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사람이 장지완인 걸 본 ‘추종자1’은 아첨의 웃음을 지으며 장지완에게 다가갔다. 마치 칭찬에 고픈 강아지처럼.“언니, 윤이서가 우리 비위를 맞추려고 짝퉁 ‘드래곤’을 선물로 사왔지 뭐예요, 정말 웃겨 죽겠어.”장지완도 ‘드래곤’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다. 그녀의 주변에도 ‘드래곤’사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현재 국내에서는 출시 계획이 없는 데다 해외에서도 사전 예약으로만 구매할 수 있어 귀한 존재라는 걸 알고 있었다.그녀는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일 열심히 할 생각은 안하고, 더러운 수단으로 지름길을 가려고 하지…….”말이 떨어지자, 이서 사무실 문이 열렸다.그녀는 아직 나눠주지 않은 핸드폰을 보고는 심소희에게 물었다.“왜, 다들 싫대요?”화가 난 심소희는 흐느끼며 말했다.“총괄님, 저 사람들…… 저 사람들이 이 휴대폰…… 짝퉁이래요.”‘이 사람들, 총괄 디렉터에 대한 악의가 너무 강하다.’이서는 눈썹을 비틀며 장지완을 쳐다보고는, 대략 어떤 상황인지 감이 왔다. 그녀는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이건 그냥 선물이예요. 싫다면, 그냥 둬요.”이서의 침착한 모습을 본 심소희도 마음을 다잡고 얼굴의 눈물을 닦았다.“받고 싶은 분들은 줄 서주세요.”적잖은 사람들이 장지완의 체면 때문에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상황을 지켜보던 이서가 말했다.“모두가 원하지 않는 것 같으니 그냥 가져와요.”이제 그녀도 주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바로 이때 문이 밖에서 열리면서 누군가가 들어왔다.김청용은 푸른색 양복을 입고 우아하게 웃었다.“왜 다들 서 있어? 새 팀장을 환영하는 건가?”장지완은 입술을 꼬며 말했다. 말투에는 가시가 돋쳐 있었다.“아니 글쎄 총괄 디렉터님께서 우리에게 짝퉁 핸드폰을 선물로 준비했지 뭐예요…….”김청용의 관자놀이가 벌떡벌떡 뛰었다. 이서가 정식 출근하기 전에 그는 장지완을 단독으로 불러, 이서가 하는 일을 밀어주라고, 그럼 그녀에게 백해무익할 거라고 귀띔해줬었다. 그런데 오늘 상황을 보니, 장지
곧 정품이라는 두 글자와 함께 등록 절차가 화면에 떴다. 이를 본 장지완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다른 사람들도 눈이 휘둥그레진 건 마찬가지였다. 심장에서는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다.‘드래곤’이 현재 해외에서 3만 달러에 거래되고 있으니, 국내에서도 최소한 수천만 원 할 텐데, 장지완에게 밉보일 까봐 거금을 잃다니…….모두가 원망하는 눈빛으로 장지완을 바라보는 것을 느낀 심소희는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총괄님, 이 핸드폰들은 모두 갖고 들어가겠습니다.”“네, 그래요.”이서가 고개를 끄덕였다.다른 사람들도 심소희가 휴대전화를 가지고 들아가는 것을 보며, 한을 머금은 눈빛으로 장지완과 핸드폰 박스를 번갈아 보았다.이를 본 김청용은 저도 모르게 이서를 다시 한 번 훑어보았다.이서를 디자인팀 총괄 디렉터, 그것도 평생직원으로 발탁한 것은 윗선의 결정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처음에 그도 이서의 능력을 다소 의심했다. 