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남산시 지하 황제 독고진이 입을 열었다. 상대는 정대용을 달래려고 했다. “형님, 저한테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인질은 어차피 우리 손에 있으니 차라리 저놈과 공평한 대결을 하는 건 어떨까요?” “공평한 대결이 어딨어? 저 자식 대종사야!” 정대용이 큰 소리로 말했다. “정 안되면 다들 같이 죽는 거야. 내 평생 누굴 두려워한 적은 없어!” 엄진우에게 당한 수모는 반드시 되갚아줘야 한다. 설사 함께 죽더라도 반드시 엄지우를 납작하게 만들어놓을 것이다. “공평한 대결이라면 당연히 조건이 있습니다.” 독고진이 진지하게 말했다. “저놈의 능력을 제한해서 우리와 일대일로 싸우는 걸 제안합니다. 만약 여러 지하 황제를 전부 이길 수 있다면 여자까지 데리고 갈 수 있게 하는 겁니다.” 엄진우는 생각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 “좋아! 그렇게 하지.” 어쨌든 일단 예우림을 여기서 내보내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예우림은 그 제안에 찬성하지 않았다. “엄진우! 네가 속고 있는 거야. 이 조건은 널 죽이려는 거야! 그러니 절대 안 돼!” “가장은 나야! 그러니 저 여자 말은 신경 쓰지 마! 내가 하겠다면 하는 거야!” 엄진우의 말에 예우림은 금세 귀가 빨개졌다. 이런 상황에도 그걸 강조하다니, 이 남자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그제야 정대용은 예우림에게서 손을 떼고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꽤 괜찮은 제안이군! 어차피 인질은 우리 손에 있으니 우리가 어떤 조건을 걸든지 넌 반드시 찬성해야 해! 즉 너에게는 상의할 자격도 없다는 거야!” “좋아.” 엄진우는 아무렇지 않은 듯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목적에 달성하자 독고진은 정대용과 눈을 마주치며 씩 웃었다. “그래. 그렇다면 앞으로의 대결에서 넌 절대 손과 발을 쓸 수 없어! 이게 우리의 첫 번째 조건이야.” 예우림은 믿을 수 없었다. “사지를 움직이지 말라면서 뭐가 대결이지? 이건 너무하잖아!” 정대용은 음흉하게 웃으며 말했다. “말을 그렇게 하면 안 되지! 저 자식은 대종
자리에 있던 부하들은 모두 겁에 질려 두 눈을 크게 떴다. “너무 잔인해. 하 회장님이 출동하시다니.” “하 회장님 머슬마니아라 악마의 몸을 만들기 위해 해외에서 수술도 받고 근육주사도 수십 바늘을 맞았다는 걸 누가 몰라?” “듣자 하니 손아귀의 힘이 무려 천근에 달한다고 하던데? 콘크리트를 맨손으로 부러뜨리는 건 기본이고 나무도 통으로 뽑을 수 있대.” 정대용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엄진우, 손발을 움직이지 않으면 우리 하 회장의 주먹조차 피할 수 없을걸? 네가 겁에 질려 죽어가는 모습이 난 벌써 궁금해.” 엄진우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그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이때, 하진웅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그에게 다가와 아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기억해. 널 죽인 사람은 바로 이 몸이야!” 말을 끝낸 하진웅은 엄진우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 “넌 비참하게 죽을 거...” 말이 끝나기도 전에! 풉! 갑자기 핏줄기가 하늘로 솟구치기 시작하더니 하진웅의 몸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반으로 절단되었다.이내 피를 내뿜는 상반신이 모두의 앞에 툭하고 떨어졌다. “으아악!” 몇 초간의 침묵이 흐른 후, 장내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엄진우 이 비열한 새끼가 감히 함부로 룰을 파괴해?” 정대용은 화가 나서 씩씩거렸다. “감히 먼저 손을 써서 하 회장을 죽이다니! 비겁한 새끼, 오늘 넌 나랑 같이 죽는 거야!” “상황 파악 제대로 해! 난 손발은 전혀 쓰지 않았어.” 엄진우는 손을 들어 얼굴에 튄 피를 닦아내더니 싸늘하게 웃었다. “저놈은 하 회장의 몸에 머리를 박았고, 하 회장은 바로 반쪽이 되어버렸어요!” 독고진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충격적인 공포는 마치 과속으로 달리는 대형 화물차가 지나가는 것처럼 그들을 정면으로 들이받았다. 모두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머리로 사람을 죽인다고? 그런 것이 가능하다고? “손발 쓰지 말라며? 머리까지 쓰지 말란 말은 없었잖아. 내 말이 틀렸어?” 엄진우는
