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 주차장.차에 타서 지환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야 이서는 비로소 자신이 심하게 떨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그녀는 버튼을 여러 번 눌러서야 마침내 지환과의 전화에 성공했다.전화는 벨이 한 번 울리기도 전에 바로 받았다.[여보.]이서는 본래 울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지환의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를 듣는 순간, 그녀는 저도 모르게 코끝이 시큰거리면서 눈물이 났다.“지환 씨, 우리가 이겼어요, 우리가 이겼다고요!”우리 두 글자를 듣는 순간, 지환도 가슴이 쿵쾅 뛰었다.[자기야, 우리 자기 정말 장하다!]그의 눈가에 웃음이 가득했다.옆에 서 있던 이천이 몰래 지환을 쳐다보며 속으로 생각했다.‘어찌 조 단위 프로젝트를 따냈을 때도 더 좋아하시지.’“혹시 점심 때 시간 있어요?” 이서는 코를 들이마셨다.“우리 같이 밖에서 축하해요. 하나랑 그리고……상언 씨도 같이 불러서……, 이번에 정말 상언 씨 아니라면 힘들었을 거예요. 제대로 감사해야죠.”[그래.]“그럼 내가 하나에게 전화할 게요.” 이서는 백미러로 눈시울을 붉힌 자신을 쳐다보며 신기했다.밖에서 그녀는 완전 무장한 여전사였다.그러나 지환 앞에서 그녀는 무장해제한 아이처럼 유치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응.] 지환은 가볍게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내가 데리러 갈까?]“아니요, 제가 임현태 씨한테 하나 픽업해 오라고 할게요.”임현태를 언급하자, 지환의 표정이 멈칫했다.하지만 곧 입술을 올리며 웃었다.[그래.]지환과 통화를 마친 이서는 곧 임하나에게 전화를 걸었다.아까 지환과 통화할 때의 흥분된 마음은 어느 정도 진정되었다. 전화가 연결되자, 전화기 너머의 임하나가 오히려 그녀보다 더 흥분했다.[아아아아, 이서야, 너무 대견하다, 내가 월차 내고 그 자리에 갔어야 하는 건데…… 정말 아쉽네! 이서야, 넌 나의 워너비야!]임하나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이서는 얼굴에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남의 백 마디 아첨보다 가까운 사람의 한 마디 칭찬이 훨씬 더 감동적인 법이다.“아이구,
‘임하나 앞에서도 농담을 하는 거 보니, 오늘 우리 친구 기분이 엄청 좋은가 보네.’이상언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바로 말을 이었다.“나야 그러고 싶지, 근데 모 여사께서 협조를 안 해주네. 당신들 앞에서 자꾸 조크나 주고…….”이서도 빙그레 웃었다.“하나야, 들었지? 누군 지금 신문고 울릴 판이다. 얼른 정규직으로 전환시키고, 겹경사 파티 하자고.”“그만 해, 오늘은 너의 좋은 날이잖아, 주객전도가 되서는 안 되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큰 맘 먹고 이서와 지환 앞에서 자발적으로 이상언의 손을 잡았다.이상언은 고개를 숙이고 겹친 손을 보면서 가슴이 두근거렸다.막 입을 열려고 할 때, 임하나의 경고가 들려왔다.“적당히 하시죠. 욕심이 과하면 화를 부를 수도…….”이상언은 곧 입을 다물고, 순순히 임하나에 이끌려 자리에 앉았다.이서와 지환은 눈을 마주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뭐 먹을까? 빨리 주문하자, 배고파 죽겠어.” 임하나는 이서가 놀리기도 전에 먼저 입을 열었다.