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얘기해줄래요?”조금 전, 서수현은 단호한 태도로 부현승에게 친자확인 검사를 해보라고 얘기했고 친자 확인서를 봤을 때는 꽤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이 단순히 연기하는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서수현이 고개를 푹 떨군 채 침묵을 지키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부승민, 민지훈과 관련된 일이라 그런지 서수현은 그날의 일을 절대 털어놓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지옥 같았던 경험은 더더욱 얘기해줄 수 없었다.부승민을 떠올리자 서수현은 그가 자리를 뜨기 전, 마지막으로 마주쳤던 눈빛을 떠올렸다. 부승민은 마치 서수현이 무슨 일을 하려는지 다 알고 있는 듯한 사람처럼 느껴졌다.사실 친자확인 결과가 진짜라는 것에는 두 가지 가능성이 존재했다.첫 번째로는 서수현의 추측이 틀렸다는 것이다.그리고 다른 한 가지 가능성은 그날 밤 자신을 강간했던 사람이... 부현승이었다는 것이다...이 생각이 들자 서수현은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이 가능성은 서수현이 줄곧 무시해 왔다. 부현승처럼 정직하고도 다정하고, 또 침착한 사람이 어떻게 그런 난폭한 범죄자가 될 수 있단 말인가...?그녀는 온천 리조트에서 민지훈을 마주쳤던 때를 떠올렸다. 그때의 민지훈은 이렇게 말했었다.“우리 회사가 지금 단합대회 중이어서요.”단합대회라면 부현승 역시 그 리조트에 있었을 것이다.“수현 씨?”서수현은 고개를 푹 숙이고 멍하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부현승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팔로 서수현을 툭툭 쳤다.하지만 이윽고 온몸을 떨며 공포심 어린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서수현이 눈에 들어왔다.“... 왜 그래요?”서수현은 부현승을 살인범이라도 되는 것처럼 쳐다보고 있었다.“저... 저는 괜찮습니다.”서수현은 부현승의 시선을 피하며 무의식적으로 그와 거리를 두었다.“차... 차 세워요... 저 내리고 싶어요.”“방금 질문엔 대답해주고 내려야죠. 저는 솔직한 대답이 듣고 싶다니까요.”“제... 제가 나중에 설명해드릴게요. 그래도 되죠?”이미 뒤죽박죽 마음이 복잡해
서수현의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마치 다시 그 어두운 밤으로 돌아간 듯 고통을 꾸역꾸역 억눌렀다. 마치 거대한 손이 그녀를 잡고 지옥으로 끌어들이는 것만 같았다.하지만 서수현은 진실을 얘기해야만 했다. 만약 그녀가 민지훈의 아이를 뱄다고 인정해버리면 준서의 정체는 그대로 확정되어 버릴 것이다.“...”차라리 민지훈의 아이인 편이 낫겠다!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른다는 것은 보통 두 가지 경우로 나뉜다. 하나는 사생활이 문란한 경우라고 다른 하나는 성폭행을 당한 경우이다.서수현의 지금 모습과 성격으로 봤을 때 후자일 가능성이 컸다.운전기사도 그 둘의 대화를 들으며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그러던 중, 부현승이 말을 꺼냈다.“앞쪽 교차로에서 우회전했다가 길가에 차 좀 세워주세요.”“아... 네.”뒤늦게 정신을 차린 운전기사가 부현승이 얘기한 구역에 차를 세우고는 눈치껏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려 밖에서 대기했다.깜짝 놀란 서수현이 말했다.“잠깐만요, 어디 가시는 거예요?”운전기사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대답했다.“저는 밖에서 대기해야죠.”어떤 일들은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은 법이다.서수현은 입술을 달싹이다 두려운 눈빛으로 부현승을 한 번 쳐다보고는 재빨리 차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머릿속에서는 부현승이 그날 밤 자신을 강간했던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그 순간부터 서수현은 부현승과 단둘이 밀폐된 공간에서 평정심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부현승과 어떻게 대화를 이어나가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운전기사와 부현승 모두 서수현의 돌발행동에 당황한 눈치였다.“서수현 씨?”“이사님, 제가 나중에 다시 설명해 드릴게요.”말을 마친 서수현이 뒤로 몇 걸음 물러나더니 그대로 몸을 돌려 달리기 시작했다.“...?”지금 장난하는 건가?“뒤쫓아갈까요?”“... 아뇨, 괜찮습니다.”운전기사는 부현승의 말에 다시 운전석으로 돌아가 앉았다.“그럼 저희는 지금 어디로 가야 할까요?”“집에 가자.”운전기사
