸에서 내세울 만한 것이 고집스러운 입뿐이라고 느꼈다."기린아, 적당히 해."유옥수가 그를 꾸짖은 뒤 임지환에게 웃으며 말했다."지환아, 아직 아이니까 절대 화를 내지 말거라. 아직 어리다 보니 철이 들지 않았어!""괜찮아요. 개가 짖는다고 생각할게요."임지환은 어깨를 으쓱했다."누구한테 개라는 거야?"유기린은 이 말을 듣고 얼굴이 화로 인해 터질 지경이었다.유옥수의 안색도 어두워졌고 마음속에 화가 났다.자기 앞에서 자기 아들을 개라고 욕하는 것은 그를 돌려 욕하는 것과도 같지 않은가?"지환은 말도 참 재밌게 하는구나."유옥수는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오늘 온 손님이 너무 많으니 너를 직접 챙기지 못하겠구나. 알아서 편한 대로 하렴!"말을 마치고 그는 몸을 돌려 다른 손님들을 맞이했다.임지환은 대수롭지 않고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니 정말 그에게 화를 내면 오히려 자신의 체면을 잃을 것이다.그러나 마음대로 하는 것이 익숙한 유기린은 화를 참을 수 없었다.그는 눈을 데굴 굴리더니 무언가 생각난 듯 말했다."임 씨, 초대장으로 들어왔다고 했으니, 초대장 좀 봐도 될까?"임지환은 의심 없이 초대장을 건네주었다.초대
"아니면 설마... 이 모든 것을 저 임 씨와 짜고 일부러 유가를 난처하게 한 건가요?"유기린은 배지수를 쳐다보며 웃는 듯 마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아니..."배지수와 같이 눈치가 빠르고 말을 잘하는 사람도 사촌 동생의 말로 인해 말문이 막혔다."지수야, 괜히 끼어들어서 뭐 해?"유옥진이 배지수를 곁으로 잡아당기고 입을 열어 권유했다."이 기회를 빌려서 기린이 임지환 저 나쁜 녀석에게 본때를 보여주게 놔둬!""누나, 이 일은 결국 유가의 체면과도 관계가 있어. 만약 임지환을 도와 사정한다면 유가의 체면을 구기는 거라고!"배준영도 옆에서 말렸다."하지만..."배지수는 임지환을 힐긋 보고 망설이는 표정을 지었다.바로 그때, 유기린은 갑자기 눈앞이 흐릿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바로 앞에 누군가가 와있었다."뭐 하려는 거야?"유기린은 코앞까지 다가온 임지환을 보고 깜짝 놀랐다.임지환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쏜살같이 유기린의 손에서 초대장을 빼앗았다.그리고 그는 한 손으로 유기린의 머리를 누르고 다른 한 손으로 초대장을 천천히 열었다."보고 싶다며? 그 바보 같은 눈을 크게 뜨고 똑똑히 봐봐."호흡곤란을 느낀 유기린은 무의식적으로 눈을 부릅뜨고 초대장을 바라보았다.금박으로 장식된 세 글자가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임 대사?유기린은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눈알마저 튀어나올 뻔했다.센터 섬에서의 결전에서 임대사는 단번에 종사 조성균을 호수에 걷어찼고 이내 은침 하나로 그를 죽였다!종사의 결전은 이미 소항 사람들 사이에서 소문이 자자하다.심지어 유기린 본인조차도 임대사의 뒷모습만 보고 사람들 앞에서 그날 보고 들은 것을 자랑하고 다닐 정도였다.임지환같이 쓸모없는 녀석이 임대사라니?절대 그럴 리가 없다!"기린아, 왜 그래?"배지수가 궁금하여 물었다."그는... 그는..."유기린은 임지환을 가리키며 말도 더듬었다."도대체 누군데?"배지수가 추궁했다."그가 바로 임..."바로 그때 로비 문밖에 서 있던 호텔 직원이 갑자
"임 선생님, 역시 여기에 계셨군요!""저희가 얼마나 찾았는지 모릅니다!"세 사람의 말투는 아주 공손했고 심지어 겸손함도 담겨 있었다.주위 사람들은 이 장면을 보고 다들 이상하게만 느껴졌다.임지환은 세 사람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나한테 볼일 있나요?""그날 일은..."안양인이 입을 열자마자 강제로 끊겼다."오늘은 다른 일을 언급하지 마세요. 만약 생신을 축하드리러 온 것이라면 어서 어르신께 인사하러 가시고 생신을 축하하러 온 게 아니라면 빨리 돌아가요!"임지환의 말투는 비할 데 없이 차가웠다."임 선생님, 저희는 바로 인사를 올리러 가겠습니다."세 사람은 그의 말을 듣고 시선을 마주치더니 이심전심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임지환이 부인하지 않은 이상 묵인과도 같다."성진 주식 조 사장님 오셨습니다.""