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마침 방으로 들어온 조명주와 임유환은 혼자 고개를 숙이고 핸드폰만 들여다보는 최서우를 보며 걱정스레 물었다.“서우야, 너 괜찮아?”“응.”최서우는 고개를 저어 보이며 핸드폰을 내려놓았다.“서우야, 조효동 그놈 말은 절대 믿으면 안 돼.”돌려 말하는 데에는 원체 소질이 없던 조명주가 하고 싶었던 말들을 속사포로 내뱉었다.“그놈은 진짜 사기꾼이야. 네가 기억을 잃은 틈을 타서 또 네 감정을 이용하려 드는 거라고.”“그리고 유환 씨는 진짜 남자친구가 아니라 네가 부탁해서 남자친구인 척해줬던 것뿐이야.”“진짜 좋은 사람이니까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어.”“근데 그 이유를 설명하려면 좀 복잡해.”말하자면 긴 얘기였기에 조명주는 어디서부터 말을 해야 할지 몰라했다.그때 뒤로 돈 최서우가 초조해 보이는 조명주를 향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명주야, 유환 씨 그런 사람 아닌 거 나도 알아.”“어?”느닷없는 최서우의 말에 그녀가 화나서 아무 말이나 하는 줄 알고 조명주는 다급히 해명하기 시작했다.“서우야, 진짜 내 말 한 번만 믿어줘. 유환 씨는...”“알아, 나 화난 거 아니야.”“진짜?”“응, 진짜?”아직 의심이 가시지 않은 듯 되묻는 조명주를 향해 최서우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뭐라고?”최서우의 거듭되는 말에도 조명주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남자의 배신을 제일 싫어하는 최서우가 왜 임유환만은 이렇게 빨리 용서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았다.그래서 조명주는 최서우가 화가 났는데도 그냥 표현하지 않는 것뿐이라는 판단에 이르게 되었고 폭풍전야 같은 이 상황을 빨리 해결하기 위해 다시 한번 더 해명하려고 입을 벌렸는데 그때 최서우가 먼저 웃으며 말했다.“명주야, 진짜 나 걱정 안 해도 돼. 나 너 믿어. 그리고 유환 씨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믿어.”“진짜야?”“그렇다니까.”“그리고 나 이젠 아무렇지도 않아.”또다시 되묻는 조명주에 최서우는 여전히 같은 대답을 했다.“알겠어.”그에 일단은 최서우의
“유환 씨, 명주야, 왜 날 그렇게 보고 있어?”임유환과 조명주의 의아한 눈빛을 동시에 받은 최서우는 어리둥절해 하며 물었다.“서우야, 너 설마 기억 난 거야?”그때 조명주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지만 최서우는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표정이었다.“뭘 기억했다는 거야?”“전에 있었던 일들 말이야!”“아니야.”아니라며 고개를 젓는 최서우에 조명주는 더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물었다.“그럼 왜 갑자기 달라진 거야? 조효동이 만나자는 것도 거절하고.”“서우야, 너 설마 충격받은 건 아니지?”“아니야, 내가 그 정도로 나약하진 않아.”자신을 걱정하는 조명주를 보며 최서우가 부드럽게 말했다.“그냥 조효동보다는 너랑 유환 씨한테 더 믿음이 가서 그런 것뿐이야.”임유환과의 채팅 기록을 다 보고 난 최서우는 기억을 잃긴 했지만 문자만으로도 자신이 그때 임유환에게 품었던 호감이 어느 정도인지, 또 임유환이 얼마나 따뜻하고 정의로운 사람인지 느낄 수 있었다.