비록 디자인 방면에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업무 경험이 없으므로, 장지완과 평화롭게 지내지 못할까 봐 걱정이 되어서 장지완을 불러서 특히 당부했었다. 그런데 지금 보니 기우였다. 그녀는 장지완의 갑질에 충분히 대처할 능력이 있었다.게다가 핸드폰 한 대로 장지완 위수로 똘똘 뭉친 세력들을 분화시키는 데 성공했다.정말 고단수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이서는 김청용이 서서 가지 않는 것을 보고 입을 열었다.“사장님, 혹시 다른 볼일이 있으십니까?”“아……,” 김청용은 휴대전화를 들고 이서에 대한 태도가 더욱 공손했다.“내 정신 좀 봐라……. 깜빡했네요. 오후 2시에 회의가 있으니 꼭 참석해주세요.”“네, 알겠습니다.”이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김청용이 떠나는 것을 지켜봤다.김청용이 떠난 후 자신의 사무실 문어귀에 서 있던 장지완은 이서를 노려보고 갑자기 몸을 돌려 문을 ‘꽝’ 닫았다.소리가 커서 디자인팀 전체가 다 들었다.그러나 이번에는 아무도 고개를 들어 기웃거리지 않았다.오후 두 시.이서는 하이힐을 신고 회
이때 누군가 입을 열었다.“지완 씨가 이전에 케빈 선생과 합작한 적이 있는 거 같은데?”장지완은 입술을 끌어올리며 득의양양했다.“네, 맞아요, 3년 전에 제가 외국기업에서 디자이너로 일했을 때 케빈 선생님이 개발하신 안티에이징 마스크 팩을 디자인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생각났어요. 캐빈 선생님께서 지완 씨 디자인 작품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추후 계속 계약관계를 지속하고 싶다고 했다던데……, 근데 왜 나중에 흐지부지되었어요?”“그 때 집에 일이 생겨서 어쩔 수 없이 귀국했어요.”모두들 주먹을 불끈 쥐었다.이때 또 누군가가 제안했다.“지완 씨가 이미 3년전에 케빈 선생님과 합작한적이 있으니, 내가 보기에 이 일은 지완 씨에게 맡기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케빈 선생님이 필히 지완 씨 작품을 마음에 들어 할 테니까.”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김청용의 시선은 이서에게 떨어졌다.“윤 총괄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그제야 사람들은 이서가 디자인 총괄 디렉터라는 사실을 떠올렸다.하지만 그 누구도 이서를 인식하지 못한 것에 미안한 기색이 없었다. 장지완에 비해 경험도 능력도 떨어진다고 생각했으니.윗선에서 뭔 생각으로 경험이 없는 사람을 총괄 디렉터로 임명했는지 이해할 수 없는 눈치였다.“이렇게 중대한 사안인 이상, 한 사람에게 일을 맡기는 것보다는 여러 명이 함께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이서는 이 또한 그녀에게 있어서도 중요한 기회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럼 그만하죠.”장지완은 두 손으로 팔짱을 끼고 턱을 들어 눈을 아래로 깔고 얘기했다.“디자인은 매우 사적인 작업입니다. 저는 혼자서 하는 걸 비교적 즐기는 편입니다. 만약 다른 사람들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다면 저는 물러나겠습니다.”이 말이 나오자, 사람들은 지완의 말이 이서를 겨냥한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윤 총괄님, 아니 윤팀장님, 지완 씨는 이미 오래 전에 캐빈 선생님과 합작한 경험도 있고, 또
