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짝 놀라는 조효동을 비웃듯 임유환이 냉소를 흘리고는 답했다.“내가 원한다면 어디든 갈 수 있어 나는.”“너... 너 이거 주거침입이야!”제가 지금 있는 곳이 자신의 집이라는 사실을 떠올린 조효동이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자운별장에서는 그 누구도 타인의 영지를 함부로 침입하지 못한다는 규정이 있었기에 제가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고 여긴 조효동이 대뜸 소리를 질렀다.“알아, 근데 그게 뭐?”자신의 경고에도 여전히 실실대고 있는 임유환을 향해 조효동이 낮게 으르렁거렸다.“지금 당장 보안팀 불러서 너 끌어낼 거야!”“그럴 기회는 있고?”조효동을 향해 비아냥거리던 임유환은 몸을 앞으로 기울이더니 순식간에 조효동 눈앞에까지 다가갔다.그 모습을 본 조효동은 눈을 크게 떴고 옆에 있던 금발여자는 안색이 창백해져서 소리 질렀다.“귀신이야!”-퍽!그런 여자가 시끄러웠던 임유환은 손을 들어 여자를 기절시켰다.그리고 임유환의 손맛을 직접 경험한 적이 있던 조효동은 갈 곳 잃은 눈동자를 굴리며 말했다.“너... 뭐 하자는 거야 지금!”“얘기나 좀 해보려고.”미소를 지으며 정말 제집이라도 된 양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꼬는 임유환이 꼴 보기 싫었던 조효동이었지만 그렇다고 그 말에 반박할 용기는 나지 않았던 터라 조효동은 낮은 목소리로 되물었다.“무슨 얘기가 하고 싶은데?”“서우 씨한테서 떨어져.”단도직입적으로 말하는 임유환에 조효동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서우한테서 떨어지라고?”“야, 네가 그런 얘기 하는 거 웃긴다고 생각 안 해? 잊었나 본데 대학 때 최서우 남자 친구는 나였어.”“그래, 네 말대로 대학 때는 그랬지.”임유환은 한쪽 입꼬리를 올려 차갑게 웃으며 손가락 끝으로 소파를 두어 번 두드렸다.“지금의 너는 그냥 서우 씨한테 상처 주고 서우 씨를 속인 나쁜 놈일 뿐이야.”“그리고 나는 너랑 상의하러 온 게 아니야.”“통보하러 온 거지, 서우 씨한테서 떨어지라고.”같잖은 임유환의 말에 조효동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통보? 네가
조효동과 더 말 섞기도 귀찮아진 임유환의 눈에는 냉기가 감돌았고 이미 듣고 싶은 대답은 다 들은 그였기에 이제 더는 얘기를 나눌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흔적도 없이 회사를 옮긴 것과 며칠 사이에 허가를 받아 건물을 지은 것까지 전부 다 정우빈 도와준 일이라 확신이 든 임유환은 눈을 번뜩였다.아무리 생각해도 저번 결혼식 때 정우빈을 너무 봐줬던 것 같았다.“야 촌뜨기, 허세 그만 부리고 당장 꺼져. 한창 즐거웠는데 너 때문에 다 망쳤잖아!”“즐거워?”조효동의 낮은 목소리에 생각하기를 멈춘 임유환이 입꼬리를 올리며 산발이 된 금발여자에게로 눈길을 옮겼다.그 여자를 보고 있으니 조효동이 더 역겨워 났다.저런 놈이 최서우를 한 번 더 아프게 하는 건 절대 두고 볼 수 없었던 임유환은 흑제에게 전화를 걸었다.“흑제, 조효동 회사 부도내고 그 이름으로 된 재산 전부 동결해줘요.”“예, 주인님!”임유환의 말에 흑제가 대답을 마치고 전화를 끊었지만 그걸 알 리 없는 조효동은 박장대소를 하기 시작했다.“하하!”“야, 내가 잘 못 들은 거 아니지? 뭐? 우리 회사를 부도내고 내 재산을 동결해?”“네가 뭔데 그래?”“뭐 은행장? 아니면 비서실장이라도 돼?”“아, 내가 말 안 했나? 내 재산은 전부 다 해외에 있어.”“네가 은행장이라 해도 내 재산 동결할 권리는 없단 말이야.”“우리 회사 부도는 내가 한번 잘 지켜봐 줄게. 네가 도대체 무슨 수로 부도내는지.”임유환 뒤를 봐주는 게 흑제라는 걸 조효동도 물론 알고 있었지만 드림 그룹 일은 정우빈이 직접 사람을 시켜 진행한 일이라 그는 전혀 겁나는 게 없었다.이 나라에서 정우빈을 능가할 만한 권력자는 없을 거라 생각한 조효동은 마음 놓고 임유환을 비웃고 있었다.그런데 임유환은 아까부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혼자서 수만 세고 있었다.“야, 넌 왜 말이 없어? 허풍을 너무 크게 떨어놔서 창피해? 말도 제대로 안 나오니?”점점 더 신랄하게 비웃던 조효동은 얼마 지나지 않아 더는 웃지 못할 처지가 돼버