그리고 곤경에 처한 자신을 몇 번이나 도와준 사람이었기에 최서우는 임유환은 저를 속이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생겼다.말과 행동이 언제나 일치했던 임유환에 비해 조효동은 말의 앞뒤가 안 맞는 경우가 많았기에 임유환과의 채팅 기록을 보지 않았다 해도 최서우는 오늘 저녁 조효동의 데이트 신청에는 응하지 않았을 것이다.“정말 잘됐다!”그리고 최서우의 진심 어린 말을 들은 조명주는 그렇게 기쁜지 펄쩍 뛰기까지 했다.이제는 최서우가 조효동한테 속아 넘어갈까 봐 노심초사하진 않아도 될 것 같았다.“나 믿어줘서 고마워요.”기억을 잃은 뒤로 자신에게 계속 경계심을 품고 있던 최서우가 그런 경계를 조금이나마 내려놓고 자신을 믿어줬다는 생각에 임유환도 조금 울컥해 하며 말했다.“내가 오히려 두 사람한테 고마워해야죠.”최서우도 기뻐하는 그들을 보며 진심 어린 말을 전했다.“나 계속 잘 보살펴줘서 고마워요. 그리고 항상 내 걱정해줘서 그것도 너무 고마웠어요.”“아니에요, 어차피 다 나 때문에...”말
주방에서는 임유환이 여러 가지의 약재들을 뚝배기에 넣고 강한 불에 끓인 다음 약한 불로 바꿔서 뜸을 들이고 있었다.한쪽에 서서 그걸 지켜보던 조명주는 못 하는 게 없어 보이는 임유환을 대단하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유환 씨, 한의학도 그 비밀스러운 스승님 따라서 배운 거예요?”“네.”호기심에 가득 차 묻는 조명주를 향해 임유환이 고개를 끄덕였다.“어르신이 대단하시네요!”무술뿐만 아니라 의술에까지 능한 어르신의 정체가 더욱 궁금해진 조명주가 대단하다며 혀를 내둘렀다.“그렇죠.”스승님의 얘기를 꺼내자 임유환은 또 그리움에 잠긴 듯했다.스승님을 못 본지도 오래됐는데 계속 돌파하시겠다던 경지는 뛰어넘으신 건지 문득 궁금해졌다.“아 맞다, 유환 씨 어머니 얘기 아직 다 안 해줬어요.”그때 조명주는 임유환 어머니 얘기를 하다가 조효동이 찾아오는 탓에 얘기가 끊겨버린 걸 생각해내고는 다시 물었다.어머니를 언급하자 순식간에 표정이 어두워진 임유환이 입을 열었다.“어머니는... 15년 전에 저를 떠나셨어요.”“아주머니가 유환 씨를 떠나셨다고요?”임유환의 어머니가 임유환을 떠났다는 줄로만 알고 의아해하던 조명주는 슬퍼 보이는 임유환의 표정을 보고 이내 세상을 떠났다는 뜻임을 알아차렸다.“아, 미안해요...”그리고 그 말을 좀 더 빨리 눈치채지 못한 제가 한심스러워지며 임유환에게 미안해지는 조명주였다.“괜찮아요.”하지만 임유환은 그런 조명주를 달래듯 웃으며 말했다.“나한테 친구가 이렇게 많이 생긴 걸 엄마가 봤으면 아주 좋아했을 거예요.”“그러게요, 보셨으면 정말 좋아하셨을 텐데...”임유환에게 이런 슬픈 과거가 있을 줄은 몰랐던 조명주가 안쓰러운 듯 말했다.조명주는 어머니를 잃고 다른 사람에게 모함을 당하고 아버지한테 쫓겨나는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으면서도 나쁜 길로 빠지며 삶을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더 강하게 성장한 임유환의 마음은 얼마나 단단할까 싶어 감탄을 금치 못했다.“유환 씨가 그동안 겪었던 일 말해줄 수 있어요?”눈앞에