사무실로 돌아온 이서는 관자놀이를 문질렀다.‘이번 프로젝트는 나를 증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반드시 잘 해야 한다.’이서는 숨을 한번 크게 들이쉬고는 컴퓨터를 켜서 내부 네트워크에 들어가 케빈의 자료를 찾아 프린트했다.자료에 따르면, 화장품 패키지 디자인 관해 케빈은 자신만의 독특한 취향을 갖고 있었다. 선명하고 밝은 색 계열에, 대담하고 튀는 스타일을 선호한다고 적혀 있었다.이서는 전시된 작품 몇 점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진심으로 대가의 안목에 동조할 수 없었다.그러나 캐빈의 인정을 받아야 하기에, 억지로 꾸역꾸역 보고 있었다.퇴근 시간이 다 되어갈 때까지도 그 어떤 아이디어도 떠오르지 않았다.시간이 되자, 그녀는 곧 자료를 정리하고 서랍에서 하은철이 선물한 목걸이를 챙겨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아래층에는 이미 카드를 찍고 퇴근하는 동료들로 붐볐다. 다들 이서를 힐끗힐끗 쳐다보았다.이서는 태연자약하게 카드를 찍고, ‘회사’가 배정한 차에 올라탔다.“아니지, 아니지, 윤이서 설마 출퇴근 전용차도 있는 거야? 정말 공주님의 인간 생활 체험기네?”“허허, 윤씨 집안은 벌써 몰락했지. 하씨 집안이 아니었더라면 어떻게 이런 대우를 받겠어?”“우리 회사의 대보스가 하은철 삼촌이라고 하더라. 그러니까 하씨 집안과의 관계를 생각해서 윤이서를 서우의 디자인 총괄 디렉터로 임명한 거겠지.”“……그럴 수 있지. 아무튼 능력은 없는데, 뒷배경이 든든하니 낙하산으로 내려오는 경우가 많지!”“…….”차 안.이서는 운전기사인 임현태에게 말했다.“현태 씨, 먼저 하씨 저택으로 가 주세요.”임현태는 이서에게 편하게 이름을 부르라고 했다. 하지만 이서는 자기보다 족히 10살은 많아 보이는 그에게 차마 직접 이름을 부를 수는 없었다.“네. 알겠습니다.” 임현태는 시동을 걸고 천천히 하씨 저택으로 출발했다.이서는 고개를 숙이고 케빈의 자료를 꺼내 계속 보고 있었다.곧 차가 멈춰 섰다.이서가 온다는 것을 알고, 하경철은 아침부터 아래사람들한테 저
바로 이때 입구에서 하은철의 불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할아버지, 저 돌아왔어요.”다음 순간, 하경철 옆에 있는 이서를 보고 멍해졌다.정장을 차려 입은 이서는 과거의 쭈뼛쭈뼛하고 눈치 보던 소녀의 이미지를 벗고, 세련된 커리어우먼의 자신감 있고 당당한 모습으로 변신했다. 온몸에 반짝반짝 아우라가 비치는 것 같았다.하은철은 헛기침을 하고는, 먼저 입을 열었다.“언제 돌아왔어?”이서의 표정은 담담했다.“며칠 전에.”말을 마치고, 뒤돌아서 하경철에게 인사했다. “할아버지, 저 먼저 갈게요.”하은철 옆을 지날 때, 하경철을 의식해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저기, 잠깐 좀 나와봐.”소녀의 몸에서 나는 담담한 향기가 있는 듯 없는 듯 하은철의 코끝을 스쳤다. 순간 그의 심장이 갑자기 쿵쿵 뛰기 시작했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러고는 또 바로 약간 후회하며 괜히 몇 마디 덧붙였다.“할 말 있으면 그냥 여기서 하지.”이서는 눈살을 찌푸리며 하은철을 무시하고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하은철은 내키지 않는 듯 입술을 오므리고 잠시 중얼거렸다. 하지만 몸은 이미 이서의 발걸음을 따라 나갔다.이 장면을 본 하경철은 체념한듯 고개를 저었다. ‘이 멍청한 손주녀석은 도대체 언제야 자기가 이서에게 마음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을까?’며칠 뒤, 지환과의 만남을 생각하며, 하경철의 눈빛이 싸늘해졌다.그가 괜한 걱정이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하은철은 이서를 따라 입구에 도착해서야 발걸음을 멈추었다.