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연이 남편이 고등학교 동창이라며? 진짜 너무 부럽다!”“냄새 좀 맡아봐. 분장실이 아주 그냥 커플들 냄새로 진동을 한다.”“시연아, 결혼하자마자 바로 이렇게 촬영팀 합류해도 돼? 남편이 뭐라 안 해?”“바보냐? 진짜 뭐라 하고 싶었으면 꽃을 보냈겠어?”“...”김시연은 자신과 연도진의 관계를 외부인들에게 알리기도 싫었고 연도진의 체면을 살려줄 마음도 없었다. 남들의 눈을 피해 연도진이 보내준 꽃다발을 쓰레기통에 박아버린 김시연은 그 사진을 찍어 연도진에게 전송했다.하지만 연도진에게서는 아무런 답장도 오지 않았다.이튿날, 김시연은 또 꽃다발을 받았다.꽃의 종류는 달랐지만 신선한 꽃들이 만개한 것이 여전히 아름다웠다.꽃다발 가운데는 여전히 엽서 한 장이 꽂혀있었다. 엽서에 적힌 내용도 어제와 같았고 또 손글씨로 적혀 있었다.김시연은 또 동료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으며 복잡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그녀는 또다시 기회를 엿봐 꽃을 쓰레기통에 버린 후, 그 사진을 찍어 연도진에게 전송했다.연도진은 여전히 답장이 없었지만 꽃다발은 계속해서 배송되었다.꽃다발이 오는 횟수가 점점 늘어나자 동료들의 반응도 점점 식어갔다.“시연아, 남편이 너무 잘 해주는 거 아니야? 드라마 종영할 때까지 계속 보내주려는 건 아니겠지?”호텔로 돌아온 김시연은 연도진에게 카카오톡을 보냈다.“이제는 꽃다발 보내지 마. 정말 그렇게 주고 싶은 거라면 차라리 돈으로 줘.”“...”이튿날, 일을 마친 김시연이 휴대폰을 확인해보니 연도진에게서 9만 9천 6백 원이 입금되어있었다. 그리고 추가요청사항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나의 예술가에게(내가 주고 싶어서)’산부인과 정기검진 날이 되자 부승민은 온하랑과 함께 병원을 방문했다.복도에서 휴식을 취하며 결과를 기다리고 있던 온하랑의 눈에 익숙한 사람의 모습이 들어왔다.“수현 씨?”그 소리에 서수현이 고개를 돌려 조금 통통하게 부풀어 오른 온하랑의 아랫배를 바라보며 말했다.“하랑 씨? 정기 검진받으러 오셨구나. 축하
다음날 오전, 부승민은 부시아와 함께 온하랑을 데리고 부현승의 집으로 향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온하랑은 서수현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수화기 너머의 서수현이 말했다.“하랑 씨, 죄송한데 지금 어디 계세요? 혜민이 집에 도착하셨어요?”온하랑은 창밖을 내다보더니 말했다.“아니요, 아직이요. 지금 봉천로 쪽인데, 무슨 일이세요?”“제가 탄 택시가 지금 교통사고가 나서요. 경인로랑 신림로 교차로 쪽에 있거든요. 지금 다른 택시를 탈 수가 없는 상황이라 같은 방향인데 저 좀 태워주실 수 있나 해서요.”서수현이 있는 위치는 온하랑이 부현승의 집으로 가기 위해 꼭 지나야만 하는 곳이었다. 게다가 굳이 먼 길로 돌아갈 필요도 없는 곳이었다.“지금 큰아버지랑 같이 계세요?”“저 혼자예요. 아버지는 오늘 같이 못 오신대요.”“알겠어요.”온하랑은 긍정의 대답을 내놓았다.“그럼 거기서 잠깐 기다리실래요? 저희 10분 정도면 도착할 것 같거든요.”“다행이네요. 고마워요, 하랑 씨.”웃으며 전화를 끊은 서수현의 눈빛이 복잡해 보였다.만약... 만약 그녀의 생각이 맞다면 서혜민은 파티장에서 절대 자신을 마주치고 싶지 않아 할 것이다.서수현이 파티 현장에 나타난다고 해도 서혜민의 아이에게 다가갈 수는 없을 것이다.그러니 서수현은 꼭 온하랑과 함께 가야만 했다.15분 정도가 지나자 자동차 한 대가 천천히 서수현 앞에 멈춰 섰다.