“이 새끼가 어디서 꼼수를 부려!” 모두 일제히 사색이 되어 소리를 질렀다. “내가 약속을 지킨다고는 안 했잖아?” 엄진우는 싸늘하게 웃었다. “당신들이 억지를 부리는데 나라고 약속을 지켜야 해? 세 살짜리 애들도 아니고.” 순간 엄진우의 몸에서 성난 파도 같은 진기가 뿜어져 나왔다. “도망가세요! 이 자식은 우릴 한꺼번에 죽이려는 속셈이에요!” 지하 황제들은 깜짝 놀라 금세 기세를 잃었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공포의 기운은 순식간에 그들을 삼켜버렸다. 쿵! 정대용을 포함한 모든 지하 황제는 그대로 피와 살이 흩어져 버렸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2초도 안 되는 시간에 발생한 일이다. 십만 명의 부하들은 두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생존 게임과 음모, 그리고 반전은 너무 빠르게 진행되었다. 피바다 속에서 엄진우는 고개를 쳐들고 혼자 중얼거렸다. “장 회장, 내가 장 회장의 복수를 했어.” 그는 정대용을 비롯한 모든 사람을 죽여 장강수와 그의 형제들에게 바치겠다고 약속했었다. 엄진우는 진심으로 장강수와 그의 형제들이 하늘에서 편히 쉴 수 있기를 바랐다. 이내 엄진우는 사방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보긴 뭘 봐? 사람 죽이는 거 처음 봤어? 늬들 회장님들이 전부 뒤졌으니 너희들도 나한테 복수할 생각이야?” 잠시 정적이 흐른 후, 부하들은 다급히 뒤로 한 걸음 물러서더니 무릎을 털썩 꿇었다. “제발! 제발 살려만 주십시오!” “저희들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 회장님의 행동에 저희는 크게 실망했습니다!” 엄진우는 지하 타수들을 빤히 쳐다보다가 덤덤한 표정으로 피 못에 쓰러진 시체들과 유일하게 살아남은 지하 황제인 독고진을 바라봤다. 독고진은 이미 겁에 질려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열 명의 지하 황제들의 그가 보는 앞에서 목숨을 잃었다. 오늘은 독고진 평생의 최대 악몽이 될 것이다. “당신 꽤 총명하네? 모두가 앞으로 달려올 때 혼자만 뒤로 내빼던데.” 엄진우는 싸늘한 미소를
“좋아, 그렇다면 남은 십만 명의 타수들은 너에게 주겠다. 단 요구가 하나 있다. 질서 있게 창해시를 떠나! 소동을 부린다면 반드시 너한테 죄를 묻는다.” 엄진우는 그들을 살려두기로 했다. 설령 돼지 10만 마리라도 며칠씩 잡아야 하는데 하물며 상대들은 지하 타수들이다. 만약 이 사람들이 질서를 잃고 날뛴다면 그 위협은 재앙이 될 것이다. 그럴 거면 차라리 꼭두각시를 세워 그들을 관리하는 것이 훨씬 낫다. 독고진은 가슴을 두드리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 독고진은 십여 년 동안 남산 지하 황제로 살아오며 단 한 번도 실수한 적 없습니다. 이십만 명의 타수들은 제가 반드시 시민들에게 그 어떤 위협도 조성하지 않고 경찰의 눈을 피해 안전하게 집으로 데려갈 것입니다.” 상대의 말이 끝난 후 엄진우도 더는 묻지 않고 몸을 돌렸다. 그는 예우림에게 다가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림아, 괜찮으니까 우리 집에 가자.” 하지만 예우림은 안색이 하얗게 질린 채 온몸이 굳어져 있었다. “우림아?” 엄진우는 문뜩 이상을 느꼈다. 이내 예우림은 두 눈이 뒤집히더니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엄진우는 다급히 그녀의 맥을 짚더니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경련이군. 하긴 이런 큰일을 당했으니 쓰러지는 것도 정상이야.” 엄진우는 미간을 찌푸렸다. 몸조리는 아주 간단하다. 며칠만 있으면 그녀는 말끔히 나을 것이다. 하지만 정신적인 손상은 하루아침에 좋아지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또다시 그녀의 기억을 지운다면 그녀는 기억에 혼란이 생길 수도 있다. “일단 집에 데려다주고 푹 쉬게 해야겠어.” 엄진우는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독고진이 십만 명의 타수를 데리고 떠난 후, 그는 청용에게 연락해 장강수의 후사를 처리하려고 했다. 엄진우가 존경하는 몇 안 되는 사람이기에 장강수의 장례는 반드시 장렬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엄진우 님? 죄송하지만 청용 전신님은 부상을 당해서 당분간 전화를 받기 힘듭니다.” “부상
“너 혼자 사람을 데리고 쳐들어갔다가 그들이 너와 함께 죽으려고 자폭한 거잖아!”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들더라니. 그래서 엄진우는 혹시라도 발생할 상황에 대비해 그날 청용에게 단약을 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청용은 그의 말을 거역하고 보고도 올리지 않은 상황에서 혼자 행동을 취했다. 청용은 이내 고개를 숙이고 잘못을 인정했다. “명왕님, 죄송합니다. 공을 세울 생각에 이성을 잃었던 것 같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 부대도 큰 데미지를 입게 되었습니다. 80%의 전사율에 대해 저는 전적으로 책임질 생각입니다.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입니다.” 그토록 강한 남자가 얼굴을 가리고 통곡하기 시작했다. 비록 군인들은 죽음과 이별에 익숙하지만, 수많은 전우의 죽음을 목격하고도 마음이 아프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엄진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북강에서 내가 그랬지? 넌 너무 젊은 나이에 전신이 되었어. 반드시 마음을 내려놓아야 해. 아니면 꼭 후회하는 일이 생길 거야.” “네!” 청용은 자책에 가득 찬 표정을 짓더니 뭔가 떠오른 듯 말머리를 돌렸다. “아, 명왕님. 명왕님의 생각이 거의 다 적중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이 하나 있습니다.” 청용은 깜짝 놀랄만한 말을 들려주었다. “그들은 자폭하여 저와 함께 죽으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정정당당하게 붙은 것입니다. 뷔젠트 조직 내부의 진정한 실력자는 저보다 더 강합니다.” 엄진우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널 이겼다고?” 이게 말이 되나? “전신을 이길 수 있는 강자는 용국에서도 찾기 힘들 텐데!” 게다가 상대는 고작 강남성 책임자일 뿐이다. 그렇다면 뷔젠트의 우두머리의 실력은 그들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을 수도 있다. 심지어 엄진우 조차도 반드시 상대를 이길 수 있다는 자신이 없었다. “네, 솔직히 말하면 상대가 다급히 빠져나가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다면, 명왕님이 주신 단약을 먹지 않았더라면, 전 그날 반드시 죽었을 겁니다. 상대가 손을 쓰자 군인들은 순식간에 전멸했