“그럴 리가 없어! 이건 말이 안 된다고!”임유환의 냉소를 본 조효동은 급기야 현실을 부정하기 시작했다.“네가 사람을 시켜서 문자를 조작한 거야!”“그래, 그런 게 분명해!”조효동은 제가 사실을 알아냈다는 듯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임유환을 향해 손가락질하고는 대하와 반대로 지금 대낮일 M 국 은행에 전화를 걸어보았다.하지만 M 국에 있던 재산들이 전부 동결됐다는 이변 없는 소식에 조효동은 다시 숨이 막혀왔고 눈동자도 떨려왔다.M 국 대통령이 직접 명령한 일이기에 재산은 영구 동결돼버린 것이다.“조 회장, 이젠 믿을 수 있겠어?”깜짝 놀란 조효동을 보고 있는 임유환의 눈에는 한기가 가득했다.“너... 대체 어떻게 한 거야?”놀란 듯 묻는 조효동에 임유환은 온기 없는 웃음을 한번 흘려주고는 말했다.“그건 네가 상관할 바가 아니고, 아무튼 이건 그냥 경고일 뿐이야.”만약 조효동의 계좌가 국내은행에 있었다면 동결하는 게 꽤나 힘들었을 텐데 그게 해외에 있으니 M 국의 인맥을 써서 그냥 말 한마디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었다.“흑제 어르신! 너 또 흑제 어르신한테 부탁한 거지!”그때 정신을 차린 조효동이 눈을 부라리며 임유환에게로 달려들었다.“남한테 빌붙어서 사람 괴롭힐 줄밖에 모르는 놈! 당장 내 돈 토해내!”임유환은 화를 내며 저에게로 달려드는 조효동을 가소롭다는 듯 한 번 보고는 바로 손을 들어 그의 울대를 잡아 몸 전체를 위로 들어 올렸다.“켁켁...”대뇌까지 전해져오는 숨 막힘에 조효동은 얼굴이 빨개진 채 발버둥을 치고 있었지만 임유환은 여전히 매정하게 그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네가 지금 죽으면 서우 씨한테 안 좋은 자극이 갈까 봐 살려두는 거야. 서우 씨만 아니면 나는 지금 당장이라도 널 죽일 수 있어.”“기억해, 난 인내심이 그리 많은 사람이 아니야.”“이번에는 파산 정도로 마무리하지만 다음에 또 서우 씨 귀찮게 하면 네 운명은 이 찻잔만도 못하게 될 거야.”말을 마친 임유환은 테이블 위에 놓인 찻잔을 손으로 잡아
“이 밤에 무슨 일이야.”얼마 지나지 않아 수화기 너머에서 남성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려왔다.“도련님, 사실은...”사건의 자초지종을 다 얘기한 조효동의 귓가에 들려오는 건 정우빈의 욕설이었다.“쓰레기 같은 놈! 넌 진짜 쓸모없는 놈이야! 그딴 일 하나도 똑바로 처리 못 해?!”정우빈의 호통이 다시 한번 들려오자 조효동이 억울한 듯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죄송해요... 하지만 임유환 그놈이 이런 방법까지 쓸 줄은 저도 몰랐어요...”“임유환이 사람을 시켜서 M 국에 있는 재산을 동결시키고 S 시 회사까지 부도냈단 말이지?”“네...”“내가 그놈을 너무 만만하게 봤나 보네.”정우빈은 차갑게 물었다.“그놈이 이 일을 누구한테 맡기는지는 들었어?”“흑제 어르신인 것 같았습니다...”“흑제면 말이 되기는 하지.”세계 제일 갑부인 흑제는 재산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기에 국내외로 인맥도 많을 테니 조효동의 재산을 동결시키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그리고 조효동의 새 회사도 어쨌든 연경이 아니라 S에 있는 것이니 먼 곳에 있는 정우빈보다는 S 시내 권력자인 임유환의 눈치를 더 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그리고 부지허가를 받을 때도 정우빈이 직접 간 게 아니라 시 정부 사람에게 가서 말 좀 잘해달라고 부탁한 게 전부였으니 그 뒤에 정우빈이 있다는 사실도 몰랐을 것이다.“도련님, 저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모든 걸 잃고 갈 곳도 없어진 조효동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정우빈한테 기대는 것뿐이었다.“내 연락 기다려.”“임유환 그놈은 내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니까 걱정하지 마. 나중에 재밌는 구경거리가 될 거야.”“예, 도련님! 나, 근데 조명주가 지금 임유환과 같이 살고 있는데 혹시 도련님 계획에 방해가 되진 않을까요?”“조명주가?”의외의 소식에 정우빈은 의아하다는 듯 되물었다.“네, 둘이 사이가 아주 좋아 보이던데요.”“하하, 그래?”조효동의 말에 음침하게 웃은 정우빈이 말했다.“알겠어. 이제부턴 내가 알아서