“무슨 일이길래 꼭 밖에서 얘기해야 하는 거야?”하은철은 문에 기대어 애써 차가운 말투로 다그쳤지만, 눈가에 번진 웃음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이서는 가방에서 목걸이를 꺼내 하은철에게 건네주고, 또 돈뭉치도 꺼냈다.“장미꽃은 내가 직접 치우라고 했고, 이건 꽃 값이야.”하은철의 눈가에 스며 있던 웃음기가 사라졌다.“윤이서, 나 이미 자존심 내려놓고 너한테 고개 숙였어. 게다가 네가 이혼녀라도 개의치 않다고. 너도 적당히 해야 하는 거 아
차가 여러 번 모퉁이를 돌더니 드디어 속도를 줄였다.임현태는 백미러를 통해 더는 미행차량이 보이지 않는 걸 확인하고 얼굴빛 하나 바뀌지 않고 말했다.“죄송합니다. 차에 문제가 좀 있었어요. 저녁에 정비소에 맡기고 점검 받아봐야 하겠습니다. 큰 문제는 아닐 것이니 출퇴근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입니다.”이서는 눈살을 찌푸리며 임현태가 얘기한 것처럼 큰 문제가 아니라는 말을 믿지 않았다.그러나 그 뒤 별장에 도착하기 전까지 별문제 없이 안전하게 도착했다. 이서도 별말없이 임현태에게 조심이 들어가라는 인사를 건네고는 몸을 돌려 별장으로 들어갔다.민씨 집안.“멍청한 놈들, 쓸만한 놈이 어찌 한 놈도 없어! 병신새끼들!” 민호일은 화가 나서, 돌아와 상황 보고하는 경호원을 발로 걷어찼다.“너희들 뭐야? 밥만 축내는 놈들! 도대체 하는 일이 뭐냐고! 뒷조사하라고 했더니, 아직 상대방이 누군지 찾아 내지도 못하지, 공항에 가서 잠복하라고 했더니, 헛물 켜고……. 어린 여자 하나 미행하라고 했더니, 그것도 제대로 못해……? 너희들 밥 축내는 거 말고 할 줄 아는 게 뭐야?”민호일은 고함을 지르고, 나서 화가 나서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그는 정말 화가 나서 돌아버릴 것 같았다.윤이서랑 그 남편을 바로 찾을 줄 알았는데,한 바탕 조사하다 보니 그들이 출국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귀국하는 날짜를 기다렸다 공항에서 잠복근무까지 시켰는데 결국은 또 감쪽같이 공항을 빠져나갔다.가장 화가 난 것은, 윤이서가 서우에서 출근하는 걸 알고 있지만, 그의 사람들은 거기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못 들어가는 것도 그만이다. 어차피 서우가 하은철 삼촌의 회사이니, 체면을 봐줘야 하는 거니까. 그런데 지금 미행 차량을 따돌리다니……. 이 경호원인지 식충인지 이들의 실력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부하들도 억울하긴 매한가지였다.“사장님, 저희 능력이 부족한 게 아니라 정말…… 보통 인물은 아닙니다.”“개소리 지껄이네! 내가 뭐 바보인 줄 알
이상언은 흥이 높지 않았다.[안 나가고 싶은데…….]지환은 별다른 말없이 전화를 끊고 주소를 보냈다.한 시간도 안 되어 두 사람은 술집에서 합류했다.이상언은 VIP 룸을 예약했다. 지환이 혼자 들어오는 것을 보고 입을 삐죽거렸다.“왜 너 혼자야?”지환은 시가를 꺼내 입술에 물고는 불을 붙이고 소파에 파묻히듯 앉았다.“몇 명을 원하는 거야?”“이서 씨는 안 왔어? 네가 이런데 다녀도 별 얘기 안 해?”지환은 시가를 피우며 말을 아꼈다.“당연히 온 걸 모르지.”“너희 또 싸웠어?”지환은 라이터를 ‘찰칵’ 켰다. 밝은 불빛이 그의 날카로운 이목구비를 밝혔다. 눈을 아래로 숙이자, 긴 속눈썹이 눈동자를 덮었다. 그러고는‘응’하고 가볍게 대답했다. 그의 말투로는 도무지 기분을 간파할 수 없었다.“뭔 일로 싸웠어?” 이상언은 호기심에 다가와 물었다.지환은 연기 한 모금을 내뿜으며 말하지 않고 입꼬리만 치켜 올렸다.