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는 지환에게 숨기거나 감추거나 하지 않고 구태우에게 바로 메시지를 보냈다. [네, 그럼 지금 보내주세요.]잠시 뒤, 구태우의 메시지가 도착했다.[컴퓨터 바이러스로 관련 자료 복구는 불가합니다. 다행이 조사 자료를 프린트해 놓은 게 있어서……. 혹시 오후에 시간 있으세요? 제가 가져다 드리겠습니다.]생각해 보니 오후에 별 일도 없었다. 그래서 가볍게 답장했다.[네. 시간 있어요, 수고 좀 해주세요. 감사합니다.]구태우는 괜찮다는 간단한 답장을 하고는 더 이상 문자를 보내지 않았다.점심식사는 이서의 성화에 못 이겨 그녀가 계산했다.임하나와 이상언은 먼저 갔다.지환은 가만히 서 있었다.“오후에 출근 안 해도 돼요?”“해야지.” 지환은 손가락으로 이서의 여린 붉은 입술을 어루만지고, 다른 한 손으로 이서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그녀를 자기 몸에 찰싹 밀착시켜 꼼짝달싹 못하게 했다.“그런데 출근하기 싫어.”이서는 웃었다.“그럼 뭐 하고 싶은데요?”“너.” 지환이는 한 글자만 내뱉었다.이서는 지환이 얘기하는 바를 바로 알아차리고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아우, 참…….”지환은 이서의 귓불을 깨물었다.“자기야, 자기 또 나 꼬시는 거지?”이서는 수줍어하며 지환의 가슴을 팔로 받치며 그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얼른 출근해요.”지환은 웃으며 말했다.“그래, 대신 오늘 저녁에 일찍 집에 오겠다고 약속해.”“어서 가요.”“약속한 거다? 알았지?”“…….”정확히 물러날 때를 잘 아는 지환은 이서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했다.“그럼 난 집에서 자기 기다릴게.”그는 말을 마치고 차에 올라 떠났다.“…….”얼굴의 홍조가 좀 사라지자 이서는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를 내며 서우로 걸어갔다.지환은 백미러로서 점점 멀어져가는 이서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그의 시선은 뒷좌석을 훔쳐보던 임현태의 시선과 정면으로 부딪쳤다.지환의 시선을 받은 임현태는 놀라서 하마터면 혀를 깨물 뻔했다.‘오 마이 갓!’그는 연애 중
임현태는 지환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안절부절못했다.‘왜 이별을 고하는 말 같지?’‘설마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라는 건가?’이렇게 생각하니, 임현태의 온몸의 피가 또 들끓기 시작했다.……김청용 사무실.충격을 받은 김청용은 제자리에 서서 무려 수십 초 동안 멍해 있었다.이서는 미소를 지었다.“네, 내일 정식으로 취임합니다. 그래서 오늘 사장님께 정식으로 사직하러 왔습니다.”김청용은 박수를 쳤다.“정말 쾌거네요. 내가 듣기론 이번 경선을 위해 윤수정이 하은철 대표를 앞세워 여기저기에서 존재감을 과시하며 설쳤다는데…… 그러고 보면, 이서 씨가 제친 건 윤수정이 아니라 하은철인 거네요!”김청용은 정말 너무 궁금했다. 이서는 도대체 어떻게 주주들을 설득했을까?“사장님 과찬이십니다. 그냥 윤씨 그룹 내부 문제입니다. 음……. 오늘 사직서 정식 제출하고, 사장님께 인사도 드릴 겸…… 겸사겸사 들렸습니다.”“이렇게 급하게? 오늘 가려고요?”“네, 아시다시피 윤씨 그룹은 현재 난장판입니다. 하루라도 빨리 부임해서 뒷수습해야죠.”김청용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이서의 사직서에 서명한 후 이서에게 말했다.“앞으로 우리 다시 사업 파트너로 협력할 일이 있을 겁니다.”