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은철의 확답을 받자, 뒷걱정이 없어진 윤수정은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일부러 하은철의 얼굴에 키스했다.“오빠 고마워.”말을 마친 윤수정은 도발적인 눈빛으로 이서를 쳐다보았다.이서는 그녀의 이런 수법에 대해 이미 무감각해졌다.마음속에 어떠한 동요도 일어나지 않았다.그러나 윤수정의 이러한 행동거지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모두의 시선이 하은철에게 떨어졌다.윤수정에게 기습 키스를 당한 하은철은 정신이 멍했다.그리고 잠시 뒤 곧 짜증이 밀려왔다.그렇다, 짜증이 났다.윤수정에게 이런 감정을 느낀 건 처음이었다.오랜 기간 동안 재계에 몸 담고 있으면서 하은철도 자기 기분을 티 내지 않는 것에 익숙했다. 그는 짜증났지만 전혀 내색하지 않고, 눈살만 찌푸렸다.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이는 윤수정의 과감한 표현에 대한 묵인으로 보였다.묵인했다는 건 즉 그와 윤수정의 관계를 인정했다는 뜻이 된다.이는 이번 경선에서 윤수정에게 배팅한 사람들을 더욱 자신만만하게 만들었다.두 사람은 함께 이서 맞은편으로 걸어갔다.이서는 시선을 거두고 고개를 숙여 수중의 자료를 보았다.이서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한 표정을 보이자, 하은철의 마음은 다시 짜증이 났다.그는 이서가 예전처럼 한 번만이라도 정겹고 살갑게 웃어 준다면, 맹세코 모든 것을 버리고 윤씨 그룹의 CEO자리를 이서에게 넘겨줄 것이다.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그녀는 시종 고개를 숙이고 자료만 보았다.하은철은 주먹을 불끈 쥐고, 직원이 옮겨온 의자에 앉았다.이서 쪽에 앉은 주주들은, 하은철이 직접 주총에 온 걸 보고 마음이 뒤숭숭했다.이서가 장부를 보여 줬을 때, 그들은 이서의 능력을 매우 긍정적으로 판단했다.하지만 지금은…….하은철조차도 윤수정 편에 섰다.“심적 부담 갖지 마세요.”이서는 고개를 숙여 얘기했다. 목소리가 작았지만, 왠지 모르게 힘이 느껴졌다.“윤씨 그룹 주총이지, 하씨 그룹 주총이 아니잖아요, 하은철이 왔다고
“내가 얘기했잖아. 윤이서가 경선에 참가하는 건, 우리에게 재밋거리 선사하기 위해서라고. 설령 주주를 두 명 구슬려 삶았다고 해도, 무슨 소용이야? 딱 보면 몰라, 대세가 이미 윤수정 쪽으로 기울었잖아.”“그러게, 사람이 무식하면 용감해진다는 말이 맞나 봐. 윤이서는 정말 자기편에 설 사람이 있는 줄 알았나 봐. 주주들이 바보도 아니고……. 지금 상황에서는 무조건 윤수정이지.”“윤수정 뒤에는 하은철 대표가 떡하니 버티고 있잖아. 윤이서는 뭐가 있는데?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남편……?”“…….”하은철이 있는 자리인지라 너무 대놓고 비아냥거리지는 못하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이서는 듣지 못했다. 심지어 회의실에서 정적이 찾아왔을 때도, 그녀는 계속 자신 앞에 놓인 서류에 뭔가를 열심히 적고 있었다.그녀는 경선과는 관계없는 사람처럼 보였다.이서의 곁에 앉은 두 주주는 우기광과 우기동으로, 두 사람은 사촌 형제지간이었다.그들이 애초에 윤씨 그룹에 투자했던 것도, 하씨 그룹 때문이었다.그러나 양전호, 구양태와는 또 달랐다.이들 두 형제는 전 재산을 다 털어서 투자했다.한때 윤씨 측의 적자 상황으로 두 가정은 하마터면 파탄 날 뻔했다.결국 그들이 투자한 신에너지 쪽이 대박을 터뜨리며 겨우 위기를 넘기고 살아남았다.지금은 돈이 생겼지만, 그동안 온 가족이 고생한 걸 생각하면…….