그들은 얼른 음식을 주문했다.음식이 준비되는 동안, 이상언은, 하은철이 윤수정에 속은 모습을 얘기하면서 배 끌어안고 웃었다.“하하하, 하은철 표정을 봤어야 하는데……. 세상이 무너진 것 같았어!”임하나가 콧방귀를 뀌었다.“샘통이다. 전에 이서 보고 가식덩어리라고 하더니, 진짜 꽃뱀은 윤수정이잖아. 멀쩡하게 생겨서 눈은 장식으로 달고 다니나 봐. 어떻게 그렇게 사람 보는 눈이 없어. 이제 잘 됐네. 드디어 윤수정의 정체를 똑똑히 봤을 테니. 후회해도 소용없어!”지환은 고개를 돌려 이서를 보며,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다.지환의 시선을 느낀 이서도 고개를 돌렸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그녀는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눈빛으로 지환에게 ‘왜’냐고 물었다.지환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다시 고개를 돌려 이상언의 생생한 주총 현장 이야기를 들었다.임하나도 흥미진진하게 경청했다.“나중에는?”“윤수정이 하은철의 차에 오르는 것까지는 봤는데……
이서는 지환에게 숨기거나 감추거나 하지 않고 구태우에게 바로 메시지를 보냈다. [네, 그럼 지금 보내주세요.]잠시 뒤, 구태우의 메시지가 도착했다.[컴퓨터 바이러스로 관련 자료 복구는 불가합니다. 다행이 조사 자료를 프린트해 놓은 게 있어서……. 혹시 오후에 시간 있으세요? 제가 가져다 드리겠습니다.]생각해 보니 오후에 별 일도 없었다. 그래서 가볍게 답장했다.[네. 시간 있어요, 수고 좀 해주세요. 감사합니다.]구태우는 괜찮다는 간단한 답장을 하고는 더 이상 문자를 보내지 않았다.점심식사는 이서의 성화에 못 이겨 그녀가 계산했다.임하나와 이상언은 먼저 갔다.지환은 가만히 서 있었다.“오후에 출근 안 해도 돼요?”“해야지.” 지환은 손가락으로 이서의 여린 붉은 입술을 어루만지고, 다른 한 손으로 이서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그녀를 자기 몸에 찰싹 밀착시켜 꼼짝달싹 못하게 했다.“그런데 출근하기 싫어.”이서는 웃었다.“그럼 뭐 하고 싶은데요?”“너.” 지환이는 한 글자만 내뱉었다.이서는 지환이 얘기하는 바를 바로 알아차리고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아우, 참…….”지환은 이서의 귓불을 깨물었다.“자기야, 자기 또 나 꼬시는 거지?”이서는 수줍어하며 지환의 가슴을 팔로 받치며 그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얼른 출근해요.”지환은 웃으며 말했다.“그래, 대신 오늘 저녁에 일찍 집에 오겠다고 약속해.”“어서 가요.”“약속한 거다? 알았지?”“…….”정확히 물러날 때를 잘 아는 지환은 이서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했다.“그럼 난 집에서 자기 기다릴게.”그는 말을 마치고 차에 올라 떠났다.“…….”얼굴의 홍조가 좀 사라지자 이서는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를 내며 서우로 걸어갔다.지환은 백미러로서 점점 멀어져가는 이서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그의 시선은 뒷좌석을 훔쳐보던 임현태의 시선과 정면으로 부딪쳤다.지환의 시선을 받은 임현태는 놀라서 하마터면 혀를 깨물 뻔했다.‘오 마이 갓!’그는 연애 중
