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희야,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이서는 시종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심소희를 보며 참을성 있게 물었다.심소희는 고개를 들어 이서를 보았다. 이서의 격려의 눈빛을 보고서야 입을 열었다.“언니, 저도 윤씨 그룹으로 데려가면 안될까요?”이서는 그녀의 말을 듣고 웃었다.“나랑 같이 윤씨 그룹으로 가고 싶어?”심소희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곧 다시 말했다.“언니, 저 절대 무임 승차하려는 게 아니고……. 어, 아니다. 저 언니 옆에 딱 붙어서 언니한테 일을 배우고 싶어요…….”말하면서 심소희도 혼란스러운지 얼굴이 빨개졌다.이서는 웃으며 말했다.“네 뜻을 알겠어.”이서의 따뜻한 목소리에 심소희는 단번에 진정되었다. 그녀는 감격스러운 눈빛으로 이서를 바라보았다.“언니, 저 입사한 뒤, 언니한테 정말 많이 배웠어요. 그래서 계속 언니 옆에 있고 싶어요. 절대 언니가 대표이사가 되어서가 아니에요.”이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심소희가 진심인 걸 알지만…….“소희야, 직장생활은 너무 감정적으로 대해서는 안 돼.”이서가 직설적으로 말했다.“윤씨 그룹 상황은 너도 이미 잘 알고 있지? 거긴 지금 난장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네가 지금 날 따라가면 아마 고생을 많이 하게 될 거야.”윤씨 그룹은 현재 내우외환에 처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으로 회사 운영이 생각만큼 쉽지는 않을 것이다.하지만 이 막중한 임무를 해결한다면, 그녀뿐만 아니라 함께 한 사람들에게도 비약적인 개인 발전을 가져올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심소희는 진지한 눈빛으로 이서를 바라보았다.“언니, 나 고생하는 거 두렵지 않아요. 고생한 보람이 있으면 돼요.”그녀는 이서 곁에만 있으면 자신의 고생이 헛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좋아.” 심소희의 진정성 있는 대답에 이서가 말했다.“그럼 나랑 가자.”심소희는 희색이 만면했다.“언니, 고마워요. 저 열심히 할 게요.”이서는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서우 쪽 사직 절차가 마무리되면
임현태가 이렇게 말하자 이서는 오히려 부끄러워했다.“그러나 드릴 건 드려야지요.”“아니요, 이미 받았습니다.”이서는 개인적인 성장이나 발전 등 정신적인 보상을 얘기하는 줄 알았다. 임현태가 방금 말한 별장과 체육관은 전혀 연관 짓지 않았다.임현태가 이렇게까지 얘기하자, 이서도 더 이상 따지지 않았다.“그래요, 고마워요, 임현태 씨.”임현태는 이서를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지환은 이미 집에 와있었다.이서가 돌아오는 것을 보고 웃으며, 그녀의 개미허리를 한 팔에 껴안았다.“우리 자기는 시간을 철저하게 지키는구나. 시간 딱 맞게 왔네.”이서는 지환의 가슴을 밀었다. 이전에 임현태가 그를 짝사랑한다는 걸 몰랐을 때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지환과 껴안고 뽀뽀하는 등 친밀한 동작을 했지만, 그러나 지금은…….지환은 이서의 마음을 알아차린 듯 이서를 풀어주며 임현태에게 말했다.“우리 얘기 좀 하지.”이서는 깜짝 놀랐다. 긴장한 나머지 지환의 넥타이를 잡고 눈빛으로 임현태가 짝사랑하는 일을 알고 있는지 물었다.한편으로는 지환이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하기도 했다.이서의 손을 잡은 지환은 괜히 마음이 찔렸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걱정 마. 별일 없을 거야.”이서는 지환의 넥타이를 힘껏 움켜쥐었지만, 그의 깊은 눈동자에서 점점 길을 잃고 곧 넥타이를 서서히 풀어줬다.두 사람이 문 쪽으로 걸어가는 것을 보고 이서는 긴장한 나머지 침을 꼴깍 삼켰다.“지환 씨, 빨리 와요.”소녀는 촉촉한 눈을 하고 있었다. 황혼 녘 햇살의 부드러운 빛이 그녀의 몸에 드리우며 그 모습이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처럼 몽환적이고 신비해 보였다.지환은 입술을 올리며 말했다.“응.”별장을 나서자 임현태는 황급히 얘기했다.“회장님 걱정 마세요. 사모님께 이제는 다 내려놓았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절대 사모님께 다른 마음을 없을 거라고 약속했어요.”‘편히 사는 게 싫다면 모를까나…….’지환은 손에 든 라이터를 가지고 놀며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을 지었