늦은 시각, 별장으로 돌아온 임유환은 슬리퍼로 갈아신고 2층으로 향했다.“조효동 일은 잘 해결됐어요?”임유환이 2층으로 올라오자마자 검은색 브라탑을 입은 조명주가 걸어 나오며 물었다.임유환이 무엇을 하러 갔는지 다 아는 그녀이기에 통 잠이 오지 않아 누워있다가 문이 열리는 소리에 바로 침대에서 일어난 것이다.“해결했어요.”조명주를 향해 웃으며 말하던 임유환은 바로 최서우의 상태부터 물었다.“서우 씨는 자요?”“네, 자요.”“그럼 나도 이만 방으로 가볼게요.”“잠깐만요, 조효동 어떻게 처리했는지는 알려줘야죠.”조명주는 호기심에 가득 차 물으면서도 혹시나 최서우를 깨울까 봐 임유환을 밀며 그의 방으로 함께 들어갔다.“조 중령님, 이 야밤에 불도 다 꺼져있는데... 이건 좀 아닌 것 같지 않아요?”그에 임유환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장난을 쳤지만 조명주는 전혀 두렵지 않다는 듯 맞받아쳤다.“그럴 용기가 있으면 어디 한 번 해봐요.”임유환이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걸 잘 알기에 조명주도 이토록 자신만만할 수 있었던 것이다.“하하, 그럴 용기 없죠, 저는 좀 더 오래 살고 싶거든요.”역시나 임유환은 환하게 웃으며 그럴 엄두는 없음을 인정했다.“내가 그렇게 무서워요?”입술을 삐죽이며 말하는 조명주에 임유환은 농담을 하며 불을 켰다.“조 중령님이 총으로 저를 쏘기라도 할까 봐 무섭거든요.”어두웠던 방안이 환해짐에 따라 빨갛게 상기되었던 조명주의 얼굴도 순식간에 원래의 낯빛을 회복했다.혹시나 임유환이 보기라도 했을까 봐 두려워진 조명주는 오히려 더 역정을 내듯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알면 됐어요!”“빨리 얘기해요, 조효동 어떻게 했어요?”“그냥 살짝 경고만 해줬을 뿐이에요.”조효동에게 한 경고를 들려주자 조명주는 임유환의 어깨를 두드리며 감탄했다.“진짜 대단해요 유환 씨!”“근데 아무리 무서워도 그렇지 무슨 오줌을 싸요.”고작 그 정도 배포로 최서우를 붙잡겠다고 질척거리던 조효동에 조명주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그래도 임유환이
윤여진 옆에는 두 명의 경호원도 함께 서 있었는데 각자 캐리어를 하나씩 들고 사뭇 진지한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여진아, 네가 여긴 무슨 일이야?”캐리어를 두 개씩이나 끌고 들어온 모습이 어째 꼭 여기 살려고 들어온 사람 같아 임유환은 당황해하며 물었다.그리고 윤여진의 입에서는 역시나 임유환이 예상했던 대답이 들렸다.“오빠가 너무 보고 싶어서 같이 살려고 들어왔죠.”윤여진은 생글생글 웃으며 간드러지게 말했지만 임유환의 표정은 점점 굳어져 갔다.이 집에는 이미 두 명이나 되는 미모의 여성들이 살고 있었는데 거기에 윤여진까지 더 해지면 다들 불편해질 것 같기도 했고 가뜩이나 윤여진을 경계하는 서인아가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질투할 게 뻔했기에 임유환은 선뜻 응할 수가 없었다.“왜요 오빠? 내가 온 게 싫어요?”임유환의 굳어진 표정을 본 윤여진은 입꼬리를 늘어뜨리며 불쌍한 표정을 지어 보였는데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저를 올려다보는 윤여진에 흔들리지 않는 남자는 없을 것이다.그리고 예전에 그토록 사이가 좋았던 동생의 부탁이니 임유환도 딱 잘라 거절하진 못했다.“아니 여진아... 그건 아닌데...”말을 더듬는 임유환을 본 윤여진이 그 뜻을 제멋대로 해석하고는 기뻐서 방방 뛰었다.“그럼 나도 같이 살게 해주는 거죠? 역시 오빠가 제일 좋다니까요!”임유환과 같이 사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던 윤여진은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해했다.“어... 여진아, 별장에 같이 사는 사람들이 있어...”“서인아 씨에요?”그때 임유환이 난감한 듯 말하자 윤여진은 토라진 얼굴을 하고 물었다.“아니, 조 중령님이랑 서우 씨... 얼마 전에 사고가 좀 나서...”임유환이 상황을 설명하려 했지만 윤여진은 그새 삐진 게 다 풀렸는지 차가운 눈을 한 채 물었다.“누가 오빠 습격한 거 말하는 거죠?”“너 다 알고 있었어?”“네.”놀란 듯 되묻는 임유환을 향해 윤여진이 담담하게 대꾸했다.“집사가 알려줘서 알고 있어요. 그래서 나도 사람 시켜서 조사를 좀 해봤는데..