우기광은 이서를 보고 마침내 큰 결심을 한 듯 말했다.“나는 윤이서 씨를 지지하겠습니다.”그는 가타부타 언급없이 바로 자리에 앉았다.장내에 킥킥거리는 비웃는 소리가 퍼졌다.우기동은 원래 윤수정을 선택하려 했지만 사촌형이 이미 이서를 선택한 이상 그도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나도, 윤이서 씨한테 한 표 걸겠습니다.”이번에는 주위의 웃음소리가 확연히 더 커졌다.수군대는 소리도 더욱 거세졌다.이때 이서는 고개를 들어 조용환을 바라보았다.“조 대표님, 기타 4명의 주주들은 이미 표결을 마쳤는데, 대표님은……?”그녀의 말을 듣고, 상황을 지켜보던 고위층들이 더
이서의 입가에 웃음이 더욱 깊어졌다. 그녀는 턱을 살짝 들어 조용환을 바라보았다.“조 대표님, 만약 내가 방금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조대표님이 윤수정을 지지한다고 말씀하신 거 맞죠?”그녀는 일부러 ‘조 대표’를 강조해서 말했다.조용환은 뭐가 잘못되었는지 모르고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윤씨 그룹 주주는 당신이 아니라 당신 아들 조진명인 걸로 압니다만……, 당신은 조진명 사장 대신 그 어떤 결정도 내릴 수 없습니다.”조용환의 얼굴색이 약간 변했지만, 곧 웃으며 말했다.“부자는 일심동체요, 우리는 같은 생각입니다.”“어, 그래요? 전화해서 물어볼까요?”“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윤수정은 비웃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가엾다는 표정으로 눈을 깜빡였다.“언니, 정말 그렇게 윤씨 그룹 CEO, 대표이사가 되고 싶으면, 내가 양보할게. 이렇게까지 구차하게 그럴 필요 없잖아. 언니 지금 되게……억지 부리는 거 같아.”조용환한테 시선이 고정된 이서는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조용환은 괜히 찔리는 듯 핸드폰을 꺼냈다.“그러죠, 이서 양이 원한다면, 내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보죠. 아들도 같은 생각이면 깔끔하게 승복하는 거죠?”말이 끝나자, 조진명에게 스피커폰으로 전화를 걸었다.전화는 곧 연결되었고, 전화기 너머에서 조진명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아빠, 아빠? 나 좀 살려줘…….]조용환의 얼굴색이 순식간에 변하며, 스피커폰을 끄고 창가 쪽으로 걸어갔다.“진명아, 왜 그래? 무슨 일이야?”수화기 너머의 조진명이 무슨 말을 했는지, 조용환의 음흉한 눈빛이 순식간에 이서에게 쏠렸다.그는 주먹을 불끈 쥐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다시 회의 테이블 옆으로 돌아왔다.이서는 두 손으로 팔짱을 꼈다.“어때요, 조진명 사장은 뭐라고 하던 가요?”조용환은 이를 꽉 깨물었다.“아들이 윤이서 양을 지지한답니다.”이 말이 나오자, 장내가 순간 아수라장이 되었다.“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니야?”“조진명도 하 대표가 수정이 밀어