꿈에서 반쯤 깨어났을 때, 이서는 자신이 침대가 아니라 부드러운 꽃밭에 누워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꽃밭에서 그녀는 각양각색의 꽃향기를 맡았던 것 같았다.마침내 깨어난 이서는 손가락으로 지환의 턱을 가볍게 짚었다.지환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그녀의 손에 키스했다.“괜찮아?”“음, 근데 배고파요.”지환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이천에게 음식 좀 사오라고 할게.”“지금이 몇 시인데? 퇴근했겠죠…….”“아니야.” 지환은 핸드폰을 들고 이천에게 메시지를 보내고는 핸드폰을 침대 머리맡에 놓았다.“15분 뒤면 올 거야. 먼저 내려가서 빵이나 좀 가져올 게.”“아니요.” 이서는 얼굴을 붉혔다. 그는 일어나 지환의 눈을 바라보며 잠깐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나, 당신에게 할 말 있어요.”“무슨 일인데?”“임현태 씨…….” 이서는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리며 말을 이었다.“임현태가 나를 짝사랑하는 일에 대해…….”여기까지 말하고, 그녀는 또 얼른 지환을 살폈다.“걱정 마요, 우리 다시는 안 만날 거예요.”지환은 볼에 달라붙은 그녀의 젖은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나, 그렇게 속 좁은 남자 아니야. 이미 임현태랑 얘기 끝냈어. 앞으로 계속 자기 운전기사로 있어달라고 얘기했어.”이서가 눈을 깜박거렸다.지환은 계속해서 말했다.“게다가, 자기를 짝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것도 정상이지. 내 아내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데…….”이서는 다시 눈을 깜박였다.“그런데…….”“그런데 뭐?”“상언 씨가…… 당신 열등감이…….”지난번에도 소지엽과 아무 사이도 아니었는데, 스캔들이 났다고 열등감에 달려가 술이 떡이 되도록 마셨었다.그런데 이번에는 임현태가 그녀를 짝사랑한다고 했다.지환은 잠깐 멍해 있다가 곧 이마로 이서의 이마를 받쳤다.“내가, 열등감이 있다고?”낮고 부드러운 목소리에 따스함이 느껴졌다.이서의 얼굴이 빨개졌다.지환은 손가락으로 이서의 손가락을 짚으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목소리에 왠지 희열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양전호와 구양태도 눈이 휘둥그레졌다.한차례 실랑이나 우여곡절이 있을 줄 알았는데, 이서가 이렇게 화끈하게 승낙할 줄은 몰랐다.그러자 그들은 이서가 무슨 음모가 있는 게 아닌지 의심했다.“정…… 정말 우리가 투자를 철회하는 거에 동의한다는 거지?”양전호가 물었다.“싫다는 사람 잡지 않습니다. 두분께서 윤씨 그룹과 함께 하는 걸 원하지 않는다면 저 또한 억지로 잡을 생각 같은 건 없습니다.”CEO 선출에 성공했을 때 그녀는 벌써 이런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구체적 절차는 담당직원이 안내할 겁니다. 혹시 또 다른 업무가 있을까요?”축객령이 떨어진 셈이다.“없네, 구체적 절차를 밟을 때도 이렇게 통쾌했으면 하네.”말을 마치고, 두 사람은 가버렸다.직원들은 양전호와 구양태가 이서의 코를 납작하게 해줄 거라고 기대했는데, 일이 뜻밖에도 이렇게 빨리 끝나니 왠지 시시하다고 느껴졌다.윤아영은 방금 발생한 일을 얼른 윤수정에게 문자로 보냈다.문자를 막 보냈는데, 갑자기 이서의 냉랭한 목소리가 들려왔다.“현태 씨, 모든 사람을 집합시켜 주세요!”임현태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무실 내의 모든 사람들을 불러냈다.반항하던 사람들도, 임현태의 울근불근한 근육질을 보고는, 순순히 홀에 나왔다.약 200여명의 직원이 다 모였다.이서는 뭇사람을 훑어보았다.방금 서류를 확인해 보니 윤씨 그룹 직원은 총 225명이었다. 고위층 관리직의 90%는 윤재하 부부의 친인척으로, 할 줄 아는 거 없이 자리만 지키는 허수아비들이었다. 전부 교체해야 하지만, 한꺼번에 큰 물갈이를 하는 것은 분명히 비현실적이라 조금씩 야금야금 진행할 수밖에 없다.일반 직원 중 윤씨 부부 친인척의 비중은 45%로 고위층 관리자에 비해 그리 높지 않았지만, 그래도 일반적인 가족 기업에 비해서도 매우 높은 비율이었다.오늘 이서가 할 일은, 먼저 이 45%의 비율을 낮추는 것이었다.200여 명의 직원 앞에 나선, 이서의 카리스마는 그 누구한테도 뒤지지 않았다.“여러분 중에 내가 윤씨 C