“물론입니다.”이서도 웃으며 말했다.“윤씨 그룹은 의류 패션사업을 위수로 하는 기업으로, 앞으로 여성 소비자를 겨냥해서 사업을 펼칠 예정입니다. 따라서 곧 머지않아 서우와 함께 협력하는 비즈니스가 있을 거라 믿습니다.”두 사람이 말하는 사이에 김청용은 사인한 사직서를 이서에게 건네주었다.“이서 씨, 미안한데, 지금 당장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이따가 가기 전에 다시 인사해요.”“그러실 필요 없습니다.”“아니, 해야죠.” 김청용은 이서와 악수를 하고 이서가 떠나는 것을 지켜봤다.그는 이서가 처음 입사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며 저도 모르게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이렇게 빠르게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는 이서를 보며, 그는 이서가 조만간 재계의 전설로 자리매김할
“언니랑 수정 씨, 완전 찐친인가 봐요? 벌써 만나러 가는 거예요……?”이서는 두 손으로 팔짱을 끼고, 무리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득의양양한 장지완을 어이없게 바라보며 가볍게 비웃었다.콧방귀 소리를 들은 무리 중 한 사람이 고개를 돌려 이서를 노려보았다.마치 충견이 주인을 지키기 위해 으르렁 대는 것 같았다.“웃긴 왜 웃어요? 어, 알았다. 지완 언니가 윤씨 그룹을 방문한다니까 부러워서 그러는 거죠? 당신은 이제 평생 윤씨 그룹에 발 디딜 일은 없으니……?”이서는 하마터면 빵 터질 뻔했다.그녀는 이 루저들과 말을 섞는 시간도 아깝다고 생각했다.“현태 씨, 여기 어쩐 일이에요?”임현태는 드디어 말할 기회가 생겼다.“난…….”“윤이서…….” 하이힐을 신고 이서 앞에 다가간 장지완은 임현태의 말을 끊은 것을 전혀 개의치 않았다.“굳이 윤씨 그룹에 가고 싶다면, 내가 데려갈게.”이서는 입꼬리를 당기며 말했다.“윤씨 그룹에 가려면 혼자 가면 되지, 왜 당신이 나서?”“윤 대표가 당신을 못 들어가게 할 테니까?”“내가 왜 날 들어가게 해?” 이서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숙여 장지완을 흘겨보았다.장지완의 얼굴에 웃음기가 굳어졌다.“뭐라고?”“내가 윤씨 그룹 신임 CEO, 신임 대표이사인데, 왜 내가 날 못 들어가게 하냐고?” 이서는 눈썹을 치켜세우고 다시 한 번 말했다.장지완의 안색이 변했다.그러다가 곧 입꼬리를 치켜세웠다.“윤이서, 제대로 미쳤구나. 네가 어떻게 대표이사가 되?”“왜 안 된다고 생각하지? 나도 윤씨 집안 사람인데, 내가 CEO 자리에 못 앉을 이유라도 있나?” 이서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윤수정과 찐친 아니었나? 아직 당신에게 오늘 경선 결과를 안 알려줬나 보네?”“그럴 리 없어!” 장지완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소리쳤다.“네가 어떻게 윤씨 그룹 CEO가 될 수 있어? 윤수정의 배후에는 하은철 대표가 있는데, 네가 뭐라고 하은철 대표가 미는 윤수정을 이겨?!”이서는 어처구니없는 듯 옅은 미소를 지으