찬성 엔터테인먼트 화 사장님 오셨습니다!""화성 철도의 한 사장님 오셨습니다!""..."또 한바탕 높은 목청으로 손님을 소개했고, 호텔 직원의 목청은 흥분으로 인해 쉬었다.한분 한분 명성이 자자한 인물들의 소개와 입구에서 들어오고 있는 낯선 얼굴들을 보고 있자니 유옥수는 물론 유 어르신도 어리둥절할 따름이다.유가가 아무리 잠재력이 있다고 해도 소항 이외의 큰 인물들까지 오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조 사장님과 화 사장님은 대소시에서 모두 10위권에 드는 기업가들입니다. 한 사장님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실권을 쥐고 있는 큰 인물이죠!"이미 도착해 있던 소항의 유명 인사들은 모두 뜨거운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유씨 집안 가족은 놀라움으로 넋을 잃다 다급히 입구로 달려가 그들을 맞이했다."임 씨, 너 아주 간덩이가 부었구나? 감히 임 대사를 사칭하다니. 그럼, 나랑 내기할래?"유기린이 갑자기 차갑게 웃었다.임지환은 그를 힐긋 보고 난 후 신경 쓰지 않았다."만약 저 큰 인물들이 너한테 인사를 올리게 할 수 있다면 바닥에 엎드려서 강아지처럼 짖을게! 하지만 해내지 못한다면 강아지 분장을 하고
"둘째 도련님은 이번에 몇백억 대의 돈을 들여 선물을 준비했으니 원하는 것도 많을 겁니다! 설마, 유가와 정략결혼을 하려는 건가요?""유가네 딸 유아연이 부대에서 명성이 자자하다고 들었는데, 둘째 도련님은 틀림없이 그녀를 위해 왔을 거예요.""아니에요! 설마 잊었어요? 지금 자리에 유가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아가씨가 한 명 더 있잖아요!""..."모두의 시선이 저도 몰래 배지수를 향했다.뭇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배지수는 조금 부끄러웠다.그녀는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진운을 바라보며 표정에는 불안함과 동시에 은근히 기대를 품고 있었다.이 멋지고 재벌 집에서 태어난 도련님이 설마 그녀를 위해 특별히 온건...앞으로 다가가자, 진운은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그리고 거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유복주 앞으로 가 공수했다."유 어르신, 항상 만수무강하시고 자손 대대로 복을 누리십시오."그 모습을 보고 배지수는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러나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옅은 상실감이 솟아올랐다."우리가 생각이 많았나 봐요. 둘째 도련님도 그냥 어르신의 생신을 축하하러 왔을 수도 있어요!""둘째 도련님이 바보도 아니고. 몇백 억대의 선물을 보내왔으니, 정략 결혼이 아니라고 해도 분명 다른 의도가 있을 거예요!""무슨 이유든 이번에 오길 참 잘했어요, 정말 좋은 구경을 하는 것 같아요.""..."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진운에게 향했다.그가 보낸 선물이 너무 귀중하다 보니 사람들로 하여금 온갖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유복주는 눈앞의 이 젊은이를 보며 궁금한 듯 물었다."진가 도련님이 오기만 해도 기쁠 텐데 왜 이렇게 귀중한 선물까지 가지고 온 것인가?""배지수 씨의 친구니까 이렇게 생신을 축하드리러 왔습니다. 선물은 작은 성의일 뿐이니 받아주세요."진운은 차분하게 답을 했고 말에는 빈틈이 없었다."지수였구먼. 지수가 그런 마음이 있는 줄은 몰랐네!"배지수를 바라보는 유복주의 눈빛에는 뿌듯함이 조금 담겨있었다."어서 자리에