“다들 남자는 일 마치고 바지만 올리면 나 몰라라 한다는데, 내가 보기에는 여자도 별반 다르지 않더라.”이상언은 갑자기 신이 났다.“너…… 당했어?”지환은 그를 흘겨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상언은 술을 한 모금 마시고 그의 마음을 이해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니까, 누가 아니래? 여자들 다 똑같아.”지난번 그 일 이후로 그는 임하나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담배연기가 피어오르자, 지환은 실눈을 뜨며 이상언에게 물었다.“너도……?”이상언은 급히 술을 한 모금 들이 키고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내가 어…… 어떻게 당할 수 있겠어?”지환은 말없이 이상언을 한참 동안 응시하다가, 시선을 돌려 담배를 끄고 술 한 병을 따서 들이 마셨다.이어서 두 번째, 세 번째 병…….상황을 지켜보던 이상언이 얼른 제지했다.“너 미쳤어? 이렇게 마시면, 속 다 버려!”지환은 힘을 주어 이상언을 뿌리치고 고개를 들어 또 한 병을 들이부었다.주량이 좋은 그는 몇 병을 마셨는데도 여전히 멀쩡했다.그의 몸에서 술 냄새가 났다
30분이 넘어서야 이서는 이상언이 말한 그 술집에 도착했다. 한적한 곳이라고 하기에는 주위의 차량 통행량이 너무 많았다. 이서는 순간 깊은 의심에 빠졌다.‘……여기는 번화가인데?’‘왜 대리를 못 부른다는 거지?’그녀는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멀리서 그녀를 향해 손짓하는 이상언을 보았다.“여기요!”이서는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멀지 않은 곳의 기둥에 기대어 서있는 지환을 보았다.가로등이 멀리 있어 이서는 그의 이목구비를 똑똑히 볼 수 없었다. 몇 걸음 다가서야 그가 눈을 살짝 감고 고통스러운 듯 미간을 찡그리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몸에는 술냄새가 진동했다. 정말 많이 마신 것 같았다.“지환 씨!”그녀는 지환의 뺨을 가볍게 두드렸다.지환이 눈을 뜨자 약간 빨간 눈동자가 이서의 시야에 들어왔다.이서는 깜짝 놀랐다. 마치 다친 새끼 고양이 보듯 동작도 한결 가볍고 부드러워졌다.“집에 가요.”지환은 가만히 서 있었다.이서가 그를 잡아당기자, 그의 몸은 마치 뼈가 없는 사람처럼 제대로 서있지 못하고 이서의 어깨에 기대였다.이서는 그의 몸을 받치며 밀어내려고 했지만 지환의 몸은 ‘돌부처’마냥 꿈쩍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어쩔 수 없이 지환의 허리를 안고 안깐힘을 써서 겨우 차에 태웠다.이상언은 비틀거리며 걷는 지환의 걸음걸이를 보며 마음속으로 연기천재라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그러고는 곧 이서 차 주위를 눈빛으로 ‘스윽’ 살피며, 함께 온 차량이 있는지 확인해보았다. 마음이 서늘해진 그는 차 옆으로 몇 걸음 다가가 무심한 척 물었다.“혼자 왔어요?”겨우 지환을 차에 밀어 넣은 이서는 코끝에 땀방울이 맺혔다.“아니요, 상언 씨 픽업할 사람도 곧 도착할 거예요.”이상언의 마음속에는 또다시 희망이 불꽃이 타오르며 온화하게 웃었다.“귀찮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귀찮기는요.”이서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멀지 않은 곳에서 차 한 대가 오는 것을 보며, 웃으며 말했다.“저기 왔네요.”이상언은 이서의 시선을 따라 가보았다.차가 천천히 이쪽으