뒷좌석 창문이 내려가더니 온하랑의 아름다운 얼굴이 드러났다.“수현 씨, 타요.”서수현은 그녀의 등 뒤로 보이는 부승민을 발견하자마자 침을 꿀꺽 삼켰다.“네.”온하랑, 부승민과 부시아는 뒷좌석에 앉았고 서수현은 자연스럽게 조수석에 앉게 되었다.부현승과 서혜민은 한 층에 한 집뿐인 고급 아파트의 20층에서 살고 있었다.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부현승은 온하랑과 부시아가 손을 잡고 내리는 것을 발견했다. 그 두 사람의 뒤로 부승민도 함께 등장했다.부현승은 그들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네며 부시아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형,
“...”서명철이 먼저 아이를 언급하며 서수현의 뜻대로 행동했다.“거참 잘된 일이네요. 요즘에 예쁘고 잘생긴 거 마다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아기 지금 깨어있나요? 가서 보고 싶은데.”“지금은 안 자고 있을 겁니다.”부현승이 안방을 가리키며 말했다.“안방은 저쪽이에요.”또 한 명의 손님이 집으로 방문하자 부현승은 부승민과 함께 손님맞이에 정신이 없어 보였다.서수현은 주위를 쓱 둘러보다가 온하랑이 기품 있는 한 중년의 여인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그 여인이라면 서혜민과 부현승의 결혼식장에서 본 적이 있었다. 부현승의 어머니였다.그때는 멀리서만 보고 자신이 사는 집의 집주인 아줌마와 닮았다고만 생각했는데 가까이에서 보니 더 닮은 것 같았다.서수현이 그들에게로 걸음을 옮겼다.“하랑 씨.”온하랑과 안미영의 시선이 일제히 서수현에게로 향했다.안미영이 놀란 기색으로 물었다.“수현이? 네가 여긴 어쩐 일이니?”“아줌마, 정말 아줌마셨네요. 하마터면 못 알아볼 뻔했잖아요!”서수현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저 혜민이랑 제 조카 보러 왔죠.”안미영은 서수현의 성씨를 떠올려보더니 뒤늦게 서혜민과 서수현이 친척 사이라는 것을 깨닫고 웃으며 말했다.“거긴 하랑이랑 같이 가면 되겠네. 난 계속 손님 맞이해야 해서.”“네, 알겠어요.”서수현은 그렇게 온하랑과 함께 안방으로 향했다.문을 열어준 것은 서혜민의 엄마인 정은경이었다.서수현은 정은경을 마주하자마자 인사를 건넸다.“숙모, 안녕하세요.”“수현이 왔구나.”그 말을 들은 서혜민의 표정이 미세하게 떨렸다.서수현이 여긴 왜 왔지?설마...“혜민이랑 아이 보러 왔어요.”온하랑을 이미 한 번 본 적이 있던 정은경은 그녀가 부씨 가문 쪽의 친척이라는 것을 알고 웃으며 대답했다.“들어와요.”“언니, 아가씨.”서혜민이 웃는 얼굴로 두 사람에게 인사를 건넸다.서수현은 서혜민의 표정을 보며 은근슬쩍 책임을 물었다.“혜민아, 내 조카한테 이렇게 큰 행사가 있었으면서 왜 나한테
온하랑이 자신의 아랫배를 가볍게 문지르며 뭐라도 배우려는 듯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준서는 지금 모유랑 분유 섞어서 먹고 있는 건가요?”정은경이 입을 열려던 그때 서혜민이 먼저 입을 열며 고개를 끄덕였다.“네, 그렇게 먹이는 게 아이랑 엄마한테 다 좋다고 들어서요.”서수현은 서혜민의 당황스러운 표정을 발견하고 일부러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너무 이른 거 아니야? 다른 사람들 보니까 보통 6개월은 지나고 나서 분유 먹이던데.”“다 상황이 다르잖아. 이래도 문제없다고 의사 선생님이 그러셨어.”서혜민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싸늘해지더니 더는 이 주제에 관해 얘기하고 싶지 않다는 기색을 비쳤다.