배준영과 유옥진 모자는 서로 눈을 마주쳤고 안색이 창백해졌다.‘임지환 저 병신이 정말 오늘 변신을 하는 건가?’아니... 절대 그럴 리가 없다!"대체 다들 어떻게 된 겁니까? 유 어르신의 생신을 축하드리러 왔는데 왜 다들 나한테 오는 거죠?"임지환은 미간을 찌푸리며 별로 기뻐하지 않는 모습이었다."아..."장도행도 눈치가 빠르고 노련하다 보니 바로 알아차렸다. 그는 아주 협조하는 모습으로 말했다."아, 맞네. 중요한 일을 잊고 있었네."유복주는 지팡이를 짚고 장도행 앞으로 걸어가 공손한 말투로 말했다."장 회장님, 어서 와서 자리에 앉으세요... 그렇지 않으면 모두 젓가락을 움직이지 못할 겁니다!"말을 마치고 그는 임지환을 보며 상냥한 말투로 말했다."지환아, 오늘 내 옆에 앉거라. 오늘 술 한 잔 함께 마시자!""뭐?"유 씨 가족은 모두 놀라서 넋을 잃었다.상석은 소항에서 제일가는 큰 인물들에게 남긴 것이고 심지어 유 씨 가족조차도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었다.임지환이라는 전 외손자 사위가 그 자리에 앉을 자격이 있겠는가?"어르신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당연히 따라야지요!"임지환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다들 자리에 앉게!"유복주는 손을 흔들고 메인테이블로 향했다.그가 자리에 앉고 나서야 현장에 있던 손님들이 차례대로 자리에 앉았다."저 녀석은 대체 무슨 운으로 메인테이블에 앉는 거야?"다른 테이블에 앉은 유기린은 화가 치밀어 올랐고 임지환이 유독 눈에 거슬렸다."아무도 널 벙어리라 생각하지 않을 테니 작작 좀 말해."유옥수가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지수야... 저 임지환은 어떻게 장도행을 알게 된 거야?"유옥성은 너무도 궁금했다."저도 잘 모르겠어요."배지수는 눈살을 찌푸렸다.그녀는 여전히 마음속으로 임지환이 대체 임대사가 맞는지 생각하고 있다."쓸데없이 운이 좋았나 보죠."배준영이 콧방귀를 뀌고 말했다."어차피 아무리 잘났다 해도 둘째 도련님과는 비길 수 없어요.""맞아! 지수한테 어울리는 사람은
임지환이 목소리를 낮추고 한마디 물었다.진운은 주변을 힐긋 보고 난 뒤 이내 답했다."임 선생님, 잠깐 자리를 옮겨 이야기합시다."임지환은 고개를 끄덕이고 진운과 그나마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방금 경천 아저씨가 돌아와서 할아버지께서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알려줬어요. 아마 바로 연경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아요!"진운의 표정은 아주 엄숙했고 우려도 담겨 있었다."어르신의 몸은 나의 치료를 거쳤기 때문에 다시 병이 날 수 없어요. 혹시..."임지환의 눈빛은 굳어졌고 갑자기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경천 아저씨는 어디에 있죠?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 합니다.""지금 성운 호텔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어요."진운이 답했다."그러면 먼저 돌아가요. 나도 바로 뒤따라갈게요."임지환이 말했다."네. 그럼, 경천 아저씨와 함께 호텔에서 기다릴게요, 임 선생님!"말을 마치고 진운은 빠른 걸음으로 호텔 연회장 밖으로 걸어갔다.임지환은 상석으로 돌아와 유복주에게 공수했다."어르신, 정말 죄송합니다. 급한 일이 있어 먼저 가야 할 것 같습니다.""지수는 네가 가는 것을 알고 있니?"유복주가 물었다."음... 알 겁니다."임지환이 멋쩍게 웃으며 거짓말을 했다."그래, 그럼 가거라."유복주가 고개를 끄덕였다."잠깐!"임지환은 몇 걸음 가지도 못하고 어르신의 부름으로 걸음을 멈추었다."어르신, 부르셨어요?"임지환이 고개를 돌려 물었다."기억하거라. 유가의 대문은 영원히 너를 향해 열려 있다!"유복주의 목소리는 굵직했고 자리에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들을 수 있게 했다."어르신의 말씀을 꼭 기억하겠습니다!"임지환은 마음이 따뜻해졌고 정중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난 뒤 다시 연회장을 떠났다.메인테이블의 큰 인물들은 임지환이 떠나는 것을 보고 갑자기 자리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 그리고 연이어 핑계를 대고 떠나갔다.팔순 잔치의 음식도 모두 나오지 않았지만, 손님들은 이미 절반이 떠나갔다.유 어르신은 상황을 보며 어쩔 수 없이 쓴웃