장지완은 완전히 넋 놓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있었다.잠시 뒤, 그녀는 갑자기 바닥에서 일어나 이서의 손을 덥석 잡았다.“너 거짓말이지? 맞지? 네가 윤씨 그룹 CEO가 될 리 없잖아!”이서는 불편한듯 미간을 찌푸렸다.“놔!”이서의 손을 잡고 있던 장지완의 혼탁한 눈빛이, 임현태에게 떨어지면서 갑자기 눈동자가 밝아졌다.그녀는 비틀거리며 임현태에게로 향했다.임현태는 그녀의 행동에 깜짝 놀라 미처 반응하지 못하고 이서 앞으로 밀려났다.장지완은 지금 제정신이 아니었다.“이 사람, 네 남편 맞지? 허, 알았다, 네가 수단방법 안 가리고 윤씨 그룹 CEO가 되려고 애쓰는 거, 바로 남편 먹여 살리려고 그러는 거지? 하하하, 네 남편 거지야! 가난뱅이!”이서는 관자놀이를 비비며 서늘한 말투로 말했다.“장지완, 미쳐도 좀 곱게 미쳐요.”“결혼을 했는데 남편은 남 앞에 못 보이겠다?” 장지완은 돌았다. 제 화에 못 이겨 미쳤다. 그녀는 이서를 공격할 거리를 찾지 못하자, 이서의 남편이 일반인이라는 점을 이용해서 그녀를 필사적으로 공격하려고 했다.이서가 입을 열려고 하는데, 핸드폰 벨 소리가 울렸다.확인해 보니 구태우가 전화한 것이었다.“태우 씨?”[나 지금 서우 1층에 있어요.]구태우는 손에 든 서류봉투를 들고 물었다.[언제쯤 시간 돼요?]이서는 그녀 앞을 가로막고 발광하는 장지완을 보며 어떤 말로도 그녀를 설득할 수 없다는 걸 알았다.“갖다 줄 수 있겠어요? 지금 내려가기가 좀 그래서요…….”구태우는 ‘응’하고 대답했다.이서는 그제야 전화를 끊고 두 눈이 빨개진 장지완을 바라보며 말했다.“내 남편이 누구든, 당신이랑 뭔 상관이야? 오히려 당신…….”그녀는 입꼬리를 치켜세웠다.“콩밥 먹을 준비는 됐나?”장지완은 몸을 흔들며 물었다.“뭐라고?”이서는 턱을 살짝 들어올리고 몸을 돌려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녀는 장지완이 핑크 리본 공모전의 심사위원들에게 뇌물 돌린 증거를 가져갔다.이 때 구태우도 마침 올라왔다.그는 사무실 내
모두들 눈을 크게 뜨고 자신의 귀를 의심하였다. 시선은 일제히 임현태에게 떨어졌다.이 덩치 큰 운전기사가 UFC의 무패 챔피언이라니.“윤 총괄님…….” 이미 윤 총괄이란 호칭에 익숙한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이서를 윤 총괄이라 불렀다.“남편이 정말 대단한 분이네요. 와, 격투기 챔피언이었어.”“너무 로맨틱한 거 아니에요? 격투기 챔피언이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기꺼이 격투기를 포기하고 매일 아내를 출퇴근시키다니…….”“와, 정말 몰랐어. 거친 남자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세심하다니.”“…….”임현태의 얼굴은 이미 땀투성이가 되었다.더워서가 아니라 추워서.사람들의 아부성 멘트를 들으며 이서는 의미 심장한 웃음을 지었다.“모두가 오해하셨어요. 임현태 씨는 제 남편이 아닙니다.”사람들은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장지완을 쳐다보았다.“그런데 부 총괄님이…….”그 때 장지완이 그럴싸하게 얘기해서 다 믿었는데.이서의 말을 듣고 장지완은 순식간에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비웃으며 말했다.“그래, UFC 격투기 챔피언이 어떻게 네 남편이 될 수 있겠니?”그러고는 곧 의미심장한 웃음을 터뜨렸다.“설마 매일 출퇴근시키려고 돈 주고 고용한 건 아니겠지? 네 가난뱅이 남편이 고용할 능력은 안 될 테고……. 그런데 어쩜 좋아? 우리 회사에는 UFC에 관심 있는 사람이 없으니, 알아보는 사람도 없고…… 괜히 허세 부리려다 너 헛돈 썼어……. 하하하.”이서는 장지완의 상상력에 대해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어처구니없어 입을 열어 말하려고 하는데 마침 구태우가 한걸음 앞서서 말했다.“더는 눈 뜨고 볼 수 없네. 매일 출퇴근시키고 기사를 자처한 건 짝사랑하기 때문인 걸 모르셨나 봐?!”이 말이 나오자 임현태조차도 고개를 돌려 구태우를 보았다.‘뭐? 내가 사모님을 짝사랑한다고?! 죽고 싶어 환장했나?!’구태우는 땅바닥에 흩어진 자료들 속에서 서류 한 장을 찾아 이서에게 건네주었다.“임현태 씨는 H국 사람이지만, 오랫동안 외국에서 거주했어요. 해외에 가기전에 이