정은경이 급히 분위기를 바꾸려 노력했고 서수현도 다른 쪽으로 신경을 돌리며 방금 한 질문이 별 의미 없었던 것인 양 행동했다.하지만 온하랑은 그 가운데서 어딘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모유에는 아이에게 필요한 영양분과 면역 성분들이 들어있어 갓 태어난 아이에게는 최적의 음식이었다. 아무리 분유를 모유처럼 만들었다고 해도 결국 모유와는 어느 정도 차이가 존재하는 법이다.게다가 부준서는 조산으로 태어난 아이였던 탓에 태어난 후에도 인큐베이터에 며칠 동안 머물며 보살핌을 받았고 지금도 아이는 또래 아이들보다 말라 있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당연히 모유 수유가 분유보다 좋은 게 인지상정인데 어떻게 이렇게 빨리 분유만 먹이기 시작했을까?이상한 생각이 뇌리를 잠깐 스쳤지만 온하랑은 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아마도 서혜민이 아이에게 먹이는 분유가 모유를 대체할 수 있을 만큼 비싸고 영양성분도 가득한 것이리라 생각했다.11시쯤 되자 손님들은 덕만각으로 이동해 파티를 시작했다.서수현은 밥을 먹으면서도 안미영의 동향을 살폈다.파티가 거의 끝나갈 무렵, 서수현은 안미영이 화장실 쪽으로 이동하는 걸 바라보았다.그녀는 곧장 젓가락을 내려놓았다.두 사람은 화장실 세면대에서 우연히 마주쳤고 자연스레 인사를 주고받았다.안미영이 웃으며 물었다.“수현아, 오늘 음
안미영은 초반에 이 모든 일이 다 서혜민이 뭔가를 숨기기 위해 꾸민 것이 아닐까 싶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그 생각은 곧 사라지고 말았다. 친자확인 검사로 이 아이가 정말 부현승의 아이가 맞다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아이가 몇 시에 태어났는데요?”안미영은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결국 대답해주었다.“저녁 7시.”서수현이 출산한 지 4시간이 지난 후였다.서수현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왜 서혜민이 조산을 했던 걸까? 그것도 하필 부씨 가문 사람이 없을 때.왜 젖이 나오지 않는 걸까?그야 서혜민이 낳은 아이가 아니기 때문이겠지!비록 실질적인 증거는 없었지만 이 모든 이상한 점들이 서수현에게 서혜민이 안고 있는 아이가 사실은 자신의 아이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게 했다.병원에서는 서수현에게 그녀의 아이가 사산되었다고 얘기해주었지만 그저 봉투만 살짝 열어 아이를 보여주었다.하지만 그 아이가 꼭 서수현의 아이일 것이라는 보장이 있을까?출산 전, 모든 검사가 순조로웠다.서수현이 실수로 넘어졌을 때, 그녀는 곧바로 구급차를 불러 제때 병원으로 옮겨졌고 병원 도착 골든타임도 늦지 않았다. 그게 아니었다면 구급차에 함께 올라탄 의사와 간호사가 차 안에서 그녀의 출산을 도와주었을 것이다.서혜민은 서수현의 임신 사실을 언제 알게 된 걸까?그리고 왜 그런 짓을 저지른 걸까?그 아이는 애초에 부씨 가문의 아이가 아니었다. 언젠가 부현승에게 들킬 것이 두렵지도 않았던 걸까?안미영은 멍하니 있는 서수현의 모습을 보며 물었다.“수현아, 내가 너무 쓸데없는 소리를 많이 했니?”안미영과 서혜민은 단순히 집주인과 세입자의 관계였지만 서수현과 서혜민은 함께 자라온 사촌 사이었다.안미영은 서수현이 서혜민에게 이 이야기를 할지 말지에 대해 딱히 신경 쓰지는 않았지만 서수현이 자신을 심술궂은 시어머니로 볼까 봐 조금 걱정이 되었다.“그럴 리가요? 혜민이가 실수한 건 맞지만 아이는 무사하잖아요. 잘 먹이고 잘 키운다면 분명 아무 문제 없을 거예요.”