자리에 앉은 후, 양쪽은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마쳤다.“민수 씨, 보아하니 이 지역 사람은 아닌 것 같네요?”임지환은 아무렇지 않은 척 슬쩍 물었다.육민수는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목을 적시고 말했다.“저는 백운산에서 내려왔습니다. 이번에 내려온 건 여행을 통해 자신을 단련하기 위해서입니다.”“여행이라고요?”임지환은 순박한 표정을 짓고 있는 육민수를 보며 살짝 놀란 듯 물었다.“맞습니다, 이번이 산에서 처음 내려오는 겁니다.”육민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스승님께서 배울 건 거의 다 배웠으니 나머지는 여행을 통해서만 성장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그래요? 그렇다면 민수 씨는 은둔한 검수란 말이군요. 근데 민수 씨 등에 멘 그 상자 속에는 대체 어떤 절세 명검이 숨겨져 있는 겁니까?”임지환은 차를 든 채로 무심하게 말했다.윙!임지환의 말이 끝나는 순간, 맞은편에 앉아 있던 육민수의 표정이 돌연 엄숙해졌다.육민수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임지환을 노려보며 물었다.“당신은 대체 누구입니까?”“왜 그러죠?”임지환이 담담하게 되물었다.“어떻게 내 상자 속에 검이 들어 있는 걸 알았습니까? 설마 날 계속 미행해 온 겁니까?”육민수는 칼집에서 칼날이 뽑혀 나온 듯한 기세를 뿜어내며 사람을 압도하는 무시무시한 위압감을 발산했다.“진정해요, 난 당신에게 악의는 없어요.”임지환은 아무렇지 않은 듯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느긋하게 말했다.“왜 내가 상자 속에 있는 게 명검이란 걸 아는지 궁금한가요? 내가 그냥 추측한 거라면 믿을 수 있나요?”“믿습니다.”몇 초 동안 고민하던 육민수는 고개를 끄덕였다.임지환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민수 씨, 당신은 생각보다 훨씬 똑똑하군요.”육민수는 임지환을 지긋이 바라보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당신도 생각보다 훨씬 더 속이 깊은 사람이군요.”“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자세히 들어보고 싶군요.”임지환은 육민수에게 차를 따라주며 말했다.“세속의 일반인들은 그렇게 쉽게 검수의 존재를 알아채지
“넌 누구야? 이 녀석을 감싸려는 거야? 내 신발은 200만 원짜리 신발이야. 네 몸에 걸친 그 싼 구제 옷이랑은 비교도 안 된다고.”장해수는 임지환을 힐끔 보며 코웃음을 쳤다.비록 임지환은 육민수보다 훨씬 더 정상적인 사람 같아 보였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걸친 걸 다 합쳐도 10만 원이 넘지 않을 것 같았다.장해수는 이런 사람은 신경 쓸 필요도 없다고 여긴 것이다.“겨우 200만 원 갖고 이렇게 화내? 큰돈도 아니잖아.”이때 이청월이 뒤따라와 말했다.그러고는 손에 들고 있던 샤넬 가방에서 돈뭉치를 꺼내어 바로 옆 빈 테이블에 올려놓았다.이청월의 행동은 아주 자연스럽고 매끄러웠다.“헉... 이렇게 예쁜 여자가 있었나?”장해수는 임지환이 가리고 있던 시야에서 벗어난 이청월을 보자마자 시선을 이청월 몸에서 뗄 수 없었다.식당 안에 있던 다른 남자 손님들도 이청월의 뛰어난 외모를 보며 잠시 넋을 잃었다.이렇게 아무런 성형 수술 흔적도 없이도 자연스럽게 아름다운 여성은 요즘 시대에 참 보기 드물었다.사람들의 시선은 곧 임지환의 저렴한 옷차림으로 옮겨졌고 속으로는 질투가 활활 타올라 임지환을 모욕하기 시작했다.“또 여자 등쳐먹는 기생오라비야? 저렇게 예쁜 여자가 왜 저런 녀석이랑...”“아가씨 체면을 봐서 이 돈은 받아둘게. 근데 이건 만 원이 안 되잖아.”장해수는 순식간에 돈을 세어보곤 다시 빈정거렸다.그 돈뭉치는 60만이었고 장해수가 요구한 금액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었다.“네가 신은 신발이 진품이라 해도 최대 40만 원 정도일 거야. 더군다나 너 그거 짝퉁이잖아.”이청월은 냉정하게 말을 이었다.“그러니까 60만 원이면 충분하고도 남아.”“밥은 아무렇게나 먹어도 말은 함부로 하면 안 돼. 무슨 증거라도 있어? 내가 신은 신발이 짝퉁이라는 걸 입증할 증거 말이야.”장해수는 이청월의 정곡을 찌르는 말을 듣고 내심 당황했다.사실 이 신발은 장해수가 8만 원 주고 산 고퀄리티 짝퉁이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절대 그걸 인정할 수 없었다.