그럼에도 큰 파장을 불러왔다.제명된 홍보팀 팀장이 바로 윤아영의 엄마, 양춘매였다.윤아영을 겨냥한 결정은 아니었다. 이서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현재 기업 상태로 봤을 때, 홍보팀은 있으나 마나한 부서였기 때문이다. 할 일은 없고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부서였다.이서는 공밥을 먹는 사람을 그냥 두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래서 그 이 자리에 누가 앉았던 해고했을 것이다.그러나 양춘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과 딸이 동시에 호명되자, 그녀는 즉시 울부짖었다.“세상에, 우리 모녀를 피 말려 죽일 셈이냐? 이게 무슨 회사 사장이고 대표이사야, 살인범이지! 살인범!”히스테리를 부리는 양춘매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울고불고 난리 부르스를 떨어도 이서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호명되신 분들은 권고사직으로 처리되어 3개월의 임금을 위로금으로 지불할 예정입니다. 만약 소란을 피운다면 징계 해고로 처리하겠습니다.”그녀의 말이 떨어지자, 소란에 가담하려던 사람들도 가만히 잠자코 있었다.얼굴이 창백해진 윤아영은 윤수정에게 다시 문자를 보내고자 했다. 휴대폰을 확인해보니, 어느새 윤수정의 답장이 와 있었다.윤아영의 눈동자가 반짝였다.그녀는 갑자기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여러분, 윤이서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마세요. 여러분 오늘 호명된 사람들 모두 윤씨 집안 사람들입니다. 우리 윤씨 사람들을 쫓아내고, 회사를 자기 주머니에 넣으려는 수작이 틀림없습니다.”이서가 윤아영을 바라보았다.논리가 분명한 것이 배후에 틀림없이 조언자가 있을 거라고 짐작했다.이서도 이런 상황을 일찌감치 예상했다.어쩌면 윤씨 집안 친인척들에게 일부러 보여 주기식 작전이었을 지도 모른다.“우리 함께 힘을 합칩시다!”윤아영은 밖으로 나와 전체 직원들을 향해 팔을 휘두르며 소리쳤다.“우리 윤이서에게 맞섭시다. 안 그랬다간 앞으로 틀림없이 회사를 제멋대로 주무르려고 할 겁니다.”사람들은 이서와 윤아영을 번갈아 보며 소곤소곤 속삭였다.결국 인사팀의 윤재기가 나섰다.윤재하와
윤재기는 심장이 철렁했다.그러나 이미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자, 꼬리 내리고 물러나기에는 자존심이 허락치 않았다. 그는 몸을 돌려 직원들에게 말했다.“나를 따르고 싶은 사람은 나오세요!”상황을 보고 윤아영이 제일 먼저 그녀의 어머니 양춘매를 끌고 나섰다.두 모녀는 주위 사람들을 계속 부추겼다.“여러분 두려워할 거 없어요. 수정언니가 지금 새 회사 설립 중입니다. 그것도 바로 위층에서요. 여기서 나가서 바로 수정언니 새 회사에 입사할 수 있습니다.”위층에 새 회사가 들어온다는 건 다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윤수정이 새로 회사를 설립한다는 얘기에 다들 마음이 흔들렸다.윤아영과 양춘매의 뒤로 다가가는 사람이 점점 많아졌다.얼마 지나지 않아 200여 명의 직원 중 절반 이상이 윤아영 쪽에 모였다.이서 쪽에는 90여 명만 남았다.남은 사람들도 저쪽으로 가야 할지 말지 망설이고 있었다.윤아영이 다시 선동했다.“이쪽으로 오세요. 내가 장담하는데, 여길 그만 두면 위층 회사로 갈 수 있어요. 거긴 수정언니 회사에요. 분명히 하은철 대표가 자금을 지원했을 겁니다.”하은철이라는 이름을 언급하자, 또 절반정도가 넘어갔다.그러나 윤아영은 이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서를 독불장군으로 만들 심산이었다.“설마 아직 망설이는 분 있는 건가요? 윤씨 그룹이 윤이서 손에서 잘 될 거 같아요?”눈 깜짝할 사이에 또 수십 명이 넘어갔다.처음부터 끝까지 이서는 시종일관 지켜만 볼 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윤아영이 승리의 여신마냥 득의양양한 시선으로 이서를 째려보았다. 이서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또 있습니까? 있다면 빨리 가세요. 기회는 이번뿐입니다.”이서의 말이 떨어지자, 또 몇 명이 넘어갔다.이 상황을 지켜본 임현태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 앞에서 뭐라고 말하기가 뭐해 조용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이직할 사람은 와서 이직절차를 마치시고, 남고 싶은 사람들은 자기 자리로 돌아가기 바랍니다.”이서의 말이 떨어지자, 이직하고 싶지