안방에서 잠깐 봤던 것만으로는 부준서의 얼굴을 자세히 보지 못했다.부현승이 서수현을 슬쩍 쳐다보며 말했다.“이제 태어난 지 한 달밖에 안 됐는데 누구랑 닮았는지 어떻게 알아요?”“그럼 준서는 저를 닮은 게 맞아요.”“... 정말요?”서수현이 부현승을 바라보았다.조금 전에는 분명 아직 알 수 없다고 얘기했으면서 이젠 또 닮았다고 주장하는 게 틀림없이 아무렇게나 말하는 게 분명했다.“정말이죠. 왜요?”부현승이 미간을 찌푸리며 서수현을 바라보았다.서수현은 이 일에 더 이상 집착하지 않기로 하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혜민이 모유가 안 나온다고 들었어요. 보통 적게 나오는 경우는 있어도 아예 안 나오는 경우는 없거든요.”“혜민이, 계단에서 굴러떨어졌다가 조산하게 된 거잖아요. 게다가 아줌마랑 이사님이 계신 곳에서 제일 멀리 떨어진 병원으로 갔고 아줌마가 병원에 도착했을 땐 이미 아이를 다 낳은 후였다고 했죠. 이상하지 않아요?”서수현의 말을 더 듣고 싶지 않았던 부현승은 덤덤한 표정으로 서수현을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겁니까?”차 안의 분위기는 축 가라앉았다.앞 좌석에 있던 운전기사는 튼 숨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했다.그는 자신에게 권위적인 여인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 궁금해진 운전기사는 귀를 기울여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듣고 있었다.서수현은 진지한 표정으로 부현승을 바라보며 말했다.“혜민이 임신한 적 없어요. 임신했다고 해도 유산됐을 겁니다. 준서는 이사님 아이가 아니에요. 혜민이가 다른 곳에서 데려온 아이죠.”말이 끝나자 차 안은 바늘 하나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릴 것 같은 적막이 흘렀다.부현승은 놀란 듯한 눈으로 서수현을 바라보며 믿을 수 없다는 웃음을 흘렸다.“그렇게 위험한 일을 할 리가 없잖아요. 친자검사 한 번 하면 바로 들통날 일인데. 이렇게 한다고 혜민이한테 좋을 게 뭐가 있다고 그래요?”“아줌마가 혜민이 마음에 안 들어 하셨잖아요. 준서를 낳고 혜민이가 부씨 가문
“솔직히 얘기해줄래요?”조금 전, 서수현은 단호한 태도로 부현승에게 친자확인 검사를 해보라고 얘기했고 친자 확인서를 봤을 때는 꽤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이 단순히 연기하는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서수현이 고개를 푹 떨군 채 침묵을 지키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부승민, 민지훈과 관련된 일이라 그런지 서수현은 그날의 일을 절대 털어놓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지옥 같았던 경험은 더더욱 얘기해줄 수 없었다.부승민을 떠올리자 서수현은 그가 자리를 뜨기 전, 마지막으로 마주쳤던 눈빛을 떠올렸다. 부승민은 마치 서수현이 무슨 일을 하려는지 다 알고 있는 듯한 사람처럼 느껴졌다.사실 친자확인 결과가 진짜라는 것에는 두 가지 가능성이 존재했다.첫 번째로는 서수현의 추측이 틀렸다는 것이다.그리고 다른 한 가지 가능성은 그날 밤 자신을 강간했던 사람이... 부현승이었다는 것이다...이 생각이 들자 서수현은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이 가능성은 서수현이 줄곧 무시해 왔다. 부현승처럼 정직하고도 다정하고, 또 침착한 사람이 어떻게 그런 난폭한 범죄자가 될 수 있단 말인가...?