“손대지 마!”남자가 황급히 소리쳤지만 이미 한발 늦었다. 하얀 머리 청년은 손으로 검은 천을 살짝 벗겨냈다.윙!임지환은 갑자기 오싹한 냉기가 식당을 감도는 기묘한 기운을 느꼈다.다시 집중해서 감지하자 그건 다름 아닌 예리한 검기였다.남자는 하얀 머리 청년의 손목을 꽉 잡았고 아까와 달리 부드럽던 눈빛이 확 차갑고 날카로워졌다.“내 물건에 손대지 마. 안 그러면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남자는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차가운 목소리로 경고했고 하얀 머리 청년의 손을 밀어내고는 다시 조심스럽게 검은 천을 덮으며 소중한 물건을 다루듯 정성스럽게 접었다.그 과정을 마친 후, 남자의 차가웠던 눈빛은 다시 온화하고 순박한 모습으로 돌아왔고 조그마한 살기도 없는 사람처럼 무난해 보였다.“겨우 너덜너덜한 상자 하나 가지고 뭘 그렇게 유난이야?”하얀 머리 청년은 비웃으며 말을 이었다.“날 이렇게 툭 쳐놓았으면 적어도 사과는 해야 하는 거 아니야?”“어떻게 사과하면 되겠어?”남자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내 이 신발은 한정판이야. 200만 원이 넘는다고. 근데 네가 이렇게 더럽게 만들었으니 내가 어떻게 신고 다니겠냐고?”하얀 머리 청년은 뻔뻔하게 말했다.“그럼... 내가 어떻게 하길 원해?”남자는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자기가 잘못한 게 맞다고 인정하는 듯했다.하얀 머리 청년 장해수는 흡족한 표정으로 웃으며 남자를 내려다봤다. 이 남자가 마을에서 처음으로 시내로 올라온 촌스럽고 순진한 사람이라 살짝 겁주기만 하면 쩔쩔맨다는 걸 알아차렸다.“간단하지. 신발값 물어내.”장해수는 의자를 하나 끌어다 앉아 다리를 꼬았다.“난... 돈 없어.”남자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이제야 남자는 돈이 없으면 영웅도 꼼짝 못 한다는 말이 실감 나는 것 같았다.“돈 없다고? 돈도 없으면서 음식점에 들어와? 난 네가 진짜 돈이 있든, 없든 하나도 상관없어. 오늘 신발값 물어내지 않으면 경찰 불러서 널 잡아넣을 거야.”장해수는 계속 몰아붙였다.“이 사람
“안 돼, 꼭 한 입 먹어봐. 안 그러면 내가 직접 먹여줄 거야.”이청월은 고귀한 신분을 자랑하는 여왕처럼 임지환에게 명령하듯 말했다.“그럼... 알았어.”이청월의 기대에 찬 눈빛을 보며 임지환은 마지못해 한 입 떼어먹었다.“어때? 너무 맛있지?”이청월은 기대에 가득 차서 물었다.“괜찮네...”임지환은 대충 웃어넘기고는 이내 물었다.“얼마나 더 걸을 거야?”“왜? 벌써 지친 거야?”이청월은 앞을 내다보고는 웃으며 말했다.“저 앞에 괜찮아 보이는 식당이 있는데 저기서 저녁 먹고 호텔로 가는 게 어때?”“그러자!”임지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세 번 절하고 아홉 번 꿇는 것까지 견뎠는데 이 정도는 문제도 아니었다.두 사람은 함께 운우 골목에 위치한 “천향 식당”에 들어갔다.식당 내부는 고풍스럽게 꾸며져 있었고 값비싼 홍목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었다. 심지어 최고급 백단향이 타오르고 있었다.아마도 이 과시적인 분위기에 관광객들이 약간 눌린 것인지 레스토랑 내부는 손님이 많지 않아 비교적 조용했다.임지환과 이청월은 2층에 올라가 자리를 잡고 음식을 주문했다.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심심한 이청월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놀고 있었다.임지환은 본능적으로 주위를 둘러보다가 곧 시선을 한 사람에게 고정했다.임지환의 시선을 잡은 사람은 식당 입구에 서 있던 한 남자였다.임지환이 특별한 취향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 남자가 너무 독특했기 때문이었다.남자는 우람진 체형에 날카로운 눈매와 눈동자를 가졌고 온몸에서 강렬한 고수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하지만 그 남자는 딱 봐도 특이한 헝겊으로 된 긴 상의와 긴 바지를 입고 있었고 발에는 헝겊신을 신고 있었다.남자의 등에는 길쭉한 상자를 검은 천으로 싸서 메고 있었는데,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었다.그 기묘한 차림 덕분에 임지환은 물론, 주위 사람들의 시선도 당연히 한 몸에 받았다.하지만 남자는 부끄러운 듯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고 식당 안쪽을 향해 바라