“명왕님, 하지만 약신 대회를 취소하는 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청용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 대회는 용국의 수백 년 된 전통으로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참여하고 원로원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하여 저 청용의 이름으로는 어쩌면...” “그렇다면 내 명왕이라는 명의로 해.” 엄진우가 단호하게 말했다. 청용은 여전히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명왕이라는 타이틀은 비록 천하무쌍이지만 용국 의학계는 용국의 독보적인 존재로 그 누구의 명령도 듣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니 서류 하나로는 그들을 설득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뷔젠트의 정보는 나라 안보 기밀에 관한 거라 또 밝힐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엄진우는 미간을 깊게 찌푸렸다. “그래서 약신 대회를 막을 수 없다는 거야?” “네!” 청용이 대답했다. 분명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는데 그것을 피하지 못한다니. 청용이 계속 말했다. “명왕님, 부상이 나으면 바로 성안과 제경으로 가서 강남 및 국회 각 거물을 설득해 볼 생각입니다. 그분들을 설득하면 어쩌면 희망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됐어.” 엄진우는 손사래를 쳤다. 명왕의 타이들도 소용없다면 청용이 가도 소용없는 건 마찬가지다. 더군다나 그에게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보름 뒤, 난 직접 성안으로 갈 거야.” 청용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직접 그 대회에 참석하시겠다는 말씀입니까? 그건 너무 위험한 일 아닙니까?” “내가 위험한 곳에 처음 가는 것도 아니고... 군인은 나라를 지키는 것이 우선이야.” 그는 일찍이 뷔젠트의 최고 강자를 만나고 싶었다. 그리고 이 기회에 강남성과 외성의 의학 대가들을 만나 그들의 실력을 보고 싶었다. “용아, 잘 들어. 네가 해야 할 몇 가지 일이 있어. 강남성의 정보를 명확하게 파악해 줘. 각 세력의 구분과 풍토 인심, 그리고 뷔젠트의 은신처 등등 말이야.” 청용은 엄진우의 말을 머리에 새긴 후 손을 올려 군례를 했다. “명심하겠습니다! 반드시 임무를 완성하겠습니
천인오쇠 때문에 엄진우는 예씨 가문을 굴복시키고 심지어 예흥찬이 그에게 무릎까지 꿇으며 체면을 모두 잃어버렸다. 하여 그 순간부터 예흥찬은 거금을 들여가며, 심지어 재산을 탕진해서라도 천인오쇠를 치료할 수 있는 명의를 찾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결국 그는 북강에서 온 두 명의 명의를 찾았는데 그들은 모두 묘충 의존의 문하로 현시대 최고의 충의이다. 그들은 자기만의 독충요법으로 천인오쇠를 완전히 치료할 수 있다고 한다. “축하드립니다, 아버지!” 예흥찬의 말에 예정국과 예정명은 다급히 축하의 말을 올렸다. 전에 예흥찬은 그들에게 자기가 죽으면 유산은 한 푼도 두 아들에게 주지 않겠다고 했었다. 이제 예흥찬이 다시 목숨을 건졌으니 두 아들은 충분히 그의 비위를 맞춰 유언을 바꿀 수 있게 되었다. 예정명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 “아버지, 이제 우리에겐 약점이 없어요. 그러니 예우림과 엄진우를 제재할 때가 온 것 같아요.” “맞아요. 이 빌어먹을 것들이 의기투합하여 회사와 가문의 돈을 전부 끌어갔어요. 이 원수는 반드시 갚아야 해요.” 예씨 가문 사람들은 분개하며 말했다. 그들은 비록 예우림의 권력 쟁탈에 개입할 수 없지만 예우림이 예씨 가문 대부분의 자금을 지성그룹으로 끌어들인 건 그들의 치즈를 건드린 것과 마찬가지다. 이건 절대 참을 수 없다. 그러자 예흥찬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엄진우와 예우림은 갈라져 있으면 괜찮아. 하지만 둘이 일단 손만 잡으면 우리 예씨 가문은 항상 그들에게 패배했어. 그러니 두 사람 사이를 이간질할 방법을 찾는 게 좋겠어.” 이때 예정명이 갑자기 자기 머리를 툭 치며 말했다. “아버지, 아버지! 설마 잊으셨어요? 저한테 사생아가 하나 있잖아요. 예정아 말이에요! 올해 스물두 살인데 외모는 정말 끝내줘요. 키 175센티미터에 피부도 희고 다리도 엄청 길어요.” 그러자 예흥찬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승무원과 하룻밤을 즐기고 낳았다던 그 물건 말이야?” 예정명은 안색이 붉으락푸르락해지며 말했다.