“역시, 나한테 이렇게 잘해주는 건 오빠밖에 없다니까요!”임유환이 허락했다는 사실에 신이 난 윤여진은 발을 동동 구르더니 그대로 임유환에게 달려가 안겼다.그 순간 E컵은 될 것 같은 윤여진의 가슴이 임유환에게 부딪쳤고 그 말캉한 느낌에 임유환이 숨이 멎어오는 것 같아서 재빨리 윤여진을 떼어놓았다.그들은 더 이상 어린애들이 아니었으니까 이 정도의 스킨십은 자제해야 했다.하지만 너무 흥분한 나머지 그런 걸 눈치채지 못한 윤여진은 자신의 두 경호원을 보며 말했다.“너넨 이만 돌아가. 짐은 내가 알아서 들고 들어갈 거니까 여기 두고.”별장에 다른 사람들도 산다는 말을 듣고 괜히 경호원들이 그들을 불편하게 할까 봐 하는 소리였다.“하지만 아가씨, 저희가 돌아가면 누가 아가씨를 지킵니까?”윤여진에게 문제라도 생기는 날엔 저들의 목도 무사하지 못할 걸 아는 경호원들은 사색이 되어 물었다.“유환 오빠가 지켜줄 거야!”“저 사람이요?”겉보기에는 사람을 때려본 적도 없어 보이는 임유환의 외모에 경호원들이 반신반의하며 묻자 윤여진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응, 오빠가 나 지켜줄 거야.”“아가씨, 장난치지 마시고...”“내가 장난치는 것 같아?”“아닙니다...”윤여진을 말리려고 나서던 경호원들은 그녀의 차가워진 눈빛을 보고는 금세 꼬리를 내렸다.“그럼 짐 두고 이만 가봐.”윤여진이 화가 나면 어떤지 알기에 등골이 오싹해진 그들이었지만 윤여진의 안전이 달린 문제라 한 번 더 말을 꺼내려 했다.“하지만...”“왜 또.”성가시게 구는 경호원들에 윤여진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저 사람은... 정씨 집안과 척을 진 사이라 아가씨가 저런 사람하고 어울리시면 괜한 구설에 오르내릴까 봐 걱정됩니다.”“당연히 이 말은 제가 한 게 아니라 회장님이...”“회장님께서 저희더러 아가씨 설득해서... 설득해서 데려오라고 하십니다.”두 경호원들은 윤여진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으면서도 꾸역꾸역 준비한 말을 마쳤다.평소에는 윤여진을 눈에 넣어도 안 아픈 고명딸이라
저를 위해 경호원들에게 화까지 내는 윤여진을 보니 임유환은 다시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다정한 얼굴로 미안해하는 윤여진은 여전히 15년 전 그때와 똑같아 보여 임유환도 부드럽게 웃으며 윤여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걱정 마, 나는 그런 말에 상처 안 받아. 근데 넌 아버님이 그렇게 걱정하는 데 정말 여기 있어도 괜찮겠어?”“괜찮아요.”윤여진은 고개를 저으며 나지막하게 말했다.“나는 그냥 오빠 옆에 있고 싶은 것뿐이에요. 그때 그 나쁜 놈들이 다신 오빠 건들지도 못하게 할 거예요.”그때의 윤여진은 어려서 임유환을 지키지 못했지만 지금은 달랐다.지금의 윤여진은 집안에서 발언권도 있는 사람이었기에 강한 정씨 집안을 대적한다 해도 전혀 두렵지 않았다.그리고 정 방법이 없다면 쓰일 최후의 수단도 준비되어 있었기에 윤여진은 임유환을 지켜낼 수 있다고 장담했다.그 방법을 쓰게 된다면 다시는 임유환을 못 본다는 게 조금 마음 아프긴 하지만 그래도 임유환을 지킬 수만 있다면 괜찮았다.저를 지켜주고 싶어 하는 윤여진의 마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던 임유환은 온기 가득한 눈으로 윤여진을 보며 말했다.“알겠어 여진아, 네 마음 너무 고마워. 근데 걱정 안 해도 되, 아무도 나 못 괴롭혀.”“네!”임유환의 당찬 말에 윤여진은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오빠, 우리 들어가요!”“응.”임유환은 웃으며 윤여진의 캐리어를 들고 먼저 성큼성큼 걸어갔다.윤여진은 비바람을 막아주려고 앞서 걸어가던 15년 전의 뒷모습과 겹쳐 보이는 지금의 임유환을 보며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졌다.15년 전에도 지금에도 임유환은 늘 윤여진보다 앞에 서서 걷고 있었지만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윤여진이 더 이상 어리지 않다는 것이었다.이제는 임유환을 지켜줄 힘이 생긴 윤여진이 된 것이다.“오빠 방은 어디에요?”별장 안으로 들어가서 탁 트인 공간을 둘러보던 윤여진은 다시 임유환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계단 입구 맞은편 방이야.”임유환은 방을 눈으로 가리키며 윤여진을