임현태는 지환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안절부절못했다.‘왜 이별을 고하는 말 같지?’‘설마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라는 건가?’이렇게 생각하니, 임현태의 온몸의 피가 또 들끓기 시작했다.……김청용 사무실.충격을 받은 김청용은 제자리에 서서 무려 수십 초 동안 멍해 있었다.이서는 미소를 지었다.“네, 내일 정식으로 취임합니다. 그래서 오늘 사장님께 정식으로 사직하러 왔습니다.”김청용은 박수를 쳤다.“정말 쾌거네요. 내가 듣기론 이번 경선을 위해 윤수정이 하은철 대표를 앞세워 여기저기에서 존재감을 과시하며 설쳤다는데…… 그러고 보면, 이서 씨가 제친 건 윤수정이 아니라 하은철인 거네요!”김청용은 정말 너무 궁금했다. 이서는 도대체 어떻게 주주들을 설득했을까?“사장님 과찬이십니다. 그냥 윤씨 그룹 내부 문제입니다. 음……. 오늘 사직서 정식 제출하고, 사장님께 인사도 드릴 겸…… 겸사겸사 들렸습니다.”“이렇게 급하게? 오늘 가려고요?”“네, 아시다시피 윤씨 그룹은 현재 난장판입니다. 하루라도 빨리 부임해서 뒷수습해야죠.”김청용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이서의 사직서에 서명한 후 이서에게 말했다.“앞으로 우리 다시 사업 파트너로 협력할 일이 있을 겁니다.”“물론입니다.”이서도 웃으며 말했다.“윤씨 그룹은 의류 패션사업을 위수로 하는 기업으로, 앞으로 여성 소비자를 겨냥해서 사업을 펼칠 예정입니다. 따라서 곧 머지않아 서우와 함께 협력하는 비즈니스가 있을 거라 믿습니다.”두 사람이 말하는 사이에 김청용은 사인한 사직서를 이서에게 건네주었다.“이서 씨, 미안한데, 지금 당장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이따가 가기 전에 다시 인사해요.”“그러실 필요 없습니다.”“아니, 해야죠.” 김청용은 이서와 악수를 하고 이서가 떠나는 것을 지켜봤다.그는 이서가 처음 입사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며 저도 모르게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이렇게 빠르게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는 이서를 보며, 그는 이서가 조만간 재계의 전설로 자리매김할
“언니랑 수정 씨, 완전 찐친인가 봐요? 벌써 만나러 가는 거예요……?”이서는 두 손으로 팔짱을 끼고, 무리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득의양양한 장지완을 어이없게 바라보며 가볍게 비웃었다.콧방귀 소리를 들은 무리 중 한 사람이 고개를 돌려 이서를 노려보았다.마치 충견이 주인을 지키기 위해 으르렁 대는 것 같았다.“웃긴 왜 웃어요? 어, 알았다. 지완 언니가 윤씨 그룹을 방문한다니까 부러워서 그러는 거죠? 당신은 이제 평생 윤씨 그룹에 발 디딜 일은 없으니……?”이서는 하마터면 빵 터질 뻔했다.그녀는 이 루저들과 말을 섞는 시간도 아깝다고 생각했다.“현태 씨, 여기 어쩐 일이에요?”임현태는 드디어 말할 기회가 생겼다.“난…….”“윤이서…….” 하이힐을 신고 이서 앞에 다가간 장지완은 임현태의 말을 끊은 것을 전혀 개의치 않았다.“굳이 윤씨 그룹에 가고 싶다면, 내가 데려갈게.”이서는 입꼬리를 당기며 말했다.“윤씨 그룹에 가려면 혼자 가면 되지, 왜 당신이 나서?”“윤 대표가 당신을 못 들어가게 할 테니까?”“내가 왜 날 들어가게 해?” 이서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숙여 장지완을 흘겨보았다.장지완의 얼굴에 웃음기가 굳어졌다.“뭐라고?”“내가 윤씨 그룹 신임 CEO, 신임 대표이사인데, 왜 내가 날 못 들어가게 하냐고?” 이서는 눈썹을 치켜세우고 다시 한 번 말했다.장지완의 안색이 변했다.그러다가 곧 입꼬리를 치켜세웠다.“윤이서, 제대로 미쳤구나. 네가 어떻게 대표이사가 되?”“왜 안 된다고 생각하지? 