이서의 마지막 말에, 윤아영을 열 받아 돌아가실 뻔했다.이서가 일부러 모두의 화와 분노를 그녀에게 쏠리게 한 거였다.한껏 신 났던 사람들은 그제야 일제히 윤아영을 바라보았다.“아영아, 우리 정말 수정이 회사에 입사되는 거지?”윤아영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단지 이서를 난처하게 하기 위해 아무 말이나 뱉었을 뿐, 정말 입사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확답할 수 없었다.사람들은 그제야 상황판단이 되었다.“아영아, 너 우리 속인 거 아니지?!”“그니까, 우리 너 말만 믿고 따라왔는데, 갑자기 일자리가 없다니……, 그럼 이번 달 월급은 누가 주는 거야!”“난 몰라, 아영아, 내가 너 때문에 직장을 잃었으니 네가 책임지고 새 일자리를 구해줘!”사람들이 윤아영을 물샐틈없이 에워쌌다.임현태는 저도 모르게 이서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대단해!’‘사모님은 처음부터 이 사람들을 회사에 둘 생각이 없었던 거야.’‘그들을 직접 해고하면, 틀림없이 소란을 피웠을 텐데, 지금 이렇게 되자 사람들의 원망은 모두 윤아영에게 옮겨졌네. 사모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게 되고…….’‘손도 안 대고 이렇게 시원하게 코를 풀어 버리다니, 안 보이는 무형의 손으로 골칫거리를 깔끔하게 해결했어. 대단해.’회사에 남은 30~40명의 직원들은, 자신의 선택을 다행으로 생각했다.이서는 입구에서 소란스럽게 떠드는 사람을 보며 임현태에게 말했다.“현태 씨, 경비원을 불러 밖으로 내보내세요. 여기는 사무실입니다.”임현태는 웃으며 말했다.“경비원 필요 없습니다, 저 혼자서도 충분합니다.”말하면서 그는 사람들에게 다가갔다.“저기…… 밖에 나가서 얘기하세요. 여기서 시끄럽게 굴면…….”임현태가 소매를 걷어붙이자, 울퉁불퉁한 팔 근육이 드러났다.“저도 부득이하게 손을 쓰겠습니다!”임현태의 근육질 몸매를 본 사람들은 놀라서 얼굴이 하얗게 질려 분분히 떠났다. 순식간에 사무실이 조용해졌다.이서는 만족스러운 듯 임현태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눈길을 돌려 열심히 일하고 있는
이서는 흔쾌히 승낙하고, 준비한 자료들을 모두 우기광에게 넘겼다.우기광은 전화를 끊자마자 양전호의 전화를 받았다.[동생, 어때? 생각해 봤어?]우기광은 영문을 몰라 되물었다.[뭘 말하는 건지?][투자 철회말이야…….]양전호는 흥분해서 말을 이었다.[내가 자네한테만 알려주겠네. 수정 아가씨 쪽은 이미 하은철 대표의 투자를 받았네. 바로 24층에 의류 회사를 새로 오픈할 거고……. 그때가면…….]우기광은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전화를 끊어버렸다.양전호 말만 들어도, 윤수정이 새로 설립할 회사는 또 다른 윤재하의 회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한 눈에 미래가 보였다.‘기왕 이렇게 된 이상, 차라리 이서한테 기대를 거는 편이 낫다. 적어도 관전 포인트라도 있으니…….’상대방이 전화를 끊어버리자, 양전호는 화가 나서 핸드폰을 던졌다.옆에 있던 구양태가 이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양 사장, 왜 그래?”“우기광, 이 사리분별 못하는 놈, 감히 내 전화를 끊다니?!”구양태는 웃었다.“왜 화를 내? 기뻐해야지.”양전호는 어리둥절했다.구양태는 껄껄거리며 웃었다.“우린 윤수정아가씨 따라 떼돈 벌고, 우계광은 윤이서 따라 손가락 빨고…….”그제야 양전호도 하하 웃었다. “맞네, 맞아.”이때.제로하트 바 룸 안.하은철은 착잡한 얼굴로, 아이처럼 울고 있는 조용환을 바라보며 말했다.“정말이에요? 그게 사실인가요?”“하 대표, 내가 왜 거짓말하겠어? 윤이서 그…… 그년이 내 아들 몰카를 찍어 협박했다니까. 자기를 지지하지 않는다면, 동영상을 폭로할 거라고……, 그러니 나도 어쩔 수 없이 윤이서를 뽑은 건데…….”조용환은 또 울기 시작했다.“하지만 누가 알았겠어? 윤이서가 한 입으로 두 말 할 줄을……. 내가 그녈 뽑았는데도, 그년이 증거를 경찰에게 넘겼고, 결국 내 아들이 잡혀 갔다네…….하 대표, 내 아들…… 내 목숨과도 같은 존재이니, 날 도와 내 아들을 구해 줘.”하은철의 얼굴이 더욱 어두워졌다.“조진명 사장이 건드
지환과 이서는 곧 하도훈을 마주했는데, 두 사람을 보는 하도훈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그래, 너희가 이겼어!” 겨우 이 말을 내뱉는 하도훈은 이미 온 힘을 다 쓴 듯했다.“원래는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지환은 자리에 앉아 차분하게 말했지만, 하도훈은 지환의 말에 흥분하기 시작했다.“허.”“이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다고? 네가 윤이서와 급히 결혼하지만 않았더라면, 은철이가 이 세상을 떠날 일은 없었을 거야!” “모든 비극은 너희들 때문에 일어난 거라고!” 하도훈이 여전히 고집을 부리며 잘못을 깨닫지 않자, 이서는 더 이상 하도훈을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잠시 후, 이서의 눈빛을 마주한 지환이 고개를 끄덕인 후 아주 차가운 눈빛으로 하도훈을 바라보았다.“형님이 알아야 할 게 있습니다.” 하도훈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이런 상황에서 알려줄 게 있다니, 두 사람한테 아이라도 있다는 건가?” “우리의 아이가 아니라, 형님의 아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지환이 먹구름처럼 어두운 눈동자로 하도훈을 응시하자, 불길한 예감을 느낀 하도훈이 곧장 몸을 일으켜 지환의 멱살을 잡았다. 