“나더러 제자를 받으라고?”임지환의 표정이 묘해졌다.전에 소태진이 제자 타령하더니 이번엔 이민재가 이러네...임지환은 이 노인들이 그렇게도 할 일이 없는 건지 궁금해졌다.“안 받아!”임지환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거절했다.이민재는 임지환이 이렇게 단칼에 거절할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해 잠시 멍해졌다.이래 봬도 명의라 불릴 만큼 명성이 자자한 자기가 어디를 가든 분명 환영받고 존중받을 정도인데 임지환에게 이토록 매정하게 거절당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거절하는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이민재는 조심스럽게 이유를 물었다.“넌 너무 늙었고 못생겼잖아. 내가 원하는 건 미인이란 말이야. 그런데 내가 어떻게 너한테 관심이 생기겠어?”임지환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네?”이민재는 입이 떡 벌어져 말을 잇지 못했다.설마 자기가 단호하게 거절당한 이유가 늙고 못생긴 데다 미인이 아니기 때문일 줄이라니, 놀라울 따름이었다.이청월이 옆에서 웃으며 입을 열었다.“영감, 내가 좋은 방법 하나 알려줄까?”“무슨 방법인데요?”이민재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물었다.“외국에 가서 성전환 수술하고 얼굴 리프팅까지 하고 오면 돼. 그러면 내가 임지환에게 널 제자 삼으라고 말해볼게.”이청월은 말을 마치자마자 배를 잡고 웃음을 터트렸다.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허청열과 화도윤도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고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체면을 생각해서 억지로 웃음을 참았다.“당신들... 이건 너무하잖아요! 제자를 안 받는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사람을 모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이민재는 눈을 부라리며 씩씩댔고 분노가 가득 찬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다.평생 힘들게 쌓아온 명성이 오늘 하루 만에 모두 날아가는 기분이었다.“아직도 모르겠어? 내가 널 제자로 안 받는 이유는 네가 미인이 아니거나 늙어서도 아니야.”임지환은 조금 모자란 바보를 보는 듯한 눈빛을 보이며 고개를 저었다.“그럼 도대체 왜 안 받는 겁니까?”이민재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임 대사, 정말 고맙습니다. 도윤아, 날 대신해서 임 대사를 정성껏 대접해라!”화연평은 그제야 임지환의 말을 따라 침대에 편안하게 누우며 화도윤에게 조용히 당부했다.임지환과 이청월도 더 이상 화연평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고 방을 나섰다.“임 선생님, 제가 자인 호텔에 방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지금 당장 사람을 보내 안내해 드리겠습니다.”화도윤이 싱글벙글 웃으며 얼른 쫓아 나와 임지환에게 말했다.“필요 없어. 우리가 직접 거기로 갈 테니 넌 여기서 화 장군님을 잘 돌봐.”임지환은 손을 흔들며 거절했다.“임지환, 우리가 간만에 금릉에 왔잖아. 제대로 한 번 쇼핑도 하고 맛있는 것도 사 먹자.”이청월은 지금 상황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그래, 네 말대로 하자.”임지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잠깐! 두 분, 멈춰주세요!”두 사람이 막 떠나려 할 때 이민재가 허겁지겁 뒤쫓아왔다.“이 침왕, 아직도 볼 일이 남았나요?”화도윤의 이마에 주름이 잡히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아까 이민재가 저지른 실수 때문에 아버지가 자칫 죽을 뻔했으니 화도윤의 마음속엔 여전히 이민재에 대한 불만이 남아 있었다.이민재가 의술로 유명하지 않았다면 이미 저택에서 쫓아냈을 것이다.