“이사님.”서 비서가 문을 두드리고는 안으로 들어와 부현승의 명령을 기다린다는 듯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서수현 기억하지?”“네, 저번 인턴이었잖습니까.”“작년 12월부터 최근까지의 행적 좀 조사해줘. 최대한 빨리.”“네.”....부현승의 차에서 내린 서수현이 천천히 걸어 자신의 월세방으로 들어왔다.그녀의 마음이 이토록 혼란스러웠던 적은 없었다.서수현의 이성이 지금 그녀의 직감이 틀리지 않았다고 얘기해주고 있었다. 서혜민의 모든 행동이 의심스러운 게 맞았고 준서도 자신의 아이일 가능성이 정말 컸다.하지만 서수현은 어떻게든 부현승이 그날 밤 자신을 강간한 사람이고 믿고 싶지 않았다.그녀의 머릿속에서는 두 사람이 계속해서 싸우고 있었다.한 명은 서수현의 의심이 너무 지나치다고 얘기하고 있었다.그리고 또 다른 한 명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겉보기엔 젠틀한 신사처럼 보일 수 있지만 알고 보면 더러운 변태일지도 모르는 거 아닌가?서수현은 점점 복잡해지는 생각에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가장 간단한 방법은 서혜민 몰래 준서와 자신의 친자확인 검사를 해보는 것이었다.만약 성공적으로 서수현과 준서의 모자 관계를 입증해낸다면 그녀는 자신의 매부인 현승을 다시는 마주할 수 없을 것이다. 부현승과 서혜민의 관계는 또 어떻게 될까?만약 실패한다면 모든 것이 그녀의 망상이었을 뿐이고 그렇게 된다면 서수현은 큰아버지 가족을 다시 마주할 면목이 없을 것이다.서수현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그냥 이쯤에서 멈춰야 하나.준서의 엄마가 누구든 간에 부현승의 아이인 것은 확실하니 아이는 부씨 가문에서 행복하게 자랄 수 있을 것이다.준서가 자신의 아이임이 증명된다 하더라도 서수현은 부현승을 절대 이길 수 없었다. 그리고 준서에게 더 나은 삶은 선사해줄 수도 없었다. 그러니 결국 아이는 부씨 가문에 남아야 한다.이 점을 고려해보니 서수현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그녀가 괜
서혜민은 줄곧 부현승과 서수현이 만나는 것을 꺼렸다. 두 사람은 결혼식에서만 한 번 보고 끝난 사이어야 했다.하지만 오늘 점심에 식당으로 향하기 전 아빠에게서 서수현이 부현승의 회사에서 인턴 실습을 했었다는 얘기를 전해 듣게 되었다. 그것도 부현승의 밑에서.하지만 부현승은 서수현을 알아보지 못한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지금 이런 식으로 행동하지는 않았을 것이다.부현승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응.”“어땠어?”“꽤 괜찮았어. 나름 우수 인턴사원이었으니까.”“... 그거 좋은 건가?”“졸업하고 나서 BX 그룹에 이력서를 제출했을 때, 우선채용 조건이 될 수 있지.”“아... 우리 사촌 언니 대단하네.”서혜민이 부럽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큰아버지가 계속 언니 학비도 다 대주고 엄청나게 잘 해주셨거든. 난 중학생 때 집안일 도우라고 자퇴했는데. 가끔 언니가 학교에 가는 걸 보면 정말 부러웠어.”부현승은 서혜민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의 눈길은 준서의 얼굴에 고정된 채 뭔가를 유심히 바라보는 것 같았다.순간 긴장된 서혜민이 물었다.“뭘 그렇게 봐?”“네가 봤을 땐 준서, 나 닮은 것 같아, 아니면 너 닮은 것 같아?”서혜민은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했다.“몇 개월이나 됐다고. 누굴 닮았는지 벌써 어떻게 알아?”“내가 봤을 땐, 날 더 많이 닮은 것 같거든.”부현승이 대답했다.서혜민은 조금 빨개진 얼굴로 다급히 화제를 돌렸다. 그녀의 눈은 어딘가 모르게 촉촉하게 젖어있었다.“맞다, 준서도 이제 백 일 지났는데... 이제 돌아와서 나랑 같이 살자...”둘이 처음 같은 집에서 지낼 때는 서로가 서먹서먹했다. 그나마 가장 친밀한 스킨쉽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손을 잡는 것 정도였다.얼마 지나지 않아 서혜민이 임신을 했고 그 이후로 두 사람은 같은 침대에서 자지 않았다.서혜민이 출산한 후에는 유모가 아이와 엄마를 편히 돌볼 수 있도록 부현승은 아예 자신의 방을 손님방으로 옮겼다.서혜민은 더 이상