하지만 지환은 그저 묵묵하게 하도훈을 응시할 뿐이었다.“그 아이는 형님의 아이가 아닙니다.” “뭐, 뭐라고?”하도훈이 벼락을 맞은 듯 제자리에 얼어붙자, 지환은 한 번 더 입을 열었다.“그 아이는, 형님의 아이가 아니라고요.”하도훈은 급기야 고개를 저으며 ‘하하’ 웃기 시작했다.“하하하, 하하하, 말도 안 돼! 말도 안 된다고!” “하지환, 내가 그 말에 속을 줄 알고?! 하하, 나는 절대 그 말에 속지 않을 거야!” 지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하도훈의 손을 뿌리쳤고, 광기 어린 하도훈을 차갑게 응시했다.“그 여자는 형님을 만나기 전부터 임신 중이었습니다.” 지환은 이 말을 끝으로 이서의 손을 잡고 자리를 떠났다.“하도훈은 정말 그 여자를 믿었던 걸까요?” 고개를 돌려 이서를 바라보는 지환의 입가에는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
“정말이란다. 내가 왜 이런 일로 널 속이겠니?!” “정말 잘 됐어! 스웨이 여사도 이제야 소원을 하나 이룬 셈이니까!”배미희가 말했다.이서는 병실 입구까지 걸어온 하이먼 스웨이를 바라보았는데, 이 결과에 놀란 하이먼 스웨이는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한 채 이서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이서는 붉은 입술을 움찔거렸으나, 어떤 말을 꺼내기도 전에 눈물부터 흘렸다.잠시 후, 이제야 서로를 마주하게 된 모녀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는데, 하고 싶은 말이 눈물 속에 있는 듯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저 흐뭇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볼 뿐이었다.배미희가 한참이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이서야, 엄마라고 불러보렴.” 이서는 이전에도 하이먼 스웨이를 ‘엄마’라고 부른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하이먼 스웨이가 친엄마라는 것을 알지 못했고, 그저 하이먼 스웨이가 자신을 다정하게 챙겨주는 어른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하지만 지금 이 순간, ‘엄마’라는 호칭은 아주 많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었다.이서는 여러 번 시도한 후에야 온몸을 떨며 말했다.“엄, 엄마...”이서의 눈에서 하염없는 눈물이 터져 나오자, 하이먼 스웨이는 이서의 머리카락을 다정하게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가... 드디어 널 찾았구나. 그동안 너무 고생 많았어. 앞으론 엄마가 널 지켜줄게.”“엄마... 엉엉...”큰 소리로 울부짖기 시작한 이서는 그동안의 모든 억울함을 다 토해내는 듯했고, 옆에 있던 사람들은 묵묵히 눈물을 흘렸다.잠시 후, 병실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는 지환을 본 하이먼 스웨이가 이서를 놓아주며 지환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어서 오렴.” 지환은 서서히 하이먼 스웨이에게 다가갔고, 하이먼 스웨이는 지환의 손을 이서의 손 위에 올려 두었다.“이서야, 하 서방은 누구보다 널 잘 아는 사람이야. 하 서방이야말로 너한테 가장 잘 어울리는 남자지.” “하 서방한테 널 맡길 수 있다면... 엄마는 얼마든지 마음을 놓을 수 있을 것 같아.”“그
이서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지환은 몸에 난 상처로 인해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이서가 고개를 숙여 지환과 입을 맞추며 짜릿한 감각을 느끼기도 전에, 하나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머, 우리가 올 타이밍이 아니었던 것 같네?” 이서는 하마터면 놀라 넘어질 뻔했는데, 눈치 빠른 소희가 이서를 붙잡았다.이서가 다소 원망하는 듯한 표정으로 하나를 바라보자, 하나는 깔깔거리며 가지고 온 건강식품을 책상 위에 올려 두었다.이내 상언과 지환은 그날의 상황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이서는 하나와 소희를 데리고 병실을 나섰다.“두 사람, 화해한 거야?” 병실을 나서자마자, 하나가 호기심과 가십에 대한 욕망이 가득한 눈빛으로 물었다. 이서가 고개를 끄덕이자, 하나가 기뻐하며 이서의 어깨를 두드렸다.“잘 생각했어. 형부가 신분을 속이긴 했지만, 형부가 널 사랑하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잖아. 