이서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하 대표님, 그게 무슨 뜻이죠? 여기는 회사입니다. 예의를 지켜주세요.”“윤이서, 시치미 떼지 마, 너나 나나 우리 다 알고 있잖아.”“하 대표님, 똑바로 얘기하시죠, 대체 무슨 얘긴지 전혀 모르겠는데요……?”이서 앞에 다가간 하은철은 눈동자 깊은 곳에서 치솟는 분노를 억누르고, 더 이상 이서의 체면을 봐주지 않았다.“조진명이 왜 갑자기 생각을 바꿨을까? 네가 뒤에서 수작 부린 거 다 알 거든.”이서는 맑은 눈동자를 들어 하은철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증거 있어?”하은철은 이서의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한참 뒤에야, 비로소 입을 열었다.“증거는 없지만, 조진명 부자가 갑자기 입장을 바꾼 건 수상하잖아. 틀림없이 네가 뭔 짓을 했겠지, 윤이서, 난 널 너무 잘 알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지!”이서는 무시하는 듯한 표정으로 웃었다.“그러고 보니, 우리 하은철 대표께서는 목적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우리 같은 사람을 아주 혐오하나 봐요.”“그래!” 하은철은 눈을 붉히며 호통을 쳤다.“내가 가장 싫어하는 인간이 바로 너처럼 목적을 위해 남을 무시하고 뭉개는 사람이야!”‘오랜 기간 네가 수정이에게 했던 것처럼 말이야.’‘윤수정이 좋아하는 거라면 네가 기어코 뺏었잖아.’‘나도 그렇고!’‘그리고 오늘 CEO 자리까지!’‘어쩌면 변한 게 하나도 없어?!’이서는 입술을 올리며 가볍게 웃었다.“그래요, 하은철 대표 부디 지금 한 얘기를 잘 기억해 두길 바랍니다.”말이 끝나자 그녀는 또 조용환을 쳐다보았다.“조 대표님, 하 대표에게 얘기 좀 해주시죠. 당신 부자께서 갑자기 생각을 바꾼 게 저와 관계가 있는지……?”조용환은 고개를 들어 이서를 바라보았다. 창백한 입술이 움찔하다가 결국 고개를 저었다.“하 대표님, 이번 결정은 이서 양과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 오로지…… 진명의 결정입니다!”조용환이 부인할수록 하은철은 이서가 한 짓이라고 확신했다.따라서 그녀에 대한 감정
“맞아!” 하은철은 윤수정을 두둔하고 나섰다.“수정이 싫다는 걸 내가 겨우 설득한 거라고.”윤수정에게 감쪽같이 속은 것도 모르고 편들고 있는 답답이 하은철을 보며, 이서는 참지 못하고 피식 웃었다.“왜 웃어?” 하은철은 골이 상투 끝까지 났다.“네가 이리 쉽게 속는 게 웃겨서.”“뭐라고?” 하은철은 반감으로 눈살을 찌푸렸다.“넌 매일 윤수정의 곁에 붙어있으면서도, 꾀병인지도 몰랐니?”‘꾀병’이라는 두 글자가 나오자, 윤수정은 몸이 휘청거렸다.그러나 그녀는 곧 책상을 받치고 똑바로 섰다.“언니, 어떻게 이렇게 나를 모함할 수 있어?”하은철도 화가 나서 이서한테 노발대발했다.“윤이서, 너 대체 밑바닥이 어디야?!”이서는 하은철에게 설명하는 것도 귀찮았다. 그녀는 문어귀를 보며 이상언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이서가 더 이상 별말 없자, 윤수정은 어디서 나온 배짱인지 모르겠지만 더욱 당당하게 나섰다. 그녀는 눈시울을 붉히며 입술을 깨물었다.“언니, 무심코 던진 돌멩이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다고, 언니가 아무렇게나 뱉은 말에 내 인생이 망가질 수도 있는데……, 최소한…… 나한테…… 사과정도는 해야 하는 거 아니야?”윤수정의 눈물을 본 하은철은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그는 고개를 돌려 이서를 보았다.“윤이서, 너 당장 수정에게 사과해.”이서는 고개를 살짝 쳐들었다. 눈에는 ‘네가 뭔데’라는 의미가 강하게 들어 있었다.하은철은 화가 나서 이서의 고개를 눌러서라도 윤수정에게 사과시키고자 했다.하은철의 손이 자신에게 닿으려는 것을 본 이서는 혐오스럽다는 듯 옆으로 피했다.“건드리기만 해 봐.”하은철에 대한 혐오감은 이서의 온 얼굴에 다 쓰여 있었다.주위 사람들은 다들 놀라서 멍하니 이 상황을 지켜보았다.‘하은철이 이서를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이서가 하은철을 기겁하도록 싫어하는 것 같은데?’바로 이때 자료 한 묶음을 안고 이상언이 들어왔다.그는 이서를 향해 인사했다.“늦지 않았죠?”“딱 마침 오셨