“내 말 좀 들어봐. 비담 컴퍼니는 요새 대대적으로 직원을 모집하고 있어. 비서만 해도 7, 8명이 된다니까? 사람이 많으니 여자도 많아지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몸이 닿기도 하는...” 엄진우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기 시작했고 예우림은 그의 말을 가로챘다. “근데 이 향수, 지안이가 요즘 잘 뿌리고 다니는 향수야. 설마 다른 여자도 이 향수를 쓴다는 말은 하지 마.” 이 향수는 부분 고객에게만 판매하는 한정판 향수인데 각 고객을 위해 맞춤형으로 제작된다. 즉 이 향수는 오직 소지안만 가지고 있는 향수라는 뜻이다. 순간 엄진우는 할 말을 잃었다. 이런 방면에서 엄진우는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대답 안 하네?” 예우림은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열흘 동안 화장실 청소해!” 엄진우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고작 열흘이야?” 이치대로라면 예우림은 화를 냈었어야 한다. 근데 왜 이렇게 관대한 거지? “오해하지 마. 지안이가 당신한테 접근하는 걸 난 이미 묵인한 상태야. 당신 같은 바람둥이는 절대 나 한 사람만 보지 않을걸?” 예우림은 턱을 치켜올리고 도도한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다른 여자들과 공유하기보다는 차라리 내 친구와 공유하는 게 나아.” 엄진우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역시 유학파 박사라 그런가? 마인드가 아주 와일드하게 오픈되었다. “하지만 오직 지안이만 가능해.” 예우림이 갑자기 말했다. “난 워낙 성격이 차가워서 가끔 당신의 감정을 돌보지 못할 때도 있어. 그리고 지안이는 마침 이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아이야. 그래서 난 두 사람 사이를 묵인하는 거야. 하지만 이게 내 최선이야.” 예우림은 날카로운 말투로 말했다. “만약 또 다른 여자와 관계가 있다는 걸 나한테 들키기만 한다면, 아주 자그마한 관계라도 난 당신과 헤어질 거야. 난 말하면 말한 대로 해!” 말을 끝낸 그녀는 진지한 얼굴로 성큼성큼 나가버렸다. 그녀의 몸에서 풍기는 매서운 한기는 엄진우도 주저하게 만들었다. 엄진우는 잠시
남자는 여전히 코웃음을 쳤다. 그런데 이때, 서관림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남자는 순간 멍해지더니 약간 긴장한 표정으로 엄진우를 힐끗 쳐다보았다. 설마... 진짜일 리가 없겠지? 전화를 받자마자 쏟아지는 것은 거친 욕설이었다. 한편 제경에는 피를 동반한 권력 변화가 대대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보수파는 이용진을 잡은 후 야망이 커져 이 기회에 급진파의 장로들을 모두 제거하려 했다. 급진파의 장로들은 이용진 사건에서 이미 한발 물러섰지만 보수파의 끝없는 욕심을 보고 더는 참기 어려웠다. 양측은 격렬한 충돌을 벌이다 큰 전쟁으로 번졌다. 결국 제경 전역을 봉쇄하고 계엄령을 내렸지만 양측의 교전으로 제경 내부는 화약 냄새가 자욱했다. 하지만 이 충돌은 전 국토로 확산되어 전국적인 전란의 위기를 몰고 왔다. 이 절체절명의 순간, 대장로가 깨어났다. 몇 년 전, 대장로는 북강 명왕을 해임한 후 깊은 잠에 빠졌었다. 그러다 오늘 드디어 깨어난 것이다. 혼란스러운 제경과 서로 죽일 듯이 싸우는 두 파벌을 본 그는 상황이 되돌릴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 반쪽짜리 명왕령을 당장 엄진우에게 가져가고 제경으로 불러들여라! 그때의 일은 내가 친히 설명할 것이다.” 대장로는 수십 년을 함께한 심복을 불러 명령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엄진우는 반쪽짜리 명왕령을 손에 쥐게 되었다. 수년 전 그날, 엄진우는 명왕의 자리에서 내려오고 이 반쪽 명왕령을 회수당했다. 이 순간, 명왕령은 드디어 온전한 하나가 되었고 이는 명왕이 다시 자리에 올랐음을 알리는 것이다. 제경에서 벌어진 모든 일을 알게 된 엄진우는 아무 말 없이 갑옷을 입고 무장했다. 전투의 기운은 살벌하게 하늘을 찔러댔다. 그는 급히 북강으로 향했다. 북강 잠룡곡. 그곳에는 50만 북강 군대가 수년간 매복해 있었다. “북강군이여, 명령을 받들라!” 긴 외침과 함께 전쟁의 신, 북강 명왕의 모습이 그들의 시야에 들어왔다. 50만 북강군은 흥분에 휩싸여 피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시암은 용국의 동남쪽에 위치한 작은 나라인데 용국 이민자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나라 중 하나이기도 하다. 