아마 하은철은 형부의 반도 못 따라올 거야!” “근데 대체 언제까지 형부랑 그 쓰레기를 비교할 생각이야?” “형부는 평범한 사람들이랑 비교해야 한단 말이야. 아니다, 형부는 평범한 사람들보다 훨씬 낫지 않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래서 과거를 내려놓고 지환 씨와 다시 잘 지내야겠다고 생각한 거야.” 이 말을 끝으로 한숨을 내쉬던 이서의 표정이 다소 엄숙해졌다.“그러는 너는? 너는 상언 오빠랑 어떻게 됐어?’그동안 이서는 하나와 상언의 일을 잘 물어볼 기회가 없었다.“우리는...”하나가 눈알을 굴리며 말했다.“꽤 괜찮아.” “뭐가 괜찮은데?” 소희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다가와 묻자, 하나가 다소 투정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이제 결정했어, 그 사람을 내 영원한 남자 친구로 만들 거야.” “그게 무슨 말이야?” “평생 이 선생님과 함께 할 생각이야. 물론 이 선생님이 원하지 않는다면 헤어져야겠지만 말이야.” “아, 이제야 알겠다!” 이서가 말했다.“네 마음속 상언 오빠의 지위가 상승하긴 했지만, 아직 남편이 될 자격
이서가 이곳에서 죽을 각오를 하던 그 순간, 갑자기 ‘쾅’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바람이 크게 일었다. 사람들은 그 위력에 눈을 뜰 수 없을 지경이었다. 이서는 어렴풋이 자기 머리 위에서 헬리콥터가 선회하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그다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이서가 다시금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병상 위에 누운 상태였고, 곁에는 눈물을 글썽이는 배미희와 하이먼 스웨이가 있었다. 이서가 깨어나는 것을 본 두 사람이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이서야, 좀 괜찮니?” “... 네.”이서는 간신히 대답한 후 긴장한 표정으로 배미희의 손을 잡았다.“엄마, 지환 씨는요?” “무사해.”배미희가 자기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다른 병실에 있는데, 아직 의식을 찾진 못했단다.” “지환 씨한테 가보고 싶어요.” 이서가 눈물을 머금고 배미희를 바라보자, 배미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상언에게 이서를 옆 병실로 안내해달라고 했다. 잠시 후, 침대에 누운 지환을 본 순간, 이서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괜찮을 거예요. 조금만 있으면 깨어날 수 있을 거고요.”그 순간, 병실 안에 듣기 좋은 여성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서가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시선을 옮기자, 조금 떨어진 창가에 멋지게 걸터앉은 한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그 여자는 아래로 떨어질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듯했다.“당신은...” “그 사람이 누구든 신경 쓰지 마세요.”갑자기 나타난 어둠이 호리병이 이서를 가로막으며 보물을 자랑하듯 말했다.“윤이서 씨, 나한테 고마워해야 할 겁니다!” 이서는 호기심에 어린 눈빛으로 어둠의 호리병을 바라보았는데, 어둠의 호리병은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내가 ... 콜록콜록, 두 사람은 여기로 데려오지 않았더라면, 윤이서 씨와 하 대표님은 이미 염라대왕을 만났을 겁니다.” “헬리콥터를 동원한 것도 당신들이었나요?”“맞아요, 우리가 하도훈이 데려온 사람들을 모두 해치웠고, 하지호와 박예솔까지 해결
지환과 이서는 숨을 돌리기도 전에 더욱 맹렬한 공격을 받아야만 했는데, 다크웹 고수들은 사람이 아닌 괴물이라 할 수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가는 곳마다 파멸로 이끌었으니 말이다.이서는 바깥 상황을 보면서 많은 걱정에 휩싸였다. “어둠의 호리병은 왜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 거죠? 설마... 우리를 속인 건 아니겠죠?”지환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그럴 리 없어. 그 바닥 사람들은 의리를 아주 중요시하거든.” “다크웹의 1위와 2위를 데려오겠다고 약속한 이상, 어둠의 호리병은 반드시 그 약속을 지킬 거야.” 지환은 이 말을 끝으로 차에 이서를 태웠다. “너는 우선 여길 떠나.”이서는 지환의 말 속에서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렸고, 지환의 손을 덥석 잡으며 말했다.