“임 선생님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이민재는 아까와는 다르게 공손한 태도로 존댓말까지 써가며 말했다.“부디 가르침을 부탁드리겠습니다.”“뭘 묻고 싶은 거야?”임지환은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화 장군님 체내의 사악한 기운을 도대체 어떻게 제거하셨는지 궁금합니다.”이민재는 진심으로 지식에 굶주린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제가 침을 놓을 때 장군님 체내의 생기를 운용해 분명 어느 정도 효과를 보였는데 왜 결국엔...”“내가 왜 너에게 말해줘야 하지?”임지환이 이민재의 말을 끊었다.“그건...”이민재는 그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임지환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굳이 자기에게 말해줄 필요가 없다는 걸 이민재는 알고 있었다.“저는 의사로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
“아악!”비명이 또 방에서 들려왔고 이번엔 더 고통스럽고 무시무시했다.“날 들여보내 주세요!”화도윤은 방 안에서 들려오는 처절한 비명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화 회장님, 죄송합니다만, 그럴 순 없습니다.”허청열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화도윤을 막아섰다.“허 교관! 넌 정말 이대로 우리 아버지를 죽게 내버려두겠다는 건가?”화도윤의 눈은 핏발이 서서 당장이라도 누군가를 물어뜯을 것 같은 야수 같았다.“저도 물론 장군님이 돌아가시는 걸 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임 선생님 외에는 누구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임 선생님이 허락하기 전까지는 누구도 들어가게 놔둘 순 없습니다.”허청열은 이를 악물고 단호하게 말했다.옆에 있던 이청월의 얼굴도 창백해졌다. 방 안에서 들려오는 비명이 너무나도 끔찍했기 때문이었다.“이대로 가다간 나조차도 장군님의 생명을 지탱하기 어려울 겁니다.”이민재는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내 생각엔 먼저...”“끄악!”다시 한번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고 방 안은 곧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고 더 이상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화도윤과 허청열은 그대로 굳어버렸고 할 말을 잃었다.“어휴... 이젠 무슨 말을 해도 늦었습니다.. 당신들, 사람을 잘못 믿은 겁니다.” 이민재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끼익...”바로 그때, 임지환이 문을 열고 나와 태연한 표정으로 물었다.“방금 뭐가 늦었다고 했어?”“넌 실력도 부족하면서 괜히 잘난 척하다가 화 장군님을 네 손으로 죽인 거야. 이제 어떻게 수습할지 지켜보겠어.”이민재는 냉랭하게 비웃으며 재밌는 구경이라도 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임 선생님...”허청열이 조심스럽게 앞으로 다가와 조급한 얼굴로 물었다.“걱정 마, 장군님 체내의 사악한 기운은 내가 이미 완전히 제거했어. 이제 장군님 생명에는 더 이상 지장이 없을 거야.”임지환은 표정 변화도 없이 차분하게 대답했다.“정말입니까?”“임 선생님, 그 말씀, 정말입니까?”화도윤과 허청열은
“만약은 절대 없습니다!”화도윤의 눈빛이 갑자기 날카로워지며 은은하게 살기가 서렸다.“이 영감탱이가 아직도 제정신이 아니네. 말을 왜 이 따위로 해? 네가 실력이 바닥을 친다고 해서 임지환 실력도 바닥을 친다는 도리는 없잖아!”이청월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임지환을 깎아내리는 말이라 곧바로 받아쳤다.“이 버릇없는 계집, 닥치지 못해? 난 아직 네 죗값도 묻지 않았어!”이민재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번 손을 들었다.“이 침왕, 자중하십시오.”둘을 지켜보던 허청열이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이청월 앞을 막아섰다.