“아뇨, 방금 제가 실수한 거였더라고요.”“아, 네...”유모는 서혜민의 잠옷을 흘깃 보았다.상당히 요란하게 노는 스타일 같았다.서혜민은 서재 앞으로 찾아가 문에 두어 번 노크했다.허락을 받자 그녀는 곧장 문을 열고 서재 안으로 들어섰다.“무슨 일이야?”부현승이 고개를 들어 서혜민을 슬쩍 바라보고는 물었다.“다름이 아니라 다음 달이면 우리 엄마 생신이시거든. 그때 나랑 같이 가줄 수 있어?”“그러지, 뭐.”“무슨 선물을 사면 좋을까?”서혜민은 이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 애썼다. 그 순간, 책상 위에 올려두었던 부현승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서혜민은 궁금한 마음에 휴대폰 화면을 슬쩍 쳐다보았다. 발신인은 서 비서였다.“네가 알아서 해.”부현승은 서혜민에게 대충 대답하고는 곧장 휴대폰을 들어 전화를 받았다.“...그래... 알겠어. 지금 바로 갈게.”부현승은 곧장 몸을 일으켜 의자 등받이에 걸쳐둔 겉옷을 집어 들고 말했다.“회사에 일이 좀 생겨서, 가봐야 할 것 같네.”서혜민의 표정이 미세하게 떨렸다.“이렇게 늦은 시간에, 내일 가면 안 돼?”“급한 일이라 그래. 일찍 쉬어, 나 기다리지 말고.”말을 마친 부현승이 곧장 밖으로 뛰어나갔다.“꼭 가야 해? 너희 부이사도 있잖아.”“출장 중이야.”“...”서혜민이 무슨 말을 하든 부현승의 발걸음은 멈출 줄 몰랐다.그녀는 그저 멍하니 부현승이 문을 열고 홀연히 떠나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정말 아무 물건이나 집어 던지고 싶을 정도로 화가 치밀어 올랐다.차에 올라탄 부현승은 점점 불쾌해지는 기분에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예전에도 이런 경험이 없었던 게 아니었던 부현승은 오늘따라 왠지 이상한 서혜민을 떠올리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바로 눈치챘다.서혜민이 자신과 서수현의 관계를 눈치채고 초조해지기 시작했다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니겠나?부현승의 표정이 어두워졌디. 그는 운전 기사에게 회사에 가기 전, 병원에 한 번 들러야겠다고 전했다.그때의 BX 그룹은 일부 부서를
이날 밤, 부현승은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그는 서혜민에게 전화를 걸어 회사에 긴급한 일이 있어서 한참 바쁠 것이니 바로 회사에서 쉬겠다고 말했다.부현승의 목소리는 차분했으며 약에 취해 있던 짜증도 그녀가 약을 섞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분노도 느껴지지 않았다.그럴수록 서혜민의 마음은 점점 불안해졌다.‘집에 돌아오지 않다니... 혹시 다른 여자를 만나러 간 건가?’그녀는 속으로 서기찬을 욕했다.‘왜 하필 그때 전화가 와서는!’아침이 되어 부현승은 서수현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그녀는 받지 않았다.일이 있어 전화를 받지 못한 줄 알았기에 부현승은 반시간 후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여전히 받지 않았다.뒤늦게 뭔가 잘못됐음을 깨달은 그는 서수현의 SNS를 찾아 메시지를 남겼다.오전의 업무가 끝난 후, 부현승은 핸드폰을 확인했지만 역시나 답장은 없었다.그는 이마를 짚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먼저 나를 의심하게 만들어놓고... 이제 와서 나를 무시하는 건가?’4학년이라 수업이 적었던 서수현은 두 명의 친구와 함께 그룹 명의로 대학 연합 학과별 경연 대회에 참가해 자신의 경력을 풍부하게 하려 했다.점심시간이 되어 서수현은 도서관 열람실에서 친구들과 함께 나와 문제를 토론하며 식당으로 걸어가고 있었다.“서수현 씨.”갑자기 누군가 그녀를 부르는 소리에 서수현은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았다.멀지 않은 기둥 옆에 서 있던 부현승은 그녀가 쳐다보자 성큼성큼 다가갔다.왼쪽에 있던 친구도 부현승을 보고는 팔꿈치로 서수현을 쿡 찌르며 두 사람을 묘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매니저님?”서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저한테 무슨 볼일이라도 있으신가요?”“음, 점심 같이 먹으면서 이야기하고 싶은데 괜찮겠어요?”“무슨 일이신가요? 중요하지 않은 일이면 바로 말씀해 주세요.”부현승은 서수현의 무미건조한, 심지어 차가운 표정을 보며 살짝 웃고는 그녀의 친구들을 쳐다보았다.그러자 서수현은 친구들에게 먼저 말했다.“너희들 먼저 식당에 가서 치킨가스 하나만