임유환과 윤여진은 최서우의 병이 악화될까 염려하여 일부러 그들에게는 알리지 않고 조용히 임씨 집안으로 향했다.임씨 집안으로 가는 차 안에서 윤여진은 사건의 자초지종에 대해 간략하게 전해 듣게 되었다.영상 속의 그 여자는 임유환의 시중을 들던 나비라는 이름의 메이드이고 그 메이드를 남자들에게 건네준 이가 임준호라는 사실까지 다 듣고 난 윤여진도 너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윤여진이 알고 있는 임준호는 자상하고 따뜻한 분이었는데 그런 분이 한 일이라고는 전혀 상상할 수조차도 없는 잔인한 행동에 15년 전 자신의 친아들을 직접 내쫓던 그때의 임준호가 떠올라 윤여진은 온몸이 오싹해났다.아마도 15년 전 그날부로 임준호가 완전히 변한 게 아닌가 싶었다.30분 뒤 그들은 임씨 집안에 도착했지만 워낙 깊은 밤이라 저택의 대문은 당연히 잠겨있었고 흑기군을 데리고 대문 앞에서 한참 동안 대기하고 있던 흑제가 임유환을 보고 인사를 건네왔다.“임 선생님.”“오셨어요?”임유환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세계 제일 갑부의 느닷없는 등장이 윤여진은 놀랍기만 했다.임유환을 대하는 흑제의 태도가 지나치게 깍듯해 그 둘의 사이가 궁금하긴 했지만 지금은 그런 걸 물을 때가 아니라 눈앞에 닥친 일부터 해결할 때라서 윤여진은 눈치껏 입을 다물었다.그리고 영상에서 봤던 모습을 떠올리며 윤여진이 다시 표정을 굳히자 아까부터 냉랭한 표정을 하고 있었던 임유환이 앞으로 나서더니 대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임준호, 당장 나와!”그 목소리에 깜짝 놀란 저택 사람들 몇 명이 눈을 떴고 하인 두 명이 달려 나왔다.밖에 나와 상황을 살피던 하인 두 명은 익숙한 임유환의 얼굴에 깜짝 놀랐지만 그런 놀라움도 얼마 오래가진 못했다.하인들은 이내 비아냥거리며 임유환을 향해 말했다.“어머, 이게 누구야, 우리 임유환 도련님 아니세요?”입으로는 도련님이라 하고 있었지만 그 말투 속에 진하게 녹아나 있는 조롱은 눈치를 못 챌 수가 없을 정도였다.“무슨 도련님이야, 버려진 도련
임유환의 몸은 주체할 수 없는 분노로 이미 덜덜 떨리고 있었다.“주인님, 그건 저도 아직... 알아내지 못했습니다.”“이 영상도 그 경찰에 대해 조사할 때 경찰 시스템을 뒤지다 발견한 겁니다.”“경찰 시스템?”“그럼 이것도 정씨 집안에서 한 짓이란 말이야?”“그것까진 아직 모르겠는데... 제가 알아본 바로는 저 여자분은 주인님... 아버님께서 직접 저 남자들 손에 넘긴 거였습니다.”이 일이 임유환의 아버지와 관련되어있기도 했고 영상 속의 여자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하면 더 위험한 일에 휘말릴 것 같아 흑제는 대답을 망설였다.“아버지?”“네, 주인님.”흑제의 말에 당황하던 임유환은 재차 확인을 거친 후에 또다시 기운을 뿜어내며 당장이라도 임준호를 죽여버리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임유환은 어떻게 자신이 직접 데려온 아이를 또 내다 버릴 수가 있는지 임준호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당연히 제 한 목숨 부지하고자 행한 나약한 인간의 어쩔 수 없는 행동이었겠지만 저 사람들 손에 끌려가면 어떤 일을 당하게 될지 뻔히 알면서도 내어준 게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짓인지 의문이 갔다.영상 속 사람들이 말하는 비밀 열쇠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임유환은 나비가 지금 아주 위험한 상황이라는 것만은 확실히 알 것 같았다.“임준호!”갑자기 소리 지르는 임유환 때문에 방 안에 있던 윤여진은 화들짝 놀랐다.“흑제.”“예, 주인님.”“지금 당장 흑기군 준비해서 나랑 임씨 집안으로 간다.”“예, 주인님.”지금 임유환은 약해빠진 임준호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해있었다.그래서 직접 집으로 쳐들어가서 대체 나비를 누구에게 넘겨준 것인지, 나비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따져 물을 생각이었다.살아있다면 직접 얼굴을 봐야 했고 죽었다면 그 시체라도 봐야 진정될 것 같았다.임유환은 나비가 그 짐승 같은 놈들 손에 놀아나도록 두고 볼 수가 없었다.살아있다면 당장 데려다가 직접 치료를 해줄 것이고 죽었어도 데리고 와서 묻어줄 생각으로 눈이 빨갛게 충혈된 임유환은 차오르는 분노와
“나비?”아까는 얼굴이 제대로 안 보여서 몰랐는데 영상 속의 여자는 바로 임유환만 보면 도련님이라 부르며 해맑게 웃던 나비였다.그렇게 밝고 예쁘게 웃던 아이가 피범벅이 된 채 모진 고문을 견뎌내는 걸 보고 임유환은 낯빛이 창백해졌고 머리가 울려왔으면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다.임유환이 임씨 집안에서 쫓겨난 지도 15년이니 나비도 많이 커서 얼굴만 보면 못 알아봤겠지만 나비 문양의 반점 덕분에 한눈에 그녀의 알아볼 수 있었다.나비라는 아이는 5살의 어린 나이에 임씨 집안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그때는 이름도 없어서 나비도 임유환이 직접 지어준 이름이었다.나비는 어릴 때 강도들의 손에 부모님을 잃고 그들에게 이끌려 여기저기 팔려 다니던 이이였는데 그런 그녀를 불쌍하게 여긴 임준호가 큰돈을 들여 데리고 오는 바람에 임씨 집안에서 메이드로 일을 하게 된 것이다.나비는 임유환을 보자마자 그도 다른 사람들처럼 자신을 때릴까 봐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자신을 올려다보는 그 눈빛이 너무나도 슬퍼 보여서, 웅크린 몸을 떨고 있는 아이가 너무 애처로워 보여서 임유환은 아직까지도 그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임유환이 임씨 집안에 들어온 이상 더는 그 어떤 괴롭힘도 없을 거라고 다독여봐도 나비는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했었다.