“그게 무슨 소리예요? 여길 떠나라니요?” 지환이 말했다.“하지호는 이미 모든 수를 동원했어. 그 자식들이 여기로 올지도 모르니까 너는 지금 당장 여길 떠나야 해!” 하지만 이서는 지환의 손을 잡고 놓지 않았다. “우리는 아직 가정법원에 가서 새로운 정보를 등록하지도 않았잖아요!” “일이 끝나는 대로 처리하러 가야 한다고요!” 이서는 여전히 지환의 손을 잡고 놓지 않았는데, 이서의 눈가에는 이미 눈물이 맺혀 있었다. “우리는 아직 제대로 된 결혼식을 올리지도 않았잖아요.” 지환이 거친 손가락으로 이서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일이 끝나는 대로 성대한 결혼식을 올려줄게.” 지환은 이 말을 끝으로 모진 마음을 먹고 이서의 손을 밀어냈고, 이서는 지환의 뒷모습을 보며 차에서 뛰어내려 소리쳤다.“우리한테는 아직 아이도 없다고요!”지환이 걸음을 멈추었다.“지환 씨, 당신의 아이를 갖고 싶어요.” 이서는 지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화약 냄새로 가득한 공기 속에서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했다.“앞으로 남은 당신의 운명이 죽음뿐이라면, 나는 당신과 함께 죽을 거예요.”“하지만 당신이 살아갈 운명이라면, 당신과 함께 살아가고 싶어요.” “그래도 되죠, 지환 씨?” 지환은
지환의 모습을 본 이서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내 말은, 가정법원에 가서 다시 혼인 신고하자는 뜻이었어요.”“이전에 등록한 건 다 가짜 정보였잖아요. 내일은 진짜 정보를 등록하자고요.” 지환이 기뻐하며 말했다.“좋아, 그렇게 하자.” 이서는 지환의 모습을 보며 입꼬리를 다시 치켜세웠지만, 잠시 후 웃음을 거두었다. “아, 하도훈 쪽을 깜빡했네요. 우리가 가정법원에 가는 틈을 타서 기습하면 어쩌죠?”지환은 이 말에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시간을 미루고 싶진 않아. 하지만...’“그럼 어둠의 호리병이 다크웹의 1위와 2위를 찾을 때까지만 기다려보자...”바로 그때, 지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래층에서 총소리가 들려왔다.안색이 변한 지환은 곧장 창가로 걸어가 아래층에서 총을 발포한 두 무리의 사람들을 보았는데, 그중 한 무리는 하도훈의 사람들임이 분명했다.“무슨 일이에요?”이서가 침대에서 일어나 물었다.“아무래도 하도훈이 이곳을 떠나는 어둠의 호리병을 지켜본 모양이야. 이 기회를 틈타 첫 번째 공격을 하려고 한 거지.”지환은 이서를 데리고 방구석으로 향했고, 서랍에 있던 총을 꺼내며 이서에게 말했다.“여기서 잠시만 기다려줘. 내가 저 사람들을 쫓아내 볼게.” 이서가 지환은 손을 잡고 말했다.“하지만... 혼자는 너무 무섭단 말이에요.” “내가 있으니까 걱정할 거 없어. 내가 널 지켜줄 거야.”지환이 말했다.“이서야,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내일이 밝으면 우리는 가정법원에 가서 진정한 부부가 될 수 있을 테니까.” 이서는 지환의 마지막 말을 듣고 천천히 손을 놓았다.“나는 지환 씨를 믿어요. 당신은... 꼭 돌아올 거예요.” 굳게 마음먹은 지환이 떠나자마자 집 밖에선 몇 차례의 총소리가 울렸고, 머리를 감싼 이서는 구석에 웅크린 채 지환만을 기다렸다.‘이럴 때는 나 자신을 잘 보호해서 지환 씨한테 걱정을 끼치지 않아야 해.’ 이내 아래층의 총소리가 잦아들었고, 이서는 살며시 귀를 기울이고 나서야 별장 전체가 고요한
“윤이서 씨가 하 대표님과 사이좋게 지낸다면, 그 사람들을 찾아줄 의향이 있습니다.” 어둠의 호리병의 말을 들은 이서와 지환은 모두 멍해질 수밖에 없었는데, 두 사람 모두 어둠의 호리병이 이렇게 말할 줄은 상상도 못 한 듯했다. 특히 이서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작은 어색함이 피어올랐다. “왜 대답이 없어요?”어둠의 호리병이 재촉하며 말했다.“뭐, 대답을 안 해도 상관은 없어요. 나야 그 사람들을 찾지 않으면 그만이니까요.”“만약 하도훈이 최선을 다해 두 사람을 상대할 작정이라면, 나는 언제든 도망가면 돼요. 하지만 두 사람은 어떻게 할 생각이죠?” 이서의 시선이 지환에게 떨어졌다.“하도훈이 최선을 다해 우리를 상대할 거라는 게 사실이에요?” 지환이 이서의 눈을 응시하며 마른침을 삼켰다.“응.” 이서는 잠시 침묵하다가 고개를 들어 어둠의 호리병을 바라보았다.“정말 그 사람들을 찾을 방법이 있는 거예요? 우리가 뭐 도울 건 없고요?”“혼자서도 충분합니다.” “그래요, 그럼...”이서가 고개를 푹 숙이며 대답했다.“우리를 위해 두 사람을 찾아주기만 한다면, 그 조건을 승낙할게요.” 옆에 있던 배미희와 하이먼 스웨이가 이서의 말에 흥분하며 말했다.“이서야, 하 서방이랑 이혼하지 않겠다는 거니?” “네.”이서가 짧게 대답했다.어둠의 호리병의 제안은 이서에게 빠져나갈 구멍을 내어준 셈이었고, 이서는 그 구멍을 통해 위기를 모면할 생각이었다. “잘 생각했어! 정말 잘 생각했어!”배미희와 하이먼 스웨이가 이서를 안고 말했다.