“유환 씨, 무슨 일 있어요?”갑자기 한기를 뿜어내는 임유환을 향해 조명주가 물었다.“흑제님 전황에요.”“아까 흑제님한테 조효동 조사를 부탁했는데 역시나 문제가 있더라고요.”“그럴 줄 알았어요!”그렇게 딱딱 맞아떨어질 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조명주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조사결과 어떻게 나왔대요?”임유환은 궁금해하는 조명주에게 핸드폰을 건네주었고 거기 적힌 내용들을 훑어보던 조명주는 차오르는 분노에 이를 갈았다.이제 보니 제가 조효동이 놓은 덫에 빠짐없이 다 걸려든 것 같았다.조효동은 준비해온 거짓말을 늘어놓기 위해 조명주가 그런 질문을 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근데 회사를 이전하면서 어떻게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을 수 있죠?”조명주는 아까 부관을 시켜 알아본 결과가 조효동이 말한 것과 일치했던 걸 떠올리며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뒤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있었을 거예요.”조효동이 어찌나 잘 꾸며놨는지 임유환도 미국에 있는 인맥과 자신의 신분이 아니었으면 알아내지 못 할 뻔한 사실들이었다.“누가 도와줬을까요?”“그건 아직 몰라요. 내가 직접 조효동 찾아가서 물어볼 거에요.”“같이 가요.”조효동을 찾아가겠다는 임유환에 누구보다 조효동을 한 대 때려주고 싶었던 조명주도 거들며 나섰다.“조 중령님은 남아서 서우 씨 지켜주세요. 조효동은 제가 알아서 처리 할 테니 저한테 맡겨 주시고요.”임유환도 그런 조명주의 심정은 알지만 그래도 집에 최서우 혼자 두는 건 마음에 걸렸기에 조명주를 말리며 그녀에게 최서우를 부탁했다.“알겠어요.”임유환의 뜻을 알아듣고 조금 진정한 듯 대답하던 조명주는 이내 눈을 반짝이며 한마디 더 보탰다.“조효동 그놈 절대 놓아주면 안 돼요!”“걱정 마요.”오늘 밤만 지나면 다시는 조효동이 최서우 근처에 얼씬거리지도 못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임유환의 눈빛이 더 차가워졌다.“알겠어요!”그런 임유환의 모습에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이던 조명주가 멈칫하며 물었다.“이거 서우한텐 얘기해야 할까요?”
“진짜라니까요!”그런 조명주의 우려를 보아낸 임유환이 호언장담을 하며 말했다.“만약에라도... 털이 자라면 어떡해요?”“어... 그럼 제모하는 약 만들어 줄게요.”“나한테 거짓말 한 거죠!”아직도 못 믿겠다는 듯이 눈을 번뜩이며 말하는 조명주에 임유환이 억울해하며 말했다.“거짓말 아니에요, 내 인격을 걸고 장담할 수 있어요.”“알겠어요, 그럼 믿어볼게요.”몇 번이나 진짜라고 하는 임유환에 조명주도 마침내 입술을 말아 물며 부끄러운 듯 말했다.“그럼... 뒤 돌아 있어요. 나 이거 한 번 써볼래요.”“지금요?”“네.”지금 바로 쓰겠다는 조명주에 임유환이 깜짝 놀라며 되물었지만 조명주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임유환을 향해 눈을 치켜떴다.“만약 거짓말이면 나 진짜 가만 안 있어요!”“아...”본인이 만든 약에 대해서는 자신이 있었던 임유환은 입술을 삐죽이며 뒤로 돌았다.임유환이 돌아선 걸 확인한 조명주는 옷을 들어 올리고 평평한 제 아랫배를 들어냈다.오랜 시간 훈련을 해온 탓에 조명주의 아랫배는 군살 하나 없이 매끈했고 모든 여자의 워너비인 복근이 떡하니 새겨져 있었다.그리고 왼쪽 복근의 아래쪽에는 2년 전 적들에게 포위되어 싸우다가 생긴 칼자국이 있었다.그때 제대로 상처를 치료하지 않아 지금까지도 흉터를 달고 있었는데 눈앞에 좋은 기회가 보이니 조명주도 속는 셈 치고 시도해보기로 했다.