다른 메이드들을 시켜 깔끔히 씻기고 머리도 빗겨주고 깨끗한 옷까지 갈아입혀 주니 왼쪽 얼굴에 있는 나비 모양의 반점도 드러났다.임유환이 그 반점을 바라보고 있으니 나비는 신분이 낮은 제가 얼굴에 난 반점으로 임유환의 심기를 건드리게 되어 동굴 속에서 강도들에게 폭행당하던 것처럼 맞기라도 할까 봐 서둘러 반점을 가리며 몸을 떨었다.그에 임유환은 바로 나비의 손을 잡아주며 자신은 그들과는 다르다고 천천히 타일러주었다.그리고는 나비의 긴장과 두려움을 해소해주기 위해 정원 산책까지 데리고 갔다.드넓은 정원에는 많은 꽃들이 피어있었고 그것들이 함께 조화로운 향도 만들어내고 있었다.이런 아름다운 곳은 처음 보는 나비는 처음에는 몸이 굳어버리며 어색해했지만 이
“아!”남자의 행동과 함께 흘러나온 여자의 처절한 비명이 밀실을 가득 채웠다.화면을 뚫고도 전해지는 여자의 절망과 고통에 핸드폰을 들고 있던 임유환의 몸도 떨려왔고 마찬가지로 비명소리를 듣고 깜짝 놀란 윤여진도 임유환 쪽으로 다가오며 화면을 바라보았다.“어머!”사람한테 이렇게 잔인한 짓을 하는 영상 속 인간들 때문에 윤여진은 저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고 소리쳤다.너무 집중해서 본 나머지 옆에 윤여진이 있다는 것도 잊어버렸던 임유환이 다급하게 화면을 가리며 말했다.“여진아, 넌 보지 마.”“오빠, 이 사람들 누구예요?”“아직 모르겠어.”얼굴과 입술이 창백해진 윤여진이 걱정스레 물었지만 임유환은 한숨부터 쉬며 대답했다.“여진아, 네 방 화장실 좀 쓸게.”말을 마친 임유환은 화장실로 들어가서 다시 영상의 재생 버튼을 눌렀다.화면 속의 여자는 여전히 은침에 찔린 손을 들고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다.온몸을 비틀려고 발버둥 치는 여자는 마치 불판 위에 올라간 미꾸라지 같기도 했다.하지만 검은 옷차림의 남자는 그런 여자가 불쌍하지도 않은지 여전히 차가운 눈을 하고 두 번째 은침을 꺼내 들어 여자의 다른 손가락에 찔러넣었다.“아!”가슴을 관통하는 듯한 고통에 여자는 순간 고개를 확 젖혀버렸고 이미 흑과 말라 굳어버린 핏자국으로 엉망이 되어버린 머리카락이 여자의 얼굴을 가렸다.“비밀 열쇠 어딨는지 말해.”“몰라요,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고요...”“그냥 날 죽여줘요 제발...”“죽여주세요...”남자가 아까보다 더 낮은 목소리로 물었지만 여자는 울며불멸 죽기를 애원하고 있었다.얼마나 아프고 힘들었으면 죽는 걸 원하고 있을까 싶어 임유환은 비통하다 못해 화까지 나고 있었다.“말했잖아, 얘기하면 죽여준다고.”말을 마친 남자는 섬뜩하게 웃더니 나머지 손가락에도 하나하나 은침을 꽂아 넣었고 여자는 온몸에 경련이 일듯 몸을 떨어대다가 한계에 다다른 건지 다시 한번 기절했다.은침이 가지런히 꽂혀있는 열 손가락에서 흘러나온 피들은 빠르게 작은 웅덩이
“마음의 준비요?”의미심장한 흑제의 말에 임유환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무슨 영상인데 그래요?”“혼자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이미 암호 걸어서 이메일 보내놨어요.”임유환이 영상을 보면 어떤 반응일지 알기에 흑제는 말을 내뱉기가 어려웠다.“알겠어요.”임유환은 깊은숨을 들이마시고 나서 빠르게 흑제가 보내온 이메일을 확인했다.이메일의 정체는 5분쯤 되는 영상이었는데 영상의 장소는 어두운 밀실같이 보였다.밀실 안에는 똑같은 옷차림을 한 남자가 다섯이나 있었는데 그들은 전부 눈 하나만 내놓고 있었다.임유환은 그들의 얼굴도 제대로 볼 수 없었고 핸드폰 화면으로만 들여다보고 있음에도 무시무시한 그들의 기세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남자들의 발밑에는 거의 죽어가는 젊은 여자 하나가 누워있었다.남루한 옷차림의 여자는 머리는 산발이 되어 있었고 몸에는 채찍에 맞느라 생긴 생채기들이 한가득이었다.생채기 주위의 살들은 진작에 터져나갔고 팔은 안에 있는 뼈가 다 보일 정도로 앙상했다.그리고 몸에 난 상처는 그뿐만이 아니라 담배로 인해 생긴 작은 화상 자국들도 빼곡했다.옛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새로 난 상처들은 이미 옷과 붙어버려 여자의 처참한 상태를 더욱 잘 보여주고 있었다.영상을 보고 있던 임유환도 서서히 여자가 불쌍해졌다.다섯 남자들은 대체 누구길래 여자한테 이토록 극악무도한 짓을 저지를 수 있는지, 그리고 여자는 또 누구인지 임유환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영상 하단에 떠 있는 시간을 보니 아직 5분 1밖에 진행되지 않은 영상에 임유환은 계속해서 화면을 들여다봤다.화면은 빠르게 전환됐고 여전히 같은 복장을 한 남자 다섯 명과 아까와 다를 게 없는 밀실이 나타났지만 아까 그 일로부터 며칠은 지난 듯 보였다.영상 속의 남자는 찬물을 들어 쓰러져있는 여자의 몸 위로 뿌렸고 여자는 갑자기 느껴지는 한기에 고통 속에서 소스라치며 눈을 떴다.“비밀 열쇠 어딨는지 말해.”검은 복면을 쓴 남자 하나가 입을 열자 나머지 네 명도 여자를 차갑게 바라