나도 윤씨 집안 사람인데, 내가 CEO 자리에 못 앉을 이유라도 있나?” 이서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윤수정과 찐친 아니었나? 아직 당신에게 오늘 경선 결과를 안 알려줬나 보네?”“그럴 리 없어!” 장지완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소리쳤다.“네가 어떻게 윤씨 그룹 CEO가 될 수 있어? 윤수정의 배후에는 하은철 대표가 있는데, 네가 뭐라고 하은철 대표가 미는 윤수정을 이겨?!”이서는 어처구니없는 듯 옅은 미소를 지으
장지완은 완전히 넋 놓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있었다.잠시 뒤, 그녀는 갑자기 바닥에서 일어나 이서의 손을 덥석 잡았다.“너 거짓말이지? 맞지? 네가 윤씨 그룹 CEO가 될 리 없잖아!”이서는 불편한듯 미간을 찌푸렸다.“놔!”이서의 손을 잡고 있던 장지완의 혼탁한 눈빛이, 임현태에게 떨어지면서 갑자기 눈동자가 밝아졌다.그녀는 비틀거리며 임현태에게로 향했다.임현태는 그녀의 행동에 깜짝 놀라 미처 반응하지 못하고 이서 앞으로 밀려났다.장지완은 지금 제정신이 아니었다.“이 사람, 네 남편 맞지? 허, 알았다, 네가 수단방법 안 가리고 윤씨 그룹 CEO가 되려고 애쓰는 거, 바로 남편 먹여 살리려고 그러는 거지? 하하하, 네 남편 거지야! 가난뱅이!”이서는 관자놀이를 비비며 서늘한 말투로 말했다.“장지완, 미쳐도 좀 곱게 미쳐요.”“결혼을 했는데 남편은 남 앞에 못 보이겠다?” 장지완은 돌았다. 제 화에 못 이겨 미쳤다. 그녀는 이서를 공격할 거리를 찾지 못하자, 이서의 남편이 일반인이라는 점을 이용해서 그녀를 필사적으로 공격하려고 했다.이서가 입을 열려고 하는데, 핸드폰 벨 소리가 울렸다.확인해 보니 구태우가 전화한 것이었다.“태우 씨?”[나 지금 서우 1층에 있어요.]구태우는 손에 든 서류봉투를 들고 물었다.[언제쯤 시간 돼요?]이서는 그녀 앞을 가로막고 발광하는 장지완을 보며 어떤 말로도 그녀를 설득할 수 없다는 걸 알았다.“갖다 줄 수 있겠어요? 지금 내려가기가 좀 그래서요…….”구태우는 ‘응’하고 대답했다.이서는 그제야 전화를 끊고 두 눈이 빨개진 장지완을 바라보며 말했다.“내 남편이 누구든, 당신이랑 뭔 상관이야? 오히려 당신…….”그녀는 입꼬리를 치켜세웠다.“콩밥 먹을 준비는 됐나?”장지완은 몸을 흔들며 물었다.“뭐라고?”이서는 턱을 살짝 들어올리고 몸을 돌려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녀는 장지완이 핑크 리본 공모전의 심사위원들에게 뇌물 돌린 증거를 가져갔다.이 때 구태우도 마침 올라왔다.그는 사무실 내
모두들 눈을 크게 뜨고 자신의 귀를 의심하였다. 시선은 일제히 임현태에게 떨어졌다.이 덩치 큰 운전기사가 UFC의 무패 챔피언이라니.“윤 총괄님…….” 이미 윤 총괄이란 호칭에 익숙한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이서를 윤 총괄이라 불렀다.“남편이 정말 대단한 분이네요. 와, 격투기 챔피언이었어.”“너무 로맨틱한 거 아니에요? 격투기 챔피언이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기꺼이 격투기를 포기하고 매일 아내를 출퇴근시키다니…….”“와, 정말 몰랐어. 거친 남자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세심하다니.”“…….”임현태의 얼굴은 이미 땀투성이가 되었다.더워서가 아니라 추워서.사람들의 아부성 멘트를 들으며 이서는 의미 심장한 웃음을 지었다.“모두가 오해하셨어요. 임현태 씨는 제 남편이 아닙니다.”사람들은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장지완을 쳐다보았다.