예쁜 걸 좋아하는 건 모든 여자의 공통점이듯 조명주 역시 그러했다.제 아랫배를 한번 본 조명주가 손에 약을 묻혀 상처에 살살 펴 바르자 처음에는 타오르듯 따가워 나던 것이 천천히 시원해지더니 마지막에는 미지근한 느낌이 들었다.짧은 시간에 몇 번이나 바뀌는 느낌에 조명주는 원래도 큰 눈을 더 크게 떴다.그리고 곧바로 믿기지 않는 일까지 일어났다.오돌토돌하게 올라왔던 흉터가 옅어진 건 물론이고 손으로 만져보니 말랑말랑해져 있었다.그 놀라운 현상에 감탄을 금치 못하던 조명주는 순간 남녀 사이의 어색함을 잊어버린 채 들뜬 마음으로 임유환
“어...”순수하지 못한 제 시선이 조명주에게 들킬 줄은 몰랐던 임유환이 다급하게 변명을 하기 시작했다.“상처 본 거예요.”어처구니없는 임유환의 말에 조명주는 옷을 내리며 임유환이 두 눈을 빛내며 보고 있던 것을 가려버렸다.“상처를 그렇게 눈도 떼지 않고 집중해서 봐요? 침까지 삼키던데?”“조 중령님, 저 진짜 상처 본 거라니까요...”정말 억울하다는 듯 변명하는 임유환에 조명주는 흥 소리를 내며 말했다.“진짜 남자들은 다 똑같다니까요!”조명주는 겉으로는 툴툴대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화가 난 건 아니었다.아니, 오히려 제가 임유환에게 여자로 보이기는 한다는 생각이 들어 다행스럽기도 했다.“약 만들어 준 성의를 봐서 한번은 그냥 넘어가는데 다음에 또 이러면 바로 총 들 거에요!”마지막 경고를 날리듯 임유환을 보며 눈을 번뜩인 조명주는 약을 들고 2층으로 올라가며 한마디 더 보탰다.“난 서우한테 약 발라주러 올라갈 건데 아까 본 건 빨리 잊는 게 좋을 거예요!”“어...”여전히 변함없는 불같은 성격에 대답을 얼버무리던 임유환은 앞으로 조명주와 결혼 할 남자는 몸이 남아나질 않을 것 같아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그런데 미래의 조명주 남편을 불쌍하게 여기던 것도 잠시 아까 보았던 조명주의 몸매를 떠올리더니 그 몸매만 보면 남편이 복을 받은 것 같기도 했다.점점 이상한 쪽으로 흘러가는 생각을 다잡으려 임유환은 애써 고개를 흔들며 서둘러 핸드폰을 꺼내 흑제에게 문자를 보냈다....깊은 밤, 산기슭의 101동 별장에서는 조효동이 다리를 길게 뻗은 아주 편안한 자세로 소파에 기대 누워 그 앞에 무릎 꿇고 있는 금발여자의 시중을 받고 있었다.여자는 노련한 테크닉으로 입술을 움직이고 있었고 조효동은 그 느낌을 온몸으로 즐기고 있었다.그런데 가만히 앉아있다 보니 최서우에게 데이트 신청을 거절당한 게 분하기도 했다.안 봐도 조명주가 옆에서 반대하고 나섰을 게 분명했다.“조명주, 이 미친년이 자꾸 내 일을 방해하네. 진짜 기회만 생겨
깜짝 놀라는 조효동을 비웃듯 임유환이 냉소를 흘리고는 답했다.“내가 원한다면 어디든 갈 수 있어 나는.”“너... 너 이거 주거침입이야!”제가 지금 있는 곳이 자신의 집이라는 사실을 떠올린 조효동이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자운별장에서는 그 누구도 타인의 영지를 함부로 침입하지 못한다는 규정이 있었기에 제가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고 여긴 조효동이 대뜸 소리를 질렀다.“알아, 근데 그게 뭐?”자신의 경고에도 여전히 실실대고 있는 임유환을 향해 조효동이 낮게 으르렁거렸다.“지금 당장 보안팀 불러서 너 끌어낼 거야!”“그럴 기회는 있고?”조효동을 향해 비아냥거리던 임유환은 몸을 앞으로 기울이더니 순식간에 조효동 눈앞에까지 다가갔다.그 모습을 본 조효동은 눈을 크게 떴고 옆에 있던 금발여자는 안색이 창백해져서 소리 질렀다.