시암의 많은 재벌은 지난 100~200년 동안 용국에서 이민으로 건너간 사람들이다. 현재 시암의 갑부 역시 그중 하나였다. “아버지 성이 서씨야?” 엄진우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 “뭐 좀 아는구나? 얼마면 되겠어? 가격부터 말해.” 남자는 손을 휘저으며 수표를 꺼냈고 엄진우의 얼굴은 순간 싸늘해졌다. “네 아버지 그까짓 재산으론 내 엉덩이를 닦기도 부족해. 그런데 어디서 감히 큰소리야? 당장 꺼져!” 엄진우는 이 재벌 2세가 그저 방탕한 자식일 뿐, 실지 가문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인간이란 걸 바로 알아챘다. 단지 남을 괴롭히고 돈으로 해결하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저렴한 사람이니 더는 상대할 필요도 없었다.남자는 멍하니 엄진우를 쳐다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당신 미쳤어? 우리 아버지 시암 갑부라고! 그런데 그까짓 재산이라고?” 남자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맞아! 네 아버지 말이야! 서씨 가문 자산을 합쳐도 200조를 넘지 못해!” 엄진우는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아, 이 새끼 허세 장난 아니네? 너 200조가 어떤 개념인 줄 알기나 해? 현금으로 바꾸면 너 같은 건 몇천 번도 깔아 죽일 수 있어.” 남자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됐고... 애송이, 당장 여기서 꺼지지 않는다면 시암에 있는 네 아버지가 당장 날아와 널 혼내줄 거야.” 엄진우는 귀찮다는 듯 손을 휘저으며 남자를 쫓아냈다. “이 새끼 봐라? 감히 누구 앞에서 잘난 척이야? 너 돈에 깔려 죽고 싶어?” “말귀 못 알아듣는 놈이군, 당장 네 아버지를 불러줄게.” 엄진우는 휴대폰을 꺼내 바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서관림 알죠?” 엄진우가 물었다. “선생님, 서관림은 무슨 일로 찾으시는지요? 당장 연락드리라 알리겠습니다.” 전화기 너머의 사람은 다급하게 대답했다. “그럴 필요 없어요. 서관림의 아들이
그녀는 아들이 대체 밖에서 무슨 짓을 했길래 이런 원수를 사게 되었는지 알고 싶었고 아들이 정말 수많은 사람을 죽였는지도 궁금했다. 그리고 아들이 그 수단들을 어디서 배웠는지, 긴 세월 동안 이렇게 숨 막히는 날들을 보냈는지 너무 걱정되었다. “집에 가서 얘기하자.” 엄진우는 하수희를 번쩍 안아 들고 회사를 떠났다. 가는 길에 엄진우는 가볍게 하수희의 머리를 쳤고, 곧 하수희는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엄진우는 그녀의 일부 기억을 지워버렸다. 집에 돌아와 한참이 지나자 하수희도 천천히 정신을 차렸다. “진우야, 어쩐 일로 갑자기 돌아왔어?” 엄진우를 본 하수희는 반가움에 어쩔 줄 몰랐다. “나 일 때문에 먼 길 떠나기 전에 집에 좀 들러보려고. 근데 엄마는 왜 소파에서 자? 방에서 편히 자지.” 하수희는 몸을 일으켰다. 이상하다? 몸이 왜 이렇게 뻐근하지? “네 동생이랑 전화하다가 잠들었나 봐. 참 이상하네. 어떻게 말하다 말고 잠들었지?” 하수희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손강호에게 납치된 기억은 전부 엄진우에 의해 지워졌다. 하수희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이젠 예전 같지가 않아. 좀 쉬고 있어. 엄마가 곧 밥 해줄게.” 말을 마친 하수희는 바로 부엌으로 들어갔다. 집에서 점심을 먹은 후, 엄진우는 바로 회사로 돌아갔다. 소지안은 아주 신속하고 깔끔하게 회사를 정리했다. 엄진우가 부순 벽은 이미 수리되었고 회사 로비도 완벽하게 청소가 끝나 있었다. “손강호는 창고에 가뒀어. 어떻게 처리할지는 진우 씨가 결정해.” 엄진우가 오자 소지안은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손강호가 창고에서 죽어버리기라도 하면 회사에 영향이 갈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요양원으로 보내. 쉽게 죽으면 안 되지.” 엄진우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손강호가 제대로 남은 삶을 ‘즐길’ 수 있게, 엄진우는 돈을 들여서라도 그를 요양원에 보내 죽지 않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래, 바로 연락해