허청열의 몸에서 칼날이 칼집에서 막 빠져나오기 직전인 듯 날카로운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좋아요, 저 녀석이 진짜 화 장군님을 살려낸다면 이 부러진 손은 그냥 넘어가 주겠습니다. 하지만 살려내지 못한다면 화 선생은 더 이상 이 일에 관여하지 않길 바랍니다.”이민재는 속으로는 불만이 가득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이민재도 바보는 아니었기에 허청열과 싸워봤자 손쉽게 당할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콜록콜록...”방 안에서 갑자기 거친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그 기침 속에는 피를 토하는 소리까지 섞여 있는 듯했다.화도윤의 얼굴이 굳어지며 안으로 뛰어들 듯이 몸을 움찔했다.그러나 허청열이 화도윤을 막아섰고 고개를 저으며 냉정하게 말했다.“화 회장님, 임 선생님의 허락 없이는 우리가 밖에서 기다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알겠네.”화도윤은 어쩔 수 없이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지금, 화도윤은 임지환에게 모든 희망을 걸 수밖에 없었다.한편, 방 안에서 오랜 시간 거친 숨을 몰아쉬던 화연평이 마침내 힘겹게 피곤이 가득한 눈을 떴다.화연평은 희미하게 보이는 임지환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임... 임 대사, 고... 고맙습니다.”“화 장군님, 아직 고마워하실 필요 없습니다. 치료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조금 고통스러울 수도 있으니 꾹 참고 견뎌주시길
“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난 의사로서 수십 년간 수많은 생명을 구했고 의학계에서 꾸준히 명성을 쌓아왔어. 오늘 너 같은 풋내기에게 내 명예를 더럽히게 둘 수는 없어!”이민재는 수염을 부들부들 떨며 분노로 눈이 뒤집혀 거의 쌍욕이라도 할 듯한 기세였다.“이 영감탱이가 어쩜 이렇게 말이 안 통하지? 환자가 너 때문에 병이 더 악화했는데도 뭐라 하지 말라는 거야?”이청월은 눈을 부릅뜨고 이민재에게 쏘아붙였다.이민재가 일반 사람들에게는 오랜 명성을 자랑하는 침술의 대가일지 몰라도 이청월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중요한 건 단 하나, 임지환을 건드리는 건 절대 안 된다는 것뿐이었다.“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야?”이민재는 이청월을 가리키며 화가 치밀어 올라 말을 잇지 못했다.“지금 화 장군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인데 넌 환자를 살릴 방법을 찾기보다 네 명성 걱정부터 앞서는구나. 내 생각엔 넌 그냥 명예에만 집착하는 돌팔이야!”이청월의 말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고 말 한마디 한마디가 이민재의 급소를 정확히 찔렀다.“어디서 나타난 계집이 감히 어르신에게 말대꾸를 해? 오늘 내가 네 부모를 대신해 제대로 교육해 주마!”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이민재는 더 이상 체면 따위는 개의치 않고 손을 뻗어 이청월을 때리려 했다.하지만 이민재의 손이 이청월에게 닿기도 전에 임지환이 그의 팔을 단단히 붙잡았고 가볍게 힘을 주었다.딱!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민재의 팔이 임지환의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그대로 부러지는 소리였다.“아악!”이민재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팔을 부여잡았고 그의 얼굴은 분노와 고통으로 붉게 달아올랐다.허청열과 화도윤은 이 광경에 놀라서 숨을 들이쉬며 얼굴이 창백해졌다.임지환의 행동은 너무나 대담했다. 침술의 왕이라 불리는 이민재의 팔을 부러뜨리다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이 일이 의학계에 널리 퍼지기라도 하면 임지환은 의학계 전체의 적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허 교관, 지금부터 난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