윤여진의 말에 임유환의 몸은 그대로 굳어버렸다.“검사할 거예요 오빠?”그때 귀를 간질거리는 윤여진의 목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부끄러워하면서도 도발적인 말을 뱉어내는 윤여진에 임유환은 심장이 쿵쾅거렸다.“여진아, 나는...”오해를 풀어보려고 고개를 돌려 윤여진을 보던 임유환은 몸을 앞으로 숙인 탓에 훤히 드러난 검은색 슬립 아래의 몸매에 다시 말을 삼켜낼 수밖에 없었다.임유환을 포함한 모든 남자들은 시각 동물인지라 완벽한 몸매와 유독 눈에 띄는 풍만한 가슴에 저도 모르게 심장이 반응을 하고 있었다.하지만 그 감정도 이내 임유환의 이성에 묻혀버렸다.“후...”임유환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는 말했다.“여진아, 진짜 이제 그만해. 진짜 실수한다니까.”“오빠는 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거예요 없는 거예요?”나긋나긋하게 말할 때마다 흘러나오는 뜨거운 숨결 때문에 점점 본능이 들끓고 있었던 임유환은 이대로 있었다가는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를 것만 같아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그런데 그 순간 윤여진이 임유환의 손을 덥석 잡아 오자 우유 크림처럼 부드러운 그 느낌에 임유환은 일어서려던 다리마저 굳어버려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유환 오빠, 나 장난하는 거 아니라니까요.”윤여진은 여전히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말하며 잡고 있던 임유환의 손을 자신의 가슴으로 가져갔다.그 모습에 임유환은 순간 머리가 하얘졌고 이 손을 빼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고민까지 하고 있었다.그런데 마침 타이밍 좋게 울린 전화벨 소리에 둘 다 화들짝 놀랐고 임유환도 또 한 번 울리는 벨 소리에 완전히 정신을 차렸다.윤여진도 겁먹은 고양이마냥 손을 빼내며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혔다.“나... 전화 좀 받을게.”임유환이 어색하게 말하자 윤여진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네.”아까의 대담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부끄럼 타는 고양이 같은 모습을 보며 웃음을 흘리던 임유환이 전화를 받았다.흑제에게서 온 전화라 조금 긴장한 채로 받았는데 역시나 전에 지시했던 일
가슴은 점점 뜨거워지고 있었지만 임유환은 애써 윤여진의 눈을 피하며 말했다.“장난치지 말라니까.”윤여진이 여전히 장난을 치는 거라고 생각한 임유환은 어색하게 웃으며 서둘러 말을 돌렸다.“아까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궁금하다고 했잖아, 그거 알려줄게.”“그 얘긴 나중에 하고, 오빠 아직 내 말에 대답 안 했잖아요.”“어... 그 얘기 먼저 하자, 불 끄면 졸려서 못 할 것 같아.”임유환은 기대에 찬 윤여진의 얼굴이 보였지만 어떻게든 이 숨 막히는 상황부터 끝내보고자 평소답지 않게 우겨댔다.그리고 사실 윤여진이 한 말이 장난인지 아닌지 제대로 분간도 가지 않아 아까부터 심장이 떨리고 있었다.장난이라면 다행이겠지만 만약 장난이 아니라면 아주 어색해질 것 같았다.“오빠, 왜 아까보다 땀을 더 많이 흘리는 것 같죠?”그때 임유환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들을 보며 윤여진이 부드럽게 물어왔다.“그... 그래?”“긴장한 거예요 설마?”임유환에게 질문을 하며 코앞까지 다가온 윤여진 때문에 둘의 거리는 3㎝도 채 남지 않게 되었다.정말 조금만 움직여도 바로 닿을 것같이 가까운 거리라서 임유환은 윤여진이 내뱉는 호흡까지도 느낄 수 있었다.뜨거운 숨결과 함께 풍기는 향기에 임유환은 헛기침을 하며 서둘러 뒤로 물러났다.“여진아, 이제 진짜 그만해.”사람 둘은 족히 앉을 정도로 떨어져서야 임유환은 잔뜩 긴장했던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장난 아니라니까요.”임유환이 저에게서 멀어지자 윤여진은 살짝 실망한 듯 보였지만 이내 연애 수첩 제1항을 떠올린 그녀는 다시 눈을 반짝이며 기뻐했다.그래서 윤여진은 긴장한 듯 굳어있는 임유환을 보며 익살스레 웃어 보였다.“유환 오빠, 누가 그러는데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 앞에만 서면 이상하게 긴장을 한대요.”“오빠 설마 나 좋아하는 거예요?”윤여진이 이 질문을 할 때 임유환은 이게 장난이든 진심이든 간에 서둘러 이 화제가 지속되는 것부터 막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둘이 얘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이상해지는 방 안의