“귀신이야!”-퍽!그런 여자가 시끄러웠던 임유환은 손을 들어 여자를 기절시켰다.그리고 임유환의 손맛을 직접 경험한 적이 있던 조효동은 갈 곳 잃은 눈동자를 굴리며 말했다.“너... 뭐 하자는 거야 지금!”“얘기나 좀 해보려고.”미소를 지으며 정말 제집이라도 된 양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꼬는 임유환이 꼴 보기 싫었던 조효동이었지만 그렇다고 그 말에 반박할 용기는 나지 않았던 터라 조효동은 낮은 목소리로 되물었다.“무슨 얘기가 하고 싶은데?”“서우 씨한테서 떨어져.”단도직입적으로 말하는 임유환에 조효동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서우한테서 떨어지라고?”“야, 네가 그런 얘기 하는 거 웃긴다고 생각 안 해? 잊었나 본데 대학 때 최서우 남자 친구는 나였어.”“그래, 네 말대로 대학 때는 그랬지.”임유환은 한쪽 입꼬리를 올려 차갑게 웃으며 손가락 끝으로 소파를 두어 번 두드렸다.“지금의 너는 그냥 서우 씨한테 상처 주고 서우 씨를 속인 나쁜 놈일 뿐이야.”“그리고 나는 너랑 상의하러 온 게 아니야.”“통보하러 온 거지, 서우 씨한테서 떨어지라고.”같잖은 임유환의 말에 조효동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통보? 네가
조효동과 더 말 섞기도 귀찮아진 임유환의 눈에는 냉기가 감돌았고 이미 듣고 싶은 대답은 다 들은 그였기에 이제 더는 얘기를 나눌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흔적도 없이 회사를 옮긴 것과 며칠 사이에 허가를 받아 건물을 지은 것까지 전부 다 정우빈 도와준 일이라 확신이 든 임유환은 눈을 번뜩였다.아무리 생각해도 저번 결혼식 때 정우빈을 너무 봐줬던 것 같았다.“야 촌뜨기, 허세 그만 부리고 당장 꺼져. 한창 즐거웠는데 너 때문에 다 망쳤잖아!”“즐거워?”조효동의 낮은 목소리에 생각하기를 멈춘 임유환이 입꼬리를 올리며 산발이 된 금발여자에게로 눈길을 옮겼다.그 여자를 보고 있으니 조효동이 더 역겨워 났다.저런 놈이 최서우를 한 번 더 아프게 하는 건 절대 두고 볼 수 없었던 임유환은 흑제에게 전화를 걸었다.“흑제, 조효동 회사 부도내고 그 이름으로 된 재산 전부 동결해줘요.”“예, 주인님!”임유환의 말에 흑제가 대답을 마치고 전화를 끊었지만 그걸 알 리 없는 조효동은 박장대소를 하기 시작했다.“하하!”“야, 내가 잘 못 들은 거 아니지? 뭐? 우리 회사를 부도내고 내 재산을 동결해?”“네가 뭔데 그래?”“뭐 은행장? 아니면 비서실장이라도 돼?”“아, 내가 말 안 했나? 내 재산은 전부 다 해외에 있어.”“네가 은행장이라 해도 내 재산 동결할 권리는 없단 말이야.”“우리 회사 부도는 내가 한번 잘 지켜봐 줄게. 네가 도대체 무슨 수로 부도내는지.”임유환 뒤를 봐주는 게 흑제라는 걸 조효동도 물론 알고 있었지만 드림 그룹 일은 정우빈이 직접 사람을 시켜 진행한 일이라 그는 전혀 겁나는 게 없었다.이 나라에서 정우빈을 능가할 만한 권력자는 없을 거라 생각한 조효동은 마음 놓고 임유환을 비웃고 있었다.그런데 임유환은 아까부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혼자서 수만 세고 있었다.“야, 넌 왜 말이 없어? 허풍을 너무 크게 떨어놔서 창피해? 말도 제대로 안 나오니?”점점 더 신랄하게 비웃던 조효동은 얼마 지나지 않아 더는 웃지 못할 처지가 돼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