“연적의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이미 최고의 평가이지?”“정말 점점 더 궁금하네, 윤 총괄님 남편은 대체 누굴까!”“…….”임현태의 방금 전 얘기를 듣고서야 이서는 비로서 긴장을 풀었다.곰곰이 생각해 보니, 임현태가 그녀에게 지나친 행동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또한 자기 감정도 드러낸 적도 한번도 없었다.‘진짜 다 내려 놓았나 봐.’그녀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그럼 됐어요.”근데 지금은 임현태와의 일을 처리할 때가 아니었다.이서는 고개를 돌려 눈이 풀린 채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장지완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한손으로 사무 책상을 긁으며 입으로 중얼거렸다.“하하, UFC무패 챔피언이 윤이서를 짝사랑 한다니. 허허, 왜 다들 윤이서를 좋아하는 거야? 왜 아무도 날 좋아하지 않는 거냐고……? 왜……?”심한 외부적 자극으로 잠시 실성한 사람들을 이서는 텔레비전에서 본적이 있었다.그녀는 몸을 웅크리고 장지완의 눈동자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장지완이 핑크 리본 대자인대회 심사위원들에게 준 뇌물 증거를 꺼냈다.“이건 당신이 핑크 리본 디자인대회 심사위원들에게 송금한 기록들이야.”이서는 장지완의 귀에 다가갔다.“핑크 리본 대회는 해외에서 주최한 공모전이라 국내에서 이걸로 고소 고발할 수 없지만, 위 증거들은 당신이 자기 작품을 공모전에 제출했다는 증거인 셈이지…….”잠시 멈추었다가, 장지완의 흐리멍덩한 눈빛을 보며 이서는 계속 말했다.“그러니까 당신은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자신의 작품이 공모전에 출품했다는 것을 알고 있은 거야. 다시 말해서, 당신은 강수지가 내 이메일로 당신의 작품을 주최측에 보낸 것을 알고 있었다는 거지. 지난 번에는 누명을 강수지에게 덮여 씌웠지만, 이 증거들 앞에서 이제 발뺌하기 어려울 거야.”장지완의 손에 걸린 책상들이 연쇄반응이 일어난 것처럼 겹겹이 넘어지면서 바닥에 부딪혀 ‘쿵’ 하는 소리가 냈다.그녀의 얼굴에는 핏기가 하나도 없었다.30분 뒤, 출동한 경찰은 장지완을 데리고 갔다.이서는
“소희야,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이서는 시종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심소희를 보며 참을성 있게 물었다.심소희는 고개를 들어 이서를 보았다. 이서의 격려의 눈빛을 보고서야 입을 열었다.“언니, 저도 윤씨 그룹으로 데려가면 안될까요?”이서는 그녀의 말을 듣고 웃었다.“나랑 같이 윤씨 그룹으로 가고 싶어?”심소희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곧 다시 말했다.“언니, 저 절대 무임 승차하려는 게 아니고……. 어, 아니다. 저 언니 옆에 딱 붙어서 언니한테 일을 배우고 싶어요…….”말하면서 심소희도 혼란스러운지 얼굴이 빨개졌다.이서는 웃으며 말했다.“네 뜻을 알겠어.”이서의 따뜻한 목소리에 심소희는 단번에 진정되었다. 그녀는 감격스러운 눈빛으로 이서를 바라보았다.“언니, 저 입사한 뒤, 언니한테 정말 많이 배웠어요. 그래서 계속 언니 옆에 있고 싶어요. 절대 언니가 대표이사가 되어서가 아니에요.”이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심소희가 진심인 걸 알지만…….