“그래, 빠져나간 쥐새끼가 없다면 지금쯤 손씨 가문은 16세 이하의 어린애와 70세 이상의 노인을 빼고 다 시체가 되었을걸.” 엄진우는 입꼬리를 올리고 말했다. 무자비한 수단을 쓰지 않으면 어느 날인가 상대도 같은 방식으로 그를 해치려고 할 것이다. 손강호의 안색은 그대로 굳어져 버렸고 눈동자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이때 엄진우의 휴대폰이 울렸다. 남궁민희였다. 엄진우는 전화를 연결하고 스피커폰을 켰다. “상황은 어때? 여기 손씨 가문의 장손이 들을 수 있게 상세하게 말해줘.” “손씨 가문 혈통 총 173명, 노인과 아이 52명을 제외한 나머지 100여 명은 이미 처단한 상탭니다.” 남궁민희가 단호하게 말했다. 풉! 손강호는 분노와 공포가 치솟아 피를 토해냈다. “말도 안 돼! 그럴 수 없어! 제경 손씨 가문이 어떻게!” 손강호는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허겁지겁 번호를 눌렀다. 하지만 전화를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지옥에서 확인해.” 엄진우가 싸늘하게 웃었다. “미친놈! 미친 새끼야!” 손강호는 넋을 잃고 절규했다. “난 단지 네 엄마를 납치했을 뿐 해치지 않았어. 하지만 넌 우리 가문 전부를 죽여버렸어. 넌 악마야! 이 개새끼야!!” “너 같은 쓰레기를 낳은 손씨 가문도 도긴개긴이야. 손씨 가문 사람이 천 명이든 만 명이든 우리 엄마의 땀 한 방울보다 하찮다는 걸 기억해. 그리고 이건 너한테 대한 내 보복일 뿐이야. 감히 내 가족을 건드렸으면 이만한 각오는 했었어야지.” 엄진우는 손강호의 욕설도 무시하고 차갑게 말했다. 미리 후과를 생각하지 못한 손강호의 어리석음 때문에 손씨 가문은 이대로 전멸했다. “그렇다면 다 같이 죽어!” 손강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기폭 장치를 눌렀다. 사람들은 너무 놀라 하나같이 두려움에 빠져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이때, 불타는 기운이 휘몰아치기 시작했지만 엄진우는 태연하게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이용진 말이야... 끌려가기 직전까지 왜 나랑 정면으로 맞
“그 손 놔!” 이때, 간드러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손강호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두 눈을 의심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름답다! 너무 아름답다! 심지어 소지안보다 더 아름다운 자태를 가졌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이 존재하다니! “나경 씨, 여긴 왜 내려왔어!” 소지안은 너무 놀라 두 눈을 크게 뜨고 외쳤다. 내려오지 말라고 그렇게 당부했건만. “제가 어떻게 마음 놓고 숨어있어요.” 공나경의 몸은 가늘게 떨렸다.비록 마음속엔 두려움이 가득했지만 그녀는 용감하게 나서기로 했다. 절대 소지안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걸 보고만 있을 수 없다. “좋아, 아주 좋아. 엄진우 아주 복이 많은 놈이군. 하지만 이젠 다 내 여자들이야. 용국을 떠나기 전에 이런 행운이 생기다니.” 손강호는 저도 몰래 침을 흘렸다. 그는 소지안을 놓고 다급히 공나경에게로 다가갔다. 공나경은 뒷걸음질 쳤지만 곧 코너에 몰리게 되었다. “하하, 아주 곱군!” 손강호는 두 팔을 벌리고 공나경에게로 달려들었다. 곧 공나경을 품에 안으려는데...쿵!회사 건물 외벽이 갑자기 무너지더니 무너진 틈 사이로 엄진우가 빠르게 다가와 손강호를 향해 발길질을 날렸다. 손강호는 저만치 날아가며 빨간 피를 뿜어댔다. “네가 어떻게?” 엄진우를 본 손강호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긴, 엄진우가 이용진을 무너뜨린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상대는 무려 용국 궁정의 장로인 이용진으로 엄진우의 가장 강력한 적수였다. 금방 승리를 거뒀으니 제경에서 승리의 기쁨에 취해 있어야 하는데... “널 빨리 죽이고 싶어서 말이야.” 엄진우가 싸늘하게 말했다. 여태 손강호를 살려둔 이유는 손강호가 창해시에 있는 한 이용진은 그를 어떻게 처리할지 계속 고민하느라 손을 대지 못할 것이고 그 사이에 엄진우는 이용진을 무너뜨릴 준비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이용진이 무너졌으니 더는 손강호를 남겨둘 이유가 없기에 그는 빠르게 비행기를 타고 창해시로 돌아왔다. “아쉽지만 늦었어