의사 세 명은 일제히 이상언을 쳐다보았다.이들 셋, 겉보기에는 멀쩡하지만, 상처는 모두 옷으로 가린 부분에 숨겨져 있었다. 특히 이상언은 의사다 보니 급소를 피하되 사람을 괴롭히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이상언한테서 모진 고생을 다 한 세 사람은, 앞다투어 진실을 털어놓았다.“윤수정 님은 건강상 전혀 이상이 없습니다…… 저 또한 그녀의 협박에 못 이겨 가짜 병력과 검사지를 작성했습니다. 하 대표님, 저……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협박당했을 뿐입니다…….”하은철은 세 의사의 변명을 전혀 듣지 않았다.그는 누구한테 세게 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머리가 띵했다.텅 빈 머릿속에는 한 마디만 맴돌고 있다.‘윤수정은 건강상 전혀 이상이 없다…….’‘병이 없다…….’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멍하니 윤수정을 바라보며 말했다.“저 사람들 말이 사실이야? 왜? 왜? 나한테 왜 그런 거야?”윤수정은 하은철이 진실을 알게 되는 그 날을 상상 안 해 본 건 아니었다. 그래서 수감 중일 때 외부에서 구치소 내 상황을 전혀 확인할 바가 없다는 것을 알고 이를 이용하여 자기 병이 완치되었다고 사기 행각을 버린 것이었다.모든 사람을 감쪽같이 속인 줄 알았는데…….그녀는 매서운 눈빛으로 이서를 쳐다보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심각한 통증에 그녀는 순식간에 정신을 차렸다.그녀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눈물을 흘렸다.“오빠, 내 얘기 좀 들어봐…….”말하면서 그녀는 하은철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하은철은 무자비하게 뿌리쳤다.“그래서…… 어쨌던 날 정말 속인 거네. 그런 거네?”하은철은 고개를 숙이고 윤수정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윤수정은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그녀를 끝없는 심연으로 끌고 들어가는 것 같았다.그녀는 이 상황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지만, 확실한 증거 앞에서 계속되는 그녀의 거짓말은 그녀에 대한 실망감만 더욱 증폭시킬 뿐이었다.윤수정은 하은철의 옷자락을 꽉 움켜쥐고 바들바들 떨었다.“그건…….”하은철의 입근육이 경련했다. 그는 꽉 쥔 주먹을
조용환도 조용히 자리를 떴다. 들어올 때의 의기양양한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순식간에 십년은 늙은 것 같았다.이 자리에서 진심으로 이서가 신임 CEO로 선출되길 바라는 사람은 우기광 뿐이었다.그는 일어서서 손을 내밀었다.“축하합니다, 이서 씨!”이서는 미간을 펴고 눈썹을 치켜 뜨며 말했다.“저도 축하드립니다.”우기광은 멍하니 있다가 곧바로 장부가 생각나 웃으며 말했다.“윤재하 사장의 횡령 건을 해결하겠다는 말씀이군요?”고개를 젓는 이서의 눈빛에 강한 자신감이 내비쳤다.“그 뿐만 아닙니다. 앞으로 윤씨 그룹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오늘 현명한 선택하신 걸 축하드립니다.”우기광은 살짝 멍해졌다.상인으로서, 오랫동안 재계에 몸담고 있으면서 무수히 많은 사람을 봐왔지만 이서처럼 자신만만한 사람은 처음 보는 듯했다.