“소희야, 직장생활은 너무 감정적으로 대해서는 안 돼.”이서가 직설적으로 말했다.“윤씨 그룹 상황은 너도 이미 잘 알고 있지? 거긴 지금 난장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네가 지금 날 따라가면 아마 고생을 많이 하게 될 거야.”윤씨 그룹은 현재 내우외환에 처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으로 회사 운영이 생각만큼 쉽지는 않을 것이다.하지만 이 막중한 임무를 해결한다면, 그녀뿐만 아니라 함께 한 사람들에게도 비약적인 개인 발전을 가져올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심소희는 진지한 눈빛으로 이서를 바라보았다.“언니, 나 고생하는 거 두렵지 않아요. 고생한 보람이 있으면 돼요.”그녀는 이서 곁에만 있으면 자신의 고생이 헛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좋아.” 심소희의 진정성 있는 대답에 이서가 말했다.“그럼 나랑 가자.”심소희는 희색이 만면했다.“언니, 고마워요. 저 열심히 할 게요.”이서는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서우 쪽 사직 절차가 마무리되면
임현태가 이렇게 말하자 이서는 오히려 부끄러워했다.“그러나 드릴 건 드려야지요.”“아니요, 이미 받았습니다.”이서는 개인적인 성장이나 발전 등 정신적인 보상을 얘기하는 줄 알았다. 임현태가 방금 말한 별장과 체육관은 전혀 연관 짓지 않았다.임현태가 이렇게까지 얘기하자, 이서도 더 이상 따지지 않았다.“그래요, 고마워요, 임현태 씨.”임현태는 이서를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지환은 이미 집에 와있었다.이서가 돌아오는 것을 보고 웃으며, 그녀의 개미허리를 한 팔에 껴안았다.“우리 자기는 시간을 철저하게 지키는구나. 시간 딱 맞게 왔네.”이서는 지환의 가슴을 밀었다. 이전에 임현태가 그를 짝사랑한다는 걸 몰랐을 때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지환과 껴안고 뽀뽀하는 등 친밀한 동작을 했지만, 그러나 지금은…….지환은 이서의 마음을 알아차린 듯 이서를 풀어주며 임현태에게 말했다.“우리 얘기 좀 하지.”이서는 깜짝 놀랐다. 긴장한 나머지 지환의 넥타이를 잡고 눈빛으로 임현태가 짝사랑하는 일을 알고 있는지 물었다.한편으로는 지환이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하기도 했다.이서의 손을 잡은 지환은 괜히 마음이 찔렸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걱정 마. 별일 없을 거야.”이서는 지환의 넥타이를 힘껏 움켜쥐었지만, 그의 깊은 눈동자에서 점점 길을 잃고 곧 넥타이를 서서히 풀어줬다.두 사람이 문 쪽으로 걸어가는 것을 보고 이서는 긴장한 나머지 침을 꼴깍 삼켰다.“지환 씨, 빨리 와요.”소녀는 촉촉한 눈을 하고 있었다. 황혼 녘 햇살의 부드러운 빛이 그녀의 몸에 드리우며 그 모습이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처럼 몽환적이고 신비해 보였다.지환은 입술을 올리며 말했다.“응.”별장을 나서자 임현태는 황급히 얘기했다.“회장님 걱정 마세요. 사모님께 이제는 다 내려놓았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절대 사모님께 다른 마음을 없을 거라고 약속했어요.”‘편히 사는 게 싫다면 모를까나…….’지환은 손에 든 라이터를 가지고 놀며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을 지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