엄진우가 탄 비행기는 곧 착륙했고 휴대폰을 켜자마자 엄혜우에게서 온 여러 통의 부재중 전화를 발견했다. 순간 엄진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큰일이 아니면 엄혜우가 이렇게 많은 전화를 할 리 없었다. 엄혜우에게 전화를 걸려던 찰나, 엄혜우의 전화가 다시 걸려 왔다. 엄진우는 다급히 전화를 받았는데 입을 떼기도 전에 엄혜우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엄마가 납치당했어!” 순간 엄진우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졌고 주변의 공기마저 살기로 가득 찼다. “알았어. 걱정하지 마. 엄마는 무사할 거야.” 엄진우는 바로 전화를 끊고 남궁민희에게 연락했다. 남궁민희는 아직 제경에 있었는데 아직도 침대에 나른하게 누워있었다. “제경 손씨 가문 정보 가진 거 있어?” 엄진우는 이를 악물며 물었다. 그는 하수희를 납치한 사람이 손강호라는 걸 바로 알아차렸다. 창해시에 그와 대적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기에 용의자는 단 한 사람, 바로 손강호였다. 더군다나 이용진이 방금 체포된 상황에서 그의 어머니가 납치되었다면 손강호 이외에는 범인이 따로 없다. “있어요!” 화가 난 엄진우의 목소리에 남궁민희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손씨 가문은 이씨 가문 라인이죠. 우리가 날려 보낸 몇천 명의 사람 중에는 손씨 가문 사람도 있었어요.” “16세 이하의 애들과 70세 이상의 노인을 제외하고 전부 처형해.” 엄진우의 얼굴은 사나운 기색으로 가득 찼다. 이것이 무고한 사람을 해치는 것이냐는 문제에 대해서 엄진우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북강의 지배자였고 천 리를 피로 물들인 적이 있었다. 그의 행동은 항상 그의 의지에 따라 결정되었으며 손강호 같은 패륜아를 길러낸 가문에 무고한 사람이 있을 리 없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노인과 어린아이를 살려둔 것만 해도 큰 자비였다. 만약 그가 여전히 북강을 통치하던 때였다면 손씨 가문의 개조차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네, 주인님.” 남궁민희는 굳어진 얼굴로 대답했다. 손씨 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소지안이 걸어 나왔다. 손강호는 소지안의 미모에 놀라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전에 사진으로 본 적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 더욱 아름다워 감탄한 것이다. “소 대표, 참 오래 걸리네.” 손강호는 소총을 들고 소지안에게 다가갔다. “날 찾은 이유가 뭐죠?” 소지안은 무표정한 얼굴로 싸늘하게 물었다. 그녀는 이런 무법자들에게 겁에 질린 모습을 보여주면 그들이 더욱 날뛸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 “소 대표가 한 번 맞춰보지, 그래?” 손강호는 소지안의 턱에 총구를 대고 그녀의 얼굴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소지안은 전혀 두려운 기색 없이 그와 눈을 똑바로 마주쳤다. “돈이 필요해요? 회사에 현금 20억이 있으니 당장 가져가도 좋아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넘어가고 신고도 안 할 테니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다고 약속해요. 회사 계좌의 돈은 내가 당신에게 이체하려고 해도 그 돈을 가져갈 수 없어요.” 소지안이 침착하게 말했다. “소 대표 아주 대단하네. 이런 상황에서도 이렇게 침착할 수 있다니. 아쉽지만 내가 원하는 건 돈이 아니야.” 손강호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 뭘 원하죠?” 소지안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 “내가 원하는 건 바로 당신이야.” 말을 끝낸 손강호는 바로 손을 뻗어 소지안의 얼굴을 어루만지려고 했다. 하지만 소지안은 그의 손을 거칠게 밀어내며 두 눈을 부릅떴다. “내 몸에 손댄다면 당신은 이 창해시를 살아 나갈 수 없어요.” “소 대표 아주 강단 있네. 근데 그 우월함은 어디서 나오는 거야? 설마 엄진우?” 손강호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신, 진우 씨를 노리고 왔네요.” 소지안은 눈을 가늘게 뜨며 차갑게 물었다. “역시 소 대표 정말 똑똑해. 어쩔 수 없어. 그 자식이 날 궁지로 몰았으니 나도 이럴 수밖에.” 손강호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엄진우가 그를 궁지로 몬 건 사실이다. 창해시에서 그가 저지른 일들을 생각하면 엄진우는 그를 그냥 두고 보지는 않을