“이서 씨, 아니……, 대표님, 질문 하나 해도 될까요?”우기광은 이서가 고개를 끄덕이자 물었다.“실례될 지 모르겠지만, 자신감의 원천은 무엇인가요?”그이 진지한 눈빛에서 이서는 그가 그녀를 비웃거나 조롱하는 것이 아닌 진심에서 나온 질문인 게 느껴졌다.이서는 자신 있게 웃으며 말했다.“우리 남편이요.”우기광과 우기동은 모두 멍해졌다.이서는 가방을 챙기면서 말했다.“자, 두 분도 바쁘신데, 시간 뺏지 않겠습니다.”그녀는 지금 이 좋은 소식을 얼른 지환에게 알리고 싶었다.얼굴 보고!직접!이서가 떠나는 것을 지켜본 후, 우기동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우기광에게 물었다.“형, 윤이서가 골치덩어리 윤씨 그룹을 윤씨라는 난장판을 잘 수습할 수 있을까?”“전에는 못 미더웠는데, 오늘 보니…… 아마 가능할 거 같기도…….”“하지만 방금 그 얘기 들었지? 아니 자신감의 원천이 남편이래? 이성적이고 성숙한 회사 대표라면 이런 감성적인 말을 하지 않을 텐데.”우기광과 우기동은 나란히 엘리베이터로 향했다.“너도 오늘 상황 다 지켜봤잖아. 정말 아무 능력이 없었다면 조진명의 생각을 바꿀 수 있었겠어?”우기동
지하 주차장.차에 타서 지환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야 이서는 비로소 자신이 심하게 떨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그녀는 버튼을 여러 번 눌러서야 마침내 지환과의 전화에 성공했다.전화는 벨이 한 번 울리기도 전에 바로 받았다.[여보.]이서는 본래 울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지환의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를 듣는 순간, 그녀는 저도 모르게 코끝이 시큰거리면서 눈물이 났다.“지환 씨, 우리가 이겼어요, 우리가 이겼다고요!”우리 두 글자를 듣는 순간, 지환도 가슴이 쿵쾅 뛰었다.[자기야, 우리 자기 정말 장하다!]그의 눈가에 웃음이 가득했다.옆에 서 있던 이천이 몰래 지환을 쳐다보며 속으로 생각했다.‘어찌 조 단위 프로젝트를 따냈을 때도 더 좋아하시지.’“혹시 점심 때 시간 있어요?” 이서는 코를 들이마셨다.“우리 같이 밖에서 축하해요. 하나랑 그리고……상언 씨도 같이 불러서……, 이번에 정말 상언 씨 아니라면 힘들었을 거예요. 제대로 감사해야죠.”[그래.]“그럼 내가 하나에게 전화할 게요.” 이서는 백미러로 눈시울을 붉힌 자신을 쳐다보며 신기했다.밖에서 그녀는 완전 무장한 여전사였다.그러나 지환 앞에서 그녀는 무장해제한 아이처럼 유치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응.] 지환은 가볍게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내가 데리러 갈까?]“아니요, 제가 임현태 씨한테 하나 픽업해 오라고 할게요.”임현태를 언급하자, 지환의 표정이 멈칫했다.하지만 곧 입술을 올리며 웃었다.[그래.]지환과 통화를 마친 이서는 곧 임하나에게 전화를 걸었다.아까 지환과 통화할 때의 흥분된 마음은 어느 정도 진정되었다. 전화가 연결되자, 전화기 너머의 임하나가 오히려 그녀보다 더 흥분했다.[아아아아, 이서야, 너무 대견하다, 내가 월차 내고 그 자리에 갔어야 하는 건데…… 정말 아쉽네! 이서야, 넌 나의 워너비야!]임하나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이서는 얼굴에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남의 백 마디 아첨보다 가까운 사람의 한 마디 칭찬이 훨씬 더 감동적인 법이다.“아이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