“어...”단도직입적인 윤여진의 말에 임유환은 뭐라 변명이라도 해야 했지만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임유환의 생각이 불순한 건 맞지만 그게 오로지 임유환의 잘못은 아니었다.이미 성인이 된 그들은 15년 전과는 완전히 달랐다.윤여진은 얼굴이며 몸매며 누가 봐도 예쁜 여자로 성장했는데 그 모습을 보고도 멀쩡할 남자는 아마 없을 것이다.임유환 역시 남자였으니 검은색 레이스 속옷에 슬립까지 입고 제 눈앞을 돌아다니고 있는 윤여진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슬립 아래로 보일 듯 말 듯 한 윤곽이 아까부터 자꾸 눈앞에 아른거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달아오르는 것만 같았다.임유환은 지금 온 정신력을 다 쏟아서 이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었다.자신의 눈이 윤여진의 몸으로 향하는 것조차 용납할 수 없었던 임유환이기에 당연히 같이 자자는 그녀의 요구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모든 남자들의 워너비인 그 몸을 가까이에서 본다면 밤을 조용히 보낼 수는 없을 것 같았다.“오빠, 이상한 생각 한 거 맞죠?”한편 윤여진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는 임유환을 보며 기쁨이 섞인 목소리로 장난스레 물었다.“어...”임유환은 이젠 정말 자신이 무슨 생각인지도 잘 모를 지경에까지 이르렀다.정말 윤여진을 두고 이상한 생각을 했다고 말하기에는 그는 윤여진이 동생으로밖에 보이지 않았고 그렇다고 아무런 생각도 없었다고 말하기에는 그녀의 몸만 보면 저절로 뜨거워지는 가슴이 대신해서 부정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여진아, 사실... 나는...”다그치는 윤여진에 임유환은 해명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어떻게 말을 해야 진심이 전달될지 몰라 말을 시작하지 못하고 있었다.임유환에게 윤여진은 여전히 15년 전 꼬맹이였고 임유환 또한 그때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싶었다.그는 윤여진이 자신의 마음에 대해 오해하는 것도 원치 않았고 또 윤여진도 같은 마음으로 자신을 대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여전히 그때처럼 윤여진이 힘들 때 그녀에게 힘이 돼주는 든든한 오빠가 되고 싶었는데 이 마음을 전하기에 말 한마디
“아니야, 그냥 네가 아까 한 말 생각하고 있었어.”“그럼 오빠도 나랑 같이 있고 싶은 거예요?”다급히 해명하는 임유환에 시무룩해 있던 윤여진은 다시 밝게 웃으며 물었다.“그럼.”임유환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지만 사실 그와 윤여진이 말한 같이 있는다는 서로 전혀 다른 뜻이었다.“그럼 오빠, 오늘 밤은 나랑 같이 있어 줄 수 있어요?”임유환의 팔을 감싸 안으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간드러지게 말하는 윤여진에 임유환은 몸이 먼저 반응할 뻔한 걸 간신히 참고는 물었다.“여기서 너랑 같이 밤을 보내자고?”“네!”윤여진이 이런 부탁을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던 임유환이기에 제 팔에 닿아오는 말랑거리는 그 느낌도 까맣게 잊은 채 놀랐다.그런 임유환의 반응을 보던 윤여진은 혹시라도 거절당할까 봐 다급하게 한마디 더 보탰다.“여기서 자는 건 처음이라 좀 무서워요, 워낙 낯설기도 하고...”“어...”윤여진의 부탁도 일리가 있어 보여 임유환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오빠, 그냥 남아서 나랑 같이 자면 안 돼요?”윤여진은 임유환의 팔을 좌우로 흔들며 입술을 살짝 깨문 채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임유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가만히 있어도 예쁜 얼굴인데 애교까지 부리니 귀여우면서도 섹시한 모습이 섞여 있어 웬만한 남자라면 다 윤여진한테 넘어갈 것 같았다.인내심과 자제력 하나는 자부하면서 살아왔던 임유환도 윤여진의 애교 공세에 3초도 못 버티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알... 알겠어.”임유환은 저도 모르게 긍정의 대답을 해버렸다.정말 이런 말을 할 생각은 전혀 없었고 바로 거절하고 싶었지만 저를 향해 애원의 눈빛을 보내는 윤여진을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역시, 오빠는 내 말 들어줄 줄 알았어요!”결국 제 말을 들어준 임유환에 윤여진의 촉촉한 눈망울에서는 빛이 나기 시작했다.“너랑 같이 있어 줄 수는 있는데, 난 바닥에서 잘 거야.”같은 방에서 밤을 보내는 건 이미 엎질러진 물이 돼버렸으니 임유환은 나름대로 그 안에서 최선책을 찾으려고 노력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