그녀는 온천 리조트에서 민지훈을 마주쳤던 때를 떠올렸다. 그때의 민지훈은 이렇게 말했었다.“우리 회사가 지금 단합대회 중이어서요.”단합대회라면 부현승 역시 그 리조트에 있었을 것이다.“수현 씨?”서수현은 고개를 푹 숙이고 멍하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부현승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팔로 서수현을 툭툭 쳤다.하지만 이윽고 온몸을 떨며 공포심 어린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서수현이 눈에 들어왔다.“... 왜 그래요?”서수현은 부현승을 살인범이라도 되는 것처럼 쳐다보고 있었다.“저... 저는 괜찮습니다.”서수현은 부현승의 시선을 피하며 무의식적으로 그와 거리를 두었다.“차... 차 세워요... 저 내리고 싶어요.”“방금 질문엔 대답해주고 내려야죠. 저는 솔직한 대답이 듣고 싶다니까요.”“제... 제가 나중에 설명해드릴게요. 그래도 되죠?”이미 뒤죽박죽 마음이 복잡해
서수현의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마치 다시 그 어두운 밤으로 돌아간 듯 고통을 꾸역꾸역 억눌렀다. 마치 거대한 손이 그녀를 잡고 지옥으로 끌어들이는 것만 같았다.하지만 서수현은 진실을 얘기해야만 했다. 만약 그녀가 민지훈의 아이를 뱄다고 인정해버리면 준서의 정체는 그대로 확정되어 버릴 것이다.“...”차라리 민지훈의 아이인 편이 낫겠다!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른다는 것은 보통 두 가지 경우로 나뉜다. 하나는 사생활이 문란한 경우라고 다른 하나는 성폭행을 당한 경우이다.서수현의 지금 모습과 성격으로 봤을 때 후자일 가능성이 컸다.운전기사도 그 둘의 대화를 들으며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그러던 중, 부현승이 말을 꺼냈다.“앞쪽 교차로에서 우회전했다가 길가에 차 좀 세워주세요.”“아... 네.”뒤늦게 정신을 차린 운전기사가 부현승이 얘기한 구역에 차를 세우고는 눈치껏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려 밖에서 대기했다.깜짝 놀란 서수현이 말했다.“잠깐만요, 어디 가시는 거예요?”운전기사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대답했다.“저는 밖에서 대기해야죠.”어떤 일들은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은 법이다.서수현은 입술을 달싹이다 두려운 눈빛으로 부현승을 한 번 쳐다보고는 재빨리 차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머릿속에서는 부현승이 그날 밤 자신을 강간했던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그 순간부터 서수현은 부현승과 단둘이 밀폐된 공간에서 평정심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부현승과 어떻게 대화를 이어나가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운전기사와 부현승 모두 서수현의 돌발행동에 당황한 눈치였다.“서수현 씨?”“이사님, 제가 나중에 다시 설명해 드릴게요.”말을 마친 서수현이 뒤로 몇 걸음 물러나더니 그대로 몸을 돌려 달리기 시작했다.“...?”지금 장난하는 건가?“뒤쫓아갈까요?”“... 아뇨, 괜찮습니다.”운전기사는 부현승의 말에 다시 운전석으로 돌아가 앉았다.“그럼 저희는 지금 어디로 가야 할까요?”“집에 가자.”운전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