쾅!굉음과 함께 문이 강제로 열리더니 손강호가 부하들을 데리고 집으로 쳐들어왔다. “당신들... 당신들 누구야?” 하수희는 깜짝 놀라 크게 소리쳤다. “누구냐고? 아줌마 납치하려고.” 손강호는 앞으로 세 걸음 다가와 하수희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서 휴대폰을 빼앗아 단숨에 부숴버렸다. “잘 묶어서 끌고 가!” 손강호는 바람처럼 나타나 바람처럼 사라졌다. 엄혜우는 깜짝 놀랐다. 방금 그 사람들 도대체 누구지? 다행히 엄혜우는 침착함을 잃지 않고 떨리는 손으로 바로 엄진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엄진우는 비행기에 탑승 중이라 휴대폰이 꺼져 있었다. “그쪽은 잘 진행되고 있어?” 손강호가 부하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비담 컴퍼니 외벽에 이미 폭약을 설치했습니다. 터트리는 동시 건물 전체는 완전히 잿더미가 될 겁니다.” 손강호의 부하가 보고했다. “좋아, 곧 갈게.” 손강호는 그제야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는 빠르게 비담 컴퍼니에 도착해 손에 배낭을 든 채 당당히 걸어 들어갔다. “소 대표 만나러 왔어.” 예우림은 지금 제경에 있지만 손강호는 비담 컴퍼니의 부대표인 소지안도 엄진우의 여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죄송하지만 예약은 하셨을까요?” 프런트 데스크 직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손강호는 재미있다는 듯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예약하지 않으셨다면 먼저 예약부터 하셔야 합니다. 일단 부대표님에게 보고드린 후 전화로 시간 알려드리겠습니다.” 말을 끝낸 프런트 데스크 직원은 예약 표를 손강호에게 내밀었다. 손강호는 직원의 손을 내치며 들고 있던 배낭을 프런트 데스크에 던지며 지퍼를 확 열었다. “이걸로 예약할 수 있을까?” 배낭 안의 물건을 확인한 프런트 데스크 직원은 겁에 질려 비명을 질렀다. 배낭 안에는 뇌관이 가득했다. 손강호는 배낭에서 소총을 꺼내 들더니 천장에 무차별로 사격을 퍼부었다. “다들 쪼그리고 앉아! 소리 지르는 것들은 바로 죽여버릴 거야!” 사람들이 비명을 지
이용진은 공허하고 멍한 눈빛으로 뒤로 한 걸음 휘청거리며 물러섰다. “데려가!” 검찰청 고위 책임자가 명령을 내렸다. 곧 용국 궁정의 원로였던 이용진은 증인과 증거물과 함께 경찰정으로 연행되었다. “오늘이 지나면 이씨 가문은 더는 존재하지 않아. 당신도 이젠 자유야.” 엄진우는 쓴웃음을 지은 채 한숨을 내쉬며 오동방에게 말했다. 오동방은 멍한 눈빛으로 어딘가를 응시했다. 갑작스러운 자유에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왜? 인생의 목표를 못 찾겠어?” 엄진우가 장난스럽게 묻자 오동방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3년 넘는 시간 동안 모든 포부와 열정이 사라져서 앞길이 막막하네요.” “그럼 내가 일자리 구해줘?” 엄진우가 가볍게 말했다. “선생님과 함께할 수 있다면 당연히 좋죠!” 오동방은 눈빛을 반짝이며 재빨리 대답했다. “내 손에 제약회사가 하나 있는데, 원한다면 수석 연구원의 자리를 주지.” 엄진우는 단지 농담으로 던진 말인데 오동방은 진심으로 그와 함께하길 바랐다. 비록 오동방의 의술은 엄진우의 지도하에 발전한 것이지만 그가 이를 완벽히 소화하고 응용하는 것을 보면 그의 의학적 재능과 능력은 충분히 입증된 것이다. 이런 인재가 합류한다면 회사는 반드시 더욱 강해질 것임이 분명했다. “좋아요! 전 무조건 선생님을 따를게요!” 오동방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엄진우의 말을 수락했다. “예우림이 지금 안강제약 인수 절차 때문에 제경으로 갔으니 오늘 바로 가서 합류하면 돼. 절차가 끝나면 함께 창해시로 돌아와 바로 취임해도 좋아.” 엄진우가 웃으며 말했다. 오동방이 합류한 건 생각지 못한 수확이었다. “선생님은 같이 하지 않는 건가요?” 오동방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난 마무리해야 할 일이 좀 있으니 먼저 가 있어야겠어.” 엄진우는 살짝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창해시. 손강호의 부하들은 완전히 당황한 기색이다. “도련님, 이용진은 이미 몰락했습니다! 듣자니 엄진우라는 그놈이 한 짓이랍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