“그런데 부 총괄님이…….”그 때 장지완이 그럴싸하게 얘기해서 다 믿었는데.이서의 말을 듣고 장지완은 순식간에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비웃으며 말했다.“그래, UFC 격투기 챔피언이 어떻게 네 남편이 될 수 있겠니?”그러고는 곧 의미심장한 웃음을 터뜨렸다.“설마 매일 출퇴근시키려고 돈 주고 고용한 건 아니겠지? 네 가난뱅이 남편이 고용할 능력은 안 될 테고……. 그런데 어쩜 좋아? 우리 회사에는 UFC에 관심 있는 사람이 없으니, 알아보는 사람도 없고…… 괜히 허세 부리려다 너 헛돈 썼어……. 하하하.”이서는 장지완의 상상력에 대해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어처구니없어 입을 열어 말하려고 하는데 마침 구태우가 한걸음 앞서서 말했다.“더는 눈 뜨고 볼 수 없네. 매일 출퇴근시키고 기사를 자처한 건 짝사랑하기 때문인 걸 모르셨나 봐?!”이 말이 나오자 임현태조차도 고개를 돌려 구태우를 보았다.‘뭐? 내가 사모님을 짝사랑한다고?! 죽고 싶어 환장했나?!’구태우는 땅바닥에 흩어진 자료들 속에서 서류 한 장을 찾아 이서에게 건네주었다.“임현태 씨는 H국 사람이지만, 오랫동안 외국에서 거주했어요. 해외에 가기전에 이
“연적의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이미 최고의 평가이지?”“정말 점점 더 궁금하네, 윤 총괄님 남편은 대체 누굴까!”“…….”임현태의 방금 전 얘기를 듣고서야 이서는 비로서 긴장을 풀었다.곰곰이 생각해 보니, 임현태가 그녀에게 지나친 행동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또한 자기 감정도 드러낸 적도 한번도 없었다.‘진짜 다 내려 놓았나 봐.’그녀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그럼 됐어요.”근데 지금은 임현태와의 일을 처리할 때가 아니었다.이서는 고개를 돌려 눈이 풀린 채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장지완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한손으로 사무 책상을 긁으며 입으로 중얼거렸다.“하하, UFC무패 챔피언이 윤이서를 짝사랑 한다니. 허허, 왜 다들 윤이서를 좋아하는 거야? 왜 아무도 날 좋아하지 않는 거냐고……? 왜……?”심한 외부적 자극으로 잠시 실성한 사람들을 이서는 텔레비전에서 본적이 있었다.그녀는 몸을 웅크리고 장지완의 눈동자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장지완이 핑크 리본 대자인대회 심사위원들에게 준 뇌물 증거를 꺼냈다.“이건 당신이 핑크 리본 디자인대회 심사위원들에게 송금한 기록들이야.”이서는 장지완의 귀에 다가갔다.“핑크 리본 대회는 해외에서 주최한 공모전이라 국내에서 이걸로 고소 고발할 수 없지만, 위 증거들은 당신이 자기 작품을 공모전에 제출했다는 증거인 셈이지…….”잠시 멈추었다가, 장지완의 흐리멍덩한 눈빛을 보며 이서는 계속 말했다.“그러니까 당신은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자신의 작품이 공모전에 출품했다는 것을 알고 있은 거야. 다시 말해서, 당신은 강수지가 내 이메일로 당신의 작품을 주최측에 보낸 것을 알고 있었다는 거지. 지난 번에는 누명을 강수지에게 덮여 씌웠지만, 이 증거들 앞에서 이제 발뺌하기 어려울 거야.”장지완의 손에 걸린 책상들이 연쇄반응이 일어난 것처럼 겹겹이 넘어지면서 바닥에 부딪혀 ‘쿵’ 하는 소리가 냈다.그녀의 얼굴에는 핏기가 하나도 없었다.30분 뒤, 출동한 경찰은 장지완을 데리고 갔다.이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