“정말 좋은 일이구나. 이제 DNA 검사 결과만 기다리면 되겠어!” 지환도 이서를 꽉 안아주고 싶었는데, 그 마음을 알아차린 배미희는 하이먼 스웨이와 어둠의 호리병에게 말했다.“우린 이만 나가볼까요? 두 사람만의 시간을 주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이 말을 끝으로 세 사람은 자리를 떠났고, 이서가 반응하기도 전에 문이 닫혔다.적막한 방 안에는 순식간에 두 사람만이 남았고, 이서는 지환을 바라볼 수 없어서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배미희가 서둘러 입을 열었다.“어머, 벌써 잊은 거야?”“애초에 스웨이 여사가 심씨 가문의 아가씨... 아니, 그 가짜랑 DNA 검사를 했을 때 이서 네가 그 여자랑 함께 있었잖아!” “그때 우리는 CCVT 자료를 찾진 못했지만, 가게에 있던 사람들을 모두 불러 DNA 검사를 진행했단다.” 그 일은 아주 명확한 결과를 끌어낼 수 있는 것이었지만, 안타깝게도 마지막까지 그 가게에 있던 사람 중에 누가 하이먼 스웨이의 딸인지 알아내지는 못했다. “우리는 그때 그 가게에 있던 모든 사람을 조사했어. 단 한 사람을 빼고 말이야!” 배미희의 초롱초롱한 눈동자가 이서의 몸에 떨어지자, 하이먼 스웨이도 그제야 배미희의 뜻을 이해한 듯했다.하이먼 스웨이는 흥분한 표정으로 이서를 바라보았지만, 함부로 과욕을 부릴 수는 없었다.“이서야...”이서도 감격에 겨워 하이먼 스웨이를 바라보았다.“설마... 그럴 리가...”배미희가 말했다.“완전 불가능한 일은 아니야. 그때 그렇게 많은 사람이 조사받았는데, 너랑 스웨이 여사만 DNA를 대조하지 않았잖니? 아니다, 이러고만 있을 게 아니라 지금 당장 의사를 불러서 DNA 검사를 하는 건 어떨까, 응?” 배미희의 말에 하이먼 스웨이와 이서는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물론 이서도 하이먼 스웨이가 친부모이길 바란 적이 있었고, 하이먼 스웨이도 이서가 딸이기를 바란 적이 있었다.하지만 지금은...두 사람 모두 반신반의했다.“제 생각에도 검사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두 사람의 DNA가 일치한다면 아주 기쁠 일이지만, 아니라고 해도 손해 볼 건 없잖아요?” 지환이 입을 열자, 이서는 고개를 들어 자신을 격려하는 듯한 지환의 눈빛을 마주했다.이서는 다시금 하이먼 스웨이를 바라보았는데, 하이먼 스웨이의 눈동자에는 조심스러운 기대감이 서려 있었다.“저는 괜찮은데, 작가님 생각은 어떠세요?”하이먼 스웨이가 억제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그래, 좋고말고...”잠시 후, 연락
성지영이 곧장 입을 열려고 하자, 윤재하가 성지영을 제지하며 말했다.“절대 말하지 마. 저 X이 친부모가 누구인지 모르는 고통 속에서 평생을 살게 해주자고!” “당신은 윤이서가 정말 우리한테 가장 좋은 변호사를 고용해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두 사람이 걸려들지 않는 것을 보고도 이서는 조금도 화를 내지 않았으며, 되려 옅은 미소를 지었다. “아직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는 있는 모양이네요.” 성지영은 자신이 정말 속았다는 것에 분개하며 소리쳤다.“이 사기꾼아!” 하지만 성지영의 목소리가 메아리치기도 전에 윤재하와 성지영은 경찰들에게 끌려가고 말았다. 윤재하와 성지영이 경찰차 안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며, 이서는 꼭꼭 숨겨두었던 나약함이 터져 나오는 듯했다. ‘어쩌면 평생 친부모님을 찾을 수 없을지도 몰라.’‘하지만... 나는 절대 오늘의 일을 후회하진 않을 거야.’ 이서는 고개를 돌려 한쪽에 서 있는 지환과 소희를 바라보았다. ‘그래, 난 후회하지 않을 거야.’‘친부모님을 찾을 순 없지만, 저 친구들이 내 곁에 남은 것만으로도 만족하며 살 거니까.’“이만 돌아가자.” 이서의 목소리에는 형용할 수 없는 피곤함이 배어 있었다. 이서는 또 한 차례의 격전을 이겨내기 위해 푹 쉬어야만 했지만, 이서가 윤씨 가문의 혈육이 아니라는 가십이 온 세상을 들썩이기 시작했다.하지만 이서는 일부로 그 가십을 잠재우려 하지 않았고, 되려 상황이 더욱 악화되도록 방치했다.이내 그 소식은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게 되었고, 많은 사람은 윤씨 가문이 하씨 가문의 도움을 받기 위해 그토록 파렴치한 짓을 저질렀다는 것에 매우 놀랐다.[어머, 그럼 윤이서 씨는 아무 잘못도 없이 윤씨 가문의 도구가 된 거예요? 너무 불쌍하네요.] [윤씨 가문 사람들, 정말 파렴치해요! 자기 딸은 자기 딸이지만, 다른 사람은 딸은 다른 사람의 딸인 거잖아요.][윤이서 씨가 친부모님을 찾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윤이서 씨의 친부모님이 이 사실을 알면 얼마나 가슴 아파하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