부현승은 서수현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럼 강요하지 않을게요. 공부 열심히 해요.”그 말을 끝으로 그는 서수현 곁을 지나 도서관을 떠났다.서수현은 부현승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서둘러 식당으로 돌아갔다.이미 두 명의 친구는 자리를 잡아두었고 서수현의 식사까지 준비해두었다.서수현이 자리에 앉자마자 왼쪽에 앉은 친구가 장난스럽게 물었다.“수현아, 솔직히 말해봐. 그 매니저님이랑 어디까지 간 거야?”그녀는 서수현과 함께 BX 그룹 면접을 보러 갔을 때, 면접관이 서수현을 길에서 하마터면 부딪칠 뻔한 그 멋진 남자라는 걸 알아챘다.그래서 서수현이 면접을 통과해 입사한 후, 그녀는 서수현이 부현승과 어떤 인연을 맺게 될지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서수현이 인턴십을 마치고 나서도 아무런 소식이 없자 그녀는 이 일을 잊어버렸다.그러다 오늘 부현승이 학교에 서수현을 찾아오자 그녀의 호기심이 다시 불타올랐다.오른쪽에 앉은 친구도 서수현과 부현승의 ‘인연'에 대해 듣고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서수현을 바라보았다.서수현은 두 사람의 표정을 보고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오해한 거야. 그분의 아내는 내 사촌 언니야. 그분이 나를 찾아온 건 다른 일 때문이지 너희들이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야.”“뭐?”왼쪽에 있던 친구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그러니까 네 형부 된다는 소리지? 그럼 됐어.”두 사람은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고 다시 대회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이엘리아가 구치소에서 나왔을 때, 그녀의 얼굴은 초췌하고 누런빛이 돌았으며 몸도 야위어 있어 이전의 화려한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자신을 마중 나온 연도진을 보자 이엘리아는 걸음을 멈추고 어깨를 움츠리며 두려움이 서린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오빠.”지금 그녀의 모습은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 예전의 오만한 기세는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연도진은 그런 이엘리아를 몇 번 훑어보며 말했다.“이엘리아, 가자. 호텔에 가서 정리 좀 해. 내가 저녁 비행기 표를 예약해
필라시 국제공항에서 서희수는 걱정과 불안이 가득한 마음으로 반 시간을 기다렸다이엘리아가 모습을 드러낸 순간, 서희수의 눈가가 붉어지며 눈물이 맺혔다.정성껏 키워온 막내딸이 이토록 큰 고통을 겪을 줄이야.이번 일을 계기로 이엘리아가 교훈을 얻고 더 이상 다른 사람을 함부로 괴롭히지 않기를 바랐다.모녀가 서로를 마주했지만 할 말은 없었다.그러나 곧 서희수는 이엘리아가 돌아온 후, 너무도 위축되고 무기력해진 것을 알아차렸다.윌슨은 지팡이를 짚고 엄한 얼굴로 이엘리아에게 경고했다.“이제부터 필라시에서 얌전히 지내. 어디도 못 가. 다시 문제를 일으키면 네 다리를 부러뜨리고 말 거야.”이엘리아가 말대꾸를 할 줄 알고 미리 준비까지 하고 있던 윌슨은 그녀가 공포에 서린 얼굴로 급히 대답하는 모습을 보고 당황했다.“아빠,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앞으로 오빠 말 잘 들을게요. 제발 다시 저를 가두지 마세요. 다시는 그 안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요...”말을 하면서 이엘리아는 두려움에 몸을 떨기 시작했다. 마치 끔찍한 일을 겪은 듯한 모습이었다.빈센트 윌슨은 잠시 말을 잃었다.“...”서희수는 이엘리아가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아파 다가가 위로했다.“이엘리아, 무서워하지 마. 엄마가 여기 있어. 아빠도 네가 잘 되길 바랄 뿐이야.”“엄마...”이엘리아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아빠 정말 저 다시 가두지 않으시겠죠?”“그래, 네가 말을 잘 들으면 그런 일은 없을 거야.”“걱정 마세요. 꼭 오빠 말 잘 들을게요. 엄마, 오빠한테 말해 주세요. 저한테 화내지 말라고요. 네?”“그렇게 할게. 많이 피곤하지? 이제 들어가서 쉬어라.”“네.”이엘리아가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서희수는 얼굴을 굳히며 물었다.“카이사르가 도대체 뭘 한 걸까요? 이엘리아가 이렇게 겁에 질려 하다니... 구치소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그녀의 목소리에는 이미 연도진에 대한 불만이 스며들어있었고 아직 보지 못한 김시연까지 원망하게 되었다.빈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